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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은 이렇게 준비하자./설교자 : 마경훈목사

by 【고동엽】 2022. 4. 4.

성탄절은 이렇게 준비하자.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누가복음 1장 26 - 38절(개역개정)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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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탄절의 키워드는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예수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탄을 예언하면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성탄은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이 중요한 것입니다.


   김흥규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나눈 이야기입니다. “며칠 전 인터넷 신문에서 읽은 기사 하나가 눈시울을 붉히게 했습니다. 독일에 파견된 광부들의 이야기였습니다. 1960년대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정부는 독일에서 3천만 달러의 차관을 빌려와 경제 개발을 하려고 했지만 차관을 보증할 담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내게 된 것이 광부와 간호사였습니다. 이들이 독일에서 번 봉급을 담보로 삼아 차관을 빌리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에 건너간 광부가 7,968명, 간호사가 1만 2천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 광부들은 지하 막장 천 미터 이상의 갱도로 내려가서 석탄을 팠습니다. 섭씨 40도가 넘는 찜통더위 속에서 목숨을 걸고 일해야만 했습니다. 아무리 안전모를 쓰고 있다고 하지만 천정에서 돌이 떨어지면 얼굴과 팔, 등에 상처가 납니다. 문제는 상처부위에 석탄 가루가 그대로 박히면서 그 자리가 곪고 아물면서 석탄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른바 ‘광부 문신’이라는 것입니다. 광부들은 몸에 박힌 석탄 가루를 일일이 파내고 타월로 빡빡 문질렀지만 그 문신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부들의 얼굴에는 아직까지도 검은 점들이 검버섯처럼 남아 있다고 합니다.

   독일에 파견된 광부들이 악착같이 일해서 고국에 보낸 돈이 그 당시 우리나라 외화 수입의 1/3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된 배경에는 이런 분들의 눈물과 땀이 있었습니다. 낯선 나라에 가서 말도 통하지 않고 인종차별도 있지, 목숨을 걸고 하루 16시간씩 일만 하다 보니 이 분들의 가슴에는 다 시퍼렇게 피멍이 맺혔습니다.

   그러던 차에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독일을 방문했습니다. 식순에 따라 애국가가 시작되자, 고국에 대한 향수병 때문에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대통령의 연설이 이어졌습니다. “가난 때문에 이역만리 지하 수천 미터에서 일하는 새까만 여러분 얼굴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직까지 이렇게 못살지만, 후손들에게는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

   대통령의 연설을 듣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울음을 터뜨렸고 식장은 이내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식순이 다 끝난 뒤 박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설움에 목이 멘 광부와 간호사 한 사람 한 사람을 껴안고 함께 울었다고 합니다.”

   김흥규 목사님은 이 기사를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울었습니다. 저도 그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백성이 남의 나라에 나가서 밑바닥 일을 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할 때, 대통령이 함께 있어주고 함께 울어준 것이 감동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버지 같은 대통령, 어머니 같은 영부인이 오셔서 위로해주었을 때 눈물바다가 되었던 것입니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그 때의 감격을 이제 칠순의 노인이 된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여태껏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누군가 내 곁에 함께 있어준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우리 곁에 오신 날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우리에게 중요한 날입니다.
   다음 주일이 성탄절입니다. 해 마다 맞이하는 성탄절이기에 큰 의미 없이 보내면 안 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탄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성탄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어떻습니까?
   성탄절 시즌이 되면 교회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성탄 장식으로 화려해 집니다. 거리는 화려한 불빛으로 휘황찬란합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필리핀은 8월말 9월초가 되면 벌써 거리마다 성탄장식을 하고 불을 밝힙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그 돈을 성탄 장식을 위해서 쓰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한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편으로는 과연 필리핀 사람들이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들이 준비하는 성탄절이 성탄의 주인공인 주님 보시기에 좋은 준비일까? 아니면 자신들의 만족을 위한 준비는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몇 년 전 겨울에 중국에 갔다가 중국 거리에서도 성탄 캐롤송을 들을 수 있었고 화려한 성탄장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이 개방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공산주의의 땅인데, 중국에도 성탄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성탄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는 없고 산타만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상점에 장식된 장식품들을 보게 되면 예수님은 없습니다. 오직 산타만이 있을 뿐입니다. 산타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은 좋은 의도였겠지만 사단은 산타 이야기를 통해서 주님의 빛을 가리고 있습니다.


