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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강》 환난 중에도 기뻐하라! (롬 5:3-11)

by 【고동엽】 2022. 3. 11.

《제18강》 환난 중에도 기뻐하라! (롬 5:3-11)

 

영국에 빅토리아 여왕은 이따금 가난한 백성들의 집을 예고 없이 찾아가곤 했는데 하루는 어느 신앙이 좋은 과부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왕이 방문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빅토리아 여왕이 신앙이 좋은 과부 집에 들어갔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져 너도나도 그 과부의 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잠깐 동안 교제를 나눈 여왕은 그 과부의 집을 떠났고, 그 과부의 신실한 믿음을 조롱해 왔던 몇몇 사람들은 그녀를 놀려주기 위해 그녀의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당신이 이제까지 대접해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명예로운 손님은 누구였소?" 그들은 그녀가 하나님이라고 대답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여인은 "제가 대접했던 가장 명예로운 손님은 여왕 폐하이십니다." 그녀를 놀려주려던 사람들은 이제야말로 그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는 "당신이 항상 외치고 다니던 하나님은 어떻게 됐소? 하나님이 당신의 가장 영광스러운 손님이 아니었소?"

사람들은 그녀가 쩔쩔매는 모습을 상상하며 즐기려 했는데 그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분명한 어조로 "아닙니다. 그분은 손님이 아닙니다. 그분은 항상 나와 함께 여기서 살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할/ ◀제목소개!▶

 

▶3-4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누구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보통 예수 믿으면 환난과 고통은 아무 관계없는 것으로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병이 안 납니까?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도 병들 수 있습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도 사업에 실패해서 재산을 날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 잘 믿는 가정의 아들이 대학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 잘 믿는 장로님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은 일도 있습니다.
예수 믿어도 고난은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중간기록을 해 놓은 장입니다. 이 기록을 깊이 해석해 보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온전한 크리스찬이 되는 신앙생활의 과정을 상징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즉 애굽에서 홍해를 거쳐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다가 요단강을 지나 가나안에 도착하는 순서입니다. 여기에 예수 믿는 우리들의 생활을 견주어보면 세상(애굽)에서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아 (홍해를 건넘) 교회 생활, 즉 광야생활을 통해 온갖 연단과 훈련을 통해 성숙하고 깊은 신앙이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후에 우리는 육신의 죽임을 당합니다. 요단강을 건너감을 상징합니다. 그 다음 영원한 천국(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읽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가 우리가 매일 읽어야 할 영의 양식, 곧 성경 말씀을 의미하고,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가신 것은 교회시대에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의미하고, 또 구약의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징적인 것을 깨닫고 구약을 읽으면 더 큰 은혜가 됩니다.
환난은 누구나 다 당합니다. 그러나 고난 뒤에 오는 은혜는 더 큽니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바람이 지나면 밖에 햇빛이 쏟아 나듯이 고난이 지나면 반듯이 우리에게 큰 깨달음이 옵니다. 주님은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으로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의 환난 뒤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프리미엄이 따라옵니다.
▶몇 십 년 전 한 미국인 부부가 인형같이 예쁜 딸 셋을 데리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대서양을 건너는 중에 불행하게도 배가 암초에 부딪쳐 파선을 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겨우 생명을 건졌으나 인형 같은 세 딸은 그만 물 속에 영원히 잠겨버렸습니다.
