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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만남의 기쁨 (행8:1-8 )

by 【고동엽】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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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만남의 기쁨    (행8:1-8 )


지난주간에 우리는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금기시 되어 왔던 북한에 대한 뉴스들이 속속히 TV를 타고 우리의 안방까지 신선하게 비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나라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최고 실력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낸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갈 동안 먹고 입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후부터는 삶의 기쁨을 추구하게 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기쁨이 없는 삶은 살아 있으나 실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신앙 생활에도 참되고 영원한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기쁨이 없이 그저 형식적이고 의식적이며 율법적인 종교는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참된 구원의 기쁨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기쁨을 주노니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주신 구원의 기쁨을 체험한 사도 바울은 햇볕 한 점이 비취지 않는 어둠침침한 땅 굴속 같은 빌립보의 어느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하기를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가장 기쁨이 있을 수 없는 처절한 상황 속에서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신앙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들이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다면 그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쁨과 신앙은 절실한 관계가 있습니다. 기뻐하라 했다 해서 그냥 아무렇게나 함박 웃음을 웃고 다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까르르 웃고 다닌다 해서 반드시 그것이 기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TV를 보면 코미디언들이 우리를 얼마나 웃게 만듭니까? 참된 기쁨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뱃속에서 우러나야 합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도, 뱃속에서는 기쁨이 넘쳐 나는데 이와 같이 뱃속에서 넘쳐 나는 기쁨이 참된 기쁨입니다. 우리 눈에는 절망이 보일지라도, 우리 뱃속에서는 샘솟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기쁨은 곧 예수 님이 주시는 성령을 통해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너희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치나리라고 했습니다. 머릿속에서 흘러나온다 하지 않았습니다. 가슴속에서 넘쳐 나온다 하지 않았습니다. 뱃속에서 넘쳐 나온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누리는 믿음과 기쁨과 사랑은 모두 뱃속으로부터 우러나옵니다. 왜냐하면 인간 영혼의 중심이 뱃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님께서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할 때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나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인간의 영혼의 중심이 이 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그 사람 배짱 쎄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생기면 당장 어데가 든든해집니까? 이 아랫배가 든든해지고 배짱이 쎄집니다. 기쁨이 어데서 샘솟습니까? 이 뱃속에서 샘솟아 올라옵니다. 성령의 충만이 어데서 넘쳐 납니까? 이 뱃속에서부터 넘쳐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배속에는 평화가 넘쳐 나야 합니다. 뱃속에 기쁨과 평화가 없고 마귀가 가득 차 있으면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큰 기쁨의 생활은 바로 우리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것입니다.    

