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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성(아버지 마음)이해! (눅 15:11-24)

by 【고동엽】 2022. 3. 12.

하나님의 부성(아버지 마음)이해! (눅 15:11-24)

 

자식은 부모에게 있어서 우상이고 절대적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들이 자식에게 기대하는 기대 또한 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욕심이 아닌 부모의 소박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부모들은 자식이 조금만 잘 되어도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마음은 비록 인간의 마음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우리 인간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보면 우리 부모들의 자식을 향한 마음과 그렇게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이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자식이 잘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탕자가 집을 나갔습니다. 부모 곁을 떠나서 집을 나가면 무슨 재미가 있는 줄 알고 가출을 했습니다. 집을 나가서 살다가 마침내 실패하여 병들고 지치고 굶주려서 돼지우리에서 살았습니다. 이 모습은 세상에서 완전히 실패하고 낙오된 모습을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심성은 돼지처럼 짐승처럼 무지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집나간 탕자는 유대인들이 제일 경멸하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고사는 짐승처럼 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바램이나 기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부모들은 자식이 이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여기 탕자의 아버지도 아들이 이렇게 실패자가 되고, 병들고, 낙오자가 되고, 그래서 돼지우리로 전락하는 그런 모습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내 자식이 장차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한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이 자식을 향한 한결같은 부모의 기대입니다. 그래서 이 같은 부모의 마음을 무시하고 나가서 방탕하고 실패해서 부모의 기대를 져버리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
과원지기가 과일나무를 심을 땐 계란 만한 과일을 기대하고 심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과원지기의 기대는 큼직하고 탐스럽고 볼품 있는 과일을 기대하면서 땅을 파고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나무를 가꾸고 기릅니다. 이것이 과원지기의 기대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성도들에게 한가지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계란 만한 열매가 아니고 아주 풍성하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간을 향하신 기대입니다.
그래서 요15장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또 빌1장을 보면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탕자가 돼지우리 안에 앉아서 생각을 했습니다. 그 좋은 집, 따뜻한 아버지의 품, 좋은 환경을 떠나 가출을 해서 결국 이렇게 굶주리고 실패하고 낙오되어 "나는 이대로 죽는가"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단을 내립니다. 19절을 보면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자, 가서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는 하지말고 일꾼 중의 한사람으로 써 달라고 하자"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생각은 아들의 생각과 전혀 다릅니다. 20절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달려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버지가 집나간 아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들을 완전한 아들로 받아 들였다는 말입니다. 또 22절을 보면 종들에게 "살진 송아지를 잡으라 우리가 먹고 기뻐하자" 그럽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과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이렇게 다릅니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를 버릴 수 있어도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원망하고 무시하고 탓하는 것은 부모의 그런 마음을 몰라서 그럽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당신자신을 전적으로 의지해 주기를 바라십니다. 전적으로 신뢰해주고, 맡기고 살아주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하나님을 불신하고 전적으로 의지를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삼하22:30절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
시37:5절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84:12절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할/

 

3.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탕자가 집에 돌아왔지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아들로 받아들여 달라는 말을 못합니다. 그래서 품꾼중의 한사람으로 써 달라고 합니다.
그 모습이 처량하고 불쌍하고 밉고 측은합니다. 완전히 패배한 사람처럼 자신감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다릅니다. 24절을 보면 아버지는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그럽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당당하게 대해 주십니다. 그리고 아들이 좀더 당당하게 살아주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부모의 바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한가지 사명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확신 있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된 사명입니다.
시27:14절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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