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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의 신비
본문:눅01장 26절 ~ 38절
미국 워싱턴대학의 토머스 홈스 교수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때를 조사했더니 가장 큰 변화가 오는 것은 배우자가 죽었을 때였습니다. 이 경우를 100으로 하고 그 밖의 다른 경우들을 점수 화했는데 이혼의 경우가 73, 임신했을 때가 40, 집을 옮기거나 고쳤을 때가 25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크리스마스가 무려 12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크리스마스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사입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예수 없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만일 크리스마스를 즐거운 파티 기분으로만 넘긴다면 그것은 예수 탄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나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주지 못하는 허망한 시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낮은 데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 하신 깊고 높은 뜻을 헤아려 그 사랑을 실천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성탄절에 우리 모두의 마음이 작은 구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성탄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할까요?
오늘은 교회 절기로 대강 절이 시작되는 주일입니다.
대강 절은 성탄절에서 거슬러 올라가 네 번째 주일부터 시작하여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계속되는데 이 절기는‘그리스도가 오셨고 오시고 있고 오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대강절'의 어원은‘옴‘도착’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했으며 직접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 대강 절을 의미 있게 보냄으로써 성탄절의 실제적인 의미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다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이 땅 위에 오신 놀라운 사건을 진정으로 기쁨과 경외감가운데 체험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대강 절을 보내야 할 지에 대한 깨달음의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첫째, 대강절을 통하여 나의 삶이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가운데 있음을 감사하며 지내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음을 더 깊이 깨닫는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정혼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결혼을 앞두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마음이 부풀은 가운데 새로운 미래를 꿈꾸면서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마리아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소식을 전합니다. 그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천사 가브리엘은 정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라고 인사했습니다.(28절). 과연 이것이 합당한 인사였을까요? 정혼한 여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는 소식이 과연 은혜였으며, 평안한 소식이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때에 항상 풍요롭고 따뜻하며 충만하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손길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의 전한 소식대로 마리아에게 아기가 생길 때에 결과적으로 일어날 일은 간음죄의 누명을 쓰는 일이요. 그렇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로부터 수치와 경멸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운 결과들이 기다리고 있을 뿐 어디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은혜일 수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정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주목을 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짐으로 확증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마리아는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선이 머물러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목하고 계시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처녀가 잉태한 것과 같은 일 말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일을 통하여 예수님의 신비한 탄생이 이루어졌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도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선한 이끄심 가운데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목을 받으며 계획하심 가운데 이끌림을 받는 인생가운데 하나님의 신비가 드러남을 알게 됩니다. 비록 지금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이 하나님의 의도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힘들어하거나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대하는 마음가운데 내 삶에 일어날 일들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장기적인 인도하심에 이끌리고 있음을 안다면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은혜'가 아닌 일도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주목을 받으며 하나님의 의도가운데 살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잉태 할 수 있느냐는 마리아의 의문에 천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이 아들이라 일컬으리라"(35절)
우리는 대강 절을 보내면서 이 한 여인에게 일어난 일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신비가 드러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겸손함으로 당신을 맞을 준비를 하기 원하십니다.
대강 절의 신비는 하나님께서 한 가난하고 이름 없는 여인을 찾아오셨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실 이를 이 땅에 보내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큰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한 작은 일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한 작고 보잘 것 없는 자를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겸손하게 우리를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 작고 보잘 것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누구도 가리지 않고 찾아오십니다. 문제는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주님을 우리가 어떠한 마음과 태도로 맞이하느냐에 있습니다
주님은 겸손하게 누추한 우리를 찾아오셨지만 우리는 그 분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살아갑니까?
마리아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겼습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마리아는 겸손함으로 자신을 열어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신비를 경험할 수 있는 비결은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가운데 겸손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 4:6)고 말입니다.
