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⑤ -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설교자 : 마경훈목사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생각합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호텔카운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호텔은 형편없어요!” 체크아웃 하러 카운터로 다가온 한 고객이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뭐가 잘못됐나요?” 호텔 직원이 물었습니다.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요, 15분마다 벽을 내리치는 소리가 나 그때마다 잠에서 깼다고요!” 호텔 직원은 사과를 했고 고객은 계산을 하고 떠났습니다. 얼마 후 한 부부가 카운터에 오자 직원은 간밤에 편히 쉬셨냐고 물었습니다. “끔찍했소! 옆의 객실에 든 남자가 너무나 크게 코를 골기에 우리는 15분마다 벽을 두드려 깨워야 했단 말이에요!” 우리는 생활 속에서 범사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그 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범사를 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도신경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신앙의 뼈대를 정리한 고백입니다. 가정 먼저 하는 고백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 다음이 예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오늘은 지난번에 이어서 예수님에 관한 고백 두 번째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관한 고백을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을 하는데 여기서 ‘예수’는 주님의 이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주님이 가지신 직책입니다. 저를 ‘마경훈 목사’라고 할 때 ‘마경훈’은 제 이름이고 ‘목사’는 저의 직책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면 고백도 분명해집니다.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지 못하면 고백도 분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학생이 교회를 갑니다. 그래서 그에게 질문을 합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가고 있니?”, “교회에 갑니다.”, “너 교회 가서 뭘 믿니?”, “교회가 믿는 것을 믿습니다.”, “그럼 너희 교회는 무얼 믿니?”, “제가 믿는 것을 믿습니다.”, “그럼 너희 교회와 너는 무엇을 믿니?”, “예 우리가 믿는 것을 믿습니다.” 이 아이의 대답이 흐리멍텅하죠? 아이의 대답이 흐리멍텅 했던 이유는 자기의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메시야라는 말인데 구원자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말은 그분이 나의 구세주라는 말입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당신이 누구를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이 말은 “2000년 전에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습니다.”라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도 그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이 말은 “당신은 나의 구세주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중요합니다. 성경 요한1서 5:1에 보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또 성경 요한1서 5:5,6에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 세상을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설교는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면 구약시대에 기름부음을 받았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에서는 대표적으로 3 종류의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어서 직분을 맡겼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을 세울 때 기름을 부어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그리스도라는 말은 “주님은 나의 제사장이요. 주님은 나의 선지자요. 주님은 나의 왕이십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제사장이라는 말은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가 필요했습니다. 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제사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들은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 히 4:14-16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주님이 우리의 제사장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고 담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문제가 있는 사람은 그냥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집이 없는 사람도 그냥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 집 한 채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월세 사는 사람은 그냥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 월세 면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빚이 많은 사람들도 빚 갚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빚이 많으면 빠져나가는 것이 많기 때문에 큰일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교회의 한 집사님은 남편의 수입이 적어 집을 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집값이 자꾸 올라 집을 살 수 있는 희망도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집이 있어야 되니, 집사님은 “하나님, 집 한 채 주세요. 집 한 채 주세요.”하고 기도했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집을 살 희망이 없었지만, 집사님은 계속해서 “하나님, 집 한 채 주세요.”하고 매일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두쇠로 소문난, 그리고 너무나 무서워 호랑이로 불리는 시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가, 이제 너희도 집을 살 때가 된 것 같구나. 좋은 집 하나 봐 두어라. 내가 돈을 바로 보내 주마.” 돈이 많은 부자 시아버지이지만 너무 구두쇠이고 너무 무서워 그 시아버지께서 돈을 주실 것이라곤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그 시아버지께서 집을 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이 좋은 집을 샀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제사장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보좌 앞에 나아가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할 수 있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 요 15:7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구약의 제사장들과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님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두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제물이 다릅니다. 구약 시대에는 양이나 소로 제물을 삼았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성경 히 9:12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자신이 제물이 되사 자기를 믿는 자들의 죄를 없이 하시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과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님과 또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제사의 효력이 다릅니다. 구약의 제사는 효력이 1년을 넘지 못했습니다.
