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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훼퍼(Dietrich Bonhoeffer1906-1945)

by 【고동엽】 2022. 3. 5.

디트리히 본훼퍼


(Dietrich Bonhoeffer, 1906-1945)

 

 

권태경 / 총신대 교수

 

생명의 삶 - 1993년 4월호에서 발췌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와 더불어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물음은 오늘을 사는 현대 크리스천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불의와 싸우며 양심과 말씀에 따라 산 20세가 진정한 독일의 개혁가 디트리히 본훼퍼가 일생동안 고민했던 물음이었다. 이러한 크리스천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디크리히 본훼퍼는 예수님께서 요구한 "나를 따르라"라는 제자의 삶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그 해답을 제시한다. 본훼퍼가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한 시대적 사명인 제자의 삶은 기독교가 현실에 도피적인 자세를 갖지 말고 현실에 관심을 가질 것과, 세상을 세속 공동체로 분리해서 보는 이원론적 사고를 버릴 것과, 종교적 행위보다는 그리스도처럼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며 사는 실천적인 크리스천의 삶을 뜻한다.


본훼퍼는 1906년 2월 4일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의 아버지 카알 본훼퍼는 의사이며 대학 교수였다. 8남매 중 7번째인 본훼퍼는 아버지와 어머니 집안 모두 명문 출신의 전통 있는 가문에서 성장해서인지 그의 신앙과 학문은 어릴 적부터 탁월했었다. 어느 날 본훼퍼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인 아버지에게 "병든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마십시오"라고 설교 아닌 설교를 했는데, 이것을 통해 우리는 동정적인 그의 인간미를 엿볼 수 있다.


17세기가 되던 1923년에 그는 튜빙겐대학과 베를린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그 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목사 견습생으로 목회활동을 시작하다가 베를린대학에서 처음으로 강의를 했다. 그의 초기 생애라 할 수 있는 신학 수업 과정에서부터 이미 그의 재능과 학문적 능력은 교수들로부터 천재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는 1930년 9월 5일부터 뉴욕에 있는 유니온신학교에서 1년간 신학을 연구했으며, 귀국한 후에는 베를린대학의 강사로 취임하여 베를린에 있는 공과대학의 교목이 되었다.


그의 생애에 제2기라 할 수 있는 1933년 1월 3일은 히틀러가 독일의 지도자가 된 날이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후 그가 표방하는 정책은 교회의 권위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베일에 싸인 가식으로 교회 지도자들을 포섭하고 나섰다. 그러나 본훼퍼는 이미 히틀러의 의도를 간파하여 "지도자 개념의 변천"이라는 제목의 라디오 강연을 통해 히틀러 정책의 가식과 위선을 폭로하며 독일 교회의 세속화를 우려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이 강연은 중단되었다.


히틀러의 의도가 이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교회를 자신의 정치에 이용하고자 모든 수단을 강구하며 교회를 정략화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독일 복음주의 교회와 유태인이 저해 요인이었으므로 먼저 그는 유태인과 복음주의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에 본훼퍼는 [교회와 유태인의 문제]라는 책을 출판하여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이후에 시행되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유태인을 탄압하는 뉴렘베르그법은 모든 독일 유태인과 아리안 사이의 결혼을 금하고 있다. 이후 히틀러의 독일 제국은 600개의 유태 교회를 폐쇄하고 7,500개의 유태인 상점을 약탈하며, 35,000명의 유태인을 체포하는 등 유태인 박해를 더욱 강화시켜나갔다. 한 신학자를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생각토록 하며 대담하게 행동하도록 자극시킨 것은 바로 히틀러와 그의 제국이었다.


본훼퍼의 생애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중요한 결정에 주목하게 된다. 첫째는 그가 고백 교회를 택한 사실이다. "고백 교회와 나를 분리하는 것은 나를 구원으로부터 멀리하는 것 같다."고 언급할 정도로 고백 교회에 대한 그의 사명은 대단했다. 그는 교회가 영원한 진리나 원칙들을 선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선포하기 위해 교회가 존재한다고 하면서 바람직한 교회상 정립을 원했다. 이 고백 교회는 히틀러의 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정의와 양심을 따르는 신앙 공동체였다.


본훼퍼의 두 번째 결정은 국가 사회주의에 대한 저항과 혁명에 가담하는 것이었다. 그는 항상 평화를 위해 저항했다. 본훼퍼에게 저항은 교회를 구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련에 처한 인류를 구원하는, 억압받은 사람들을 구조하는 행위였다. 그는 나찌 체제를 전복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의 바람직한 국제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히틀러와 그의 정권에 투쟁한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저항으로 1936년 본훼퍼에게 가해진 법적 구속은 그에게 고통의 시작이었다. 본훼퍼는 이제 더 이상 대학에서 강의할 수 없게 되었으며, 어떤 장소에서도 강연을 할 수 없었으며, 자신의 저서를 출판할 수도 없게 되었다. 한편 본훼퍼가 설립한 핀켄발테의 비밀 목사 연수소 학생이 체포되고 이듬해 독일 비밀경찰에 의해서 이 연수소는 폐쇄되었다. 게다가 27명의 학생들이 투옥당하는 시련이 닥쳤다.


이러한 격동기에 1937년 본훼퍼는 그 유명한 [나를 따르라]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이 저서에서 그는 나찌즘 체제하에서 말씀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가 말하는 제자의 삶이란 불의에 도전하며 저항하는 양심에 따라 사는 삶을 말하며,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하는 삶이다. 요컨데 예수의 제자가 되는 부름은 자신의 고통과 멍에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눅 9:62)


요컨대 제자가 되는 부름에 기다림이 있어서는 알 될 것이며 그 자리를 떠나, 따라 나서는 적극적인 순종의 행위가 있어야 할 것이며 더욱이 조건부적인 은혜를 기다리며 따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제자의 길일 것이다. 히틀러의 탄압이 극심한 시기에도 본훼퍼는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이러한 불안의 시기에 본훼퍼는 미국 뉴욕의 유니온신학교에 초청을 받고 출국했으나 즉시 귀국하게 된다. 1939년 본훼퍼는 니이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가 미국에 온 것이 결국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고통받는 독일 민족을 생각하며 귀국을 서두르게 된다. 그는 그 편지에서 자신이 "어려운 시기에 독일의 크리스천과 더불어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만약 독일 국민들의 시련을 내가 함께 나누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난 후 내가 독일의 개혁운동에 참여할 권리가 없을 것이다"고 자책감을 표현하고 있다.


본훼퍼가 귀국한 후 정세는 급변하여 1939년 9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히틀러의 정권을 반대하는 반나찌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비밀이 누설되어 결국 이 저항운동은 실패하게 되었다. 반나찌 지하조직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그는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까지 저술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본훼퍼의 옥중에서의 서신이나 글들을 통해 우리는 바울의 심정을 연상할 수 있다. 본훼퍼는 자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여기 옥중에서의 나의 생활은 다른 곳과 크게 차이가 없이 나는 독서하며 명상하며 저술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하면서 옥중 생활을 자신은 고통으로 여기지 않았다. 또한 그는 "형무소의 창문을 통해 교회 십자가 탑을 보는 것이 너무 기쁘다"고 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전하고 있다. 본훼퍼는 옥중에 있는 동료들을 위해 1943년 크리스마스날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 오 하나님, 이른 아름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저에게는 어두움이 있지만 당신에게는 빛이 있고, 저는 고독하지만 당신은 결코 고독한 저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저는 당신의 방법을 이해 못하지만 당신은 저를 위한 최상의 길을 알고 계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은 인간의 모든 고통을 잘 알고 계십니다. 제가 당신을 알고 당신께 돌아가는 것이 당신의 뜻입니다. 주여, 제가 당신의 부르심을 듣고 따르겠사오니 저를 도와주옵소서."


다른 한편, 옥중에서 본훼퍼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그의 개혁 사상을 전하고 있다. "오늘날 성숙된 세계는 복음에 무관심하며 더 이상 복음에 귀를 기울일 수도 없는 비종교적인 세계로 변모했다. 따라서 이제 교회는 교회 자체만을 위해 발전시키는 일과 광적인 신앙을 멈추어야만 하며 그리스도가 행한 것처럼 남을 위해서 이 세상에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야만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 안에서 세상과 더불어 세상을 위해 존재하고 고통을 받아야만 한다."고 본훼퍼는 자신의 교회관을 전하고 있다.
또한 테겔 형무소에서 본훼퍼는 복음을 순종할 때 보상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레위기26:6을 묵상하고 있었다.


37세가 되던 1943년 4월 5일 마리엔부르거 알레에 있는 본훼퍼의 자택이 수색을 당했는데 그는 그곳에서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당하여 베를린에 있는 테겔 형무소로 이송되어 18개월 동안 투옥되었다. 히틀러의 암살 시도가 1944년 7월 20일 실패로 돌아가고 그해 10월 8일 본훼퍼는 프린쯔 알브레히트 거리에 있는 감옥으로 이송되고, 이후 독일군의 참패로 여러 지역으로 이감되다가, 1945년 플로센부르크 포로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져 그의 생애는 39세로 마감되었다.


본훼퍼의 단두대 처형을 지켜본 피셔 훌슈츠룽 박사는 "본훼퍼가 죄수복을 벗기 전에 열정적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단두대에 오르는 그의 모습은 매우 대담했고 침착해 보였다"고 당시를 회고하면서 "내 50평생에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본훼퍼 같은 사람을 결코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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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훼퍼신학사상

 

목 차

서 론 2


Ⅰ. 본회퍼의 생애 2

 

1. 신학적 형성의 시대(1906-1931) 2

2. 신학적 응용의 시대(1932-1939) 4

3. 신학적 결단의 시대(1940-1945) 5

 


Ⅱ. 본회퍼의 신학적 배경 7

 


1. 루터 신학의 영향 7

2.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 8

3. 실존주의 신학의 영향 8

4. 바르트 신학의 영향 9

 


Ⅲ. 본회퍼의 사상: 기독론 중심 10

 

1. 그리스도론 10

2, Nachfolge(나를 따르라) 11

3. 윤리학 12

4. 비종교화 13


결 론 16


참 고 도 서 목 록 18

 

 

 


서 론

 


한 인물의 인격과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삶의 자리를 떠나서는 바로 이해할 수가 없다. 특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1906-1945)에게 있어서는 그의 사람됨과 사상이 그의 삶의 자리와 너무나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본회퍼는 신학자와 목사로서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여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활동했으며 어느 누구보다도 그의 사상에 따라 충실히 행동한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 그는 많은 변화와 격동기에 살았기 때문에 그의 삶은 단편적이요, 모든 계획과 글들도 단편적이다. 대학시절과 베를린 시절을 제외하면 그의 글들은 걸어가며 생각하고 피해 다니며 쓴 것들이다.

 

본회퍼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이 논문은 먼저 그의 생애를 신학적 형성과 응용, 결단의 시대로 구분하여 연구하고, 그 후에는 본회퍼의 신학적 배경으로 루터, 자유주의, 실존주의, 그리고 바르트 사상의 영향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그리스도론, Nachfolge(나를 따르라), 윤리학, 비종교화를 중심으로 그의 기독론 중심의 사상을 논하고자 한다.

 

 

Ⅰ. 본회퍼의 생애

 


갓세이는 본회퍼의 생애를 사상의 변화와 시대적 변동에 따라 신학적 형성의 시대(1906-1931), 신학적 응용의 시대(1932-1939), 그리고 신학적 결단의 시대(1940-1945).로 나누고 있다.1

 

 

1. 신학적 형성의 시대(1906-1931)

 

본회퍼와 그의 쌍둥이 누이 사빈은 1906년 2월 4일 독일의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교회사가 칼 폰 하제이고, 본회퍼의 아버지 루드비히 본회퍼는 외과의사였다. 1912년 본회퍼의 가정은 베를린으로 이사왔고 부친은 베를린 대학의 정신분석학 교수가 되었다.2 본회퍼 일가는 1513년 화란에서 이주해온 루터교적 전통을 가진 경건한 집안이었다. 본회퍼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스포츠를 좋아했고 음악을 즐기며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한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엔 고전뿐 아니라 철학에도 관심을 가져 랑케, 폰 하제(증조부), 플로티누스, 줄리안 황제, 슐라이엘마허의 <종교론>, 프리드리히 나우만의 <종교에 관한 글들>을 읽었으며, 퇴니스(Tonnis)의 <공동체의 사회> 그리고 막스 베버를 읽었다.3

 

그는 1923년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튀빙겐대학에 입학하여 신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본회퍼는 이미 그의 가정을 드나들던 하르낙, 트뢸취 및 베버의 사상에 접촉했고 튀빙겐에서 유명한 신약학자 슐라터와 하이트뮐러, 그리고 하임에게서 수학했다. 1년후(1924) 베를린으로 옮겨 공부하는데 여기서는 다이스만과 리츠만, 교회사가 하르낙, 구약교수 젤린에게 배웠다. 특히 루터 부흥기의 학자였던 홀과 제베르크에게서 신학을 배웠다. 학생으로서의 본회퍼는 조숙하였고 독립심이 강하였다. 그는 베를린의 자유주의를 단순히 방관한 것도, 칼 바르트 같은 신학자를 그대로 추종하지도 않았다.

 

1927년 본회퍼는 제베르크의 지도하에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그 제목은 「성도들의 교제: 교회의 사회학에 대한 교의적 탐구」 (Sanctorum Communio: A Dogmatic Investigation of the Sociology of the Church)였다. 본회퍼는 이 작품에서 계시와 교회를 긴밀히 연결시키고 있으며, 바르트는 이것을 가리켜 “신학의 기적”이라고 극찬하였다.4 1929년 스페인에서 베를린 대학으로 다시 돌아와 교수가 되기 위한 논문을 제출했는데, 이것이 1930년에 끝마친 「행동과 존재: 조직신학에 있어서 초월주의적 철학과 존재론」 (Act and Being: Transcendental Philosophy and Ontology in systematic Theology)이었다. 1930년에 미국을 방문한 본회퍼는 거기서 미국교회들이 교회와 삶을 강조, 교회의 사회, 정치, 경제문제의 정열적 관여, 참 형제다운 교제와 에큐메니시티의 생활화를 보았다.5

 

 

2. 신학적 응용의 시대(1932-1939)


1931년에 본회퍼는 미국에서 베를린 대학으로 다시 돌아와 강의를 시작하는데 목사로서 본회퍼의 활동은 약 2년반 동안의 베를린 대학의 교수생활을 제외하면 거의 나치에 대한 항거운동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베를린 대학은 자유주의 신학이 지배했으나 본회퍼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 그냥 동조하지 않고 바르트적인 위기신학, 계시의 신학, 혹은 변증법적 신학을 루터적인 요소와 함께 자기 나름대로 가미시켜 나갔다.6

 

1931년 독일의 상황은 히틀러의 민족주의적 사회주의를 낳게 하는 산파역할을 했는데, 독일의 민족, 피, 흙은 히틀러 중심으로 용솟음쳤다. 게다가 사회적 불안과 러시아의 불세비즘의 끊임없는 위협은 독일의 민족주의를 불러 일으켰고 1930년 선거 이후 국회에서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이 12석에서 107석으로 급증했다. 이때 본회퍼는 3주간 본(Bonn)을 방문하며 바르트를 만났으며, 그리고 이 때부터 본회퍼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본회퍼는 이 에큐메니칼 관계를 통해 히틀러의 진상을 자유진영에 알릴 수 있었고 또한 “에큐메니칼 운동에의 참여는 본회퍼의 신학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7

 

본회퍼가 강단에서 활약했던 1932년은 히틀러의 민족주의적 사회주의가 교회의 영역까지 침투해 들어왔다. 국회에서 나찌당이 230석이 됨에 따라 독일은 나찌당에 장악되었고 독일의 목사들은 기독교외 민족주의적 사회주의를 종합하기 위한 운동으로 “독일 기독교 신앙운동”에 가담하였고, 독일교회는 복음과 이념을 혼동하게 되었다.8 뿐만 아니라 본회퍼의 스승인 노학자 제베르크(당시75세)도 “우리는 건전한 역사적 양심에서 희랍 또는 라틴 형태의 기독교 형태와 나란히 해서 독일적 형태의 기독교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고 말하며 찬동의 표시를 했다.9

 

1933년 1월 30일 히틀러는 제3독일의 원수가 되었다. 그런데 1933년 2월 1일 본회퍼는 베를린 방송을 통하여 “젊은 세대에 있어서 지도자상의 변화”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는데, 이 때의 강연은 도중에 중단되었고 이때부터 본회퍼는 나찌당의 감시를 받기 시작했다. 또한 이때 히틀러의 친구요 자문격인 군대 군종 뮐러가 독일 교회의 총 책임자로 등장하여 유대인의 피가 섞인 사람들이나 유대인과 결혼한 사람은 도저히 교회의 직책을 수행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때에 히틀러와 “독일 기독교인들”에 대한 항거운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본회퍼도 이들 복음주의자들의 히틀러 항거운동에 가담하였다. 이러한 반 히틀러 투쟁의 와중에도 본회퍼는 1933년 여름 베를린 대학에서 기독론에 대한 강의를 하였는데 도중에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 1933년 여름에 휴가를 얻어 런던에 있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교회의 목사가 되어 목회적 의무를 다 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더 손을 뻗칠 수 있었으며 독일 밖에서 독일교회의 반 히틀러 투쟁의 대변인이 되었다. 1934년 5월 27일-31일 바르멘(Barmen)에서 ‘고백교회’의 회의를 가졌고, 여기서 채택된 “바르멘 선언”은 직접적으로 독일적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항거요, 간접적으로는 나치정권에 대한 분명한 거부이며, 이는 현대교회사에서 잊을 수 없는 그리스도 신앙고백의 증언이 되었다.10 본회퍼는 핀켄발더(Finkenwalde)에 새로 건립된 비합법적 고백교회 계통 신학교를 책임 맡게 되고 여기서 본회퍼는 “형제의 집”을 창립하고 신학생들과 더불어 초대교회적인 혹은 흡사 중세 수도원적이기도 한 성도의 공동생활을 영위하였고 구체적인 성도들의 공동체가 구현되었다.

 

1935년 집필하여 1937년에 출판한 「Nachfolge」는 본회퍼를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본회퍼는 「Nachfolge」 (나를 따르라)에서 주로 산상수훈을 해석하는데 결코 개인주의적이 아니라 교회와 세상의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산상수훈을 풀이하였다. 그리고 “값싼 은총”을 비판하고 제자의 길이 얼마나 값비싼 은총이요, 값비싼 순종인가를 말하고 있다.11 그리고 1939년에는 「Gemeinsame Leben」 (신도의 공동생활)을 출판하는데, 이 작품은 핀켄발더에서의 공동생활을 토대로 한 것이다.

 

 


3. 신학적 결단의 시대(1940-1945)


본회퍼는 니버와 레만의 초빙으로 1939년 6월 12일 다시 미국 뉴욕에 도착하였다. 1년동안만 머물기로 약속하고 초빙을 수락한 것이었다. 그러나 본회퍼는 도착하자마자 독일에 남겨두고 온 형제들에 대한 생각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고 결국 그는 독일로 자유롭게 귀국할 것을 결심하였다. 본회퍼는 영국을 경유, 1939년 6월 25일에 독일에 도착하였다. 본회퍼는 미국에서 귀국하여 다시 핀켄발더 신학교를 돌봤으나 1940년 3월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또 본회퍼는 독일 어디에서도 설교와 강연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글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3년 동안 본회퍼는 고백교회 총회를 위하여 일했고 무엇보다 히틀러 치하 저항운동을 위해서 투신했으며, 윤리학을 쓰는데 에 총력을 기울였다.12

 

그런데 1940년 여름 이후 본회퍼는 독일 군부내 군정보부에서 정보부장 부관으로 일하는 그의 매부 도나니의 알선으로 정보부가 채용한 민간인 요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결국 히틀러 암살 음모는 그의 매부 및 고위층의 반 히틀러 세력들이 군정보부와 더불어 시도했던 것인데, 본회퍼는 여기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본회퍼는 그의 매부, 군정보 요원, 군지휘관, 정치인들과 결탁 히틀러 암살에 나섰다. 이 때에 본회퍼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즉, “미친 사람이 모는 차에 희생되는 많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만이 나의 과제가 아니다. 이 미친 사람의 운전을 중단시키는 것이 나의 과제이다.” 전쟁이 터지자 본회퍼의 히틀러 암살계획은 더욱 굳어졌다. 그는 히틀러를 적 그리스도로 간주하였다.


1942년 가을에 본회퍼는 약혼하고 1943년 3월에 두 차례 히틀러 암살시도에 실패하였다. 1943년 4월 5일 본회퍼는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18개월 동안이나 베를린에 있는 테겔(Tegel)형무소에서 보냈다. 그는 그곳에 투옥되어 있는 동안 성경은 물론 문학, 과학, 역사, 신학 등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읽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도 계속 될 수는 없었다. 히틀러의 특별지령에 따라 본회퍼는 처형될 인사들의 명단에 실렸다.


1945년 2월 본회퍼는 부헨발트(Buchenwald)에 있는 강제 수용소로 옮겨졌다. 그는 유럽 여러 곳에서 체포되어온 유명 인사와 합류했고, 1945년 4월 3일 플로센부르그(Flossenburg)에 있는 강제 비밀경찰 강제수용소로 옮겨졌다. 1945년 4월 9일 동틀 무렵 본회퍼는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나 그는 20세기의 순교자의 죽음을 죽은 것이었다.13

 

 


Ⅱ. 본회퍼의 신학적 배경

 


본회퍼는 그 시대적 사상가로서 자기 시대를 풍미한 여러 사상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러한 사상의 맥을 잇게 해준 전통이 없이는 본회퍼도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신학적 배경을 살펴봄으로 우리는 본회퍼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루터신학의 영향과 자유주의 신학, 그리고 실존주의 신학의 영향과 바르트 사상의 영향을 살펴보려고 한다.

 

 


1. 루터 신학의 영향


본회퍼는 본래 루터교 신학의 전통 위에 뿌리박은 루터란 이었다. 그래서 본회퍼의 사상의 중심에는 루터의 사상이 늘 자리하고 있는데 이것은 베를린 대학시절 그의 스승인 칼 홀과 제베르크의 영향이며, 두 선생님은 루터 해석에 있어서 전적으로 그에게 중요성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본회퍼는 칼 홀에게서 믿음으로 옳다고 인정받는 것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고, 희랍 정교회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되었으며 베드자예프와 도스토예프스키도 읽게 되었다.14

 

필립스는 홀과 제베르크를 논하면서 홀은 특히 루터의 해석에 가깝다고 보았으며 본회퍼는 홀을 비평하였으나, 홀의 루터 세미나는 본회퍼로 하여금 누구보다도 루터를 사랑할 수 있게 하였다. 루터의 신학적 전통 위에서 해석하는 프렌터는 본회퍼의 신학을 루터의 십자가의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했다. 마틴 말티는 <본회퍼의 위치>라는 책 서문에서 “본회퍼는 어떻게 해서든지 역사적인 칼빈파 계통과 루터파 계통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한 것 같다”고 전제한 후, “유한한 것은 무한한 것을 가지거나 보여 줄 수 없다”는 칼빈주의 신앙양식을 거부할 때에는 언제나 루터파였다”고 말한다.15

 

하나님 이해에 있어서도 루터의 영향을 볼 수 있는데 홀과 제베르크는 루터가 하나님을 ‘actus purus'로 이해했으며 순수한 행위로서 이해했다는 견해를 가지는데, 본회퍼는 이러한 하나님의 개념과 이러한 해석을 채택하였다. 결국 본회퍼는 루터의 사상적 영향을 깊이 받았으며 이 루터의 영향은 그의 스승인 홀과 제베르크로 말미암았다고 할 수 있다.

 

 

2.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


자유주의 신학이 신정통주의 신학에 의해 서서히 쇠퇴해갈 무렵 본회퍼는 베를린 대학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거성들인 하르낙과 트뢸취 그리고 칼 홀과 제베르크 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베트게는 “트뢸취의 기독교의 사회학적 흥망, 칼 홀의 루터의 재발견, 하르낙의 지적 부패성, 제베르크의 철학적 개방성”등이 본회퍼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본회퍼는 하르낙에게서 초대교회사를 공부하였고 또 역사적 배경의 방법을 훈련받았다. 제베르크에게는 조직신학과 신학적 논쟁을 배웠다.16

 

본회퍼에게 있어서 그의 신학적 발전의 직접적인 영향은 베를린 대학의 자유주의 신학의 전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스승들의 자유주의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나, 그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실로 큰 것이었다. 본회퍼의 지적인 청렴은 하르낙으로부터, 루터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칼 홀로부터, 사회학적 안목은 제베르크로부터, 그리고 에큐메니칼의 문을 열어준 것은 다이스만으로부터 받은 것들이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는 입장이었으나 그것의 장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17

 

 


3. 실존주의 신학의 영향


본회퍼의 신학이 세상을 향해 개방되어 있으며 실존론적인 그리스도의 의미를 찾으려했던 것은 전적으로 불트만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불트만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 자신이 우리의 실존을 파악하기를 원하는가 ?”라고 질문을 던지고 여기에 대해 “대상과의 현실적인 만남”을 강조하였고, 결국 그는 신약성서의 사건들을 비신화화(Demytholyzation)하여 실존론적 해석의 길을 걸었다. 본회퍼는 불트만의 이런 해석학적 방법을 따랐음을 그의 옥중서간을 통해 알 수 있다.

 

에벨링은 “본회퍼는 불트만과 신화를 제거하는 것을 거부하고” 해석을 요구했고 또한 비종교적 해석을 요구한 점에서 ‘비신화적’이라는 말과 ‘비종교적’이라는 말을 같이 보았다. 그러나 그는 본회퍼가 불트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보았다.18 본회퍼의 비종교적 해석을 불트만의 비신화화에 비교할 수 있다면, 그들의 차이점은 불트만은 지적이었고, 본회퍼는 정신적, 정치적 의미에서 보다 더 행동적인 사람이었다. 불트만이 루터교 신학자로서 구원의 자유한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을 강조했다면, 본회퍼는 단순히 “죄인이 옳다고 인정받는 것”보다는 세상적 책임성의 문제에 보다 더 관심을 가졌다. 그러니까 불트만은 해석학에 더 관심을 가졌다면, 본회퍼는 윤리적 측면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19 본회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비종교화인데, 신약성서의 비종교적 해석은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현실로 이 세상 속에서 실현해야 하는 문제인데 이러한 비종교화의 개념에 대해서 불트만의 깊은 사상적 영향을 엿볼 수 있다.

 

 


4. 바르트 신학의 영향


본회퍼의 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바르트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바르트의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웬펠은 “본회퍼 신학의 근원은 의심할 여지없이 칼 바르트이다. 그의 계시론, 인식론, 특히 신학의 방법론에 있어서 그는 충실한 루터의 신학자이며, 동시에 바르트의 신학자이다”고 말함으로 바르트의 영향이 큼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20 본회퍼에게 끼친 바르트의 결정적인 영향은 “로마서 강해”와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 그리고 잡지 “중간시대” 때문이며21, 1927년에 쓴 성도의 교제는 헤겔과 제베르크의 용어를 사용했지만, 결정적으로 바르트의 초기 변증법적 신학의 산물이다. 「성도의 교제」는 결정적으로 바르트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다만 그는 바르트의 계시의 행동에 대해서 계시의 존재의 면을 강조 하였던 것이다.22

 

그러나 이러한 바르트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행동과 존재」에서는 바르트의 초월주의적 계시신학을 극복하며 후기에 가서는 오히려 바르트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여기서 바르트와 본회퍼를 비교해 보면 바르트는 교의학적으로 발전하였고 본회퍼는 윤리적, 설교적으로 발전하였다. 바르트의 관심은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으로 향해 움직이는 계시의 문제라면, 본회퍼는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론, 즉 접근과 계시의 세속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23

 

 

 

Ⅲ. 본회퍼의 사상: 기독론 중심

 


본회퍼의 기독론 강의와 여러 가지 저술들은 그의 사상이 기독론 중심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기독론은 본회퍼 신학의 한복판에 놓일 만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에 관한 그의 사상의 밑바탕으로 남아있다. 본 장에서는 그의 사상에 있어서 기독론을 전체적으로 흐르는 공통분모라고 보면서 그리스도론, Nachfolge(나를 따르라), 윤리학, 비종교화를 중심으로 그의 사상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1. 그리스도론


1933년의 그리스도론은 그해 베를린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이며 그의 강의 초안 그대로도 아닌 학생들의 강의 노트를 복원한 것이다.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째는 “현재적인 그리스도”이고, 둘째는 “역사적인 그리스도,” 셋째는 “영원한 그리스도”이다. 세 번째 부분은 아직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다. 이 책에서 그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았으며, 역사적인 그리스도일지라도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나를 위한” 그리스도로서 존재하신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주장한 이 대리직은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 전체를 위한 것이다.24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에서 중심은 “예수는 누구인가 ?”라는 그리스도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다. 예수-그리스도는 누구냐의 문제는 인간 예수-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문제이다.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은 도그마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하는 그리스도,” “나를 위해 현재하는 그리스도”에서 출발한다. 본회퍼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그리스도의 낮추심을 주의해서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역사적 예수는 “낮아짐”이며 동시에 “높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낮아진 자이며 동시에 높아진 분으로서의 인간이다. 선포에서 다시 살아나시고 높아지신 그 분은 그의 낮아짐 속에 현재한다. 이 현재는 교회 안에서 세 가지 형태를 가진다. 즉 말씀으로서, 성례전으로서, 공동체로서의 그리스도이다.25

 

그리스도가 말씀으로서 그리고 그 말씀 안에 성례전으로서 임재함 같이 그렇게 그는 교회로서, 교회 안에 임재한다. 말씀과 성례전과 교회안에 임재하는 분은 인간 존재의 중심 안에 존재한다. 그리스도가 인간 존재의 중심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진 실패한 율법 앞에서 율법의 성취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역사는 약속과 성취 사이를 살아간다. 역사의 의미는 십자가 위에서 끝난 한 사람의 깊음과 숨겨짐 안에 자리잡은 한 사건과 함께 맺어진다. 역사의 의미는 낮아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이 사건으로 역사는 자체의 약속을 가지고 성취의 역사를 향한 경계로 나아간다. 십자가 부활이후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임재함으로 교회 또한 역사의 중심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국가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한 역사의 중심이다. 교회가 국가의 중심임은 교회가 국가의 경계임을 말한다. 완전한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 안에 임재하며 이 교회는 국가의 숨겨진 중심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존재를 해석한다. 이 그리스도론적 인간이해 없이 본회퍼는 “윤리학”을 쓸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를 위한 존재”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해없이는 “타자를 위한 존재”는 이해될 수가 없다. 결국 그리스도는 율법의 성취자이며, 피조물의 해방자로서 인간존재의 전체를 위해서 행동하는 중보자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시는 초월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형태를 가진 이 세계 안에 있는 실체 즉, 교회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이다.26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성육하신 분으로서의 예수-그리스도와 낮아지고 높아진 예수-그리스도로 종합한다고 볼 수 있다.

 

 


2, Nachfolge(나를 따르라)

 

본회퍼의 삶의 제2시대에 저술된 「나를 따르라」에 나타난 “제자직”은 세상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이 특징이다. 세상과 구별되는 제자직은 “거룩하게 되는 것”을 요구하며, 구별의 기준을 요구한다. 제자직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비롯되어 “따라오라”는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의 “복종”의 삶에서 성립된다. 제자직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에서 시작되며, 믿음의 진위는 복종에 의하여 판가름 난다. 따름은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27 본회퍼의 제자직의 표준과 푯대, 중심의 위치에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 교회, 성서가 자리하고 있다. 본회퍼의 제자직은 부름의 문자 그대로의 이해, 문자적 단순한 순종을 요구한다. 그의 제자직에서 믿는 자는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는 믿는다. 믿기 전에 먼저 순종의 첫발이 필요하다. 순종치 않는 자는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순종의 첫걸음으로 마련된 새로운 상태가 따르는 자로 하여금 믿을 수 있게 한다. 따라감으로 구원을 얻는 일은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이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28

 

제자직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고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떠남에서부터 시작된다. 제자는 오로지 예수의 말만 듣고 따르며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 때문에 버리는 사람만 그의 말을 들을 수 있고 따를 수 있다. 이렇게 예수를 따름으로 세상에서 구별되고, 세상과 달라지는 것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회퍼의 제자직은 예수를 따르며, 본받고 사는 삶을 의미한다. 본회퍼의 제자직은 십자가에서 서고 넘어지며, 살고 죽는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괴로움에 자신을 매는 일이다.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이기 위하여 고난과 버림을 받았듯이 제자들도 제자이려면 고난과 버림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십자가는 수난이요 구체적으로 버림을 받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버림을 받는 것이다. 십자가는 고난의 핵심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다. 본회퍼에게 있어서 옳은 교회, 제자직의 표시는 고난이다. 따름은 그리스도의 괴로움에 자신을 매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외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은혜요 기쁨이다.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짐을 지고 참는데 있다. 그리스도가 참음으로 아버지와 같이 있는 것 같이 제자의 참음은 그리스도와 같이 있는 것을 뜻한다.29

 

본회퍼에게 있어서 제자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결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따르는 자는 언제나 그의 주님만을 바라보고 그를 따른다. 본회퍼에게 있어서 예수를 따르는 자라 함은 하나님을 본받는 자라는 뜻이다. 본회퍼의 제자직의 최후 과제는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본받고 닮는 삶이며 이 때 제자가 본 받아야 할 그리스도의 형상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모습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이 땅 위에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이다. 따라서 본회퍼에 있어서 제자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다.

