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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중심 -마태복음 6:25-34

by 【고동엽】 2022. 7. 3.
거룩한 중심


마태복음 6:25-34


(2000/1/9)

연말 연초가 되면 스포츠 신문들은 어떤 선수가 구단과 얼마에 계약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전합니다. 당사자들에게는 그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만 따지고보면 우리가 그걸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거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선수들은 자기가 국내에서 최고의 몸값을 받아야 한다고 버티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가 얼마를 받느냐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몸값'이라는 말은 어찌보면 대단히 굴욕적인 표현일수도 있는데, 사람들은 별 저항감 없이 이 용어를 사용합니다.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무슨 영화에 출연하는데 얼마를 받았다더라. 누구는 C.F 모델 한번에 얼마를 받았다더라. 누구는 음반 한 장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많은 젊은이들이 '나도 한번 떠봐야겠다'(새마을 운동 노래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가락에 맞추어) 하면서 구름을 타고 놉니다.


성공시대(?)

1990년대에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승리를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돈이 주인이 되는 사회가 바야흐로 도래한 겁니다. 물론 이전에도 돈이 사람들을 사로잡은 지는 오래지만, 그래도 돈 아닌 다른 가치가 소중하다고 명목상으로나마 외치는 세력이 무너지고 돈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유일신처럼 군림하고 있습니다. 젊은 대학생들도 이제 주식매장을 기웃거리고, 학교 앞 P.C방은 주식 시세를 확인하려는 학생들로 늘 만원이랍니다. 그래서 스톡홀릭(stock-holic)이라는 신종 단어가 나오게까지 되었습니다. 매스컴들은 이런 세태를 부추깁니다. [성공시대]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가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 부와 명예를 획득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사실 여기에 등장하는 '성공한 인물들'(?)로부터 배울 것이 무척 많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성실, 근면, 불굴의 투지,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왠지 공허합니다. 꼭 부를 획득하고, 명예를 얻고, 박사학위를 받아야 성공 한거냐 하는 의문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섬김의 삶을 위해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 건전한 노동으로 하루하루 성실하게 먹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 생의 악조건을 무릅쓰고 인간다움의 꽃을 피운 사람들…이들은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가요?



물질에 집착하면 근본을 잃는다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병든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대안을 모색하려는 열정보다는 병든 사회에 길들여지기를 택하는 데서 우리는 우리 시대의 위기를 봅니다. 물질에 집착하다 보면 근본을 잃게 마련입니다. 옛 말에 玩物喪志요, 玩人喪德이라 했습니다. 물건을 좋아하면 뜻을 잃게 되고, 사람을 지나치게 좋아하다보면 덕을 잃게 된다는 말입니다. 부정한 뇌물을 받아서 사람됨의 근본을 버린 사람, 사사로운 정리 때문에 의를 저버려서 패가망신한 사람들을 우리는 늘 보면서도 '물질'과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합니다. 재산을 잃고 나면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에잇, 까짓 것 없는 셈치지!' 하지만, 돌아서서는 '아이고, 그게 어떤 돈인데' 합니다. 그러니 인생이 복잡해질 수밖에요. 저는 "어떻게 지내세요?" 하고 물으면, 체면치레로 그저 "덕분에 잘 지냅니다." 하고 대답할 뿐, 단순하게(사람들 좋아하는 말로 심플하게) "행복합니다" 하는 사람 많이 못봤습니다. 왜 이 지경이 되었지요? 전도서 기자는 우리 삶을 이렇게 진단합니다.


"다만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평범하고 단순하게 만드셨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전7:29)


누가 복잡하게 만든 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삶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기를 원하세요? 그렇다면 담쟁이덩굴처럼 우리 삶을 뒤덮어버린 삶의 곁가지들을, 잘 드는 낫으로 툭툭 쳐내세요. 우리 사는 꼴을 한번 돌아보세요.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가지고 삽니다. 꼭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없어도 좋을 것을 끌어안고 사는 거지요. 버리기엔 아깝고, 남주기엔 떨떠름하고, 가지고 있자니 별 소용은 없고. 혹시 우리 청파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셨어요? 거기 방명록에 장혜숙 집사님이 남기신 이야기가 제겐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2,000년을 맞이하면서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들 하는데, 당신은 냉장고 비우기를 시도했다는 것이지요. 불필요하게 가득 차있는 냉장고가 자기 마음 같아서였겠지요. 냉장고도 비우지 못한다면 마음을 어떻게 비우겠느냐고요. 옳은 이야기입니다. 요즘 들어 영성(spirituality)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게 참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물어요. "목사님, 영성이 뭐예요?"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망설이다가 저는 기가 막힌 답을 하나 찾았습니다. 그래서 대답합니다. "'靈性'은 '零性'이예요." 알쏭달쏭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묻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영성이란, 자기를 텅 비워 영(zero)에 가깝게 다가가는 사람일수록 깊어지는 겁니다. 날마다 자기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버려야 할 것은 버릴 줄 아는 사람이 곧 영성가입니다. 남에 대한 원망, 과다한 욕망, 시새움, 집착…영성가는 그런 것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삶의 순서를 지키라

말이 그렇지 사실 그런 것들을 다 비우며 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주 단순한 진리 하나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대한 집착을 여읠 수 있는 길은 하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구해야 할 것을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삶의 초점을 하나님 나라와 의에 맞추고 살면 내적인 진실이 생기고, 그 진실 때문에 나머지가 올바른 순서에 놓이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 삶이 복잡한 까닭은 삶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私利를 위해 大義를 버릴 때가 많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기를 내놓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했습니다. 나귀 주인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나귀를 내놓았습니다. 바울은 '사나 죽으나 나는 주의 것'이라 했습니다. 그들은 다 믿음의 영웅들입니다.


돌아서십시오. 삶의 순서를 바꾸십시오. 먼저 구해야 할 것을 먼저 구하십시오. 그것이 참 생명의 길입니다. 그것이 잃어버렸던 삶의 중심을 찾는 길입니다.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비결입니다. 늙은 할아버지(老子)는 "復歸於樸"(28장)이라 했습니다. '통나무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은 마치 통나무를 이렇게 저렇게 쪼개고, 다듬어서 만든 그릇과 같은데, 그 본바탕으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을까요? 기도, 성경묵상, 찬양은 더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저는 거기에 덧붙여 몇가지 길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돌아가는 길

1. 고독에 처하기를 두려워 마십시오. 우리는 고독이 두려워 패거리를 만들고, 틈만 나면 그들 속에 숨어 자기를 잊으려 합니다. 자기 속에 사막의 고요함을 만들 줄 알아야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2. 우리를 굳게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들을 멀리하십시오. 그것은 술과 담배일수도 있고 책일 수도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시종 눈을 박고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것들로부터 의도적으로 멀어지려고 애쓰다 보면, 어느 결에 우리 삶이 한결 단촐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3.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주기를 연습하십시오. 물건이 줄어들수록 여러분의 삶은 가벼워질 것이고, 대신 벗을 얻게 될 것입니다.

4. 자연 속에 머무는 시간을 확보하십시오. 삶이 아무리 바빠도 대지 위를 걷고, 온갖 피조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시간을 만드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사십니까? 혹시 여러분은 낚시바늘 주변을 맴도는 물고기처럼 '돈'과 '출세'의 주변을 맴돌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삶의 중심으로 삼으십시오. 여러분의 시간의 중심을 주님께 바치십시오. 물질의 중심을 주님께 바치십시오. 계획의 중심을 주님께 바치십시오. 즐기는 일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사용하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인색하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주님은 지금 당신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문을 여십시오. 그리고 맞아들이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복의 비결입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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