   2천 년 전, 주님이 탄생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탄생에 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주님의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습니다. 왕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었습니다. 그들은 헤롯 왕에게 성경의 기록을 언급하며 베들레헴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동방의 박사들이 알았고, 헤롯 왕도 알았습니다. 온 예루살렘 백성들도 알고 소동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알았습니다.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은 천사를 통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방문을 받았을 때 성령의 감동을 받고 알았습니다. 심지어 아직 어머니 태중에 있는 세례 요한까지도 주님의 잉태를 알고 복중에서 뛰어놀았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탄을 알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탄을 알았지만, 모두가 다 아기 예수님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동방의 박사들과 양을 치던 목자들 외에는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간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아기 예수님에게 경배한 박사들이 왕에게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알려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찾아갈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동방의 박사들로 인해서 소동을 벌였던 예루살렘 사람들도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오늘 설교는 성탄을 준비한 사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성탄절을 준비해야 하는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요셉은 믿음으로 성탄을 준비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을 했으나 동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마리아가 잉태 된 것입니다. 마리아의 잉태는 요셉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약혼녀가 자신과 동거하지도 않았는데 아기를 가졌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요셉은 착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율법대로라면 마리아는 돌아 맞아죽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말 한마디면 마리아는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조용히 정리를 하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를 많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요셉이 고민에 빠졌을 때 천사가 꿈속에 나타서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또 마리아가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며, 태중에 아기는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잠에서 깬 요셉은 주의 사자의 말을 믿고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마리아를 데리고 왔습니다.
   요셉이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믿은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 때까지 성령으로 잉태 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아기는 남녀가 잠자리를 함께 해야 생길 수 있는데 성령의 잉태는 상식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못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주의 사자의 말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천사가 요셉에게 성령으로 잉태 된 것을 알려주었으니 믿는데 지장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 아버지는 대제사장 사가랴였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아기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대제사장으로서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천사를 만나게 됩니다. 천사는 늙은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믿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주의 사자를 꿈에서 만났지만 주의 사자의 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가랴는 생시에 지성소에서 주의 사자를 직접만 났습니다. 하지만 사가랴는 아내의 잉태를 믿지 못해서 세례 요한을 낳을 때까지 입이 닫혀서 벙어리로 지내야 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를 비교해보면 요셉의 믿음이 더 탁월합니다. 마리아도 주의 사자를 직접 만나 대화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수태고지를 듣고서 바로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잉태는 마리아의 몸에서 일어난 역사입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자신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잉태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그 후에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받아드렸지만 요셉과 비교해보면 요셉이 더 탁월한 믿음을 가졌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와 마리아 그리고 요셉 세 사람 중 주의 사자가 말할 때 그 즉시 믿은 사람은 요셉뿐입니다. 요셉은 잠에서 깨자마자 즉시로 마리아를 데리고 왔습니다. 성경은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성탄에 있어서 가장 큰 기적은 동정녀 마리아가 잉태한 것이 아니라, 요셉이 그러함을 믿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2천 년 전에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음을 믿습니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만왕의 왕께서 이 땅에 오셨음을 믿습니까?
   이제 이 시대의 우리들은 두 가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는 임마누엘을 믿어야 합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신 주님을 믿었던 것처럼, 우리는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마리아와 동일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마리아 안에 잉태 되신 주님과 우리 몸을 성전 삼고 거하시는 성령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는 주님의 재림을 믿어야 합니다. 2000년 전에는 주님이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심으로 초림 하셨지만 이제 주님은 구름 타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초림의 주님은 은혜의 주님이셨지만 재림의 주님은 심판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믿고 준비해야 합니다. 10처녀가 등불 들고 신랑을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는 신앙의 등불 들고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요셉의 믿음을 본받읍시다. 우리는 성령으로 임마누엘 하신 주님을 믿습니다. 구름타고 다시 오실 주님을 믿습니다.

