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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돌로 세운 집 -벧전2:1-5

by 【고동엽】 2022. 7. 3.
산 돌로 세운 집
벧전2:1-5
(2000/4/2)

나무들의 안간힘
어느 날 길거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문방구에서 산 인기 가수들의 사진을 들고 희희낙낙 하는 초등학생,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는 20대의 아가씨, 침을 찍 뱉으며 지나가는 고등학생, 뇌졸중으로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운동삼아 거리를 지나가는 할아버지, 심심해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두리번거리며 느긋하게 배회하는 할머니, 주위에는 시선을 돌리지 않으면서 새침한 표정으로 걷는 수녀님, 손가방을 들고 부지런히 걸어가는 직장인… 특별할 것도 없는 그 광경이 참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분들은 내 앞을 스쳐 누구를 만나러, 어디로 가는 것이었을까요? 그분들도 다 나름대로 소중한 생명을 아름답게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을 겁니다. 세상에 있는 생명들은 다 자기 생의 짐을 짊어지고 비틀거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뿐이 아닙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계절이라고 노래한 시인이 있습니다만 오랜 봄 가뭄에 나무들은 얼마나 목이 마를까 안쓰러웠습니다. 그래도 제때를 놓치지 않고 환한 꽃으로 피어나니 얼마나 대견합니까?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뿌리는 어두운 땅 속에서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저는 목련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전력을 다할 때 흔히 젖 먹던 힘까지 다 발휘한다고 합니다. 젖 먹던 힘, 그까짓 게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아기가 젖 먹는 것을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기들은 맹렬히 젖을 빱니다. 빨찌산들이 밥먹는 것을 "식사 전투"라고 했다던데, 아기들이 젖먹는 것은 진짜 전투 같습니다. 배고플 때 아기는 엄마 젖에 매달려 최선을 다해 젖을 빱니다. 다른 생각이 개입할 틈이 없습니다. 젖 먹는 그 행위가 아기의 존재 전부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아기가 젖먹는 광경을 많이 보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들
성도들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섞이지 않은(unadulterated, pure) 것이고, 영적인(spiritual) 것입니다. 그 젖을 먹어야 우리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젖이 맛이 없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여러 가지 다른 맛에 길들여져서, 하나님 말씀의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나스닥, 코스닥 시장의 변화나, 증권 시장의 동향을 살피는 것이 당장은 더 달게 느껴집니다. 모이면 정치 이야기로 정신이 없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어딘가에 불만과 화를 쏟아내야 하는데, 정치만큼 씹기 좋은 분야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배울 때는 5월의 따사로운 햇살에 겨워 눈꺼풀이 내려앉는 닭처럼 시들하다가도, 정치 이야기, 경제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 빛이 돌아오는 것은 무슨 조화입니까?

물론 사람은 정치적 존재이고, 정치를 떠나서는 살수도 없고, 경제를 떠나서는 살 수 없기에 정치 경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싸잡아 나무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할 말이 없고, 또 별로 듣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의 영혼은 분명 병들어 있습니다. 자기를 돌아보며 사는 사람 중에는 몸이 무겁고, 정신적으로 나약해졌음을 느낄 때마다 단식으로 자기를 다시 곧추 세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몸 비우기를 통해 마음의 병까지도 고치는 이중적 효과를 봅니다. 우리가 섞인 것들에 탐닉하느라 잊어버렸던 순전하고 신령한 젖,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한번 맛을 들이려면 먼저 우리는 많은 것을 비워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덜어내야 할 것들
베드로는 몇 가지 것들을 우리 삶 속에서 덜어내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악독(malice): 타인의 고통을 기뻐하는 뿌리깊은 악의
·궤휼(guile): 그럴 듯하게 속임
·외식(hypocrisy):
·시기(envy): 남 잘 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마음의 편협함
·비방하는 말(evil speaking): 어떻게든 남의 흠을 찾아내 그것을 드러내려는 비겁
이런 것들을 덜어내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한번 맛을 들일 수 있을 겁니다. 밥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합니다. 철학이나 사상은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을 살게 합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킵니다. 그런데 가장 소중한 영이 가장 굶주려 있는 시대가 바로 우리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 그 말씀을 들으려고 온 몸이 귀가 되어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에 살고 있으나, 이 세상에 매이지 않은 존재가 되어 살 것입니다.

산 돌, 죽은 돌
베드로는 이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나아오라고 성도들을 초대합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돌'이라는 은유(metaphor)를 통해 예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돌이야!' 하실 분도 있겠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새로운 세상의 기초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베드로, 즉 '반석'이라고 부르셨는데, 재미있게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돌'이라는 표현을 돌려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라는 단어를 수식하는 말이 참 중요합니다. 돌은 돌인데, '산' 돌(living stone)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 가운데 계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산' 돌이지 '죽은' 돌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새 하늘과 새 땅의 기초라는 말입니다. 산에 다니다 보면 암벽을 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암벽 등반을 하려면 좋은 선생을 만나야 합니다. 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제게 항상 그 돌이 '산 돌'인지 '죽은 돌'인지를 가려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경사가 좀 급해 보여도 돌이 살아있으면 안심하고 올라가도 되지만, 경사가 완만해도 죽은 돌은 오르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산 돌이란 표면이 단단하면서도 거끌거끌한 돌을 말합니다. 죽은 돌이란 표면이 부슬부슬 떨어지거나 단단하다 해도 매끈매끈해진 돌을 말합니다. 세상의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세련된 맛도 없고, 거칠거칠해 보입니다. 흠모할만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함께 가자고 하시는 인생의 길은 너무 가팔라 보입니다. 하지만 그 길이야말로 생명의 길입니다.

베드로는 '산 돌'이신 예수님을 이렇게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다.
·하나님께는 택함을 받으셨다.
오늘 우리도 거칠거칠한 '산 돌'이신 예수님을 버리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베드로는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 곧 그분을 주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을 가리켜 '산 돌과 같이 된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요. 완전히 산 돌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산 돌과 같이 되었고, 또 산 돌처럼 되고 싶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집을 짓는 데 쓰임 받기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지배하는 세상,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 새 세상을 이루는데 기여하라고 주님은 우리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부르심 받은 뜻을 알고 살면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신령한 제사가 되는 겁니다. 우리는 짐승을 죽여 제물로 바치는 제사장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늘을 끌어들여, 일상을 거룩하게 바꾸며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삶의 제사장들입니다.

저는 모딜리아니의 그림 '목이 긴 여자'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목마름을 느낍니다. 그 긴 목이 마치 무엇인가에 대한 염원인 것처럼 보여서 애처롭습니다. 만물이 아름다움을 피워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애쓰는 이 4월에 여러분은 무엇을 사모하여 목이 마르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행복합니다. 사순절이 다 가기 전에 복음서 정도를 한번쯤은 정독하기를 권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과 깊이 만나십시오. 그리고 산 돌이신 예수님처럼 스스로 산 돌이 되기 위해 애쓰십시오.
우리 가정에, 그리고 직장에 예수라는 산 돌을 모시십시오..
우리의 냄새나는 정치판에 예수님을 모시고 가십시오.
그리고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애쓰는 시장에서도 주님이 말씀하시게 하십시오.
인생의 집은 산 돌로 지어야 합니다. 돈을 처바른다고 인생의 집이 아름다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사순절이 다 가기 전에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골수와 만나 삶이 새로워지시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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