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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어떻게 할 것인가? (골4:2-4)

by 【고동엽】 2022.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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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어떻게 할 것인가?  (골4:2-4)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함께 나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우리는 그 동안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 관계를 변화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또 다시 그리스도인을 소개합니다. 그리스도인,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이번 축제를 기점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신 여러분과 함께 "기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사실 어떤 것은 우리가 가르치거나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있습니다. 대개 본능적으로 아는 것들은 거기에 속합니다. 예컨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젖꼭지를 빠는 것은 가르치고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본능적입니다.

어쩌면 기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의 답답한 심정을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께 아뢰는 것을 꼭 가르쳐야되고 배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기도란 정말 영적인 본능입니다.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는 것보다 못하지 않는 본능적인 행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까지 표현하는가 봅니다. 여러분 호흡을 할 때 호흡을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가 숨을 쉬어 줘야지!' 그렇게 합니까? 그냥 아주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에는 배워야 할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기도에 관해서 바울은 두 세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이 권면을 하는 바울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골로새 교회를 향해서 권면하는 사도 바울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의 편지를 통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동시에 성도들에게 기도하도록 요청하는 바울을 만나곤 합니다. 짧게나마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는 동시에 기도해달라는 요청을 편지마다 빠뜨리지 않고 있습니다. 기도의 사람은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동시에 기도 부탁하는 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에 관해서 무엇인가 사도 바울로부터 배울 것이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미리 알아야 할 사실은 바울의 기도의 부탁을 받는 골로새 교회, 빌립보 교회, 에베소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나 할 것 없이 예수 믿은 지 수십 년 된 경력을 가진 성도들은 없었습니다. 대부분 몇 년밖에 신앙생활을 한 경력이 되지 않는 성도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이들을 향해서 바울은 기도로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기도란 오랜 신앙 경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신앙의 첫 발을 디딘 사람이라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을 하나씩 나누어 살펴봅시다. 여러분 가운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번 새천년 생명, 사랑, 나눔 축제를 기해서 처음 교회에 발을 디딘 분들도 이미 혼자서 마음속으로 기도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눈감고 기도하지는 않아도 됩니다.

하다 못해 밥상 앞에서도 기도할 것이고 그것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교회에 나와서 함께 예배드리면서 같이 "아멘!"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마음만 가지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교회 나왔다고 해서, 하나님 믿기로 작정했다고 해서 바로 직장에 출근해서 점심시간에 눈감고 기도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갑자기 동료들이 그러지 않겠습니까? "쟤 왜 저래? 갑자기?" 동료들에게 충격을 줄까봐...그렇죠?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기도하는 것은 상당히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리고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기도하는 것은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시고 하루를 되돌아보면서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통치자이신 분과 날마다 대면하고 그 분께 우리의 마음을 의논한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을 여러분 모두가 이제부터 행사하시길 바랍니다. 춥고 암울한 겨울을 앞두고 염려되는 것은 없습니까? 또 한 번 닥칠지 모르는 경제적 위기로 인해서 위축되고 있지 않습니까?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아뢰는 특권을 행사하십시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당신이 베푸시는 은혜를 찾아 나오는 신참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이 참 잘 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기도해 보십시오. 그리고 기도에 힘써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기도의 습성을 배양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편지를 쓴 바울과 같은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바울은 여기서 그냥 기도하라고 하지 아니하고 기도를 항상 힘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끈질긴 기도를 하라고 명합니다. 가끔 기도하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냥 대충 기도하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선 항상 힘써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는 힘쓰지 아니하면 그냥 넘어가기에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시간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을 정하면 기도 생활의 진보를 위해서 도움이 됩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너무도 관대해서 '그래...난 기도할 마음이 있었어...'그걸로 그냥 기도한 것으로 점수를 주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할 마음을 가졌던 것하고 실제로 기도하는 것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것이 먹으면 맛있겠다고 생각하는 것하고 실제로 먹어서 맛을 보는 것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기도하고 싶은 소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본능적으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소원대로 실천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정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시간이라도 좋습니다. 기도하다보면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우선 처음으로 교회 나와서 신앙생활을 할 때 맨 처음 해야 할 것이 식사를 대할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죠. 전에는 그냥 밥 먹기 바빴지만...예수 믿기로 작정하면 전에는 내가 잘나서 이렇게 맛있는 식탁이 준비된 줄 알았는데 '아! 하나님이 주신거구나' 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니까 하나님께 '고맙습니다'하고 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식탁 앞에서 기도하는 것부터 기도 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것도 잘 안됩니다. 배가 고프면 숟가락이 먼저 가고요 급하면 입에 밥을 떠 넣고 나면 기도가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웃는 사람들은 다 경험해 본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처음 할 때 실수하더라도 하나님이 다 여러분이 처음 실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런 분이 있더라고요. 어떤 사람이 전에 하던 대로 밥을 떠먹고 나니까 기도를 안한거였습니다. 밥숟가락 그냥 놓았대요. 놓고 자기한테 그랬대요. '너 오늘 한번 굶어봐라' 감사할 줄 모르고 밥 먹는 버릇 고치기 위해서는 한끼정도 굶길 필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배워야 할 것이 잠자리에 들기 전후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하고 있는지 안하는지 여러분의 신앙의 불꽃이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지 꺼져 가는 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시험 하나가 잠자리에 기도하는지 기도하지 않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눈떠서 기도하므로 삶을 여는 것 그것이 경건생활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좀더 하고 싶은 소원이 있으면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새벽 기도 시간에 나오시면 됩니다. 우리 교회는 매일 새벽 5시에 이 자리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5시는 너무 이릅니까? 그럼 6시에 교육관 2층으로 가십시오. 또 모입니다. 그것도 이르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시면 7시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새벽이 꼭 힘드는 분은 다른 시간이라도 정하십시오.