 

2. 마리아는 순종으로 성탄을 준비했습니다.
   눅 1:37,38에 보면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라는 천사의 말에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대답하며 아기 예수님의 잉태를 받아드립니다.
   마리아의 대답은 쉬운 대답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사내를 알지 못했습니다. 어떤 남자와도 동침해 본 일이 없습니다. 동정녀 탄생은 역사 이래로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처녀가 잉태한 사건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90세에 이삭을 잉태한 것도 기적이지만 사라 혼자 잉태 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남자를 모르는데 잉태가 되었다고 하니 그것을 받아드리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입니다. 마리아가 요셉과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아기 예수님을 잉태했다면 요셉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마리아가 다른 남자와 잠을 잤다고, 간음을 했다고 생각할 것 아닙니까! 천사가 요셉에게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알려주었기에 요셉이 받아드린 것인데 마리아 입장에서는 정말 어려운 순종을 한 것입니다.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파혼을 당할 수도 있고, 돌에 맞아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또 가족과 친척, 친지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순종하므로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마리아는 목숨을 내 걸고 자기 몸에 메시야를 받아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마리아의 순종이 있었기에 성탄이 가능했던 것이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순종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요 3장을 읽어보면 믿음과 순종이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번 성탄절은 마리아처럼 순종하므로 준비합시다. 요즘 주님이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부담감이 있지 않습니까? 음성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에 주님이 나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신다고 생각 되는 것이 있습니까? 아마 주님의 명령이 맞을 겁니다. 이번 한 주간은 순종하며 성탄절을 준비해봅시다.
   하나님은 목숨 걸고 주의 뜻을 받아드리고 순종한 마리아를 통해서 성탄의 축복을 주신 것처럼 순종하는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실 것입니다.

 

3. 목자들은 성실함으로 성탄을 준비했습니다.
   목자들은 들판에서 양을 지키다가 성탄의 소식을 듣습니다.
   성탄이 가까웠을 때, 유대는 호적 정리로 어수선했습니다. 온 나라가 아주 어수선하기에 목자들도 자기의 일을 소홀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아무도 밖에서 일하는 그들을 지켜보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이 일하고 있는 시간은 한밤중이었으므로 천막 안에서 잘 수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남이 지켜보지 않아도 양을 지켰습니다. 밤새 위험이 가득한 밖에서 양떼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어떤 모습을 인정하시고 그들에게 천사를 보내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그들은 성실하게 양을 지키고 있다가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그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아기 예수님께 달려가서 경배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습니까? 하나님께 인정받는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성실함입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신 분입니다. 시 100:5에 보면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고 말씀합니다.
   성실하신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할 일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을 귀하게 보십니다.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학생으로서, 성도로서, 나라의 국민으로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을 귀하게 보십니다.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천사로부터 성탄의 소식을 들은 목동들처럼 성실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일에 성실한 자를 쓰십니다. 하나님은 불성실해서 자기의 일에 실패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했더라도 성실한 자를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을 보십시오. 한 결 같이 성실했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영적인 사람이기 이전에 인간적으로도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종살이를 하면서도 인정을 받아 총무 일을 했고, 옥살이를 하면서도 성실함을 인정받아 총무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성실함을 보고 그에게 총무의 일을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 역시 그의 경건함만 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경건함과 함께 그의 성실함을 보시고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셔서 7년 대흉년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메시야가 오시는 길을 예비하게 하신 것입니다.

