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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그리스도의 향기(고린도후서 2:12-17)

by 【고동엽】 2024.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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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향기(고린도후서 2:12-17)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우리 그리스도인과의 관계를"향기"라는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냄새를 맡고 살며, 또한 냄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냄새에 젖기도 하고 동화되기도 하며, 다른 사람의 냄새를 맡는가 하면 내가 냄새를 피우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좋은 냄새를 맡음으로 기분이 좋은 때가 있는가하면, 나쁜 냄새를 맡고는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쁜 때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때에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냄새를 풍겨서 기분을 좋게도 하지만, 나에게서 나는 악취로 인해 얼굴을 찌푸리고 코를 막으며, 때로는 나의 악취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죽기까지 합니다.

모든 사물에는 각기 특유의 냄새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분 좋은 냄새를 향기라 하고 불쾌한 냄새를 악취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각각 자기 나름의 독특한 냄새를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는 참으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중매로 결혼을 한 사람이 남편의 좋지 못한 냄새 때문에 역겨워 하다가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나머지 친정 아버지 앞으로 "딸 하나 죽은 셈치십시오"하는 유서 같은 편지를 남기고 자취를 감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튼 사람에게는 이와 같이 각각 그 특유의 냄새가 있습니다. 그래서, 젖먹이 어린애들이 어머니의 품에 안길 때에 아주 좋아하는 것도 어머니의 얼굴을 알아서가 아니라, 냄새를 맡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품은 자기의 고향인 까닭에 고향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이란 말입니다.

사람과 동물을 비교하는 것이 좋은 예는 아니겠지만, 개가 새끼를 낳은 다음에도 보면, 눈도 뜨지 않은 새끼가 그대로 어미 개의 젖꼭지를 찾아 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코로 냄새를 맡아서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개가 도둑을 잡고 사람을 추적하며 마약을 찾아내고 하는 것들이 모두 냄새를 맡아서 끌려가고 추적되어짐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던 개가 자기 집을 찾아오는 것은 이것저것 보아둔 건물이나 길을 기억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기가 갔던 길에 남아 있는 자기의 냄새를 추적해서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냄새라는 것은 오래 남는 것이며, 참으로 지독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냄새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게 되어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동화성도 강하여 처음에는 불쾌한 냄새가 괴롭다가도 시간이 조금 지나게되면 별 감각도 없이 괜찮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망우리 지나 교문리 쪽을 가다보면, 아무 때에 지나가도 지독한 냄새가 나는 곳이 있어서 그곳을 지날 때마다 또 그 냄새가 나겠지 하고 걱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비록 좋지 않은 냄새라 하더라도 계속 맡게 되면 거기에 익숙해져 괜찮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죄악 중에 사는 사람도 그렇게 오래 살다보면 아예 그렇거니 하면서 동화되어 버린 채 아무런 자각증상이나 분별력도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여러 가지의 냄새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중 먼저 생각할 것이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말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향기는 곧 생명을 주는 냄새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시는 장면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마을에 들어설 때이면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예수님 앞에 굴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향기를 풍성하게 풍기며 다니셨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향기는 소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매우 강합니다. 본래 귀신은 향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풍속에 사람이 죽고 나면 그 시신 앞에 향불을 피우는 것은 위생적으로 볼 때는 어디까지나 시신에서 나오는 냄새를 제거하기 위함이지만, 미신적으로 볼 때는 귀신은 향내를 싫어하므로 잡귀들이 시신 가까이에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으로 이른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으로 이르는 냄새라."는 이 내용은 그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이에 앞서 냄새에 대한 감각을 두고 생각해 보면, 같은 한 냄새가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냄새로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좋지 못한 냄새로 맡아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양 사람들의 버터 냄새가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는가 하면, 우리가 좋아하는 김치 냄새가 저들에게는 매우 싫은 것이란 말입니다. 이와 같이 꼭 같은 냄새가 이 사람에게는 좋은 냄새로 저 사람에게는 아주 나쁜 냄새로 맡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리스도의 향기가 이 사람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고 저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냐고 한 그 역사적인 배경이 무엇인가 할 때, 그 배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로마 사람들이 많은 전쟁을 하던 시절, 멀리 원정을 나가 몇 달 혹은 몇 년씩 전쟁을 한 다음 많은 전리품과 포로들을 끌고 승전고를 울리면서 개선하는 장군과 군사들의 몸에는 온통 찌들고 피로 얼룩진 옷이 그대로 입혀져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이면 맨 앞에 기수와 함께 나팔수가 나팔을 불면서 가고, 그 뒤에는 북을 치는 사람이 따라 갔으며, 북을 치는 사람의 뒤에는 많은 향이 피워진 큰 가마와 같은 향로를 따르게 하여 온 성이 향내로 가득하게 했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 개선하는 군사들은 이겼다는 마음에서 시끄럽게 승전가를 부르며 의기 양양해하지만, 그들이 피묻은 옷과, 땀내 나는 몸으로 인해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악취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 냄새를 제거하기 위하여 향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한편 미신적인 의미에서는 전쟁에서는 많은 사람을 죽이기 마련인데, 그 중에는 착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어서 귀신 또한 갖가지일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귀신들이 지금 모두 여기에 둘러붙고 있다는 것이며, 만약 이러한 귀신들이 성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이 성안의 행복이 없어진다 하여 잡기를 쫓아내겠다는 의도에서 향을 피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향내를 물씬 풍기면서 개선하는 장면을 생각해 볼 때 승리를 한 사람들에게는 이 냄새가 그야말로 향내로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저 먼 곳에서 향로에서 나는 한 줄기 연기만 보아도 감격스러워 환호를 하며 만세를 부르게 되는 냄새가 바로 이때의 향내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때의 향내는 무슨 향내로 비유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곧 승리의 냄새요, 생명에 이르는 냄새인 것입니다.

