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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설날입니다! 복 받는 가정을 이루세요! (시 128:1-6)
오늘은 동심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설날 전래 동요를 아시지요!
⑴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⑵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셔요.
⑶우리 집 뒤뜰에는 널을 놓고서/상들이고 잣 까고 호두 까면서/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고요/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⑷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우리 우리 내 동생 울지 않아요/이 집 저 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할/
오늘은 주일이면서 설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설날입니다! 복 받는 가정을 이루세요!▶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할/
①우리나라 설날과 이스라엘의 나팔절이 비슷합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절기가 있습니다. 구약에는 '유월절, 나팔절, 부림절, 초막절'과 같은 절기가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도 3.1절, 제헌절, 광복절과 같은 절기가 있습니다. 교회에는 성탄절, 성령강림절, 부활절, 추수감사절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에도 설날, 추석 등의 명절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는 비슷한 문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최고 명절은 설입니다. 음력 1월 1일입니다. 구정이라고도 말합니다. 외국에서는 양력 1월 1일을 새 해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력 1월 1일은 새 해입니다. 송구영신 예배도 1월 1일에 드립니다. 그런데 명절은 음력 1월 1일입니다. 정부에서는 이중 과세를 하는 것 같아 구정을 없애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신라 시대부터 전통적으로 내려 온 우리 문화를 정부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 해는 양력 1월 1일이고, 음력 1월 1일은 우리나라 최대 명절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력 1월 1일은 새 해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새 해는 그들의 음력 7월 1일입니다. 그 날은 성경에서 나팔 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축제일입니다. /할/
성경적으로 나팔절에 대하여, 그들의 설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 지를 보겠습니다. 레23장은 절기 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절기 일곱 가지를 지키라고 아예 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일곱 절기를 정해 가지고 들어 왔습니다. 가나안에서 살면서 그들은 일곱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중에 네 번째 절기가 나팔절 즉 설 새 해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일 일로 안식일을 심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 노동도 하지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레23:24)
이스라엘이 나팔을 부는 것은 '새 날을 알릴 때, 새 소식을 알릴 때,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팔을 붑니다. /할/
▶나팔절 즉 설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⑴설날은 새롭게 살자는 갱신의 의미가 있습니다.
나팔절부터 신년이 시작됩니다. 새롭게 살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팔을 붑니다. 나팔은 새 출발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나팔절이 오면 손에 나팔을 들고 광장으로 수백 명이 모여 여기저기서 나팔을 불어 댄다고 합니다. 새롭게 살자는 의미의 나팔입니다.
새 해를 맞아 새 결단을 하고 새 출발하는 것이 설 즉 나팔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설이면 <설빔>이라고 하여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려면 옷부터 새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해서 전 민족이 새 옷을 설부터 입었습니다. 옛날에는 설을 앞두고 제일 분주한 것은 새 옷을 장만하여 두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꼬까옷이라고 하여 색동저고리, 치마저고리, 바지저고리를 새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른들은 두루마기, 도포를 준비하고, 심지어는 신발까지 새로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설은 나팔절과 같이 갱신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 설날부터 마음도 생각도 갱신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멘!/
⑵그 날 안식일로 정하고 친교 했습니다(레23:24).
이스라엘 백성들은 설이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안식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매년 그 날이면 모두가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즐겼습니다.
우리나라의 설도 같은 의미를 가졌습니다. 구정 설은 휴일입니다. 온 민족이 삼국 시대부터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설의 전통적인 의미가 점점 살아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이 설이 오면 친교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이를 맞기 위해 전통적으로 설날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구분 없이 일손을 놓고, 멀리 타향에서 분주다망 함에도 불구하고 고향으로 찾아와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 옛 일을 회고하며 회한하는 일로 설을 맞이합니다.
