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박사들의 경배! (마2:9~12)
마2: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마2: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마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뜻깊은 성탄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오는 은혜와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성탄을 맞이하는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동방의 박사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이며, 그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그들이 몇 명이나 왔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들이 어떤 옷을 입었으며, 그들이 무엇을 타고 왔으며, 그들이 어떤 길로 왔으며, 그들이 얼마나 걸려서 왔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성경이 여기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단지 그들이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과 그들이 박사라는 사실만 밝히고 있을 뿐입니다. 왜 성경은 그들에 대해서 이토록 간단하게만 언급하고 있을까요? 성탄의 주인공은 그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오직 한 분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동방의 박사들은 큰 기쁨으로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엎드려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 후에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서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처럼, 오늘 우리도 큰 기쁨으로 성탄을 맞이합시다. 우리도 엎드려 우리 구주 예수님께 경배하고, 우리의 보배합을 열어 예물을 드립시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부터는 날마다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으면서 살아갑시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동방 박사들이 보여주었던 큰 기쁨을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에게 드렸던 경배를 살펴보겠습니다. 셋째, 동방 박사들이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간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옛날 메시야의 별은 동방의 박사들을 아기 예수님에게로 인도해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간 우리 구주 예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 모두를 두루 비추어주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그 빛이 우리 모두를 큰 기쁨과 깊은 은혜의 자리로 인도해주기 바랍니다.
첫째로, 동방 박사들의 기쁨입니다(9~10절).
마2: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동방의 박사들은 헤롯 왕의 말을 듣고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출발했습니다. 헤롯 왕은 그들에게 “유대인의 왕,” 곧 메시야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동방의 박사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베들레헴을 향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주로 밤에 여행을 떠났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려 쬐는 낮에는 쉬고, 서늘한 밤에 별을 따라 방향을 정하고 여행을 하는 것이 그들의 관례였습니다. 따라서 그들도 밤에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곧이어 오늘 본문은 메시야의 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때 동방의 박사들이 보았던 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헬리 혜성이었다, 목성과 토성이 결합한 것이었다, 또는 그 때 하나의 새로운 별이 나타났다, 등등 여러 가지 견해가 있어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메시야의 별에 대해서 세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 그 별은 사라졌다가 “문득” 다시 나타났습니다. 둘째, 그 별은 동방 박사들을 “앞서” 인도했습니다. 셋째, 그 별은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 위에 “머물러” 섰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보통의 별들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가면, 별들도 함께 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면, 별들도 함께 섭니다. 그런데 메시야의 별은 동방 박사들의 발걸음을 앞서 인도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별은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 위에서, 그대로 머물러 섰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들을 통해서, 메시야의 별은 하늘에 떠있는 보통의 별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메시야의 별은 과연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는 징조로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갈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낮에는 구름 기둥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불 기둥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영광에서 나오는 빛난 광채가 앞서 가면서 그들의 갈 길을 인도해주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들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영광에서 나온 빛이 목자들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때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밝게 떠올라, 동방 박사들을 아기 예수님에게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발의 등이요, 우리 길에 빛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늘 하나님의 말씀이 비추어주는 밝은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2: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오늘 본문은 반복해서 동방 박사들의 큰 기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우리는 이 단어들을 통해서, 동방의 박사들이 메시야의 별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찾아서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바야흐로 곧 그들은 여행의 목적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그들은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인도해주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기쁨과 감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이와 같은 기쁨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는 전연 없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들도 기뻐했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이방 사람들이었던 동방 박사들보다도 오히려 더 기뻐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연 기뻐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있는 3절 말씀을 보면, 헤롯 왕과 더불어서 온 예루살렘은 그저 소동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의 삶이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 시간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돈걱정, 자녀걱정, 사업걱정 등등 세상의 온갖 염려들에 둘러싸여서, 계속해서 한숨만 내쉬고 있지는 않습니까?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가리키는 별만 보고도, 그들은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최고의 기쁨으로 성탄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내어놓으시고, 낮고 낮은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러,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최대의 기쁨으로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동방 박사들의 경배입니다(11절).
마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집에 들어가.” 눅2:16을 보면, 들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은 마구간의 구유에 뉘인 아기 예수님을 보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동방의 박사들이 마구간(stable)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이 계시는 “집”(house)에 들어갔다고 기록합니다.
말하자면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시고 여러 날이 지난 후에,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 때는 호적을 마친 사람들이 각자의 마을로 돌아가고 난 뒤였습니다. 그러기에 요셉과 마리아는 여관에 있을 곳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집에 머물고 있을 때, 동방의 박사들이 그들을 찾아왔습니다. 따라서 짐승들이 있는 마구간에서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에게 예물을 드리며, 그 옆에서 목자들이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그림은 성경적으로는 정확하지 못합니다.