 

 


3. 윤리학


윤리학은 성육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자이신 그리스도와 동참하는 일이다. 본회퍼의 윤리학은 영광의 윤리학이라기보다 하나의 십자가의 윤리학이다. 인간이 하나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의 삶이 형성되는 것이 바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선하게 되어야 한다거나, 세상의 상황이 나의 행동으로 더 좋아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인 실재로서의 하나님은 그 자신을 보여 주시고 나타내시고 계시하시는 분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아니시라는 것이다.30

 

본회퍼는 고정화된 윤리를 거부한다. 크리스챤의 생활은 이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얻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봉사하는 세상적 방법속에 들어가서 자기의 삶을 애써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회퍼에 있어서 윤리적 행동이란 한편으론 현실성에 준한 행동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이다. 이 양자는 같은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윤리적 상황에서 책임있는 행동을 하기 위한 중요한 구조적 개념인 것이다. 본회퍼는 플렛처가 그의 상황윤리의 축을 ‘사랑’에 두었다면 그는 보다 신학적인 토대 위에 ‘현실적인 것’을 강조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이며 그의 성육신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러므로 본회퍼는 플렛처의 사랑의 윤리가 갖는 약점을 극복하고 있다.

 

 

4. 비종교화


“기독교의 비종교화”, 분명히 말해서 “성서적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이란 제목은 1944년 4월 30일자의 편지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뒤, 두 번(1944년 7월 8일과 동년 7월 16일에) “성서적 용어의 비종교적 해석”이란 말을 사용했고, 또 한 번은 “신학적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1944년 6월 8일자 편지)이란 말도 사용했다. 비종교적인 해석은 간단히 “비종교적 기독교” 또는 “종교 없는 기독교”로 불리우기도 한다.

 

비종교적 해석은 첫째, 그리스도론적 해석이다. 하나님은 가장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전능과 초월은 예수 그리스도의 타자를 위한 삶이다. 신앙은 이 예수님의 존재(성육신, 십자가, 부활)에의 참여이다. 하나님의 초월은, 절대자, 형이상학적 존재, 무한자로서가 아니고 인간의 형태속에 있는 하나님이고,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인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전능은 이 낮아지시고 고난을 받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에서 나타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종교)는 최고의 존재, 절대자에 대한 종교적 관계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타자를 위한 새로운 삶이다.

 

둘째, 세상적 해석이다. 세상적 해석이란 이 세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 세상을 긍정하는 신앙, 세상 속에 사는 신앙이다. 그것은 구약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종교와 다르다. 종교적인 사람은 필요와 두려움으로부터, 죄와 죽음으로부터 무덤을 넘어서 더 좋은 세계로의 영혼의 구원에 대한 개인주의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구약은 의와 땅위의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한다. 우리가 관심하고 있는 것은 다음 세상이 아니라 창조되고 보전되고 속량되고 새롭게 된 이 세계이다. 구약의 신앙은 이 세상적이라는 것이다.

 

셋째, 고난에 참여하는 삶이다. 비종교적 해석은 그리스도인을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고난에 참여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삶 그대로를 사는 하나의 인간, 순수한 인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은 어떤 종교적인 행동이 아니고 세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넷째, 교회의 참된 사명의 수행이다. 교회는 단순히 신앙 고백을 수정하고 목회훈련을 개혁하는 것만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서 타자를 위한 존재, 가난한 자를 도와주고 섬기는 교회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삶으로 말하고, 추상적으로가 아니고 구체적 모범으로서 가르치는 곳이다.31

 

마지막으로 본회퍼의 신학의 적극적 평가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기독교의 비종교화”는 본회퍼 자신의 삶에서 실증으로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교회는 “값싼 은혜의 기초” 위에서는 생존할 수가 없고, “나를 위한”(Pro me) 그리스도,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버림받은 상태로 내 맡기는 결단, “십자가”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는 이것을 “기독교의 비종교화”라는 개념 속에서 말하였다. 그는 기독교를 재해석하려고 했다. 추상적 구원의 종교가 아니고 여기서, 지금 삶에 대한 책임성을 지는 기독교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Saviour)라고 하는 대신에 책임적 인간, 타자를 위한 존재, 위임, 대리적 삶, 삶의 중심성 등의 비종교적 언어를 사용했다.

 

기독교의 비종교화는 오늘의 시대에 대한 기독교의 고도의 변증적인 시도이며, 생존방식의 발견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 시대에 대한 본회퍼의 예언자적인 통찰과 성서의 진리에 대한 확고한 신앙, 그리고 진리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그의 총명과 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여러 도그마나 전통적 기독교의 예배 의식을 부정하고 예배행위, 기도, 신앙의 훈련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는 어떤 새로운 기독교를 가져오려고 한 신학의 시도도 아니다. 이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는 분명히 현실의 기독교의 강조이다. 항상 기독교를 위협하는 기독교의 이원론적인 사고, 거룩과 세속, 영과 육,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이원론적 구분의 사상을 철저하게 배려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의 현신이요, 또 이 세상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유리된 신앙이 아니고 현실 속의 신앙이다. 본회퍼가 강조한 기독교는 어떠한 추상성도 용납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구체적 현실의 기독교이다.32

 

 

결 론

 


지금까지 본회퍼의 생애와 사상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본회퍼는 동과 서, 개신교와 로마교,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성직자와 평신도, 신학자와 행동주의자 칼빈파와 루터파 사이에 하나의 상징처럼 서 있는 인물이다.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나를 위한 그리스도”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분으로서의 그리스도”이다. 초기의 존재론적이고 실존론적이던 그리스도론은 “나를 위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면 후기의 윤리적, 세속화 된 그리스도론은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그리스도”라 할 수 있다. 본회퍼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가 현존하고 있다는 것은 나를 위한 존재로서이다.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 안에서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나와의 관련성 속에서 그리스도이다.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그분이 나를 위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나를 위한 존재로서의 그리스도는 이제는 타인을 위한 존재로서 세속화된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의 삶을 제시해 준다.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성속(聖俗)을 구별할 것이 아니라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 화해된 세계라는 것을 세상에 대해서 증거하여야 하며, 세속적인 삶을 통해서 거룩함을 드러내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회퍼의 삶의 제2시대 즉 전기에 저술된 「나를 따르라」에 나타난 “제자직”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짐으로 하나님을 본받는 것을 의미한다. 본회퍼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곧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 십자가의 고난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것이며 어리석은 것이다. 에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세상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고 십자가의 고난을 자신하여 당함으로 세상과 구별되며 거룩하게 된다. 이것이 본회퍼가 말하는 전기의 “제자직”의 의미이다. 이러한 제자직의 의미와 내용은 본회퍼의 삶의 후기, 특히 옥중 생활에서 변화를 겪게 되는 데 본회퍼의 삶의 상황과 역사적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윤리학은 성육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자이신 그리스도와 동참하는 일이다. 본회퍼의 윤리학은 영광의 윤리학이라기보다 하나의 십자가의 윤리학이다. 본회퍼는 고정화된 윤리를 거부한다. 크리스챤의 생활은 이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얻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봉사하는 세상적 방법속에 들어가서 자기의 삶을 애써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회퍼에 있어서 윤리적 행동이란 한편으론 현실성에 준한 행동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이다.

 

본회퍼가 강조한 기독교는 분명히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의 강조이다. 17세기 종교개혁 이후 부당하게 뒤로 물러갔던 교회의 사회적 역할의 부활이고, 신앙의 뒤로 불러갔던 전통적으로 성화라고 하는 그리스도인의 복종의 강조이다. 그것은 고귀한 은혜의 재발견이다. 한 마디로 본회퍼가 요구한 기독교는 “제자직(Nachfolge)의 교회”란 말에서 종합될 수가 있다. 케리그마, 코이노니아의 교회 위에 ‘디아코니아’(봉사)를 현대에서 강조한 것이다. 본회퍼가 앞으로 요구될 기독교에 필요한 요소로서 보았던 것, 그리고 “기독교의 비종교화”란 표현에서 말하려고 했던 것은 이 “제자직”의 교회였다.

 

본회퍼는 고정화된 윤리를 거부한다. 크리스챤의 생활은 이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얻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봉사하는 세상적 방법속에 들어가서 자기의 삶을 애써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회퍼에 있어서 윤리적 행동이란 한편으론 현실성에 준한 행동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결여된 교회는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여러 전통과 틀을 만들게 되어 있다. 카톨릭의 경우가 복음과 그리스도가 빠진 교회를 추구함으로 인해 진리는 퇴색되고 외형적인 행습에 무게를 두는 것이 큰 문제이다. 본인은 본회퍼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하면서 자칫 오늘날 우리의 교회안에 복음과, 자유와, 행위와, 본을 보이는 삶, 이 모든 것이 균형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한번 생각 할 수 있었다. 행동하는 목회자로 주님께 충실한 신학자로 순교 하기까지 순탄치 못한 삶을 살다간 본회퍼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참 고 도 서 목 록

 


박봉량. 「기독교의 비종교화」. 서울: 범문사,1980.


이형기. 「교회와 사회」. 서울: 장로회신학대학출판부, 1987.


Bonhoeffer, Dietrich. 「본회퍼의 그리스도론」. 조성호 역. 서울: 종로서적, 1989.


Bonhoeffer, Dietrich. 「나를 따르라」. 허혁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1.


Marty, Martin E. 「본회퍼의 사상」. 배한국 역. 서울: 컨콜디아사, 1982.


Martin, Marty E. 외 편. 「기독교 신학자 핸드북」. 신경수 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Bethge, Ebehard. Dietrich Bonhoeffer. New York: Harper Row, 1970.


Godsey, John D. The Theology of D. Bonhoeffer.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0.


Pumas, Andre. Dietrich Bonhoeffer, Theologian of Reality. London: SCM Press, 1971.


Phillips, John A. Christ for Us in the Theology of Dietrich Bonhoeffer. New York: Harper & Row, 1967.

 

Roark, Dallas M. Dietrich Bonhoeffer. Texas: Word Books, 1972.


Woelfel, J. W. Bonhoeff's Theology. Nashville: Abingdon Press, 1970.


박봉량 “기독교의 비종교화”. 「신학사상」. 제12집 (1976년 봄), 149-155.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생애와 사상 /http://blog.daum.net/anink/1310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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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연구

 

Ⅰ. 서론

20세기 후반 신학의 큰 특징은 신학의 관심과 강조점이 바뀐 데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으로, 하늘로부터 땅으로,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정통교리로부터 정통실천으로 전환되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신앙보다는 타인을 위한 삶이, 말씀 전파보다는 인간의 인간화가 강조되었다. 한마디로 세상성에 대한 발견의 고조와 1960년 이후 기독교는 전반적으로 세속화되고 신학은 급진화 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역할을 한 사람이 본회퍼였다.
그의 핵심사상이자 혁명적 개념인 무종교적 시대와 무종교적 기독교, 성인된 세계와 성서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은 기독교 신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는 젊은 신학자들에게 감명을 줌과 동시에 세계 신학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2천년 전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나사렛 예수의 무덤은 찾을 수 없어도 그의 이름은 교회 안에서 영원히 기억되는 것처럼, 그의 충실한 제자였던 본회퍼의 이름도 교회의 역사를 만들어 간 다른 많은 제자들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며" (현대신학자 20인: 디이트리히 본회퍼 편 p.95) "1960년대의 암울한 미국에 최근의 역사를 통하여 가장 악마적인 체제에 항거하다가 죽임을 당한 젊은이의 이야기가 당시 젊은 사상가들의 마음에 파고들었던 것은 당연하다." (20세기 신학 p. 232) 따라서 본회퍼의 삶은 당시의 모든 사람에게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본회퍼를 제외하고 20세기 신학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영향은 지대했으며 특히 기독교인은 물론 비기독교인 까지도 사로잡는 본회퍼의 매력은 그의 삶과 사상의 일치에서 찾을 수 있다. 아직도 그를 기리면서 플로센뷰르그 한복판에 있는 자그마한 교회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다.

"그 형제들 사이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사람, 디이트리히 본회퍼는 1906년 2월 4일 브레슬라우에서 출생하여 1945년 4월 9일 플로센뷰르그에서 사망하다"(현대신학자 20인)

따라서 필자는 현대 신학 논쟁의 근원이 되는 그의 핵심 사상인 "성인 된 세계와 성서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을 구체적 논제들에서 살펴보고, 그의 저작에 나타난 중요한 개념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왜 그가 현대 신학에서 논쟁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현대 신학과 그의 관계성을 추적함으로서 답을 찾고자 한다.
참고로 "미국의 갓세이는 본회퍼의 생애를 1) 1906-1932: 히틀러 이전 시대, 2) 1933-40: 교회의 반 히틀러 투쟁시대 3) 1941-5: 전쟁의 와중으로 나누고 각각 1) 신학적 기초의 확립 2) 신학의 적용 3) 신학의 단편화로 나누었다. 갓세이는 본회퍼의 주된 관심은 기독론과 교회론이라고 지적하는데, 베트게는 이를 계시의 구체화라고 일컫는다." (본회퍼의 신학사상 p. 34)
그리고 베트게는 "본회퍼의 지적 여정을 세 기간으로 나눈다.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시기, 고백 교회에 가입하여 체제와의 갈등을 겪으며 사람들을 가르치던 시기 그리고 히틀러 체제에 대한 저항기가 그것이다. 제1기에 본회퍼가 가졌던 주된 관심은 교회를 공동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간기의 그의 관심사는 대가를 지불하는 제자도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생애를 마감하면서 는 세상 안에서의 거룩함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20세기 신학 p. 236)

Ⅱ. 생애와 저작

히틀러의 독재 정권에 용기 있게 항거하고 저항한 끝에 투옥되어 39세의 젊은 나이에 처형된 본회퍼의 삶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이었고,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의 삶의 실현이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에 대한 이해를 전제해야 한다.

본회퍼는 1906년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명문가 집안의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칼 루드비히 본회퍼는 저명한 정신과 의사였고, 그의 어머니는 경건한 신앙의 소유자로 예나 대학 교회사 교수로 명성을 떨쳤던 칼 폰 하제의 증손녀였으며, 그의 외가는 많은 신학자를 배출한 신학자 집안이었다.
본회퍼는 열 살 때,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연주할 정도로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그가 목사와 신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14세 즈음이었다. 그의 가족은 이런 그의 결심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그의 생각을 바꾸려고 했지만 그가 확고하게 결정하자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1923년 가을 본회퍼는 튀빙겐 대학에 입학해서 폭넓은 공부를 했다. 특히, 그가 로마를 방문 했을 때 그곳에 있는 베드로 대성당을 보고 교회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이것을 계기로 훗날 그리스도와 교회를 신학의 중심 주제로 삼았다.
1924년 본회퍼는 자유주의 신학의 마지막 보루인 베를린 대학으로 학교를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하르낙(Adolf Von Harnack), 리츠만(Hans Lietzman), 루터 연구가인 홀(Karl Holl), 제베르크(Reinhod Seebreg), 다이스만(Adolf Deissmann), 젤린 (Ernst Sellin) 등의 가르침을 통해 자유주의 신학과 그 역사 비평적 방법에 익숙하게 되었다.
특히 본회퍼는 제베르크 밑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1) 성경의 역사적 해석과 영적 해석은 다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둘이 교의학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2) 17세기 루터 정통주의 교의학에 나타난 이성과 계시, 3) 교회와 종말, 4) 17세기 루터 정통주의 교의 학에 나타난 종말과 내세에 대한 교리, 5) 프랑크의 성령론과 은총론이 그것이다. (John D.Godsey. Theology of Dietrich Bonhoeffer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0). pp. 20-1 (본회퍼의 신학 사상 p 14. 재인용)

본회퍼의 처녀작으로 1927년에 작성된 [성도의 교제: 교회의 사회학에 관한 교의학적 연구]는 "칼 바르트가 "신학적 기적"이라고 평했을 정도로 탁월한 논문이었다. 이것은 사회철학과 사회학을 이용하여 교회의 개념과 구조를 해명한 것으로 본회퍼는 이 논문에서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가 곧 교회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본회퍼는 1928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있는 독일어를 말하는 교회를 섬기다가 일년 후에 1929년 베를린 대학으로 다시 돌아와 교수 자격 논문을 제출했다. 그 후 그는 1930년부터 일년 동안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을 연구했다. 이곳에서 그는 리이만으로부터 종교철학, 라인홀드 니버로부터 종교와 윤리학을, 웨버로부터 교회와 사회의 문제를, 베일리로부터 조직신학을 배웠다. 여기서 그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현대신학논쟁 p. 264)

"1931년에는 [행동과 존재]가 출판되었다. 이것은 [성도의 교제]에 이어 초기 이론적인 작품에 속하는 것으로 두 작품이 모두 기독론을 밑에 깔고 있는 교회론을 주제로 하고 있다. 즉, 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 공동체로서 실존하신다는 점에서 이 두 작품은 모두 교회를 통한 계시의 연속성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성도의 교제]가 이미 초기 바르트의 영향 밑에 저술되었고 바르트보다 먼저 "계시"를 "교회"와 밀착시켰으며 교회의 사회학적 측면을 신학적으로 수용하였다면 [행동과 존재]는 바르트의 영향하에 있으면서도 바르트의 초월주의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교회"를 통한 "계시"의 구체성, 현존성, 연속성을 강조했다." (본회퍼의 신학사상 pp. 102-3)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부에서 초월적 행동과 존재의 문제-철학적 인간이해에 있어서 인식론적 문제, 제2부에서 계시에 있어서 초월적 행동과 존재의 문제-이 둘의 종합인 교회, 제 3부에서 구체적인 기독론적 인간론, 즉, "아담 안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초월적 행동과 존재의 문제를 취급한다." (본회퍼의 신학 사상, p117)

그는 1931년 독일로 돌아와 베를린 대학에서 "20세기 조직신학의 역사", "창조와 죄", "교회의 본질", "기독론"들을 주제로 강의했다. 창조와 죄에 대한 그의 강의록은 1933년 [창조와 타락]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것은 창세기 1-3장에 대한 본회퍼의 신학적 해석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독특성을 발견하고 이를 두 가지 의미로 해석했다. 첫째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존재 유비가 아닌 관계의 유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자유로운 인간이 자신을 위해 가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은 하나님의 대표자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현대 신학 논쟁 p. 265)
그리고 본회퍼는 "미국 방문을 경험을 토대로 [사회복음주의]라는 짧은 글을 썼고 11월에 가서는 "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질 것을 위한 교회의 기도"라고 하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는데, 여기에서 타계주의와 역사내적 내재주의를 모두 비판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 그리고 교회와 세상의 긴장 관계를 논하고 있다." (본회퍼의 신학 사상 p. 19)

"기독론에 대한 그의 전 관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에 있었다. 그는 [옥중서간]에서 다시 반복한다. 그리스도는 어떻게 비그리스도인 세계에서도 주가 되겠는가! 당신은 누구입니까?"(신의 세속화 p. 28) 그리고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 예수에게 하나님으로서의 자격 부여라는 의미이지 그에게 제2의 신적 본질을 첨가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그리스도임을 강조했다."

"본회퍼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두 사건은 히틀러의 집권과 제 2차 세계 대전이었다. 히틀러 정권은 고백 교회 운동에 참여하여 투쟁을 하게 했으며, 2차 세계 대전은 본회퍼로 하여금 히틀러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지하 저항 운동에 가담하게 했다. 그리고 본회퍼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미친 사람이 모는 차에 희생되는 많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만이 나의 과제가 아니다. 이 미친 사람의 운전을 중단시키는 것이 나의 과제이다 "(본회퍼의 신학 사상 p. 28) 그리고 그가 베를린 방송을 통해 "젊은 세대에 있어서 지도자 개념의 변화"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는데 이 내용은 새로운 지도자의 개념을 직책이 아닌 사람에게 두는 우상적인 지도자 원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송은 도중에 중단되었다.
"본회퍼는 고백 교회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독일적 기독인들"을 논박하고 유대인 문제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내용으로 "교회와 유대인 문제"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이것은 니묄러를 편집인으로 하여 [신앙 선조들과 고백하는 교회의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리고 "1966년에 [중심이신 그리스도]가 출판되었는데 이것은 베트게가 학생들의 노트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반히틀러 투쟁의 와중에서도 본회퍼가 1933년 여름 베를린에서 기독론에 대한 강의를 녹취한 것이었다. 이것의 내용은 1) 현존하시는 그리스도 - 나를 위하여 2) 역사적 그리스도 3) 영원하신 그리스도로 조직되었는데 당시에 강의가 도중에 중단되었음으로 제 3장은 강의할 수 없었다." (본회퍼의 신학사상 p. 21)

"그의 저서들 중 [나를 따르라: The Cost of Discipleship]는 본 회퍼 생존 당시의 저작으로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그는 여기서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길을 해명했다. 그는 여기서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생생하게 대조시켰다. 값싼 은혜란 교리를 믿기만 하면 구원이 쉽게 찾아온다고 믿는 신앙의 형태, 즉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관습적인 기독교"를 가리킨다. 본회퍼의 말을 빌린다면, "값싼 은혜는 회개를 요구하지 않고 용서를 전하는 것이며, 교회의 훈련 없이 세례를 주고, 신앙 고백 없이 성찬을 행하며, 통회함이 없는데도 사죄를 선언하는 것이다. 반면, 값비싼 은혜는 구원이 값진 것임을 선언한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그의 아들을 대가로 요구했고, 동시에 우리에게 제자로 사는 삶, 즉 순종을 요구한다. 본회퍼에, 따르면 루터는 수도원으로부터 세상으로 돌아오면서 비로소 값비싼 은혜가 무엇인가를 발견했다고 한다. "예수를 따르는 유일한 길은 이 세상 속에서 사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후에 [옥중 서간]의 중심 주제가 된다." (20세기 신학 p. 239)

[성도의 공동생활: Life Together]은 기독교 공동체의 영적 생활을 탐구한 내용으로 그가 1935-40년 게슈타포에 의해서 발각되기 전까지 운행했던 불법 신학교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글이다. "쿤즈는 이 책이 '많은 카톨릭 신학자들에 의하여 살아있는 크리스쳔 공동체에 관한 가장 훌륭한 묘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본회퍼의 신학사상 p64) 이것은 제1장이 공동체, 제 2장이 다른 사람들과 사는 하루, 제3장이 홀로 사는 하루, 제4장이 섬김, 제 5장이 죄의 고백과 성도의 교제로 되어있다. (본회퍼의 신학 사상 p. 206)
1939년 그는 라인홀드 니버의 도움으로 독일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압제받는 독일 기독교인 형제들을 버릴 수 없어서 그는 다시 독일로 돌아오게 된다. 본회퍼의 고백을 들어보자

"나는 왜 내가 미국에 있는지 모르겠다.... 독일에 있는 형제들을 위한 짧은 기도는 나를 압도했다... 사태가 악화될 경우 나는 미국에 머무를 수가 없다"라고 했으며 그가 귀국하기로 결심한 후에는 "배에 오르니 미래에 대한 나의 착잡한 심정은 깨끗이 사라졌다." (현대신학자 20인)

1940년 여름, 본회퍼는 비밀 정보요원으로 채용되어 정보원과 저항 운동가라는 이중 생활을 했다. 이때 그는 기독교 윤리학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중심 주제들은 "그리스도와 교회가 세상에 어떻게 관계되어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고, 그는 성육신 사건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세상 성을 강조했다.
1943년 본회퍼는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테겔이라는 군 형무소에 수감되게 되었는데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다. "여기서 그는 "성인 된 세계"와 "성서적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에 대한 개념을 세웠다. 그는 세계가 중세 이후 세속화의 과정을 겪어왔고, 인간은 점진적으로 "성인 된 세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또, 그는 성서적 개념과 신학적 개념에 대한 종교적인 견해를 폐기하고 비종교적 해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바로 [옥중 서간]이다." 이것은 본회퍼의 후기 사상이 집약된 작품이었다. 그는 옥중 생활 중에, 제자도의 개념과 씨름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제자도란 이 세상으로부터 초연해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따르라]에서 전개한 바 있는 주제를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인이면 그리스도를 따라 이 세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제자도 였고 이것은 그의 기독론 중심적인 사상적 강조 점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본회퍼는 당시의 상황 즉, 성숙한 세계가 함축하는 바에 대해 관심을 지고 있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 교회와 기독교의 선포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신앙 없는 세계에 존재하는 교회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신앙을 배제한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말할 것인가? 현세적 영향을 배제한 형이상학이라든지, 내면성 등과 명제들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러나 그의 관심에 대답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그의 관심은 더욱 고조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당시의 상황과 기독교의 메시지를 부합해 보았다. 그런데 그 모든 시도들은 각 개인의 "연약함과 추악함이 들추어 보여진"후에야 비로소 죄인으로 불려질 수 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성숙한 세계에 걸 맞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방법으로 '성숙한 이 세계'를 더 이상 복음으로 공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공격 방법은 본질에서 벗어나갔을 뿐 아니라 비열하며 비기독교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속에 흠뻑 젖어 있는 인간의 약점을 들추어내기보다는, 오히려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그 모습으로 하나님과 대면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20세기 신학, pp. 239-41) 이와 같은 내용의 [옥중서간]은 그의 최종적 신학 사상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고 20세가기 후반의 신학적 흐름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 신학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44년 7월 20일 히틀러의 암살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본회퍼는 1944년 10월 8일 게슈타포 감옥에서 1945년 2월 7일 부헨발트 수용소로, 쇤베르그 마을로 옮겨지다가 모든 저항자들을 처형하라는 히틀러의 특별지령으로 1945년 4월 9일 새벽 미명에, 미국이 그 지역을 해방하기 직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때 그의 나이 39세 였다. 이런 본회퍼를 보면서 플뢰센부르그 처형장 의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 반쯤 열려있는 감방 문을 통하여 나는 본회퍼 목사님을 보았는데 그는 죄수복을 벗기 전 마루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에 감동되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형의 현장에서 역시 짧은 기도를 끝내고 그는 태연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형틀을 향해 올라갔다. 몇 초 후에 그는 죽었다. 이곳에서 50년 동안 의사 일을 보았으나 본회퍼 목사님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맡기는 사람은 일찍이 본 일이 없다."- (I New Dietrch Bonhoeffer, ed. Wolf-Dieter Zimmermann Ronald Gregor Smith, trans, by Kathe Gregor Smith (N.Y: Harper & Row, 1966). p. 232 {본회퍼의 신학사상 p. 30재인용})

본회퍼의 삶은 실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였고 언행일치의 삶이었다. 따라서 그의 삶은 1960년대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영향과 20세기 신학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모하며 그의 고난에 삶의 동참하고자 한다.

Ⅲ. 성인된 세계와 성서적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

1960년대 급진적 젊은 신학자들이 신학적 토대와 방향을 삼았던 개념인 "성인 된 세계(무종교적 시대와 "성서적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 무종교적 기독교)"을 살펴보려고 한다.

1) 성인된 세계
성숙한 세계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는 후기 본회퍼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데 그는 인간은 더 이상 종교나 하나님에 의존하여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성인 된 세계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1944년 4월 30일자로 베게트에게 쓴 편지에서 "성인 된 세계" 혹은 "무종교 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
"본회퍼가 말하는 "성인 된 세계"는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종교가 필요 없는 세계가 곧 "성인 된 세계"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없이 사는 인간의 자율운동이 성취된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성인 된 세계"에 대한 진술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선언이었다. 이것은 당시 종교적 상황에 대한 진단이며 새로운 종교에 대한 예측이다." (현대 신학 논쟁, pp.270-1, 요약)
그가 말하는 "성인 된 세계"는 현대인을 성인 된 세계에 살고 있는 "성인 된 인간"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현대인은 종교가 필요 없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 아래 모든 일을 처리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결국 자원들과, 환경, 사회가 제공하는 것에 의존하여 하나님 없이 살기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과 세계로 하여금 한계 상황 속에서 신 없이 완결되기를 요구하는 계몽주의의 성숙성 이념의 어두운 측면을 수용한 본회퍼는, 하나님은 세계와 인간을 자기 성숙성으로 성장하게 하셨음으로 이제는 인간의 한계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간섭하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그리고 "본회퍼는 성서의 복음으로부터 종교의 옷을 벗기려는 성서개념의 세속적 해석을 하였다. 즉, 죄와 죽음을 인간 실존의 한계 상황으로 간주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동원하는 실존철학이나 전통적 기독교 신학의 입장을 거부했다. 그는 한계에 직면해서가 아니라 삶의 한 가운데서 인간의 약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함에서 죽음과 죄가 아니라 삶과 인간의 선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려고 했다." (현대 신학 논쟁, p. 271)
이처럼 "살아 계신 성서적 인격신은 세계와 성숙한 인간을 요구하신다. 그는 결단코 자연과학의 인식가설로 수용되는 작업가설이나 미성숙한 인간의 어려움과 고난을 보호하시는 후견인이나 인간이 채울 수 없는 능력과 지식의 틈을 채우는 자가 아니다. 작업가설이나 후견인이나 틈 채우는 자는 결단코 살아 계시는 신이 아니요 결단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아니다." 고 했다.

2) 성숙한 세계의 신
"본회퍼는 "성숙한 세계의 신"과 "종교의 신"을 구분한다. "종교의 신"은 우리의 한계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피난처와 도피처로 다가오는 신이다. ("고난 때엔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또, 종교의 신은 틈을 채우는 자요, 기계적인 신이라 부른다. 그러나 "성숙한 세계의 신"은 인간의 고난 상황 속에서 관여하지 아니하시고, 마치 신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숙명이 수행되도록 우리를 버려 두신다. 본회퍼는 "성숙한 세계의 신"에 대한 예를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최후로 절규한 예수의 부르짖음에서 찾는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간섭하심 없이 우리 삶의 극한 상황 속에서 우리의 숙명이 가장 쓰디쓰게 수행되도록 내버려두신다. 이를 본회퍼는 우리를 고난으로 인도하시고, 우리의 숙명이 다하도록 내버려두시는 신에 대한 성숙한 신자의 고백이라고 한다. "
히틀러 저격이 실패한 날, 본회퍼는 "우리는 마치 신 없는 것처럼 이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함으로 비로소 솔직해 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없는 삶을 완결하며 살도록 우리를 교훈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본회퍼는 무신론을 말함이 아니라 하나님 없는 세계의 경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신 없는 세계 경험을 역설적으로 그의 성숙한 세계의 신 신앙 속에서 통일하고자 하였다.( D. Bonhoeffer, 상게서 8, 1974, p. 178. 조성노, "자유주의 신학의 전개과정 (목회와 신학, 91년 7월호), 재인용)
왜냐하면 종교적인 신 신앙과 무신론 사상과는 쉽사리 제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신 신앙에서는 만일 신이 인간의 고난 상황 속에서 그의 기도를 외면하고 임재 하지 아니할 때, 이 신앙은 쉽게 무신론으로 변모되고 만다. 이러한 재래적인 종교의 신 신앙으로는 더 이상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인 신앙으로 사고하는 "성숙한 세계의 신"에 대한 개념은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신의 부재 속에서 우리의 숙명과 고난이 다하도록 내버려두시는 신의 뜻을 인식하는 "성숙한 신앙"이 무신론으로 빠질 수 있는 부분을 막아준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신 없는 세계 경험을 역설적으로 그의 "성숙한 세계의 신 신앙"속에서 통일하고자 했던 의도를 알 수 있다.

Ⅳ. 성서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

본회퍼는 자신이 직면한 현실 앞에서 전통적인 기독교를 점검한 결과, 현대가 "무종교시대"라는 것과 현대 세계는 "성인 된 세계"라는 것을 발견했다. "무종교적 시대"의 도래를 주장한 본회퍼는 종교를 떠나서 비종교적으로 기독교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종교는 무슨 의미이며, 비종교는 무슨 의미인가?

