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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시작되는 희망 -미5:2-5

by 【고동엽】 2024.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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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도자의 고민 (마가복음 10 : 17 ∼22)

 

 

지난 2월 20일자 한국일보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가르침의 씨앗은 내 안에 있다' 하는 것입니다.  '가르침의 씨앗은 내 안에'라고 하는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마치 종교란에 실려야 할 것 같은 제목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포츠란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골프란에 이런 제목의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 중에 특별히 골프실력을 향상시키려고 하는, 좀더 잘 쳐 보고싶은 열심이 있는 골퍼들은 말입니다 세가지 실수를 한다고 합니다.  첫째가 뭐냐 하면 최근에 나오는 유행하는 최신 골프채를 사들인다는 겁니다.  그 수백만원짜리 골프채, 골프채만 좋으면 될 것 같아서 좌우간 집집마다 골프채 5개 이상 있는 집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 더 신형, 그런 것을 사면 이것으로서 무슨 문제가 해결이 될 줄 알아요.  그러나 아무리 좋은 골프채를 사도 여전히 그대로 있습니다.  그걸 우리가 알아야 되고요.  두 번째는 유명한 연습장을 찾습니다.  어떤 분이 어떤 연습장에 가서 연습을 해서 실력이 올라갔다 하면 나도 갑니다.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또 심지어는 골프장을 바꿉니다.  내가 회원이 되어있는 골프장이 있으니 항상 거기서 해야겠지요?  그러나 왠지 이게 실력이 올라가지 않아요.  그러니까 다른 골프장에 돈을 또 내가면서 이 골프장, 저 골프장 '어디 가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해서 옮겨다닌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이름난 코치를 찾아다니는 겁니다.  "뭐, 돈이야 얼마든지 간에 내게 골프실력만 올려줄 수 있다면 나를 좀 가르쳐 달라."  "내 잘못된 것을 좀 지적해 달라."  "내가 어떻게 하면 잘 칠 수 있겠느냐?" 이런 것을 물어가면서 좋은 코치를 찾아 헤맨다는 것이올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코치로부터 지적을 받고 보니까 그 이야기는 늘 듣던 이야기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이야기.  그 외에 다른 신선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그런 이야기는 벌써부터 알던 것이고 나도 남 가르치는 건데.  뭐, 그걸 나한테 가르치는가?' 하고 불만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죠.  우리나라에 어느 유명한 재벌 총수 한 사람이 미국을 여행하는 중에 마침 미국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퍼하고 같이 골프를 치게 되는 그런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 시간 동안 같이 골프를 친 다음에 아주 친절하게 그에게 물었습니다.  "내 골프치는 것을 보셨는데 무엇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하십니까?"하고 진지하게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이거든요.  한마디 꼭 지적을 받고 싶어서 물었더니 딱 하는 소리가 "헤드 업 하지 마세요."  '헤드 업'이라는 말 무슨 말인지 모르시죠?  모르는 대로 두세요 별거 아니니까.  어쨌든 "헤드 업 하지 마세요."  깜짝 놀랐어요.  '그건 내가 처음부터 듣던 말인데, 내가 수 십년 들은 이야기인데, 뭐 그까짓 거나.'  문제는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 거예요.  그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에요.  기본이 잘못되었어요.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은요 한 청년이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는 관원이요 부자요 엘리트올시다.  당대의 엘리트입니다.  이분이 나와서 영생을 얻겠다고 합니다.  영생에 대한 진리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 보면 이 사람은 슬픈 낯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 실망하고 돌아갑니다.  아니, 자기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돌아갑니다.  그런 말이 있어요.  돈으로 잘 안되는 것이 두가지가 있답니다.  하나가 골프가 안되고요, 둘째가 자녀교육이 안된답니다.  돈만 가지고 될 수 있다면 재벌 총수가 제일 잘하겠지요.  그러나 이건 돈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자녀교육,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그 말입니다.  오늘 이 젊은 사람이 부자요.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러나 예수님께 나왔다가 그는 영생을 얻지 못하고 슬픈 낯으로 돌아가는 그런 유감스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영생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사람은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 목사로서도 종종 그런 게 있어요.  목사님한테 찾아와서 질문할 때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 성경진리를 묻는다던가 그러면 좋겠는데 그 와는 엉뚱하게도 "누구하고 결혼을 할까요?", "어떤 사업을 하면 성공할까요?", "이 사업을 계약을 할까요, 말까요?" 뭐, 이런 세속적인 이야기를 묻습니다.  그럴 때 나는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말 한마디가 딱 있어요.  '잘못 찾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어떡합니까?  앉아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이렇게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마다 '이건 아닌데……'라고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에요.  