아무튼 그 때 동방의 박사들은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구유에 뉘인 아기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이 그의 어머니 마리아의 품안에 안겨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즉시 동방의 박사들은 엎드렸습니다. 이 때 그들은 무릎만 꿇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서, 아울러 그들의 머리를 땅에 대었습니다.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에서 경배라는 단어는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사용됩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경배하고자 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자기도 사람이기에 경배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사도 요한이 천사에게 경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그에게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또한 천사도 경배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경배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동방의 박사들은 헤롯 왕에게도, 요셉에게도, 마리아에게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코 경배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에게 경배하지 않고, 마리아에게 경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일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며, 우리와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오직 아기 예수님에게만 경배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엎드려 예수님에게 경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세토록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말씀하기를, 동방의 박사들이 보배합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길을 떠나기 전에, 미리 보배합을 준비해서 왔습니다. 그들은 즉흥적으로 자기들의 지갑에서 몇 푼 끄집어내어서, 아기 예수님에게 던져준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뵈러 나올 때는 준비해야 합니다. 아니 사람을 만나러 나갈 때는 준비하면서, 왜 예수님께 경배하러 나올 때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습니까? 성경책도 준비하고, 헌금도 준비하고, 몸가짐과 마음가짐도 미리미리 준비해야만 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미리 준비한 보배합을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아기 예수님에게 예물로 드렸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에게 드린 예물들은 매우 귀하고도 값진 것들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예물들은 상징적인 의미도 갖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불렀던 찬송가 116장은 이와 같이 노래합니다. “베들레헴 임금께 나는 황금 드리네 영원토록 모든 백성 다스려 주소서.” 황금은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합니다. 말하자면 황금은 왕이신 예수님에게 드려진 것입니다.
“거룩하신 구주께 나는 유향 드리네 만국 백성 찬송 드려 만유 주 섬기세.” 출30:37 말씀을 보면, 본시 유향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합니다. 말하자면 유향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드려진 것입니다.
“주의 죽을 몸 위해 나는 몰약 드리네 세상 모든 죄인 위해 십자가 지셨네.” 요19:39 말씀을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기 위하여 몰약을 가지고 왔습니다. 몰약은 예수님의 인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몰약은 사람이신 예수님에게 드려진 것입니다.
물론 동방의 박사들은 그들이 아기 예수님에게 드린 예물의 상징적인 의미를 충분히 깨닫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그들은 아기 예수님에게 매우 적절하고도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귀한 예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예물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뒤에 헤롯 왕의 박해를 피해서, 아기 예수님의 가족은 애굽으로 피난을 가셔야만 했습니다. 아마도 그 때 이 예물들은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대상16:2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여기서의 제물은 예물을 의미합니다.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한 요소입니다. 빠져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처럼, 이 시간 우리도 엎드려 예수님께 경배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보배합을 열어서, 정성이 담긴 예물을 예수님에게 드립시다.
만일 우리가 대통령에게 줄 선물을 마련한다면, 우리는 온갖 정성을 다해서 그것을 잘 준비할 것입니다. 하물며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아무런 정성도 없이 되는 대로 예수님에게 예물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옛날 우리의 어머니들은 새 돈이 들어오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모아 두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 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새 돈이 없으면, 헌 돈을 깨끗이 다림질해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서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고후8: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마게도냐의 교회들은 어려운 형편에서도, 하나님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드렸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고린도 교회에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써,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진실함이 증명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쏟으셨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처럼, 우리도 엎드려 예수님에게 경배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정성이 담긴 예물을 드림으로써,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진실함을 증명해 보입시다.
셋째로, 동방 박사들의 귀국입니다(12절).
마2: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이미 말씀드린 대로, 그 당시 사람들은 주로 밤에 여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동방 박사들도 밤에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이른바 메시야의 별을 보면서, 그 별이 인도하는 대로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불과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걸어가더라도 두세 시간이면, 충분하게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래서 동방 박사들은 이른 밤에 아기 예수님을 만나서 경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여행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평안한 심정으로 잠자리에 들었을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은 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아직은 성경이 완성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때로는 꿈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받은 계시의 내용은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헤롯은 동방 박사들에게 아기를 찾거든 그에게 돌아와서 고하라는 임무를 주었습니다. 자기도 아기에게 경배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속셈은 아기를 죽이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동방의 박사들은 헤롯 왕의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헤롯의 속셈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동방 박사들의 꿈에 나타나셔서,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그들에게 지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해서, 동방의 박사들은 다른 길로 자기들의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서, 헤롯에게로 돌아갔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길은 사망의 길이며, 멸망의 길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왔던 길, 우리가 잘 아는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쉽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길이라고 방심할 때, 쉬운 길이라고 자만할 때, 그리고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길을 우리가 고집부리면서 걸어갈 때, 그 길에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동방의 박사들에게 지시하신 길은 생소한 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딜 수도 있었고, 가기에 힘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셔서, 분명 그들은 자기들의 고국에 무사히 되돌아갔을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원하는 길을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길을 막으시고, 우리를 다른 길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아쉬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길이 더 좋은 길이며, 우리에게 최상의 길입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의의 길로, 바른 길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떠한 길로 인도하시든지, 우리는 늘 순종하면서 감사함으로 그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아울러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길이라면, 우리는 즉시 그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다른 길로 가야만 합니다. 그리하면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발걸음을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행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길을 걷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다른 길로 돌아서야 합니다. 뜻깊은 성탄주일을 맞이하여, 과거의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다른 길로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했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그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며 귀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셋째,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처럼, 우리도 큰 기쁨으로 성탄을 맞이합시다. 동방의 박사들처럼, 우리도 엎드려 예수님에게 경배하며, 정성을 다한 귀한 예물을 드립시다. 동방의 박사들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이제는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삽시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만, 분명 동방의 박사들은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가서 메시야의 탄생을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으로 전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성탄의 소식을,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온 누리에 힘써 전파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성탄의 기쁨과 함께 이 한 해를 잘 마무리합시다. 그리고 새 해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려드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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