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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다니엘서 강해

by 【고동엽】 2022. 3. 8.

이동원목사

제 목: 종말/멸망의 큰 잔치

주 제: 종말

교 회: 지구촌 교회

설 교 자: 이동원 목사

본 문: 다니엘서 5장

논 지: 우리의 삶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다.

설교요약

1.고고학으로 밝혀진 성경의 권위

2.위기에서 하나님을 의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벨사살

3.인간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은 하나님 이시다.

4.성경 연구는 삶의 변화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5.우리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본문 1절에 등장하는 벨사살 왕은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排設)하고 그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이 벨사살 왕의 정체에 관해서 신학계에서는 오랫동안 논쟁을 거듭해 왔습니다. 논쟁의 발단은 일반(세속) 역사 책을 뒤져 보면 바벨론 역사 가운데 벨사살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벨사살 왕은 누구인가??

 

다시 확증된 성경의 권위

 

성경의 권위를 신뢰하지 못하고 그 권위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바로 이 벨사살 왕이 역사 속에 실존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다니엘서 전체를 역사적 정확성이 결여된 책이라는 진단을 내렸던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혹은 성경의 명백한 교리를 뒤집는 불경건한 신학자들의 노름이 역사 속에는 항상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죽었다는 선언이 신학자들의 입술을 통해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권위는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1854년 영국의 J.G. 테일러라는 사람이 고고학자 팀을 이끌고 이라크 남부 지방에서 고고학 탐사를 하는 가운데 고대 바벨론어로 새겨진 글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나보니도스 왕과 그의 아들 벨사살을 위한 기도문이었습니다.

 

바벨론의 역사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 후 세 명의 왕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첫번째 왕은 메로다크 왕으로서 느부갓네살의 아들이었습니다. 메로다크는 2년 정도 바벨론을 통치하다가 느부갓네살 왕의 사위에 의해서 암살당합니다. 가족끼리 빚어진 비극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이후 두번째 통치자는 네글리사 왕입니다. 이 사람은 4년쯤 통치를 하다가 물러났으며 네리글리사의 아들인 라바쉬말드크가 이어서 왕위에 등극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9개월밖에는 왕위에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 후 네번째 통치자, 그러니까 곧 바벨론의 마지막 통치자가 바로 나보니도스였습니다. 이 사람은 느부갓네살의 딸과 결혼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족끼리 복잡하게 얽힌 것이지요. 나보니도스가 느부갓네살의 딸과 결혼한 것은, 자기도 왕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합법적인 왕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정략적 이유에서였을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추정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벨사살이 바로 나보니도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1854년에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해서 비로소 증명되었습니다. 비록, 왕위에 오른 일이 없는 벨사살에게 어떻게 왕이라는 칭호를 붙일 수가 있느냐는 문제가 남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사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나보니도스의 통치 시기는 주전 556년부터 539년까지입니다. 주전 539년은 바로 바벨론 제국이 멸망한 해입니다.

나보니도스는 전쟁을 많이 한 왕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그의 마지막 10년 동안은 거의 매일같이 전쟁을 했습니다. 전쟁을 많이 하게 되니까 자연히 해외 원정을 많이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렇게 해외에 나가서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에 왕은 도대체 누구에게 통치권을 위임했겠습니까? 아들밖에 더 있었겠습니까? 즉, 나보니도스 왕이 해외에 출정 가 있는 동안 실제적으로 바벨론을 통치했던 사람은 그의 아들 벨사살이었으므로 당연히 그를 왕이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5장에 기록된 바벨론 제국의 멸망 직전에도 나보니도스 왕은 새롭게 일어나던 메대 바사 제국과 북아랍 지역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패전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보리시파라는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이것은 그리이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투스의 증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메대 바사의 마지막 도전이 드디어 바벨론 제국에 임하여 왕궁에까지 적들이 쳐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다니엘서의 정확성에 대한 의심을 뒤집고 나아가 성경이 얼마나 권위 있는 책인가에 대한 놀라운 증거가 본문 7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우상을 찬양하는 잔치가 한창이던 순간을 기록한 5,6절을 먼저 보십시오.

?그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이에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힌지라.?기이한 일을 보고 놀라 벌벌 떨던 왕은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 해석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왕이 크게 소리하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 박사들에게 일러 가로되 무론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옷을 입히고 금 사슬로 그 목에 드리우고 그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하니라?(7절).

이 ?셋째 치리자?라는 단어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이것을 해석하는 사람은 세번째 통치자를 삼겠다.?왜 하필이면 세번째 치리자일까요? 그것은 나보니도스와 그의 아들인 벨사살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셋째 치리자란 왕의바로 아래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본문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파한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면 네게 자주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드리우고 너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셋째 치리자를 삼겠다?는 말이 또 한번 나옵니다. 결국 세속 역사가가 벨사살의 정체를 밝히기 전에 이미 성경이 정확하게 이 왕의 정체에 관해서 증언해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발견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세속 역사에 벨사살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되고 성경의 위대한 권위와 정확성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주전 539년10월, 바벨론 최후의 날에 흥겨운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미 메대 바사의 다리오의 군대는 바벨론 궁중을 포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5장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그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1절).

적군이 쳐들어오면 전쟁 준비를 해야지 왜 잔치를 벌입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나의 왕국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벨사살의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벨사살은 자기 나라를 수호하는 신들의 능력을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고고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당시 바벨론 궁중의 성벽은 굉장히 견고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벨사살에게는 `설마 누가 성벽을 넘어뜨릴 수 있겠는가'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셋째, 민심을 무마하기 위해서였습니다.즉, 제 아무리 적군이 쳐들어와도 우리는 까딱없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벨사살은 그날밤 굉장한 잔치를 배설하고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셨을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殿)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器皿)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하필이면 유다가 망할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지고 온 기구들을 잔칫상에 대령하게 했습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 금 기명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3,4절).벨사살은 바벨론의 우상 신들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5절).

자기 나라의 최후를 목전에 둔 급박한 상황에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그분을 모독하며 우상 신들의 축제에 참여하고 있던 벨사살 왕과 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궁의 분벽에 홀연히 한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씨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심판의 메시지였습니다.

 

벨사살 왕의 범죄

 

물론 1-4절에서 벨사살 왕의 범죄가 드러났긴 하지만 다시 다니엘은 벨사살 왕의 죄를 조목조목 정리하여 그에게 선포하였습니다. 본문 22절 이하를 보십시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22,23절).

이것이 다니엘이 벨사살 왕에게 지적해 준 범죄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다시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첫째/의도적 범죄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그의 앞에서 떨고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 영광을 빼앗기고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거하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이르게 되었었나이다?(18-21절).

다니엘은 이렇게 말한 후에 즉시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알고도... ?(22절)라고 덧붙였습니다. ?그의 아들?에서 ?그?는 느부갓네살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히브리 사람들은 몇 대 위의 선조라도 전부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벨사살은 조상 느부갓네살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다가 징계를 받아 왕에서 쫓겨난 후 짐승처럼 울부짖는 정신병자가 되어 7년 동안 고생했던 일을 알고도 똑같은 범죄를 되풀이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나간 역사를 통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조상의 실수가, 선배의 실수가 계속하여 답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다니엘서를 지배하는 가장 중심되는 사상임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역사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

다니엘서 2장21절을 보십시오.

?그는(하나님은)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왕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며 한 민족을 흥하게 하기도 하고 쇠하게도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통치자가 실세를 쥐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아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5장21절에서도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똑같은 사실을 다시 선포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

이것이 다니엘서의 위대한 역사 철학입니다. 이 사실을 느부갓네살 왕은 얼마나 무서운 대가를 지불하면서 뼈아프게 배웠습니까? 7년간 미치광이처럼 들판을 기어다니는, 하나님의 참담한 심판과 징계를 맛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벨사살 왕은 느부갓네살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알고도 범한 죄이기 때문에 심판이 더욱 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22절).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더 커다란 범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배울 때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즉, 성경공부의 목적을 하나님께 순종하여 내 삶을 바꾸는 데 두어야 하며 단순한 지식을 위한 성경 연구를 경계해야 합니다. 지식만 늘려 가는 성경공부만큼 위험한 것은 또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알고도 행치 않는 자들에게 더 큰 심판이 있으리라는 경고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20,21절).

실제 팔레스타인에 가 보면 고라신이라는 마을이 문자 그대로 폐허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주님은 갈릴리 근처의 고라신과 벳새다 등지에서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며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의 기적을 보고도,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도, 주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치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에 대한 경고를 통해 의도적인 범죄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책망의 대상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둘째/교만의 범죄

교만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범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천사장이 사단이 된 것도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려는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21절에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묘사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 많은 표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서에는 이 표현이 제일 많이 등장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다니엘은 하나님 홀로 진실로 높으신 분이시며 그 누구도 그분의 자리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입니다.

 

본문 22절 이하를 다시 한번 보십시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

(22,23절).

