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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목사
롬 8:28-32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32절에 있는 말씀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내어주신 역사적인 날입니다. 덧붙여진대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것이 성탄절의 잊어서는 안 될 큰 증거요, 하나님의 구체적인 증언이요, 복이죠.
그 아들을 주신 하나님, 그 아들을 주셨는데 무었인들 아낄 것이 있겠는가,, 우리 편이다하는 약속이요, 역사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얘기할 때마다 가장 우선하고, 가장 근본적이고, 모든 것이고, 다른 것을 덧붙힐 필요가 없는 기독교 신앙의 이름,
`예수` 입니다.
예수를 믿는다, 예수께서 오셨다, 다시 오실 것이다, 그의 나라에 영원토록 살리라,, 모두 예수로 모든 것이 묶여있고 근거하고 성립되죠.
근데 이 예수를 줬다는 것은, 우리가 믿는, 또 예수께서 순종하신 성부 하나님, 창조주요 섭리자요 심판주요 우리에게 영원을 약속하신 이가 어떠한 분인가? 하는 것에 대한 가장 가장 놀라운 증언입니다.
신이 있다면, 우리의 소원을 들어 줄 만큼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은 모든 종교가 가지는 소원입니다.
그리고 간절히 빌면 들어줬으면 좋겠다,, 이것들은 모든 종교가 갖는 소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신은 간절히 소원하면 뭐든지 들어준다,, 이거 좋죠~
근데 만일 신이 우리 말만 들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이 자신의 목적과 뜻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라는 생각도 당연히 해야죠.
신이 다만 나보다 힘만 더 가지고 있고, 간절하기만 하면 조종이 되는 신이라면 신으로써 경배할 필요는 없죠.
하나의 어떠한 원리에 의해서, 어떤 조건에 의해서 움직이는 정도죠.
신이라면 당연히 인간보다 큰 힘을 가진 만큼 우리가 상상 못하는 더 높은 어떤 목적, 더 높은 어떤 도덕성, 더 높은 어떤 인격성을 가져야 맞습니다.
그래야 경배를 하고 예배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보냈다는 것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심에 서있는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시냐? 에 대한,,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강력하고도 분명하고, 그 역사의 증언을 이렇게 구체화함으로써 변개시킬 수 없는, 취소할 수 없는 자기계시 입니다.
이 하나님은 로마서 3장 식으로 하면, 우리가 로마서 3장을 읽으면서 구원에 너무 집중해서 읽는 바람에 늘 놓치는 부분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세상에서는 정의를 어떻게 세우죠?
악인을 몰아내는 것으로 정의를 세웁니다. 악을 뿌리 뽑는 것으로 정의를 세웁니다.
세상에서의 정의는 늘 무섭죠. 틀린자들을 몰아내야, 잘못된 자들을 뿌리 뽑아야 정의가 서죠.
남는 자가 얼마나 될 지, 두려운 정의의 실현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보십시요!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가 실현시킨 정의는 우리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세워 우리 죄를 씻어 죄인된 모든 자들을 악인인 모든 자들을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희생과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그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고마운 정의입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정의가 실현되면 곤란한 사람들이 어느 시대에나 많이 있는 법입니다.
예수께서 지금 당장 오시면,, 약간 곤란한 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현실입니다.
저는 어떠냐고요? 저는 조금 낫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벌써 오시면 곤란하죠. 아직 숙제가 밀렸는데, 조금 있다가 오시죠,,
그건 예수 믿는다는 말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로 인한 구원이기 때문에 지금 오셔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것 우리 자문해야죠? "정말요?" "정말?" "정말!" 예수가 오신 것이 역사적 사실, 변개하거나 취소시킬 수 없는 사실이듯이,
예수로 인한 구원이 역사적으로 일어난 변개치 못할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입니다.
언제 주셨는데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가 오시고 그가 죽으셨습니다.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미래를 위하여 열어놓은 길이 아니라, 다 끌어안아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의를 이런 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성경식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천군천사들의 이런 노래가 찬송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 평화로다 입니다.