성경 히 10:1에서 말씀합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구약의 제사는 불완전한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새로운 제물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반면에 주님이 드린 제사는 완전한 제사였기 때문에 그 효력이 영원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제물을 잡아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성경 히 9:12입니다.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영원한 속죄입니다. 단번에 해결한 희생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성경 히 10:18입니다.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며느리는 친정만큼 대우 받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 속상한 말이죠? 친정이 능력이 있으면 대우 받지만 친정이 능력이 없으면 천대 받는 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함께 해봅시다. “성도는 주님만큼 대우 받는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우리의 제사장이신 주님 때문에 의인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옥가야 하지만 우리의 제사장이신 주님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저주 받아야 하지만 우리의 제사장이신 주님 때문에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선지자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과 마찬가지로 선지자를 세울 때에도 기름을 부어서 선지자를 세웠습니다. 예수님이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분이 우리의 제사장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지자라는 말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을 했다면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백성들에게 나아왔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고 백성들에게 나아가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성경 신 18:15에 보면 모세가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여기서 모세가 말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선지자이신 주님은 지금 하늘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성경 히 12:2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늘보좌에 앉아계시는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선지자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에문제가 있습니다. 주님은 하늘보좌에 계시고 우리는 이 땅에 있습니다. 선지자이신 주님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시려면 주님과 우리가 만나야 하는데 문제는 우리가 주님에게로 올라갈 수도 없고, 주님은 재림하실 때까지는 우리에게 오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님의 선지자의 사역을 위하여 몇 가지 방편을 사용하십니다.
먼저 주님은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시는 방편으로 성경을 사용하십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달해줍니다. 성경은 지금도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 히 4:12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딤후 3:16,17에서 성경이 이런 책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선지자이십니다.
성경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왜냐하면 성공의 열쇠가 주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지금 가장 강력하게 커나가고 있는, 맥도날드를 능가할 정도로 무섭게 커나가고 있는 햄버그 가게가 있습니다. 그 가게 이름이 ‘IN AND OUT’입니다. 들어오고 나간다는 뜻인데, 성경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읽다가 힌트를 얻었답니다. 그리고 햄버거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햄버거를 잘 먹지 않는 어느 목사님이 먹어도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고 합니다. 또 그 가게의 음료수 컵 밑에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인쇄되어 있고, 체인점을 내줄 때도 신실한 크리스천에게만 준답니다. 사업을 해도 예수님께서 하시듯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주님이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또 다른 방편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신 하나님의 영이시며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 속에서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요 14:26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의 선지자이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뜻을 가르쳐주시고 또 성령님은 우리의 범사에 간섭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인도를 받으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1974년도에 이건희 회장이 시작했습니다. 이 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 하니 모든 중역들이 반대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기술로는 겨우 트랜지스터라디오나 만들 수 있었습니다. 칼라 TV도 우리 손으로는 조립만 했지 만들지 못할 때이니 그 정교한 반도체 사업을 어떻게 하겠느냐며 모두들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장은 사재를 털어 작은 연구실을 만든 다음 일본에 가서 그 나라 최고 기술진들을 만나 정성을 다해 설득했습니다. 결국 그 기술진들이 토요일에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 기술진들에게 밤새껏 기술을 가르쳐 주고 주일에 다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이 회장은 매주 일본에 가서 그 기술진들을 모시고 와서 우리 기술진들에게 기술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삼성 반도체가, 지금은 세계 랭킹 1위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삼성이 된 것은 일본 최고의 대가에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활은 성령님에게 배우는 생활입니다. 성령님은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성령님이 하시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해결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주님이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또 다른 방편은 설교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설교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목회자들의 설교를 통해서 주님이 선지자의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설교의 텍스트는 성경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설교자인 저를 위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대표기도할 때도 저를 위해서 기도하셔야 하고, 개인기도를 할 때에도 저를 위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제가 성령충만하고, 제가 은혜가 충만하면 여러분은 저를 통해서 풍성한 영적인 꼴을 먹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영육간에 유익이 될 것입니다.