자기 신격화, 이것은 무서운 교만입니다. 여기에서 다니엘은 자기 조상이었던 느부갓네살과 똑같은 교만을 답습한 벨사살의 범죄상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셋째/우상 숭배의 범죄

2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벨사살이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한 그릇을 가지고 야훼 하나님을 모독했던 행위의 배후에는 자기 조상을 비웃으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조상 느부갓네살은 이렇게 해서 야훼에게 굴복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나만은, 아무도 나의 능력과 나의 영광을 초월할 수 없다.?

자기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에까지도 자기를 높이려는 이 뿌리 깊은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벨사살의 모습을 보십시오.

 

벨사살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야훼 하나님을 모독하고 우상을 찬양하던 바로 ?그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보았습니다?(5절).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막고 그분의 자리에 자신을 세우고 있던 벨사살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하나님 자신의 극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손가락이 나타나서 무엇을 썼습니까? 그 내용이 24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24,25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전조(前兆)인 것 같은데 글자의 뜻을 통 알 수 없어서 답답하여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다니엘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을 해석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때의 다니엘은 세월이 상당히 흘러서 80세는 족히 되었을 나이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 5장을 연구하면서 나이 80세가 되어서도 조금도 변함이 없는 순수함으로 하나님 앞에 섰던 다니엘의 모습에서 커다란 감명을 받았습니다.

 

왕은 그 글자를 해석하여 달라고 하면서 별 소리를 다합니다. 우선 세번째 통치자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굉장히 많은 뇌물을 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16절 이하를 보십시오.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파한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면 네게 자주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드리우고 너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이에 대해 다니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예물은 왕이 스스로 취하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시게 하리이다?(17절).

다니엘은 황금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권세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바벨론의 권력 구조의 상층부에 속해 있으면서도 여전히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의 사람이었을 따름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에 쓰임 받기를 원하는 일념으로 80년을 살아온 이 순수한 청년. 그는 나이만 들었지 여전히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다니엘이 해석을 합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메네』는 ?숫자를 세다?를, 『데겔』은 ?저울로 달아 본다?를 그리고 『우바르신』은 ?나누다?를 뜻합니다.

26절 이하를 보십시오.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26절).

?당신이 얼마 동안 통치할 것이며 얼마 동안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소.?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한 나라와 문명의 연한(年限)을 정하신다는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27절).

?저울에 달아보니 당신은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표준으로 보았을 때 당신은 도저히 더 이상 왕의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이것은 심판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베레스?의 복수형이 ?우바르신?입니다. 즉, 이것은 바벨론이 두 조각으로 나뉘어 메대 바사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손가락이 나타나서 심판의 메시지를 기록하는 동안에 벨사살 왕은 이미 초죽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그의 최후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날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30,31절).

이것이 메대 바사가 일어나고 바벨론이 넘어지던 순간입니다. 벨사살이 열었던 잔치는 문자 그대로 멸망의 잔치였던 것입니다. 이 교만한 왕에게 멸망은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서서히 오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한순간에 다가옵니다. 잠언서 기자의 증언처럼 ?악인에게는 그 재앙이 갑자기 임한즉 도움을 얻지 못하고 당장에 패망합니다?(잠 6:15). 인간이 쌓아 올린 모든 영광은 눈깜짝할 새에 무(無)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때 이래로 바벨론 제국의 최후는 성경에서, 인류 역사의 최후의 모델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인류 역사의 마지막 모습은 마치 바벨론 제국의 패망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렇기에 다니엘서를 이해하지 않고는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1절 이하를 보십시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1,2절).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이 세상의 모습은 진정 바벨론에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商 )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3절).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 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9,10절).

한순간에 무너지는 인류의 바벨탑의 운명을 묘사한 극적인 장면입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저는 본문을 통해 특별히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로, 우리 각자의 삶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다스리십니다. 이 이야기를 추상적으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다스리십니다. 나를 세우고 나를 폐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23절에서 다니엘 선지자가 벨사살 왕에게 선포한 심판의 메시지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었습니까?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누가 당신의 호흡을 주장합니까? 이 순간 호흡이 끊어지면 모든 것이 끝장납니다.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십시오. 우리는 내 호흡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생은 자꾸만 하나님을 망각합니다.

 

둘째로,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서 다니엘은 벨사살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 것을 죄라고 지적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정한 목적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호흡하게 하시고 살아 움직이게 하시며 나로 인생의 작정된 길을 걷게 하시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그분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인생이란, 삶의 중심에 나를 놓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놓느냐 하는 끊임없는 싸움입니다. 우리의 본능적인 부패성은 자꾸만 자기 자신을 삶의 중심에 두고 싶어합니다. 내가 영광을 받고 내가 내 삶의 초점이 되고 나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가 끊임없이 싸워야 할 전쟁터는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나로 호흡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그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자 애써야 합니다.

 

벨사살은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먹고 마시고 해야 할 진정한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무시했을 때 그들의 잔치는 멸망을 부를 잔치가 되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바울은 같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성찬식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멸망의 큰 잔치 ▶ @▶ 이렇게 종말을 대비하라?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29절)를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여기에서 먹고 마신다는 이야기를 왜 했겠습니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적인 삶의 모습이 바로,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먹고 마셔야 합니까? 다시 말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나 자신만을 위해서입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먹고 마시고, 하나님을 위해서 정치도 하고 장사도 해야 할 우리가, 그 하나님을 망각하고 그 하나님을 무시하고 나를 위하여 먹고 마시고 욕심을 낼 때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이 ?마지막 잔치?의 진정한 메시지인 것입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25절).

?제게 주어진 인생의 남은 날을 당신만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하나님,

언제나 당신이 제 삶의 중심이 되시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제 목: 종말/하나님의 사람 다니엘

주 제: 종말

교 회: 지구촌 교회

설 교 자: 이동원 목사

본 문: 다니엘서 6장

논 지: 다니엘은 끝까지 순결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설교요약

1.다리오 왕도 교만하게 자기 권세를 의지했다.

2.새 정권에서 관리가 되었으나 음모를 받는 다니엘

3.다니엘의 총명과 지혜는 성령에 의해서 였다.

4.다니엘은 충성되고 순결한 사람이었다.

 

 

다니엘서 6장은 다니엘이 어떠한 유형의 신앙인이었는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다니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장입니다.

 

1장에서부터 저는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다니엘서의 주제를 계속적으로 강조해 왔습니다. 역사도 변하고 정치 지도자도 변하고 체제도 변하고 권력은 한 제국에서 또다른 제국으로, 한 왕에게서 또다른 왕으로 계속 옮겨 가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이 역사의 주인이 되십니다. 역사 위에 나타난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가장 선명하게 증거하는 것이 바로 다니엘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6장에 들어가기 전에 5장의 마지막 부분인 30절 이하를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그날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30,31절).

한 제국이 몰락하고 또다른 제국이 역사의 표면에 떠오르는 모습과 함께 6장이 펼쳐집니다. 6장은 다리오의 통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렇게 상황이 바뀐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계속하여 그분의 나라를 지상의 역사 속에 확장시켜 나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를 위해서, 어느 시대 어느 역사 속에서나 자신의 사람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다니엘서 6장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역사의 격동기 속에서도 쓰셔서 자신의 일을 계속 하시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성경에서 다니엘서 6장처럼 널리 알려진 부분도 없을 것입니다. 주일학교 시절부터 우리에게 퍽 익숙했던 이야기가 본문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도, 성경을 깊이 연구하지 않는 사람도 사자굴 속에 던져졌던 다니엘의 이야기를 다들 알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 다니엘서 6장은 성경에서 가장 연구가 덜 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익숙한 것은 으례 잘 알고 있다는 선입견으로 묵상을 게을리하는 우리의 성향 때문입니다.

 

다리오의 정체

 

다니엘서 6장은 1절에서부터 우리에게 중요한 역사적 문제를 제기합니다.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心願)대로 방백 일백 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1절).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면서 새롭게 등장한 대제국의 첫번째 통치자는 다리오였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마지막 왕이었던 벨사살처럼 다리오 역시 세속 역사 속에 전혀 그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려 드는 사람들이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바로 이 구절에 근거하여 다니엘서의 역사성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면서 등장한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지도자를 고레스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본문에는 고레스가 등장해야 하는데 대신 다리오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만 대표적인 견해 두 가지를 우선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견해/다리오는 고레스와 동일한 인물이다.

이것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대 왕들은 여러 개의 명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같은 왕에 대해서도 통치력이 미치는 범위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왕을 부르는 관습이 고대에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리오와 고레스가 동일 인물이라 생각할 때 가장 문제시 되는 구절은 6장28절입니다.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첫번째 견해를 따른다고 하면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겠습니까? 그런데도 첫번째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 구절에 대해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즉,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에서 접속사 ?와?를 ?그리고?로 해석하지 말고 히브리 문법에 따라 동격을 나타내는 콤마(,)로 보게 되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 곧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첫번째 견해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많은 성경학자들의 지지를 받아 왔습니다.

둘째 견해/다리오는 고레스 왕의 휘하에 있던 장군 중에 하나였다.

최근 복음주의적 신학자들은 이 견해를 상당한 역사적인 근거가 있는 의견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글성경에는 그 의미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지만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단 5:31)라는 구절은 영어 성경의 경우 ?다리오가 나라를 받았는데?로 번역된 판이 많습니다. ?다리오가 나라를 받았다.?