그러나 저 만큼 뒤에서 끌려오고 있는 전쟁 포로들, 이제 몇 시간 후이면 처형을 당할 그들에게는 이 냄새가 사망의 냄새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분명 똑같은 냄새임에도 승리자의 편에서 함께 승리를 기뻐하는 자들에게는 이 냄새가 생명에 이르는 냄새요, 반대로 승리한 자들을 대항하여 싸우던 원수였던 자들에게는 이 냄새가 사망에 이르는 냄새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제로 이 향기가 "이 사람에게는 사망을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을 좇아 생명에 이른 냄새라."고 설명을 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리스도의 편에서 그리스도의승리를 찬양하며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참으로 좋은 생명의 향기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그 뜻을 거역하며, 그리스도의 역사를 방해하고 도전하는 자들에게는 승리와 생명의 냄새 대신 죽음에 이르는 냄새가 되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향기란 곧 말씀의 향기요, 말씀의 권세이며 영적인 힘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향기요, 승리의 향기이며 빛의 향기입니다. 이 향기를 통하여 병자가 낫고, 굶주린 자의 배가 부르며, 눌린 자가 풀려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향기를 생명에 이른 냄새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비유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이미 죽은지 나흘이나 된 무덤 속의 썩어 가는 나사로가 생명 되신 예수의 향기가 무덤에 이르게 될 때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곧 생명에 이르게 하는 냄새인 그리스도의 향기인 것입니다. 냄새 중에 가장 좋은 냄새는 생명의 냄새입니다. 죽은 것으로서 냄새가 좋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향기가 좋은 백합꽃도 시들어 썩게되면, 오히려 더 고약한 냄새를 풍기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살아있는 생명만이 아름다운 냄새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가까이 해 보면, 그 냄새가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조금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노인들의 냄새는 좋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그날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 무슨 특별한 향기를 뿌린다고 하여 젊음의 냄새만큼 좋아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정말 좋은 냄새는 싱그러운 생명의 냄새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향기에 따르는 우리의 향기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갖는 자체내의 향기가 아닙니다. 본문은 이를 두고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고 말합니다. 이 냄새는 그리스도로부터 전달받은 냄새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리스도와 사귐으로 그리스도의 냄새가 알게 모르게, 내게 묻고 배이게 되어 내 인격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냄새가 조금씩 조금씩 풍기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사시를 알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와 사귀면 명예를 얻게되고, 악한 자와 사귀면 욕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그리스도를 닮고자 애를 쓰다보면 어느 사이에 내게서도 이미 예수의 냄새가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중에 예수님의 동생이라는 별명을 가지신 분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 별명입니까? 그야말로 예수의 냄새가 짙게 나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빌립보서 2:5 말씀을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보면, 애써 억지로 꾸미지 않더라도 벌써 예수의 향기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사랑하고 즐기며 거기에 심취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냄새를 내게되어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어쩌다 부득이해서 담배연기가 자욱한 장소에 앉았다 나오게 되면, 마치 내가 피우기라도 한 듯이 냄새가 짙게 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내가 지금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그리스도와 접근하고 있느냐 않느냐의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이든 그리스도의 향기와 접하게 되면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기 마련입니다. 개가 자기의 냄새를 따라 집을 찾아 돌아오고 주인을 만나 반가워하는 것도 자기가 아는 주인의 냄새가 따로 있기 때문이라면 우리를 따라다니는 냄새는 어떤 냄새인지 깊이 생각해야 될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사람들이 나를 만날 때에 맡는 냄새는 어떤 냄새인가? 그리고 나를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을 수가 있어서 그 생명이 살아나게 되는가? 아니면 나와 만나는 동안에 가졌던 믿음마저 잃게 되어 어두워진 마음으로 죽음에 이르고 있지나 않는지 참으로 깊이 생각해 볼 것입니다. 적어도 이제는 내 자신의 냄새는 모두 사라졌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오직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만이 풍길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참으로 귀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서신인 갈라디아서 1:23-4에 보면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 자신을 가리켜 내 냄새, 내소식, 내 소문, 내 말을 듣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며 기뻐하고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의 소문은 어떤 결과를 낳고 있습니까? 여러분의소문을 들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오히려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내가 자주 맡는 냄새가어떤 거시며 내가 즐기는 냄새는 어떤 냄새인지, 그리고 나는 과연 향기를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썩은 냄새를 좋아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17:32)고 하셨습니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고 까마귀가 날아드는 법입니다. 그야말로 온갖 추한 것들이 다 모여드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향기가 있는 곳에는 곱고 아름다운 것들과 좋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풍겨진 향기는 그대로 옮겨지기 마련입니다.

