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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복을 아는 자의 지혜(전도서 5장 10절~20절)

by 【고동엽】 2024.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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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복을 아는 자의 지혜(전도서 51020)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소유욕(所有慾)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차차 자라 내 것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부터 주위의 사물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장난감이나 기타 소지품에 대해 욕심이 생기고 내 것이라는 표시를 하며, 심지어는 자기 방에까지 허락 없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메모를 붙여 놓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라는 것 만큼 소유에 대한 영역을 넓혀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유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집을 소유했다고 할 때에 그 소유의 개념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첫째, 등기부 등본에 '아무개의 것'이라고 등기를 해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집이 됩니다. 둘째, 정치적 안정이 소유를 법적으로 인정받게 합니다. 만약 혁명이 일어나서 정부가 사회주의로 바뀌면, 개인의 소유는 다 무효가 됩니다. 저는 어렸을 때 북한에서 이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개인의 재산으로 가지고 있던 집 문서, 땅 문서 등이 토지 개혁을 하고나니 모두 무효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소유는 정치적 안정과 깊이 관계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라가 보장해 주어야 내 것입니다. 셋째, 생명이 살아 있어야 내 것이 진정 내 것이 됩니다. 예수께서 어리석은 부자에게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죽으면 소유권은 바뀌어 버립니다. 살아 있는 동안만 내 것이란 말 입니다. 그러니까 건강해야 하고 임시로 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넷째, 그 소유로 인해 내가 기쁨을 얻고 감사해야 내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즐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재산 때문에 고통을 당하면 소유의 의미는 없어집니다. 무엇을 소유했든 고 소유로 인하여 즐겁고 자유할 수 있어야 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재산의 허무함을 낱낱이 열거하며 고발하고 있습니다. 재산은 첫째, 만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탐욕은 가질수록 더 커지기만 합니다. 어느 부자가 일하는 사람을 여러 명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부엌 앞을 지나다가 가정부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 자기는 5파운드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그 가정부에게 5파운드를 거저 주어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부자는 다시 그 부엌 앞을 지나다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또 듣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 가정부는 원망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10파운드라고 말할 것을 괜히 5파운드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재벌가 록펠러(Rockefeller, J.D.)에게 "사람이 얼마만큼 돈을 가져야 행복한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하기를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조금 더 가지면 행복하다"고 지혜롭게 대답했습니다. 얼마이면 족하냐고 묻지 마십시다. 현재보다 조금 더 있으면 행복합니다. 아니, 그 순간만 행복할 뿐입니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더 가지기를 원할 테니까요. 지극히 상대적인 것입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 가졌더라도 조금씩 더 가질 때가 행복하지 않습니까?

둘째, 소유가 크면 소비자도 많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재산이 많다보면 주어야 할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결국 본문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한가 말입니다(5:11). 그저 이것은 내 것이다 하고 바라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가령 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 봅시다. 소유주는 그 산을 바라보는 것 외에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니, 아무 산이나 바라보고 '내 것이다'하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까요. 소유란 어차피 내가 다 가지지 못하고 내가 다 쓰지 못하며 다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소유와 소비는 같은 뜻이 아닙니다.