즉, 다리오라는 인물이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자기 나라를 새로 일으킨 것이 아니라 바벨론을 무너뜨린 고레스 왕에 의해서 바벨론 지역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임명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9장1절을 보십시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1,2절).

여기서도 다리오를 메대 바사 제국 전체를 다스리는 제왕이라고 하지 않고 방금 무너진 갈대아 지역, 즉 바벨론의 통치자로 임명된 자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하수에로의 아들이라는 사람은 ?다리오?라고 불리워졌는데, 성경학자들은 ?다리오?라는 이름도 어쩌면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그 당시 통치자에게 붙여진 독특한 명칭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합니다.

다리오의 본명은 나보니도스에 관한 역사적인 문서에 의해 우그바르(혹은 구바르)로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본래 구티움이라는 지역을 다스리던 통치자였다고 합니다. 일종의 도지사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사람이 주전 539년에 벨사살의 연회 잔치를 기습하여 바벨론을 함락시키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장군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함락된 바벨론을 둘러보고 떠나면서 고레스 왕이 그 지역을 다스리는 통치자로서 우그바르를 임명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저도 이 견해가 좀더 역사적 진실에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 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바벨론은 굉장히 광대한 제국이기 때문에 많은 도지사를 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그 위에 다시 총리를 두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바벨론 제국 황혼기에 다니엘은 이미 그 제국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통치자가 한 지역에 들어와서 그곳을 부분적으로 다스릴 또다른 인물을 임명할 때는 그 지역을 아주 모르는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참신한 인물을 택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다니엘이 선택될 가능성이 많았다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 또다시 다니엘은 바벨론 지역을 통치하는 정부 고위 관리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이것은 다니엘에게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즉, 번영과 출세가 보장되며 생이 순조롭게 풀려 갈 마지막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번영과 위기는 상존하기 마련입니다. 다니엘은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이 행운의 시간 속에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무서운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의 그릇된 행동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당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핍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당하게 되는 어려움은 엄격히 말해 핍박이 아닙니다. 순교도 아닙니다. 순교 컴플렉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핍박받는 것을 순교로 간주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순교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정당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나의 정당한 행동 때문에 내가 어려움을 당한다면 그것은 의(義)를 위해서 받는 핍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러한 유형의 핍박을 그의 생애의 황혼기에 한번 더 맞이하게 됩니다.

 

다니엘에게 찾아온 위기

다니엘에게는 두 가지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첫째로, 다니엘의 개인적인 삶을 조사해서 흠을 잡으려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 무리들은 다니엘을 마치 천적처럼 생각했던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다니엘이 새로운 나라에서도 또다시 출세하게 되니까 자연히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그 주변에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소거리를 찾으려고 그의 삶을 샅샅이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흠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둘째로,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법률 개정이 착수되었습니다. 첫번째 계교가 실패로 돌아가자 다니엘의 적들은 이번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그를 함정에 몰아넣기 위한 법률 개정에 착수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나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이것은 일상적으로 다니엘이 참되고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에게만 기도하는 시간을 구별하여 갖고 있음을 안 적들이 그것을 가지고 다니엘을 모함하기 위해 추진한 교묘한 함정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무서운 음모가 진행되는 와중에서 드러난 다니엘의 사람됨은 어떠했습니까?

 

위기 가운데 드러난 다니엘의 사람됨

저와 당신은 80세쯤에 과연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까요? 저는 다니엘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다음의 시편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시 92:12-15).

저는 이 말씀이야말로 노년의 다니엘의 인품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의인 다니엘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80세가 되어서도 다니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아직도 할 일이 많았습니다. 아마 할 일이 없다는 것보다 더한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순간이 가까워 올수록 더욱 청청한 빛을 발하는 견고한 나무인 다니엘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영광을 선포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다니엘의 인품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다니엘은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3절).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를 우리 말 번역대로만 읽으면, ?다니엘은 굉장히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람이며?라고 이해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원문에는 이 『마음이 민첩하다』는 말이 ?아주 놀라우신 영을 소유하였으므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우신 영이란 하나님의 영을 가리킵니다.

?아주 놀라우신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있었으므로.?

다니엘의 지혜와 탁월한 판단력은 다니엘 자신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성령에 사로잡힌 성령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총명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했기에 주(主)의 영이 그 속에 역사하여 이루어 낸 놀라운 결과였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무엇보다도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에도 성령 충만했고 늙어서는 더더욱 성령 충만했습니다. 젊어서도 그의 지혜의 근원은 성령이었습니다. 늙어서도 여전히 그가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다니엘은 순결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여 그의 개인적인 삶을 조사했던 사람들은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습니다?(14절).

유명한 전도자인 D.L. 무디가 한창 부흥 운동을 일으키고 있었을 때에 ?저 사람 말만 잘할 뿐 자기 삶은 형편없을 것이다?라고 전제하고 집요하게 무디의 사생활을 파헤쳤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디의 삶에서 그 어떠한 결정적인 허물도 발견하지 못하자, 도리어 무디의 그러한 삶에 감동받아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당신과 저의 삶을 조사한다고 해 봅시다. 흠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파괴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를 무너뜨릴 만한 결정적인 흠은 없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순결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할 만한 결정적인 흠이 그의 삶 속에는 없었습니다. 순결함이야말로 어쩌면 다니엘이 늙어서까지도 주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을 것입니다.

 

셋째로, 다니엘은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4절을 보십시오.

?...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다니엘은 임무를 충성스럽게 수행했던 것입니다. 정치가로서 그는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었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매사에 충성스러웠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어떤 일도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과제로 알고 주께 하듯 성실하게 감당했던 다니엘. 그는 진실로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된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이 충성스러움이야말로 하나님이 다니엘을 쓰신 비밀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나라가 바뀌어도 정치 체제가 바뀌어도 충성스런 다니엘은 여전히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넷째로, 다니엘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이이 조서에 어인(御印)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절).

간교하고 음흉한 사람들에 의해서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새로운 법률이 제정, 공포되었습니다. 그 나라의 왕 외에 다른 누군가를 향해서 기도하면 사자굴 속에 넣겠다는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10절에서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사실은 다니엘이 그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자기가 그 법을 어겼을 때 사자굴 속에 던져져서 죽게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알고도 다니엘은 집에 돌아가 전에 행하던 대로 주께 기도하고 감사드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지막 순간에 한번 이름이나 남기고 죽자는 식의 소위 순교적 명예심 때문에 나온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평소 습관이 그랬던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위협하는 음모 앞에서도 이 경건의 습관만큼은 결코 변경될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진실로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경건은 타협을 거절하는 경건이었습니다.

사실은 쉽게 타협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경우처럼 우상 숭배를 하라는 위협을 받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다만 기도를 공개적으로만 안 하면 그만인 상황이었습니다.

?30일간이니까 그 동안에는 마음 속으로만 기도해도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이다.?

이렇게 합리화하고 적당히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단 하루라도 경건의 습관이 허물어지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기도와 감사와 찬양이 늘상 끊이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바뀌어도, 환경이 바뀌어도, 누군가가 생명을 위협해도 다니엘이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삶의 보배는 ?내 주님과의 교제?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창을 열고 교제하며 그분만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만큼 다니엘의 일상적인 일이었는가를 보여 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본문 16절을 보십시오.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다니엘이 하나님을 주일에만 예배 시간에만, 혹은 일이 잘 풀릴 때에만 섬긴 것이 아님을 불신자인 왕조차 인정해 주었습니다. 다니엘은 항상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밤에도 낮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봄에도 가을에도, 세월이나 상황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킨 경건한 다니엘의 모습을 주목해 보십시오.

 

다섯째로, 다니엘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23절).

흔히들 다니엘서를 대할 때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서 사자의 이빨이 다니엘을 물지 못한 극적인 사건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니엘의 사람됨입니다.

 

다니엘이 상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의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잡아먹기 위해 으르렁거리는 사자들이 있는 굴 속에서도, 즉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에서도 다니엘은 쓰러지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신뢰합니다. 비록 상황은 이래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이런 다니엘을 어찌 하나님이 지키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믿음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결국 그의 사람됨이 기적을 부른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 내 사업과 인간 관계가 번창하기만을 하나님께 요구할 뿐, 자신의 사람으로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에는 별 관심이 없지는 않습니까? 당신은 다니엘 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만한 사람됨을 사모하십니까? 이제 고개를 돌려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위기 속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람의 이 놀라운 인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날이 갈수록 해가 더할 수록 더욱 주님을 닮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인생의 젊은 시절보다 내 인생의 황혼의 때에 더욱 순결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님 앞에 서고 싶습니다. 젊었을 때 뿐 아니라 내 인생의 기력이 쇠잔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생애에서 일어나는 이 놀라운 풍성한 기적은 주를 신뢰하는 이 믿음을 주께서 친히 귀하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삶이 우리에게 던진 도전은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참으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던 그의 생애, 원수조차도 그에게서 아무 틈도, 아무 허물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순결했던 다니엘. 오 주여 또 하나의 다니엘이 되어 남은 생애를 주의 거룩한 성령으로 불붙임 받아 이 악한 세대를 믿음과 충성과 순결로 살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제 목: 종말/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

주 제: 종말

교 회: 지구촌 교회

설 교 자: 이동원 목사

본 문: 다니엘서 7장

논 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때에 심판 하시고 그의 나라를 세우신다.