1) 본회퍼의 "종교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로, 종교는 개인주의를 의미한다. 본회퍼는 죄를 자기를 위해 존재하려는 욕망이며, 다른 것과의 관계성을 파괴한다고 보았다., 종교는 이 자기중심적인 사회성의 파괴에 참여한다. 그는 종교를 죄의 산물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오직 그리스도의 존재가 타자를 위한 존재이므로, 하나님도, 인간도 오직 타자와의 관계성에서만 고려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종교는 형이상학적인 것을 의미한다. 종교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저 세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본회퍼가 말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다음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이며, 세상 위에 있는 것은 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도록 의도된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는 종교를 형이상학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셋째로, 종교는 부분적인 것이다. 종교적 행위는 예배와 종교적 행사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부분적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인간을 종교로 부른 것이 아니라 삶에로 불렀다. 따라서 그는 이제 종교의 시대는 지나갔으며, 이런 해석은 성경의 메시지와도 일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현대인에게도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신학논쟁 pp. 273-4, 요약)

2) 비종교적인 해석이란 무엇인가?
첫째로, '비종교적 해석'은 그리스도론적 해석이다. 성인이 된 세계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어야 하는가? 무신의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신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제 추상적으로 전능함을 말해서는 안 된다. 이제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말해야하는데 하나님의 전능과 초월은 예수 그리스도의 타자를 위한 삶이며 신앙은 이 예수의 존재에 참여하는 것이다. 초월은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 인간의 현실 속에, 무한 자로서 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삶 십자가에 박힌 예수 그리스도이다.
둘째로, 세상적인 해석이다. 세상적 해석이란 세상 성을 강조하고 세상을 긍정하고 세상 속에서 사는 신앙이다.
"셋째로, 구약 성서적 해석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 하나님은 이 세계의 현실에서만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며, 세상 저쪽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 계신다. 따라서 구약적 해석은 세상 가운데, 현실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현대신학 논쟁 p. 274)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다음 세상이 아니라 창조되고 보존되고 속량 되고 새롭게 된 이 세계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세상의 분리와 도피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로 고난에 참여하는 삶이다. 그리스도인은 이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 이것은 회개하고 그리스도가 짊어지신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을 의미한다.
다섯째로 "비종교적 해석"은 교회의 참된 사명의 수행이다. 이것은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 세상을 향해 봉사하는 것을 말한다. (신의 세속화 pp.32-33, 요약)

그러나 본회퍼의 '비종교적 해석'은 본회퍼 자신이 완성하지 못한 과제였기 때문에 따르는 문제들, 토의 될 문제들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서 박봉랑 교수의 의견을 들어보자.
1) "비종교적 해석"이라는 말 자체가 애매하다. 만일 종교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이고 하나님이 인간의 궁극적 완성이라면 인간에게서 종교는 분리 될 수 없다. 오토가 말했듯이 본회퍼가 종교에 대해서 말할 때는 종교의 모든 현상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영역 안에 있는 일정한 현실 즉, 종교 일반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적인 것의 형태 변화에 관심이 있었다. 따라서 본회퍼에게 타당한 질문은 종교성이란 것을 기독교에 적용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에 대해서 그는 기독교의 종교적 시대가 지나갔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무종교 시대의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낮아지시는 하나님인 것이다"고 한다.
2) "비종교적 해석"이 그리스도교의 세상적 해석 또는 후에 발전된 대로 그리스도교의 세속화론이라고 할 때 "세속화"라는 표현이 애매하다. 여기서 본회퍼는 현대의 무신의 세계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이 현실 속에 있는 신앙과 그리스도교의 강조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본회퍼의 신학은 철저한 "십자가의 신학"이다. 본회퍼는 스승과 같이 제자들이 죽기를 바랬고 그 자신이 그리했다. 사실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고난 속에서 가지는 희망, 소망, 영광의 약속이 십자가에 너무 가리어졌다. 우리에게는 십자가를 지는 고난만이 아니라 타자의 짐을 질 수 있는 것 자체에서 기쁨이 요구된다." 고 한다.,
3) 본회퍼가 "비종교적" 그리스도교와 이 세상성을 강조하고 성인의 세계에서 "신앙의 비밀 훈련"의 필요와 고난에 참여하는 삶을 요구했을 때 그것은 공간적인 교회의 불필요성을 주장하고, 세상적, 윤리적 삶 속에 숨이 있는 "익명의 그리스도", "숨은 교회"를 의미하려고 했을까 하는 것이다. 사실 본회퍼에게 있어서 "교회는 시작과 끝이다." 교회는 그에게 현실 도피의 장소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이 변화되고 그리스도가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는 장소이다. 이처럼 "비종교적 해석"은 교회 혁신의 소리이다. 본회퍼의 이런 "기독교의 비종교화"는 그리스도교의 한 형태로 더 이상 값싼 은혜의 종교가 아닌 십자가에서만 존재하고, 자신을 버림받은 상태로 하나님께 맡기는 결단의 종교이다. 즉, 본회퍼는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것은 제자직의 교회로도 표현 할 수 있는데 케리그마, 코이노니아의 교회에 디아코니아를 현대에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본회퍼의 "그리스도교의 비종교화"는 오늘의 시대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고도의 변증적인 시도이며, 그리스도교의 생존 방식의 발견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 시대에 대한 본회퍼의 예언자적인 통찰과 성서의 진리에 대한 확고한 신앙, 그리고 진리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그의 총명과 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여러 도그마나 전통적 그리스도교의 예배 의식을 부정하고 예배 행위, 기도, 신앙의 훈련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는 어떤 새로운 그리스도교를 가져오려는 한 신학의 시도는 아니다. 이 새로운 형태의 그리스도교는 분명히 '현실'의 그리스도교의 강조이다. (신의 세속화 p. 35-7, 요약)
이처럼 본회퍼는 많은 신학적인 문제를 제기했으나, 그것을 학문적으로 해명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없었다. 교회와 세계를 위해 가장 중요한 물음들을 묻기만 하고 향년 39세로 일생을 마친 그는 그의 행동과 죽음으로 해답을 얻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물음은 오늘도 우리의 물음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현대 신학자 20인: 디이트리히 본회퍼 편, p. 107)

또한, 본회퍼가 우리에게 던져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첫째로 기독교의 비종교적인 해석이 과연 가능한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는 불트만의 비신화화에서, 바르트의 배타적인 계시의 신학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가 옥중에서 고민한 흔적이 "비종교적 기독교" 또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라는 패러독스적인 낱말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고민에 아직도 현대 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현대적 의미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둘째로 히틀러 암살 음모의 정당성이다. 베트게에 의하면, 전후의 독일 교회는 본회퍼를 종교적인 순교자로 보느냐 또는 정치적인 희생자로 보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오래 논쟁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여전히 현대 교회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데 즉, 종교가는 정치에 얼마나 깊이 관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현대 신학자 20인 pp. 106-7, 요약)

Ⅴ. 본회퍼의 신학적 영향

본회퍼의 성서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은, 현대 신학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20세기 후반 개신교 신학, 카톨릭, 신학, 성직자와 평신도, 신학자와 행동주의자, 칼빈파와 루터파 사이에 에큐메니칼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하나의 상징처럼 서 있다. 본회퍼는 자유세계와 철의 장막 양편에서 다 같이 읽히고 해석되고 있다.,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어떠한 약화에도 반대한 그의 부단한 항거와 전체주의에 대한 반항과 자유에 대한 변호 등으로 인해 자유 세계에 있는 크리스챤들에 의해 많은 찬양을 받는다.(말틴. 마티 [본회퍼의 신학 사상] 배한국역, (서울: 컨쿨디아사, 1990), p. 12. ? 재인용) 정통주의자들이 본회퍼의 성서 연구 방법에 대해 다소 못마땅하게 여기기는 하지만 그의 종합적인 해석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한 충성을 찬양한다
본회퍼의 비종교적 기독교 개념이 자극을 받아 기독교의 세속화론이 일어나고, 이것에 기초해 세속화 신학이 형성되었다. 이 세속화 신학은 후에 희망의 신학, 정치 신학, 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 신학 등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그 중에서 특히 존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는 안 좋은 영향을 받은 대표작이다.

Ⅵ. 세속적 신앙의 현대적 의미

"본회퍼의 신학은 현대 세계에서 존립할 수 있는 기독교의 존재방식을 모색하고 기독교의 세상 성을 발견하는데 그 의의를 둘 수 있다. 즉, 기독교 신앙이 오늘날 세속 도시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며, 성숙한 현대인의 신앙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의 저변에 흐르는 기복신앙에 큰 도전을 준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기복 신앙이 아닌 고난받는 이 세상의 어지러움과 문제와 대결하는 연단 받는 신앙, 세계의 고난에 참여하는 신앙이며, 신의 고난에 참여하는 신앙이다. 이런 신앙이야말로 현실의 고난과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신앙이 아니라 철저히 세속적 현실의 문제와 일상사에 관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세상 성을 강조하여 그리스도와 교회가 세상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 해명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사상의 배경은 구체적으로 히틀러 정권에서 고난받는 유대인과 유린당하는 독일 교회의 현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이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였고 하나님 앞에서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성숙한 신앙 인으로 처형 대에서 순교적인 죽음을 달게 받았다." 그리고 이런 그의 혁명적인 개념과 영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2. 존 로빈슨 [신에게 솔직히]/ John. A. T. Robinson

Ⅰ. 서론

2차 세계 대전 이후, 본회퍼의 영향으로 새로운 신학이 형성되었는데 그 신학의 한 조류가 세속화 신학이다. "John. A. T. Robinson 의 [신에게 솔직히]와 하비 콕스의 [세속 도시]는 함께 세속화 신학을 대중화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들은 교회와 세속의 구별을 거절하고 초월적인 신 존재를 믿는 신앙을 경멸한다. 로빈슨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초월자가 아니라 개인의 진지한 확신의 영역에 속하며 궁극적 실재를 받아들이는 자신의 인식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John Robinson, Op. Cit., p. 55. 현대 신학 개론 p 147 재인용)
"그들은 전통적인 기독교는 세계 대전을 막지도 못했으며, 전후 시대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지도 못했다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이해된 하나님은 현대인에게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신학적 관심을 저 세상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으로부터 이 세상적인 일이나 사건에로 전환했다. 따라서 세속화의 문제가 20세기 후반의 중요한 신학적 주제가 되었으며, 이러한 세속적인 관심과 사고에 기초하여 형성된 신학이 세속화 신학이다. 그리고 세속화 신학이 일어난 것은 1950년대 후반이었으나, 대중들의 관심을 끈 것은 1960년대 중반이었다. 이처럼 60년대 후반의 서구 신학은 전반적으로 세속화로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상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현대 신학논쟁, p. 281) 따라서 필자는 세속화 신학이 어떤 것인지 밝히고 세속화 신학이 제기한 논쟁점이 무엇인가를 존 로빈슨을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Ⅱ 세속화란 무엇인가?

"세속화라는 말은 그 정확한 의미를 한마디로 제시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신학적으로 사용될 경우, 대부분은 그것은 "이 세상의 일이나 사건에 관심을 돌리는 것, 세속적 영역의 자율의 의식, 세속적인 것을 신성한 것에 종속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세속화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 "세쿨룸" (Saeculum)에서 유래했다. 하비 콕스에 의하면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첫째로, 이 세대 혹은 시대를 의미한다. 둘째, 이 세상을 의미한다. 세속이란 변화하는 이 세상, 즉, 영원한 종교적인 세계에 대비되는 것을 말한다. 참다운 종교의 세계는 비시간적 이며 불변적인 반면, 세속 세계는 일시적이며 가변적인 것이다. 따라서 세속이란 말은 어떤 열등한 것을 암시한다"고 한다.
토마스 쿤에 따르면, 세속이란 말에는 일반적인 의미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일반적인 의미는 영적인 것 또는 신성한 것을 거부하고 현 세계에 속한 일이나 사건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특별한 의미는 하나님이나, 인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전혀 관계없는 삶에 대한 전망을 말한다. 즉, 하나님과 관계없는 인간의 삶을 나타낸다. 종합하자면 세속이란 말은 시간적인 것, 이 세상적인 것, 인간적인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영원하고 저 세상적이며 신적인 것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현대신학 논쟁, pp. 282-3, 요약)

그러면 왜 이런 신학적 요청이 따르게 되었는가?
"1) 현대 세계의 무신성에 대한 호흡이었다. 본회퍼의 [옥중 서간]은 이제 성인 된 세계에서 지나간 시대의 사고에 유형인 그리스도교의 개념들은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2) 변화 된 세계관에 대한 통찰이었다. 불트만이 말하는 성서의 비신화화 즉, 성서의 세계관이 현세의 세계관과 맞지 않고 타당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인들에게 의미 있도록 재해석해야 했다. 이러한 형태가 혁명적으로 시도되었고 이것이 '복음의 비종교적 해석'으로 나타났다." (신의 세속화, p. 200)

Ⅲ 생애와 사상

"로빈슨에게 있어서 오늘의 신학적 교사는 주로 세 사람이었다. 첫째는, 기독교의 메시지를 "비신화화"하여 현대인들의 사고 방식에 적응시킬 것을 주장한 불트만이고, 둘째는 "종교성 없는 기독교"를 강조한 본회퍼이며, 셋째는 하나님이 "궁극적 관심의 대상이자, 존재의 지반"임을 강조한 틸리히 였다. 그리고 틸리히는 기독교가 구태여 초자연주의라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불트만은 기독교는 구태여 신화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그리고 본회퍼는 기독교는 구태여 종교적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로빈슨은 신학을 대중화시키고 신학의 이해를 현대화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개관해 볼 때 신에 대한 솔직한 신앙으로 동기 된 [신에게 솔직히]는 "솔직한 불신앙"으로 일관된 세속화 신학의 한 장을 이루고 말았다." (현대 신학 개론, p. 149)

1) 유신론의 종말
"로빈슨은 유신론에 종말을 고했다. 자연신론에서는 신은 최고의 존재, 거대한 건축가로서, 로빈슨의 표현을 따르면, 마치 세계 밖의 저쪽 어둔 곳에 존재하여 세계를 움직이게 하고 세계의 운동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 유신론은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관계는 충분히 인격적이고 자연신론자들이 말하는 바, 멀리 있는 기계 조작자의 관계가 아니라는 데 있다. 신은 인격으로서 그가 만든 세계로부터 이 세계를 내려다보고 "저 밖"에서부터 사랑하는 신이다. 그는 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사물의 총체 위에, 그리고 사물을 넘는 떨어져 있는 존재로서 증명하고 확인되어야 하는 "하나의 존재"이다. 이것이 유신론자들이 믿는 신 개념이다. 그러나 로빈슨은 이러한 신을 포이에르바하와 같이 하나의 투사로 보았다. "거룩한 소재는 지성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 속의 한복판에 있으며,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이웃을 위한 봉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크리스챤의 생활은 세속적 성결의 삶이요, 역으로 거룩한 세속의 삶이라고 역설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이에르 바하가 신학을 인간학으로 만든 것에 대해서 정당하다"고 말한다.(신에게 솔직히, p. 101)
이처럼 로빈슨은 틸리히를 따라서 유신론의 종말을 고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을 세계와 인간을 넘어서 살고 있는 하늘의 완전한 인격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로빈슨에 의하면 오늘날의 언어학자들이 투쟁하고 있는 것도 여전히 이러한 '한 존재'의 존재 또는 비존재에 대한 문제, 즉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신을 믿는 유신론에 대해서이다." (신의 세속화, pp. 201-2)

2) 존재의 깊이로서의 신
로빈슨이 정통적인 기독교 유신론에 종말을 고한 것은 새로운 신의 형상을 주기 위해서였는데, 로빈슨은 그것을 틸리히의 '깊이'의 개념으로 대신하고 있다. 틸리히에 있어서 신은 "임기 응변책으로서의 신", "초자연적 존재", "밖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본회퍼의 말과 같이 우리의 삶 한복판 가운데에서 '초월해' 있다.... 왜냐하면 신이란 말은 "모든 우리의 존재의 궁극적 깊이, 모든 우리의 실존의 창조적 근거와 깊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로빈슨이 "위에 계신 신" 이나 "밖에 계신 신"이 표현하려고 한 것은 신의 초월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로빈슨은 신의 초월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틸리히와 같이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를 넘어선다. 신의 자연적 요소는 위에나 밖에가 아니라 "한가운데에서 초월해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있는 초월"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초월자의 인식은 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가능한데 이웃에 대한 봉사와 사랑의 행동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인 로빈슨의 신 개념의 특징이다.

3) 우리 가운데 현존하는 초월자: 그리스도
로빈슨은 본회퍼를 따라서 그리스도는 "우리 가운데 현존하는 초월"이라는 개념을 가진다. 그에 의하면 일반적 초자연주의적 그리스도론은 항상 '저 세상적'이 지배적이었고, 전통적 그리스도론은 신이 밖으로부터 인간 세상에 와서 인간과 '비슷하게' 살았다는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비슷하게 보거나 순전히 인간이었다고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초자연주의적인 해석과 자연주의적 해석을 모두 거부하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고 그의 말씀이라고 한다. 즉, 로빈슨은 케노틱 그리스도론 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을 만족스럽게 관계시킬 수 있는 소망을 주는 유일한 입장이라고 믿는데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의 복종'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비신화적인 것으로 비판하면서 그것을 실존적, 윤리적으로 재해석한다. 그것은 첫째로, 예수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는 뜻이다. 즉 예수는 '타자를 위한 인간'이다. 둘째로, 예수의 처녀탄생의 뜻은 로빈슨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 완전한 신', 기름과 물의 혼합이거나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의 혼합이 아니고 '우리 속에 있는 초월자', '사랑의 초월'의 복종을 통한 구체화이다.. 로빈슨은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신"으로 해석한다. 셋째로, 속죄론을 비신화화 한다. 그에게 속죄론이란 초자연주의적 사고방식에서와 같이 고도의 신화적인 것이 아니고 또한 신과 인간 사이의 거래 같은 것이 아니고 또한 신과 인간 사이의 거래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로빈슨은 그리스도의 속죄론에 대해서는 초자연적 설명이나 자연적 설명을 다 부정하고 제 3의 길을 모색한다. 이 제 3의 길을 그는 신론에서와 같이 틸리히의 '실존과 그리스도', 인간의 소외론에서 현대인에게 의미가 있는 그리스도의 속죄론의 새로운 모습을 가지려고 한다. (신의 세속화, pp. 205-6, 요약)

4) 예배와 기도의 비종교적 이해
로빈슨은 실제적으로 예배와 기도, 다시 말해서 교회 생활의 비종교적 해석 또는 세속적 해석을 시도한다. 그에게 거룩의 의미는 상대화되어 설명되는데 이제는 "거룩의 장소가 지성소가 아닌 세상의 한복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이란 지역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자기 존재의 기반과 하나이 되는 것이 곧 천국이라고 했다. 이렇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천국의 실재성을 일관적으로 부인하고 이 모든 것을 다만 상징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만 이해하여야 된다고 한다." (현대 신학 개론, p. 147-9) 이처럼 로빈슨에게 있어서 예배의식은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하나의 종교의 의식이 아니라 세속적인 것 안에 그것과 같이 그리고 그것 아래서 일어나는 거룩의 선포, 고백, 예배이다.
그리고 기도의 중심은 전통적으로 "떠남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로빈슨에게 있어서 기도는 "기도는 우리의 일상생활 어디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우리의 생활 그 자체가 수도원이 되어야하고, 그 속에서 선으로써 악을 이기는 증거와 고백의 활동이 '시간을 속량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중세는 '부정의 길'을 완전의 길로 보았지만 로빈슨은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의 떠나감이라기보다는 세상을 통해서 하나님으로 침투하는 것이 성육신의 빛에서 본 기도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로빈슨이 혁명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기도의 비종교적 이해의 출발점이다. 이처럼 로빈슨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세상에서 떠나야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기도'는 그룹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 아니라 세상, 역사, 날마다의 삶을 진지하게 성육신의 장소로 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신의 세속화, pp. 209-10, 요약)

5) 윤리의 새로운 이해: 상황 윤리
로빈슨에 의하면 그리스도교가 전해온 전통적 도덕은 초자연적인 사고 방식의 윤리적 영역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것이 과거에는 교회를 봉사했지만 오늘날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자연적 윤리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비판은, 그것이 예수의 교훈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의 예수의 도덕적 명령은 "모든 사람은 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모든 상황에서 해야하는, 모든 사람에게 미리 규정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로빈슨의 혁신적 윤리는 틸리히를 따라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를 넘어서 '신율의 윤리'를 지향한다. 신율적 윤리는 로빈슨에 의하면, 틸리히가 시사한 바 종말론적 윤리를 말한다. "변화된 세계의 윤리는 카이로스, 즉 하나님께 주어진 운동의 윤리로서, 시간적인 것 속에서 영원과 만나는 것을 매개하는 카이로스의 윤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카이로스에서 카이로스로 자신을 실현하며 사랑은 절대윤리와 상대적 윤리의 양자 택일을 넘어가는 윤리를 강조한다. 이처럼 로빈슨의 혁신 윤리는 상황 윤리를 지향한다. 그리고 이 상황 윤리는 사랑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명령하지 않는다. 마치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이다. (신의 세속화, pp. 211-2, 요약)

6)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를 넘어서
그리스도교는 초자연적인 요소와 자연주의적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양자와는 동시에 구별된다. 어떻게 그리스도교는 초자연주의나 자연주의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에서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초월과 내재를 그리고 오늘 현대적 사고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자연주의와 휴머니즘에 빠지지 않고 초자연주의를 부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범신론에 빠지지 않고 창조의 하나님을 주장하는 자연신론과 유신론을 부정할 수 있을까? 에 대해서 로빈슨은 대답하려고 했다.
로빈슨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초자연주의를 부정하는 데 있어서 문제는 그것이 내재의 신학 또는 범신론을 결과하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범신론은 독립적 존재로서의 신의 존재를 문제로 삼는 신 개념의 재구성에 그 열쇠가 있기 때문이다. 로빈슨은 초자연주의를 부정하면서 동시에 자연주의를 극복하려고 한다. 그는 헉슬리와 본회퍼의 관계와 구별에서, 그리고 까뮈와 본회퍼의 관계의 구별에서 해결을 찾는다. 헉슬리는 그의 [그리스도교와 자연주의]에서 "초자연주의의 종말은 계시 없는 종교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신의 세속화, p. )

Ⅳ. 논쟁점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와 하비 콕스의 [세속 도시]는 1960년대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로 로빈슨의 사상의 급진성과 혁명성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둘째로, 로빈슨이 출발점으로 삼았던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논란이 되었다. 그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신관이 낡은 세계관에 기초한 것으로 성인이 된 현대인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심층 심리학에 근거한 새로운 신관으로 바꾸려고 했다. 이것은 인격적이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포기였다. 셋째로 그리스도의 초자연성과 초월성을 거부하는 로빈슨의 기독론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외에도, 예배, 기도, 윤리학 등에 대한 그의 급진적인 해석이 논쟁이 되었다.


3. 프리디리히 고가르텐/Friedrich Gogarten

Ⅰ 생애와 사상
"고가르텐은 1887년 도르트문트의 루르 공업 도시에서 태어나 베를린, 예나, 하이델베르그에서 그의 대학과정을 훈련을 받았다. 브레멘에서 부목사로 봉사한 후에 그는 튜링기아에서 조그만 시골 교구 목사가 되었고 루터의 작품 전집을 사서, 이 개혁자의 사상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유주의자였다. 그의 첫 번째 책은 피히테의 종교 사상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루터에 몰두하면서부터 과거와 갑작스럽게 결별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의 설교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다."
"1920년 행해진 한 연설 "문화의 위기"는 최초로 고가르텐에게 대중적인 주목을 받게 하였다. 당시 베스트 셀러였던 쉬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은 전후 독일 문명이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그러나 고가르텐은 오히려 종교와 이 위기의 관계를 규명하려고 했다. 이에 대한 고가르텐의 응답은 기독교의 현재적 형태들에 대한 변호 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 위기가 이런 형태들로 제한되었다고 보는 자유주의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는 진정한 위기는 서구 문명의 불안정성에 의하여 명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토대를 흔들어 버리는 것, 즉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규정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종교의 의식은 이런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어떠한 여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왜냐하면 종교 의식이 정확히 인간과 그의 종교와 더불어 시작하기 때문이다. 즉, 자기 정신의 심층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따라서 자기 안에서 실재 전체를 완성하는 인간과 더불어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권 적인 하나님의 심판과 은총의 변증법과 더불어, 이런 위기의 근본적인 특성에 대한 인식으로 말미암아, 젊은 독일 목사는 역시 초기의 신학적 관념론에서 벗어나 새로운 과정 속에서 돋보이고 있었던 젊은 스위스 목사인 칼 바르트와 자연스럽게 협력하게 하였다.
1922년에는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과 게오르그 메르쯔와 더불어 에밀 브루너와 함께 유럽에서 '위기의 신학' 혹은 '변증법적 신학'으로서, 미국에서는 '신정통주의'로서 알려진 신학의 새로운 방향을 위하여 공개로 논할 수 있게 해주었던 한 잡지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고가르텐의 한 논문 제목을 따서 "중간 시대"라고 했다." (현대신학자 핸드북,pp. 439-441 요약)

1926년에 [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신앙과 역사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라는 책은 트뢸취와 하르낙, 제베르크의 관념론에 길들여진 역사주의에 대한 활발한 공격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기독교 안에 절대적인 것이 어떤 것이 있는가 라고 물어야만 했다. 트뢸취의 대답은 "기독교는 '보편적 진리의 역사적인 응결"이라는 일반적인 견해를 특징짓고 있으며 기독교의 절대성은 역사를 초월하는 본질의 보편적 가치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대답은 고가르텐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시간과 장소로 규정되지 않는 보편적인 본질로 환원될 수 있을 때에만, 역사적 사건들의 효력을 인정하는 접근 방법이 기독교 신앙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 신앙이 하나님의 창조적인 활동의 산물이라면, 또한 이 활동이 역사에서 일어날 뿐만 아니라 역사를 만드는 것이라면, 신앙의 '본질'은 가장 확실하게 비역사적일 수 없는 것이다. 그와는 정반대로 '신앙은 역사이다' 이것이 고가르텐의 전체 접근 방식의 기본이다.
그에게 신앙은 하나님 자신이 행위 적으로 관련되어 있고 그것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을 때에만 신앙이다. 그리고 "신앙은 역사이다"라는 말은 신앙이 단순히 '과거'의 역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앙'이 주의 깊게 규정되어야 하는 것처럼, '역사'도 일반적인 교실의 의미에서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역사는 존재와 의미가 계속해서 새롭게 창조되는 상호 작용의 과정을 지시한다. 그러므로 신앙은 현재의 역사,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역사이다. 그리고 신앙이 현재의 역사가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현대신학자 핸드북, pp. 442-3, 요약)

그리고 고가르텐은 세속화를 인간의 역사화로 이해했다. 그에게 있어서 세속화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결과"이며, 세상 그 자체에서 그 출발점을 갖는다. 인간과 세계를 해명하는데 있어서 그의 중심 개념은 "아들 됨"이다. 아들 됨은 첫째로 하나님 안에 있는 존재를 의미하고, 둘째는 아버지에 대한 인격적 독립을 의미한다. 이 독립은 또한 어른이라 부르고, 그의 상속으로서 아들에게 위탁된 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자유와 구원을 의미한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상속자라고 말한다. 상속자의 상속 물은 세상이다. 그러나 그가 아직 "장성하지 않았을 때"는 아직 상속 물이 그에게 부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장성하게 되면 그 "열쇠"를 받게되어 상속의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틸리케에 의하면 고가르텐의 이와 같이 규정된 세계에 대한 관계는 하나님에 대한 두 개의 형태의 행동을 통해서 상실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그리스도 이전적 행동의 형태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교 이후적 행동의 형태이다.
먼저 그리스도교 이전적 행동의 형태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속자를 보여준다. "모든 사람은 신앙에 앞서 율법의 권세 아래 있었고 신앙을 위하여 갇혀 있었다." 이것은 "성숙하지 못한 때"이다. "여기서 사람은 비록 모든 것을 다스리는 주라고 할지라도 아버지가 정하신 때까지 법적인 보호와 후견인에게 복종하는 잠정적인 상속자와 같이 법 아래 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년으로서 아들의 때가 왔다. 이제 그는 이 모든 것을 누리게 되었다. 이것은 고가르텐에 있어서, 틸리케에 의하면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율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에 대해서 규범이 되는 '질서'를 의미한다. 세계는 질서 없이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어디든지 질서가 있는 곳에 법이 있다. 이렇게 해서 법은 세계의 가장 강한 권세, 즉 그것이 자신의 한계 위의 세계가 되기를 원하는 권세가 되었다. 사람은 이 법에 의해서 지배를 받기 때문에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예배한다. 이 미숙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역사에 의해서 종말이 왔다.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의 속죄 사역으로 인해서 우리는 이제 "아들 됨"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이후적 행동의 형태도 고가르텐에 의하면 그리스도교 이전적 형태에서와 같이 세계에 대한 적절한 관계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는 그의 아들 됨의 구조적 관계에서 세계를 보지 않으며 그리고 하나님의 아버지 됨에 의해서 보호를 받는 상속으로서 세계를 보지 않고 세계를 자치적으로 이해한다. 또한, 그는 세계를 전체로 보고 그것의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인간이 아들 됨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하고 스스로 자율적이고 자치적이라고 선언하는 때 그는 세계에 대한 객관적 관계를 잃는다. 그러나 세속화는 신앙에서 결과하는 세계에 대한 객관적 관계의 타당한 표현이기 때문에, 세계에 관계하는 이 두 번째의 신화적 양식은 "세속주의"로 인도한다. 이것은 세계로부터의 배반이고, 또한 아버지로부터의 배반이다.
그리고 고가르텐에 있어서 세속화는 두 개의 근본적으로 다른 이해로 구별되는데 세속화의 입장은 세속적인 것 속에 남아 있는 것으로서의 세상을 세상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닌 것으로서 받아들이는 때에만 경험될 수 있다. 그것은 이성의 한계를 인식한다. 그리고 세속화의 다른 입장은 세속주의라고 할 수 있다. 세속주의는 두 가지 형태를 갖는데 하나는 전체성의 추구에 대답하려고 하는 이데올로기, 또는 구원의 교의의 세속주의이다. 다른 하나의 세속주의는 전체성에 대한 모든 추구를 무용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선언하는 허무주의이다.

그리고 신앙과 세속화의 관계는 고가르텐에 의하면, 양자를 대립시킴으로써 해석될 수가 없다. 만일 신앙이 세속화의 영향을 받는 삶의 영역으로부터 단절시키려고 한다면 그것은 신앙이 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만일 세속화가 신앙에 속할 것을 요구한다면 신앙은 그 세속성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속화에 관한 신앙의 과업은 그것을 그 세속성 안에 남아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처럼 이 두 역사는 철저한 상호 관계 속에 유지된다. 따라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역사와 지상의 역사를 구별하는 것이 신앙의 첫 과업이다. 신앙과 세속을 구별하는 것은 고가르텐에 의하면 영지주의적 탈선이다. 신적 구원의 실재와 법의 행위를 구별시키는 것이 신앙의 최고의 관심이라고 한다면, 세속화는 신앙 그 자체에 출발점을 갖는다. 왜냐하면, 이렇게 구별함으로써, 즉 행위의 지상 적이며, 세상적인 의미를 보전함으로써 신앙은 이것을 인간의 이성의 책임인 세상의 문제로 삼기 때문이다.
또한, 틸리케에 의하면 고가르텐에게 있어서 세속화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타당한 선물이다. 고가르텐은 신앙과 세계에 대한 합리적 관계 사이의 어떤 유사성을 지적한다. 그는 또한, 물론 명백하지는 않지만, 과학의 자유를 종살이로부터의 구원에 연결시켰다. 이것은 인간의 교만이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께 받은 책임적인 청지기의 직분이며 이것은 인간의 능력과 지식이 극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세계에 있어서 타당성을 갖는다고 매퀘리가 말했다. 그리고 이런 고가르텐의 사상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교 물리학자의 한 사람인 바이재커에게 영향을 주었다. (신의 세속화, pp. 157-9, 요약)

 

참고 문헌

 

마틴 마티, 딘 피어막 엮음 [현대 신학자 핸드북], 신 경수 역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2000년 8월 20일)

스탠리 그랜츠, 로저 올슨 [20세기 신학] (서울: IVP, 1997)

존 로빈슨, [신에게 솔직히], (서울:

박 봉랑, [신의 세속화] (서울: 대한기독교 출판사, 1997),

목창균, [현대 신학 논쟁] (서울: 두란노, 1995)

이 형기, [본회퍼의 신학 사상] (서울: 장로회신학 대학교 출판부, 1991)

편집부 편, [현대신학자 20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김 의환, [현대 신학 개론] (서울 :개혁주의 신행 협회, 1996, 9월 20일)

 

http://cafe.naver.com/modernth.cafe?p=apply&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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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iblewel.com/technote/read.cgi?board=b5&nnew=2&y_number=4


본훼퍼의 영성과 사회참여

 

 

 

들어가는 글

기독교 역사의 초기에는 하나님과의 교제로서의 수직적 영성을 많이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리고 현대에 가까워올수록 이웃 사랑 또는 투신으로서의 수평적 영성을 강조했음을 볼 수 있다.

 


사실 온전한 영성은 이 두 내용이 떨어질 수 없는 통전적인 것으로서 해방을 위한 사회변혁의 영 성이고 행방이다. 단순히 자기 부정이나 고행, 심령의 변화만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요, 또 단순히 행동을 통한 역사 변혁 및 사회 해방만을 강조하는 것도 아닌 이 둘을 하나로 하는 이런 온전한 영성과 해방의 개념이 20세기를 지나 에큐메니칼 영성과 제 3세계 영성에 와서야 정립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영성과 해방의 현대적인 모델을 본회퍼에게서 찾을 수 있겠다.