물론 소유에도 상당한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 돈은 사람에게 상당한 용기를 줍니다. 길거리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 차라도 나눌 돈이 있으면 그 친구가 더욱 반갑습니다마는 돈이 없다면 자신이 없어지고 친구도 반갑지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돈은 이처럼 상당한 용기를 줍니다마는, 돈이 주는 용기는 만용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이 돈은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즉 정치적인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돈 있는 사람들은 마지막에 정치를 해 보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돈은 다스리는 힘이 있습니다. 셋째, 돈은 자유를 줍니다.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여행하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가며, 하고 싶은 일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돈은 자유를 줍니다마는, 그러나 무엇이든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을병에 걸린 환자가 돈을 얼마든지 낼 테니 고쳐 달라고 애원한다고 해서 고치지 못할 병이 고쳐집니까? 어떤 면으로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되지 않습니다. 요즘 우리들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인 대학 입시가 돈으로 해결됩니까? 자녀들의 교육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란 그저 입고 싶은 옷이나 사 입고, 먹고 싶은 것을 해결하는 정도로, 극히 제한된 일일뿐입니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넷째, 돈은 의지가 됩니다. 돈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듯이, 돈은 어느 사이에 하나님의 위치에까지 도전하고 있습니다. 돈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빼앗겨 버리는 엄청난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돈이 우리 마음에 큰 우상으로 바꾸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돈이 있으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면 지식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때로는 돈 가진 자가 지혜도 인격도 있어 보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착각입니까? 여섯째, 돈을 가진 자는 칭찬과 존경을 받습니다. 소위 인기가 있고 인정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러나 의인은 아닙니다. 교인들 가운데서 사업이 잘되는 분은 마치 자기가 의인인 줄로 착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소 잘못된 것이 있어도 하나님이 눈감아 주시어 만사가 잘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업이 잘되고 건강한데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망하고 병들어야 비로소 자기의 부족함이나 허물을 살피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란 사람의 마음까지 부하게 만들어 스스로 의인인 듯 착각을 하게 합니다. 이것이 돈의 매력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부에 대한 고민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5:12)." 사람의 행복 가운데 중요한 것은 잘 먹고 잘 자는 것입니다. 흔히 잘 먹는 것은 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잘 자는 것은 복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잘 자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수면제를 먹지 않아도 자고 싶을 때에 잘 자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의 하나입니다. 얼마 전에 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앵커리지에서 서울까지는 비행기로 여덟 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마는, 한잠 자고 나니 한 시간밖에 안 남았다고 해서 아주 쉽게 왔던 일이 생각납니다. 잠 잘 자는 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강철의 왕 카네기도 "백만장자 중 웃는 사람이 없고 평안한 잠을 자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침대에 누워서도 잠을 못 잔다면 어찌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소유한 만큼 번민도 있는 것 같습니다.

둘째, 자기를 해롭게 하면서까지 부를 지키게 된다고 말씀합니다(5:13). 자기 겸손, 자기 온유, 자기 진실을 다 잃어버리고도 돈만 붙들고 사는 불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이 우리를 해롭게 하는 구체적인 것들을 열거하면, 우선 교만하기 쉽습니다.

가난한 자가 겸손하기는 쉽지만 부자가 겸손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교만하면 신령한 생활에서 멀어지고 자연히 쾌락 지향적이 되어 욕망을 제어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사람을 학대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게 됩니다. 요즘 유독히 증권 바람이 불어서 모두들 돈 도깨비에 정신이 없습니다. 자나깨나 돈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데에만 정신 팔고 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걱정입니다. 부자는 사람들로부터 시기를 받습니다. 질투를 받습니다. 친구도 없고 자연히 고독해집니다. 마침내는 자기 외의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는 지경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진실은 물론 다른 사람의 진실까지도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돈 많은 사람은 얼마나 의심이 많습니까? 혹시나 내 돈을 탐내지는 않는지, 돈 때문에 나에게 접근하는 것은 아니지 하는 생각으로 사람이 바로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결혼도 성사되지 않습니다. 정말 변변치 않은 돈 때문에 엄청난 것을 잃어버리는 불쌍한 영혼들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돈의 함정입니다.