설교요약

1.네 제국을 상징하는 네 짐승

2.네 제국의 흥망성쇠의 예언

3.마지막 때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믿는자들을 미혹한다.

4.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신다.

 

다니엘서 7장과 다니엘서 2장은 표면적으로 대단히 유사합니다. 2장에서 우리는 역사에 대한 계시가 담긴 느부갓네살의 꿈과 그 해석을 살펴보았습니다. 7장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이상(異象)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니엘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보았던, 역사에 대한 이상이었습니다. 그래서 2장과 7장은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도 관점에서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7장에는 2장보다 역사에 대한 계시가 좀더 보충되어 등장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역사의 커튼을 열어 바벨론 제국 이후에 펼쳐질 세계 역사에 대한 좀더 많은 비밀을 7장에서 드러내 보여 주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골격은 이미 2장에서 제시하고 7장에서 살을 붙인 셈입니다.

 

네 제국을 상징하는 네 짐승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2:31,32).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신상이 네 부분, 즉 금으로 된 머리와 은으로 된 가슴과 팔,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 철로 된 종아리 부분으로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바벨론 이후에 일어날 중요한 제국들을 예언적으로

보여 주는데 금으로 된 머리 부분은 바벨론을, 은으로 된 가슴과 팔은 메대 바사 제국을,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는 헬라 제국을, 그리고 철로 된 종아리 부분은 로마 제국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왕국을 상징하는 신상은 산에서 날아 온 뜨인 돌에 맞아 부서지고 결국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느부갓네살의 꿈에 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꿈에는 신상 대신에 네 짐승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이 이것을 다니엘서 2장과 마찬가지로 바벨론 이후에 전개될 주요 제국들에 대한 상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첫번째 등장하는 사자는 바벨론을, 두번째 등장하는 곰은 메대 바사를, 세번째 등장하는 표범은 헬라 제국을 그리고 네번째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짐승은 로마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2장에서는 빛나고 거대한 신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7장에서는 천박하고 잔인한 짐승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관점의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는, 막강한 힘을 행사하던 제국이나 제국의 열왕들이 두려워 굴복할 수밖에 없는 대상일 것이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을 거듭하면서 한 나라가 세워지고 또 사라지는 식의, 힘으로 상징되는 인류의 문화나 왕국은 짐승의 이미지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사람들은 힘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랑하는 힘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야수의 본능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역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의 현격한 차이입니다.

이제 다니엘이 본 이상을 통해서 좀더 자세하게 계시된 네 제국의 운명을 살펴봅시다.

 

첫째 짐승/바벨론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4절).

?날개가 뽑혔다?는 것은, 느부갓네살이 교만에 대한 심판으로 왕 위에서 쫓겨나 미친 사람이 되어 들짐승처럼 들을 헤맸던 사건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받았다?는 것의 의미는 ?느부갓네살은 통치 말년에 좀더 인간적이었다?고 전하는 고대 문서에 근거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고생고생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다시 그를 회복시켜 주신 후에 그의 통치는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한 번 혼나고 나서 인간적인 인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징계가 필요한가 봅니다. 고통이나 고난이 우리를 겸허하게 만드니 말입니다. 이처럼 사자의 모습에서 느부갓네살 왕으로 대표되는 바벨론 제국의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둘째 짐승/메대 바사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 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5절).

?세 갈빗대가 물렸다?는 표현은 역사적으로 보아 정확한 묘사입니다. 메대 바사 제국의 첫번째 왕은 그 유명한 고레스 왕입니다. 일반 역사책에서는 ?사이러스?라고 호칭하는 고레스에 의해 일어난 메대 바사 제국은 당시에 알려진 나라 가운데서 특별히 세 개의 왕국을 정복했습니다. 우선 주전 546년에 소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존재하던 리비안 왕국을 정복했으며, 주전 539년에는 바벨론 제국을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고레스의 아들인 캄비세스가 주전 525년에 이집트 왕국을 정복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곰이 세 개의 갈빗대를 물고 있다는 표현은 얼마나 정확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많은 고기를 먹으라?고 했는데 정말 그 말대로 메대 바사는 세 나라나 먹어 치웠습니다.

 

셋째 짐승/헬라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6절).

?날개 넷?은 헬라의 영웅이었던 알렉산더 대왕이 단 한번의 원정을 통해서 당시에 알려진 전세계를 휩쓸어 버린 그 기민함을 상징하는 것이며 표범의 ?머리 넷?은 알렉산더 대제 이후에 헬라가 네 명의 장군에 의해서 분열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것은 실제 역사적으로 성취된 일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대제국은 그의 사후에 안티파테르가 그리이스와 마케도니아를, 리시마쿠스가 소아시아 지역과 드레이스 지역을, 셀리큐스가 소아시아 지역을 뺀 나머지 아시아 지역을, 그리고 프톨레미가 팔레스타인 지역과 이집트 지역을 통치하게 됨으로써 문자 그대로 네 토막이 나고 맙니다.

 

넷째 짐승/로마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7절).이것은 느부갓네살이 꿈에 보았던 철로 된 종아리로 상징된 로마입니다. 전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막강한 위세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2장과 비교하여 볼 때 첨가된 계시들

 

첫째/열 개의 뿔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20절).

2장에서는 열 발가락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7장에는 열 뿔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24절).

이 열 뿔이 개개의 세력이며 왕일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2장을 공부할 때 열 발가락과 열 뿔을 연결시켜서 그것에 관한 성경학자들의 대표적인 해석 두 가지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 가운데 두번째 해석에 따르면 열 발가락이나 열 뿔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부활할 로마의 모습이 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로마 제국의 부활에 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2년 후면 유럽의 모든 화폐가 하나로 통일되며 EC를 중심으로 각 국의 경제가 하나의 구조 속으로 흡수됩니다. 게다가 동유럽의 급격한 변화와 독일의 통일 등은 흡사 신성 로마 제국의 부활을 연상시킵니다. 이것이 성경의 예언에 대한 두번째 해석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합니다. 아마도 역사의 마지막은 이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변화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둘째/다른 작은 뿔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또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8절).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20절).

성경학자들은 열 뿔이 열 나라의 연합체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또 다른 뿔?은 어떤 한 인격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곧, 적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세에 왜 이 적그리스도를 허용하실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를 허용함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최종적으로 시험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단의 일평생 소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신 일 가운데 가장 놀라운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사건입니다. 사단도 그것을 흉내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역사의 마지막에 사단도 드디어 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유혹하여,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자기에게로 돌릴 것입니다.

사단의 성육신이 적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상징이 바로 작은 뿔입니다.

 

셋째/인자(人子)

?내가 또 밤 이상(異象)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13,14절).

2장에는 그리스도의 나라의 도래가 예언되어 있습니다. 본문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이 말씀을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칠 정도로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구절입니다.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24,25절).

여기에 3년 반이라는 위기의 시간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신구약 중간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3년 반 동안 수리아(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서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했던 적이 있었긴 하지만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 상징된 어떤 특정한 기간에 적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가 경험하게 될 무시무시한 환란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26절).

적그리스도가 권세를 빼앗길 때 사람들은 ?저가 하나님이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27절).?그?는 13절에 나오는 ?인자 같은 이?입니다. 이 말씀은 ?그?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를 역사의 마지막에 세우게 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인자?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 ?인자? 사상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부르는 칭호 가운데서 가장 즐겨쓰신 것도 ?인자?입니다. 이 말은 공관복음에 69회 사용되었으며 요한복음에만도 12번이나 나옵니다. 특별히 예수께서 어떤 의미에서 자신을 인자라고 하셨는가를 요한복음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3).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단순한 인간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기원을 강조하시면서 인자라는 말을 쓰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요 3:14).

이것은 십자가 사건에 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그분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구세주가 되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인자라는 개념 속에는 예수님의 신적(神的) 기원과 그분의 구원자 되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 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 5:25-27).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십자가의 사역을 통해서 구세주가 되셨고 나중에는 심판자가 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이유이며 이것을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인자?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고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이루지 못했던 하나님의 왕국, 그분이 치리하시는 영원한 왕국을 이루실 것이며 우리는 그 나라의 시민이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종말장?, 혹은 ?말세장?으로 불리웁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큰 환란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한 때 두 때 반 때, 즉 삼년 반을 상징적인 기간으로 생각합니다.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마 24:22).

삼년 반이라는 기간은 하나님께서 원래 작정하신 기간을 채우지 않고 아마도 감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됩니다.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 24:23).

적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29,30).

여기의 인자가 다니엘서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그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작은 뿔이 어떻게 역사의 마지막을 소란케 할까요? 마지막을 향해 전개되는 역사의 마지막 시간표를 주목해 보십시오.

