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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 고통하는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해답

by 【고동엽】 2022.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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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 고통하는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해답

 

-오스왈드 스미스

 

 

 

지금은 20세기이다.

사악한 세력들이 판을 치고 있다.

거짓 종교가 사방에 있다.

민족주의가 지구를 덮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핵무기가 이 문명을 위협하고 있다.

 

서기 2,000년까지 살아서 글을 쓰고 싶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좀 더 지체하신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 때까지 살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앞으로 50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중요한 시기가 되리라고 믿는다.

세상을 뒤흔드는 중요한 사건들이 이미 인류 위에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대규모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었는데, 어떤 것은 좋은 것이지만 어떤 것은 좋지 못하다.

인류는 파멸에 직면하고 있다.

거대한 심판이 불가피하다.

가공할 만한 혁명이 옛날모습의 얼굴을 다시 들고 있다.

모든 피조물이 고통하고 있다.

새 시대의 출산 고통이 세계 각처에서 느껴진다.

다시 한 번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고, 

"주님의 오심이 가깝다. "

 

 

 

전도의 중요성

 

나는 전문적인 전도자는 아니지만 전도 사역을 해왔으므로, 오늘날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능력이 새롭게 나타나야 한다는 것임을 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그런 능력이 역사하고 있는 것을 많이 목도하고, 그런 곳에서 증거 한 것을 오늘 이 곳에서도 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전도는 시대의 명령이요, 이 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이다.

부흥이 없으면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생명이 멸망한다. 전도하겠는가, 화석이 되겠는가?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그래도 한 가지 연합될 수 있는 근거는 전도이다.

다른 일에는 함께 일할 수 없다 해도 그리스도 없이 잃어버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에는 함께 일할 수 있다.

전도 사역에 관하여는 교역자나 평신도를 막론하고 어떤 교단에서나 동역이 가능하다.

 

어떤 교역자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전도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전도자는 필요치 않다고 느끼고 있다.

40년 이상의 사역을 통해 내가 한 가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목사로서 성공한 최대의 근거는 전도 사역이라는 것이다.

교회 목회자는 훌륭한 설교자가 되어 자기 교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지만,얼마 지나서는 아무리 훌륭한 음성의 소유자라도 피곤하게 된다.

 

그 때 새로운 사람의 음성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내 강단에 다른 강사를 기쁘게 초청하였다.

나로서는 결코 도전할 수 없다고 보았던 사람들도 다른 전도자는 구원시킬 수 있었다.

그 다음에 내가 설교를 하게 되면 내 음성은 새로워지고, 사람들은 결코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내 설교를 충분히 들었다고 느끼게 되면, 곧 다른 강사를 초청하여 교인들에게 새로운 깊은 인상을 주도록 하였는데, 그런 전도자들은 늘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 주었고, 집회 후에도 새 교인으로 큰일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처음 토론토에서 행한 첫 집회는 밤이나 토요일에도 쉬지 않고 6개월 동안 계속되었고, 일요일에는 평균 두세 차례의 예배를 드렸다.

내가 집회를 주관하였고 대회장의 역할을 맡았다.

그렇지만 그 6개월 동안에 12명 이상의 강사들을 초빙하여 번갈아가면서 설교를 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늘 새로운 광고를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늘 새로운 음성을 기대하도록 하였다.

 

매 주마다 모이는 사람들이 늘었다.

더 깊이 관심을 보였고 집회를 끝내기 전에 이미 수백 명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으며,그 결과로 전도 사업은 큰 활력을 얻었다.

집회마다계획 이상으로 재정 지출이 되었지만, 언제나 그만한 고귀한 가치가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 계속해서 나는 1년에 2-3회 혹은 5-6회의 집회를 개최하였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대회를 상당수 개최하였다. 이런 것들로 인하여 사람들의 영적인 생활이 큰 자극을 받았고, 신앙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열정을 갖게 하고 동시에 사업을 견고케 했다.

집회기간에도 나는 설교를 계속하였고 전도 사업이 더욱 강화되고 사람들이 증가함에 따라 나는 강단 일을 더 할 수 있었지만, 내가 혼자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오늘까지도 전도 집회에는 외부 강사를 초빙하고 있다.

 

전도의 어려움

그다지 오래 전이 아니지만, 전도와 부흥의 사역을 위해 온 도시의 교회가 문을 닫고 총력 협동하던 날이 있었다.

빌리 선데이 같은 사람이 큰 청중을 모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러해 동안 빌리 선데이가 집회를 하게 되면, 그 지역의 모든 교회가 문을 닫고 연합으로 전도 대회를 개최하였다.

따라서 온 교회의 연합 성가대가 웅장하게 자리를 잡았고 특히 각 교단의 교역자들이 동석하였으며, 모든 교회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교인들은 물론 온 마을 사람들이 집회 장소인 태버내클 예배당에 모여 초만원을 이루었다.