그들의 슬픔은 너무나도 컸습니다. 그들의 통곡은 듣는 이의 간담을 녹아나게 했고, 그 와중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았습니다. 어느 날, 부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부모 잃은 고아들을 돌보라는 음성이었습니다. 두 부부는 의논 끝에 잃어버린 세 딸을 생각하고 부모 잃은 고아들을 자신들의 친자식처럼 돌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아메리칸 캐롤'이란 고아원을 설립하고, 미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고아원이 되었고 수없이 많은 인재들을 길러내고 있답니다. 이들은 세 딸 잃은 어려움을 신앙으로 극복한 것입니다.
환난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찾는 삶의 교정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됩니다. ▶시46:10절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하나님을 깨닫기만 하면 다시 은혜로 축복하십니다. 시30:5절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욥42:10절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환난은 인내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인내는 질긴 힘을 말합니다. 참고 견디는 것, 사실 참을성이 없는 사람, 큰일 못합니다. 모든 위대한 성공 자들은 다 참고 견디어 냈습니다.
여러분! 환경이 어렵습니까? 참고 견디십시오, ▶아브라함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믿음으로 살면서 수없이 많은 환난을 받았지만 잘 참고 견디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도 20년이나 고난의 대가를 치르고 거부가 되었으며, ▶요셉은 30년이나 절망적인 삶을 살다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40년이나 긴 광야의 세월, 환난과 절망의 늪에서 헤매다가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말하기를 '환난은 축복을 가져다주는 지름길' 이라고 했으며, 약5: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욥은 그 어려움 중에도 참고 이겼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 /아멘!/
▶연단은 본래 쇠붙이에 쓰는 말입니다. 즉 금이나 쇠를 불 속에 넣었다가 꺼내어 때리면 점점 강하게 되는데 이것이 연단이라고 말합니다. ▶약1:3절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슥13:9절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욥23:10절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성경에서 황금이나 금과 은을 믿음을 가리킵니다. 황금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도 변해서는 안 됩니다. 뭔가 잘 될 때는 열심이고, 안 된다고 원망하고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라" 여기서 '범사에, 항상'이라는 단어가 귀합니다.
여기서 또 연단은 경험을 뜻하기도 합니다.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과거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능히 환경을 극복하고 이겨냅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통해서 질긴 힘을 얻고 인내를 통하여 연단을 얻고, 연단은 신앙의 체험을 가져다줍니다.
벧전1:7절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이솝우화에 고양이를 몹시 사랑하는 주인이 자신의 무릎 위에 누워 잠자는 고양이에게 가위를 들고 그 아름다운 털을 다 베어서 아주 흉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깜짝 놀라 깬 고양이는 자신의 흉한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며 슬피 울며 주인을 원망했습니다.
그 집 굴뚝 양지 바른 곳에서는 날마다 동네 고양이들이 몰려와서 석양 햇빛을 받아가며 놀고 있습니다. 이 고양이는 그 후부터 창피해서 친구들에게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날이 추워질수록 친구들의 모습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는 친구들이 사라지는 모습이 두렵고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하루는 주인이 고양이를 데리고 모피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널판 위에 고양이 가죽을 많이 붙여놓았습니다. 고양이는 그 가죽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의 친구들의 가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주인이 고양이에게 친절하게 말합니다. "겨울이 오면 사람들이 예쁜 고양이를 잡아 그 가죽을 벗겨서 판단다. 내가 네 털을 깍은 것은 네 털이 보잘 것 없이 보여서 너를 보호해 주기 위해 서란다." ▶그 후 고양이는 크게 깨닫고 주인의 사랑에 감격하여 주인께 충성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이 주인과 같이 우리를 믿음에서 건지고 축복해 주시기 위하여 환난을 줍니다. 환난이 오면 왜 즐거워합니까? 우리는 그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4절 끝에 "앎이로다" 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매를 맞는다고 할 때, 저분이 나를 사랑해서 때리는 매라고 생각하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팔아먹은 형들을 원망하지 않고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하셨다"고 말합니다.
갈6: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본문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습니다. /할/