19세기, 프랑스 정부의 각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역사가 짧은 신생국 미국이 어찌 세계를 이끌어 가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는가? 그 비밀이 무엇인가?’ 그래서 프랑스 정부는 알렉시스티 토코필이라는 학자를 미국에 파견하여 그 비결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게 했습니다. 알렉시스티 토코필은 미국에 도착하여 연구실마다, 사업체마다, 공장마다 다 돌아보았지만 그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들판을 돌아보아도 프랑스보다 못했습니다. 여러분께서 아시는 대로 미국에는 사막이 많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전 세계에 공급할 수 있을 만큼 과일의 생산량이 풍부하지만, 400-5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강물을 끌어 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비가 적절하게 내려서 온 땅이 비옥합니다. 그는 어디를 가보아도 해답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중 교회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뜨거운 찬양과 예배의 열기에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설교 말씀을 들으며 ‘아,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미국을 축복하시는구나.’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이 이렇게 크게 부흥하게 된 비결은 교회다. ! 교회를 통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미국을 축복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여러분, 예배가 약해질 때 축복도 약해집니다. 교회와 멀어질 때 신앙은 떨어집니다. 하나님께 헌신이 약해질 때 인생의 문제가 커지는 것입니다. 내 심령에 말씀이 풍성할 때 주님의 은혜도 풍성한 것이고, 주님의 축복도 풍성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예배가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생업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설교는 주님의 외침이며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의 설교를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바울은 성경 살전 2;13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의 설교를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음을 감사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역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믿으면 그 사람 속에서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이 핵심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음으로 천국가고, 믿음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능력도 받고, 믿음으로 축복도 받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추구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영성은 사랑이지만 믿음이 기본이고 믿음이 생명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설교를 들을 때 믿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믿는 여러분 가운데 역사해서 말씀이 실제가 될 것이며 진정으로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천재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의사들은 머리가 좋은 사람들입니다. 가은이의 꿈은 의사입니다. 가은이는 성실한 학생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의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에서 의대에 들어갔다는 것은 그 사람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의사가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머리가 따라줘야 열심히 해도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노력해서 의사가 되었어도 실수 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미국 템프 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사람이 당뇨로 오른쪽 다리가 썩어가서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실수로 왼쪽 다리를 잘랐습니다. 그래서 결국 두 다리가 다 잘렸습니다. 병원에서 다리 값으로 20억을 지불했습니다. 그렇게 머리 좋은 의사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모 병원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왼쪽 다리를 잘라야 되는데 의사가 실수하여 오른쪽 다리를 잘라서 병원이 문을 닫을 뻔했습니다.