 

또한 모든 교인들이 자기 목사가 이웃 교역자들과 함께 착석해 있는 것을 보면서 더욱 협력심을 갖게 되었고 집회의 성공을 위해 할 수 있는 대로 헌금하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이상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어느 도시의 온 교회가 편견 없이 연합하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복음적인 교회들만이라도 협력하여 모일 수 있다면, 그것도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소위 보수주의라고 하는 교단에서도 수많은 분파가 생기고 있기 때문에,실제로 진정한 협력은 대단히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만일 모든 교회가 영혼을 건지는 일에 총력으로 합심한다면, 온 마을이나 도시가 큰 감동을 받게 되고 강한 부흥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은 오늘날에도마찬가지이다.

모든 교단의 교역자들이 함께 모여, 도처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을 복음화 하는 일에 힘쓴다면 이것은 가능한 일이다.

 

종종 우리는 성경을 더 가르치고 사경회를 더 자주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 공부에 더 집중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언급한 대로 전도는 만드는 것이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에 대하여 동의할 수 없다. 부흥과 전도의 역사를 연구한 결과 발견한 것은, 다른 때보다도 부흥이 일어나고 전도가역사하는 동안에는 성경 공부가 많고, 개인 전도가 많아지며, 많은 사람들이 말씀 연구에 큰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에 사람들은 자연히 성경으로 돌아가 말씀을 연구하게 된다.

성경 공부반이 조직된다.

개인 전도를 통한 교육이 많아진다.

새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회중 앞에서 간증하고 기도하여 그 결과로 다른 어느 때보다도 성경을 깊이 알게 된다.

전도없는 성경교육은 정체되어 버리지만 항상 성경 연구를 하게 하는 전도는 큰 감동과 축복을 내린다.

 

그리고 한 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양육의 문제인데 ,이것은 전도자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전도자는 마치 의사와 같아서 출산하는 어린애를 잘 받아내지만 아무도 그가 어린 아기를 잘 돌봐 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는 것과 같다.

 

생명을 얻어 태어난 아기의 발육과 성장을 돕는 것은 부모가 할 일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의사의 책임은 끝나는 것이다.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순산한 아이가 잘 성장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의사의 잘못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전도를 받아 회심하여 빛으로 나온 후에, 계속 믿음에 거하고 정상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고 하여 전도자를 나무랄 수는 없다.

 

즉 그 일은 다른 사람들 즉 목회자, 주일 학교 교사, 청년 전도 업무 지도자 및 초신자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맡아야 하는 것이다.

초신자 공부반을 조직할 수 있다면, 그들은 곧 같이 모여 신앙에 관한 근본적인 교리를 배워 마침내는 굳건하고도 견고하게 서며, 또한 나아가서 주 예수 그리스토를 위한 열정적인 일꾼이 되는 것이다.

 

오늘낱에는 목회자를 경솔히 여기는 전도가 많다.

섭섭하지만 사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전도는 목회자의 손을 잡고 가능한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여 그를 지원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전도자가 회중 앞에서 목회자를 비난하거나, 결점을 찾아내어 비난하는 것은 슬픈 일이며 잘못된 일이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 된다.

 

목회자에게는 늘 격려가 필요하며, 전도자는 최선을 다하여 그에게 편리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목회자는 교인들 앞에서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전도자는 몇 년 동안 목회자가 되어, 목회자를 이해하고 그를 도울 수 있는 길을 알도록 해야 한다.

 

목회자도 온전한 사람이 아니고 전도자도 마찬가지이다.

두려운 사실은 많은 교회들이 전도에 둥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즉 전도자들이 목회자에게 용기를 주며 도움을 줄 수 있을 때에도 목회자에게 전혀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

 

목회자와 전도자의 일을 모두 해본 나로서는 목회자의 일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과,전도자는 비교적 용이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도자는 어느 지역에 가서 한 주일 또는 2-3주일 동안 어떤 문제에 부딪히지만, 그 후에는 떠날 수 있다.

빠져나와 전도 집회를 갖는 이유는 목회자로서의 많은 힘든 문제들을 잠시나마 잊고자 하는 의도에서이다.

전도자들은 그들이 동역하는 목회자에 대하여 쉽게 새로운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전도의 필요성

 

세계적인 전도자들이 이제는 다 죽었다는 것을 아는가? 빌리 그래함 박사 이외에는 남은 사람이 없다.

무디도 갔고 토레이 박사도 이제는 없다.