어떤 시간에라도 열심히 기도하다 보면 새벽 기도에도 나오고 싶은 소원이 생기고 금요심야기도에도 어떻게 하는 건지 한번 가봤음 좋겠다는욕구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새벽에 못 일어난 것 가지고 하루 종일 마음에 부담만 갖고 있으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길을 가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고싶은 형제 자매가 기억나면 길을 가면서도 기도할 수 있고 운전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운전할 때는 눈을 감으면 안되겠죠? 눈을 감지 않고도 얼마든지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다 보면, 어느 때든지 기도하고싶은 욕구에 반응을 보이다 보면 시간을 드려서 기도를 하고 싶어지고 그 다음에는 또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고 그렇게 동참하다보면 공동체의 기도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 부담을 가지는 사람들이 나와서 삼삼 오오로 기도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새롭게 하십니다. 자원하는 사람들이 기도하면 혹시 또 나올 수 없는 사람 때문에 그리고 자기가 못 나가는 것 때문에 마음에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팀이 있다고 생각하면 혹시 금요일 밤까지 사업상 바쁘게 뛰는 사람들이라도 그런 기도회를 생각할 때 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슨 법칙이나 제도로 만들지 마십시오. 제도화가 되면 나오지 못해도 마음에 부담을 갖게 되고 나와서 앉아 있는 사람도 못나온 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되어서 은혜가 사라집니다.

그것보다는 기도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기도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는 사람들이 먼저 모여서 기도하면 덕스럽고 아름답습니다. 모여서 금요일 밤에도 좋고 수요일 밤에도 좋고 새벽에도 좋고 기도하십시오. 기도로 온 교회를 섬기는 일에 힘을 씁시다. 선한 일에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힘쓸 때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혼자서 기도합시다. 두 사람이 만나면 두 사람이 함께 기도합시다. 처음 나오신 이웃 여러분, 여러분도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십시오. 혼자 기도할 수 있는 분은 혼자서라도 기도하십시오. 단 5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 한번 시작해 본다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분은 교회가 정한 기도의 시간과 장소에 나오십시오. 수요일 밤에는 교회본당에, 금요일 깊은 밤에는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영아부실에서 기도의 시간을 가집니다.

특정 장소와 시간이 내 생활과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다른 시간이라도 확보를 하십시오. 새벽에 교회 못 가니까 지나간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나는 나대로, 부부는 부부대로, 식구는식구대로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보십시오. 언제 어디서나 기도를 우선 시작해 보십시오. 혼자 기도하다 보면 함께 기도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결심한다고 바로바로 그대로 되어질 수 만 있으면 누가 기도의 사람 안될 수 있겠습니까 만은 그렇게 쉽게 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을 보니까 'SFC기도시간 밤 10시' 라고 정해져있습니다. 포스터 받아와서 자기들 방문에다 딱 붙여 놨는데 보니까 방문만 늘 기도하는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는 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목표가 정해져 있는 사람과 목표없이 사는 것은 차이가 납니다. 세월이 흐름과 함께 10시는 내 기도할 시간이다 라고 알고 사는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릅니다. 2년만에 큰아이 자취하는 방에 밤 10시쯤 찾아 간 적이 있습니다. 가니까 친구들끼리 기도회를 하더라고요. 그날 밤은 마침 우리 아들이 기도회를 인도하는 밤이였던 모양입니다. 가서 앉으니"울산교회 정 목사님 기도 제목 있으면 이야기하십시오" 하더군요. 한편으론 괘씸하더라구요. 한 술 밥에 배부르진 않습니다. 정말 방문에 붙여 논 포스터가 미안할 정도로 되는 게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기도하는 것을 배워갈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일에 지치지 마십시오. 끈질기게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힘써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상당히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 때는 힘써 기도하다가 계속해서 끈질기게 기도하는 일을 중단한 사람들은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에 항상 힘쓰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다른 번역을 보면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기도의 습관을 항상 유지하십시오". 저는 피아노 치는 것을 배워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피아노 치는 일이 어떤 일이라는 것을 들어 본 적은 있습니다. 피아노를 잘 치기 원하는 사람은 하루라도 연습을 놓치게 되면 자기가 알게 되고 그 다음도 계속해서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도 모두 알게 될 만큼 자꾸 수준이 떨어져 간다고 말합니다.