셋째, 부에는 심령의 자유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일평생을 어두운 데서 먹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 17).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분복을 아는 것입니다. 분복이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을 말합니다. 건강도 재산도 시간도 하나님이 내게 분배해 주신 것이므로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통하여 행복을 얻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어느 마을에 소문난 미녀와 추녀가 있었습니다. 추녀는 어떻게 하면 미인이 되나 하고 미녀를 자세히 관찰했답니다. 그랬더니 미녀가 항상 얼굴을 찡그리고 다니는 것 같아, 추녀도 찡그리고 다녔더니 온동네 사람들이 그 꼴이 보기 싫어 이사를 갔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에 미인이 따로 있습니까? 내 모습 그대로 웃는 얼굴이면 다 예쁩니다. 성형수술 한다고 더 예뻐집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연적인 모습, 즉 분복 그대로를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유명한 부흥사요 저술가인 워치만 리(watchman Lee)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의 책이 우리 나라에도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는 20대에 중한 병을 얻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죽음을 앞에 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며칠 동안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다음과 같은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환상 중에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난데없이 큰 바위에 부딪혔습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는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어 답답해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바위를 치워 주랴, 물이 불어나서 물 위로 배가 지나가게 하랴' 물으셨습니다. 워치만 리는 바위는 그대로 두고 물이 불어나 그 위로 지나가게 해 달라고 원해서 그렇게 지나갔답니다. 이 환상을 본 다음에 그는 특별히 은혜를 받아서 평생토록 귀한 일을 하는 주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앞에 바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앞에 있는 바위, 즉 원수나 시험 등을 치워 달라고만 부르짖고 있지나 않습니까?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게 주신 분복 그 상태에서 초연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간구하십시다. 넘치는 은혜가 있기만 하면 시험을 이기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주님은 아십니다. 내게 주신 여건, 이 모두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의 필요에 따라 인격의 그릇대로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쓰시고자 하는 그의 경륜에 의해 주셨기에 우리가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내게 필요한 만큼 주시고, 누리게 하시고 이것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생을 질적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인도의 선교사 선다 싱은 네팔에서 선교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살인강도들과 한 감방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흉악범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 믿고 중생하면 몸은 비록 감옥에 있지만 마음은 천국이라고 열심히 설명했더니 그들이 변하여 믿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간수가 들어와 보니, 살인강도들이 기쁨에 넘쳐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천국이 따로 없고 여기가 바로 천국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옥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불평하지 마십시다.

성령으로 중생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 여러분이 처해 있는 형편 그대로, 그 현실 안에서 천국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이 분복에 충성을 다하는 청지기로 감사하면서 사십시다. 이 분복을 즐기는 자만이 부유한 사람이요, 복받은 사람입니다. *  

분복을 아는 자의 지혜(전도서 51020)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소유욕(所有慾)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차차 자라 내 것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부터 주위의 사물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장난감이나 기타 소지품에 대해 욕심이 생기고 내 것이라는 표시를 하며, 심지어는 자기 방에까지 허락 없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메모를 붙여 놓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라는 것 만큼 소유에 대한 영역을 넓혀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유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집을 소유했다고 할 때에 그 소유의 개념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첫째, 등기부 등본에 '아무개의 것'이라고 등기를 해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집이 됩니다. 둘째, 정치적 안정이 소유를 법적으로 인정받게 합니다. 만약 혁명이 일어나서 정부가 사회주의로 바뀌면, 개인의 소유는 다 무효가 됩니다. 저는 어렸을 때 북한에서 이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개인의 재산으로 가지고 있던 집 문서, 땅 문서 등이 토지 개혁을 하고나니 모두 무효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소유는 정치적 안정과 깊이 관계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라가 보장해 주어야 내 것입니다. 셋째, 생명이 살아 있어야 내 것이 진정 내 것이 됩니다. 예수께서 어리석은 부자에게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죽으면 소유권은 바뀌어 버립니다. 살아 있는 동안만 내 것이란 말 입니다. 그러니까 건강해야 하고 임시로 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넷째, 그 소유로 인해 내가 기쁨을 얻고 감사해야 내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즐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재산 때문에 고통을 당하면 소유의 의미는 없어집니다. 무엇을 소유했든 고 소유로 인하여 즐겁고 자유할 수 있어야 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재산의 허무함을 낱낱이 열거하며 고발하고 있습니다. 재산은 첫째, 만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탐욕은 가질수록 더 커지기만 합니다. 어느 부자가 일하는 사람을 여러 명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부엌 앞을 지나다가 가정부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 자기는 5파운드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그 가정부에게 5파운드를 거저 주어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부자는 다시 그 부엌 앞을 지나다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또 듣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 가정부는 원망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10파운드라고 말할 것을 괜히 5파운드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재벌가 록펠러(Rockefeller, J.D.)에게 "사람이 얼마만큼 돈을 가져야 행복한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하기를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조금 더 가지면 행복하다"고 지혜롭게 대답했습니다. 얼마이면 족하냐고 묻지 마십시다. 현재보다 조금 더 있으면 행복합니다. 아니, 그 순간만 행복할 뿐입니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더 가지기를 원할 테니까요. 지극히 상대적인 것입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 가졌더라도 조금씩 더 가질 때가 행복하지 않습니까?