 


1.교회 투쟁기에 나타난 본회퍼의 영성

어떤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사상이 형성된 새대적 배경이나 그 사상가의 전기적 경험에 그것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 본회퍼의 사상은 교회 투쟁과 정치 투쟁의 경험 속에서 그리고 죽음 을 앞둔 옥중 생활 속에서 형성되고 변천되었기 때문에, 그의 영성을 살쳐보기 위해서는 그 시기 를 구분하여 그 시대 상황과 그의 전기적인 삶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1. 신도의 공동 생활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교회,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교회, 원수 사랑, 절대 순결을 세상 에 보여야 하는 교회, 이런 겨회가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교회를 위해서 본회퍼는 엄격한 영적 훈련을 강조했고 핀겐발데 신학교 안에서 형제의 집을 세워서 공동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공동 생활을 통해서 엄격한 영적 훈련을 실시했으며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같이 살고 같이 기도하고 서로 죄를 고백하고 둉서했다. 이러한 공동체의 삶을 바탕으로 「신도의 공동 생활」이 집필되었다.

 


「신도의 공동 생활」은 내면적인 영성의 함양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각 장 별로 살펴보면 1장의 ‘공동 생활’ 에서는 성도의 사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사귐은 성찬의 사귐까지 가야 하며 그럼으로써 사귐의 목적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회퍼는 단순한 사귐이 아 닌 예수를 중심으로 한 본질적인 사귐을 강조하고, 그것은 기도와 성례전에 의해서 완성된다고 한다. 또한 이 사귐은 한 운동이나 조직이나 단체나 경건한 이들의 모임이 돠어 버리지 않고, 거 룩한 기독교의 공교회로 이해돨 때에 비로소 건전하게 지속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약하고 보잘 것없는 사람, 아무 쓸데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의 산 사귐에서 쫓아내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를 추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2장의 “남과 함께 사는 하루”에서는 기도와 성서 읽기의 중요성과 찬양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기도는 한 번 사람의 마음에 가득 차 있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털어놓고 마는 것이 아나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꺾이지 않고 꾸준히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기의 마음에 인을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자유로운 기도가 주관에 사로잡혀 제멋대로 드리는 기도가 되지 않으려면, 기도할 때 성서를 읽는 일도 겸하는 것이 도움이 되며, 이로서 기도는 튼튼한 밑받침 과 터전을 얻는다고 말한다. 또한 성서를 배워 보겠다고 혼자 애쓰지 않는 사람을 복음적인 그리 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성서의 중요성을 말하며 읽는 방법까지 자세히 말하고 있다.

 


찬양을 많이 부를수록 우리가 맛보는 기쁨은 더 커지고, 무엇보다 마음을 모으고 훈련을 거쳐서 즐겁게 부르게 되면 함께 노래하는 것이 우리의 공동 생활에 미치는 축복은 더 풍성하게 될 것이 라고 한다.

 


3장의 “홀로 있는 날”에서는 고독과 명상을 강조하고 있다. 홀로 있을 수 없는 사람은 사귐 앞에 서 마음을 가누어야 하고, 사귐 속에 서 있지 않는 사람은 고독 앞에서 마음을 가누엉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혼자서 성서를 읽고 혼자 기도하고 혼자 남을 위한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4장의 “섬김”은 혀에 굴레를 씌우는 것이며, 온유하게 대하는 것이며, 남의 말에 말없이 귀를 울 이는 것이며, 헌신적으로 남을 돕는 것이며, 서로의 짐을 져 주는 것이며, 말씀으로 섬기는 것이 라고 한다.

 


5장의 “죄의 고백과 성만찬”에서는 죄의 고백을 듣고 사죄를 해주는 형제는 그리스도를 대리하 고 하나님의 현재를 나타낸다. 형제 앞에 죄를 고백하는 겸허 속에서, 영적으로 신체적으로 깊은 굴욕의 아픔 속에서 선다는 것은 본회퍼에게는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백한 죄는 관계를 단절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힘을 잃는다. 그 까닭은 죄를 고백함으로써 자기 정당화의 마지막 노력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귐에로 뚫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본회퍼의 이런 공동 생활은 사회와는 과계 없이 개인적인 영성을 쌓기 위해 숨어드는 것이 아니 라 오히려 그 사회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수정하려는 준비를 강화시켜 주는 것이었다.

 


2.나를 따르라

 


본회퍼는 거룩해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제자가 된다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은헤” 를 받는다는 것의 뜻을 가려 낸다. 그에 의하면 “값비싼 은헤”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를 따 르는 삶의 한가운데 있으며, 그 고난에의 참여 안에서 영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본회퍼가 강조하는 영성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실천적 삶이며, 그것은 세상의 삶 가운데 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영성은 값싼, 싸구려 은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훈련을 통하여 얻어지는 복종의 삶에서의 영성인 것이다.

 


본회퍼의 영성은 종적이고 수직적이며 탈세상적인 영성이 아니라, 횡적이고 세상 안에서의 세속 적인 영성이다. 그의 영성은 세상 밖에서 명상하는 영성이 아니라 실천하는 영성인 것이다.

 


2. 정치 투쟁기에 나타난 본회퍼의 영성

 


1. 윤리


본회퍼는 ꡔ윤리ꡕ에서 두 영역에 관한 이론을 거부한다. 두 개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실과 세상의 현실이 하나로 통일되는 그리스도의 현실이 있을 뿐이다.

즉, 기독교적인 것은 세상적인 것에, 성스러운 것은 속된 것에, 계시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

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교회만을 거룩하게 여긴다거나, 이 세상적인 것이 자립하여 자기를

절대화하려는 것은 오류이다.

 


그러면 교회와 세상의 대립은 어떻게 극복돠고 통일되는가? 본회퍼에 의하면 그것은 그리

스도인 의 삶으로 나타나는 영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한 예

수 그리스도 와 같이 사는 십자가의 영성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영성은 성육신의

능력 의하여 인간 이 되는 것을 말하며, 부활의 능력 가운데 사는 삶을 말한다. 이 두 가지의

영성, 즉 십자가의 영 성과 부활의 영성을 통하여 교회와 세상의 대립이 극복된다는 것이다.

이 영성은 그리그도와 세 계의 만남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럼으로 이 세상의 해방에 참여하

는 것이다.

 


2. 옥중서간

 


ꡔ윤리ꡕ에서는 궁극 이전의 것이 궁극적인 것을 위한 길 예비로서 요청되고 양자가 조합적

으로 강조되었다면, ꡔ옥중서간ꡕ에서는 궁극 이전의 것 속에서 궁극적인 것을 본다. 그는

이 세상에 대 해 강조를 하고 있고 역사의 한복판에서의 십자가의 영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러므로 교회는 피 안적인 교회가 아니라 이 세상적인 교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숙한 세상과 성서적 하나님의 경합을 그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라는 역설적인 말

로 표 현한다. 이 말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말과 같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

과 함께 있 는 것”은 모든 종교적 인간들로 부터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하는 특징이며, 종교적

인간이 바라는 것과 정반대의 사실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고난에 인간의 동참을 촉구한 것

은 중요한 이미가 있다. 기존의 현실과 유리되어 골방 속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것을 추구했

던 편협한 영성의 개념을 넘어서 이 땅의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고난의 실천을 통해서 영성

이 함양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기도와 정의 실천 속에 숨어야 한다. 그리고 이 실천은 주관적이고 아이한 실천이

아니 라 적과 힘에 대한 냉정하고 효과적인 대결을 포함한 현실적인 실천이어야 한다. 또한

자기 방어 를 일삼고 자기 보존에 급급한 교회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고난받는 교회, 자신을

내주는 교회여 야 한다. 본회퍼는 교회가 역사적 정의를 이식하고 동포 전체와 그 고난에 참

여할 것과 전 재산 을 궁핍한 사람들에게 아누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그가 가난한

민중이란 말을 쓰지는 않 았지만, 정의의 실천을 강조하고 역사적 정의를 말하고 궁핍한 사

람 에게 교회 재산을 내줄 것 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가난한 민중을 염두에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본회퍼는 물질적 현세 성을 강조하고 이 세상에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에 주목

했다. 자기 방어를 일삼고 자기 보존에 급급한 교회는 죽은 교회이고 희망이 없는 교회이다.

가난한 민중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교회만 이 산 교회이며 의망이 있는 교회이다. 이것이

옥중에서 죽음을 앞두고 본회퍼가 교회에게 들려 준 말이다. 그는 또한 자신의 배경인 귀족

적인 집안, 학자로서의 보장된 삶을 버리고 자신의 이기 적인 안락한 삶, 고백 교회를 포함

한 독일 교회의 소시만적 경향을 비판하고 곤궁과 소외고 고통 받는 삶을 지향하며, 자신 스

스로가 이 말씀을 실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것을 자신의 삶으로 써. 행동 언어로써 들려

주었다. 지금까지 본회퍼의 작품속에 나타나 있는 영성을 통해 볼 때 그는 투쟁의 사람이었

지만 동시에 영성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기독교적 영성과 해 방이 그의 전체

삶 속에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3. 맺는말

 


본회퍼에게 영성의 문제는 1930년대 초반 그의 강사 시절의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서 발

아하고 교회 투쟁을 통해서 성장했고, 옥중서신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회

퍼에게 영성의 문제는 투쟁의 문제요, 또 투쟁의 문제는 영성의 문제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영성의 문제는 자기 해방과 함께 교회의 해방, 그리고 사회의 해방을 그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본회퍼의 영성 개념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물러섬의 영성”이다. 모든 영성운동의 출발점은 시간과 공간에서 기존의 것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두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는 점에서 ㄹ본회퍼의 영성은 본질적으로 기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물러섬”은 자아로부터

시작해서 기존의 모든 사회적 제도들과 비판적 거리를 두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회퍼

는 영성 훈련의 목표가 단순히 전통적인 수도원적 은둔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

히 신비주의에서 강조되었던 신과의 직접성의 문제도 이러한 “물러섬” 으로부터 출발하지

만, 본회퍼의 영성은 중세말의 신비주의 운동이나 종교 개혁 당시의 성령주의 운동에서처럼

인식론적으로 “신과의 신비적 일치”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둔다. “물러섬”의 영성은 십자가

에 달린 하나님인 그리스도 사건에 집중된다. 즉, 비판적 거리라는 영성을 통해서 당시 기독

교의 “기계 장치의 신”을 극복하고 “세계의 한가운데서 수난하시는 하나님”, 피안적인 기독

교에 대해서 “차안적인 기독교”,“ 종교적인 기독교”에 대해서 “비종교적인 기독교”를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물러섬”르로서의 영성을 통해서 본회퍼는 “피안 한가운데서 차안” 을 만나

고 또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는 것이다.

 


이러한 물러섬의 영성은 모든 정치 종교의 “비신화화”와 함께 모든 이념적인 것들의 “탈이념화” 의 근거가 되는 것이요, 모든 인간 우상화의 “탈 우상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영성은 모든 종교 비판, 사회 비판, 이넘 비판을 수반한다. 이 영성의 기초는 예수 그

리스도이다. 본회퍼에 따르면 영성의 궁극적 기초는 “인간이 되고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불

활하신 유일한 분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즉, 성육신 사건, 십자가 사건,

부활 사건 등은 일상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향한 비판적 사건이며, 이 사건의 주

인공인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야말로 “물러섬의 영성”을 획득하는 구체적인 길

이다.

 


둘째, “공동체의 영성”이다. 모든 영성 훈련은 사귐으로부터 출발 한다. 영성 훈련의 전통


을 지니고 있던 수도원들에서는 단독자에 의한 신과의 신비적 일치 못지않게, 형제들간의 사귐과 서로간의 격려를 통한 훈련을 중요시했다. 따라서 사귐이 없는 영성은 참 영성일 수가 없다.

 


그런데 본회퍼는 기독교적 공동체의 영성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성립된다고 함으로써 그것의 근원과 목표를 기독론에서 파악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타자로서 형제와 자매가 나 밖에서 구원 의 기원을 드러내고 보등해 주기 때문에 형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또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 로부터 오며, 형제 자매의 사귐이, 신체적으로 되어 버린 하나님 임재의 표현과 그 형식으로 이해 되듯이, 하나님과 인간들의 깨어진 원초적 사귐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비로소 재건된다. 성서에 보면, 사귐의 본질을 이루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란 상으로 나타난다.

 


셋째, 해방의 영성이다. 비판적 거리와 형제간의 사귐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성육신하고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부활한 자의 영성은 아닐 것이다. 비판적 거리를 통해서 그리고 형제간의 사귐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자기 추구와 자기 주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의 영 성이라는 사회적 지평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게토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러한 해방의 영성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의 포기”, “의로운 일의 실천”, 타자를 위한 교회“를 요청하고 있다. 사실상 ”타자를 위한 교회“는 특권의 포기라고 하는 소극적인 과제와 정의의 실천 이라고 하는 적극적인 위탁을 지니고 있다. 특권의 포기는 사회적 봉사의 차원을 가지나 정의의 실천은 정치적 봉사의 차원도 내포하고 있다.

 


본회퍼의 영성의 특징을 “물러섬, 공동체, 해방”이라는 표제어를 통해서 살펴 보았다. 이것은 영 성이 위의 세 가지 차원들을 가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 적이벼, 기독교 영성을 참 영성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성은 재물,특권등과 같은 것을 포기하 는 것과 함께 불의한 권력 구조들에 대한 결연한 투쟁으로 나타나며 동시에 가난하고 억눌린 자 들을 돌보는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귐을 통해서 같이 해나가야 한다. 만일 이 중에 어느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육신하고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성이 아니며, 따라서 삼위일체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영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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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의 영성연구

 

 

 

1. 본회퍼를 선택하게 된 동기
2. 본회퍼의 생애
3. 본회퍼가 처했던 삶의 자리와 그의 활동
4. 본회퍼의 저서에 고여 있는 일관된 사상·얼·영성
5. 본회퍼의 영성신학의 의의와 현대적 의미
6. 참 고 자 료

 

 


1. 본회퍼를 선택하게 된 동기 : 생활신앙을 위한 비밀훈련에 감명을 받고

 

 

우리는 신학과 신앙의 자유를 사랑한다. 하지만 동시에 "학문(學問)과 경건(敬虔)"의 훈련을 받는 이 모든 여정이 카톨릭의 수도원처럼 서원의 과정이고, 세속을 준비하는 훈련의 도장(道場)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어찌 보면 한 인간이 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고행과 내적인 연단이 요청된다. 그래서 우리는 구도자(求道者)로서 이런 훈련과 체험을 통해 인간존재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첨단(尖端)의 자리에 홀로 그리고 함께 서게 되는 것이다.(Before God)

 


이런 심정을 마음에 담고, 잠시 걸어가고 있던 발걸음을 멈추어, 우리의 목적지와 같은 방향을 미리 걸어가셨던 선배들의 생애와 삶을 되돌아 보려 한다. 무엇보다 필자에게 연구과제로 주어졌던 본회퍼 목사의 생애와 삶, 사상, 그리고 그의 영성을 조명하여 구도자들의 거울로 삼으려 한다.

 

 

그대가 자유를 찾아서 떠나려고 하거든, 욕망과 그대의 지체가 그대를 이리저리 끌지 않도록 먼저 그대의 몸과 영혼을 훈련하는 법을 배우라. 정신과 육체를 정결케 하고, 그대에게 정해진 목표를 찾아 거기에 복종하고 또 순종하라. 자유의 비결을 맛볼 자는 없다. 그것은 다만 훈련에 의할 뿐이다.


'자유에로의 도정 가운데 있는 훈련'이라고 하는 글에 나타나 있는 대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목사는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한 부단한 훈련과 삶이었음을 알 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고백(告白)은 동시에 시공을 넘어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이어진다. 육신의 욕망이 그를 이리저리 마음대로 끌고 다니는 노예적 삶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는 몸과 육체를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훈련을 잠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조국독일의 악마와 같은 히틀러와 어용 기독교회의 편에 서지 않고, 2천년 그리스도교의 전통에 설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일상 생활 속에서 이루어진 철저한 비밀훈련과 내적인 고행에 기인한 결과였다는 사실에 필자는 추호의 의심이 없다. 그는 조국을 버렸지만, 새로운 2천년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오늘의 현재에 심어 놓았다. 본회퍼라는 한 개인의 삶이, 2천년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든든하게 이어나가는 굳건한 가교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를 그 자리에 세웠던 생활신앙으로서의 비밀훈련이 얼마나 중요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는가를 짐작케 한다. 그리고 이런 '비밀훈련'이 필자에게도 매우 필요하다는 사실을 공감하면서, 그의 삶과 생애 그리고 영성을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동일한 비중의 무게감과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오늘 필자가 본회퍼 연구를 통해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본회퍼의 영성이다. 영성은 생애(生涯) 및 그가 처했던 삶의 자리와 분리될 수 없기에 필자는 먼저 그의 생애와 당시의 삶의 자리를 연결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삶의 자리를 통해 전개되었던 그의 고백, 논문, 저술들의 내용과 특징을 중심으로 그가 그 시대에 펼쳐 보였던 사상과 얼, 정신을 나름대로 그려 보고자 한다. 아마 정답은 아니겠지만 이런 요소들이 그의 영성과 깊이 닿아있으리라.

 


특히 필자가 더욱 관심을 가지는 것은 두 가지 인데, 첫째, 2천년 그리스도교 영성 전통과의 관련성 속에 놓여있는 본회퍼의 영성 신학의 위치이다. 그것은 곧 본회퍼가 그리스도교 영성사에서 '어떤 의미있는 역할을 했는가?'를 살펴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둘째, 새 시대 영성의 선구자중의 한 사람으로 불리우는 본회퍼가 던진 현대신학의 화두이다. 그가 말하고 있는 "하나님 없이(ohne), 하나님 앞에서(vor), 하나님과 더불어(mit)"라는 화두는 오늘의 자리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 그의 영성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시금석(試金石)이 된다. 이상의 두 테마를 가지고 필자는 본회퍼의 영성 신학의 특징과 영향을 정리하려 한다. 이 연구가 오늘 한국사회와 교회 안에서 바른 영성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구도자들에게 많은 도전과 시사점을 제공하였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2. 본회퍼의 생애2) : 그는 고독했기에 신학자가 되었고, 신학자였기에 고독하였다

 

1906년 독일 프로이센 브레슬라우에서 칼 본회퍼(Karl Bonhoeffer)와 파울라 본회퍼(Paula Bonhoeffer)사이에 팔남매 중 여섯째(네 아들중 막내)로 태어났다. 일곱째인 누이 사비네(Sabine)와는 쌍둥이였다. 부계(父系)는 학자, 법률가 집안(아버지는 정신의학과 신경의학 교수), 모계(母系)는 귀족 출신으로서 신학자, 목사 집안(어머니의 부친은 황제 빌헬름 2세 때 궁중 설교가, 조부인 Karl-August von Hase는 교회사 교수) 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본회퍼가 독일제국의 엘리트 가정에서 성장하였음을 알 수있다.

 

1912년(6세) 아버지가 베를린 국립대학병원의 원장과 대학 정신의학 주임 교수로 취임되었기에 가족 모두가 베를린으로 이주하였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1914-18).

 

1920년(16세) 그는 음악과 종교에 관심이 많았으며 결국 신학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였다.

 

1923년(17세) 그룬발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튀빙겐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A.Schlatter, K.Heim, K.Gross 등에게서 배웠고, 두 학기를 보내는 동안 신학부에서 교회사·철학 등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모든 것을 중산층의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신학을 이해하였다.

 

1924년(18세) 로마와 아프리카 대륙 여행을 하였다.(4월 초) 여행 중 독일에서 느끼지 못했던 카톨릭 교회의 보편성과 예배 의식에 감명을 받고 교회에 대한 새로운 안목과 진정한 교회의 중요성을 발견하였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현실을 직접 목격하는 등, 여행은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24년(18세) 베를린 대학으로 옮겨(6월) 1927년(21세) 7월까지 머물렀다. A. Harnack, H. Litzmann, E. Sellin, K. Holl, R. Seeberg 등에게서 배웠고, 이 기간동안 루터 계열의 전통신학을 주로 홀(Holl)에게서 소개 받았으며, 라인홀트 제베르크의 지도로 박사학위 논문 보고서를 제출하였다.(1925-1926 겨울학기), 논문의 주제는 1927년 8월에 통과된 "성인들의 통공 혹은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 교회 사회학에 대한 교의 신학적 고찰"이다.

 

1927년(21세) 교회의 본질에 대한 문제를 추구하던 그는 하르낙을 비판하며 칼 바르트(Karl Barth, 1886.5.10∼1968.12.9)의 변증법적 신학에 매료되었다.

 

1928년(22세) 스페인의 바로셀로나에서 독일인들을 위한 교회의 Vikar(전도사, 부목사)로 일하였다.

 

1929년(23세) 베를린으로 돌아와 교수 자격논문(Habilitationsschrift)을 제출하였다.(행위와 존재Akt und Sein: 조직신학에 있어서의 존재론과 선험철학) 당시 세계 시장경제의 위기를 예고한 뉴욕 증권가의 주식시세가 폭락(10월24일, 1929-33)하였는데, 그는 정치적·경제적 사건들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적었다. 그것은 여전히 중산층의 한계를 드러내는 즉, 완전히 자신의 삶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1930-31년 교환학생으로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서 연구하였다. Reinhold Niebuhr와 J. Baillie, P. Lehmann을 만났고, 이런 해외 경험을 통해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뉴욕 할렘가의 흑인 문제를 보며 인종차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지성과 직감이 한데 어우러진 흑인 공동체 예배를 통해(할렘의 교회) 개인적으로 해방감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성인들의 통공'이 자신이 속해 있던 중산층만을 배경으로 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1931년(25세) 다시 베를린 대학교로 와서 조직신학 강사로 임명되었다. 1936년 나치 정부에 의해 쫓겨 날 때까지 베를린 대학교 강사로 지냈다. 이 때「그리스도론」,「창조와 타락」,「교회의 본질」등을 강의하였다. 영국 켐브리지에서 열린 "교회를 통한 국제적 우호관계를 증진 시키기 위한 세계 연맹"의 유럽 청년부 간사가 되어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해 다른 나라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독일교회가 벌이고 있는 투쟁의 중요성과 히틀러의 진상을 자유세계에 알리던 중 영국 치체스터 주교 G.K.A.Bell 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1932년 나치스당의 의석수가 230석이 되었고, 이때 독일 대다수의 목사들은 기독교와 민족주의적 사회주의를 종합하기 위한 운동으로 "독일 기독교 신앙운동"에 가담하였다. 이때는 본회퍼가 이미 중산층으로서의 사회적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1933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권력을 장악하고 총통에 취임하였다(1월 30일). 본회퍼는 즉시 라디오 강연(2월 1일)을 하였다. 그는 "지도자와 젊은 세대"라는 제목의 글에서 '스스로 신성화하는 지도자의 직위는 신을 모독하는 것임'을 말하던 중 강연이 중단되었다. 그 후 나치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여름에 베를린 대학에서 기독론을 강의하였는데 이 강의는 1. 현존하시는 그리스도 2. 역사적 그리스도 3. 영원하신 그리스도로 구성되었으나, 도중에 중단되어 3부는 강의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영국 런던에 가서 목회를 한다. 18개월간의 영국목회 활동을 통해 본회퍼는 독일 밖에서 독일교회의 반히틀러 투쟁의 대변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덴마크에서 열린 W.C.C. 회의에 독일에서는 히틀러를 지지하는 독일 기독교회만이 참여했는데, 본회퍼는 이 곳에 참여하여 W.C.C.가 "독일 기독교회"를 정죄하고 고백교회(Confessing Church)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돌아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1934년에는 바르트가 선언한 "바르멘 선언"이 나왔다.

 

 

1935년(29세) 본회퍼는 영국에서 간디의 친구이자 전기 작가인 C.F.Andrews를 알게 되었고, 그의 소개로 간디의 비폭력적 평화주의를 배우기 위해 인도로 갈 계획을 세웠지만, 1935년 4월 고백교회 총회로부터 긴급 부름을 받아 귀국, 발틱해 근처에 있는 Zingst에서 25명의 목사 후보생을 돌보는 신학교의 책임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런데 이 신학교가 곧 슈테틴 부근의 핀켄발데(Finkenwald)로 이전하였다. 본회퍼는 이 신학교에서 특수교육의 과정을 만들고, "형제의 집"(Bruderhaus)이라고 불리우는 집에서, 귀국하기 전 몇몇 수도원과 신앙 공동체들에게서 배운 내용들을 토대로 공동생활, 강의, 기도와 명상, 죄의 고백등의 교과과정을 실시하였다.

 

 

그는 이 기간을 자신의 생애에 가장 만족한 시간으로 회고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신학교는 결국 1937년 게쉬타포(Gestapo)에 의해 폐쇄되었다. 이 핀켄발데 신학교에서 강의하였던 내용이「나를 따르라」(Nachfolge, 1937), 「성도의 공동생활」(Gemeinsames Lesen, 1939)이다. 그는 고백교회의 신학교에서 일한 결과로 베를린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는 미래의 목사가 그들의 삶과 일에서 필요로 하는 저항의 힘은 오직 성공적인 공동생활(연대감)에서 길러진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레나테 빈트)

 

 

1939년(33세) 2차 세계대전 발발하였다.(1939-45), 라인홀드 니버와 폴 레만은 본회퍼를 미국 유니온 신학교로 초빙, 뉴욕에 도착하였다(6월 12일). 본회퍼는 독일에 있는 형제들에 대한 생각으로 항상 번민, 미국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니버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저는 독일의 기독교인과 더불어 우리 조국의 이 어려운 시기동안 내내 함께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의 동포가 함께 이 시대의 시련을 나누지 않는다면 전쟁 후 독일에서 기독교인 삶의 재건에 참여할 권리가 없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미국을 떠난다(7월 7일).

 

 

1940년(34세) 본회퍼는 독일로 돌아와서 매형인 한스 폰 도나니(Hans von Dohananyi)의 도움을 받아 저항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도나니는 독일 군 정보부의 정보부장 부관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의 도움으로 정보부가 채용한 민간인의 요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곧 히틀러 암살 음모는 그의 매형 및 고위층의 반 히틀러 세력들이 군 정보부와 더불어 시도했던 것인데, 본회퍼도 여기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이다("...미친 사람이 모는 차에 희생되는 많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만이 나의 과제가 아니다. 이 미친 사람의 운전을 중단시키는 것도 나의 과제이다....", 본회퍼).

 

 

1941-42년 군 정보부(저항운동의 중심역할)의 덕분으로 스위스, 노르웨이, 스웨덴을 방문, 특히 42년 5월에는 벨 주교를 통해 저항운동가들의 평화협상안을 영국 정부에 보냈으나, 이러한 희망은 연합군의 '무조건 항복' 정책 때문에 좌절되었다. 이 기간에 그는「윤리학」의 저술을 위한 원고를 틈틈이 썼다. 이 책은 본회퍼 사후에, 튀빙겐 신학교 시절때부터 절친한 동료였던 에버하르트 베트게(Eberhard Bethge)에 의해 편집 출판되었다.

 

 

1943년(37세)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와 약혼(1월)하였다. 본회퍼와 도나니는 혐의를 받고 게쉬타포에 의해 체포 수감된다(4월 5일). 본회퍼는 테겔 형무소에 수감되어 18개월을 보냈는데, 이 기간 중 베트게에게 보낸 편지가 사후에「저항과 복종」(Widerstand und Ergebung)으로 출판되었다.

 

 

1944년 히틀러 암살 음모가 실패로 끝이 나고 만다. 히틀러는 이 음모에 정보부가 연관되었음을 알아내고, 많은 저항자들을 적발하였으며, 본회퍼도 집단 수용소로 이송된다(7월 20일).

 

 

1945년 나치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4월 8일 이른 아침에 저항에 참여한 그의 가족 3명을 포함한 5천명의 사람들과 함께 교수형을 당한다. 3주 후 히틀러는 자살, 5월 8일에 독일이 항복하게 된다. 그 리고 사후 50년만에 베를린의 한 법정에서 독일의 양심 본회퍼 목사를 복권시켰다. (복권판결의 이유: 본회퍼는 결코 국가를 위태롭게 한 적이 없고 오히려 나치의 폐해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구출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3. 본회퍼가 처했던 삶의 자리와 그의 활동

 

제 1차 세계대전(1914-1918, 본회퍼가 8살 때)에서 참패한 독일의 상황은 절망과 혼돈의 연속이었다. 경제는 도탄에 빠져 실업자 수는 급증하였다. 세계 제일의 우수한 백성임을 자랑하던 독일 민족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짐은 물론 설상가상으로 패전국으로서 짊어져야 할 채무를 감당할 길이 없었다. 국론은 사분 오열되어 국론통일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1933년, 히틀러는 메시야 처럼 희망을 약속하며 권력을 손에 잡았다. 독일 국민들의 기대에 걸맞게 그는 집권 2년만에 600만 명의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줌으로써 땅에 떨어진 독일민족의 자존심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국민들의 정서를 통합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히틀러는 '근대화'와 '민족중흥'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등장한 국가사회주의당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인류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전대미문의 범죄행위를 감행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끔찍한 것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급기야 제 2차 세계대전(1939-45)을 일으켰다. 그 결과 680만 명의 독일인들이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고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에서 비인간적인 고문과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가스실에서 혹은 총살과 교수대에서 처형되었다. 히틀러의 허황된 망상은 독일 국민들뿐만 아니라 평화로운 이웃 나라들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다. 2차 대전에서 소련은 2,000만 명의 젊은이가 전사했고, 전체 사망자수는 부상자를 제외하고 5,700만 명이었다.

 


종교개혁의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 교회는 히틀러 국가사회주의 정당의 이념을 메시아적인 것으로 추앙하여 국가기독교라는 어용종교로 이용당하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남겼다. 루드비히 뮐러(Ludwig m lle) 감독을 주축으로 한 독일 그리스도인 연맹은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 이념을 찬양하는 굴욕적인 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리스도는 히틀러를 통해 우리에게 오셨다" ... "모든 민족에게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도 영원하고 특별한 종류의 법을 주셨다. 이 법은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와 그에 의해 이룩된 국가사회주의 국가 속에서 그 구체적 모습을 드러냈다." ... "독일민족을 위한 시대는 히틀러 안에서 성취되었다. 왜냐하면 히틀러를 통해 참 도움이며 구원자이신 하나님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그의 능력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전세계를 위한 보편적인 하나의 교회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유산이다. 그러나 독일교회는 근시안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게르만 민족 우월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전락되어 세계 평화를 위한 본래적 사명을 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비록 독일교회 대다수가 히틀러 독재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교회 내에 히틀러가 지향하는 국가사회주의 이념이 지니고 있는 엄청난 악(惡)의 요소를 감지하고 꿰뚫어 보고 있는 일군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독일 그리스도인 연맹을 탈퇴하며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 운동을 일으켜 바르멘에 모여 "바르멘 신학선언"(Barmen Theologische Erkl rung)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선언은 히틀러를 메시아로 추앙하는 독일 그리스도교 연맹의 주장에 쐐기를 박고 그들이 주(主)로 고백하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온 천하에 선포한다. 이 선언에 참가한 주역들에게는 곧 고난이 다가왔다.

 

 

이 신학 선언을 기초한 칼 바르트(K. Barth)교수는 본 대학의 교수직을 떠나야 했고 많은 이들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다. 세계인들의 양심을 깨우고 그리스도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직을 몸소 보여주었던 본회퍼 목사의 삶과 신앙은 한국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커다란 공감과 반향을 일으켜 박정희 군사독재 기간동안 신앙을 지키고 유린된 인권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투쟁에 나서도록 하는 동기를 부여하였다.

 


고백교회 운동에 참여한 목사들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고 많은 신학자와 목사들이 감옥에 갇히게 되는 와중에 미국의 라인홀드 니버 교수는 본회퍼를 유니온 신학대학 교환 교수로 초청하였다. 그를 초청한 것은 본회퍼 목사의 신학자로서의 자질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그를 고백교회 운동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빼내어 학문 연구에 전념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본회퍼는 1939년 그의 초청에 응하여 유니온 신학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미국 각지를 도는 순회강연을 통해 조국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 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를 창출해내는 일에 열중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곧 그의 미국행이 잘못된 결단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그의 조국과 그리스도인들이 현 독재체제 아래 신음하고 있는 때에, 그들의 고난에 참여함이 없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불가능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동년 7월에 귀국 길에 오른다. 당시의 심경을 나타낸 글은 그가 내린 결단의 참된 뜻을 잘 드러내고 있다.

 

 

"독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몸서리치는 양자택일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문명을 살리기 위해 조국의 패망을 위해 기도하느냐, 아니면 독일의 전쟁승리를 위해 기도하므로 그리스도교 문명을 파괴하느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나는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압니다. 그러나 나는 안전한 가운데서 그러한 선택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그가 따르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쟁의 합리화와 민족중흥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으며 2천년 그리스도교 역사의 복음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그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는 순교자적 순종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요청과 하나님의 뜻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귀국 후에 본회퍼 목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순명의 길을 실천하기 위해 결국에는 히틀러 총통의 암살음모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그가 참여한 암살음모는 교활한 비밀경찰의 정보망에 포착되어 체포된 후 1943년 4월 5일, 프로이센부르그의 포로수용소에서 처형당했다. 처형되기 전 그가 남긴 말은 그의 삶이 처형과 더불어 끝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부활의 행진에 참여하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죠. 그러나 저에게는 삶의 시작입니다."

