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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과 교회 (시편 27:4, 마태복음 18:20)

by 【고동엽】 2022.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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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과 교회   (시편 27:4, 마태복음 18:20)

기독교인들이 신앙하는 현실생활 태도에서 많은 문제점에 의하여 신앙행위가 탈선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기독교의 신앙은 근본적으로 신앙의 내용이해 없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내용이 유지 되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앙하는 일상생활에서 근본적인 원리가 구축되어 져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차제에 “성전과 교회”에 대한 교회관에 대한 이해를 갖고자 한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돌 판에 새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예수가 산상수훈을 선포한 곳이 성전이 아니라 산이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루어졌음이 아니라 산에서였다 함에 유의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곳과 산상수훈의 선포된 곳은 히브리 신앙 전통의 정체성을 알게 한다. 이미 기득권으로 무장되어 있고 교리가 되어버린 성전과는 구별된 공간인 산이라는 점에 우리의 관심을 갖게 한다. 예수의 산상수훈은 살아있는 하나님이 성전이 아닌 야성적 생명이 훼손되지 않는 공간에서 성전의 율법과 대치되는 선언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가 처한 당대의 교회는 예수의 산상수훈으로 반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정교한 신학과 전통의 교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었다. 성전 밖에서 새로운 권위가 옹립되는 것을 그저 방관할 수 없어 긴장감이 조성한 점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성전의 권위와 광야의 생명이 충돌하는 위기이기 때문이었다. 산상수훈은 이제 그 주도권이 성전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게 한다. 무수한 예언자들이 산에서 하나님과 만나 생명을 토했다는 전통은 성스러운 뿌리이다. 산상수훈의 현장은 성전을 본질적으로 알게 한다. 당시 성전은 머무를 곳이 없고 광야로 나온 저 산 사람들은 현실에서 산상수훈을 그저 편안하게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감동을 받으며 아멘! 하면 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한다. 이것은 현실 생활의 이해와 긍정적인 적극성과 변혁적 선포의 힘을 갖게 한 것이다. 성서시대의 성전은 모두 같은 자리에 차례로 건축된 세 개의 성전이 있었다.
   즉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성전이 있었다. 성전의 위치가 같았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신약시대의 복음서에 보면 많은 구절들이 예수는 자주 성전에 가서 ‘가르치시거나, 거기 계셨다’ 로 기록되어 있음을 본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그리스도인들,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여전히 성전을 공동체의 신앙생활의 중심지로 생각하였음을 안다. 희랍어 성서에서는 ‘성전’을 가리키는 말로 ‘나오스’는 ‘거주하다’(나이오)에서 온 말로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며 공동체의 의미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히에론은 성전의 부수적인 여러 뜰들과 곁방들, 그리고 낭실 들을 포함하는 성역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영어 성서에서는 이 두 단어가 아무런 차이 없이 성전으로 번역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흔히 생각하기를 사제들만이 나오스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에 이 양자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개혁을 말한 자들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한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행2;46)고 했다. 여기에 성전은 히에론 이란 단어로 ‘성전의 건물, 신성한 영역’을 말 함이다. 또 다른 의미의 성전인 나오스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냄을 알게 한다. 유태인들의 예배는 율법을 좇아 제물을 가지고 제사 드리는 성전예배이다.
   그러나 초대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성령에 따라 스스로 모여 예배드리고 신령한 교제를 나누었음을 알게 한다. 우리가 흔히 교회라고 부르는 단어는 신약성서에서 신약성서 안에 여러 많은 다양한 용어들의 단어들을 번역한 것으로 그 용어가 쓰인 다양한 정황 속에서 변화 되어 온 함축적 의미들과 연상적 의미들을 폭 넓게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한다. 지금 우리가 쓰는 church라는 말은 교회를 나타내는 말로서 희랍어의 ‘주님께 속한 것’이라는 뜻으로 희랍어 퀴리아콘 이라는 유래에서 라틴어와 독일어를 경유하여 영어도 church로 번역 된다.
   신약에서 희랍어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영어에서는 거의 church로 번역하고 있음을 안다. 이 말의 원래의 의미는 단순히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지도자의 부름을 받아 공적인 장소에 모여온 백성들의 모임을 말한다. 신약의 성서 저자들은 교회란 구약에서 말하는 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바울선생은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관계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때임을 말한다. (갈라디아6;16)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의미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 즉 교회를 나타내는 의미로 알아야 함에 유의한다.
   옛 이스라엘은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죽음에 이르기 까지 저주했다. 새로운 이스라엘은 유태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를 메시야로 영접하고 그가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사람들로서 구성 되었다. 메시야를 믿는 그들은 옛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속한’ 특별한 백성으로서의 특권을 상실 하였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알게 된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별함을 받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편지 한 점(고전1;2)과 또한 바울이 에베소의 교인들을 향하여 ‘주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한 점(행20;28)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힘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임(community)인 것이다. 신약에서 교회의 이름을 두 가지로 표현한 것은 ‘성령의 전’이라는 말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임을 새겨 두어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전이요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는 사실은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전이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알게 된다.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인간의 죄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신 위대한 대 제사장이시다.
   예수를 통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배울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옛 성전의 막이 둘로 갈라졌다. (마태27;51) 이 사실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길이 옛 지성소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의 성소를 통해서 찾을 수 있음을 지시한 것이다. 하나님의 참된 성전은 부활하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집’이라고 한다. (고전3;16, 엡2;21, 딤3;15, 히10;21, 계3;12)이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은 (롬12;5, 고전12;27, 엡1;23, 4;12, 5;30, 골11;8,24)성서에 있다.
   그렇다면 성전이 예수의 몸인 것을 어떻게 이해 하는가? 예수 죽으신 후 부활하시고 하나님의 오른 편으로 승천 하셨고 교회 안에 계시기 위하여 성령으로 다시 오셨다. 예수가 이 땅위에 계실 때 그의 몸이었던 성전은 그가 부활하신 후에 그의 몸이 교회라는 사실에서 인식 되는 것이다. 예수가 그의 교회 안에 거하시듯이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통하여 사람들 가운데 거하신다. 그런고로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성령을 베푸신 사람들로서 구성된다. 교회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현실로 받아들이며 부활의 사실을 믿는 사람들의 친교이다. 예수가 계신 곳에는 어디나 교회가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고(마태18;20) 약속 하셨다. 교회는 부활한 자의 모임이며 그 마음에 하나님의 신이 거하는 사람들의 친교이고 죄 사함을 받은 자들과 그들의 집단적 생활이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에 집중되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하나님에게 속하게 된 사람들의 공동체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성전과 교회”는 모세의 십계명을 가진 성전 파들을 보면서 새로운 모세로 등장한 예수의 몸인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 아닌 생명의 공간에서 성전의 율법과 대치되는 산상수훈을 선언함에 주목해 보는 것이다

출처/배성산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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