둘째, 소유가 크면 소비자도 많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재산이 많다보면 주어야 할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결국 본문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한가 말입니다(5:11). 그저 이것은 내 것이다 하고 바라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가령 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 봅시다. 소유주는 그 산을 바라보는 것 외에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니, 아무 산이나 바라보고 '내 것이다'하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까요. 소유란 어차피 내가 다 가지지 못하고 내가 다 쓰지 못하며 다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소유와 소비는 같은 뜻이 아닙니다.

물론 소유에도 상당한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 돈은 사람에게 상당한 용기를 줍니다. 길거리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 차라도 나눌 돈이 있으면 그 친구가 더욱 반갑습니다마는 돈이 없다면 자신이 없어지고 친구도 반갑지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돈은 이처럼 상당한 용기를 줍니다마는, 돈이 주는 용기는 만용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이 돈은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즉 정치적인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돈 있는 사람들은 마지막에 정치를 해 보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돈은 다스리는 힘이 있습니다. 셋째, 돈은 자유를 줍니다.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여행하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가며, 하고 싶은 일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돈은 자유를 줍니다마는, 그러나 무엇이든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을병에 걸린 환자가 돈을 얼마든지 낼 테니 고쳐 달라고 애원한다고 해서 고치지 못할 병이 고쳐집니까? 어떤 면으로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되지 않습니다. 요즘 우리들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인 대학 입시가 돈으로 해결됩니까? 자녀들의 교육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란 그저 입고 싶은 옷이나 사 입고, 먹고 싶은 것을 해결하는 정도로, 극히 제한된 일일뿐입니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넷째, 돈은 의지가 됩니다. 돈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듯이, 돈은 어느 사이에 하나님의 위치에까지 도전하고 있습니다. 돈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빼앗겨 버리는 엄청난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돈이 우리 마음에 큰 우상으로 바꾸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돈이 있으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면 지식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때로는 돈 가진 자가 지혜도 인격도 있어 보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착각입니까? 여섯째, 돈을 가진 자는 칭찬과 존경을 받습니다. 소위 인기가 있고 인정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러나 의인은 아닙니다. 교인들 가운데서 사업이 잘되는 분은 마치 자기가 의인인 줄로 착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소 잘못된 것이 있어도 하나님이 눈감아 주시어 만사가 잘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업이 잘되고 건강한데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망하고 병들어야 비로소 자기의 부족함이나 허물을 살피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란 사람의 마음까지 부하게 만들어 스스로 의인인 듯 착각을 하게 합니다. 이것이 돈의 매력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부에 대한 고민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5:12)." 사람의 행복 가운데 중요한 것은 잘 먹고 잘 자는 것입니다. 흔히 잘 먹는 것은 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잘 자는 것은 복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잘 자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수면제를 먹지 않아도 자고 싶을 때에 잘 자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의 하나입니다. 얼마 전에 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앵커리지에서 서울까지는 비행기로 여덟 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마는, 한잠 자고 나니 한 시간밖에 안 남았다고 해서 아주 쉽게 왔던 일이 생각납니다. 잠 잘 자는 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강철의 왕 카네기도 "백만장자 중 웃는 사람이 없고 평안한 잠을 자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침대에 누워서도 잠을 못 잔다면 어찌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소유한 만큼 번민도 있는 것 같습니다.