 

4. 동방박사들은 헌신으로 성탄을 준비했습니다.
   젊은 남녀가 배를 타고 뱃놀이를 하다가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둘 다 호수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죽었고 여자는 살아났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남자는 돌머리라 무거워서 빠져죽었고, 여자는 골이 비었기 때문에 가벼워서 살아났답니다.
   우리는 정보와 지식의 홍수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박사하면 무조건 우러러 보았는데 요즘은 박사도 흔해서 별로 우러러 보지도 않습니다. 박사실업자도 많습니다.
   성탄절 하면 생각나는 박사들이 있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두 종류의 박사가 나옵니다. 별을 연구한 별 박사들과 성경을 연구한 성경 박사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성경 박사들은 주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예언한 말씀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주님에게 경배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별을 연구하던 별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 멀리서부터 찾아와서 경배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본래 하늘의 별을 연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들을 페르시아의 천문학자들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들은 천문학자이면서 또 점성술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별들을 통해서 나라와 왕 또는 개인의 운명을 점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당시에 왕의 자문을 담당하는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굉장한 지식과 권력과 영향력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그 당시 일반적인 점성술가들 하고는 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별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바벨론과 메데 바사의 포로 생활을 했던 다니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받게 된 사람들의 후예들일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주님께 경배하기 위하여 헌신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먼 길을 걸어오는 헌신을 했습니다. 페르시아로부터 멀고 먼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많은 위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막과 강과 짐승과 강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이 탄생하신 유대 땅 베들레헴까지 왔습니다.
   그들은 다른 이유로 베들레헴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오직 아기 예수께 경배 드리기 위해서 멀고 먼 길을 왔습니다. 마 2:2에 보니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그들은 또 먼 길을 걸어와서 귀한 예물로 헌신을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드리기 위해서 세 가지의 예물을 준비해왔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을 위하여 최고의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이 드린 예물은 고가의 예물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을 통치하시는 왕임을 상징하는 황금과 예수님의 신성과 대제사장이심을 의미하는 유향과 예수님의 인성과 십자가 죽음을 의미하는 몰약을 가지고 왔습니다.

   성탄절은 주님의 나심을 축하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주님에게 최선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절마다 성탄감사헌금을 드립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특별한 선물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한 선물을 드리기 위해서 이번 성탄절에는 [크리스마스 선물 1+1] 전도행사를 합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선물은 영혼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은 반드시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드려야 하는 제물이 많지만 이번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기를 원합니다. 롬 15:16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크리스마스가 1주일 남았습니다. 이번 주 중에는 전도 대상자를 만나십시오. 그들과 식사도 하시고 교제도 나누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주의 전으로 초청합시다. 우리가 주님에게 드릴 최고의 선물은 주님이 찾으시는 영혼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하는 헌신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발을 보신다는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짐승과 좋아하시지 않는 짐승은 발이 다릅니다. 율법에서 인간에게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한 짐승과 허락되지 않은 짐승은 발이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발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발이 복음 전하는 발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매스컴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정말 흉측하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겨진 이유를 듣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씩 연습으로 1년에 발레신발 150여 켤레를 닳아 떨어뜨린 연습벌레의 발이었습니다. 연습과 공연 때면 그녀의 발가락은 갈라지고, 물집 잡히고, 곪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흘러내린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2ℓ짜리 생수병을 들고 다닌답니다. 뭐가 이토록 그녀를 발레에 미치게 만들었을까. 그녀는 발레를 위하여 자신의 발이 그렇게 흉측하게 되도록 헌신했는데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내 발로 얼마나 헌신했는가를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나는 이번 성탄절에는 하나님께 무슨 헌신을 하겠습니까? 드릴 것이 준비되었습니까? 이번에는 한 영혼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마다 연말이 되면 하나님의 일을 내려놓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받은 은혜를 소멸해서 그렇습니다.
   마리아를 만난 천사가 “은혜를 받은 자여평안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평안했고,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헌신은 은혜의 힘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은혜 받으십시오. 그리고 영성을 회복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여 마리아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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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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