사람의 겸손과 하나님의 은혜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자발적인 겸손은 자기 비하도 아니고 실망도 아니며 약점의 노출도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허식이나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진정한 겸손 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겸손의 실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 날 성자 프란시스코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선생님! 선생님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선생님을 만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변하는데 그 놀라운 사역의 비결이 무엇입니까?”그러자 프란시스코는 조용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느 날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 땅에서 가장 연약하고 가장 무지하며 가장 미련한 한 사람을 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그렇다,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을 통해서 내 강함과 지혜로움과 능력을 나타내리라’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 이유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때때로 인간의 선택 기준과 다릅니다. 세상 적인 조건이 전혀 구비되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감당할 때 사람들은 그 사람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목격하고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을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2:28∼29)
그리고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마리아의 겸손함의 다른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것은 마리아의 자기 부인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부인할 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잉태할 것이라는 뜻밖의 선포에 그는 대들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마리아의 고백 가운데서 자기 부인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새벽 3시였습니다. 한 선교 후보생이 선교사 파송 위원회 검정위원의 집 현관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그를 오라고 했던 검정위원 목사님은 아침 8시가 되어서야 나타나서 일련의 질문을 했습니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가?' '예, 목사님'. '좋아요. 그럼 Baker의 철자를 맞춰 보게나'. 'BAKER'. '그럼, 2×2는 몇이 되는지 알고 있나?' '넷입니다'. 면접은 이로써 끝났고 검정위원은 만족한 듯 미소를 띄우며 말했습니다. '훌륭합니다. 당신은 합격할 것이오. 내일 위원회로 나오십시오'. 이튿날 그 검정위원은 선교사 후보생을 다음과 같이 추천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를 부인할 줄 압니다. 추위에도, 푸대접에도, 어떤 멸시에도 참아내는 겸손한 일꾼입니다'
마리아가 만일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거부하고 반항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구태여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을 보내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겸손과 자기부인 이것은 하나님의 강림의 모습이자 의미이고 또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그분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할 줄로 압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오심의 신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지배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녀의 마음에 평강으로 화답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평강이 임했기에 마리아가 그 모든 일의 결과를 담대히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행동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응답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성경 적인 표적은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에 자리잡는 것입니다. 이미 가브리엘이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라고 말했을 때 이 말 안에는 기도의 내용과 기도의 응답이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기도의 내용이라 함은 천사의 말을 통해 전한 하나님의 은혜요 기도의 응답이라 함은 평안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있는 은혜를 받게 될 때 평안은 그 응답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말씀을 받는 우리가 얼마나 믿음으로 그 말씀에 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합할 수 있는 토대가 37절에 나와 있습니다. 즉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친히 성취해 가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덮으셔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암시해 줍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날 앞으로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끌어 가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은 주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 말씀을 성취하실 것을 믿으며 말씀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의 음성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대강 절의 신비는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친히 이루어 가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이 소식이 항상 그리고 특별히 이 대강절 기간에 우리 마음가운데 울려 퍼지길 바랍니다.
대강절의 축제
(사 35:1,2,10)
유다 백성은 앗수르의 침략과 그들의 악행의 결과로 인하여 메마르고 황폐한 광야와 같은 상황 속에서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제 모든 것이 회복되어 번영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선지자의 선포에 주눅이 들어 있던 백성들에게 소망을 불어 넣어 주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메시야가 영광의 나라를 세워 이제는 '광야요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같이 피어 즐거워하는'(1절) 때가 도래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죄악과 사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세상에 드리우고 있을 때, 독생자로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리며 새로이 전개되고 회복될 메시야의 통치의 시대를 소망하는 기간을 성도들은 가져야 하겠습니다.
Ⅰ. 그리스도의 임재
1.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죄악이 세상에 들어왔고,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고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롬8:19에 기록되었듯이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로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즉 죄로 인해 황폐된 곳은 사람의 심령뿐 아니라 온 피조물의 세계도 마찬가지여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광야의 메마른 땅은 메시야가 임하기 전의 사회 상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가 없는 인간의 심령도 메마른 광야와 같습니다.
2. 메시야 통치의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성을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1:15)고 호소하였습니다. 이제 복음을 믿고 구주의 강림을 준비하는 자는 누구나 죄로부터 해방을 얻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 안에는 영생의 길이 있지만, 유태인들은 그것을 알기만 했지 그 영생의 실체이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진리의 영은 성령뿐이기에, 성령을 받은 자만이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Ⅱ. 임재의 결과
1. 주의 강림은 축복으로 회복시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메시야 왕국이 이루어지고 성도의 때가 이르렀다는 것과 지극히 높으신 자의 백성이 나라를 얻어 치리자가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2천년 동안 온갖 박해와 비난을 받고 고난 속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사막에 백합화가 피고 그 잎이 무성하며 기쁜 노래가 들리듯이 성도와 교회의 영광이 드러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2.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온 땅에 만연하던 모든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고 이 세상은 축복과 소망의 밝은 빛으로 가득차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던 자들은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고, 저들을 괴롭히던 모든 원수들의 악한 세력은 합당한 보응을 받게 되며, 성도들에게는 축복의 날들이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눈먼 자가 보게 되며,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으며, 벙어리가 말을 하고, 광야가 사막에서는 물이 솟아나 시내가 흐르게 될 것입니다(사35:5). 즉, 극에 달했던 절망적인 상황이 변하여 소망적인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축복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축복은 '구원을 이루시리라'는 엄청난 약속입니다. 그분의 신실한 약속대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목적 또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함인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 전 구원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성취하셨습니다. 그분은 자기의 백성들을 모든 시험과 환난 가운데서 구원하셨고(창48:16), 온갖 질병에서 고치셨고(마9:21) 악한 원수들의 손에서 자녀들을 구하셨습니다(히2:14).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저들을 죄악으로 인한 영원한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그의 사역을 완수하신 것입니다. 이제 방황하며, 떨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 입어 참된 평안을 누리며 약속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승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Ⅲ. 강림의 은총
1. 강림하신 주님의 은총
메시야의 구속 사역은 인간을 질병과 불구로부터 해방시키심으로써 현실 생활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기본 조건들을 마련하셨습니다. 나아가 말씀의 선포는 가르침을 통해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2. 미래에 임할 은총
10절에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 만방에서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오는 미래의 새 세계를 의미합니다. 거기서는 짐승이나 사람이나 '사나움'이 없이 오직 속량받은 영혼들의 기쁜 찬양만 있고, 즐거움만 넘치는 은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대강절을 지키면서 주님을 맞을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무엇으로 해야 합니까? 참감사와 기쁨의 마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다가올 은총의 세계를 바라보며 그 날에 있을 축제와 영원한 잔치를 심령으로 맛보면서 우리의 영혼을 일으켜 세워야 하겠습니다.