둘째, 자기를 해롭게 하면서까지 부를 지키게 된다고 말씀합니다(5:13). 자기 겸손, 자기 온유, 자기 진실을 다 잃어버리고도 돈만 붙들고 사는 불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이 우리를 해롭게 하는 구체적인 것들을 열거하면, 우선 교만하기 쉽습니다.

가난한 자가 겸손하기는 쉽지만 부자가 겸손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교만하면 신령한 생활에서 멀어지고 자연히 쾌락 지향적이 되어 욕망을 제어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사람을 학대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게 됩니다. 요즘 유독히 증권 바람이 불어서 모두들 돈 도깨비에 정신이 없습니다. 자나깨나 돈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데에만 정신 팔고 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걱정입니다. 부자는 사람들로부터 시기를 받습니다. 질투를 받습니다. 친구도 없고 자연히 고독해집니다. 마침내는 자기 외의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는 지경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진실은 물론 다른 사람의 진실까지도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돈 많은 사람은 얼마나 의심이 많습니까? 혹시나 내 돈을 탐내지는 않는지, 돈 때문에 나에게 접근하는 것은 아니지 하는 생각으로 사람이 바로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결혼도 성사되지 않습니다. 정말 변변치 않은 돈 때문에 엄청난 것을 잃어버리는 불쌍한 영혼들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돈의 함정입니다.

셋째, 부에는 심령의 자유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일평생을 어두운 데서 먹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 17).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분복을 아는 것입니다. 분복이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을 말합니다. 건강도 재산도 시간도 하나님이 내게 분배해 주신 것이므로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통하여 행복을 얻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어느 마을에 소문난 미녀와 추녀가 있었습니다. 추녀는 어떻게 하면 미인이 되나 하고 미녀를 자세히 관찰했답니다. 그랬더니 미녀가 항상 얼굴을 찡그리고 다니는 것 같아, 추녀도 찡그리고 다녔더니 온동네 사람들이 그 꼴이 보기 싫어 이사를 갔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에 미인이 따로 있습니까? 내 모습 그대로 웃는 얼굴이면 다 예쁩니다. 성형수술 한다고 더 예뻐집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연적인 모습, 즉 분복 그대로를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유명한 부흥사요 저술가인 워치만 리(watchman Lee)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의 책이 우리 나라에도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는 20대에 중한 병을 얻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죽음을 앞에 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며칠 동안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다음과 같은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환상 중에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난데없이 큰 바위에 부딪혔습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는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어 답답해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바위를 치워 주랴, 물이 불어나서 물 위로 배가 지나가게 하랴' 물으셨습니다. 워치만 리는 바위는 그대로 두고 물이 불어나 그 위로 지나가게 해 달라고 원해서 그렇게 지나갔답니다. 이 환상을 본 다음에 그는 특별히 은혜를 받아서 평생토록 귀한 일을 하는 주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앞에 바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앞에 있는 바위, 즉 원수나 시험 등을 치워 달라고만 부르짖고 있지나 않습니까?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게 주신 분복 그 상태에서 초연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간구하십시다. 넘치는 은혜가 있기만 하면 시험을 이기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주님은 아십니다. 내게 주신 여건, 이 모두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의 필요에 따라 인격의 그릇대로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쓰시고자 하는 그의 경륜에 의해 주셨기에 우리가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내게 필요한 만큼 주시고, 누리게 하시고 이것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생을 질적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인도의 선교사 선다 싱은 네팔에서 선교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살인강도들과 한 감방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흉악범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 믿고 중생하면 몸은 비록 감옥에 있지만 마음은 천국이라고 열심히 설명했더니 그들이 변하여 믿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간수가 들어와 보니, 살인강도들이 기쁨에 넘쳐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천국이 따로 없고 여기가 바로 천국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옥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불평하지 마십시다.

성령으로 중생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 여러분이 처해 있는 형편 그대로, 그 현실 안에서 천국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이 분복에 충성을 다하는 청지기로 감사하면서 사십시다. 이 분복을 즐기는 자만이 부유한 사람이요, 복받은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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