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다 떨어저 죽은 유두고 청년! (행 20:7-12)
여러분 살면서 혹시 나무나 높은 데서 떨어져 본 경험이 있습니까? 자칫하면 크게 다쳐서 불구가 되거나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떨어진 것이 아니고 다 늙은 노인이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3층에서 떨어진 사람은 유두고라는 청년입니다. 유두고는 떨어져 죽었는데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려냈습니다.
떨어졌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원위치에서 이탈했다거나, 미끄러졌다거나, 낙방했다는 의미'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의미로 떨어졌다는 말은 '입학시험에도 떨어졌다, 믿음이 떨어졌다, 은혜가 떨어졌다, 양식이나 기름이 떨어졌다, 지위가 떨어졌다,'는 등 여러 가지 의미로도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눅7:23)고 하셨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밀 까부르듯이 흔들어대지만 주님은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눅22:31-32). 그래서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눅22:40)고 당부하셨고,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하셨습니다. 떨어지지 맙시다! 넘어지지 맙시다! /할/
①유두고의 신앙의 잘못된 자세는 무엇인가?(8-9)
한마디로 경건치 못한 예배 태도입니다. 유두고가 바울이 설교하는 동안 창에 걸터앉은 것이라든지, 또는 열정에 찬 바울의 설교를 졸면서 들은 것이라든지, 유두고의 예배 태도는 예배에 임하는 그의 자세부터 경건치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하면 유두고의 앉은 위치는 처음부터 많이 잘못되었습니다.
본문의 유두고를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청소년 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첫째, 창에 걸터앉은 것이 문제입니다. 그곳은 앉을 자리가 아닙니다.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인 회색분자입니다.
둘째, 말씀 앞에 졸았던 것이 문제입니다. 바울은 목숨을 걸고 사력을 다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는 말씀에 아무런 관심이 없이 졸고 있었습니다.
셋째, 창 밖으로 떨어진 게 문제입니다. 안으로 떨어졌으면 불행중이나마 다행할 것인데 밖으로 떨어짐으로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여러분, 그 날 경건한 예배시간에 얼마나 방해가 되었을까요?
②유두고의 죽음은 어떤 죽음이었습니까?
⑴그의 죽음은 졸다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참 부끄러운 죽음입니다. 세상에 졸다가 죽은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유두고는 자기가 죽는 것도 모르고 졸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어느 때입니까? 사도 바울의 능력 있는 설교와 가르침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이 범벅이 되게 했습니다.
날이 밝아오면 바울은 떠나갑니다. 이를테면 고별 설교입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이 옵니다. 그러기에 사도는 밤이 깊도록 말씀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사실 사도바울은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할 시간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죽음을 맞이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절박할 때에 유두고 청년이 졸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걱정과 슬픔에 잠겨 있는 그 순간에 유두고 청년은 졸고 있습니다. 왜 졸았을까요? 졸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령한 귀가 막혔고, 신령한 세계에 눈이 감겼고, 무엇보다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은 채 몸만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유두고의 영적 상태는 '깊은 밤'이었습니다. 물론 그 예배가 밤중까지 같습니다. 사람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피곤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은 자다가도 깰 때라고 말합니다. 왜? 영적으로 밤이 깊었고, 죄악의 밤이 깊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밤만 되면 서울 장안은 온통 죄악의 소굴이 되어 집니다. 마치 유황불 세례를 받기 전의 소돔 성처럼 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 실정을 보십시오! 어제까지 신앙생활을 잘 하던 사람들도 넘어지고 죄악의 밤에 휩싸여 가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밤이 깊어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졸며 잠들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깨어나야 합니다. 졸다가 죽습니다. 깨어 기도할 때입니다. /아멘!/
▶어떤 시골 교회의 장로 이야기입니다. 어느 주일 낮 예배 시간에 이 장로가 꾸벅꾸벅 졸다가 갑자가 '물꼬! 저 물꼬!' 소리를 외치면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해에는 아주 가뭄이 심했는데, 평소 물 걱정을 많이 하던 장로가 예배 시간에도 농사 걱정만 하다가 졸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꿈속에서 소낙비가 내리는 꿈을 꾸게 되었고, 아까운 물이 그만 다 흘러 내려가는 것을 보고 물꼬를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예배 시간에 벌떡 일어서서 '물고! 물고!' 소리를 외친 것입니다.
이렇게 그의 마음과 정신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보단, 농사에 있었고 논에 가 있었기 때문에 졸다가 '물고, 물고' 소리를 외친 것입니다. 그래서 두고두고 그 교회 성도들의 놀림감이 되었다고 합니다.
⑵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죽었습니다.
이런 자세는 한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불 경건한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모하는 마음이 적은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갈급해 하는 자는 듣는 자세가 다릅니다.
우리가 지금 앉아 있지만 이 자리는 하나님이 계신 자리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앉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드려야 합니다. 마음을 드릴 때 자세도 바르게 해야 합니다. /믿/
⑶그 자리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가 앉은자리가 3층 누각입니다. 이런 자리는 집중력이 부족 됩니다. 마음도 흔들리고, 생각도 흔들립니다. 그리고 그곳은 떨어지기 쉬운 높은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언젠가는 내려와야 할 자리입니다.
유두고 청년은 위험한 자리인 줄 알고 있었지만 자신만만한 것 같습니다. 자만은 신앙의 가장 위험한 요소입니다. 성경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어요, 교만에 빠지면 넘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은 떨어질 곳이 없습니다.
유두고가 앉아 있는 자리는 좋지 않은 자리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기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내 위치도 잘 지켜야 합니다. 위험한 장소는 지켜야 하고 위험한 장소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 갔다가는 유혹에 넘어지고 폐가 망신당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잘못된 장소에 있다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유두고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그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창에 걸터앉은 것은 그가 건방지기 때문에 창에 걸터앉았다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그 보다는 방이 사람들로 꽉 차서 유두고는 청년이기에 노인들과 여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창문 틈에 앉아 있었다는 것과 등불로 인해 혼탁해질 공기 때문에 공기를 마시기 위해 걸터앉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유두고는 주일날 교회에 나와 앉아 있었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말씀을 듣고 있었는데 떨어져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의 교훈은 주일에 교회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예배를 드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의 날 주님의 전에 나오지 않는 것은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전에 나와 앉아 있다고 하더라도, 참 예배자의 정신과 자세를 가다듬고 앉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의 전에 나와 바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어째든 유두고의 사건으로 인하여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예배시간에 말씀을 들을 때 조는 사람들에게 좋은 경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
⑷결국 유두고는 죽었습니다.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의 사도인 바울을 통해서 살아납니다. 바울은 '떠들지 말라! 그에게 생명이 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것은 죽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살 소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떠들고 안달할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합니다.
유두고라는 이름의 뜻은 '다행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름 그대로 다행히 살아나긴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큰일 날 뻔했습니까? 사실 그가 떨어져 죽은 것은 전적으로 그의 책임입니다.
그런 반면에 그가 살아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이 구원 얻은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엡2:1절에 보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할/
우리가 스스로 저지를 죄로 죽은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죄 값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전적인 은혜로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엡2:8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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