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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오신 성탄절! (눅 2:1-14)
우리는 또다시 한 해를 보내면서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12월 성탄절에서 4월의 부활절까지가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해당됩니다. 이 기간 안에는 성탄절, 사순절, 고난 주간, 부활절 등이 들어 있는데 이 절기들은 모두 기독교의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절기들입니다.
이제 성탄절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명절이 되었습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공산주의 나라에서까지도 성탄절을 즐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성탄절이 기독교인만의 명절이 아닙니다.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명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석가탄신일이 공휴일로 지정되기 전에 불교인들이 성탄절만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헌법재판소에서 소를 기각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탄절은 본래 기독교의 명절이었지만 이제는 그 의미가 퇴색해 세속 인들의 명절로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성탄절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은 특정 종교를 비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정도로 성탄절은 세속 명절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메리 크리스마스'란 무슨 뜻일까요? 영어로 'Merry Christmas'의 Merry는 '즐거운'이란 뜻이고, 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예배의 뜻을 가진 미사(missa)가 합성된 말로서 그 의미는 '그리스도를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그럼 우리가 '성탄, 성탄'하는데 성탄이 무엇일까요? '거룩한 탄생'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탄생과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탄이라는 말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붙여지는 이름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서 낳았지만 예수님만이 죄 없이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①아기 예수가 우리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11절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매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오늘은 구세주(救世主)가 나신 날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 신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를 찾아오신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날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려 오신 구주(救主)이십니다. 구주라는 말은 σωτρ(소테르)라는 말로 '인류의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시3:8절에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했으며,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1:21)라 하셨으니, 구원자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할/
▶어디에서 구원하십니까?
⑴죄악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조상 죄(원죄)와 자기 죄(자법 죄)에서 왔습니다.
롬5:8-10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정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엡2:5절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할/
⑵마귀의 권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인간의 제일 큰 원수는 마귀입니다. 아담하와를 망친 원수가 옛 뱀 마귀입니다
요일3:8절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것은 마귀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날마다 예수능력, 예수권세, 예수사랑, 예수생명, 예수이름으로 마귀를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악한 귀신에서 구원받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
⑶질병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병은 인간에게 고통만 주고 손해만 줍니다. '나는 치료하는 여호와이니라' /할/ 예수님의 사역의 3/1이 치유(회복)에 집중하셨습니다.
⑷질병만 치료하시는 것이 아니라 환경도, 사람의 인격도 치유하십니다.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하셨으며, 삭개오의 인격을 변화시켰습니다. /할/
⑸가장 중요한 사망에서,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할/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엡2: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요11:43-44절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체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쌓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나인성의 과부의 독자를 살리시고,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죽음에서 구원하심같이, 우리는 죽음에서 구원받았습니다.
눅19:10절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막2:17절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②성탄은 주님의 생명을 대속 물로 드리기 위해 오신 사건입니다.
막10:45절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대속 물'이란 팔려가 버린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대신 지불하는 몸값을 가리킵니다.
바로 예수께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서 대신하여 희생함으로 죄 값인 사망을 지불하게 된 사건입니다. 벧전1:18-19절에서 베드로는 말하기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⑴그래서 성탄은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를 보여 준 사건'입니다(요3:16). 헬라 사라들은 흔히 사랑을 네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했습니다.
인간적인 사랑, 육신 적인 사랑을 '에로스'라고 했고, 형제애의 사랑, 인류에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을 '필로스'라고 했고, 피를 나누어서 형성된 사랑, 부모 자식간의 사랑을 '스톨게'라고 했고, 완전한 사랑, 신의 사랑을 '아가폐' 사랑이라고 했는데 바로 예수께서 대속 물로 오신 그 사랑을 말합니다.
이 사랑은 조건이 없고, 대가가 필요 없는 무상의 사랑입니다. 인간은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사랑의 극치'라고 했습니다. /할/
⑵성탄은 한 영혼의 값의 소중함을 나타낸 사건입니다. 우리 한 영혼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게 보셨기에 하나님의 외아들을 죽이기까지 사랑하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칼 발트'는 '나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내 값을 안다.'고 했고, '본회퍼'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값비싼 대가를 치러 구원받은 값비싼 존재들'이라고 했습니다. /할/ 이런 깊은 진리를 아는 사람은 이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⑶바로 이것이 성탄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10절에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탄생은 '좋은 소식,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곧 복음(福音)'이라고 했습니다. /아멘!/
③주님이 오신 것은 죄인을 부르시기 위해서입니다.
마9:13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 구절은 우리에게 귀한 의미를 던져 줍니다. 이 말씀은 사람 중에 의인도 있고 죄인도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를 스스로 의인이라 하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찾아오시지 않으신다는 교훈입니다. 대신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구원이 필요하고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런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④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요10:10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를 영육 간에 행복하게 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자기 백성에게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살기 위해 오셨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하나님을 잘 경외하며 살아야 합니다.
⑤아기 예수 탄생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마1:23절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28:20절에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아멘!/
⑥아기 탄생은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축복입니다(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부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시112:1-3절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아멘!/
⑦아기 예수의 탄생은 막힌 담이 헐어지는 축복입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에 다리를 놓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엡2:14절 '그는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또 16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헐고, 중간의 큰골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리입니다. 보이지 않는 다리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분은 우리와 하나님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입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다리입니다.