윌버 채프만(J. Wilbur Chapman)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며, 빌리 선데이 또한 자기 일을 마쳤고, 나의 사랑하고 아끼던 친구인 세계적인 집시 스미스(Gypsy Smith)도 벌써 떠난 지가오래 되어, 이 세상에는 그들의 이름을 뒤따라 대를 이어갈 만한 사람들이 거의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우리 신학교와 성경 학교에서 올바른 전도자를 길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를 교육하고 선교사는 훈련시켜도 전도자는 양성하지 않고 있다.

전도와 부흥의 역사를 들고 깊이 연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지나간 날의 위대한 전도자와 부흥사들의 생애와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가?

전도 집회를 개최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예를 들어서 캐나다의 어떤 주요 교단에서는 전도자를 청빙하는 날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거의 25년 동안이나 함께 사역한 크로슬리와 헌터가 캐나다 감리교회의 공식 전도자들로서 전국을 다녔던 것이다.

그 때의 집회에도 참석하였기 때문에 잘 기억할 수 있다.

현재에 그런 사람들은 다지나갔고, 내가 기억하는 한주요 교단들도 이제는 전도자를 별도로 초빙하는 일이거의 없어, 그런 전도로 설립되는 교회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특히 캐나다지역에 무엇보다도 절실히 필요한 것은, 훌륭한 전도자와 부흥사가있어 전국을 누비고, 교회에서 교회로, 도시에서 도시로 다니며, 순수한 복음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켜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요즘도 종종 열리고 있는 순수한 의미의 전도 집회를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특히 상업적인 분위기가 전혀 없는 집회가 있음을 감사한다.

사실 집회를 개최하는데 있어, 특별 헌금과 같은 재정적인 것에 지나치게 강조를 둔 적이 많았기 때문에 그 해독성도 잘 알고 있다.

 

가능하다면 전도자들도 목회자처럼 사례금 수령을 비밀로 하지 않도록 하여, 무익한 비난과 종교적 난도질을 당하지 않는 것이 훨씬 좋으리라 생각한다.

각 교단마다 정직하고 순수한 복음 전도자들이일할 자리가 있어야 한다.

본부에서 고정된 사례금을 받고, 집회에서 나오는 헌금이나 비용은 모두 본부 당국으로 돌아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현재의 기묘한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전도에 많은 빛을 지고 있다. 회심한 사람의 대부분이 전도 집회나 부흥회에서 회심하였다.

내가 볼 때 적어도 62%가 특별 집회를 통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여러 차례 반복하여 더 많은 손들을 요구했지만 늘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집회를 하지 않았다면, 죽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의아스럽다.

많은 젊은이들이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교회에 대하여는 영원히 잃어버린 사람들이 되었으며, 이제 늙은 그리스도인들은"우리가 가면 누가 이 자리를 맡을 것이냐? "고 외치고 있다.

전도만이 해결책이다.

부흥은 반드시 와야 한다.

 

 

 

전도의 결과

 

전술한 대로 나는 여러 해 동안 선교와 전도에 전념하였다. 초창기에는 매년 평균500여 명의 결신자가 나왔다.

이 새 신자들이 교회를 메우기 때문에, 오래 된 교인들은 일찍 나오지 않으면 좌석도차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여러 해 동안 우리는 전혀 신문 광고를 내지 않았는데도 회중이 대단히 많았다.

소방서에서는 화재의 위험이 있다고 하여 사람들이 더 이상 오지 않도록 하라는 권고장까지 보내왔다.

 

어느날 아침에 그 편지를 대중 앞에서 읽어 주었는데 그 날도 2,000명 이상이 모여 본당에 가득 차고, 벽쪽에 선 사람도 많았으며, 여러 사람이 그냥 돌아갔는데도 계단과 통로에 앉은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다음 주일 저녁에는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오려고 하였다. 강단 옆쪽에 대형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는데 매 주일마다 예수님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가 없어 그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는, 우리는 누가 그 오르간을 사 간다면 거기에 발코니처럼 개조하여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으리라 보아 기도하며 하나님께 간구하게 되었다.

 

몇 달이 지나자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어, 이제 그 오르간을 토론토의 어느 커다란 교회로 옮겨가게 하셨다.

그 곳에 우리는 발코니를 만들고 본당과 윗쪽과 됫쪽을 연결하여 놓았는데, 개장 첫날에 이미 초만원이 되고, 여러 사람이 통로에 있는 계단을 메웠으며, 그 날부터 이제까지 뜨거운 삼복 지경이외에는 늘 만원이었으며,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초청이주어지면 수십 명씩 여기저기서 강단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예배 시작 직전에 경찰관에게 질서를 정리하게 하여 너무 많이 모이지 않도록 권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계단에 서거나 통로에 앉지 않도록 하였다.

그래도 통제가 어려워 여러 해 동안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든 신문에 전혀 광고를 내지 앉았다. 그러나 주일 저녁마다 2,000명 이상에게 설교하였다.

 

전도가 교회를 채운다. 이것은 반복하여 증명되었고 매주일 또 매년 교회가 찰 것이다.