 

주 제: 믿음/핍박

제 목: 양과 염소에 대한 비전

교 회: 지구촌 교회

설 교 자: 이동원 목사

본 문: 다니엘서 8장

논 지: 성전을 훼파하고 믿는자를 핍박하며 우상경배를 강요할 때 더욱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견고히 하여야 하며 악한자는 반드시 멸망한다.

설교요약: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된다.

.교만한 자나 교만한 국가는 반드시 망한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인간에게 가장 뿌리 깊은 본능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를 신격화하고 싶어하

는 본능일 것입니다.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만 이 본능의 출처는 사단입니

다. 이 사단이 ?내가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 14:14)고 했기 때

문입니다. 천사장 루시퍼는 그가 사단이 되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의 뿌리입니다.

교만이란 단순히 자기를 높인다는 것보다도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으

려는 유혹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

한 자를 높이시고 은혜를 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교만한 자, 교만

한 단체, 교만한 국가는 반드시 망합니다. 우리는 이에 관한 고전적인 교

훈을 본문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에서는 양과 염소에 대한 비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

의 두번째 환상입니다. 네 개의 짐승이 등장한 첫 환상을 본 후 두 해가

지난 후의 일입니다. 때는 주전 551년경, 다니엘의 나이 70세경이었습니

다.

 

어떻게 보면 본문의 사건은 7장의 사건과 유사하게 보입니다. 7장에서,

느부갓네살 이후의 세계 역사에 대하여 이미 보여 주었는데 왜 8장이 필요

했을까요? 그러나 이 두 장 사이에는 대단히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

선 우리가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다니엘서 전체의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다니엘서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두 가지

언어로 기록되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구약성경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 전체가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 부분이 바로

다니엘서에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1장1절부터 2장3절까지는 히브리어로, 2장4절부터 7장28절까

지는 아람어로 되어 있습니다. 아람어는 그 당시 이방인들에게 가장 보편

적인 언어였습니다. 마치 현재 영어가 세계적인 공용어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중동(中東)을 중심으로 한 가장 보편적인 언어는 아람어였습니

다. 이것은 예수님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아람어를

사용하셨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8장1절부터 마지막까지는 또다시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왜 이런 전

환이 필요했을까요? 그것은 메시지를 전할 대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2

장4절부터 7장28절까지에는 세계 역사의 전개를 보여 주려는 하나님의 의

도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이 교훈을 이방인들에게까지 계시하시기를 원하

셨던 하나님은 그 당시 이방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아람어를

사용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8장부터 다시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서 다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주시고자 하는 중요한 계시가 이 부분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8장은 이스라엘 민족과 관련된 세계 역사의 장래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전제 하에서 본문을 읽어야 합니다. 8장에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 언급되어 있지만 특별히 어느 사건과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만일 이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본문을 제대로 공부

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양과 염소 그리고 작은 뿔에 관한 이상

 

?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가에 두 뿔 가진 수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어도 한 뿔은 다른 뿔보다도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내

가 본즉 그 수양이 서와 북과 남을 향하여 받으나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

나도 없고 그 손에서 능히 구할 이가 절대로 없으므로 그것이 임의로 행하

고 스스로 강대하더라?(3,4절).

뿔이라는 것은 언제나 통치의 상징입니다. 두 개의 뿔을 가진 수양으로 상

징된 어떤 세력이 서쪽으로 북쪽으로 남쪽으로 세력을 넓혀 가는데, 도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수염소가 서편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

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 그것

이 두 뿔 가진 수양 곧 내가 본 바 강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더니 내가 본즉 그것이 수양에게로 가까이 나아

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수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으나 수양에게는 그것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수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능히

수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이가 없었더라?(5-7절).

수염소가 수양을 이겼습니다. 그러나 수염소의 세력도 영원히 계속되지는

못합니다.

?수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8절).

 

양과 수염소의 이상은 각각 무엇을 가리킵니까?

?내가 본 바 두 뿔 가진 수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털이 많은 수염

소는 곧 헬라 왕이요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20,21절).

두 뿔 가진 수양은 메대 바사를 상징합니다. 메대 바사 제국은 문자 그대

로 하나의 제국이 아니라 메대와 바사가 합해서 된 제국입니다. 두 개의

뿔 중에서 나중 뿔이 더 길다고 했는데(3절), 이것은 메대가 먼저 일어났

지만 더 강력한 바사에 의해 통합된 사실을 가리킵니다.

 

수염소로 상징된 헬라 제국은 알렉산더의 영도 하에 메대 바사를 넘어뜨

리지만 이 제국도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수염소의 뿔이 꺾이고 그 자리에

네 개의 뿔이 돋아났듯이 알렉산더의 사후 즉시 그의 제국이 네 토막이 났

습니다. 이미 지난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겠지

만 이것은 예언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매우 놀라운 사실입니다.

 

본문에는 양과 염소의 이상만이 다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편과 동편과 또 영화로

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켜져서 그

군대와 별 중에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을 짓밟고?(9,10절).

네 뿔 이후에 다시 작은 뿔 하나가 돋습니다. 이 작은 뿔의 이미지는 우리

에게 낯선 이미지가 아닙니다. 7장에서 작은 뿔은 적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로마 제국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서 8장9절에 나오는 작은

뿔은 얼핏 보면 혼동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나왔던 작은 뿔과

는 `또다른' 작은 뿔입니다.

 

지금까지 바벨론, 메대 바사, 헬라, 로마, 이 네 개의 제국이 무너지고

세워지고 했습니다. 그런데 8장에는 메대 바사와 헬라만이 등장하고 로마

의 이미지는 아직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다른' 작은 뿔은

로마가 아닌 헬라와 관련된 작은 뿔인 것입니다.

 

네 개로 분할된 헬라 제국 가운데 하나인 셀루키드 왕조에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라는 여덟번째 왕이있었습니다. 그는 ?영화로운 땅을 향하

여?(9절)라는 말씀과도 같이 주전 168년12월에 이스라엘 땅에 쳐들어왔

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팔레스타인을 친 데에는 그 땅을 점

령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나아가서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헬라 문화권 속으로 이스라엘을 편입시키고저 하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아폴로니우스라는 장군의 영도로 이만 명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자기

들의 수중에 넣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자리에 제우스 신상을 설치했습

니다. 그런 후에 유대인이 가장 더러운 동물로 취급하여 상종도 하지 않던

돼지를 제우스 앞에 바쳤습니다. 또 할례를 금지시키고 성경을 읽지도 소

유하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

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범죄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

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

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내가 들은즉 거룩하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

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 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

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

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리라?(11-14절).

성소가 이천 삼백 주야 동안 더럽힘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이 이천 삼백

주야에 대해서는 이것을 문자 그대로 이천 삼백 날이라고 보는 견해와 유

대인들이 아침 저녁으로 제사드리는 것을 고려하여 이천 삼백 일을 둘로

나누어서 천 백 오십 일, 즉 삼 년하고도 약 오십오 일이라고 보는 견해로

나뉘는데 후자가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3년 반 사상?이 나옵니다. 7장의 한 때와 두 때와 반을 합해도 문자 그

대로 삼 년 반이 됩니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본격적인 공략을 시작한 것은 주전 167년

입니다. 그때부터 성전이 더럽힘 당하기 시작해서 주전 164년12월14일까

지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편에서는 그들의 성전을 빼앗기고

거기에 우상이 들어와 더러운 제물이 바쳐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

었습니다. 그래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신구약 중간시대에 유다 마카비

가문이 그것을 주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안티오쿠스 에피파네

스가 죽어 버렸습니다. 주전 164년에 특별한 병명도 없이 갑자기 앓다가

그냥 죽은 것입니다.

 

?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 권세만 못하리라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패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엄장하며 궤휼에 능하며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비상하게 파

괴를 행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그가 꾀를 풀어서 제 손으로 궤휼을 이루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한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

나 그가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깨어지리라?(22-25절).

이렇게 이스라엘을 무참하게 짓밟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까닭없이 죽

자 유다 마키비가 폈던 게릴라 운동은 자연히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성전을 되찾게 됩니다. 그때가 주전 164년12월14일

경입니다. 제우스 신당을 헐고 다시 성전을 하나님 앞에 바칩니다. 이것

을 축하하는 절기가 ?하누카?, 즉 수전절(守殿節)입니다.

 

크리스마스 경이 되면 유대인들은 집집마다 촛불을 켜 놓는데 그것은 크

리스마스를 축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되찾던 날, 성전 안에 촛불을 밝혔던 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즉, 성전 안에 하나님의 빛이 가득 차게 된 그 놀라운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하누카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 유대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이 또 한번 핍박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그러면 우리들의 달력에는 축제일이 하나 더 생길 것이

오』라고 했습니다.

바로가 유대인을 핍박해서 유월절이 생겼습니다. 하만이 이스라엘을 핍박

해서 부림절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죽고 나

니까 수전절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세력은 반드시 무

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서의 전체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역

사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악이 승리하는 것

같지만 역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계속적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세 가지 교훈

 

첫째로, 교만한 자나 교만한 국가는 반드시 망합니다.

