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은 섬김입니다! (마 20:28)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모습을 보면 3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초라하게 태어나신 일'입니다. 여행 중에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의 인생이 결코 평탄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가장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신 일입니다. 그 부분 때문에 예수님은 두고두고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합니다. 마구간과 가난한 집, 여기에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오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영광을 받으러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님을 암시하는 상징들입니다.
영광을 받으러 오셨다면 오실 때 요란하게 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용히 오신 것은 영광과는 상관도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예수님이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아주 짤막하고 분명하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로다.' /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본체이신 성자 하나님이시지만 하늘의 영광으로부터 이 낮은 땅을 향해 내려오셨습니다.
종의 신분으로 오셨습니다. 종은 섬기는 자입니다. 그는 주인에게 속해 있어야 하며 주인의 뜻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을 섬겼고 인류의 종으로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의 고통과 고난을 대신 져주셨습니다. 그는 섬김을 받아야 할 분으로서 남을 섬기는 모든 자들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누구인가? 예수님의 뒤를 따라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섬김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주의 종들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아멘!/
칼빈은 '왕이라도 섬김이 없이는 진정으로 의롭게 다스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 직분이 높아지면 으시대고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교회는 직분이 높아질수록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13장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수건을 허리에 동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그 거룩한 손으로 더러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너희들도 이와 같이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3:16-17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 사람을 섬기고, 상전이 종을 섬기면 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으려면 형제와 이웃을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요일4: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4: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와 '알베르 까뮤'는 모두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박사 학위만도 네다섯 가지나 되는 사람인데 아프리카 람바레나에 가서 흑인 문둥병자들을 치료해 주며 그의 삶을 바쳤습니다. 그가 아프리카 적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모두 그를 미쳤다고 했었습니다. 그는 노벨 상금으로 아프리카에 병원을 짓고 흑인들을 치료해 주며 생애를 보냈는데, 사람들은 오늘날 그를 20C의 태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까뮤는 상금을 가지고 한적한 교외에다 멋있는 별장을 짓고 신나게 승용차를 타고 별장으로 가다가 전신주를 들이받고 직사해서 그의 생애를 마치고 말았습니다.
남을 섬기는 생활이 바보 같고 밑지는 생활 같아도 이것이 보람 있는 생활이요 복된 생활입니다. 남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자기도 행복해집니다.
교회는 서로 섬기는 곳입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앞서 일하는 일군들은 섬김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섬길 줄 모르는 사람은 섬김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섬길 줄 모르는 사람이 섬김을 받으면 교만해져서 패망하고 맙니다. 섬기는 삶은 교만을 버린 겸손한 삶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또한 형제와 이웃을 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할/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섬기는 자를 종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종이라도 누구를 섬기며 어떻게 섬기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성경에는 '본래 육체의 종이었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 함을 받았은즉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고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고 했습니다(갈5:13).
▶섬김의 전형(典型)은 예수님입니다. 성경에서 '섬기는 자'는 종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이사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하면서 그분을 종으로 묘사했습니다. 사42:1절에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성령 받은 베드로는 예루살렘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라고 했습니다(행4:27).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섬김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성만찬의 자리에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요13:14절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종으로 살았습니다. 히3:5-6절에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본래 모세는 애굽 왕실에서 공주의 아들로 섬김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그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을 즐겨하면서 고난 받는 자기 백성들 속에 뛰어들었습니다(히11:24-26). 그는 자기의 인생을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목이 곧은 백성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신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압 땅에 죽어 장사되었지만 무덤조차 남겨두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최고의 인물로 인정하셨고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극찬하셨습니다(민12:3). /할/
▶요셉도 형제들을 섬기는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가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지난날의 죄를 자복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형들에게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라며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하고 간곡한 말로 위로했습니다(창50:18-21). 높은 지위와 존귀한 신분을 가지고도 낮은 자리에서 섬김의 삶을 실천한 것입니다. /할/
▶섬김에 따르는 행복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됩니다. /할/ 하나님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보다 남의 밑에서 섬기는 사람을 눈여겨보십니다.
그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삶이 행복'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작은 수고와 섬김을 통하여 다른 사람이 혜택을 받고 기뻐하는 것을 볼 때 무한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행20:35절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속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주는 것과 베푸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주고 또 주어도 기뿐 마음을 간직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할/
▶어떤 주일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하늘나라 천사가 잠시 세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을 찾아서 그 손에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팔찌를 걸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천사는 자기가 가지고 온 하늘나라의 팔찌를 걸어줄 아름다운 손을 찾기 위해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손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사는 숲 속에 있는 한 외딴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집안에는 세 딸이 있었습니다. 천사는 자기가 찾아온 목적을 밝혔습니다. '저는 하늘나라 천사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을 찾아서 그 손에 이 하늘나라의 팔찌를 걸어주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첫째 딸이 얼른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님, 제 손을 좀 보세요. 얼마나 예쁜 손입니까? 제 손은 예쁠 뿐만 아니라 이 손으로 늘 화원의 꽃을 만지기 때문에 제 손에는 아름다운 꽃향기도 난답니다.' 그러자 둘째 딸이 질세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님, 제 손도 좀 봐주세요. 얼마나 깨끗한 손입니까? 저는 제 손에 먼지만 묻어도 곧 흘러가는 맑은 시냇물로 제 손을 깨끗하게 씻는답니다.'
이번에는 셋째 딸이 말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셋째 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소곳이 한 자리에 서 있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의아스럽게 생각하면서 셋째 딸에게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은 왜 아무 말이 없습니까? 자매님에게는 손이 없습니까?'
그러자 셋째 딸은 얼굴을 붉히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님, 제 손은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천사님에게 보여드리기가 민망스럽습니다. 저는 날마다 이런 저런 허드렛일을 하기 때문에 손이 너무 거칠어졌습니다. 찬물에 빨래를 하다 보니 손이 얼어서 터진 곳도 있습니다.'
그 말을 듣던 천사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그러더니 그 천사는 얼른 자기가 가지고 온 하늘나라의 팔찌를 꺼내서 그 셋째 딸의 손목에 걸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며 섬기는 손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입니다.' 그렇습니다. 섬기는 손이 아름다운 손입니다. 섬기는 삶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할/아멘!/
예수님의 생애는 한마디로 섬김의 삶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섬기셨고, 그리고 못난 우리들까지도 섬겨주셨습니다. 막10:45절에서도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서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기도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 주시면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섬기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자기의 몸 버려 피 흘려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심으로써 계속해서 섬기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삶은 철저한 섬김의 삶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너희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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