중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 어떤 사람이 강에서 소에게 물을 먹이고 있는데, 한 친구가 소를 몰고 오더니 소의 귀를 씻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소의 귀를 씻기느냐?"고 물었더니 "오늘 듣지 말았어야할 말들을 들었기에 귀를 씻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 소에게 물을 먹이던 친구가 다시 소를 끌고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길래 "왜 자네는 가느냐?"고 하였더니 "더러운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일 수가 없어서 데리고 가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듣지 말아야할 말을 많이 들었다면 그것이 다 냄새를 잘못 맡은 것입니다. 그 말이 전해지고 전해지는 것은 바로 그 냄새가 전해지는 것이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낙심케 하여 마지막에는 사망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 말하지만 내 자신의 냄새가 어떤 종류의 냄새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진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진정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이 향기를 즐기며 좋아하는 생활을 했다면, 그 향기가 나에게도 젖어 있어서 나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 보아도 썩은 냄새만 풍길 뿐 향기라고는 전혀 없다면, 그를 두고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의식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며,어떤 의미에서는 무의식적인 일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냄새란 굳이 맡고 싶어하다가 전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며 좋아하다 보면 자연전염이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지극히 사랑하고 따름으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우리에게 젖어져서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냄새를 풍길 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마리아가 매우 값비싼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의 발을 씻김으로 온 집안에 그 향기가 가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향내로 인하여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기분이 아주 유쾌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유독 가롯 유다는 이 일을 못 마땅해 하면서 저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안고 왜 저렇게 낭비하느냐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좋은 냄새라 하더라도 언제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분명 좋은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내가 행하는 조그마한 선행으로 함께 한 모든 사람의 마음이 유쾌해질 수 있는 향기를 풍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예수를 닮은 향내가 나거든 "그것 참 좋은 일 했다"며 함께 즐기며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돌아서서 비난이나 하고 오히려 불평을 하고 나온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향기와는 등진 사람이요, 가롯 유다와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와 가까이 하면서 예수의 향기를 즐기고 사랑하십시다. 그러노라면 예수의 향기가 나의 생각, 나의 언어, 나의 행동, 나의 인격에 전달되어 이웃을 향해 퍼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은 저들이 향기의 원천인 그리스도에게로 나올 수가 있으며 또한 그렇게 되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야 하는 자들로서 나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생명의 냄새로 맡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역사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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