요14: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어떤 시인은 말하기를 '현대인들은 담을 쌓는 일은 쉽게 하지만 다리를 놓는 일은 좀처럼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의미 있는 말입니다.
⑧성탄절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⑴기뻐게 맞이해야 합니다(10). 예수님은 절망하고 낙담해 있는 인생들에게 소망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오신 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구원의 기쁨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아멘!/
오늘 아기 예수를 경배 드린 목자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8절에 보면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여기 그 지경이란 그 들판이라는 뜻인데 그 들판은 바로 아기 예수님이 나신 베들레헴 들판을 말합니다.
이 베들레헴 들판에서 목자들이 밤에 양떼를 지키는데 곁에 빛나는 천사들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 무서워하는데 천사가 기쁜 소식을 전해줍니다.
10절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러면서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그 때 그 천사 주변에 수많은 천군이 함께 보이더니 함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14절 보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찬송을 하고 천사들은 떠나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서로 말하되 어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대로 아기 예수님을 보자 하고서 베들레헴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가 나셔서 말구유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 천사가 자기들에게 한 이야기를 다 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⑵목자들은 성탄의 표적을 보았습니다. 여기 표적이란 '증거, 상징, 표시' 그런 뜻입니다. 아무 아이라고 다 다 예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말구유에 나신 아이가 진짜 예수님이라는 증거입니다. 목자들은 천사의 일러준 말대로 베들레헴 마구간의 말먹이를 담는 말구유에 나신 아이를 보았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아이를 낳았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아이를 낳았다,'하는 이야기는 있어도 말구유에 낳았다는 말은 아마 예수님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표적입니다.
⑶그 표적은 말씀입니다. 11절에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다윗의 동네 즉 베들레헴에 구원자 메시아가 나신다는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다른 동네에서 난다면 그것은 아기 예수가 아닙니다. 성경대로 낳아야 합니다.
⑷그 표적은 겸손입니다. 12절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석가모니는 궁중에서 태어났습니다. 요즈음 보통 아이들은 병원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나셨습니다.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못 할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믿음의 핵심은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29)
이 세상에 자기 제자 발을 닦으신 스승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Empire state building이었습니다. 119층입니다. 그 후 더 높은 빌딩이 시카고에 생겼습니다. Sears Tower입니다. 그보다 더 높은 것은 동경 타워입니다. 지금은 토론토의 CN Tower가 가장 높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높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교만입니다. 고집입니다. 자기주장입니다. 양보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구유에 낳으신 분이십니다. 겸손의 표상입니다. 성탄절에 구유에서 퍼내야 할 보배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실 왕 메시아 예수님은 왕궁에서 나신 것이 아니고 이렇게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습니다.
강보란 원문의 뜻은 작은 보자기를 말합니다. 요때기도 아니고 이불도 아닙니다. 스카프 같은 보자기를 덮었습니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따뜻하지만 보자기만 덮고 있으니 얼마나 춥겠습니까? 아기 예수님은 추하고 냄새나고 시끄럽고 추운 마구간에서 떨고 계셨을 것입니다.
이처럼 당시 사람들은 권력의 압제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일해도 다 빼앗기고 배도 고프고 춥고 행복하지도 않고, 바로 아기 예수님은 백성들의 그런 자리에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저는 죄인입니다. 이대로는 희망이 없습니다. 행복이 없습니다. 어디서 나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암담하기만 합니다. 제게 찾아오셔서 희망을 주세요' 이런 준비된 마음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믿/아멘!/
절대 교만한 자리에는 찾아오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이 필요 없어, 하나님을 믿으려거든 내 주먹을 믿어, 나는 예수 없이도 행복해, 나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강해, 나밖에는 믿을 것이 없어, 내 마음이 곧 하나님이야, 내가 곧 예수라고' 이 따위 소리하는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구원자 예수님이 찾아오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금년 성탄절에 이렇게 기도하십시다. '주여! 나로 하여금 낮아 질대로 낮아지게 하옵소서. 잃어버렸던 겸손을 찾게 하여 주옵소서!' /할/
⑸그 표적은 평안입니다.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평안의 근본이 되신 예수께서 찾아오신 증거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아는 사람은 마음의 평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분은 일찍이 '평강의 왕'으로 오실 것을 이사야선지가 예언하셨습니다.
요14:27절에서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러므로 예수 안에 사는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 참 평화와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신 마음에 평안이 오는데 성경에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시37:4절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할/ 오늘 하나님을 기쁘게 맞이하는 날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는 영광과 땅에는 평화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평화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를 구주로 믿고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할 때 큰 평안함을 주십니다. 그 때 우리는 '아 내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구나, 성령님이 계시구나, 예수님이 계시구나, 내 안에 축복이 있구나'를 알게 됩니다. /아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에 아기 예수님께서 나셨습니다. 유대 나라 사람들이 고통으로 울고 슬퍼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의 현장은 어떻습니까? 아기 예수! 나의 구세주이시며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모시고 살아가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2009년 12월 25일 성탄절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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