안티오쿠스 에파파네스는 스스로를 높이고 자의로 행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무너뜨리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이상이 확실하니 너는 그 이상을 간수하라 이

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니라?(26절).

성경의 예언은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습니다. 후에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묵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되어질 역사의 마지막을 기록

할 때 다니엘서의 이 사건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합니

다. 주님이 오시기 직전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큰 환란을 경험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합니다.

그것이 문자적으로 3년 반일지 아니면 그보다 더 긴 기간일지 알 수 없지

만 어쨌든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임할 무시무시한 혼란의 때가 하나님

의 백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티오쿠스 에파파네스가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는 사단의 도구 역할을 했던 것처럼 주님의 재림 직전에 적그

리스도가 등장할 것입니다. 과거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듯이 앞으로

의 예언도 이루어질 것이 확실합니다.

 

셋째로,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나 다니엘이 혼절하여 수일을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

라 내가 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27

절).

다니엘은 이 예언을 받고 까무라쳤습니다. 그리고 수일을 앓았습니다. 하

나님의 백성이 짓밟히고, 거룩한 곳에 가증한 물건이 놓여지는 것은 얼마

나 무시무시한 사건입니까? 다니엘은 이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않았습

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두려운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어떻게

편안한 심정으로 이 말씀을 받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는 혼절하여 수일

을 앓기까지 했습니다.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다니엘의 태도를 여

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가 살고 있던 역사의 황혼기에 빛으로 경건한 삶을 살았습

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의 환란과 어려움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이

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신뢰하

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다니엘서가 역사의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당신과 저를 비롯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던지는 엄숙한

경고요 도전인 것입니다.

 

주 제: 기도/모범

제 목: 다니엘의 기도

교 회: 지구촌 교회

설 교 자: 이동원 목사

본 문: 다니엘서 9장 1~23절

논 지: 다니엘은 삶의 전체를 기도에 의지하여 승리했다.

설교요약:

.다니엘의 기도는 성경연구에서 출발했다.

.약속의 말씀 붙들고 기도했다.

.승리와 응답의 방편으로 기도했다.

.위기도 기도에 매달렸다.

.회개부터 기도를 시작 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했다.

.즉각적 응답을 받았다.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다니엘서를 추적해 오

면서 이미 기도의 사람으로서의 그의 면모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동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

에게 그 일을 고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 자기 다니엘과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구하게 하니라?(단 2:17,18).

다니엘은 위급했던 한 때를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

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자기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기도하고 감사하며 그

상황을 하나님 앞에 의뢰하고 있는 기도의 사람 다니엘의 모습을 볼 수 있

습니다.

 

본문에는 다니엘로 하여금 기도하게 한 상황과 그가 기도한 내용이 구체

적으로 열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다니엘은 어떤 태도

와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엇을 기도했으며, 기도를 어떻게 생각했

는가 하는 그의 기도관을 살펴볼 수 있게 됩니다.

실로 이 기도야말로 다니엘의 삶의 열쇠요 비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다니엘에게 역사에 대한 그토록 놀라운 비밀을 계시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만합니다. 먼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몸이면서도 영

광스럽게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을 그의 기도 속에서 발

견할 수가 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에서 배울 점들

 

첫째로, 다니엘의 기도는 언제나 성경 연구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말씀과 상관없이 기도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종종 그 기도는 인위적이고 주술적이고 샤머니즘적이고 자기 중

심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출발

했기 때문에 가장 고결한 기도, 그리고 가장 고상한 기도일 수 있었습니

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

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

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

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1절).

그 당시에 다니엘이 가지고 있던 구약성경 몇 권이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

씀이요 삶의 중요한 근거였습니다. 다니엘은 지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노예로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였기에 자연

히 자기와 자기 백성의 고난이 언제쯤 끝날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포로 생활이 언제 끝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연구하다가 놀랍게도 그 백성들의 고난이 끝나는 시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

론 왕을 섬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 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

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렘 25:11,12).

포로 생활이 칠십 년 만에 끝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깨달은 다니엘은

?그렇다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겠구

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발견

하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하기 시작하는 다니엘의 모습을 볼 수 있습

니다.

 

다니엘이 포로가 된 것은 주전 605년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다니엘이

계시를 받고 기도하게 된 이때는 주전 538년입니다. 이 기간을 계산해 보

았을 때 분명한 사실은 유대 민족의 포로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

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고난의 세월이 불과 몇 년 남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다니엘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기뻐하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

습니다. 성경 읽고 연구하고 묵상할 때 특별히 당신에게 부딪쳐 오는 말씀

이 있었습니까? 그때 당신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니엘은 자신에게 부딪쳐

오는 말씀을 언제나 기도로 발전시켰습니다.

?이제 우리 민족의 고난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때가 중요한 때로구

나. 지금이야말로 기도를 해야만 하는 때로구나.?

 

건강한 기도 생활이라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출발하는 것입니

다. 기도의 성자(聖者)라고 일컬어지는 영국의 죠지 뮬러는 기도의 비밀을

묻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이런 충고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기도하십시오?(Pray according to His

promise).

그 약속이어디있습니까? 성경에 있습니다.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우리의

삶에 대하여 이 말씀에 얼마나 놀라운 약속들이 많이 담겨 있는지 아십니

까? 기도할 때 그냥 기도하지 마시고 말씀을 따라서 기도하십시오.

 

저의 집 아들이 저에게 무엇을 요청할 때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저는 꼼짝

못 합니다.

?아빠 약속했잖아요??

약속이라는 말만 나오면 꼼짝을 못 합니다.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구약

성경은 옛날 약속, 신약성경은 새로운 약속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약속을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

하기를 결심하고?(3절).

다니엘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자마자 즉각적으로 기도에

들어갑니다. 여기에서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는 다니엘의 모습을 보시기 바

랍니다.

 

둘째로, 다니엘은 약속의 말씀을 따라서 기도했습니다.

기도 자체도 약속의 말씀을 따라 해야 합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主)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

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4절).

여기에서 다니엘은 하나님을 부르는 데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 아닙니까? 주의 말씀을 지

키는 자들에게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 약속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다니엘의 모

습을 보십시오.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

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6절).

다니엘은 지금,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지 않고 불순종했던 이스라엘 백

성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하고자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

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0절).

좀더 구체적으로 죄목을 말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실수였고 우리의 문제였고 우리의 잘못이

었음을 자복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주(主)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

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 가운데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

니이다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

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 임한 일 같

은 것이 없나이다?(11,12절).

?이같이 우리 민족이 당하는 고난도, 우리가 경험하는 이 어려움도 모두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하여 우리는 핑계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의 죄를 자복합니다.?

이것은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했던 죄를 먼저 처리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언약이 참으로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셋째로, 다니엘은 승리의 방편으로서 기도의 중요성을 인식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다니엘이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그 민족의 고난이 70년이면

끝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정하셨으면

그것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계획과 예정은 그분의 백성들

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 중의 하나는 메시야가 오신다는 예언입니

다. 많은 사람들이 그 예언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기도도 했을 것입니다.

세월은 자꾸 흘러 갔지만 메시야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믿음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포기하지 아니하고 ?하

나님, 우리에게 메시야를 주십시오?라고 끝까지 기도했고 마침내 메시야

가 오셨습니다. 그때 제일 기뻐했던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아마 기도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실제로 메시야 강림에 대한 약속

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기다렸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시므온과 안나

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팔에 안고 너무도 감격에 겨워서 ?내 눈

이 주의 구원을 보았나이다?(눅 2:20)라고 소리쳤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약속이 주어졌지만 그 약속을 믿고 기도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믿고 기도한 사람들을 통해서 메시야는

오실 수 있었습니다. 감히 시므온과 안나는 그 시대에 이렇게 말해도 괜찮

았을 사람들입니다.

?내가 기도했더니 주님이 오셨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요엘서에는 성령 강림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神)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욜 2:28).

이 약속을 믿고 정말 성령 주시기를 기도한 사람은 다락방에 있었던 120명

의 성도들이었습니다(행 2장). 약속대로 성령 강림이 이루어졌을 때 그들

은 얼마나 흥분하고 감격했을까요?

 

하나님은 인간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계획하시고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은 일방적으로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와 책임 있는 응답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

는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도 약속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공부하

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때마다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시는지요?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마

24:14)라는 말씀이 있는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겠습니까?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

도와 전도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책임 있는 응답을 통해서 이 지

구상에 오늘날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다니엘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자마

자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약속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그는 기도가 승리의

방편인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넷째로, 다니엘은 심각한 위기를 심각한 기도로 대응할 줄 알았습니다.

물론 어떤 기도도 장난 삼아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기도는 다 심각해야

합니다. 구세군 창설자인 윌리암 부쓰는 ?그대여 기도할 때 거기에 생사

가 달린 것처럼 기도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기도의 심각성을 강

조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할 때 정말 심각했던 것이 어떻게

나타나 있습니까? 그들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때 금식하고 기도했습니

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종종 잊혀져 가고 있는 전통 중의 하나

입니다만 사실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

기를 결심하고?(3절).