초대 교회 시절에 빌립이란 사람이 성령 충만을 체험하고 난 후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는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주님의 분부를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의 체험을 한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그가 체험한 기쁨의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여 큰 기쁨의 신앙을 주시는 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⑴,예수 만남의 기쁨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제1차 적으로 한일은 '그가 그리스도를 전했다'고 했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자 마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님을 만나게 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은 만남의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혼자는 살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독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고독만큼 인간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사랑해 줄 사람이 없어지고,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없어져서 고독에 처하게 될 때 인간은 파괴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모든 사회에서 인정해 주고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고독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어떤 노인네가 자기 교회 목사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과 상담을 했던 분은 60이 넘은 노인 분이 신데 상처를 하고 혼자 사는 분으로서 자녀들은 모두 결혼하여 출가하고 없고 노인 혼자서만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 노인이 상담하면서 하는 말 중 '나는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난 다음 집에 돌아가 앉아서 벽하고 이야기합니다. 벽을 쳐다보고 이야기합니다'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저는 그 상담 내용을 읽으면서 느낀바 가 많았습니다.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에는 자녀들도 모두 따로 살기 때문에 60이 훨씬 넘으신 분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서 아무도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벽을 쳐다보고 독백을 한다니 얼마나 그 마음이 고독했겠습니까? 고독의 슬픔 이것 무시 못합니다. 식구들이 함께 모여 살면 좋을 때도 있고 미울 때도 있어서 서로 할퀴고 싸우기도 하지만 모두들 삶의 장소로 떠나고 없으면 애닯다 어찌하리! 그때의 고독은 뼈저린 고독일 것입니다. 이러므로 인생이란 만남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만남이 없는 삶은 죽은 삶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남이란 그냥 눈으로 서로 보면서 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남은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영혼과 영혼이 서로 접촉해야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을 접촉하지만 그 접촉이 다 만남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만남은 나의 영혼과 저 사람이 영혼이 부딪혀야 합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자녀들이 부모들과의 진정한 만남을 갖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냥 집에서 밥만 먹여 주고 옷만 입혀 주지 서로간에 영혼의 만남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동심 일체가 되는 영혼의 만남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집에서 고아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처음 출발은 가정에서 부모와의 만남을 통해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가정들은 만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곁길로 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만남을 주선해야 합니다. 가령 모든 식구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회를 갖는다든지 아니면 가정 기도회를 갖는다면 자연스럽게 가족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한 식구들이 같이 둘러앉아서 성경을 읽으면 성경 뜻을 몰라도 좋고 혹 졸면서 읽어도 좋습니다. 그런 중에 만남을 이룰 수 있고 그 만남을 통해서 우리들의 믿음이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이런 만남을 통해서 부모와 자식이 연결이 되고 그러는 중에 애정이 넘치게 되어 자녀들이 인격적으로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 인생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부부의 만남입니다. 부부의 만남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부부간이 잘못 만나게 되면 톱니바퀴가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몹시 불행하게 됩니다. 톱니가 잘못 맞을 경우 내어버리면 되지만 부부는 잘못 만난다고 해서 내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 그냥 둘 수도 없으니 한평생을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은 좋은 상대를 만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옛말에 남자가 성공하려면 부인을 잘 만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인이 뒤에서 만남을 잘해 줘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남자가 아무리 지혜가 있고 총명하고 훌륭해도 장가를 잘못 들어서 여자가 뒤에서 고춧가루나 휙휙 뿌린다면 그 사람은 별수 없이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남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밖에서는 강한체 해도 집에 들어가면 형편없이 약한 것입니다. '남자여 너 이름은 집에서는 약하도다' 남자들이 큰소리 쳐도 괜히 집에 들어와서 여자들이 깐죽거리면 말할 수 없이 파괴되는 것이 남자들입니다. 그러고 나면 남자들은 희망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의욕도, 욕망도 잃어버리게 되고 그 다음에는 될 대로 되라 하는 식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한 남자를 남편으로 삼고서 한 가정을 이루었으면 이제는 죽든 살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기왕 살 바에는 성공시켜 놓고 그 그늘 밑에서 사는 것이 그 사람 망쳐 놓고 그 그늘 밑에서 사는 것 보다 훨씬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남편들을 집에서 깐죽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저 뒤에서 격려해 주고 기도해 주면서 감싸주면서 살아갈 때 좋은 부부의 만남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편들이 말하기를 우리 마누라 뭐 인물 하나 잘난 것은 없지만 그러나 그 마음은 비단 속 같이 곱단 말이야 하는 소리를 서슴없이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마누라가 되어 준다면 남편들은 자신들의 뼈가 부셔지도록 아내를 사랑하고 지켜 줄 것입니다. 이 부부간의 만남이 잘 되려면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해서 만나야 좋은 만남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사회생활의 만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는 세상을 못삽니다. 사회에 나가면 사회생활을 통해서 만남을 갖게 됩니다. 사회에 나가서 친구를 만나고, 동행자를 만나고, 동업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만날 때 잘 만나야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가지고 매일 마다 얻어맞는 사람을 만나 놓으면 함께 얻어맞기 마련입니다. 요나가 탄 배에는 괜히 이웃을 잘못 만났다는 이유 때문에 지중해에서 엄청난 고생을 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을 잘 만나야 합니다. 사업을 해도 그 내력을 잘 알아보고 만나야지 내리 얻어맞는 집에 들어갔다가 서까래 무너지면 같이 납작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업 친구도 잘 만나야 하고 인생의 친구도 잘 만나야 하고 그래서 인생이 살찌워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친구를 만나고 아무리 좋은 이웃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이런 만남은 세상 적인 만남밖에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만남으로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부모 자식간의 문제나 부부간의 문제 혹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발생한 문제들은 만남을 통해서 얼마간 해결을 볼 수 있지만 영혼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관속에 들어갈 때 부모 자식이 도와줄 수 없으며 부부가 도와줄 수 없으며 친구가 와서 도와줄 수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다 도와줘도 관속에 들어갈 때는 혼자 혼자 들어가야 합니다.

동양판 다이제스트라는 책에 보면 철학 박사이며 의학박사인 닥터 무디라는 사람이 평생을 바쳐 가면서 수백 명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에 대한 연구 보고서가 있는데 거기 보면 완전히 병원에서 의사 죽었다고 사형 선고를 내린 사람이 살아난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화장터 불 속에 넣으려는 순간에 살아난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죽음을 체험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간증을 적어 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들이 다 한가지로 죽음 저 건너편에 영원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분명히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몸밖에서 자기들의 시체를 다 볼 수 있었고, 장사를 지내는 것도 다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몸 속에서 빠져 나와서 온 몸에 빛을 입은 눈부신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말하기를 너이 평생에 살았을 때 했던 일을 말하라고 하더랍니다. 한 사람도 빠짐 없이 그분을 만나고 난 다음 너는 아직 올 때가 멀었으니 돌아가라 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은 과학적인 데이터로 다이제스트란 잡지에 크게 보도된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죽으면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낡은 집을 버리고 지상에서 보다 더 좋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에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들어가는 길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원한 삶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만 그저 종교적 형식적 윤리적 도덕적으로 왔다갔다하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거듭난 체험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님과의 만남이 없이 그냥 교회 형식적으로 왔다갔다하는 것은 괜히 시간 낭비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만남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죄인인 우리를 끌어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만나게 해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을 통해서 예수 님이 내 속에 들어와 계시게 되었고 나는 옛 삶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출저/이석권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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