이는 지나간 시간 동안 잘못했거나 부족했던 점을 털어 버리고 오는 새해에는 새로운 결속을 다짐하며 고향을 찾아 그 동안 소외되었던 가족공동체나 마을 공동체로 소통을 이루었습니다. /할/
▶그런데 떨어져 살던 온 친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같이 음식을 나누면서 한 것이 있습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설이면 꼭 하는 것이 차례라고 하는 제사입니다.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추도예배입니다. 우리나라 풍습은 4대 조상까지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까지만 제사를 지냈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제사문제 때문에 욕을 좀 먹습니다. 조상도 모르는 불충한 종교라고 막무가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효도를 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십계명에서 제 오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까지 주셨습니다. 그리고 엡6:1-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할/
기독교의 효도관은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잘 섬기라는 효도관입니다. 죽어서 제사 잘 들이라는 그런 효도관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추도 예배를 드리며 조상을 추모하고 고인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멘!/
㈁세배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나서 꼭 하는 것이 어른들에게 드리는 세배입니다. 어른에게 차례로 절을 하며 축복의 말을 합니다. 이를 덕담이라고 합니다. 세배를 하는 사람은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새 해에는 더욱 건강하십시오' '새 해에는 하시는 일이 만사 형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덕담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세배를 받는 어른도 덕담으로 화답합니다. '금년에는 소원 성취하게' '금년에는 더욱 복 많이 받게' 이렇게 이스라엘의 나팔절처럼 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 사랑하고 친교 합니다. /할/
㈂떡국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세배를 마치고 나면 설에는 반드시 떡국을 끓여 서로 나누어 먹었습니다. 떡국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흰 쌀 가루를 길게 만들어 동그랗게 자릅니다. 그 것을 소고기와 끓여서 맛있게 먹습니다.
떡국은 동전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바로 돈입니다. 축복을 많이 받으라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민족은 음식을 통하여서도 서로 서로 돈 많이 벌라고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떡국에 제일 좋은 고기는 꿩고기였습니다. 설을 앞두고 산에 올라가 꿩을 잡아다가 그 고기 국물로 떡국을 끓여 대접하는 것이 최고의 대접이었습니다. 그러나 꿩을 못 잡을 경우에는 닭을 썼습니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민족의 설날은 서로서로의 축복을 비는 날입니다. 이스라엘도 나팔절에 서로 꿀을 나누면서 축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할/
㈃널뛰기도 했습니다. 설이면 이 마당 저 마당에서 널뛰기를 했습니다. 서로 교대로 하늘로 치솟으며 나 때문에 네가 오르고 너 때문에 내가 하늘로 치솟는 널뛰기를 하면서 친교하며 다른 이가 솟아오르도록 도와주는 미덕을 기르며 서로가 잘 되기를 축복하였습니다.
널뛰기는 건강 비결이랍니다. 겨우 내내 웅크리고 살다가 발바닥을 그렇게 부딪쳐 주면 너무나 건강에 좋다는 것입니다. '널을 뛰지 않으면 발바닥에 가시가 박힌다.'라는 속담은 여인들의 건강으로 널뛰기 운동을 시키려는 조상들의 지혜였습니다. /할/
㈄윷놀이도 했습니다. 윷놀이는 이웃 놀이의 준 말입니다. 이웃들이 모여 긴긴 밤을 같이 놀며 친교하며 지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팔절이면 안식하며 즐긴 것과 같은 날입니다.
㈅쥐불놀이도 했습니다. 설날을 우리 조상들은 '상자 일'이라고 하여 쥐불을 논둑과 밭둑에 질렀습니다. 모두가 논밭으로 나와 그 곳에 있는 쥐들을 멀리 쫓자고 하면서 모여 불을 놓았습니다. 이 불을 쥐불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논 밭둑에 있는 해충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리는 풍습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모두가 모이는 친교의 행사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여서 나팔절 설날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일 년 내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비슷한 풍습입니다. 이 같은 일을 하면서 설이면 친교 했습니다. 설은 친교의 날입니다. /할/
⑶이스라엘의 나팔절은 구제하는 날입니다(레23:22).