 

▶5절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하고, 우리를 실망시키지 아니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소망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헛된 소망, 썩어질 세상에 두는 소망'입니다. 이런 소망은 신기루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막을 지나갑니다.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목이 갈 합니다. 그런데 멀리 보니 오아시스가 보입니다. 기를 쓰고 그곳을 향해서 달려갔는데 놀랍게도 그곳에 도착해 보니 오아시스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기루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어떤 사람이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해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곡간을 새로 짓고 그 속에 곡식을 가득가득 쌓아놓았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는 "내 영혼아, 이제는 편히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기뻐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어떤 사람이 사업을 잘 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큰 빌딩을 짓고 은행에 돈을 많이 저축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것만해도 내가 일평생 동안 충분히 먹고살겠지." 흐뭇해합니다.
그런데 성경 눅12:20절에 물질에 소망을 두고 기뻐하는 사람을 향해서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렇습니다. 사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업이 망해버릴 때, 함께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권력이 붕괴할 때, 함께 붕괴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신기루를 좇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소망이 있습니다. '참된 소망'인데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는 소망입니다.
우리나라의 여순반란사건 때 '사랑의 원자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손양원 목사님에게 어린 중학생 두 아들이 빨갱이들에게 붙들려 나무에 묶였습니다. 빨갱이 가운데 한 사람이 그들을 고문하면서 "만일 너의 머리 속에 있는 예수 사상을 빼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를 죽이겠다." 그 때 아이들은 "너희들이 우리를 죽일 수는 있어도 우리의 마음속에 불타고 있는 예수의 사랑은 결코 빼앗지 못할 것이다!"
결국 두 아이는 총살당했습니다. 사흘 뒤에 순교한 두 아들의 시신을 앞에 놓고서 손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의 두 아들은 미국으로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미국보다 훨씬 더 좋은 하늘나라로 인도해 주셨으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기독교인으로서 평범하게 살다가 죽는 것만 해도 감사한데, 예수님을 전하다가 순교하게 해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는 오히려 환난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환난 너머에 있는 소망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뒤에 두 아이를 죽였던 범인이 붙잡혔습니다. 그도 역시 젊은 학생이었습니다. 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손 목사님은 경찰서로 뛰어갔습니다.
"그 아이를 죽이지 마십시다. 차라리 그 아이를 제게 양자로 주십시오. 그 아이를 죽이는 것은 사랑하는 제 두 아들을 다시 한 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그 아이를 맡아서 훌륭하게 기르겠습니다." 그의 청원은 받아 들여졌습니다. 손 목사님은 그 아이를 자기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훌륭하게 믿음으로 잘 길렀습니다. 나중에 그 아이는 자라서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고백을 보자! 딤후4;7-8절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할/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실망하지도, 부끄러움을 당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이 말씀 속에는 이 세상의 소망은 헛되다는 반대의 암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여기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세상의 소망은 별 것이 아닙니다.
벧전1:24절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고 했고, 전1:2절에서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했습니다.
▶재물,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아름다움과 건강, 이것도 지나갑니다. 양귀비도 죽었고, 크레오 파트라도 죽었고, 마르린 몬로도 자살했습니다. 잠31:30절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지식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전1:18절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정권도, 권력도, 10년 내로 없어집니다. 정권은 흘러갑니다. 전4:1절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무슨 말인가? 정적이 많다는 말입니다.
▶향락, 이것이 인생 죄악의 종착역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이 향락 때문에 유황불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참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며 사시기 바랍니다. 절대자의 사랑은 귀합니다. 성령님의 인도와 보호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대상29:11절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부귀영화를 다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18:14절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무엇이나 마음만 먹으면 다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빌4: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우리의 필요한 것은 언제든지 공급해 주시고,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멘!/ 이런 하나님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6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무슨 말입니까? 5절에서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신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가 연약할 때 (연약이란 몸이 약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 우리가 아직 부족할 때, 이직 자격이 없을 때)입니다. 우리가 아직 사랑 받을 자격이 없을 때에 기약대로 그 사랑이 임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연약하다'는 말은 '전혀 힘이 없다'는 뜻이요 무능하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모든 갓이 다 연약한데 특히 우리가 무슨 힘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고 또 우리가 무슨 능력으로 죄의 자리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를 수가 있겠는가? 아무런 힘이 없는 전적으로 무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칼빈은 이 대목을 인간의 '전적부패'로 보았습니다.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에서 계속 약속으로 말씀해 주셨는데 여자의 후손을 보내 주리라, 유월절 어린양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여 주었고, 놋 뱀을 통해서, 희생제물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전부 '기약, 언약, 약속'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진 큰사랑을 베푸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사랑입니다.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경건치 않은 자들'이란 근본적으로 잘못된 자를, 타락한 인류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인간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이야말로 하나님다운 사랑입니다. 약속대로, 기약대로, 그리스도를 보내어 죽게 하였으니 그것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리라. /아멘/ 이 기약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죄 속에 있을 때, 그 죄로 말미암아 구원의 자리에 갈 수가 없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죽이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혼자 사랑하는 것을 짝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짝사랑을 싫어하십니다. 잠8: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요일5:3-4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7-8절은 6절의 보충 설명입니다.

 