예수님께 와서 병 고쳐 달라고 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정치문제로 나온 것도 아니더라고요.  "나라 임하실 때가 이때입니까?" 이런 정치적 질문도 없고 경제적인 질문도 아니고 사회적인 문제도 아니고 가족문제, 혹은 신분에 대한 문제 이웃관계에 대한 문제, 그런 이야기도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아시는 대로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 와서 형제간에 재산을 나누다가 이걸 해결할 길이 없어서 "주님, 이 재산 좀 바로 나누게 해주세요"라고 하지 않습디까?  이 별별가지 문제를 가지고 나왔는데 오늘 이 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청년은 어쩌면 예수님의 마음에 가장 가까운, 좋은 질문을 가지고 나왔어요.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적어도 그는 지금 이 신령한 문제에 대해서 고민할 줄 아는 거기까지 인격이 높은 수준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요 태어나서부터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큰 문제없이 출세할 수도 있었고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심각한 고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생에 대한 것입니다.  영생을 행복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는 어느 때부터 부자인지는 모르지만 돈과 함께 살아가면서 돈이 행복을 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깨달았습니다.  돈과 영생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 안하는 그 결론은 얻은 것 같습니다.  젊음도 있고 권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어느 권세가 오래가는 것을 보았습니까?  그런고로 이 사람은 생각합니다.  영생의 문제, 영원한 생명의 문제, 즉, 미래에 대한 문제에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궁극적 관심을 가졌습니다.  기쁨도 영생의 문제에 해결이 없다면 기쁜 것이 아닙니다.  결혼을 한다는 게 그게 무슨 행복이겠습니까?  출세한들 무슨 행복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행복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에 대한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종말의 문제, 약속의 문제 그리고 죽음의 문제에 해결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죽음의 시간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가 믿거나 말거나, 바라거나 바라지 않거나, 죽음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다가오고 있는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한 바른 해답을 얻지 못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 어떤 분처럼 의사를 붙들고 "한시간만 더 살게 해주세요" 이 정도 인간이 되었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음의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얻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그 뿐입니까?  사후의 문제의 해결을 보아야겠습니다.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사도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날에 너희는 나의 자랑이 되고 나는 너희의 자랑이 되리라.'  그리스도의 날에 바로 그날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얻고 오늘을 사는 것처럼 여유있고 자유롭고 행복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래 문제의 해결이 바로 현재의 문제의 해결이기 때문입니다.  저 장래 문제를 해결하고 내세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야 오늘의 사실은 밥 한그릇도 맛있게 먹을 수가 있고 한 순간의 웃음도 웃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웃을 일이 뭐 있습니까?  개그맨의 개그를 들으면서 웃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영생의 문제의 해결이 없이는 돈도 가정도 명예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 청년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와서 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무엇을 행하여야 되겠습니까? 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적인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질문이 아니고 행위에 대한 질문이요.  율법적 질문입니다.  그는 은혜에 대한 질문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율법을 지키고 미쉬나를 따라서 자기 나름대로 바로 살아보려고 애 썼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말씀에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율법을 지켰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정말 지켰을까요?  부자이기 때문에 이 상대적 평가에서 자기는 율법을 지켰었다고 지금 교만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리석은 사람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까?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최선을 다하고 모자라서 예수님 앞에 와서 '이제 또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라고 질문할 수 있는 것이냐고요.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딱 한마디 하십니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그가 늘 듣던 말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그 율법에 대한 이야기, 그 알던 이야기 아닙니까?  "이것을 다 지켰습니다"  라고 말할 때 "좋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부족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나의 부족이 무엇입니까?