나팔절 바로 전 절기가 칠칠절입니다. 여름 추수 절기입니다. 추수할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구제 후에 나팔절을 맞으라고 하셨습니다. 밭 모퉁이는 추수할 때 다 베지 말고 두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구제입니다. 구제 후에 나팔절을 맞으라고 하셨습니다.
새 해 설을 맞을 때 구제를 생각하며 가난한 사람과 같이 지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설 때도 마찬가지 풍습이 있었습니다. '복조리'를 사는 풍습입니다. 옛날에는 가난한 사람은 설을 놓치지 않고 복조리 장사를 합니다.
새벽 일찍 복조리를 메고 '복조리 사려. 복조리 사려'라고 새벽공기를 헤치고 외치며 다닙니다. 그러면 아침 일찍 밥하러 일어난 어머니가 그 소리를 들으면 그 복조리를 빨리 사서 그 조리로 아침밥을 하여 식구들에게 밥을 해주어야 그 집에 일 년 내내 복이 임한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가난한 복조리 장사의 복조리를 통하여 복이 그 집에 묻어 들어온다는 아름다운 풍습이었습니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라는 의미의 좋은 풍습이었습니다. 이 때 보통은 일 년 내내 쓸 조리를 한꺼번에 사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팔절의 구제와 우리의 설 복조리는 그런 공통점이 있습니다. /할/
우리나라에 또 다른 구제 풍습이 있습니다. '승병'이라고 하는 풍습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없고 불교만 있었습니다. 중들이 일년 내내 산 속에서만 살았습니다. 산 속에서 일년 먹을 양식을 구하는 날이 설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중들은 설날이면 자루를 메고 민가로 내려와서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시주를 받습니다.
그 때 쌀이나 돈으로 시주합니다. 도를 닦는 중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줍니다. 그러면 중은 떡을 메고 다니면서 시주한 집집마다 떡을 한 개씩 나누어줍니다. 그 떡을 두었다가 아이들에게 먹이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고 무병장수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풍습을 만들어 중들은 시주를 받았고, 사람들은 중들을 사랑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모두 설의 아름다운 구제 풍습입니다. 이스라엘의 나팔절도 구제 후에 나팔절을 맞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같이 성경의 새 해 나팔절과 우리의 새 해 설과는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는 영적으로 통하는 민족이었습니다. /할/
⑷설 명절은 세대와 공간을 뛰어 넘어 온 가족이 화합하는 날입니다.
자녀가 부모님을 찾아가고,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형제 자매가 서로 얼굴을 마주합니다. 뿐만 아니라, 잊고 있었던 웃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드립니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가족의 정을 더 돈독하게 하는 일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가족들이 저절로 모입니다. 힘든 여행길인 줄 알면서도 고향에 찾아갑니다. 이 모든 것이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기쁨입니다. /할/
⑸이웃과 함께 나누는 명절이 되어야 합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명절이 되면,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를 통해 이웃과 함께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웃어른, 스승을 찾아가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고, 아랫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이처럼 명절은 온 마을이 한 가족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웃과 함께 하는 명절은 성경 적인 문화입니다. 또한 설 명절은 기회입니다. 무슨 기회입니까? 전도하는 기회입니다. /할/ 우리는 이 기회를 잘 선용해야 합니다. /아멘!/
②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복 받는 가정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복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새해 인사를 할 때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합니다. 새해가 되면 복조리를 만들어서 집에다 걸어둡니다. 어린 시절 집에서 쓰는 그릇에는 모두 '복'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베개에도 복 자가 새겨져 있고, 옷고름에도 복 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민족도 복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할/
㉠그러면, 복이 무엇입니까? 먼저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복이라고 여깁니까?
옛날 중국 주나라의 첫 왕인 무왕이라는 사람이 기자(箕子)라는 신하에게 한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복 받기를 원하고 또 소원하고 있는데, 도대체 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때 기자가 대답하기를 '왕이여 복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수'(壽)로, 장수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부'(富)로, 재물을 많이 소유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강녕'(康寧)으로,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평안한 것입니다. 네 번째는 '유호덕'(攸好德)으로, 즐겨 덕을 쌓으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고종명'(考終命)으로, 제 명대로 살다가 평안히 죽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복입니다.'