 

 

본회퍼 목사가 히틀러 암살단에 참여한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취해야 될 마지막 행동으로서의 순교자적인 결단(참여, 책임, 주체적인 신앙)으로 해석해야 하느냐 아니면 영원히 넘지 못할 경계선(기다림의 신앙)을 넘은 것이냐에 대한 논란은 한국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목회를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본회퍼는 히틀러를 제거하는 길만이 그가 처한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가 갔던 길을 따라 가는 제자직의 길이요,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확신하였다. 그는 참으로 시대의 상황적 요청에 성실히 몸으로 응답하였고, 책임적으로 행동했던 그리스도를 닮은 참인간이었다. 그는 참으로 참여의 신앙과 기다림의 신앙을 결코 양분하지 않고 조화롭게 삶 속에서 구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처럼. 필자는 그것을 확신한다.

 

 

 

 

4. 본회퍼의 저서14)에 고여 있는 일관된 사상·얼·영성

 

초기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부분 나치 정권에 저항하면서 행한 강연, 설교, 편지, 일기, 메모, 옥중서간이기 때문에, 그의 생애와 삶의 자리에 대한 이해 없이 그의 글(각주 참고)들을 탐독하면 참으로 오해의 소지가 많으며, 그의 영성 신학을 그려내기란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사상사의 측면에서 볼 때 18세기 이후 계몽주의 이래로 계시는 이성의 영역으로 내재화되었고 교회는 세상의 영역에로 세속화되었다. 더군다나 낭만주의에서는 무한을 유한 안에, 초월을 세상 내에, 영원을 시간 안에로 합일시킴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없애고 그리스도 왕국과 세상 나라 사이의 질적인 차이를 없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결국 무신론과 신 죽음의 신학으로 이어져 갔다.
한편,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한계에 봉착하면서, 20세기초에는 계시와 이성의 위기적 관계를 말하면서, 계시와 이성, 교회와 세상, 신학과 철학을 분명히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와중에서 본회퍼는 교회는 교회이고, 세상은 세상임을 철저히 강조한다. 동시에 그는 "세상 속에서의 타자를 위한 그리스도인적 삶"을 강조함으로서 이러한 이분법적 관계를 넘어서고 있다.

 

 

그래서 본회퍼는 초기 작품인 <성도의 교제>에서 교회의 사회적 성격을 강조하였고, <나를 따르라>에서는 교회의 정체성과 세상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 이 둘을 배타적 관계로 보면서도, 교회가 수행해야 할 제자직을 말하면서, 이 세상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성화를 강조하였다. 후기 작품에 속하는 <윤리학>과 <옥중서신>에서는 교회와 세상의 적대 관계보다 교회가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부각시키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본회퍼는 그리스도는 초기 교회의 모습으로 실존한다는 생각을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는 비종교적 세속적인 세상의 주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의 저서에서 나타나는 사상에 일관되게 흐르는 면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중심적 사상"이다. 그리스도론은 본회퍼 신학에서 기본사상이며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의 모든 사상은 그리스도와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그리스도와 무엇"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스도와 대리사상, 그리스도와 제자직, 그리스도와 현실, 그리스도와 세계, 그리스도와 타자를 위한 존재 등이다. 이럴 때 그의 "영성의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분명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5. 본회퍼의 영성 신학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더불어"의 의의와 현대적 의미

 

 

필자는 여기서 우선 그리스도교 영성의 특징을 개괄적으로 조명하려 한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교 영성의 특징을 첫째, 성령안에서 자유와 사랑의 영성 둘째, 성육신적 영성 셋째, 순례자의 영성으로서 궁극적 희망의 영성 넷째, 말씀의 영성이며 기도의 영성 다섯째,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해가는 과정적 영성, 몸의 영성 여섯째, 공동체적 영성이며 생명의 연대성을 강조하는 영성이라 한다면, 본회퍼의 삶과 고백 저술 등에 고여있는 그의 얼, 정신, 사상은 2천년 그리스도교 영성의 전통 바로 그 자체이며, 본회퍼는 직접 그 영성의 전통을 몸으로 살고 간 영성의 대가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특히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 라는 본회퍼가 던진 현대신학의 화두에는 지금까지 필자가 점검해 왔던 본회퍼의 삶과 그가 체험한 믿음의 명상과 실천적 깨달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여지며 이 화두야 말로 진정 2천년 그리스도교 영성 전통을 그가 새롭게 재해석하였다고 생각된다.

 


첫째, '하나님 없이'는 종교적인 거짓된 하나님의 상을 깨뜨리는 것이다. 전능하고 전지한 종교적인 해결사 하나님 상은 이기적 자아의 투영과 확대이다. 이런 하나님의 부정은 이기적 자아의 부정과 자기중심성에서의 해방, 참회, 자기비움이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중심적 자아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의 심판과 다스림에 맡김이며 자아의 개인적 영역에서 벗어나 이웃과 현실 앞에 책임적 존재로 서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과 더불어'는 하나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공동체적 삶을 뜻한다. 그것은 곧 십자가 안에서 이루는 화해와 일치의 영성이다. 모든 종교의 영성과 믿음은 나의 자아와 타자의 자아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와 일치를 이루는 데 있다. 나와 하나님과 이웃의 일치는 인간의 아픔과 힘없음을 떠맡는 십자가의 영성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 없이-하나님 앞에-하나님과 더불어'의 차원이 서로 통한다는 것이다. 이 세 차원은 상호 교통하며, 본회퍼의 신학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즉, 이 화두에는 참회와 자기비움에 이르는 믿음의 신비, 사회 정치적인 공적 책임, 고난에 참여하는 공동체적 삶의 세 차원이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통전하며 동시에 신학과 신앙의 전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이제 필자는 본회퍼가 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는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왜 이런 君子가 그 시대에 살아야만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필자는 이제부터 그의 생애와 저술활동 등에서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그의 신학을 "영성 신학"이라 말하려 한다. 본회퍼의 영성 신학은 20세기 후반에 대두되었던 세속화 신학, 신의 죽음의 신학, 에큐메니칼 신학, 희망의 신학, 정치 신학, 해방 신학, 민중신학 등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우선 신학내용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본회퍼 영성 신학의 역할을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신학의 관심을 하늘로부터 땅으로, 저 세상으로부터 이 세상으로, 초월로부터 내재로, 관념으로부터 현실로 옮겨 놓았다. 둘째, 신앙의 바른 진술과 아울러 행동의 바른 성격과 방향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하였다. 셋째, 역사의 질서에 대한 이해 뿐만이 아니라 변혁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하였다. 넷째, 개인주의적 경건에서 타자를 위한 삶, 참여, 연대책임에로의 지평이 열리도록 하였다. 다섯째, 그리스도의 선교의 목적을 단순히 말씀의 전파(복음화)만이 아니라 악마성이 존재하는 현실의 모든 영역으로 관심을 돌리게 하였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본회퍼의 영성 신학이 주는 현대적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혹자의 질문을 받았을 때, 필자는 다음 세 가지로 그의 영성 신학의 특징과 영향을 제시하려 한다.

 


첫째, 본회퍼의 영성신학은 바른 이론과 바른 실천의 통합을 추구함으로써 교리와 강단 중심의 서구전통신학을 넘어서 정치신학과 세속화 신학,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본회퍼의 영성 신학은 그의 삶에서 맺혀진 것이고, 또한 그의 삶도 깊은 신학적 성찰과 안목 속에서 전개되었음을 우리는 위의 고찰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본회퍼는 성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서 어느덧 이론에 천착되어진 관념화된 신학의 그물을 박차고 신학과 영성의 본질을 꿰뚫은 신학자이자 실천가였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의 순교의 삶은 이를 예증한다. 따라서 본회퍼의 영성신학은 곡해된 종말론적 이분법의 논리에 젖어있는 오늘날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으며, 여전히 결핍되어 있는 반쪽자리 한국 개신교 영성 운동의 모습을 새롭게 성찰토록 한다.

 


둘째, 본회퍼의 영성 신학은 기독교 신앙 내용의 비종교적인 해석을 통해서 성숙하고 책임적인 삶을 추구함으로써 갈수록 자율성의 영역이 확대 심화되는 오늘의 현실의 과제들 다시 말해 지구화, 생명복제, 컴퓨터의 가상현실, 산업기술공학, 생태학적 생존의 과제들을 성실하고 주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본회퍼의 '하나님 없이'는 모든 기형적인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부터 벗어나서 성숙하고 진정한 하나님을 직증할 수 있는 계기를 제시한다. 그는 인간의 성숙을 의도하였지 하나님의 폐기를 의도하지는 않았다. 그는 하나님 없이 영성의 삶을 살다 간 듯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살다 간 복음의 전사였다. 우리는 자아에 갇힌 하나님, 소유에 갖힌 존재의 고귀함, 기계로서의 하나님에 갖힌 모든 이들의 자유와 구원을 향한 하나님, 업적지향에 갖힌 인간의 자유 등등의 모든 질곡들의 본질을 저 성숙된 놀라운 영적 통찰인 '하나님 없이'를 통하여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된다.

 


셋째, 본회퍼의 영성 신학은 기독교 신앙을 덮고 있는 2천년 신학 전통의 무거운 짐을 벗겨내고 신앙의 핵심을 신학-실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서구신학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한국신학과 아시아 신학을 수립할 수 있는 무한한 과제를 제시해 주고 있다. 그는 서구 영성과 신학의 전통 속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선 개인과의 내밀한 영적인 관계를 쉽사리 폐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하나님 없이'의 영적 통찰이 동양의 무의 영성과 같은 무늬로 펼쳐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희생과 비움의 영성과 삶은 진정 서구적인 한계를 한층 더 극복한 계기라고 우리는 평가할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익숙한 무(無)와 공(空)의 영성과의 긴밀한 관련성을 도모할 수 있는 기점이라고 확언할 수 있을 것이다.

 

 

6. 참 고 자 료

 

권영호, {본회퍼의 제자직} (한신대학 신학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88)
디트리히 본회퍼(문익환 역), {신도의 공동생활} (서울:대한기독교서회 1970).
레나테 빈트(강우식 역), {침묵의 반역자} (바오로딸, 1994)
말틴 말티(배한국 역) {본회퍼의 사상} (컨콜디아사, 1966)
박봉랑, '20세기 후반의 신학의 과정과 본회퍼의 역할-오늘의 신학사조', (기독교사상 1981년 4월호).
박봉랑, {교의학 방법론Ⅱ} (대한기독교서회, 1987)
박봉랑, {신의 세속화} (대한기독교서회, 1983)
박재순, {디트리히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적 하나님 이해} (한신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92)
성선호, {본회퍼의 그리스도 현실의 신학에 대한 연구} (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6)
현요한, "본회퍼에 있어서 성령과 인간의 마음의 문제" {말씀과 교회}(1998, 여름)

 

본회퍼 인터넷 홈페이지 http://www.cyberword.com/bonhoef/

 

 

 


http://cafe.naver.com/moder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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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교회론

 

 

김수영

 



목 차

 

I. 서론
II. 교회의 본질
1. 그리스도의 인격 개념
2. 본래적 공동체와 경험적 공동체
3. 그리스도와 교회
III. 제자공동체로서의 교회
1. 제자직의 교회
2. 제자됨과 신도의 공동생활
IV. 성숙한 세계에서의 타자를 위한 교회
1. 정치참여와 새로운 세상의 이해
2. 교회와 세상의 변증법적 통일
V. 요약 및 평가

 

 

 

I. 서론

 


본회퍼는 1930년대 독일에서 히틸러 치하의 전제주의 국가라는 정치적 상황과 나찌의 지재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참된 하나님의 교회, 신앙인이기를 거부한 많은 '독일적 크리스챤'들의 배교 행의가 만연하는 종교적 상황, 종교적 하나님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성숙한 세계'ㄹ가는 부신론적 상화에서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신학적이며, 그리고 매우 실천적인 과제를 부여안은 채, 신학자이며 목회자, 동시에 자찌에 저항하는 온동가로서 살았던 사람이었다.

 


본 papqer는 이러한 본회퍼의 교회론을 그의 시대별로 정리하여 내용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먼저 그의 신학이론 형성기라고 할 수 있는 26-32년에 쓰여진 "성도의 교제", "행위와 존재", "그리스도론"을 중심으로 교회의 참된 본성, 즉 교회의 자기 정체성을 살펴보고, 그 다음에는 교회투쟁기라고 할 수 있는 33-39년에 "나를 따르라"와 "신도의 공동생활"을 중심으로 나찌즘과 독일적 그리스도인이라는 거짓 교회의 타락한 국가 권력에 항거하여 교회 투쟁을 벌였던 본회퍼의 삶을 중심으로 투쟁하는 교회의 모습을 다루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정치투쟁기며 옥중서신기라고 할 수 있는 40-45년 사이의 작품인 "윤리"와 "옥중서간"을 중심으로 성숙한 세계에서의 교회, 성숙한 세계를 항한 교회의 과제를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교회론을 정리하며 오늘날 한국교회의 제반 상황과 모습속에서 본회퍼의 교회론이 들려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살표 보고자 한다.

 

 

 

 

II. 교회의 본질


- "성도의 교제", "행동과 존재", "그리스도론"을 중심으로.

 


1. 그리스도의 인격 개념

 


"성도의 교제"의 중심사상은 교회론이다. 여기서 본회퍼는 사회학적 방볍으로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고 있는데 교회론을 곧발 전개하지 않고 인격 개념에서 먼저 출발한다. 본회펴가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인격 개념의 핵심은 '나와 너의 관계'이다. 그에 의하면 '나'에게 어떤 제약이 주어질 때,타인의 심각한 요구를 받고 타인에게 책임을 져야 할 때 비로서 인격은 생겨나고 사회적 영역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즉 개인은 타인, 구체적인 '너'를 통해서만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관계는 그 자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매개될 때 비로소 성립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들 사이의 '나와너'의 관계는 '하나님과 너'의 관계를 반사시킨다고 할 수 있다. 본회퍼는 그리스도교외 인격 개념으 설명하면서 인격 헝셩에서의 하나님과 절대적인 관계의 필요성, 타인 즉 구체적인 '너'라는 인격의 사회성을 강조함으러써 거기에 따르는 타인의 책임과 대리 역할을 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2. 본래적 공동체와 경험적 공동체

 


인격과 공동체라는 사회학적 개념을 토대로 본회퍼는 교회 공동체를 '본래의 상태, 아담의 타락, 그리스도의 대리행위'의 구원사적인 맥락에서 논한다.

 


본회퍼는 본래적 공동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는 신학적인 몀으로 이는 하나닉돠 인간 사이의 참된 교졔와 연관되어 있다. 창1장과 2장에 나타난 바와 같은 본래적 인간의 상태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자유로운 정신적 존재로서 하나님께 봉사하는 ㅅ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공동체 안에 있는 존재이다. 이 공동체는 사랑과 봉사의 관계로 이루어진 참된 공동체이다. 둘쩨로, 사회철학적인 면에서는 개인인격과 집단, 공동체의 상호관계성을 강조한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공 집단 인격을 향하여 말씀을 주신 것이지 고룁된 어떤 한 개인을 향야여 부르신 것이아니다. 공동체, 집단 인격과 개인은 하나님 앞에서 같은 순간에 현재한다. 셋째로 사회적인 면에서 본래적인 공동체는 바로 '의지의 공동체'이다. 인간의 공동체는 보방, 복종, 배고픔과 성적 충동 등 동물들의 공통적인 요소를 넘어서서 의지를 가진 자의식적 존재들의 공동체이다. 의지의 공동체는 당연히 의싲적이요, 나아가 목적 지향적이다. 서로 '같이'만이 경험적 하회구조를 이룬다.

 


공동체(Gemeinschaft)와 사회(Gesellschaft)가 서로 섞여 있다. 이 두 의지가 만날 때 구조가 형성되는데 이것으 ㄹ공동체의 구체적인 전체성, 또는 '객관적 정신'이라고 부른다.인격적 공동체에서는 객관적 정신에 인격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나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객관적 정신은 그 자체의 생명력을 지닌다. '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공동체는 앞에서 제기한 '본래의 공동체'가 아니라, 타락된 공동체요, 죄 아래 있는 이기주의의 공동체이다. 아담의 타락으로 '홀로 슬펴하는 죄인'과 '죄인들과 사귀고 있다는 체험'이 서로 밀접하게 관계되어 인간에게 의식되어진다고 본다. 죄의 주격은 개인이며, 때문에 인류 전체라는 것은 죄의 보편성이라고 말함으로 죄를 개인적이며 동시에 전 인류에게 적용되어지는 것으로 본다. 이것이 곧 본회펴가 죄의 해석에서 도입한 '윤리적 총체'라는 개념이다. 공동체적 참회와 믿음은 구체적 개인들에게 일어나지만 그 개인들 안에서 참회하고 믿는 것은 개인들이 아니고 '총체'이다. 이스라엘 백경과 개인의 관계가 인류라는 집단 인격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공동체와 개인을 형성시키며 하나님의 주권과 자기 헌신, 하나님의 통치와 겸양, 수난에 의한 하나님의 통치를 결헙시킨다.

 

 

 


3. 그리스도와 교회

 


본회펴에게 있어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비로소 교회를 창조했다. 이와 같이 새로운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기초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적 죽음'을 본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에서 두가지를 제안한다. 첫째관계는 교회가 그리스도교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교회는 시간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초석으로하여 세워져야 한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수립되는 교회릐 세가지 기본적인 사회할적 양상을 첫째, 그리스도의 죽음은 개인들을 고립시키고 양심을 갖게 한다.. 둘째, 십나가의 교회는 부활의 빛에 비추어 그리스도 안에서 칭의되고 성화된다. 셋째, 새 인간의 초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 교회를 총체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또 그리스도는 공동체를 존재하는 그리스도로 복,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존재 형식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결홈적인 교회는 모이는 교회, 예배하는 교회, 설교와 성레전이 집힝되는 교회를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전까지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본질이며 교회는 자기의 주, 생의 원리인 예수 그리스도 안ㅇ 살았다고 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과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는 에수 그리소도가 교회 안에 살았고, 교회가 셩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로 소유하게 되었다. 교회가 생기는 것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존재하게 된다고 본다. 교회의 사회학적 구조는 다섯가지 요소로 이해 된다. 첫째 교회는 성령의 활동의 장소이다. 둘째, 기독교 공동체에서 개인은 특수하다. 셋째,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넷째, 성도의 사귐은 사랑의 사귀이다. 다섯째, 통일 속에 있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이다.

 

 

이와 같이 본회퍼는 교회를 성령의 홀동의 장으로 이해라고 있으며 쉬라이에르마호가 종교의 일반적 개념으로부터 교회의 개념에 도달하는 것과는 달리 구체적인 종교의 형태, 교회의 기독교적 개념에서 출발하고 있고, 교회의 본질을 교회 밖으로부타가 아니라, ㄱ4ㅛ회에서 탐구해야 할 것으로 보면서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현재에서 파악함과 동시에 교회의 삶 속에서 참여함으로써 성령의 이끄심으로 일정한 교제와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이해하고 있다.

 

 

 

 

 

III. 제자공동체로서의 교회


-"나를 따르라"와 "신도의 공동생활"을 중심으로.

 

 

 

 

1. 제자직의 교회

 


본회퍼의 제자됨에 있어서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는 자는 예수 자신이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게명의 전부이며 목적이다. 에수의 부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결합을 뜻하며 동시에 이전에 알았던 모든 일반 법칙과의 단절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그리스도교는 반드시 순종이 있을 수 없는 그리스도교가 되고 말 것이며 순종이 없는 그리스도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없는 그리스도교라 하겠다.

 


제자됨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자기 부정은 그리스도만을 알리는 것이며 앞에 서서 가는 그리스도를 꼭 붙을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우선 그리스도의 부름을 듣고 생각하고 고려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에 그리스도를 따를 나서는 것, 즉 어런 아이같은 문자적인 순종이라고 한다. 이것이 제자됨에 대해서 쓰겨고 한 전부다. 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죽음을 같이 나누는 것이며, 셋째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적 삶과의 직접적 관계로부터의 완전한 격별을 요구한다.

 


본회퍼가 강조하는 제자됨의 특징, 또는 세상과 구별된 제자직으롯의 교회는 먼저 '비범성'에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가난한 자, 세상을 위해서 세상의 죄를 위해서, 그 운명을 위해 슬퍼하는 자이다. 제자직은 그리스도의 고논에의 참여가 요구되기도 하며 결구 원수를 사랑하는 데까지 이른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제자로서의 삶은 '숨은 것'이라는 특성을 또한 소유한다. 비범성에 대한 이러한 역설은 비범성과 은밀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통일될 수가 있으며 또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복 따라가는 제자의 길이라는 개념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신앙의 비밀훈련'을 제자직의 특성으로 강조한다. 그것은 규칙적인 날마다의 기도, 말씀의 명상과 모든 종류의 몸의 훈련과 금욕주의를 포함한다. 이상과 같은 본회퍼의 교회 이해는 그가 속해 있었던 당시 상황과 연관시켜 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즉 산상살교 풀이에서 보여진 제자직으로서의 교회 모습은 그 당시 독일 국가교회의 대표들과 설교자들과 얼마나 다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참교회의 모습을 제자들 내지는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찾음으로써 당시 독일 국가교뢰가 세상적인 것(나찌즘의 이데올로기)에서 교회의 모습을 찾으려는 시도에 대항하였던 것이다. 결국 본회퍼가 "나를 따르라"에서 중점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참된 교회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제자됨으로서의 교회이다. 예수의 '나를 따르라'는 부름에 즉시 순종하여 사는 제자들의 삶은 '고난에 참여하는 삶'이다. 이것이 제자들의 삶에서 또는 오늘의 교회의 삶에서 예수의 십자가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이다. 그래서 본회펴는 교회를 '고난의 덩어리'라고 한다.

 

 

 


2. 제자됨과 신도의 공동생활

 


본회퍼는 핑겐발데 신학교 안에서 형제의 집을 세워서 공동생활을 시작했고, 엄격한 영적훈련을 시작했으며, 모든 것을 나누고, 깉이 살고 깉이 기도하고 서로 죄를 고백하며 용서했다. 이러한 핑겐발데에서의 삶을 토대로하여 "신도의 공동생활"이 집필되었다.

 


"신도의 공동생활"에서 제시하고 있는 혼련의 내용을 보면 첫째,. 기도생활이다. 우리가 남과
가까워지는데 가장 빠른 길은 언제나 그리스도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기도라는 것은 예 리스도 안에서 꺾이지 않고 꾸준히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자기의 것을 만들고 자기의 마음에 인을 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어떻게 반대하든간에 제자가 하나님의 발씀 아래서 함께 살려고 하면 그들은 함게 자기의 말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사귐은 그 지체들이 서로서로 위해서 기도하는 것으로 하는 것으로 사는 것이며 그렇재 않으면 무너져 버린다고 했다.

 


둘째, 날마다 성서를 명상하는 생활이다. 명상의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어야 한다. 성서의 본문이 우리 자신들에게 아주 갱ㄴ적으로 무엇을 말하느냐는 것을 묻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본문 해석이나 설교준비에 관련된 성서 연구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에게 들려올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자는 것이다. 본회펴의 삶에 있어서 성서는 항상 그의 사고와 삶의 지표였다.

 


셋째, 찬양하는 생활이다. 본회퍼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모으고 훈련을 거쳐서 즐겁게 찬양을 부르게 되면, 그것이 공동생활에 많은 유익을 준다고 한다. 함께 찬양할 때 울려나오는 것은 교회의 소리이다. 내가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찬양하는 것이다. 나는 교회의 일원으로 찬양에 동참할 따름이다.
넷째, 섬김으로 사는 생활이다. 본회퍼에게 있어서 제자는 섬김으로 사는 사람이다. 섬김은 혀에 굴레를 씌우는 것이며, 헌신적으로 남을 돕는 것이며, 서로의 짐을 져주는 것이며 말씀으로 섬기는 것이다. 진정으로 제자의 영적인 권위는 듣는 섬김, 돕는 섬김, 남의 짐을 지는 섬김, 그리고, 선교하는 섬김이 이루어지는데 있을 뿐이다.

 


다섯째, 사귐 속에서 사는 생활이다. 제자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사귀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귀는 것을 말한다. 제자의 사귐은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구원의소식을 전ㅅ하는 자로서 서로 만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온 교회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어 용납된 것이다. 그래서 서로서로 영원히 예수에게 속해 있는 것이며 사귀면서 사는 우리는 언젠가는 그와의 영원한 사굄 속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사귐은 성찬의 사귐까지 이르러야 한다. 거룩한 성찬의 사귐이 그리스도인의 사귐을 다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의 모임에 속한 사람들은 주의 식탁에서 몸과 피로 하나가 되듯 영원히 그들은 나누이지 않고 함께 있는 것이다. 말씀 아래서 함깨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례전으로 완성된다.

 


이런 훈련은 독일 국가교회와 대립하여 있던 제자 공동체로서의 교회에서 필요했던 것인데 결국 이것은 '무종교의 세계', '성숙된 세계'에서의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하다는 것이 본회펴의 주장이다.

 

 

 

 

III. 성숙한 세계에서의 타자를 위한 교회


-"윤리"와 "옥중서간"을 중심으로

 

 


1. 정치참여와 새로운 세상의 이해

 


1939년 6월 미국으로 이주하였던 본회퍼는 1939년 독일로 다시 돌아와 계속적으로 '집단 목회 훈련'의 지도다로 고벡교회 운동을 지속하여 갔으나 나찌의 교회 탄압이 더 심해지자 지금까지의 나치와 독일적 크리스쳔들에 디한 투쟁 방법인 교회 투쟁에서 나찌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직접적 정치투쟁으로 변신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교회는 다만 차 바퀴 아래 있는 희생자들에게 붕대를 감아 주는 것만 아니라 미친 사람이 몰고 있는 자동차의 바퀴를 멈추게 해야 한다."는 그의 말을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이렇게 보회퍼의 정치적 투쟁을 가능케 했던 그의 신학적 전제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그의 이해였다. 이전까지는 세상과 교회와는 수별되어지는 것으로 보았고 그의 관심은 '세상'보다는 '교회'의 내적 문제, 즉 신학적 문제에 더 치중되어 있었다.

 


그는 "옥중서간"에서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입장을 취한다. 그는 옥중에서 생활하면서 히틀러의 탄압 속에서의 삶은 '하나님 부재', '하나님 경험의 상실'임을 경험하였고 옥중에서 경험하는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좆재를 부인하고 하나님 없이도 잘 살아가는 무종교의 사람들, 또한 히틀러와 나찌 도당들을 경험하면서 그는 이러한 시대, 세상을 '성숙한 시대', ;'성숙한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하나님이 필요없는 자율적 인간, 세계를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교회와 세상, 교회와 인간의 변증법적 통일에 관심이 있었으며 그 통일의 원리, 기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는 이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신의 현실성과 세계의 현실성을 통합시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현실의 인간에 대한 심판지의 냉혹한 긍정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괴로움을 함께 나누는 자로서 자비로우신 긍정임을 강조하였고, 바로 이 긍정 안에 이 세계의 생명과 희망 전체가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이러한 새로운 세상적 개념은 이 세상의죄와 악의 현실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긍정은 오직 성육힌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그 출발점이다.

 

 

 


2. 교회와 세상의 변증법적 통일

 


(1) 세상에 대한 교회의 네가지 위임


그는 성서와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통하여 '거룩'과 '세속'의 도 영역을 갈라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 보면서 '하나님의 현실'을 강조한다. 즉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는 세상은 공허한 것이며,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세상과 그리스도와의 관계, 교화와의 변증법적 통일을 하나님의 '위임들'로서 설명하고 있다.

 


본회퍼는 하나님의 위임들을 '노동', '결혼', '정부 혹은 문화', '교회'의 네가지 위임임을 성서를 통하여 발견하고 이 위임명령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명이라고 보았다. 그는 '위임'이란 말을 하나님의 위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공인과 위임장이라 보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의한 세상에의 일정한 통치권의 요구, 점령, 형성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위임을 맡은 자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리자로 행동한다고 보고 있다.

 


본회퍼는 창세게 2장 15절에 근거하여 노동의 위임을 말한다. 이 노동은 타락이후에도 하나님의 훈련과 은혜를 위한 위탁 명령으로 남아 있었다고 하며 인간은 땀흘려 노동해야 하는데 농업, 경제, 학문, 에술등 각 부분의 모든 인간생활에서 해야만 한다. 이러한 인간의 노동을 통하여 인간의 세계와 가치의세계가 창조되는데 이것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그를 섬겨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 위에 새로운 사물들을 만들어내는 행위로서 인간은 노동의 위탁명령을 수행함으로써 그리스도롤 기다리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계획하고, 그리스도를 항하여 개방되고, 섬기며, 영화롭게 해야 한다.

 


'결혼'은 단지 아이를 낳는 일만이 아니라, 부모로서 자녀들을 하나님에게 복종케 하는 교육을 위임담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남녀의 결혼으로 이해했다. 노동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든 결혼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한 새 생명들을 창조한다.

 


정부의 위탁명령은 노동과 결혼을 전제로 하며 의존한다. 정부는 창조된 것을 보존할 뿐이며 하나님이 부과하신 과제를 통하여 부여받은 질서 속에서 법과 칼을 사용하여 창조된 것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동의 위임이나 결혼의 위임이 국가권력, 정부의 위임안에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그는 보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위임은 위의 세가지와 다르다. 교회의 위탁 명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성을 교회의 설교와 조직,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하여 실현시킨다고 보았다. 앞의 세 위임과 교회의 위임은 인간에게 있어서 동시적으로 성취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스도인들은 동시에 노동자이며 가정의 상대자이며 정부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2) 대리와 책임


본회퍼는 '숭숙한 시대와 세상', '무신의 세계'속에서 관심을 갖고 교회와 기독교인의 세상에서의 삶의 스타일은 바로 '책임적 삶'이어야 나며, 세상의 죄와 고난을 대신 져 주는 '대리직'으로서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책임적인 삶의 형태는 두가지 요소에 의해 조건지어 진다고 인정한다. 즉 하나는 삶은 인간과 하나님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익난 자신의 삶은 자유하다는 것이다. 책임을 지는 것, 즉 대리 역할을 하는 것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는 이러한 대리 역할의 모범적인 모델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행동을 말하고 있다.

 


예수는 결코 스스로가 완전성에 도달하려 한 단독자가 아니다. 단지 자신에 의해서 모든 인간의 '나'를 받아들이고 감당하신 분으로 사신 것이다. 그의 생활, 행위, 노력의 전제는 대리이다.
그는 인간이 자기의 삶을 다른 사람을 위해 완전히 희생하는 데에서만 대리와 책임이 성립된다고 보며, 대리적인 생활과 행위로서의 책임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인간에 대한 관계라고 보고 있다. 또한 책임과 복종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 책임 안에서 복종이 행해진다고 보고 있다.

 


본회퍼는 책임적인 삶이 실현되는 장소로서 '소명'을 논한다. 그는 신약성서적인 면에서 소명이란 세상적인 제반 질서의 성화가 아니며 그것들에 대한 긍정은 동시에 항상 강한 부정, 즉 세상에 대한 예리한 항거를 내포한다고 보았으며, 루터가 수도원으로부터 세상, 즉 소명에로 귀환한 것은 위시 기독교 이래로 이 세계에 대하여 취해진 가장 격렬한 공격이요 타격으로 보았다. 그는 소명에 있어서 책임이란 오직 그리스도의 부름에 따르는 깃이라고 보면서 한 개인의 책임의 한정, 확장은 하나의 원칙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면서 그 근거는 오직 예수의 구체적인 부름이라고 말한다.

 

 

 


(3) 궁극적인 것과 궁극이전의 것


그는 교회와 세상의 적극적인 관계를 말하기 위해 궁극적인 것과 궁극이전의 것에 대하여 논한다. 죄인된 인간이 의럽게 되는 사건은 궁극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가능하다. 이러한 궁극적인 말씀은 단 한 번 결정적으로 모든 인간의 궁극 이전의 것을 배제해 버린다. 그것은 ㄹ바로 용서의 말씀이고 다만 용서만으로 의럽게 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이것은 가능하다고한다. 인간은 궁극적인 길의 전 과정을 횡단해야 하며, 이 과정 속에서 개개인은 무거운 짐을 지고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궁극적인 것을 위하여 궁극 이전의 것이 말해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속에서 '궁극적인 것'과 '궁극이전의 것' 사이의 관계문제는 두 개의 극단적인 해결의 형태가 주어질 수 있다고 한다. 첫째는 단지 궁극적인 것마능ㄹ 고려함으러써 궁극이전의 것은 완전히 무시하는 배타적인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모든 궁극이전의 것의 파괴자요, 원수가 되며7, 궁극 이전의 것은 그리스도에게 대적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말씀은 궁극적인 말씀에 대항하는 모든 저항을 분쇄하는 냉혹한 율법이 된다. 다른 방법은 '타협'이다. 궁극이전의 것은 그 자체의 자리를 유지하며, 궁극적인 것에 의해 위협을 받지 않는다. 세계는 여전히 존석하고 종말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고 궁극이전의 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대한 책임 때문에 행해야 할 것들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 둘을 극단적이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된 하나님의 현실과 인간, 세상의 현실을 강조한다. 그는 궁극넉인 것은 십자가에서 모든 궁극이정의 것에 대한 심판으로서 그러나 동세에 궁극적인 것의 심판에 굴복하는 궁극이전의 것을 위한 은총으로서 현실적인 것이된다고 본 것이다.

