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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라! (요 13:34-35)

by 【고동엽】 2022. 3. 17.

서로 사랑하라! (요 13:34-35)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으로 유언적인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새 계명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말씀은 기독교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사도요한은 오랫동안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 많아 은퇴를 하게 됩니다. 그때 성도들이 마지막으로 교훈을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때 사도요한이 하신 말씀이 이 말씀을 인용해서 교훈을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형제들아 나에게 무슨 새로운 교훈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오직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이 주신 새 계명이 있을 뿐입니다.’하고 교훈을 주었다 합니다. 영국교회의 어셔 감독은 이 계명을 ‘제 11계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각 종교에는 나름대로 그 종교를 대표하는 정신이 있습니다. 유교에서 공자는 인(仁)을 말씀했습니다. ‘인’은 ‘어진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 어진 마음이 있어야 바른 관계가 성립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은 이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가장 인간다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불교에서 석가는 자비를 말씀했습니다. ‘자비’라는 말은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사람 뿐 아니라 기어 다니는 생명을 가진 곤충까지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생명을 아끼는 것이 인간의 바른 도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같은 윤리적인 차원을 넘어 사랑을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가장 사람다울 때가 언제인가 하면 사랑할 때라고 말합니  다. 사람이 누굴 진정으로 사랑할 때 모두 천사가 됩니다. 시인이 됩니다. 마냥 행복해하는 어린 아이가 됩니다. 사랑을 받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그런데 행복을 주는 일은 더 행복한 일입니다.

  원래 ‘사람’이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어원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 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할/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서로 사랑하는 것을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시고 사랑하는 사람이 내 제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남녀의 육신적인 사랑이 아니고 큰 의미의 신앙적인 사랑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실 때 이 사랑의 정신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지으실 때 이 사랑의 요소를 부여하고 자질을 부여하고 이 사랑의 자본을 부여해서 창조하고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그 사랑의 요소와 자본의 힘을 가지고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사랑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①함께 더불어 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삶에는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기쁨도, 즐거움도, 재미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적어도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혼자 살수 없고 근본적으로 함께 살고 더불어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유년기에는 부모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성장하면 이웃과, 친구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인생전체를 살아갈 때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관계의 삶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데 근본적으로 세 가지 부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는 자연과의 좋은 관계입니다. 자연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사람은 자연과 좋은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이웃과 형제와 자녀와 함께 옹기종기 모여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웃은 이렇게 중요한 존재입니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 하면 이 관계들이 좋을 때입니다. 그때 만족이 오고 기쁨이 주어지고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늘과 자연과 이웃과의 좋은 관계를 이루는 삶, 이것이 행복의 원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삶입니다.

  ②그런데 사람들이 이를 거역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함께 살아가지 못하고 흩어졌습니다.

  이것이 불행의 원인입니다. 사람들은 자연과의 관계를 파괴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물도, 공기도, 산도, 땅도, 모두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은 인간과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홍수가 나고, 산이 무너져 사태를 일으키고, 물이 오염되고, 공기가 탁해지고, 그 결과 온갖 질병을 일으켰습니다. 모두 자연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어난 증상들입니다.

  또 이웃과 함께 살라고 했는데 이 관계도 파괴시켰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악화되고 부조화가 일어나고 서로 원수가 되고 다툼이 일어나서 결국 증오하고 미워하다가 살인이 일어나고 그럽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파괴와 불화와 갈등과 다툼과 전쟁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웃이 헤어지고, 동료가 헤어지고, 형제가 흩어지고 부모가 흩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불화의 시작은 이렇게 흩어짐으로 일어났습니다.

  또 하나님과의 관계도 악화되고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듯이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찾아오는 것이 모두 불행만 찾아오고 고독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세상을 지으실 때는 이런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살고 더불어 살고 서로 사랑하며 살고 함께 모여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흩어지는 세상입니다. 형제가 흩어지고, 부모로부터 흩어지고, 이웃으로부터 나누이고, 동서가 나누이고, 민족이 서로 나누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세상입니다. 왜 이렇게 나누이고 흩어지는가 하면 정신과 생각과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병균의 주범이 이기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정신이 이기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함께 살고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돕고 나누고 협동하며 모여 살며 이웃과 공동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각자 흩어지고 갈라져버렸습니다.

  ③이를 회복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본문이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독한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이 사랑의 정신을 되찾는 길밖에 없습니다. 모든 갈등을 없애고 평화를 이루는 삶은 서로 함께 살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이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이루는 삶입니다. /할/ 그렇게 살아가려면 몇 가지 우선할 것이 있습니다.

  ⑴먼저 나 자신의 이기주의부터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이 정신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에게 상당한 인내의 삶이 요구됩니다. 그런 용기가 없으면 이런 정신은 발휘될 수가 없습니다.

  ⑵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발휘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고 힘쓰는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삶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⑶우리는 사회적으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위해서 노력하고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힘쓰고 도덕규범을 지키려 애쓰고 국가의 의무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남들이 다 무슨 말을 할지라도 나 자신은 이웃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손해를 감수하며 살아가는 삶, 이 삶이 오늘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삶입니다. /할/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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