이러한 기도는 결코 평범한 기도가 아닙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민족의 운

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역사적 시점에 서 있음을 깨닫고 기도와 간구를 결

심했고 이 결심은 금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는 금식하되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구약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했던 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첫째, 금식을 통해 이제부터 내 삶의 우선 순위는 지금 기도하고 있는 바

로 이 문제라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이 문제는 내가 해야 할 여러 일 중의 하나가 아니라 이 순간 내 생애에

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위한 기도를 내 생애의 가

장 중요한 과업으로 삼습니다.?

 

둘째, 금식은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 가면서 기도할 만큼 기도하는 그 문

제에 모든 신경과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여 매달린다는 것을 의미했습니

다. 이것은 ?나의 우선 순위가 내가 지금 기도하고 있는 이 문제에, 그리

고 기도 그 자체에 있으며 다른 무엇보다 여기에 내 삶의 모든 것을 쏟고

자 합니다. 심지어 밥 먹는 시간을 아껴가며 나는 기도합니다?라는 고백

인 것입니다. 다니엘은 심각한 위기를 심각한 기도로 대응하는 모본을 우

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다니엘은 여러 번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를 만날 때마다 거

의 비슷한 모습의 기도로 위기를 뚫고 나갔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능력을

상실하고 힘없이 맥없이 살고 있는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심

각한 의미의 기도를 상실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다니엘에게서 우리는

기도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다섯째로, 다니엘은 응답받는 기도의 핵심이 회개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다니엘은 유대 민족이 고난에서 해방될 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이 그의 기도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니엘의 기도는 죄에 대한 자복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민족에 대해서 기도하면서 그 민족의 범죄를 먼저 자복했던 것입니다. 그

런데 이러한 그의 기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 민족의 범죄 가운데 자기

자신의 범죄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예외로 삼지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웃들과 민족을 위해서 기도

할 때 나와 상관없는 대상인 것처럼 기도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민족의

고난을 바로 자기 자신의 책임으로 통감했습니다.

 

다니엘은 회개 기도를 할 때마다 특별히 ?우리?라는 복수 인칭 대명사

를 사용했습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회개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그 많은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지 못한 이유는 우리가

자기 자신의 삶을 철저히 회개하지 않은 데에 있을 것입니다.

 

여섯째로, 다니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기도

의 궁극적 초점은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입

니다. 성경은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한다고 가르칩

니다. 주님도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성도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

인 것처럼 기도의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자기 자녀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17절).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이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어지기를 기도했습니

다.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

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

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

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18,19절).

다니엘은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

니다.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했습니다(약

4:3).

?하나님이여 내 자식이 잘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남 부럽지 않게 떳떳하게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러한 기도는 별로 응답될 가망성이 없는 기도입니다. 자기 정욕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내 자식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때 하나님의 이

름을 선포하면서 주의 복음의 빛을 내는 아들로 당당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는 똑같이 아들을 위한 기도이지만 그 기도의

초점은 부모의 소원이나 이기심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에 있습니다.

 

즉시로 응답된 다니엘의 기도

 

다니엘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셨는지가 20-23절에 나와

있습니다. 아마도 성경에 나온 모범적인 기도들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응답된 기도가 바로 이 부분의 다니엘의 기도일 것입니다.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

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

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더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일을 생각하고그 이상을 깨달

을지니라?(20-23절).

 

다니엘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은 언제 쯤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성경

은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하나님께서 행동을 시작하셨다고 적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있는 그 문제에 관하여 응답을 주시기 위하여 천사를 동원

하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모습을 보십시오. 때때로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과 나 사이의 거리가 너무도 멀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의 보좌가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즉각적으로 내 기도를 들으시

고 즉각적으로 천사들을 동원하는 역사를 시작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도를

일단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으시고 판단하십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뜻

에 합당하다고 판단되면 하나님의 역사는 기도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

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얼마나 흥분된 기대를 가지게 됩니까? 기도할 때마

다 이 놀라운 사실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늘의 보좌 위에서 내 기도를 주

께서 받고 계십니다. 천사를 거느리고 응답을 시작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을

보십시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창백했던 모습들을 회개하며 기도의 위

대한 부흥이 우리 속에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고 있던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그 민족의 역사에

관한 것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속에, 아니 전인류

역사에 이루어질 가장 중요한 어떤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사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비밀입니다.

 

이동원목사

 

 

주 제: 기도/열심

제 목: 기도의 영적인 싸움

교 회: 지구촌 교회

설 교 자: 이동원 목사

본 문: 다니엘서 10장

논 지: 사탄이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나 열심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우리를 도와 주시고 빠르게 응답 해주신다.

설교요약: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 이었다.

.다니엘은 조국을 위해 열심히 기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즉각 응답 해주신다.

.마귀가 우리 기도 응답을 방해 한다.

.천사는 우리에게 힘을 주고 돕는다.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다니엘을 이야기할 때마다 다니엘의 탁월한 지혜와 놀라운 결단력

과 대담함 그리고 탁월한 지도력에 대해서 언급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은 이 모든 것보다 다니엘에게 더욱 중요한 삶의 비밀이 있었습니다. 저는

다니엘서를 강해하고 연구하면서 다니엘서의 상당 부분이 놀랍게도 그의

기도 생활에 할애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

다. 차라리 우리는 다니엘의 기도야말로 그의 삶의 열쇠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지혜와 그 놀라운 결단력, 그 담대함, 탁월한 지도력은 어디에

서 왔을까? 다니엘의 놀라운 예언을 가능케 했던, 그의 배후에 있었던 가

장 놀라운 삶의 열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본문은 다

니엘의 말년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말년에도 여전히 기도

하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을 기도로 맞이했습니다.

그의 황혼은 저물어 가는 해처럼 낙조의 쓸쓸함을 안겨다 준 것이 아니라

그의 기도 때문에 오히려 찬란했습니다. 다니엘은 특별히 인생의 말년에

기도를 하나의 사역처럼 감당했던 것입니다.

기도는 다니엘의 인생에서 일정한 사역이었습니다. 특별히 다니엘은 민족

을 위해서 중보 기도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삼 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

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

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니라?(1절).

고레스 왕 삼 년이면 주전 535년이나 534년 경이었을 것입니다. 이때는 고

레스의 등장과 함께 이미 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자유함

을 얻어 그들의 고향인 유대 땅으로 돌아간 때입니다. 그들은 성전 재건의

부푼 꿈을 안고 폐허와 잿더미로 변했던 옛 고향으로 돌아가 그 즉시로 매

일매일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를 다시 시작했으며 성전의 기초가 되

는 터전 쌓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성경은

이에 대답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추측컨대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그가 포로로 있는 이방 땅에서 생애를 마치도

록 기도 가운데 인도하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 다니엘 스스로가 자신이 너무 늙어서 이 나이에 무슨 일을 하겠는

가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그는 약 85세였습니다.

 

조국을 위해 기도하다 주님을 만난 다니엘

 

그러나 다니엘은 이방 땅에 있을망정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조국을 위한

기도가 하나의 사역이었습니다. 중보 사역으로 기도의 짐을 계속 졌던 것

입니다. 그의 기도는 ?내 조국이 잘되게 해 주십시오? 하는 그저 일상적

인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3절에는 조국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다니엘의 모습이 나옵니다.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

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이것은 강렬한 기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국으로 돌아간 후 3년간은 열심히 조국 재건에 힘썼

습니다. 터를 닦고 성전의 기초를 쌓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모든

것이 중단되더니 그 후로 약 15년간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세월을

보냈습니다. 성전의 터전은 황폐하게 버려져 있었습니다. 학개라는 선지자

가 이스라엘 백성을 깨워 일으키기까지 성전 재건의 꿈은 막상 현실의 난

관에 부딪치자 허물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얼핏 전해 들은 다니엘은 답답했을 것입니다. 비록 이방 땅에

있을망정 사랑하는 조국 땅이 재건되기를 바라던 다니엘은 조국에 대한 기

도의 부담감을 무시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식음을 전폐하

고 사랑하는 조국 땅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조국 땅에는 다행히

에스라, 느헤미야처럼 몸으로 뛰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몸으로 뛰면서 일하는 사람 못지않게 조국을 위한 중보 기도의 횃불을 끄

지 않았던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이 있었다는 사실이 유대인에게는 얼마나

자랑스러운 보화였겠습니까?

 

몸으로 뛰는 것만이 일인 것은 아닙니다. 기도도 일입니다. 기도도 사역

입니다. 건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생애가 끝났다고 판단하

지 않고 그러한 상태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즉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

람들을 위해서 혹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중보 기도의 제단을 쌓는 사

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던 것을 얼마든지 교회사를 통

해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도 고령의 나이에 개의치 않고 조국을 위

한 기도의 사역을 쉬지 않았습니다.

 

이 기도 가운데에서 다니엘은 마침내 환상을 보게 됩니다. 자기 민족의

장래를 보여 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예언을 받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 다

니엘은 다른 사람들이 받은 계시나 기이한 일을 해석하는 일만 했지만 점

차 자기 민족과 세계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게 되었으며 본

문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더 위대한 하나의 환상을 접하게 됩니다.