 


이와같이 본회퍼는 당시의 암울하고 타락한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열려있는 긍정적인 자리를 가지고 있으며 교회와 세상의 변증볍적 통일의 가능성을 예수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으려고 한다.

 

 

 


3. 타자를 위한 교회

 


본회퍼가 말하고 있는 성숙한 세계에서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떤 교회이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어떤 것인가? 본회퍼는 "옥중서간"의 끝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성숙한 세계속에서의 교회는 '남들을 위한 교회'이어야 한다는 것을 특징적으로 강조한다. 이 '남들을 위한 교회'는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모범으로서 보여져야 할 교회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예수는 오직 남들을 위해서 존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곧 예수는 오직 남들을 위해서 존재했다는 경혐안에서 인간 존재의 완전한 전환이 일어난다.

 


본회퍼는 기존교회(고백교회를 포합해서)를 가리켜 자기 보존만을 위해 싸우는 데 급급한 교ㅗ회라고 비판한다. 일반적으로 기존 교회는 그리스도교의 근원을 찾는 방법과 학문, 교회의 이익을 옹호할 수 있는 일에만 관심한다. 기존교회에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인격적 신앙은 거의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교회는 성숙한 교회에서 무력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다.

 


본회퍼는 지난 1900년데 서구 그리스도교의 선교와 신학은 인간의 종교적 선험성 위에 있었으며, 그리스도교는 항상 종교의 한 형태였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종교의 시대는 지나갔으며 성숙한 세계가 된 것이다. 본회퍼는 성숙한 세계에서 교회가 종교적인 하나님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 죄와 죽음, 약함에 집착하는 것을 거부한다. 오해려 삶의 한복판에서 생명과 선에서 하나님을 말하려 한다. 즉 성숙한 세계 속에서의 교회는 모법을 통해서 보여지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인간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으 요구한다. 그들은 인간의 모든 능력이 쓸데 없게 될 때 신에 대해 말한다. 그러한 신은 작업가설의 신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낮추심으로 인간을 도우셨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도우시는 것은 그의 전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연약함과 고난에 의해서이다.

 

 

 

 

 

IV. 요약 맟 평가

 


이때까지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본회펴의 신학적 형성기라 할 수 있는 1926-32년 동안에 본회퍼는 '교회'공동체의 존재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로 보면서 구체적으로 보이는 교회를 강조하였고, 그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와 사랑이 경험되어지는 곳으로서의 공동체를 주장하였다.

 


둘째, 그의 교회투쟁기라 할 수 있는 1933-39년 사이에 그는 초기의 교회의 산학적 이해를 바낭으로 나찌줌과 독일적 크리스탼들이라는 참된 교회의 적들을 대항하여 고백교회 운동을 펼져 나가면서 그의 교회론을 한창 더 발전, 심화시켜나가싿. 이 시기에 그가 이해한 교회는 '제자직;'으로서 세상 안에 존재하는 교회임과 동시에 세상과 구별되어지는 교회였다. 이것은 교회는 세상이 갖지 못하는 비범성과 거룩함을 내적으로 다지며, 타락되어진 세상과 투쟁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1940년대에 들어오면서 본회퍼의 신학과 삶은 큰 전환을 가져왔다. 그것은 바로 그가 정치투쟁에 직접 가담하면서부터 일어난 전환의 사건이었다. 이 시기에 그는 교회와 세상을 대립되거나 모순된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교회의 세상성'을 강조하면서 성숙한 세상을 향하여 교회는 나가야 하며, 그 구채적인 모습으로서 타인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교회가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볼 때 본회퍼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인간의 삶, 성서적 비종교적 해석과 신앙의 비밀 훈련, 성실한 기도와 책임적인 행동,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예배와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삶이라는 두가지 신학적 기둥을 갖고 교회론을 전개하였다고 볼 수있다.

 


그의 교회론은 신학적 도그마로 혹은 단순히 인간화를 위한 효과적인 도구로서의 교회가 아예수 그리스도를 그 존재 기반으로 하며, 성경의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시키는 능력을 힘입어 교회는 악마로서의 세상과는 구별되어지면서도 세상을 향하여, 타인을 위하여 고난까지도 담당해 나가는 교회임을 밝히고 있다.

 


그의 교회론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그가 당시에 처해 있던 시대적 상황이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음에 철저한 제자직으로서의 교회 강조, 전투의 교회, 희생의 교회, 즉 십자가의 교회를 강조함은 이해할 수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오는 희망, 또한 성경의 내재하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확신과 기쁨의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너무 약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 주는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본회펴가 강조하였던 교회의 존재근거인 에수 그리스도라는 명제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자기 정체성, 존재 기반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삼음으로써 불필요한 분쟁이나 분열을 막고 참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임에 틀림없다. 또한 그가 주장하였던 교회는 세상 안에서 존재하면서도 세상과 구별되어지는 존재라는 명제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의 급변하는 변화 속에서 능동적으로 대퍼해 나가면서도 결코 일반 사회의 이념, 가치관, 사상에 물들지 않고 세상을 향하여 복음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참된 교회로 남아 있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기억해야 할 명제임에 틀립없다.

 

참고문헌


Bonhoeffer, Dietrich. The Communion of Saints. tr. by William Collins, New York: Happer & Row Prnlisgers, 1963.

--------, Nachfolge. 허혁 역."나를 따르라"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1.

--------, Gemeinsamis Leben. 문익환 역. "신도의 공동생활"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1.

--------, Ethik, 손규태 역. "기독교 윤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2.

박봉랑. "기독교의 비종교화" 서울: 범문사, 1976.

박재순. "본회펴의 교회 이해", 신학사상 제55호(1986년 겨울호)

이형기. "교회와 사회 - 본회퍼의 작품을 중심하여", 장신학술총서 3. 서울: 장로회신학대학출판 부, 1987.

 


http://cafe.naver.com/moder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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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반역자(디트리히 본회퍼의 생애)


저자 레나테 빈트 / 역자 강우식 / 출판사 바오로딸

 

 

(송광택 총신대강사의 글)

 

 

 

[1]

베를린에 있는 테겔 형무소 92호 감방에는 특별한 죄수가 있었다.
디트리히 본회퍼,
나이는 37세, 신학 교수이며
강의 정지 처분을 받은 목사로서,
독일제국에 대한 음모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감방에서 "침착하고, 밝고, 굳세게,
집주인처럼" 의연하게 지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죄수들과 마찬가지로 '미칠 것만 같은' 감정에 휘말려,
불안감과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반나치 저항운동에 가담하여 히틀러의 독재정권과 싸우다가
1943년 4월 5일 게슈타포(비밀국가경찰)에 의해서 체포되었다. 그는 1945년 4월 9일,
그는 게슈타포 장관의 직접 명령으로 39세를 일기로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2]

그는 1906년 2월 4일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일제국의 엘리트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 칼 본회퍼는 권위 있는 정신병리학자로서
다년간 베를린 대학의 교수를 지냈으며 학계에서 신망이 높은 학자였다.

그의 어머니 역시 신앙으로 유서 깊은 훌륭한 가계 출신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황제를 모시는 궁정 목사였으며


조부는 19세기 최대의 교회사가로 이름난 아우구스트 폰 하제였다.

...본회퍼 가족은 정원이 딸린 넓은 집에서 생활했다.
...현관 복도 벽에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가 걸려있었다.
...디트리히의 조상들은 덕망 있는 시민이었다.
...칼 본회퍼의 가족은 자신들이 중산층이라는 데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8쪽)

 

 

본회퍼는 신앙과 학문과 예술의 명문 출신이었거니와
본회퍼 역시 뛰어난 학문적 능력을 타고났으며 문재와 예술적 재능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는 우수한 신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문장은 아름다웠으며 시를 썼고 음악을 사랑했다.

 

...형제 중에서 디트리히가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았다.
...음악적이고, 감상적이고, 다른 사람드르이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디트리히는 확실히 여성적인 면을 보였는데,
...외모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13쪽)

그러나 디트리히는 아버지나 형들처럼 '진짜 사나이'가 되고 싶었다.
후에 디트리히는 자신이 아버지의 영향으로
얼마나 결정적으로 변하게 되었는가를 자주 언급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나 어머니 중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집에는 방이 많았고, 손님들을 언제나 환영했다.
디트리히는 다양한 만남을 통해 다양하게 영향받을 수 있는 가정에서 자랐던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지적이고 호기심 많은 어린이라면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후에, 그는 가정이 삶의 음지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에게는 의,식,주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15쪽)


...장난감과 책들은 충분했으며, 친구들과 놀 공간도 있었고, 자신만의 독방이 있었다.
...그는 공부도 잘했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운동도 잘하는 소년이었다."
(16쪽)

 

열일곱 살 때 그는 튀빙겐 대학에 입학했으며 그 다음 해 베를린 대학 신학부에 전학했다.

...디트리히는 학창 시절을 거의 신학 공부만 하면서 보냈다."
(39쪽)

 

문화활동과 운동도 약간했으며
여동생들이 충고하는 대로 많이 앉아만 있으면 비만해지므로
날씬해지기 위해서" 동료 학우들과 며칠간 하이킹도 다녔다.

 

 

 

[3]

교수들은 한결같이 그 젊은 신학도의 학문적 재능을 높이 평가했으며,
특히 신학자 하르낙은 그를 '천재적 신학 청년'이라고 절찬했다.
그가 21세에 베를린 대학 신학부 졸업 논문으로 제출한 <성도의 교제>는
대단히 우수한 논문이어서 신학자 칼 바르트도 '하나의 신학적 기적'이라고 예찬한 것이다.

 

1930년 7월 31일, 디트리히는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24세의 나이로 그는 이제 가장 젊은 신학 강사가된 것이다.
그는 25세가 되지 않아 안수를 받을 수 없었다.

그는 같은 해에 도미하여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1년간 연구했다.


여기서 유명한 신정통신학자 라인홀드 니버 교수를 알게 되었다.

그 다음해 1931년 8월에 독일로 돌아와서 베를린 대학 신학부 강사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저술로는 <창조와 타락>, <그리스도론>이 있다.
이 시기는 그가 순수하게 신학 연구에 종사한 시절로서 그의 생애의 제1기에 해당한다.

 

 

 

[4]

1933년 1월 30일에는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했다.
본회퍼는 그의 저서 <윤리학>에서 히틀러의 위선과 허위를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악한 행위보다 더욱 악한 것은 '악한 존재'이다.
...다시 말하면 거짓말장이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더욱 악하다."

'긴급 목사동맹'이 모태가 되어 태어난
독일 "고백교회"는 히틀러의 권력과 정면으로 대결하였다.

목사의 감봉, 체포, 감금, 파면, 교회당의 몰수, 투옥 등의 탄압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고백교회'는 신앙을 지켰고 교회를 지켰다.

본회퍼는 히틀러가 집권하던 때부터 고백교회에 속한 목사로서
히틀러와의 투쟁에 들어갔으며 이때부터 그이 생애의 제2기에 해당하는 교회투쟁의 시대가 시작된다.

 

 

[5]

베를린 대학 휴직 후 영국에 가서 2년간 머물던 본회퍼는
1935년 4월 독일로 돌아와서
<형제들의 집>이라고 불리우는 고백교회 목사보연수소 소장으로 일하였다.


그는 여기서 젊은 신학도들과 침식을 같이 하면서
긴박한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된 의의와 가치를 탐구했다.
또한 함께 생활하고 사귀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교회에 연결되는 의미를 찾았다.

학생들은 강의를 들었고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했으며 서로 죄를 고백하고 용서했다.


이러한 생활에서 본회퍼의 인격적 감화가 컸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서의 공동생활의 노작으로 1937년에 <나를 따르라>(Nachfolge)가 나왔다.
이것은 그의 생존시에 나온 것으로는 가장 큰 저서로서
출판 당시부터 독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으며,
힘있고 아름다운 시적 문장으로 된 본회퍼의 대표적 저작이다.

 

그의 <옥중서간>(대한기독교서회)은,
그가 1943년 4월에 체포된 때부터 1945년 4월 9일 처형되기 까지
약 2년간 각처의 강제수용소를 전전하면서 옥중생활을 하는 동안에
옥중에서 가족과 친구 베트게에게 쓴 편지를 전후(戰後) 베트게가 편집해서 출판한 것이다.

본서는 본회퍼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정리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사적인 삶과 공적인 생애를 조화롭게 보여주고 있다.

 

 

[6]

한 시대를 행동하는 지식인과 신학인으로 살다간
'인간 본회퍼'를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좋은 책이다.
본서의 저자는 바인하임의 디트리히 본회퍼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교 평화회의' 회원이었다.

 

1994년 5월에 초판(번역)이 나왔다.
본서에는 가족과 관련된 사진들이 있는데,
한데 모여 독서를 즐기고 있는 가족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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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윤리적 판단에 있어서 본회퍼의 수용

 


손 규 태(성공회대 교수)

 

 

 


Ⅰ. 역사적 배경들

 

본회퍼의 삶과 사상은 1960년대말 그리고 1970년대 초에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박정희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이 권력을 장악하고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하고 억압적인 통치를 고정화 하던 시기였다. 군사정권은 그동안의 약속했던 민정이양을 지키지 않고 정권연장을 위해서 두가지 계획을 은밀히 실천하고 있었다. 하나는 1965년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통한 자본과 기술의 도입으로 근대화를 추진하자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1969년 삼선개헌을 통한 정권연장의 제도적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전자는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를 통해서 그리고 후자는 1972년도 유신헌법을 통해서 강행되었다. 말하자면 경제적 성과를 통해 굶주린 국민들을 달래는 한편 위장된 민정을 통해서 군정을 지속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군사독재 정권의 시도들은 인권과 민주화를 향한 각계각층의 광법위한 국민들의 열망과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의 인권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고 이끌러 가던 주동세력은 진보적 그리스도교인들과 함께 과거에 일제에 저항했던 전통을 가진 보수적인 교계 지도자들로서 개신교회가 그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일본과의 굴욕적인 국교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던 군부세력에 대항해서 당시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하나가 되어서 반대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특히 1965년 7월 1일 영낙교회에서 기도회 형식을 빌어서 전개된 "한일굴욕외교 반대운동"은 한국교회사에서 해방 이후 교회가 신앙고백의 형식을 통해서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 항거한 최초의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보수와 진보가 하나가 되어 특정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같은 의견을 제시한 처음이고 마지막 모임으로서의 의의를 가진다. 이날 예배 후에 채택된 성명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1) 넘치는 저수지 물이 출구를 찾는 것과 같은 '일본 자본'이 한국에 범람하는 경우에 한국은 일본자본의 '水沒地帶'로 화할 우려가 크다. 그러므로 한국정부는 정상화 이전에 강한 견제력을 가진 외자도입법과 관리법을 제정해야 한다.


2) 일제 36년간의 한국착취와 병합에 대한 사과의 보상과 금후 행동에 대한 다짐을 받고서 회담을 개시해야 한다.

 


3) 강력한 독립정신으로 국산장려와 국기이익 보호의 국민운동을 전개하도록 정부가 앞장 서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웃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지만 그 이전에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청산과 함께 앞으로의 정의로운 양국관계형성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만일 군사정부가 국민의 뜻을 반대해서 굴욕외교를 강화하고 비민주적인 통치를 계속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에 항거하는 것은 그들의 의무라고 이해한 것이다. 한국기독교 연합회는 이미 4월 17일자의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서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온갖 형태의 독재의 모든 불의, 부정, 부패에 항거한다. 우리는 경제, 문화, 도덕, 정치등 온갖 부문에서 불순 저열한 외세에의 에속만은 추종을 배격한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와 기도와 봉사로 조국의 역사건설에 봉헌하기를 기약한다"고 했다.

 

 

신학사나 교회사적으로 볼 때 1965년은 토착화와 세속화 신학의 논의가 문화신학적 차원을 뛰어 넘어서 정치신학적 차원으로 방향전환하는 전환기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의 개신교회가 본격적으로 사회정치적 문제를 신학적 교회적 관심의 대상으로 이들의 해결을 선교적 과제로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한국개신교의 정치적 봉사의 신학적 근거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선 우리는 서구신학 가운데 특히 본회퍼의 참여와 행동신학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바르트나 불트만등 서구의 변증법적 신학을 통해서 선교사들을 통해서 들어온 보수적 정통주의 신학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없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으로 왜곡되고 낙인찍혔으며 이들의 신학이 교회적 변혁을 가져오는 일에는 크게 기여헀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본회퍼의 신학, 특히 그의 용기있는 삶은 사회문제를 놓고 고심하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에 깊은 감동과 함께 투쟁을 위한 영감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한국교회의 3.1운동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저항전통을 들 수 있다. 3.1운동은 비록 실패로 끝난 운동이었지만 외세에 대한 항거와 함께 근대적 민주주의적 국민주권국가의 건설이라는 이상을 담지하고 있던 운동이었다. 이러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그 목표로 했던 3.1 운동의 정신은 전체 국민들 속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연연히 전승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본회퍼의 참여와 행동의 신학과 3.1정신이 결합됨으로써 한일굴욕외교 반대운동이라는 폭발력을 가지고 나타났던 것이다. 나치의 독재정권 하에서 투쟁했고 순교당한 본회퍼의 삶과 사상에 영감을 받은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은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투쟁의 동력을 그에게서 볼 뿐만 아니라 과거 1919년에 일본에 항거했던 3.1정신을 '한일굴욕외교 반대투쟁'과 결합시킨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본회퍼의 삶과 투쟁을 통해서 주어진 신학적 영감은 1969년 박정희의 삼선개헌 반대투쟁을 통해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1967년 당시 교계에서 이 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어 가던 장공 김재준은 '불의에 대한 투쟁은 신앙고백이다'라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불의가 있을 경우에는 어느 편, 어느 누구의 소행이든지간에 우리는 이를 묵과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 땅에 의를 세우는 것이 우리 신앙의 본질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에 대항한 교회의 투쟁, 그리스도인의 항거운동은 신앙의 본질에 속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군사독재의 인권압살과 반민주적 폭거에 대항한 투쟁은 곧 신앙고백상의 문제(status confessionis)라는 말이다. 이는 마치 핵무기의 제조, 배치 스리고 사용을 승인하는 것이 신앙고백의 문제와 결부된 것으로 판단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핵을 승인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인것 처럼 독재에 순종하는 것도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고백이 이러한 불의에 대한 투쟁의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정치적 투쟁을 신앙고백에서 도출한 것은 당시의 이러한 투쟁을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라서 비신앙적인 것으로 오도하고 매도하던 정통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적 무지와 함께 이들의 도피적 사고를 비판한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1965년 한일굴욕외교 반대운동을 기점으로 해서 한국의 개신교인들 사이에서는 정교분리론자들과 그리스도의 왕권통치론자들 사이에서 윤리적 판단의 기준이 분명하게 갈라지게 되었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해서 개신교 정통주의자들은 반공등의 이름으로 일부는 적극적으로 그리고 일부는 소극적으로 박정희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세력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군부독재 30년 동안 일부 카톨릭 세력과 함께 개신교 정통주의자들은 이들의 충실한 지원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투쟁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매도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었다. 이러한 정교분리자들과 그리스도 왕권통치론자들 사이의 갈등은 군사독재 정권이 종식될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투쟁이 절정에 달했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본회퍼에 대한 한국소개가 본격화 된다. 이것은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우선 이러한 본회퍼의 신학사상을 소개한 사람들이 예외 없이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했고 이러한 투쟁을 그리스도인의 증언의 행동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역사적 전통 3.1 운동을 통한 자유와 해방을 위한 투쟁과 정치적 우상화에 항거했던 신사참배반대운동이 본회퍼의 정치참여의 행동신학과 결합되면서 새로운 활력을 가지고 등장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Ⅱ. 윤리적 판단의 기초로서의 그리스도 고백

 

그러면 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본회퍼의 살봐 심학이 한국 힌학과 교회에 어떻게 수용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이들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 주었는가? 다시 말하자면 본회퍼의 삶과 신학이 한국의 행동적이고 참여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윤리적 판단을 제공했는가? 몇몇 지도적인 신학자들의 글들을 소개하고 분석함으로써 그의 삶과 신학의 한국적 수용이 어떻게 구형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969년 오재식은 기독교 사상 특집 '오늘의 딜렘마와 복음'에서 "본회퍼의 현대적 의미"를 다루고 있다. 이 글이 본회퍼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한 최초의 글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본회퍼가 '미친 운전사에게서 핸들을 빼았으려고 했던 행위'는 전적으로 신앙고백에 기초하고 있었다고 한다. "히틀러와 그 일당에 전제적 지배에 대한 '노'(No)는 그의 (신앙) 고백이었다. 그것은 성명서거나 메시지거나 선언문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삶의 자세였다. 자기의 생명까지를 불사르는 자세였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한 복종이었다." 이것은 "히틀러의 국가가 교회를 부른다"는 제국교회의 표제어에 대한 반제어였다. 이 고백은 히틀러의 제단에 충성하던 독일적 그리스도인들(Die Deutsche Christen)에 대한 고백교인들(Die Bekennende Kirche)의 그리스도 고백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한국교회의 인권과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인물인 박형규목사의 글 "본회퍼와 독일고백교회"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본회퍼는 유태인에 대한 국가의 박해에서 권력의 과잉을 보았던 것이다. 이것은 '신앙고백의 사태'라고 그는 파악했다... 그리고 이 투쟁은 '복음적인 교회의회'를 통해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에 대한 교회의 결단을 밝히는 것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다." 박형규 목사도 여기서 분명하게 그리스도인들의 정치적 봉사(Politische Diakonie)를 "신앙고백의 사태"(status confessionis)로 판단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판단은 따라서 '정치적 고백'과 '그리스도 고백' 사이에서의 신앙적 결단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어려운 투쟁을 회고하고 동시에 이 과정에서 얻은 결험을 분석해 볼면 본회퍼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유형의 인물들과 집단들의 행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본회퍼가 살았던 국민교회(Volkskirche)적 전통이 없는 한국으로서는 Hanfried Mueller에 준하는 성직자적 팟쇼주의자들은 등장할 수 없었다 해도 박정희 통치하에서 여기에 준하는 인사들이 존재했었다. 삼선개헌을 전후해서 한국교회협의회(KNCC)에 대항하여 조직한 '대한기독교 협의회'와 같은 관변어용종교단체들과 그 주도자들이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이들은 대체로 반공주의로 무장된 윤리적 열광주의의 길을 택하거나 기존적인 것을 우선적으로 승인함으로써 정치적 종교적 기득권에 매어달리는 이른바 의무의 길을 선택하기 일수였다. 이들이 걸어간 길은 본회퍼가 말하고 있듯이 '성공의 우상화'의 길이었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정의와 불의, 진리와 허위, 정당한 승부와 비겁한 행위를 구결할 시력을 잃고" 복음의 이름으로 대교회에 설립에 열중했다. 이런 집단들은 일견 경건하고 융성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다음과 같은 오재식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노회나 총회가, 교단이나 연합체가 다 차례로 (정치적 권력에) 굴복할 수 있다. 그들은 실존적 자세와 고백을 기피하며 자기 기능의 사회적 기능을 축소해석하여 도피구를 찾는 것을 목도하는 시기가 우리에게도 올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윤리적 결단에 있어서 율법주의를 택하거나 아니면 상대주의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1970년대 이른바 '이론적 윤리학자들'이 걸어간 실패의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다수의 정통적인 보수교단들은 율법주의를 택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반공적 윤리적 열광주의에 빠지거나 아니면 "악마에 대해서도 의무수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의무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아니면 상대주의의 길을 택해서 '이성적인 길'을 통해서 수많은 양자택일 가운데서 자신의 양심을 속이거나 '절대적 자유'에로 도피하여 '사적 덕행'에 치중하거나 했다. 이들은 사실상 기민하게 처세하고 책략도 사용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종교귀족으로서의 지위와 영예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정치적 물적 지원을 획득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역사와 교회의 변혁을 가져올 수는 없었다. 본회퍼는 그의 "윤리학"에서 다음과 같은 몇가지 명제를 제시함으로써 억압적 현실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즉 단순하고 현명한 눈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적인 것'을 제대로 파악했고 그리스도에 복종했던 것이다. "모든 개념이 혼돈되고, 왜곡되고 전도된 것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바라보는 자"만이 역사의 변혁에 동참할 수 있었다. 개념의 왜곡과 전도는 놀라운 것이어서 지배자들은 온갖 매스콤을 다 동원해서 진보적 세력들이 사용하는 개념들을 먼저 사용하거나 오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왜곡을 피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수하게 따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고 그의 뜻에 한 마음으로 복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민하게 처세하거나 책략을 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단순하게 서는 자, 하나님의 진리를 단순하고 현명하게 응시하는 눈만이 윤리적 현실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본회퍼가 지적하고 있듯히 단순함(Einfalt)과 현명함(Klugheit)를 결합하고 매개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고백을 통해서만 가눙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현실과 세계현실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고의 성육신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과 세계는 더이상 두개의 각기 다른 영역으로 사고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고백의 사건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고백교회"란 이런 신앙고백 위에 선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고 성립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세계를 갈라서 보지 않는 자세를 의미한다. 이러한 그리스도 고백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이다. 하나님의 현실과 세계의 현실을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서 통전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회퍼의 사상과 행동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윤리적 행동이란 이러한 그리스도와 화해된 현실에 준하는 행동(Wirklichkheitgemaessheit)이다. 이것은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사건의 신학'을 통해서 경험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오재식은 그점을 이렇게 설파하고 있다. "우리는 특별히 비상시국을 위해서 마련된 행동강령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다만 상황과의 함수관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다양한 조건상황을 꿰뚫고 고수되어야 할 것은 그의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여기서 그는 현실에 준하는 행동이란 어떤 원리나 법칙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 고백이 기준이라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의 현실과 세상의 현실을 화해시키려는 활동들은 예기치 않은 사건들 계시사건들을 들어냈던 것이다. 여기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가능성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현실적인 것을 용감하게 움켜잡을 수가 있었다.

 

 

본회퍼는 그의 윤리학에서 이러한 윤리적 판단의 준거가 될 수 있는 내용을 다음과 같은 "행위"라는 시를 통해서 설파하고 있다.

 

 

순간의 쾌락에 동요되지 말고, 정의를 단호히 행하고,
가능성 가운데서 동요하지 말고, 현실적인 것을 담대히 붙잡으라.
사고의 세계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행동에만 자유가 존재한다.
두려워 주저하지 말고 인생의 폭풍우 속으로 나아가라.
하나님의 계명과 너의 신앙이 너를 따르며,
자유는 그대의 혼을 환호하며 맞아주리라.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는 인간이 되고 동시에 수난을 당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간이 되고 심판을 당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과 같은 모습을 취하는 것 -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구체적인 윤리적 삶의 구성요소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형성의 윤리학(Ethik der Gestaltung)은 한국의 경우는 민중목회자들의 계층자살(Klassenselbstmord)을 통해서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났으며 또 일련의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의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을 위한 정치적 봉사와 투쟁 그리고 수난과 영광을 통해서 구체화되었다.

 

 

이 점에서 하인리히 오트가 지적하고 있듯히 본회퍼에 있어서는 결의론적 윤리(kasuistische Ethik)도 아니고 순수한 상황윤리도 아닌 현실의 윤리가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결의론적 윤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고정된 일반적 법칙으로 보고 그것으로부터 신의 뜻을 연역하기 때문에 결국 자유를 상실하게 되며 상황윤리는 추상적이며 내용 없는 형식주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회퍼는 "구체적인 기독교 윤리는 형식주의와 결의론을 초월한다...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이고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와 세계가 화해한 사건, 하나님에 의해서 현실의 인간이 받아들여지는 곳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1960년대말 그리고 70년대 초 본회퍼의 한국수용에 있어서 이루어진 결정적 역할은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봉사와 사회적 책임성을 '신앙고백의 행위'(status confessionis)로서 파악한 것이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신앙고백은 한국에서는 보다 윤리적 책임성을 담은 언어인 "선교적 과제"(Missionarische Aufgabe)로서 파악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선교적 과제로서의 정치신학적 봉사들은 60년대와 70년대의 인권과 민주화를 거쳐서 80년대는 '통일'로 그 역점이 이동해 오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그리스도 고백과 그것의 윤리적 표현으로서의 선교적 과제의 구체적인 장으로서의 '교회갱신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본회퍼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취해가는 형성으로서의 윤리의 장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것을 통해서 사건이 일어나는 장으로서의 교회"를 고려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교 윤리는 이러한 교회의 선교와 서건에 봉사하는 데서 성립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회퍼의 윤리는 일차적으로는 교회의 윤리다.

 

 

마지막으로 본회퍼의 그리스도 고백과 그리스도 형성의 윤리는 한국의 전통적 유교정통주의 가부장적 계급윤리와 결합된 교회들의 질서윤리의 문제점들을 밝히고 그리스도의 왕권통치에 기초한 하나님 나라윤리의 길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교신학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세계형성을 지향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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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형상과 사랑의 공동체

 


- 본회퍼의 대리직 개념을 중심으로 -

 

 

현요한 (장로회 신학대)

 

 

들어가는 말

 

 

전통적으로 기독교 신학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해 주기는 하지만, 그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텍스트 상에서 명백히 정의해 주지 않는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고, 또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개방성이 있다. 과거에는 하나님 형상 개념을 주로 본질론적 혹은 실체론적으로, 즉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어떤 실체 혹은 그 실체의 중요한 특성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한 특징으로서 많이 사용된 개념은 인간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점, 인간의 영혼의 합리성이나 자유의지, 하나님 인식 능력, 거룩한 행실을 할 수 있는 능력 등이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인간만큼은 못하지만 동물도 상당한 지적 능력이 있다는 점을 밝혀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동물들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수치적으로 볼 때에 동물과 유사한 정도의 정신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어린 아기나 정신병 환자, 정신지체 장애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면 우리는 도대체 왜 그들을 여전히 존중하고 사랑해야 하는가? 그 신학적 이유는 무엇인가? 또 하나님의 형상이 초월자이신 하나님을 아는 인식 능력이나, 거룩한 행실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된다면, 그런 능력을 바르게 행사할 수 없는 죄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타락한 죄인들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는 말은 이해할 만 하지만, 타락한 죄인들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 존엄성과 인권이 있다는 점은 설명이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약하고 소외된 이들도 함께 참여하는 참된 사랑의 공동체는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우리는 디이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이야기하는 하나님 형상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가 남긴 작품들 곳곳에서 우리는 그의 하나님 형상론의 단편들을 볼 수 있는데, 그러한 통찰들은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형상론을 발전시켜 가는데 중요한 도움을 준다. 이 글에서 우리는 본회퍼가 주는 하나님 형상에 관한 통찰들을 수렴하여 실체론이나 인간 존재의 특성론적인 성격을 초월하는 관계론적이며 사명론적인 하나님 형상론을 제시하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그의 ‘대리행위(Stellvertretung)’ 개념이다.

 


하나님의 형상에 관하여 이야기하려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태초의 인간 창조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회퍼는 이러한 인간론적인 논의 혹은 인간 창조의 기원을 고려하는 논의를 추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 중 아무도 그 태초의 인간 창조를 목격하거나 경험한 사람이 없으며, 따라서 인간의 창조적인 본성을 태초의 관점으로부터 논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다만 ‘중간으로부터’ 즉 참된 인간으로 계시되셨고, 참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만 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본회퍼의 인간론과 하나님 형상론이 철저히 그리스도론적인 기초를 가지게 됨을 의미한다. 또한 본회퍼 신학에 있어서 오늘날 그리스도의 현존은 ‘공동체로서 존재하시는 그리스도’이신 교회를 떠나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 형상론은 그리스도론적 기초와 더불와 교회론적인 관련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본회퍼의 하나님 형상론에서 중요한 요점들은 하나님 형상을 존재론적으로 보기 보다는 관계론적으로 본다는 점, 존재유비가 아니라 관계유비에 의존한다는 점, 대리자, 인격, 자유 개념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적인 관련성이 이미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그의 작품들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대리행위(Stellvertretung)’ 개념이다.

 

 

 

1. 하나님의 형상 -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본회퍼는 『창조와 타락』에서 구약성경 창세기 1장부터 3장까지에 나오는 창조와 타락에 관한 이야기를 신학적으로 해설한다. 창1:26-27의 해석에 바로 그의 ‘하나님 형상’에 관한 해설이 나온다. 여기서 본회퍼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신 세계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그 세계에서 하나님 자신을 알아보기 원하신다고 한다. “자신을 바라보기 원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이나 자신의 형상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는 피조물이라 엄연히 창조주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창조주는 자유로우신데, 피조물은 조건지어져 있으며, 자유롭지 않다. 그러므로 “만일 창조주가 자신의 형상을 창조하기 원한다면, 창조주는 그것을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어야만 한다. 오직 그러한 형상만이 그 자유 안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것이다.”