이것을 두고 흔히 오복(五福)이라고 하는데, 이때로부터 이 오복이 복의 기준이 되었다고 합니다. /할/
그런데 민간에서 말하는 오복은 유교에서 말하는 오복과 약간 다릅니다.
첫째는 치아가 좋은 것입니다. 뭐니뭐니해도 잘 먹어야 오래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둘째는 자손이 많은 것입니다. 옛 어른들은 자손이 많아서 대가 끊기지 않는 것을 오복 중의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셋째는 부부가 해로하는 것입니다. 두부부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 있는 것이 오복 중의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넷째는 손 대접할 것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가진 것이 있어야 손님을 대접할 수 있겠지요.
다섯째는 명당에 묻히는 것입니다. 죽어서 명당에 묻혀 자손들에게 복을 전해 줄 수 있는 것이 오복 중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할/
㉡그러면 성경에서는 무엇을 복이라고 합니까?
구약성경에서 '복'이란 말을 두 가지의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바라크'와 '아쉐르'입니다.
㈀먼저 '바라크'라는 단어는 구약에 415번 정도 쓰였습니다.
이 '바라크'는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복을 주시거나, 신적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주실 때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사람들의 선행, 즉 착하고 복되게 살든 말든 상관없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로 인해 일방적으로 주시는 그런 복입니다.
예를 들어 '죄 사함의 복, 구원의 복, 영생의 복' 같은 것은 하나님이 믿는 우리에게 주시는 일방적인 복입니다. 우리도 '바라크'의 복을 받았습니다. /할/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누군가에게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칭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칭찬을 누가 들었습니까? 바로 베드로가 들었습니다.
마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3년 동안의 공생애를 마감할 즈음에 제자들에게 시험을 치듯이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바로 그때 베드로가 용감하게 나서서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는 너무 만족하시고 너무 기뻐하시면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할/
여러분,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하셨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 진정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나의 구주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믿어지는 사람이 진정 복 받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멘!/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그리스도로,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믿으면, 믿는 즉시 나에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그 즉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사하여집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집니다. 의인이 됩니다. 천국을 상속받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기쁨과 평안과 만족이 넘치는 은혜를 입습니다. /할/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믿는 순간 나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복들입니다. /할/
여러분, 이 세상에서 이와 같은 복보다도 더 큰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백성이 되고 영생 얻는 이것보다도 더 큰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니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베드로가 얼마나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할/
어디 베드로뿐이겠습니까? 예수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수천아, 네가 복이 있도다. 동민아, 네가 복이 있도다' /할/
㈁두 번째 단어는 '아쉐르'인데, 이 말은 구약에 45번 등장하는데, 27번은 '복'이라는 의미로, 18번은 '기쁨'이라는 뜻으로 쓰여졌습니다.
'아쉐르'라는 말이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구절은 바로 시1:1절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기서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할 때 사용된 '복'이라는 말이 바로 '아쉐르'입니다. 이 '아세르'의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삶의 자세와 태도로 인해 받는 복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바라크의 복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얻을 수도, 혹은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복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쉐르는 조건부의 복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면 복을 받고,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시1:1절에 '복 있는 사람은?' 묻고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이런 조건부의 복입니다.