어떤 영광? 빌립보서 2장에 이렇게 있었던 것 많이 인용했습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의 죽음,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를 내어주어 화해 하시고, 정의를 세우시고, 죄인을 구원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이 방법을,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에 대표로 세우신다고 말합니다.
높은 자의 높은 자된 증거를 제시하라고 하면, 예외없이 권력을 아마 앞세울 것입니다.
내가 한 마디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내가 화가 나면 어떤 심판이 떨어질 수 있는가? ,, 이게 세상에서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런 데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허리를 낮추시고 눈높이를 낮추시고 우리를 구원하러 스스로 인간의 자리에 들어오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으로 당신의 영광을 삼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낮추어 찾아오시는 하나님` 이라는 감격이 여러분을 붙들어야 됩니다.
자격이 없는 것 아닐까? 이런 꼴인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이런 식의 생각은 `예수`라는 이름을 부를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 속에 어느 누구에나 어떤 자리에나 어떤 형편에나,,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모든 축복을 받을 조건이 거기 거기 모두 담겨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 가면, 이런 하나님의 드러내고 싶으신 영광과 베푸시는 은혜와 구원과 용서로 말미암아 만들어 내시는 정의와 평강이 우리의 것이 되게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어떤 능력, 어떤 열심, 어떤 정성, 어떤 의지를 동원했는지 봐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하늘과 땅의 권세를 쥐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시고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키 위하여 우리 손에 자신을 맡긴 주께서, 부활하여 가지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우리와 당신을 묶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의 미련함, 무지함, 게으름, 배신, 절망, 자괴, 의심, 두려움, 모든 속에 주께서 떠나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하여,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며, 네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에게 한 하나님의 그 약속을 이렇게이루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믿음 하나에만 묶여있지 않고, 그리스도를 우리와 묶어 놓았습니다. 그러니 성경은,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예수께서 사는 것이라 예수를 믿는 그 믿음으로 나는 사는 것이다` 라는 사도바울의 그 큰 고백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죠.
그 모든 주인, 주인공, 근거, 운명, 능력,, 그것이 예수라는 이름 속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는 예수의 이름을 예수께서 이렇게 쓰시기를 그의 제자들에게 허락합니다.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게 무슨 뜻이죠?
예수는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찾아오신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영광이며, 하나님의 정의며,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의지며, 성의며, 고집이십니다. 꺽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 앞에 구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조건말고, 예수를 보내신 아버지의 사랑과 성실하심에 근거한 기도가 된다는 것이죠.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오신, 보내신 그 아들,, 우리를 위하여 당신을 십자가에 내어준 그 아들!
오늘 로마서 8장에서 본 바와같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뇨? 에 이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탄절입니다.
기도하십시요. 응답받으실 것입니다.
열씨미 믿으십시요.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주께서 실제로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요.
여러분의 기도의 맨 마지막에 서명날인을 여러분이 하지 않고 예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아무도 도울 수 없는 자리, 그럴 수 없는 형편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것은 없습니다.
죽음에서 부활을 만드신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 안에서 일어났으니까요!
그러니 아무것도 염려하지말고 너희 염려는 주께 맡기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찬송하며 감사하라,
성경이 권면하는 말씀들의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 성탄절인 줄 기억하십시요.
마음을 든든히 하고 예수를 믿는다는 바로 그 말 속에 얼마나 많은 축복과 약속과 능력이 들어있는지를 기억하여
힘있게 사시고 기적을 만나시고 간증할 것이 넘치시는 여러분의 생애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생각해 보니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떼를 쓰도 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을 주사, 성탄절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 아들을 죽음의 자리까지 내어주시고 부활하사 부활절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능력으로 우리를 부르셨고 약속하셨고 지키고 계시는지 확인했으니 이 잊어서는 안되는 이 성탄절, 예수께서 오신 이 날,
우리의 믿음이 다시 한번 말씀 안에서 차고 뛰어올라 인생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불신앙을 이기고 우리의 못난 것과 절망에 의한 의심과 불안을 떨쳐내고 예수 이름으로 살아내는 우리의 인생되게 하사, 교회 안에 넘치고 소리나는 찬송과 기도와 감사가 끊이지 않는 우리 교회와 가정과 인생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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