 

다시 운동선수 이야기 할까요?  운동하는 사람은 현장에 설 때마다 나의 부족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실수하기 좋은, 내가 잘못되기 쉬운 허점, 나의 약점을 한번 더 마음에 새겨야 됩니다.  '이것이 나의 약점이다' 생각하고 임해야 됩니다.  잘한 일, 어제 잘된 일, 어제 좋았던 성적, 그건 잊어버리는 게 좋습니다.  나의 부족한 것, 나의 허물, 중요한 그것,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 예수님 말씀이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 너 생각해 봤느냐?" 이걸 묻습니다.

 

옛날에 페르시아에 한 나그네가 사막을 지나가면서 먼 여행을 하는데 하늘로부터 귀한 음성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네가 북쪽으로 2km만 더 가면 오아시스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오아시스 그 물가에 자갯돌들이 많은데, 그 자갯돌들을 네 주머니에 될수록 많이 넣고 그리고 하룻밤을 자라.  그러면은 아침이 되었을 때 한가지 기쁜 일이 있고, 한가지 슬픈 일이 있으리라.'  원세상에 궁금한 얘기죠, 그렇잖아요?  정말로 가보았더니 오아시스가 있고 자갯돌이 있어요.  주머니에 돌을 넣는데, 그 무거운 걸 넣고 자라니 이게 도대체 아리송해서 두 주머니에다가, 작은 두 주머니에다가 몇 개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반신반의하면서 하룻밤을 잤는데, 자고나보니까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것이 금덩이가 되었더랍니다.  "아! 금을 얻었다."  그리고 기뻐하는 동시에 '그럴 줄 알았으면 주머니마다 채울걸…….   열두주머니나 되는데 주머니에 가득 채울걸 내가 왜 두 주머니에만 넣었던가?'  그래서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았답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자기가 무엇에 부족함이 있는지, 근본적으로 돌아가서 이것부터 생각해야 됩니다.또한, 그 다음에 보니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럽니다.  '있는 것을 다 팔아라.'  네가 가지고 있는 게 뭐냐 이거죠.  요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서 영생의 역사는 시작이 되겠어요.  있는 것,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 이게 중요한 것이죠.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대로 보면은 '어떤 사람이 남의 밭을 갈다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다.  이것을 덮어놓고 가서 자기 있는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이 보화를 샀다'라고 말합니다.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무엇이 중요한 것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서라면 중요치 않은 것은 쉽게 버릴 수 있어야지요.  이 보화를 발견하고 나가서 가장집물을 다 팔아치우는 이 사람이 아쉬웠겠습니까?  그 힘든 일이겠습니까?  참진리를 아는 사람은 나머지 일 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문제는 그리스도인적 바른 가치관에 문제가 있는 것이에요.  무엇이 중요한 것입니까?  그것을 똑바로 깨닫고 나면 그 여타의 문제는 문제가 되지를 않지요.  그게 무슨 대단한 얘기겠습니까?  그래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랬습니다.  있는 것을 주라,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그말입니다.  주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영생의 문제를 가슴에서 해결하려고 그러지 마시고 머리를 굴려서 마음에서 해결하려고 그러지도 마세요.  영생의 문제는 손발로 해결해야 됩니다.