또한 시112:1절에도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는데 첫 번째 조건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조건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즐거워하는 조건입니다. 그리하면 2절에서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라는 축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할/
바라크에 복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얻어진 복이지만, 아쉐르의 복은 철저하게 조건부의 복입니다. '그리하면'의 복입니다. /믿/
③오늘 본문도 보세요! 조건부의 복입니다(시128:1-6).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시128편은 가장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느 화가가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그림을 그리기를 원하고 집을 출발했답니다. 바다도 가보고 산도 가보고 폭포도 가보고 시장도 가보았습니다. 결혼식장도 가보고 졸업식장도 가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곳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 왔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상에 둘러앉아 기도하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 때 그는 그것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움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그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기도하며 식사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런 소박한 가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세요! 온 가족이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자유롭게 갑니다(5). 매주 복권을 사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해 일 한만큼 수고의 대가를 받고 살아갑니다(2). 아내는 늘 유산하거나 불임으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잘 낳아 잘 기릅니다. 이 아이들은 감람나무처럼 무럭무럭 건강히 잘 자랍니다. 그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모습입니다(3). 또 손자 손녀와 함께 살아갑니다(6). 여러분, 손자가 행복덩어리입니다. /할/ 나라는 전쟁이 없이 평안합니다(8). 이 얼마나 행복한 가정입니까? /할/
우리 집은 이 보다 더 행복하다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특히 그 시대 상황을 이해하면 본문의 이 가정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시126, 127, 128편은 연관되어 있습니다. 옆에 표제를 보세요! 뭐라고 써있습니까?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에 예배드리고 갈 때 부르는 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126편은 우리에게 이 시의 배경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126:1절을 보십시오. 어느 때입니까? 포로에서 돌아 올 때입니다.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포로가 되었습니다. 가정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남편은 전쟁터에 끌려갔습니다. 아들은 포로가 되어 잡혀갔습니다. 아내는 노예가 되어 팔려갔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성전은 파괴되어 예배드리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습니다. 나라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이러했는데 포로에서 해방되어 이렇게 한 가족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본문은 계속 복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1,2,4,5절에 나옵니다. 본 시편은 6절로 되어 있는데 4절이 '복이 있도다'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할/
더 자세히 본문을 들여다보면, 이 시편은 두 개의 문단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주제가 1절과 4절에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이것이 주제입니다.
그리고 2절과 3절, 5절과 6절에서 이 주제를 따라 행하는 자들이 받을 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말씀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누릴 복은 한 마디로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 집이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고, 아내와 더불어 풍성한 삶을 누리고, 자녀들과 함께 다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할/
㉡여러분,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들은 가정을 자기가 가꾸고 지켜 나가는 줄 압니다. 어느 정도는 맡는 말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아멘!/
시127:1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했습니다.
여기 '세운다'는 말은 영어로 '건축한다.'는 뜻으로 하나님을 '가정의 건축자'로 모실 때만 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분이 바로 가정의 설계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믿/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집'은 인간의 욕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인간이 아무리 욕심껏 자기를 위한 성을 쌓을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헛수고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구약의 바벨탑을 보십시오. 이 바벨탑은 인간이 지금까지 쌓은 허황된 성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가 보여 주기 위해 하늘까지 쌓아 보자 해서 쌓아 놓은 그런 성입니다. 거기에 인간의 욕망이 들어 있고, 인간의 자만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이 허물어질 때는 속수 무책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간이 쌓은 허황된 성 가운데서 대표적인 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할/
▶'크로닌'은 그의 '성채'라는 저서에서 한 인간이 쌓은 욕망의 성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젊은 의사가 대학을 졸업하고 뜻을 가지고 광산촌으로 들어가 탄광촌의 의사가 됩니다. 가난하고, 낙후하고, 소외된 광부들과 함께 살면서 의술을 베풉니다. 여기까지는 참신한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이 젊은 의사가 돈에 맛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명예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이 의식 있던 젊은 의사는 세속적인 물욕과 욕망의 성체를 쌓기 시작합니다. 돈벌이를 위해서 의술을 사용합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와 명성을 구축해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허황된 모래성은 이렇게 해서 자꾸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옛날로 돌아가 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주사로 고칠 수 있는 병을 수술을 해서 돈을 챙깁니다. 조금 도려내면 될 수술을 크게 째서 큰 수술을 해서 돈을 벌어 들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실수를 해서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그 순간 이 사람이 지금까지 쌓았던 성은 속수 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 사람은 부와 명성과 신뢰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이 사람이 비로소 인간의 욕망의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눈을 뜨고 보니까 지금까지 자기가 한 일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옛날로 돌아갑니다.