여러분! 머리가 좋은 의사도 실수할 수 있는데 저처럼 보통 사람은 얼마나 실수를 많이 하겠습니까? 그런데 감사한 일은 우리가 나보다 더 머리 좋은 사람들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 되시는 주님이 주시는 메시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바둑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초보 실력의 사람이 아마추어로서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하고 바둑을 둔다면 보나마나 100전 100패입니다. 그런데 만약 훈수가 허용되는 게임을 하는데 초보자 뒤에서 프로 9단이 코치를 한다면 그 게임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초보가 이깁니다. 왜요? 자기 실력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훈수를 두는 프로 9단 때문에 이깁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의 훈수가 허용되는 게임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면 승리합니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성경을 읽고, 설교를 믿음으로 들으면서 말씀에 순종하면 복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반드시 성공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선지자이십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제사장과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부어 세운 것처럼 왕을 세울 때에도 기름을 부어 세웠습니다. 예수님이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분이 우리의 제사장이요 우리의 선지자인 동시에 우리의 왕이시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왕이 되신다는 말은 그분이 우리의 통치자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백성이고 주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누가 왕이 되시느냐에 따라서 백성들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사사시대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왕이 없던 시대에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다가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아합이라는 악한 왕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대에는 백성들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닫으시고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말이 3년 6개월이지 그 기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물이 풍족한 나라에서도 몇 개월만 비가 오지 않으면 온 나라가 난리가 나는데 이스라엘처럼 물이 부족한 나라에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으니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아합왕 시대와 달리 다윗이라는 선한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는 영적으로 풍성했고, 물질적으로도 풍성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의 시대가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을 왕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혹시 사사시대처럼 자기가 왕이 되어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악한 왕인 아합이 다스리던 시대처럼 악한자인 마귀의 통치를 받으며 마귀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선한 왕 다윗의 시대처럼 왕되시는 주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여러분은 사사시대처럼 혼란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고 있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악한 왕 아합 시대처럼 악한 마귀의 통치를 받고 있다면 주의 이름으로 마귀는 대적하시고 속히 회개하시고 주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번영의 축복을 받아 누리던 때는 선한 왕이 통치하던 때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왕 되시는 주님의 통치를 받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을 받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특히 자아를 부인해야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 삶에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한 어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빠 왜 이 땅엔 전쟁이 일어나요. 사람들이 서로 왜 죽이고 그래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아빠가 전쟁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제1차 대전은 이렇게 해서 일어났고, 제 2차 대전은 이렇게 해서 일어났고, 6.25사변은 이렇게 해서 일어났다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아이가 잘 이해를 못하니까 주방에 설거지하던 엄마가 답답해하며 “여보! 그렇게 설명하면 안 되죠. 그렇게 설명하면 아이가 알아듣나요. 당신처럼 설명해서 알아듣는 아이는 천재겠네요.” 그랬더니 아빠가 얘기합니다. “참견하지 말고 설거지나 하시지.” 그런데 아내가 또 반박을 합니다. “이왕 설명을 하려면 알아듣게 해야지 아이가 당신 같은 줄 아세요. 눈높이라는 것도 몰라요?” 그러니 남편이 화가 나서 “네가 해봐” 그러면서 방으로 들어갑니다. 아내도 화가나 그릇을 집어던지니 아들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겁니다. “설명 안 해줘도 알겠어요. 왜 전쟁이 일어나는지.” 여러분! 왜 전쟁이 일어납니까? 왜 싸움이 일어납니까? 내 속에 내가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자기가 왕이 아니라 주님이 왕이 되셔서 주님이 통� ′絿척�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이 볼 때는 주님이 왕이신 것 같은데 혼자 있을 때에는 자기가 왕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는 주님이 왕이신 것 같은데 교회 밖에 나가면 자기가 왕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주의 일을 할 때는 주님이 왕 같은데 세상 일을 할 때는 자기가 왕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이렇게 이원화 되면 안 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이 왕이 되셔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야외 예배를 갔습니다. 너무나 즐겁게 잘 보냈는데 선생님이 마칠 때 쯤 되어서 한 어린아이에게 기도를 시킵니다. 그 아이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예수님 오늘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예수님께서 함께 계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주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왕이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를 통치하시기를 원하시는 왕이십니다.
영적인 것은 아주 예민합니다. 마치 줄다리기와 같습니다. 줄다리기를 할 때 이쪽에서 열 명, 저쪽에서 열 명이 당기면 팽팽하게 맞서지만, 이쪽에서는 열다섯 명이 당기고 저쪽에서는 열 명이 당긴다면 이쪽 편이 일방적으로 이깁니다. 우리는 마귀와 줄다리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마귀는 강하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는 마귀를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끄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통치를 받기 시작하면 우리가 잡은 줄 앞에 주님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강해도 주님을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마귀에게 승리하고, 세상에 대해서 승리하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기름부음 받은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의 우리의 제사장이시며, 우리의 선지자이시며, 우리의 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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