 


  물론 그 형상은 “오직 하나님의 창조를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자유로우며, 창조주를 예배하는 것을 위해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자유 개념이다. 본회퍼는 성서에서 자유란 사람들이 자기들 자신 안에 소유하는 어떤 질, 능력, 속성 같은 것이 아니라, “타인들을 위해서 가지고 있는 무엇”이라는 것이라고 본다. 자유는 소유물이 아니라, “두 인격체들 사이에 있는 관계”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타자를 위해서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유 안에서 비로소 참된 사랑의 공동체가 가능해진다.

 


  본회퍼에 의하면 이러한 자유의 개념은 하나님 자신의 자유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자유는 자신을 우리에게 잡아매시고,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는 오직 우리와 더불어서만 현실화되며,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자유롭기를 원하신다는 것이 복음의 메시지이다.” 그런데 “창조주의 자유는 우리를 자유 하도록, 하나님을 위해 자유 하도록 허락하심으로서 자신을 증명한다.” 이것이 바로 땅 위에 있는 창조주의 형상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나님은 피조물 안으로 들어오셔서 자유를 창조하심으로서, 하나님은 인류 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계시게 되었고, 피조물 안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본회퍼의 해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은 동료 인간이나 피조물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대리자, 자신을 반영하는 존재를 피조물 속에서 바라보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의 형상 - 다른 피조물들을 위하여

 

  인간을 자유로운 피조물로 창조하였을지라도, 창조주의 자유와 피조물의 자유는 엄연히 다를 터인데, 도대체 피조물은 어떤 방식으로 자유로운가? 본회퍼는 여기서 훗날 칼 바르트가 더 자세히 발전시킨 바, 관계유비(analogia realtionis) 개념으로 설명한다.

 


  본회퍼는 하나님과 인간 존재 사이에 어떠한 유비도 (analogia entis) 없다고 본다. 피조물은 한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유롭다는 점에서 자유롭다. 하나님은 인간을 홀로 있게 하지 않으시고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 인간의 피조물성이란 이렇게 서로에게 맞서 있음, 서로 함께 함, 서로에게 의존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하나님과 어떤 유사함이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일 수 있다면 바로 이러한 관계성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관계성 역시 인간 존재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러나 본회퍼는 “이 관계성 역시 인간의 잠재력도 능력도, 인간실존의 구조도 아니며, 그것은 주어진 관계”라고 이해한다. 또한 “이 유비는 마치 인간이 이 유사성을 소유하거나 혹은 인간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관계유비는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관계라고 한다.

 


  인간의 피조물성을 이렇게 자유의 관계에서 볼 때, 사랑의 공동체는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는 오로지 ‘누구를 위한 자유’ 이기만 한가? 본회퍼는 인간의 자유가 하나님과 다른 인간을 향하여는 ‘그를 위한 자유(freedom for)’이지만, 다른 피조물들을 향해서는 ‘그것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의 측면이 있다고 본다. 즉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의 주로서 그것들을 명령하고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유는 정신이 자연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하는 그런 방식으로 자유로운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동물이나 다른 피조물들 없이 살 수 없으며, 그들이 속한 이 세상에 함께 속하여 있으며, 그것들로부터 본질적 존재에 있어서 자유롭지는 않다. 다만, 내가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내가 매어 있는 그 세상과 나의 관계가 종과 주인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를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다. 인간을 타 피조물들에 그렇게 매어 놓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류에게 부여하신 권위이다.

 


  “처음 인간의 하나님과 유사한 점은 하나님과 다른 인간들을 위한 자유 그리고 다른 피조물들 위에서 지배함으로서 그들로부터 자유롭다는 사실에 있다.”

 

 

 

  3. 하나님 형상 - 동료 인간들을 위하여

 

  본회퍼의 박사 논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성도의 교제』는 ‘대리자’ 개념과 ‘기독교적인 인격’ 개념과 더불어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동료 인간들을 향한 대리자 위치에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본회퍼는 참된 공동체인 교회에 대하여 논하기 위하여, 참된 공동체에 대한 기초적 틀을 제시한다. 그는 계몽주의적이며 관념론적인 주객 도식으로는 참된 공동체에 대한 개념을 형성할 수 없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주체가 그 인식 행위를 통하여 결국 객체를 지배하게 되고, 객체는 그 본래의 타자성을 존중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론 위주의 구도에서는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공동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본회퍼는 그 당시의 인격주의의 인격 개념을 도입한다. 그는 한 인간이 그 타자성을 인정받는 인격으로 서게 되는 것은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당신’이라는 관계에서, 타인의 ‘당신’을 통해서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 개인이 오직 타자를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말은 이제 ‘나’는 오직 ‘당신’을 통해서만 일어난다는 말이 된다. ‘당신’이 ‘나’를 하나의 인격으로서, 하나의 사고하는 실제적 영으로서 만나게 될 때, 그것은 또 하나의 ‘다른 나’로서 ‘나’에게 맞서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라는 개념은 관념론의 ‘객체’와는 다르다. “그것은 주체의 정신 [Geist] 안에 내재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체에게 장벽 [Schranke]이다. 그것은 하나의 ‘당신’에 대한 ‘나’로서 타자의 의지와 맞부딪치게 되는 의지를 촉발한다.

 


  여기서 ‘장벽’, ‘당신’의 초월성’은 인식론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순전히 윤리적 초월이며, 오직 결단에 맞서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경험되어지는 것이고, 밖에 서 있는 국외자에게는 보여 질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본회퍼는 관념론의 주객도식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제 주체와 객체가 아니라 ‘나와 당신’의 관계에서부터 공동체를 생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나’가 인격적으로 ‘나’로 세워지는 것은 스스로 되지 않고, 하나의 객체가 아니라 또 하나의 주체인 타자인 ‘당신’과의 대립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나와 너의 관계를 통해 참된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회퍼는 철학적 인격주의를 사용하여 관념론의 ‘영’ 혹은 ‘정신’ 개념을 극복하려고 하였으나, 이제는 인격주의마저도 기독교적 하나님 개념으로 넘어서고자 한다. 인격주의에서는 인격적 주체인 ‘나’의 형성에 있어서, 결국 타자인 ‘당신’이 절대시된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 외에 도대체 그 무엇이 절대시될 수 있는가? 기독교적 인격 개념이 철학적 인격주의와 다른 점은 나와 너의 관계에서 ‘당신’을 절대시하지 않으면서 타자인 ‘당신’을 세우는 점이라는 것이다. 

 

 

  '나’는 오직 ‘당신’과 함께만 일어난다. 책임은 [상대방의] 요구에 응답함으로 발생된다. ‘당신’은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다만 그의 요구에 대하여서만 말할 뿐이다. 이 요구는 절대적이다. ... 그러나 이것은 사람을 타자의 도덕적 인격의 창조자로 만드는 것같이 보이는데, 그런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을 피할 수는 없는가? ‘당신’의 인격형성 효과는 ‘당신’의 인격성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nbsp; 우리는 이제 그것은 또한 인간 ‘당신’의 의지로부터도 독립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 혹은 성령이 구체적인 ‘당신’에게 와서, 그의 행위로써 저 타자로 하여금 나를 위한 ‘당신’이 되게 하고, 나의 ‘나’는 그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당신’의 인격형성 행위는 ‘당신’ 자신의 존재나 의지나 능력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나’의 도덕적 인격의 전능한 창조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자연적인 사물의 성격도 아니다. 본회퍼에 의하면 오직 하나님 혹은 성령만이 타자의 인격의 원천이다. 말하자면 성령은 하나님의 인간 인격 형성의 행위자인 셈이다. “모든 인간적인 ‘당신’은 그 성격을 하나님의 ‘당신’으로부터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자의 ‘당신’을 통하여 결국 하나님의 ‘당신’을 만나게 된다. 본회퍼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모든 인간적인&nbsp; ‘당신’은 신적인 ‘당신’의 형상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한 인격이 타자에게 미치는 효과를 고려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당신’의 성격은 사실상 신적인 것이 경험되는 본질적인 형태이다.

 


  본회퍼는 이렇게 우리를 하나의 인격으로 성립시키는 타자로서의 인격적인 ‘당신’ 혹은 그 타자의 어떤 ‘인격적 장벽’ 혹은 ‘초월성’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당신’인 인간은 타자에 대하여 하나님의 초월성을 반영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서 있는 셈이고, ‘나’인 인간은 그 ‘당신’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본회퍼가 즐겨 사용하는 중요한 개념인 ‘대리자’ 개념을 사용한다면, ‘당신’인 타자로서의 인간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당신’을 대표하는 ‘대리자’로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나’는 타자의 대리행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본회퍼는 인간의 인격으로서의 상호관계 혹은 인간의 공동체성 혹은 사회성 속에서 인간의 하나님 형상됨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타인의 인격 형성을 위해서 하나님의 초월적인 ‘당신’의 역할을 하는 ‘대리자’로서 이해되어진다. 성령 안에서 타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로 받아들여지고 존중되어지며, 비로소 참된 공동체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본회퍼 신학에서 ‘대리행위(Stellvertretung)’란 도대체 무엇인가? ‘대리행위’ 개념은 본회퍼의 신학 전체에 걸쳐 중요한 개념이다. 말 그대로 이것은 다른 이를 대신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신학적으로 이는 그리스도론적인 근거를 가지는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육신, 십자가, 부활에서 인류를 위해서 취하신 주도적인 행위와 책임을 가리킨다. 본회퍼에게 있어서 특이한 점은 그가 이 개념을 그리스도론이나 구원론적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인간론이나 윤리에서도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 자신은 결백하였지만, 예수는 타인들의 죄를 걸머지셨고, 죄인으로서 죽음으로서 그는 온 세상의 죄를 지고 벌을 받았던 것이다.&nbsp; 그러나 대리적인 사랑은 죄인의 십자가 위에서 승리하였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은 죄에 대하여 승리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죄는 실제로 처벌되고 극복되어졌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대리행위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어떻게 우리의 죄를 남이 지게하고 우리 자신은 자유롭게 나갈 수 있는가? 본회퍼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실 대리행위 교리는 우리들의 윤리적 태도 이상의 차원을 포함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죄가 우리에게서 벗겨내어지도록 허용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선물을 거절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윤리적 가능성이나 표준이 아니라, 오직 교회 공동체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현실이다; 그것은 윤리적이 아니라 신학적인 개념이다.” “기독교적인 대리행위의 원리를 통하여 새로운 인류는 온전해졌고, 유지되고 있다.”


  본회퍼는 진정한 성도의 교제로서의 교회가 이미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현실(reality)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영원한 현실이다. 그런데 본회퍼는 그 교회가 시간과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현실화되는 것(actualization)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라고 한다.


  그는 이러한 교회의 구체적 현실화는 성령의 공동체로서 다음 두 가지를 수반한다고 본다: 1) 교회 공동체와 교회 지체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구조적으로 ‘서로 함께 함(Miteinander)'; 2) 지체들이 적극적으로 ’서로 서로를 위함(reinander)' 그리고 대리행위의 원리(Stellvertretung). 이는 진정한 공동체의 회복이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서로 함께할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서 사랑으로 서로 간에 대리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일상의 여러 가지 일들에서 타자를 위하여 대리적으로 행위 하도록, 또한 소유, 명예 심지어 전 생애를 포기하기까지 하도록 부름 받았다.”
  이렇듯이 본회퍼 신학에 있어서 그리스도론, 교회론, 윤리는 함께 긴밀히 연결되고 있는데, 그 연결의 중요한 핵이 바로 대리행위이다.


  그런데 본회퍼는 이 대리행위가 물론 일차적으로 교회 공동체에서 회복된다고 보지만, 이러한 대리행위가 반드시 교회 공동체에만 국한되어야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대리행위의 원리에 의하여 구조적으로 지배되고 있는 교회는 그룹 안이냐 밖이냐를 따지는 이원론을 초월하는 책임의 윤리(Verantwortungsethik)를 구현한다. 그러므로 본회퍼의 『윤리』 초고에는 그의 대리행위에 대한 개념이 책임 윤리에 관한 논의의 핵심으로 나타난다. 본회퍼는 『옥중서간』에서 “교회는 오직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만 교회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Von Soosten은 본회퍼가 대리행위 개념을 옥중에서 급진적인 십자가의 신학에 근거하여 해석하였으며, 이것이 기독교에 대한 비종교적 해석에 연결된다고 본다. 하나님의 진리는 대리적으로 서로서로를 위해 행위함을 통하여 세상에서 현실화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우리는 본회퍼의 기독교적 인격 개념에 대한 해설에서 타인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당신’을 대리하는 대리자로서 주로 이해된 점을 보았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본회퍼가 우리들 각자가, 루터가 말했듯이, 작은 그리스도로서 타자를 위한 존재, 즉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을 본다. 이는 대리행위의 윤리적이며, 능동적 측면이다. 이 경우에는 타자가 아니라 ‘내가’ 타자에게 대리 행위자가 되는 것이다.

 

 

 

  4.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 그리스도를 닮아

 

  본회퍼에 의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그 부르심을 져버리고 타락하여 ‘하나님과 같은 본성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들은 이제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취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오직 한 길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인간의 형상을 취하시고 우리에게 오신 이는 다른 이가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보내신 것은 새로운 개념이나 종교가 아니라, 구체적인 형상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비우고 종의 모습으로 인간들에게 오신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으로 계속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를 찾으셨으며,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하려고 애쓰신다.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에 맞추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인간의 형상에 맞추셔야 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신다 (롬8:2f).”그리하여 하나님은 그 하나님 아들의 원형에 따라 우리의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을 변형시키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단순히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원하고 행하기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상을 얻게 된다. 하나님 자신의 형상이 예수의 교훈과 행위, 그의 삶과 죽음에서 계시되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은 다시금 땅 위에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하셨다.”


  본회퍼는 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기 원하는 자는 먼저 고난당하고 버림 받아 십자가에 달린 이의 형상에 맞추어야만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해야만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된 예수의 형상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에 맞춘다는 것은 우리가 습득해야할 그리스도와 유사한 어떤 이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이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의 형상 자체이며, 그것이 우리 안에서 형성 되기를 추구한다 (갈4:19).”


  성육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이의 형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본회퍼는 또한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형상은 “십자가에 달리신 이의 죽음의 형상”이라고 본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삶은 바로 그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형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삶이다.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와 죄악에 대하여 죽고, 또한 이 세상에 대하여도 죽은 자요, 세상도 그들을 향하여 그러하다 (갈6:14). 그들도 역시 그리스도처럼 세상에서 고난의 삶을 산다. 성육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이와의 공동체 안에 머물러 그 형상을 얻은 모든 이들은 또한 “다시 살아나신 영광스러운 이”의 형상을 얻는다. 이 지상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계속 더욱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맺음말

 

  우리는 앞서 본회퍼의 하나님 형상 개념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떤 소유물이나 성질, 혹은 실체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본회퍼는 분명히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과 같은 본성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러한 표현은 다시금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에게 있는 어떤 성질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만일 하나님의 형상이 정말로 인간의 어떤 소유물이나 성질이 아니라면, 설사 인간이 타락하였다고 하여도 그의 하나님 형상임은 상실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본회퍼에 있어서도 존재론적인 성격으로서 하나님 형상, 즉 자기의식적이며 자발적인 의지를 가진 정신으로서의 인격성의 유사함에 관한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본회퍼는 존재유비를 거부하고, 관계유비를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형상 개념을 관계성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관계가 인간들 사이의 관계라면, 이것은 비록 인간 개인의 속성과 성질은 아닐지라도 인간 사회 혹은 공동체의 속성 혹은 그 존재 구조의 성질을 의미할 수 있으므로, 이것은 여전히 인간 사회와 하나님 사이의 존재유비를 긍정하는 것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본회퍼는 “이 관계성 역시 인간의 잠재력도 능력도, 인간실존의 구조도 아니며, 그것은 주어진 관계”라고 이해한다. 또한 “이 유비는 마치 인간이 이 유사성을 소유하거나 혹은 인간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해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 관계유비는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관계라고 한다.


  여기서 이 관계의 성격의 모호함이 나타난다. 물론 이 관계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일단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실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본회퍼는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임이 상실될 수 있는 그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이 소유하지 않았던 것을 상실할 수도 있는가?


  그러나 만일 우리가 대리행위의 관계를 고정적으로 주어져 있는 존재구조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혜에 의하여 이루어가는 것으로 본다면 문제는 해결될 수도 있다. 실제로 본회퍼는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가 피조물이지만 창조주와 유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혹은 “우리가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소유하는 어떤 성질이 아니라, 인간에게 부여된 어떤 사명을 의미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타락하였다고 해서 상실할 그 무엇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명을 부여하심에는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은혜가 결부된다고 보면 사명은 타락으로 인하여 상실되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상실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우리에겐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이 있는데 다만 인간이 그것을 수행하지 않고 있으며, 제대로 수행할 수도 없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본회퍼가 이야기하는 하나님 형상 개념을 대강 정리해 보았다. 그의 하나님 형상 개념은 하나님 형상을 존재론적으로 보기 보다는 관계론적으로 본다는 점, 존재유비가 아니라 관계유비에 의존한다는 점, 대리행위, 인격, 자유 개념 등을 설명의 중요한 요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하나로 엮어낼 수 있는 개념이 바로 대리행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대리 개념은 그 자체로서 관계 개념이고, 이 대리행위 개념이 그리스도론적인 근거 위에서 관계유비를 함축한다. 또한 그의 기독교적 인격 개념 역시 타자의 ‘당신’이 ‘하나님의 당신’을 대리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지며, 자유 개념 역시 ‘타자를 위한 자유’가 핵심이라고 볼 때 대리행위 개념과 긴밀히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 형상 개념을 대리행위로 이해하는 것은 그것을 실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내포하는 여러 가지 약점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본회퍼의 하나님 형상 개념에 관한 논의에서 얻은 통찰들을 ‘대리행위의 사명과 은혜’로 집약하여 하나님의 형상 개념을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하나님을 대리 혹은 대표하는 존재를 두신 것으로 볼 수 있다. 무한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비하여 볼 때, 유한한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과 질적으로 무한한 차이가 있다. 그렇게 비천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상에 두시고 그의 대리자로 삼으셨다는 것은 인간들을 그만큼 존중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나타낸다. 한편 인간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사실은 그 은혜에 결부되는 사명을 가리키기도 한다. 다른 피조물들에 대하여 인간은 하나님을 대리하여 그것들을 돌보고 가꾸고 다스리는 청지기적인 사명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들인 인간들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공동체를 이룰 사명을 받았다.

 

한 인간은 다른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알 때, 그에게서 하나님을 인식하면서 그를 존중하고 사랑하게 되며, 이러한 존중과 사랑이 제대로 시행될 때 진정한 공동체가 가능해진다. 또한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이 사랑의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타자에게 다가간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상에 창조하셨을 때, 이와같은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도 함께 부여하셨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였을 때 그것은 인간은 동료 인간들이나 다른 피조물들에 대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대리자이기를 거부한 것이요, 다른 인간들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인정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인간은 이제 사랑의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동료 인간들과 피조물들을 사랑하기를 거부하고, 자기의 이기적 욕망과 교만함을 따라 살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인간은 결국 진실로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께서 직접 부여하신 하나님의 대리직을 버리고,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 한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한다.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여하신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능력과 행위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대리자라고 하는 하나님의 선언과 관계는 타락한 후에도 취소되지 않았다. 타락한 인간에게도 여전히 하나님의 대리직을 수행해야할 사명, 이웃을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존중해야할 사명은 남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리직을 수행하려는 기꺼운 의지도 없고, 그렇게 수행할 능력도 더 이상 없는 인간에게, 이웃을 사랑하고 피조물들을 잘 돌보라는 명령은 무거운 율법이요 심판의 계기일 뿐이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비우시고 죄인 된 인간의 형상을 입으신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우리는 죄 용서를 얻고,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할 능력과 은혜를 회복하게 된다. 이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를 따른다는 것은 성령의 은혜 안에서 기꺼운 사랑의 응답으로 피조물들과 동료 인간들을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존중하며, 우리 자신도 또한 사랑의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 개념을 이렇게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이해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1. 하나님의 형상이 본질론 혹은 실체론적으로 인간 영혼의 합리성이나 자유의지 혹은 하나님과의 교류 능력을 중심으로 이해된다면, 그런 면이 현저히 부족한 어린 아기나 정신질환자, 정신지체 장애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생기지만, 이러한 개념에서는 그런 문제가 없다. 어린 아기나 정신지체 자가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존재 자체'는 우리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응답해야할 하나님을 대리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을 본받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어야함을 그 누구보다 잘 일깨워 주는 하나님의 대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그들도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이 초월자이신 하나님을 아는 인식 능력이나, 거룩한 행실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된다면, 죄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는 문제가 생긴다. 타락한 죄인들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는 말은 이상할 것이 없지만, 타락한 죄인들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 존엄성이 있다는 점은 설명이 곤란하다. 이 개념을 받아들이면, 타락한 후에도 타자는 여전히 하나님의 대리자이며 우리들은 그들을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존중하고 사랑해야할 사명이 있음을 설명할 수 있다.

 

  2. 이 개념은 하나님의 형상이 타락 이전과 이후 상실 되었는가 아닌가에 관한 해묵은 논쟁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든다. 이 개념은 타락한 이후에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점을 긍정하지만, 또한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할 기꺼운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지적함으로서 타락 이후 인간의 곤경을 잘 설명할 수 있다.

 

  3. 이 개념은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생각함으로서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대하듯 하라고 하는 기독교 윤리의 핵심적 내용을 진지하게 설명할 수 있다. 또한 동시에 유대-기독교 전통과는 잘 어울리는 않는 범신론적 경향 혹은 인간의 신격화 경향을 피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 안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심오한 종교적 통찰은 곧잘 모든 사람이 곧 하나님이라는 등식으 로 성급하게 결론지어지곤 하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이 개념은 그러한 범신론적 혹은 인간 신격화의 경향을 피하면서도 모든 사람을 하나님들 대하듯 하는 진지함으로 우리를 이끈다. 하나님의 대리자는 자신 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가지지만, 자기 자신이 하나님은 아님이 분명하다. 

 

  4. 이 개념은 과거의 하나님 형상론이 영혼이니, 합리성이니, 자유의지니 하는 개념들에 집중하여 소홀히 하였던 하나님 앞에서 인간과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를 다시 고려하게 하고, 오늘날 오염과 파괴로 인하여 신음하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된다.

 

  5. 이 개념은 과거의 하나님 형상 개념이 인간을 이해함에 있어서 추상적인 개인으로 생각하게 하는 사변적인 경향을 불식하고 인간을 타인들과의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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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목  창  균

 

 

  서 론

 

20세기 후반 신학의 가장 큰 특징은 신학의 가장 큰 특징은 신학의 강조점이 바뀐데 있다.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으로, 하늘로부터 땅으로, 저승에서 이승으로, 말씀의 전파보다는 인간의 인간화가 강조되었다. 한마디로, 세상성에 대한 발견과 관심이 고조되었다. 1960년대 이후 기독교는 전반적으로 세속화되고 신학은 급진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신학적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본회퍼였다.

 

 

그의 핵심사싱이자 혁명적인 개념인 무 종교적 시대와 무종교적 기독교, 혹은 성인된 세계와 성서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은 기독교 신학계에는 큰 충격을, 젊은 신학자들에게는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세계신학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특히 그가「옥중 서간」에서 주장한 “성서 개념의 비 종교적 해석”은 기독교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세속화신학, 사신신학, 상황윤리등이 그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고, 정치신학, 혁명신학, 해방신학이 간접적으로 연관되어있다.

 

 

이러한 급진 신학의 중심에는 항상 본회퍼의 사상이 자리잡과 있다. 비기독교인까지도 사로잡는 본회퍼의 매력은 그의 삶과 사상의 일치에서 찾을 수 있다. 히틀러의 독재정권에 용기있게 항거하고 저항한 끝에 투옥되어 39세에 처형당한 그의 삶은 그가 강조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의 삶의 실현이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위해서 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Ⅰ. 생애와 저작

 

1906년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명문가 집안의 쌍둥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저명한 신경정신과 의사였고 어머니는 경건한 신앙의 소유자였다. 그는 열 살때 모차르트를 연주할 정도로 음악에 재능이 있었으며, 한때는 전문음악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1923년 튀빙겐 대학에 입학 다방면에 걸쳐 폭넓게 공부했다. 특히 그가 로마를 방문했을 때, 베드로 대성당을 보고 교회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훗날 그리스도와 교회를 신학이 중심 주제로 삼았다.

 

 

1924년 베를린 대학으로 학교를 옮겨 100여 년의 전통을 지닌 자유주의 신학의 본산지 베를린 대학은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한 자유주의 신학의 마지막 보루였다. 자유주의 신학을 대중화 시킨 하르낙이 정년 퇴임중임에도 강의는 계속하고 있었으며 저명인사들이 교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본회펴는 이들을 통해 자유주의 신학과 역사 비평적 방법에 익숙하게 되었다. 이웃에 살며 친하게 지냈던 하르낙은 본회펴를 사랑했을 뿐 아니라 교회사를 전공하기를 권했지만 본회퍼는 조직신학을 더 좋아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역시 조직신학에 관한 것이다.

 

 

1928년 그는 목사로 활동하기도 했다.1930년 베를린 대학에서 강사자격을 얻었으며 베를린 대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그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열성적이었다.

 

 

본회퍼의 삶에 결정적ㅇ니 영향을 미친 두 사건은 히틀러의 집권과 2차세계대전이었다.  그것은 순수하게 신학 연구에 몰두하던 신학자 본회펴를 투사로 만들어 일생을 투쟁과 항거로 일관하게 만들었다. 전자는 그가 고배교회운동에 참여하여 교회 투쟁을 하게했으며, 후자는 그로하여금 히틀러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지하 저항운동에 가담하게 했다.

 

 

나찌당은 1932년 의회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여 의회를 지배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1933년 1월 30일 제3공화국의 총통이 되었다. 나찌당은 기독교와 빈족주의적 사회주의를 종합할 뿐만 아니라 독일 교회를 장악하려는 시도로 “독일 기독교 신앙 운동”을 조직했으며 많은 목사들이 여기에 가담했다. 따라서 독일 기독교는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루트비히 뮐러를 중심으로 한 “독일적 그리스도인들”로 나찌당을 지지하고 민족적 기독교를 주장하여 기독교를 게르만화하고자 하는 기독교 운동이다.

 

 

본회퍼가 속한 “옛 프러시아 연합교회”는 유대인이 교회내에서 직책을 가지는 것을 금지했다.

다른 하나는 뉘밀러가 주도한 독일 복음주의 고백교회 운동이다. 이 운동은 독일적 기독교 운동에 항거하여 일어났으며 1934년 조직화되었다. 바르트가 기초한 이 신앙 고백서가 “바르멘 선언”이다.

 

 

1933년 히틀러가 총통이 된지 단 이틀 후에, 본회퍼는 베를린 방송을 통해 “젊은 세대에 있어서 지도자 개념의 변화”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중도에 중단된 이 연설은 새로운 지도자의 개념을 직책이 아닌 사람에게두는 우상적인 지도자 원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는 “교회와 유대인 문제“라는 논문을 발표 유대인 문제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분명히 하였다. 1933년 본회퍼는 런던에서 목회활동을 하면서 고백교회운동을 계속했으며 이에대한 영국 교회의 지지를 촉구했다. 그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법을 연구하기위해 인도로 갈 계획이었으나 독일 고백교회의 신학교 설립의 요청으로 신학교의 책임을 맡았다. 이 학교는 신학적 연구와 영적 훈련과 실천의 종합을 강조하는 고백교회의 지도자 양성소였다.

 

 

1937년 신학교가 비밀경찰에의해 폐쇄되자 「성도의 공동생활」을 저술했다.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길을 해명한 것이다. 특히 ”나를 따르라”는 그의 생존시 출판되어 독자들에게 큰 감명을 준 그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그를 세계적인 인물로 만든 저서였다.

 

 

1939년 라인홀드 니버와 레만의 주선으로 미국에서 강의하기위해 갔으나 전쟁이 임박한 고국을 떠난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않았다. 7월 초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독일로 돌아왔다. 한편 9월1일 히틀러의 군대는 결국 폴란드를 침공했으며, 이에 대응하여 이틀 후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대해 선전 포고를 했다. 1940년 여름, 학교가 폐쇄되고 온갖 저술활동이 금지당했고 독일 군정보부 법률 고문이었던 매부 도나니의 배려로 군정보부의 민간인 정보요원으로 채용되어 뮌헨 사무소에 배속되었다.

 

 

한편 도나니를 통해 알게된 지하 저항세력의 히틀러 암살 계획에 적극 가담했다. 미친 운전사가 대로로 자동차를 몰고 간다면 그 자동차에 뛰어올라 핸드을 빼앗고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윤리학」을 저술하기 시작했는데 본회퍼는 그리스도가 교회에 어떻게 관계되는 가의 문제보다 오히려 교회와 그리스도가 세상에 어떻게 관계되는가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았다.

 

 

1943년 체포되어 형무소에서 18개월동안 반복된 심문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많은 책을 읽었으며 성경을 깊이 연구했다. 현대 세계에 있어서 기독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색하며 검토했다. 이곳에서 그의 핵심사상인 “성인된 세계”와 “성서적 개념의 비종교적 핵석”에 대한 개념이 형성된다.

 

 

그는 세계가 중세 이후 세속화의 과정을 겪어왔으며, 인간은 점진적으로 “성인된 세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학적 성서적 개념에 대한 종교적 견해를 폐기하고 비종교적 해석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옥중 서간은 20세기 후반의 신학적 흐름을 바꾸어놓을 정도로 큰 영향을 비쳤다. 1945년 4월 9일 새벽, 미군이 그 지역을 해방하기 직전 교수형에 처해졌다.

 

 

 

 

 


  Ⅱ. 성인된 세계

 

본회퍼는 13세기에 시작된 인간의 자율성을 위한 운동은 이제 완성의 단계에 도달했으며, 인간은 더 이상 종교나 하나님에 의존하여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성인된 세계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옥중 서신에서 성인된 세계 혹은 무종교 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

 

성인된 세계는 종교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종교가 필요없는 시대가 성인된 시대이며 “당시의 종교적 상황에 대한 진단이다. 그 예측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자율성과 세계이 자주성, 그리고 세계의 비신격화와 세상성의 발견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종교적인 세상의 의미를 극복하고 성인된 세계를 긍정하는 것을 말한다.

 

본회퍼는 죄와 죽음을 인간 실존의 한계상황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해결하기위해 하나님을 동원하는 실존 철학이나 전통적 기독교 신학의 입장을 거부했다. 이것은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신앙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은 우리가 인간능력의 한계나 급한 상황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을 부정하는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어려울 때만 해결해주는 해결사나 곤란한 틈을 메워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서 이해해야 한다. ”한계상황에서가 아니라 삶의 한 가운데서, 인간의 약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함에의해서, 죽음과 죄가 아니라 삶과 인간의 선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는 성서의 복음으로부터 종교의 옷을 벗겨 버리려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는 인간 자신의 영혼에 대한 관심 또는 세계를 초월한 하나님에 대한 형이상학작 해석을 의미한다. 너무도 젊은 나이에 죽은 그는 신학의 완결을 내놓지 못하여 후대의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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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기독교적 인격 개념
본회퍼(D. Bonhoeffer)의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를 중심으로 

 

박성민


출처: 신학하는 사람들(계명대) http://kerygma.pe.kr/artikel.htm

 

 

제1장 서 론

 

1.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인격(die Person)이란 무엇인가? 인격에 해당하는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는 헬라어 프로소폰(        )을 번역한 것인데, 이것은 가면(Maske)이라는 뜻이다. 루터는 인격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가면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가면을 쓰지 않은 하나님은 벌거벗은(nudus) 하나님이다. 벌거벗은 하나님은 절대적 위엄 가운데 계신 분으로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하나님을 파악할 수 없다(finitum capax non infiniti). 왜냐하면 위엄 가운데 계신 하나님은 영원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며, 우리는 영원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포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엄청난 영광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벌거벗은 분으로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를 견디고 포착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덮으시고 스스로 가면을 쓰신다. 이와 같이 루터가 주장한 가면으로서의 인격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계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인격이 계시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면, 이것은 인간으로 표현되는 모든 개별적 인격이 계시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그리스도만이 계시인가?

 

 


본회퍼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인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에서 이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고 있는데, 공동체로 실존하는 그리스도(Christus als existierende Gemeinschaft)가 그것이다. 본회퍼는 {성도의 교제}에서 인격을 단순히 인격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인격과 공동체와의 관계 그리고 공동체와 그리스도와의 관계 아래서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본회퍼의 {성도의 교제}에 나타난 인격개념의 이해하는 데 본 논문의 목적이 있다.