▶7-8절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남을 위하여 죽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비록 그 사람이 의인이라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내가 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죽이기는 쉽지만,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희생하고 죽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간혹 있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어쩌다가 있다는 말로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는 의인도 아니었고, 선인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었습니다. 우리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었고, 혀로는 속임을 베풀었고,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었고, 입안에는 저주와 악독히 가득했고, 우리의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를 뿐이었습니다. 이 같이 죄인 되었던 우리를 위해서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여기서 의인과 선인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의인은 정의의 차원에서 서 있는 사람이라면 선인은 사랑과 덕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은 의인이나 선인을 똑같이 취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의인을 위하여 죽은 자나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은 자가 혹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대게 사람들이 남을 위해 죽을 때는 그 상대가 아주 훌륭한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좋습니다. 훌륭한 정치인이 죽으면 따라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따라 죽을 수도 있습니다.
▶7절은 8절의 말씀을 돕기 위한 서론적인 말입니다. 그러니까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갈1:4절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고후8: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엡5:2절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한마디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요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일4:9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 사랑입니다. 리빙스톤의 지나간 발자취를 스탠리가 찾아가 보았는데, 현장에 가보니 새까만 흑인들 말도 잘 안 통하는데 리빙스톤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을 보고 놀랐답니다. 그전까지는 백인이라면 이를 갈았는데, 왜냐하면 잡아 팔아먹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백인 리빙스톤이 와서 병을 고쳐주고 교육도 시켜주고 복음도 전해주니 너무도 감사하더라는 것입니다. /할/ ▶사랑은 국제 언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은 통하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말은 안 통해도 사랑은 통합니다.
여러분! 사랑 중에 가장 큰사랑은 자기의 목숨을 버리고 우리를 살려주신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피가 왜 귀한지 아십니까? 레17:11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히9:22절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단번에 확증하여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9절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그러면 이제 우리가" 우리가 달라졌는데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우리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어떠했습니까?
6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는 과거에 연약했고 경건치 못했습니다. 어디 그것뿐인가? 8절에 보면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또 10절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연약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경건하게 살지를 못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철저하게 우리가 다른 신분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달라진 신분을 오늘 본문 속에서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하나가 바로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이제 우리가 주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씻음 받고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얻었은즉' 완료형입니다. 얻으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의롭다함을 받았고, 구원을 받은 잡니다.
1절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과 비교가 됩니다. 1절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음에 있어서 인간편의 책임과 의무로써 믿음을 강조한 것이고 본문의 의인의 근거는 예수님의 피 흘림을 강조한 것입니다.
"진노하심"이란 심판을 말합니다. 심판 자리에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대신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다시는 나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상급을 많이 받느냐, 적게 받느냐에 대한 행위 심판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믿음으로 값없이 받았지만 하늘나라 상급은 이 땅에서 얼마나 주를 위해 충성했느냐에 따라 행위 록에 근거한 심만이 있습니다. ▶10절은 두 번째 달라진 신분입니다.

 

▶10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과 원수지간이 아니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을 이루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잘나서, 내게 무슨 공로가 있어서 그렇게 변화한 것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나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그렇게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9절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몸이 찢기시며 우리를 위해서 흘려주신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 것입니다.
"더욱 그의 살으심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한 손으로 하나님의 손을 잡으시고, 또 한 손으로는 우리의 손을 잡으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십니다. /할/
▶바울이 본문 9-10절에서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말은 "더욱, 구원을 얻을 것이니, 더욱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한 번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누리는 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집안에서는 부부가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화목이 깨진 가정은 그곳이 바로 지옥이요, 화목을 이루는 가정은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부부지간에도 화목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갈등이 생기고 비참해 집니다. 그런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 심판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 제물로 피 흘려주셨기에 영원히 이를 갈며 슬피 울고 살아야 할 저주받은 인생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 받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찬456) 하고 찬송하게 됩니다.

 

▶11절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2절 하반절을 보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즐거워하느니라” 본문 마지막 구절에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스타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란다는 말은 먼저 영광 중에 계시는 주님을 만나 뵙기를 고대하며 소망해야 합니다.
▶이제 어디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저 영원한 하늘나라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신을 우리 모습으로 바꾸시어 만나주시는 방법'과, '우리를 하나님처럼 영광스런 모습으로 바꾸어서 만나'주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초림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러 오실 때, 초라한 죄인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 한번만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두 번 다시 그렇게 안 오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변화되어서 만나는 것입니다.
빌3:21절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이 사실이 얼마나 즐겁습니까? 그 영광 바라보면서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찾으시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할/
▶링컨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기 전에 하루는 노예시장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그 때 마침 한 젊은 흑인 여인이 경매에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증오의 시선으로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너희가 지금까지 나를 얼마나 짓밟았느냐? 너희가 나를 짐승처럼 얼마나 학대했느냐? 그것도 부족해서 나를 이와 같이 굴욕적으로 대하고 있단 말이냐?"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링컨은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경매에 입찰, 최고의 액수로 그 여인을 링컨이 낙찰을 받아 "이제 너는 노예에서 자유자가 되거라!" 하자 그 여인이 "자유를 주신다고요! 그러면 그것에 대한 대가로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링컨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당신을 자유롭게 해 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제야 그 여인이 "내게 정말로 자유를 주신다구요?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시겠다고요?" 링컨은 아무 말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때 그 여인의 눈에는 뜨거운 감격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링컨에게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 당신이 가는 곳마다 당신을 따라다니겠습니다." ▶링컨이 그 여인을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었을 때, 그는 링컨의 사랑에 탄복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링컨을 억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따라가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제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제는 억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자발적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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