보스턴에 있는 유명한 파크 스트리트 교회(Park Sreel Church)에서의 전도 집회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집회장이 만원을 이뤘을 뿐 아니라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 주간의 집회 끝에200명 이상이 새롭게 결신을 한 것이다.

교회에 혁신이 일어났다.

그 후로 교회는 예전과 달랐다.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셨고 이 교회에서 되어진 전도의 위력은 오늘날의 어떤 교회에서나 또 일어날 수 있다.

 

1938년까지 내 생애에 가장 위대한 집회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집회들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넓은 장소를 찾기가 늘 어려웠다.

모두 나 혼자서 사역했지만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그런 기록은 여러 차례 반복하여 발간되었다.

내 생애의 이야기라는 저서에도 일부가 언급되어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1938년도의 집회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 때나는 말라리아 열병에 걸려 몸이 대단히 약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역사하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기적이었다.

최소한 1,000여 명이 그리스도를 발견하였고, 집회가 끝나기 얼마 전에 벌써 그새 결신자들은 집회의 개인 상담자 역할을 하였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다.

 

 

 

전도의 기쁨

 

호주의 시드니에서 교역자들에게 전도에 관한 강연을 하였는데 집회 후에 한 사람이 대단히 울적한 얼굴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하며 기다렸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 사람이 내게 말을 하였는데 대강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스미스 박사님, 정말 말씀하신 그대로 믿고 계시나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요 ? "

무엇을 질문하는지 몰라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시 물었다.

"방금 전에 말씀하신 대로 하는 것이 정말 가능하다고 믿으시나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

그는 그제야 질문의 요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장로교 목회자가 소위 그 초청이라는 결신 시간을 공중 앞에서 주는 것이 가능하다고생각하시나요?" 하면서 그는 "장로교"라는 단어를 특히 강조하였다.

 

"네, 저도 장로교 목사인데 제 전도 사역에 언제나 그런 초청 시간을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 위하여 강단 앞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

이 대답으로 그 목회자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보였다.

"그렇지만 그럴게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장로교에서는 하지 않는 방법이거든요."

 

"네,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장로교 목사라고 해서 결신 초대를 하지 말아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심에 찬 얼굴로 그는 돌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 다음 월요일 밤에도 나는 장로교회의 총회 건물에서 여전히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설교하기 위해 강단에 올라가려는 순간 문쪽에서 무슨 인기척이 났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여 잠간 멈춰 섰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번 토요일에 만났던 장로교 목사가 몇몇 사람과 입구에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아닌 가!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 그 사이를 헤치면서 들어오고 있는 낯익은 얼굴을 보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결국 사람들을 헤 치고 들어섰는데 곧장 통로로 들어와 나 있는 곳으로 부리나케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라 양쪽에 두 여자와 함께 오는데 그들을 향해 자기를 따라오라고 독촉하면서 걸어오는 것이었다.

 

나 있는 곳까지 가까이 왔을 때, 그 얼굴을 보니 얼굴에 환한 빛이나고 있었다.

"됩니다. 돼요 ! "

무슨 말을 하는지 그 뜻을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다.

"뭐가 된다고요?"

옆에 와 서 있는 그 사람에게 물었다.

"예, 지난 토요일에 말씀하신 대로 내 생전 처음으로, 지난 주일에 초청시간을 가졌는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그는 옆에 있는 두 여자를 내 앞으로 밀어 세우는 것이었다.

어쩐 일인지 물으니 그 두 사람은 이번 주일 설교 후 구원받은 것이며, 나는 그 토요일의 대회가 기억나고 무엇인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장로교 목사는 주일 설교 후 결신 초청을 하였는데, 두렵고 떨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손이 올라갔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지만 손 든 사람은 그 자리에 일어나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설교자의 말대로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다음에 또 어떻게 해야할지 확신이 없었지만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을 상담실로 안내했다는 내 경험을 기억하고 그도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주저하지도 않고 이두 사람은 앞으로 나왔지만 개인 전도자라고는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당회실로 안내하여 스스로 전도하여 결국 두 사람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았던 것이다.

 

놀라운 변화다 ! 그 장로교 목사는 그가 오랫동안 무시해 왔던 그 중요한 일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부터는 설교하고 축도한 뒤에 그대로 집에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기회를 늘 주었던 것이다.

그의 목회에는 혁명이 왔다.

전도의 기쁨을 경험하기 시작하였고, 그 경험을 통해 장로교 목사도 결신 초청을 할 수 있음을 배웠다. 이제 여러 형제들에게도 제안하고 싶다. "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출처 : 참좋은군사             http://blog.naver.com/jjkkhh2232/50126823787

 

 

 

 

 

 

 

출처 : 브니엘
글쓴이 : noemisu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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