남편이 이같이 돌아온 것이 너무나 기뻤던 아내는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만들기 위해서 시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그만 교통 사고로 죽습니다. 모든 것을 졸지에 잃어버린 이 의사는 생전 처음으로 교회를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처절한 눈물의 기도를 올립니다. 이것이 모래성을 쌓은 사람이 후에 가야 하는 길입니다.
솔로몬은 이 같은 성을 오래 전에 이미 쌓았다가 실패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서 고백한 말이 바로 본문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그 집을 짓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편법을 동원해서 정치의 성을 쌓는 사람,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 재벌의 집을 짓는 사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를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사람, 그리스도인이면서 주일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해 가며 성을 쌓기 위해서 뛰어다니고 있는 사람, 모두 모래성을 쌓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현대인들은 모두 바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경고합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뜻이 없으면 모두 헛수고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멘!/
또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 함이 허사'라고 충고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완벽해 보려고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그것도 헛수고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여기서 말하는 집은 공동체의 기초단위가 되는 가정이라 할 수 있고, 성(城)은 사회 공동체인 나라를 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파수꾼의 경성 함과 같이 막강한 군인이 있을 때 외적의 침략을 막아내고 나라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또한 백성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여 편안한 집을 세워 나갈 수 있습니다. 집을 세우고 성을 지키는 일은 현대국가에서 말하는 안보와 경제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외교와 내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밖으로는 전쟁의 위협을 막아내고 안으로는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군인(파수꾼)을 세운 목적은 이런 일을 수행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물론 국군을 움직이게 하는 최고 통수권 자는 대통령입니다.
솔로몬도 한때 완벽해 보려고 애쓴 사람입니다. 유능한 참모들을 옆에 포진시켰습니다. 세상에 지혜 있다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 곁에 두었습니다. 나라를 견고히 세워보려고 노력했지만 그 나라는 후에 두 동강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본문의 말씀을 뼈저리게 느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현대인들에게 간절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을 받습니다(1,4).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가 바로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지 않다가 멸망당했습니다. 여기 경외는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사람이 되는가?
⑴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 최고의 행위가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사람은 예배에 목숨을 겁니다. 아브라함도 예배에 목숨을 걸었기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드리는 이 예배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나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나를 받아 주옵소서' 하나님께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최상의 가치를 드리는 것이 예배요, 하나님을 가장 높여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예배에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 예배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내려주십니다. /할/
청교도들이 미국에 첫 발을 디디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를 짓고 하나님께 에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기 위해서 고국을 버리고 신대륙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하기 위해서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버리고 신대륙으로 왔기에 가장 먼저 교회를 지었습니다. 이런 신앙의 유산이 지금 미국을 미국답게 세웠습니다. /믿/할/
⑵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순종이 곧 경외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살찐 소를 잡아 드리는 것보다 순종을 기뻐하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왕상 2:1-3절에도 보면 다윗이 죽음이 임박해서 후계자 솔로몬에게 딱 한가지만 말한 것을 보게 됩니다. '너는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여호와의 말씀을, 하나님의 법도를 그 기록한대로 지켜 행하라. 그렇게 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유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여 드리고 순종합니다. 내 맘에 안 들어도 순종합니다. 자신을 쳐서 말씀에 순종하는 그 경외함을 보시고 하나님은 마음껏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할/
⑶경외란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자신을 헌신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축복해 주십니다.
고전4:1-2절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를 지켜 행하는 자들은 어떤 복을 받습니까?