하긴 운동을 해도 마찬가지이고 운전을 해도 그렇습니다. 한동안 하지 않다가 하게 되면 처음에는 어색합니다. 처음에는 뭔가 제대로 안됩니다. 하지만 계속적으로 하면 다릅니다. 우리의 실력이 알게 모르게 닦아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본문을 "기도의 습성을 배양하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도, 그것을 힘써서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에 지치지 말고 끈질지게 기도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좋은 신앙인의 삶입니다.

기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여기서 두 번째의 기도에 관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우선 기도에 깨어 있으라는 권면은 무슨 뜻일까요? 주님께서도 가끔 동일한 권면을 제자들에게 하신 적이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막 14:38)

지난 금요일 밤에도 마음에는 소원했지만 육신의 연약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오시지 못한 분들도 계시지요? 오늘 새벽도 마찬가지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감당하지 못한 분은 없습니까? 아니 기도의 자리에 나와도 때로는 육신의 연약으로 깨어있지 못한 경우는 없습니까? 이 경우의 권면은 신체적으로 깨어있도록 하시는 말씀입니다. 졸음도 효율적인 기도의 방해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체적인 문제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깨어 기도하라고 주님은 말씀 하실때에 특별히 종말의 상황을 마음에 두고 권면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덧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 21:34-36)

마지막날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시면서 스스로 조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으로 우리 마음이 혼미해 질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방탕함과 술취함 그것은 가진 자들이 빠질 수 있는 유혹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진 자들만 유혹을 받진 않습니다. 가지지 못한 자들도 역시 시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어떤 시험입니까? 생활의 염려라는 것입니다. 날은 추워지고 경기는 불투명해지고 어떻게 먹고사나... 먹고사는 것이 최종 목표가 되면 기도생활이 힘겹습니다.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덧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신체적인 피곤함으로 인해서 깨어 있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게다가 정신적인 해이함으로 깨어있지 못하는 것도 기도의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여기서 좀 더 구체적으로 빛의 자녀로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어두운 세상의 잠에서 깨어 있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실 것을 대망하고 그 날 영광의 소망을 바라보며 기도하도록 권면합니다. 주님의 날은 갑자기 예기치 않게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주님 오실 것을 대망하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고 기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마라나다, 주님 오시옵소서"라는 기도가 우리의 가슴에서, 우리의 입술에서 끊이지 말아야 합니다. 영광스런 주님의 오심을 대망하며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기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여기서 세 번째 기도의 방법을 언급합니다.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무슨 말입니까? 처음 교회에 발을 디딘 사람이라도 기도하면 자기의 소원을 아뢰는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기도의 한 측면은 우리의 필요를 전능하신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기도는 내 소원을 아뢰는 통로로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신 많은 일들로 인해서 감사하기 시작할 때에 그 기도의 생활은 즐거운 시간으로 변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소원을 아뢰기만 하면 관심은 언제나 내 자신의 필요에 머뭅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동안 하신 일들로 인해 감사하게 되면 우리의 관심은 우리 자신에게서부터 좋으신 하나님께로 향하게 됩니다. 관점을 바꿔 보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것들로 인해서 우리가 감사할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기도에 새로운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두고 감사할 수 있을까요? 골로새서 앞부분에서 밝힌 대로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로 인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셨기 때문입니다. 흑암의 세력에서 구출하셔서 하나님이 극진히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빛의 나라에서 유업을 분배받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이 이번 새 천년 생명, 사랑, 나눔 축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된 사실로 인해서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이미 일어났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행사하게 되었기에 감사하실 수 있습니다. 자기 자녀의 호소에 하나님은 민감하십니다. 그로 인해 장차 받을 기업도 귀하지만 지금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 드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도는 우리가 얻은 새 생명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특권이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우리 모두는 감사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기도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에 감사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필요한 것 뿐 아니라 우리의 주위에 있는 형제자매의 필요한 것도 하나님께 대신 아뢸 수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곱으로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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