즉, 그는 주님을 뵌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 민족이 이렇게 될 것이다.

세계 역사는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보다도 다니엘에게는 더 존귀하

고 영광스럽고 가슴 벅찬 체험이었을 것입니다. 평소 찬양하며 신뢰했던

그 주님을 자기 눈으로 직접 뵙게 되다니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비전이었

겠습니까?

 

?그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

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개빛 같

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5,6절).

?한 사람?을 일부 성경학자들은 천사로 보지만 대다수의 성경학자들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전의 그리스도, 소위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

께서 잠시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 주었을 환상일 것이라고 합니

다.

이 묘사와 비슷한 묘사를 어디에서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이 장면은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보았던 비전과 거의 일치합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천당과 지옥에 갔다 온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

겠습니다. 게다가 문제는 저마다 설명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는 천국

과 지옥에 대한 환상을 그렇게까지 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주님

이 없는 천국은 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천국은 주님 때문에 천국입니

다. 우리가 천국을 보았다는 사실보다 더 위대한 것은 그리스도 그 자체입

니다. 아무 것도 그리스도의 환상을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내 찬양의 주님, 내 사모의 주님, 나에게서 모든 찬송과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그 주님을 만약 나도 한번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수가 있다

면... .?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많이 있습니다.

 

?이 이상(異象)은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한 사람들은 이 이

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었느니라?(7절).

주님의 영광스러운 환상이 나타날 때 너무 영광스러워서 사람들은 벌벌 떨

었지만 친히 그 환상을 목격한 것은 다니엘 혼자였습니다. 이방 나라에 끌

려온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사모하고 바라보았던 다니엘은 기도 속에서

그 주님의 빛나는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주님으로부터 다니엘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 기도 응답에 대

한 내용은 11장,12장에 나옵니다. 그 전에 먼저, 다니엘의 기도에 대해 하

나님이 환상으로 응답하셨다는 사실 속에서 몇 가지 교훈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로,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즉각적으로 들으십니다.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내게 이르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

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그가 내

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매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

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

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

니라?(10-12절).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주님이 아니라 천사입니다. 아마도 가브리엘 천

사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성도들의 기도를 듣고 하나님께서 파견하시

는 천사 가운데 가장 많은 심부름을 담당하는 천사가 가브리엘입니다. 다

니엘이 하나님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 민족의 장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실까를 알기 위해서, 금식하고 기도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

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내 소원대로 응답을 다 하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귀 기울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기

도를 들으실까' 하는 기도에 대한 회의와 물음이 당신을 괴롭힐 때마다,

기도를 들으시고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신 이 장면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듣고 계십

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도를 이미 들으셨습니다.

 

둘째로, 악령들이 기도의 응답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기도를 들으셔도 많은 경우 악령들이 기도가 응답되

는 과정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그런데 ?바사국 군?이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

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

므로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대

저 이 이상(異象)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13,14절).

이것은 언뜻 정치적인 설명 같아 보입니다만 더 자세히 살펴보시면 ?바사

국 군?이 나옵니다. ?바사국 군?은 바사의 군대가 아니라 ?바사의 왕

자?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바사 왕자는 페르시아를 지키면서 이

나라를 담당하고 있는 천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어떤 영어 성경에는 이

말이 ?Angel prince of the kingdom of Persia?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바울 사도는 악령(귀신)들에 관해서 묘사할 때 ?정사

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12절)이라고 했습니다. 악령들은

타락한 천사들로서 다스리는 자입니다.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기 위해서

가브리엘 천사가 활동할 때 바사를 지키고 다스리던 악한 영의 역사가 이

십일 일 동안 가브리엘을 막았던 것입니다.

 

천사론을 공부해 보면 개인을 지키는 천사도 있고, 어린아이들을 지키는

천사도 있고, 한 나라를 담당하는 천사도 있습니다. 타락한 천사의 왕이

마귀(사단)입니다. 예수님에게 마귀는 절을 하면 천하 만국을 주겠다고 했

습니다(마 4:8). 그렇게 할 권세가 그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를 ?이

세상의 신?이라고 부릅니다. 마귀는 그의 졸개들인 타락한 천사들에게 각

나라를 주고 정치가의 배후에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 나라의 정치에

관여하고 간섭하면서 역사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영적 전쟁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본문에서 알 수가 있

습니다.

 

이십일 일 동안 가브리엘 천사와, 바사에 역사했던 악한 영 사이의 맹렬

한 전투가 벌어졌을 때 타락하지 않은 미가엘 천사가 와서 도와주었습니

다. 미가엘은 선한 천사들 중에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천사입니다. 그는

요한계시록 12장7절에도 나옵니다. 마귀와 대적할 때마다 하나님이 부리시

는 좋은 천사 가운데 하나가 미가엘입니다. 이 미가엘이 다니엘서 10장에

서 사단과의 전투에 간섭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이

루어지기 시작합니다.

 

셋째로, 기도는 고된 영적 싸움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심각한 기도는 영적인 싸움인 것입니다. 다니엘의 기도

가 끝났을 때의 모습을 보면 기도가 얼마나 무서운 싸움인가를 실감합니

다.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主)의 이 종

이 어찌 능히 내 주로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17절).

다니엘은 힘이 다 빠졌습니다. 그만큼 기도가 힘든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

을 치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고 했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악령과의 전쟁이라는 사

실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기도하실 때 바로 악령들과 싸우신

것입니다. 주님은 큰 사역이 있을 때마다 좀더 심각하고 좀더 처절하고 좀

더 철저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

울같이 되더라?(눅 22:44).

이렇게 기도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를 통해서 그 위대한 하나님의 역

사와 기적과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

다. 이 기도의 욕구가 없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놀라운 일을

행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얼굴의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신 주

님!

 

그런데 이렇게 주님이 기도할 수 있도록 누가 돕고 있습니까?

?사자(使者)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눅24:44).

마치 다니엘이 기도할 때 그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천사들이 역사했

던 것처럼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그 고된 전투에도 천사들의 도움

이 함께했던 것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고된 영적인 싸움입

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 기도의 싸움을 싸울 필요가 있을지 모릅니다. 인생의

심각한 결정 앞에서 주님이 감당하셨던 기도의 자세로 우리의 삶의 과제를

감당할 수 있다면 그 결과는 얼마나 달라질까요? 이렇게 해 보고 저렇게

해 보다가 ?기도나 해 볼까?? 하면 안 됩니다. 주님의 자세에서 도전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승리의 기도는 새 힘을 얻게 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지치게 하는 싸움입니다.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힘든

싸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도를 안 합니다. 기도를 피해 버리는 것입

니다. 그러나 승리의 기도는 우리를 영적인 에너지가 다 소모되어 쓰러진

상태에 그대로 놓아 두지 않고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힘을 얻게 합

니다.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로 강건케 하여 가로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가로되 내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18,19절).

기도를 마친 다니엘이 쓰러졌습니까? 아닙니다. 다시 새 힘을 공급받았습

니다. 기도는 영적인 에너지를 소모하는 참으로 힘든 작업이지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과 도우심이 함께했을 때에 우리는 새 힘을 가지고 일어서게

됩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는

새로운 힘을 가지고 우뚝 솟게 되는 이 기도의 영광과 기쁨과 기도의 엄청

난 저력을 경험하셨습니까?

 

모든 승리의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힘을 얻게 하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저에게 인상적인 것은 이 마지막 부분입니다.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적하는 자는 너희 군(君) 미가엘뿐이니라?(21절).

당신을 돕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놀라운 천사 미가엘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너희 군(천사)?이라 했습니다. 악령도 `prince'

라는 단어로 설명되지만 하나님이 부리시는 놀라운 천사도 `prince'라는

말로 설명됩니다. ?너희 천사?가, 곧 ?영적인 왕자?가 우리를 돕습니

다.

 

천사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구원받을 성도를 섬기는 것입니다(히 1:14).

이 천사들이야말로 우리를 돕기 위하여 파송된 응원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천사들은 우리가 지칠 때 새 힘을 얻게 하며, 기도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일어나야 해, 힘내야 해?라고 해 줍니다. 기도의 마무리 부분

에서 다시 새 힘을 얻고 일어서는 성도들을 보십시오. 승리의 기도는 새

힘을 얻게 합니다.

 

다섯째로, 기도의 싸움은 말씀의 도우심을 동반하여야 합니다.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적하는 자는 너희 미가엘뿐이니라?(21절).

?진리의 글?은 성경을 말합니다. 말씀을 의지하고 붙들고 기도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 사단과의 싸우는

영적인 전쟁에서 우리의 삶을 지키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승리하는 삶을 살

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두 가지 영적인 무기가 바로 기도와 말씀입니다.

이 두 무기 중 어느 한 무기가 녹슬어 버리면 우리의 삶은 흔들리게 됩니

다.

 

당신의 기도 생활은 살아 있습니까?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

며 그분의 거룩한 영광을 보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이 두 개의 놀라운 무기를 가지고 악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영광과 섭리를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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