⑴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2)
수고의 열매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열매요, 투자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여기엔 복의 약속이 담겨 있는데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입니다. /아멘!/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름다운 그림 가운데, 프랑스 농민화가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끝없는 들판에 황혼이 들녘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온종일 수고의 땀을 흘린 노부부가 집으로 돌아갈 무렵에, 멀리서 교회의 저녁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모든 일을 끝낸 노부부가 종소리를 들으며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 하루종일 땀을 흘리고 수고를 다 한 후에, 그 수고에 대한 결실을 맺게 해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그 모습!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여기서는 노동의 신선함과, 가정의 아름다움과 신앙의 위대함을 보여준 그림입니다 만은 밀레는 아마도 수고의 보람을 그린 그림 같습니다. /할/
⑵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3)
유대인들의 포도는 기쁨을 상징합니다. 한마디로 그 아내는 남편의 기쁨이요, 그 아내는 가정의 기쁨의 근원이 됩니다. 포도주는 맛을 내고 색깔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아내는 가정의 맛을 내는 장본인이요, 변화를 일으키는 지혜가 있습니다.
⑶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3).
성지 순례를 다녀오신 분들의 말에 의하면 '감람산에 굉장히 큰 감람나무'가 하나가 서 있다고 합니다. 여행 안내자들이 설명하기를, 그 나무의 나이가 2,000살이 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자주 올라가셨는데, 예수님이 다니실 때는 이 감람나무가 아주 어렸을 겁니다. 감람나무는 그렇게 튼튼하게 오래 사는 나무입니다.
유대인들은 감람나무 한 그루를 심고 자식을 대학 보낸다고 합니다. 어린 자식이 태어날 때 감람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 자라서 자식이 대학을 들어갈 때면 그 나무에서 따는 열매로 대학을 공부시킨다고 합니다. 무한한 꿈과 희망과 번영을 의미합니다.
감람나무열매로 기름을 짜서 식용으로도, 약용으로도, 제사용으로도, 또한 왕의 임직식에도 선지자와 제사장이 기름부음을 받는데 바로 감람유를 사용합니다.
쓰임 받는 자식! 축복입니다.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한 시대를 일으키는 참 행복한 가정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⑷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5).
㈀이 복은 평생에 복입니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평생 복 받고 살기를 원하십니까? 교회 생활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주시는 곳입니다. 시122:6절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할/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온산, 예루살렘을 그들의 가장 중요한 성지로 생각했습니다. 이곳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 산이요, 다윗이 오르난에게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값을 주고 산 성지로서 솔로몬이 이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봉헌하였습니다.
그 뒤 바벨론 침공으로 솔로몬이 건축하였던 웅장한 성전이 무너지고 그 후에 스룹바벨과 헤롯에 의해서 각각 성전이 재 건축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자기들의 생명보다도 더 사랑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이방민족들에게 빼앗기면 그것을 찾으려고 피나는 전쟁을 수없이 겪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집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전을 향한 그들의 열렬한 사랑은 곧 그들 민족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어 수천 년의 고난과 유랑의 역사 속에서도 사멸되지 않고 다시금 강력한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성전중심의 신앙이 이스라엘 재건의 토대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사상적인 구심점이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의 예루살렘은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통하여 축복을 받았듯이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아멘!/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주님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주님은 그의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기도 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예배당에서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배당을 채우는 일도 우리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믿/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이 어떤 복을 받습니까? 6절에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장수의 복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평안의 복입니다.
어떤 사람이 산부인과 의원을 개원하면서 이름을 '에바다 산부인과'라고 지었습니다. 이름을 보고 사람들은 '에바다', '애 받는 병원'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막7:34절에 나오는 '에바다'는 '열리라'는 뜻입니다. 산부인과는 태의 문이 열리는 곳입니다. 열려야 새 생명이 탄생합니다.
교회는 하늘 문을 여는 곳입니다. 하늘 창고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생명이 있고, 건강이 있고, 성공이 있고, 재물이 있고, 능력이 있고, 백지수표가 있는 곳입니다. /아멘!/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바라크에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쉐르의 복은 조건부의 복입니다. 본문에서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켜 행(순종)하면' 복되고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본문의 복을 받아 아름다운 가정!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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