 

오늘도 저는 저희 소망교회 교인들 가운데 이런 분들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1년 중에 이 여름휴가철, 휴가를 맞는다는 것, 이 황금같은 휴가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 휴가를 어디서 보내느냐?  이들은 몽골과 중국에 그 어려운데 가서 의료봉사하러 갑니다.  거기 가서 한 두주일 동안을 거기서 보내고 옵니다.  휴가를 해변으로 가는 게 아니라 농촌봉사로 의료봉사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세계로 가더라 그말이예요.  어제 네팔에서 오신 목사님, 1500만의 인구에 의사가 1000명밖에 없대요.  그것도 아주 열악하고 "내년에는 우리나라에 꼭 의료봉사 와주시길 바랍니다" 간절히 부탁을 해요.  그러자고 그랬어요.  여러분, 의사가 아니더라도 봉사할 사람이 많이 필요합니다.  한번 따라가 보세요.  영생이 뭔가 알테니까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이며, 진정한 휴가가 무엇인가를 알 거예요.  괜히 바닷가에 나갔다가 죽느니, 사느니 그러지 마시고.  얼마나, 이거 보세요.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러면 네가 영생이 무엇인지를 좀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세요.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 말씀하십니다.  "나를 좇으라.  그리고 나서 나를 좇으라.  전적으로 내게 헌신하라.  그리할 때 영생을 얻으리라."  여러분, 이 사람은 이 귀한 말씀을 듣고 "네"라고 순종하지 못하고 슬픈 기색을 하고 돌아갔다.  얼마나 유감스럽습니까?  요새는 경영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유행입니다.  '어떻게 하면 경영자가 될까?' '어떻게 하면 CEO가 될까?' '어떻게 하면은 좀더 유능한 지도자가 될 것인가?' 많은 책이 나와있습니다, 소위 '리더쉽'에 대해서.  그런데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일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옛것으로 벗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가지를 벗어나야 됩니다.  첫째, 나이를 벗어나야 됩니다.  내가 나이 좀 더 먹었다고 해서 뭐 선배니 뭐니.  참 우리나라처럼 선배가 소중한 나라가 없어요.  그것도 질서가 깨진다나, 뭐?  선배가 어디 있어요.  무슨 대단한 선배라고.  나이가 벼슬이 아니에요.  '내가 더 선배다, 내가 더 어른이다' 그거 빨리 지워버리세요.  그러기 전에는 이 세대에서 자유할 수가 없어요.  두 번째는 지식에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낡은 지식, 그거 벗어나야 됩니다.  더구나 전문성이 전부 틀립니다.  내 지식에 대해서 교만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안다고 하는 생각, 빨리 지워버려야 되고요.  셋째는 낡은 경험입니다.  잘못되면서 누적된 타성화된 경험.  이 경험 자체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거예요.  그런고로 이 과거로부터 깨끗이 벗어나는 자만이 CEO가 될 것이요, 지도자가 될 것이요, 이 세대를 미래로 이끌것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니까 이 사람이 낡은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어차피 재산 때문에 고민도 많았고 재산 때문에 근심 걱정이 있었는데 "그러겠습니다"라는 말을 왜 못했는가 말입니다.  전 그런 생각 해봐요.  "그러겠습니다.  당장 팔아서 다 주겠습니다" 그랬더라면 아마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랬을까?  전 궁금히 생각합니다.  "그냥 좀 둬라"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왜요?  할 일이 많잖아요.  마가복음 10장 29절로 30절에 보시면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친척이나 재산을 다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서도, 금 세상에 있어서도 100배나 받을 것이요 겸하여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 공연한 걱정을 한 거예요.  다 팔아 드린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전적으로 현재를 부정했더라면 그리스도를 긍정하는 순간에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었는데요 이 사람은 너무 값싼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물질주의적인 낡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고로 슬픈 기색을 하고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 귀중한 시간에 어찌해서 영생을 얻지 못하고 옛날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도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행동으로 옮기고 나를 좇으라.'  그리하면 하늘의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하십시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수 없는 시간 말씀을 듣고 깨달았지만 실천하지 못하며 영생을 생각하고 있으나 또 혹은 그리워하면서도 영생을 누리며 살지 못하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젊은 율법사가 슬픈 낯으로 돌아간 것 같은 유감된 심령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주께서 감화 감동하시는 대로 헌신하면서, 영생을 지향하고 영생을 바라보며 영생을 확인하며 그 영생을 오늘도 누리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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