대강절을 맞이하는 자세
대강절을 맞이하는 자세
(눅 1:26-31)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새 생명의 기쁨을 주신 성탄절을 뒤에 두고 우리는 대강절 절기를 맞게 됩니다. 앞으로 맞게 될 4번의 주일은 대강절(강림절)이라 하여,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해 기쁨으로 대망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은 상업화의 영향으로 크리스마스가 세속화되어,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대망과 기쁨은 크리스마스의 캐롤과 화려한 장식 등 요란한 행사의 복잡한 분위기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기 예수를 맞이하기 전에 인간이 걸어온 과거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서 반성과 명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흑암 중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애타게 기다렸고, 하나님은 인간의 간구를 저버리시지 않았음을 상기해야 하며, 현재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마지막 날 다시 강림하실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Ⅰ. 대강절의 의미
1. 강림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가 이 땅에 강림하신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의 대단원이요 절정입니다. 예수님의 강림을 누가복음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 했고, 요한복음서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강림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신 모든 백성들에게 가장 큰 기쁨이요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왜 세상에 오셨습니까? ①자유를 주시려고(눅4:19),②복음을 전파하시려고(눅4:18),③율법을 완전케 하시려고(마5:17),④죄인을 부르시려고(마9:13),⑤세상에 검을 주시려고(마10:34),⑥섬김과 대속의 제물이 되시려고(마20:28),⑦더욱 풍성한 복과 생명을 주시려고(요10:10) 이 세상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2. 강림의 의미
이사야는 그리스도를 가리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사53:4)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강림은 나와의 관계이지 너와의 관계는 아닙니다. 나와 그리스도의 관계에서 진정한 대강절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Ⅱ. 맞이하는 자세
1. 주를 영접하는 대강절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대속 제물로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나와의 직접적인 관계에서 그 의미가 분명해지는 것이며 그때에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자세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베드로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 속에서의 '나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씻겨 주시기를 원하고 그에게 우리를 맡겨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섬기려 하시는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맡기는 태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주와 함께 하는 대강절
인간들의 오락과 향유에 치우치는 성탄절 준비가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대강절 화환을 준비하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준비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함이 없이 하나의 관습적으로 되어버렸고 오히려 기독교인들보다도 일반인들이 더 화려하게 장식하고 호화로운 연회를 배설하고 취하는 모습들은 결코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더구나 무분별한 상 행위와 유흥 업소들의 요란스러운 퇴폐 풍조로 인해 청소년들이 범죄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대강절 기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뜻을 바로 깨닫고 기도로 준비하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탄절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Ⅲ. 강림절을 준비하는 자세
1. 강림의 준비
이사야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길을 미리 닦고 준비하는 방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강림을 준비함에 있어서 우리의 생활은 메우어야 할 낮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절망과 실망의 어두운 계곡에서 살고 있습니다. 또 우리 중의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허무의 계곡에서 있습니다. 그러나 대강절의 이야기는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으며 우리의 생활 속으로 오셨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2. 겸손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의미깊게 맞이하려면 이 대강절을 맞이하여 겸손한 마음 자세로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나 스스로를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교만한 마음에서 건져내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교만의 산과 이기심의 언덕을 낮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만한 마음 거만한 태도를 가지고서는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대강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는 교만한 마음을 없이 하고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소서' 한 세리와 같이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와 이웃과 온 가족 그리고 교회가 하나되기 위해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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