 

 


또한 본 연구를 통하여 본회퍼가 주장한 인격 개념의 문제점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본회퍼는 철학적 인격개념을 비판하면서 구체적인 인격과 보편적인 인격이 함께 어울려 있는 인격의 공동체성 내지 사회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격이해가 오히려 인격개념을 추상화하는 결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본회퍼는 인격을 공동체로 실존하는 그리스도로 지칭하는데, 여기에서 개인의 실존적 인격의 문제가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이외에 보편과 개체가 함께 하는 구체적 인격이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2. 연구사(硏究史)와 논문의 의의

 

본회퍼의 {성도의 교제}와 관련된 연구들은 다음과 같다. 박재순의 "본회퍼의 敎會理解"라는 연구에 따르면 교회의 참된 형태는 타인과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인격과 공동체가 교회의 본질적 구조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대리적 죽음을 통하여 기초되어 있으며, 교회의 본질적 구조는 더불어 있음, 서로를 위함이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경험적 공동체는 말씀의 공동체로서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관심으로 표현된다.

 

 

김균진의 "본회퍼의 하느님 理解"에 의하면 본회퍼의 하나님은 절대타자의 하나님이며, 동시에 우리와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다. 박재순의 "본회퍼 신학과 민중신학의 고난이해"에 의하면 하나님은 철저히 인간을 위한 존재이며,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성육신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인간을 위한 존재, 인간과 더불어 있는 존재로서 나타난다.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대신 고난받고, 대신 죽은 '대리자 그리스도'가 본회퍼 신학의 핵심주제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은 인간이 죄의 현실 때문에 인간을 위해 죄짐을 지는 분으로서 인간을 위해 그리고 인간과 더불어 함께 고난당하는 하나님이다.

 

 

유석성의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학사상"에 의하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입장에서 그리스도는 곧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이며, 이는 곧 타자를 위한 그리스도,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이다. 김재진의 "본회퍼의 계시 현상의 실체적 해석학"에 따르면 본회퍼의 인격개념은 결코 철학적 인격개념이 아니며, 자신을 타자에게 내어주는 행위 속에 존재한다. 이러한 인격개념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절대적 구별 속에서 신적 인격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본회퍼의 {성도의 교제}에 대한 해외연구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A. Sch nherr, "Sanctorum Communio. Dietrich Bonhoeffer als Theologen der Kirche", 1956; K. Beckmann, "Christus als Gemeinde existierend. Der Begriff der Kirche in Dietrich Bonhoeffer Sanctorum Commnio im Blick auf die  kumene", 1961; A. Reid, "Social and Theological Intepretation of the Church: An examination and Critique of the Early Writing of Dietrich Bonhoeffer, Especially Sanctorum Communio", 1966; T. Day, "The Social Theology of Dietrich Bonhoeffer's Sanctorum Communio", 1969; I. Mancini, "Chiesa di popolo, Bonhoeffer, Dietrich: Sanctorum Communio", 1972; A. Marranzini, "Sanctorum Communio, L'ecclesiologia di Dietrich Bonhoeffer", 1973; A. Picinali, "L'umanesimo cristiano", 1974; K. E. Thompson, "Dietrich Bonhoeffer's Community of Saints. An Interpretation", 1977, U. Scheffel, G. Winter, "Der Begriff Gemeinschaft in Dietrich Bonhoeffers Schrift Sanctorum Communio", 1978; K. E. Thompson, "Understanding Bonhoeffer's the Community of Saints: A New Perspective", 1980; C. T. Yerkes, "I and Yet not I: A Disseration on the Contradictory Subject in Dietrich Bonhoeffer's Community of Saints and in Materialistic Philosophy", 1983; E. S. Neel, "A Comparison of Spiritual Principles Operative in the Sanctorum Communio with Those of Contemporary Secular Organizations such as Amnesty International as Evidence of the Non-Religious Interpretation of the Gospel", 1984; J. Rades, "Bonhoeffer and Hegel: From Sanctorum Communio to the Hegel Seminar with Some Perspective for the Later Works", 1988; H. Mottu, "Christ existant comme communaut ", 1991; J. von Soosten, "Die Sozialit t der Kirche. Theologie und Theorie der Kirche in Dietrich Bonhoeffers Sanctorum Communio", 1992; B. Thurnay, "Sanctorum Communio", 1993; J. von Soosten, "Postfazione", 1994.

 

 

 


본회퍼의 {성도의 교제}에 대한 국내의 연구는 다음과 같다. 김영호의 "본회퍼에 있어서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성"에서는 본회퍼의 여러 저서들과 더불어 {성도의 교제}가 연구되어졌다. 이 연구에서 인격개념은 사회학적 기본범주이며, 이러한 사회학적 기본범주로서의 인격이 기독교적으로 반영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회적 범주로서의 인격이 지니는 정신성과 사회성을 본회퍼가 기독교적으로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는 본회퍼의 신학적 방법론을 잘못 인식하고 있다. 왜냐하면 본회퍼의 인격개념의 출발점은 교의학적인 것이며, 이러한 인격의 교의학적 이해를 다시금 사회학적으로 재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영호의 논문에서는 본회퍼의 신학방법론에 대해 잘못 접근하고 있다. 노광석의 Sanctorum Communio와 Akt und Sein을 중심으로 작성된 "본회퍼의 교회론 연구"에서는 본회퍼의 {성도의 교제}가 교회론적 입장을 지니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노광석은 본회퍼의 {성도의 교제}가 단순히 교회론적 기술이 아니라 계시론적 기술임을 간과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그리스도의 역사적 실존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교회론적 입장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노광석은 인격 개념을 사회적 구성요소의 일부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본회퍼가 주장한 인격개념의 일부분 만을 언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노광석은 본회퍼의 인격개념이 사회적 구성요소로서의 나-너 관계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아래에 있는 인격을 지칭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인호의 "Bonhoeffer의 비종교적 교회이해"는 본회퍼의 다른 저서들과 함께 {성도의 교제}를 연구하였다.

 

 

이 연구에는 나-너 관계에 있는 인격개념, 공동체 개념 또한 그리스도의 대리적 행위에 의한 교회의 완성과 후반에서는 이러한 대리행위의 경험적 교회에 대한 위임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인격의 계시적 성격이 간과되어 있다. 현재규의 "본회퍼의 교회론"에서는 인격개념에 대한 철학적 그리고 기독교적 비교고찰, 언어와 의지로서의 인격에 대한 사회철학적 고찰, 인격과 공동체의 유형론 소개, 그리스도의 대리행위, 성령에 대한 구체화, 경험적 교회의 형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본회퍼의 인격개념을 단순히 교회론적 입장에서 살펴보고 있다.

 

 

즉 현재규는 본회퍼의 인격 개념에서 계시적 인격 개념을 간과하고 있다. 김성순의 "본회퍼의 敎會觀"에서는 인격이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에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김성순은 이러한 관계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절대적 구별 안에서만 일어나며, 이 인격은 자신이 책임적일 때 파악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김성순이 인격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격이 될 수 있음을 언급한 것은 올바른 지적이다. 그러나 김성순은 인격이 인간자신의 책임적 상황에 있음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인간은 이러한 책임적 상황 아래서 그 스스로 책임적인 존재가 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대리적 행위 앞에서 인간이 인격이 될 뿐임을 간과하고 있다.

 

 

전기영의 "본회퍼의 교회론 연구"에 의하면 {성도의 교제}의 중심사상은 교회론이며, 본회퍼는 사회학적 방법으로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영의 논문 또한 본회퍼의 {성도의 교제}에서의 교회는 계시론적 교회임을 간과하고 있다. 왜냐하면 전기영은 본회퍼가 사회학적 방법으로 교회의 본질을 찾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교회의 본질은 교의학적 연구를 통하여 밝혀지는 것이며, 사회학적 방법은 교의학적 이해를 돕기위한 것임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기영은 본회퍼의 인격개념이 단순히 사회의 기본범주임을 언급하는데만 그치고 있다.

 

 

그래서 전기영은 본회퍼의 인격개념이 단순한 사회학적 용어가 아니라, 오히려 교의학적 용어임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전기영의 논문에서는 인격과 공동체의 관계, 즉 인격은 공동체 안에 포함되어 있으나 융해되어 있지 않다는 인격과 공동체 사이의 긴장관계에 대한 언급이 약하다. 주정빈의 "교회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본회퍼의 교회론 연구"에 의하면 본회퍼의 {성도의 교제}는 사회학적 방법으로 교회의 본질을 찾으려는 연구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본회퍼의 신학방법론과는 어긋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회퍼는 오직 교회의 본질은 교회 내부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혀두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금까지 본회퍼의 {성도의 교제}를 연구한 국내의 학위논문들은 본회퍼의 신학적 방법론을 오해하거나, 핵심개념인 인격개념의 일부분 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격개념이 본회퍼의 {성도의 교제}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격개념에 대해 세밀한 연구가 없었다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또한 기존의 {성도의 교제}에 대한 연구들에서는 본회퍼 신학 구조의 핵심인 1장부터 4장을 분석한 연구가 아직 부족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성도의 교제}에 나타난 본회퍼의 인격개념을 분석하는 본 연구는 본회퍼의 핵심적 신학구조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필수적 연구이며, 따라서 본 논문은 이러한 입장에서 연구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3. 연구방법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본회퍼의 {성도의 교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바로 본회퍼의 인격개념이다. 이러한 인격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위하여 2장에서는 먼저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에피큐로스학파, 칸트의 인식론, 헤겔철학에서 나타나는 철학적 인격개념을 고찰하고자 한다. 3장에서는 인격개념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를 인격의 구조적 개방성, 폐쇄성, 객관적 정신 그리고 공동체의 유형으로 나누어 고찰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앞에서 고찰한 철학적 인격과 인격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를 토대로 하여 기독교적 인격에 대하여 다루고자 한다. 이 장에서는 나-너 철학의 수용, 절대타자의 개념, 죄, 원죄, 그리스도의 대리적 행위를 통해서 기독교적 인격의 특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결론에서는 위의 연구를 토대로 본회퍼의 {성도의 교제}의 핵심명제인 "실존적인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Christus als existierende Gemeinschaft)"의 개념이해에 이르고자 한다. 그리고 나서 본회퍼의 인격 개념에 대하여 평가하고, 문제점을 제기할 것이다.

 

 

 


제2장 인격에 대한 철학적 이해

 

본회퍼의 인격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격에 대한 철학적 선(先)이해가 필요한데, 그에 의하면 철학적 인격개념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만 기독교적인격개념이 더욱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에피큐로스학파, 칸트 그리고 헤겔의 인격개념을 다루고자 한다.

 

 

 

1. 보편과의 관계 속에 있는 형이상학적 인격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격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종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그의 종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사용하는 제일실체와 제이실체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제일실체란 판단대상의 일회적, 개별적인 대상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며, 제이실체란 여러 개체들에게 있어서 공통적인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제일실체나 제이실체 중에서 판단의 대상은 제이실체이다. 왜냐하면 개별실체는 말로써 다 남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판단의 대상은 곧 제이실체이다. 판단의 대상으로서의 제이실체는 제일실체들의 공통적인 것을 뜻하는데, 이것은 곧 종(種)적 실체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판단의 과정을 따르면 종(種)적 실체만이 판단의 대상이 된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인격이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격이해에 대하여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 구조에서는 종의 이성(Gattungsvernunft)에 참여할 때에만 인격이 된다.  ... 종(Gattung)으로서 보다 포괄적인 체계 안에서 인격의 개념이 정리된다.  ... 그(인격: 필자주)의 본질은 모든 개별체들 보다 앞서 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격은 본질적 존재로서 개별-인격적 존재의 저편에 있는 보편적 인격이다.

 

 


스토아 학파의 인격이해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은 충동(impetus)에 관한 부분이다. 충동은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곧 "고상하지 못한 격정(pathos)"과 "고상한 격정(edle Affekte)"이다. 고상하지 못한 격정이란 신체의 감각을 통하여 불러일으켜진 것들로 고통, 공포, 욕정, 쾌락 등이 이에 속한다. 이와 반대로 고상한 격정이란 욕정에 대립되는 올바른 의지로서, 이성이 격정을 약하게 하여 조심, 경건함, 정결함, 덕, 순수한 기쁨 등으로 표현된다.

 

 

고상하지 못한 격정을 고상한 격정으로 바꾸는 이것이 윤리의 원리이다. 스토아학파에 의하면 이러한 윤리의 원리가 인간의 본성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윤리학의 근거에 대한 자연주의적 근거를 의미하는 것으로, 윤리와 존재의 구조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스토아학파의 인격이해는 윤리적 인격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스토아학파의 윤리적 인격에서 그 윤리의 의무가 보편타당한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의무는 이성의 영역에 연합되어 있는 것인데, 스토아학파에 의하면 이성의 영역은 보편적 이성(All-Vernunft,             )이라는 개념에 뿌리박고 있다. 그러므로 스토아학파의 윤리적 인격은 보편적 윤리의 인격이다. 이러한 스토아학파의 윤리적 인격이해를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인격은 하나의 높은 의무(Soll) 아래 종속된 존재(Unterstellensein)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그 의무는 보편타당한 의무이며 그리고 그 의무에 대한 복종을 통해서 인간은 이성의 영역과 연합되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스토아학파의 윤리적 인격은 이성의 보편적 성격으로 인하여 보편적 인격개념으로 규정할 수 있다.

 

 

우리는 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주의의 인격이해를 살펴보았다. 이들의 인격이해의 특징은 보편적 인격이해이다. 이러한 보편적 인격이해에 대하여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개별적 인격이 보편에 흡수되어 버리는 보편적 인격은 비인격적인 것이며, 오히려 인격은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이 친밀하게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는 것이며, 그리고 인격은 어떤 식으로든 최종적인 인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2. 개별적 쾌락 안에서의 인격

 

위에서 살펴본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학파의 인격개념이 보편과 관련된 인격개념이어서 개별적 인격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면, 이와는 반대로 에피큐로스학파의 인격개념은 오히려 개별적 인격이라고 볼 수 있다. 에피큐로스학파의 개별적 인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윤리학에서 말하는 선(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들의 선에 대한 이해는 기존의 선에 대한 이해와는 차이가 있는데, 기존에 대한 선의 이해가 '어떤 것이 선하기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에 든다'라고 말한다면, 이와는 반대로 에피큐로스학파는 '우리의 마음에 들기 때문에 그것은 선한 것이다'라고 한다.

 

 

 에피큐로스학파에게 있어서 선이란 이상적이건 현실적이건 그 어떤 질서와의 일치에서부터 선이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선은 곧 우리의 욕구능력과 관계된 것으로, 우리 마음에 쾌락을 가져다 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것은 '선'이 되는 것이고, 우리에게 불쾌(不快)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그것은 "악(惡)"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선(善)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객관적인 선자체가 윤리적인 선이 아니라, 주관적 쾌락(     )이 윤리적인 선이다. 이러한 주관주의적 선이해에 대하여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에피큐로스주의는 데모크리투스의 원자론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사회의 영역과 윤리의 영역에 적용한 것이다. 에피큐로스주의는 인간의 사회화는 단지 개별적 인간들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에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개별적 쾌락주의적 인격은 자신의 개별적 쾌락을 추구하려는 가운데 인격과 인격은 대립관계에 놓이게 된다. 본회퍼에 의하면 이러한 개인과 개인의 대립관계 속에서의 인격은 본질상 다른 인격에게 이방인이 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인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3. 주관적 인식론적 인격

 

위에서 살펴본 인격에 대한 이해는 데카르트 이후에 새로운 조명 아래로 움직여 갔다. 그 새로운 조명이란 곧 인식하는 나를 모든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는, 즉 자아의 외부에 존재하는 일체의 물(Ding)의 존재를 의심하고, 나의 사고(Cogito)의 확실성으로부터 사물의 존재의 확실성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진리에 대한 기준과는 다른 것인데, 기존의 진리에 대한 기준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진리를 마음의 체험과 사물과의 동화', 즉 외적인 사물과 내적인 인식의 확신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의 진리의 기준이 주관적 사고의 확실성 안으로 옮겨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칸트는 오성의 기능을 통하여 사고의 확실성을 보완하려고 하였는데, 감성을 통하여 받아들여진 경험의 재료들을 오성의 선험적(a priori)인 12개의 범주(Kategorien)를 통하여 종합하려 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오성의 범주가 지닌 선험적 성격인데, 칸트에 의하면 이러한 오성의 선험적 성격 때문에 사고의 확실성, 즉 인식의 보편타당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러한 칸트의 선험적 오성의 범주에 대하여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칸트가 말하는 이 객관성은 다시금 하나의 주관성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범주는 인간의 오성의 선험적 형식으로서 물 자체(Ding an sich)와는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성의 모든 인식은 물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며 그리하여 주관성으로 전락한다."

 

 

이것은 오성의 선험적인 성격이 단순한 인식론적 주관성임을 지적하는 것인데, 이러한 인식론적 주관성에 대하여 일찍이 주목한 사람으로 본회퍼는 피히테(Fichte)를 지목하고 있다. 본회퍼는 피히테의 다음과 같은 진술에 동의하고 있다. "너의 개념은 '그것(Es)'과 '나(Ich)'와 하나가 됨으로서 생성된다." 즉 인식론적 입장은 주-객(Subjekt-Objekt) 그리고 나-너(Ich-Du) 관계 사이에는 전혀 구별이 없으며, 정확히 말하자면 객체가 주체 속에, 너를 내 속에 끌어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회퍼는 칸트철학의 인식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월적 통각(Apperzeption)의 종합은 주체와 객체의 대립과 마찬가지로 나-너 관계를 지고의 정신의 일치 안에서, 지적인 직관(Anschauung) 안에서 해소시켜버린다."

 

 

비록 칸트가 오성의 선험적 범주를 통한 인식의 객관성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에서 헤겔이 칸트의 인식의 주관성을 비판한 것과 같이  물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렇듯 물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한 것인데,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하나님은 "완전한 추상적인 것, 완전히 빈 것"으로 되어버리며, 하나님은 인간과 그의 세계에 대하여 "피안의 것"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의 세계는 여기(Diesseit)에, 하나님은 저기(Jenseit)에, 아무 관계없이 존재하게 된다. 즉 세계는 하나님 없이 존재하게 되고 하나님은 이 세계를 상실한 채 추상적인 자기 동일성 가운데서 존재하게 된다.

 

 

이와 같은 칸트의 구조 속에서는 세계의 무신성(Gottlosigkeit)과 하나님의 무세계성(Weltlosigkeit)이 야기되며, 하나님 자신은 인간의 모든 현실로부터 추방되어 하나의 사유의 산물이 되고, 혹은 추상적인 지고의 존재로서, 혹은 하늘과 땅의 주인으로서 사실상 피안의 세계로 추방되었으며, 이 피안의 세계와 차안의 세계는 서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두 세계는 서로 절대화되었다. 이와 같은 차안의 유한한 세계가 피안의 무한한 세계에 대하여 그 자신을 절대화시킬 때, 차안의 세계는 "사악하고 죄된 것으로서 오직 자연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에 속한 악"으로 되어 버린다. 바로 여기에 칸트 철학의 마지막 결론이 있다.

 

 


비록 인식론이 인식론적 현실주의(erkenntnistheoretischer Idealismus)를 주장하고 있기는 하나, 본회퍼에 의하면 인식론적 현실주의는 어떠한 사회적 영역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이 단독적으로 보편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동안에, 그리고 인식의 대상이 인식 주체의 정신에 내재되어 있는 동안에 인간의 정신은 사회적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식론적 영역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식론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은 원칙상 서로가 서로를 파괴한다.

 

 


그러므로 칸트의 인격이해의 특징은 인식론적 주관적 인격이며, 이러한 인식론으로서는 결코 구체적인 인격에 이를 수 없다. 이러한 인식론적 인격은 "공동체의 개념으로 이끌어 가지 못하고, 오히려 단지 독자성(Selbigkeit), 단일성(Einheit)의 개념"으로 이끌어 갈 뿐이다.

 

 

 

4. 내재적 정신적 인격개념

 

헤겔의 인격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말하는 정신(Geist)에 대하여 이해해야만 한다. 헤겔의 견해에 의하면 정신의 특징은 활동성인데, 활동성이란 자기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구분하여 타자로 정립시키고 이것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활동성이 곧 보편자의 특성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정신이다.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이 그 자신을 대상화시켜서 정립되는 타자는 곧 인간의 정신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정신은 보편적 정신의 현존 내지 존재 양식이 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정신이며, 인간은 정신의 활동에 대상이 되는데, 이러한 정신의 활동을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헤겔에게 있어서 인격은 하나님의 계시의 자리로서 정신적 인격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헤겔의 인격개념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객체의 타자성은 주체인 정신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인식과정의 한 계기에 불과하므로 개체들 사이에는 진정한 차이가 없게 된다." 따라서 본회퍼에 의하면 이러한 헤겔의 인격개념은 "내재된 정신(immanenter Geist)의 인격"이다. 따라서 헤겔의 변증법적 활동으로서의 정신적 인격은 하나의 추상적 형이상학적 인격이 되는 것이다.

 

 


본회퍼는 기독교적 인격을 명백하게 하기 위하여 먼저 철학적 인격개념과의 대화를 시작하였다. 인식론 이전(데카르트 이전)의 인격개념은 보편과 관계된 형이상학적 인격개념(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이거나 혹은 이와는 반대로 개별적인 인격개념(에피큐로스)으로 이해되어졌다. 그러나 인식론의 등장으로 인하여 진리의 기준이 내부적인 것으로 옮겨옴을 지적하고 인식론적 인격개념은 주관적이며 그리고 내재적인 것(데카르트, 칸트, 헤겔)으로 규정하고 있다. 주관적이고 내재적이어서 실체적인 인격개념에 이르지 못하는 이러한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corcurvum in se, 즉 자기 안으로 구부러져 있는 인간의 마음 혹은 자신 안에 갇혀 있는 마음 그래서 자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기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철학적 인격이해에 반하여 본회퍼의 기독교적 인격개념은 무엇인가? 먼저 본회퍼의 기독교적 인격개념에 대하여 언급하기 전에 인격에 대한 사회철학적, 사회학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사회학적, 사회철학적 접근을 통하여 인격개념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장 인격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

 

이 장의 목적은 인격을 사회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본회퍼는 이것을 통하여 "인간정신과 순수한 사회성(Sozialit t)"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격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를 위하여 본회퍼가 이해한 사회철학과 사회학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사회철학과 사회학으로부터 도출된 인격의 개방성과 폐쇄성, 객관적 정신 그리고 공동체적 유형을 이해하고자 한다.

 

 

 

1. 교회 사회학에 대한 교의학적 연구

 

본회퍼는 {성도의 교제}의 부제로 "교회사회학에 대한 교의학적 연구(Dogmatische Untersuchung zur Soziologie der Kirche)"를 덧붙이고 있다. 교회사회학에 대한 교의학적 연구란 모든 교의학적 기본개념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학적 접근을 통하여 교회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개념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현실(Realit t)의 영역 안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말하자면 교회의 개념은 연역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실재는 계시의 실재이며 신앙되거나 아니면 부인되는 것이다."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교회의 개념은 사회학이나 종교 사회학적 관점에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계시를 통해서만 적절하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회퍼는 교회개념이 오직 계시와 신앙의 영역에 국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부제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교회를 이해하기 위하여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하려는 것인가? 이것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교회의 본질이: 필자 첨가) 필연적으로 사회철학적이며 사회학적으로 논의되어 증명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전제되고 계시와 함께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즉 교회를 이해하기 위한 사회적 접근이 가능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계시가 교회라는 고유한 사회적 영역 안에서 성립되고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시와 사회적 영역의 종합은 교회의 본질구조에서 역사적 공동체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와의 일치, 즉 신학과 현상학의 일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위와 같은 조건 아래서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도의 교제는 기독교적 교의학의 기반 위에서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순수한 사회철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기본 이해가 유익하게 다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입장에서 본회퍼는 교의학의 연구를 위한 사회철학과 사회학의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본회퍼는 사회철학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사회철학(Sozialphilosophie)은 경험적 공동체에 대한 모든 지식과 의지 앞에 놓여있는 사회적인 특징(sozialer Art)의 궁극적인 관계에 대해 질문하고, 인간적인 정신성(Geistigkeit) 안에 있는 사회성(Sozialit t)의 근원에 대하여 질문한다.  . . . 사회철학은 순수한 인간 공동체의 근원적이고 본질적 특성을 지닌 학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사회철학은 경험적 공동체의 본질적인 특성 및 사회성의 근원을 다루는 학문이다. 계속해서 본회퍼는 사회학(Soziologie)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회학은 경험적 공동체들의 구조에 대한 학문이다. 경험적인 공동체의 생성법칙(Entstehungsgesetze)이 사회학의 고유한 주제가 아니라, 오히려 각각의 확립된 구조법칙(Strukturgesetze)이 사회학의 고유한 주제이다. 그러므로 사회학은 전혀 역사적이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조직적인 학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본회퍼에게 있어서 사회학은 공동체들의 구조에 대한 학문이다. 요약하자면 사회철학은 인간정신의 사회성(Sozialit t)에 대하여 질문하는 학문이여, 사회학은 경험적 공동체들의 구조에 대한 학문이다. 그렇다면 본회퍼가 사회철학적으로 그리고 사회학적으로 해석한 인격개념은 무엇인가?

 

 

 

2. 인격적 존재의 구조적 개방성과 폐쇄성

 

본회퍼는 먼저 언어를 통한 인격의 구조적 공개성과 구조적 폐쇄성을 언급한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인격의 구조적 공개성과 폐쇄성의 이해를 통해서 인격과 공동체의 근본관계가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가) 인격적 존재의 구조적 개방성

 

인간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표현(Ausdr cken)하고, 이해(Verstehen)한다. 이러한 자기표현과 이해는 인간의 언어(Sprache)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해야만 한다. 어떻게 언어를 통하여 인간은 서로에게 서로를 끝없이 표현하고 이해하는가? 만약 각각의 단어들을 듣는 자 혹은 읽은 자가 그 단어들에 대하여 잠정적으로 공통된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언어를 통한 서로의 표현과 이해가 가능한 것인가? 본회퍼에 의하면 언어를 통하여 서로간의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Natur)"때문이다. 이 본성 안에서 인간은 언어를 통하여 타자를 이해하고, 타자에게 표현하며, 타자에 의해 이해되어진다. 본회퍼는 이러한 본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양자 사이에는 하나의 조밀한 연대감(Verbundenheit)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정신은 본성 없이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고, 인간적 본성은 사회적 정신이 없이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은 하나의 사회적 정신이 있음을 나타내 주는 증거인데, 본회퍼에 의하면 언어와 더불어 인간 안에 놓여지게 되는 하나의 사회적 정신성의 구조가 "역사 속에서 활동하는 객관적 정신(objektiver Geist)"이다. 즉 객관적 정신 안에서 인간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서로에게 정신적 상호작용의 보편적 흐름과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는 것이다. 

 

 

본회퍼는 이러한 밀접한 관계를  "인격적 존재의 구조적 개방성(Die strukturelle Offenheit des personalen Seins)"이라고 규정한다. 결국 이러한 인격적 존재의 구조적 개방성은 인간의 정신이 사회성(Sozialit t) 안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인격적 개방성의 사고는 무인격적 정신의 사고로 전락될 위험을 안고 있지는 않는가? 또한 인격은 단순히 객관적 정신의 담지자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나) 인격적 존재의 구조적 폐쇄성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격적 개방성의 사고는 무인격적(apersonal) 정신의 사고로 변할 염려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왜냐하면 정신성의 시작과 더불어 자아는 하나의 둘러싸인 정신성의 바다 안으로 잠기며, 이러한 상황의 한가운데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회퍼에 의하면 '자아가 정신성의 바다에 있다'라는 것은 곧 자아가 '너'를 만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너'는 곧 '나'와는 다른 존재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서 '너'는 "폐쇄성(Geschlossenheit)"을 지닌다. 다시 말해 '자아가 정신성의 바다에 있다'라는 말은 '나'는 나와 다른 폐쇄성을 지닌 '너'와의 관계아래 있으며, 이러한 관계 아래서 '나'는 단순히 객관적 정신의 단순한 담지자(Reservoir), 수용조직(Reseptivorgan)일 수 없으며, 오히려 정확히 말하자면 거대한 관계 안에 있는 자발적 공동전달자(Mittr ger), 활동적 구성원인 것이다. 따라서 인격적 개방성은 상관적인 것으로서 폐쇄성을 동시에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개방성은 인격들의 "마주선 의지(viceverse Wille)"로서의 "분리성(Geschiedenheit)"에 기초하여 있는 것이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하면, 개별인격은 서로간의 상이함을 근거로 하고 있으면, 이러한 상이함을 사회학적 개념인 투쟁(Kampf)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이한 인격들의 투쟁 아래서 다른 인격은 간과되거나 거부되지 않는데, 이렇듯 투쟁 안에서 인격들은 그 자신 안으로 들어올 것을 강요하거나 혹은 다른 인격들을 극복하려고 한다. 이러한 상이한 인격들 간의 투쟁이 곧 사회적 종합명제(soziale Synthese)이다. 이러한 사회적 종합명제는 인류의 현실성(Realit t)이다. 그러므로 인격의 폐쇄성은 곧 "해체되지 않은 분리(unaufhebbarer Getrenntheit)"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위에서 고찰한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개별인격들은 객관적 정신으로 표현될 수 있는 사회성의 한 가운데 있다. 이 객관적 정신은 개별인격들을 넘어서서 존재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 객관적 정신은 너와의 관계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존재와 객관적 정신은 별개의 것이거나, 서로를 포함하고 있는 종속의 개념이 아니라, 균형적인 상황 속에 있으며, 이것이 곧 공동체의 본질이다.

 

 

 

3. 개별인격과의 관계 안에 있는 객관적 정신

 

우리는 위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여지는 하나의 정신적 구조를 객관적 정신(objektiver Geist)이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객관적 정신은 일반적으로 형상이 없는 것과 반대되는 객관화된 정신으로서, 또한 주관적 정신과는 반대되는 사회적 정신으로 이해되어졌다. 그러나 본회퍼는 지금까지의 객관적 정신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데, 객관적 정신은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을 연결할 뿐 아니라, 개인의 의지와는 동일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때에 따라서는 개인의 의지와 극히 상반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인격들은 이러한 객관적 정신을 인격 외부의 어떤 실재로서, 일상에서 경험되는 내용과 형식으로 개인에게 다가서며, 공동체 안에서 개인에게는 객관적으로 마주 서 있어서, 개인 행동의 조절원칙에 반대되는 것으로 다가선다.

 

 

그러므로 개인의 삶은 하나의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것 그리고 객관화된 존재의 서로 섞여있음이 된다. 그러므로 객관적 정신이 개별인격들의 개별적 삶을 이끌어 갈 뿐만 아니라, 객관적 정신은 순수하게 개인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객관적 정신은 단지 개별인격을 통해서만 실제적이 된다. 이러한 객관적 정신은 하나의 "형성물(Gef ge)"로서 존재하는데, 어떤 민족, 어떤 한 시기(혹은 시대)의 정신 혹은 하나의 구체적인 그룹(Gruppe)의 형태를 갖게 된다.

 

 

 

4. 사회적 공동체의 유형

 

위에서 객관적 정신은 하나의 형성물로 존재한다고 하였다. 객관적 정신이 인격들의 만남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결합된 의지의 상이함에 따라서 상이한 현상을 갖는다. 즉 결합의 특성, 즉 친밀함과 방종, 의지의 힘의 관계에 따라 객관적 정신은 유형이 다르게 나타난다.

 

 

퇴니스(F. T nnis)와 쉘러(M. Scheler)의 구분에 의하면 이러한 유형을 이중적인 구조로 나누고 있는데, 첫째로 의지들의 '함께 있음'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을 "의미의지(Sinnwillen)"라 규정하고, 둘째로 '함께 있음'의 최종적인 목표에 대한 매개가 되게 하는 것을 "목적합리적 의지(zweckrationalen Willen)"이라 규정한다. 본회퍼는 이러한 의지의 결합에 따라서 객관적 정신의 유형을 "공동체(Gemeinschaft)"와 "사회(Gesellschaft)"로 구분한다.

 

 

공동체(Gemeinschaft)는 '함께 있음'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으로서 삶의 공동체로 표현될 수 있으며, 왕성한 생명력에 의해 그 자체로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 이러한 공동체에는 가족, 민족, 교회가 속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사회(Gesellschaft)는 '함께 있음'이 최종적 목표의 매개가 되는 것으로, 이성적 행동의 연합으로 이익 안에서만 책임적 존재가 되며, 계약, 문서, 협정 등의 주식회사, 협회, 종파가 이에 속한 것이다. 공동체(Gemeinschaft)는 공동체적 인격의 연대감의 직접성을 띄고 있으며, 사회(Gesellschaft)는 사회적 인격의 연대감의 간접성을 띄고 있는데, 이것을 심리학적으로는 결합의 근접함(N he)과 방종(Lockerheit)으로 표현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장에서 인격들 사이에 하나의 사회성(Sozialit t)이 나타나며, 이 사회성이 곧 객관적 정신이다. 객관적 정신은 단순히 개인들과 동떨어져 있는 객체가 아니라, 오히려 개별인격들을 통해서만 구체화된다. 이러한 객관적 정신은 하나의 형성물로 존재하게 됨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형성물의 예로서 의지들의 결합의 상태에 따라 공동체와 사회로 나뉜다.

 

 

 

제4장 인격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우리는 위에서 철학적 인격개념을 결코 낯선 타자인 객체에 이를 수 없는, 즉 자기 안에 갇혀 있는 마음(corcurvum in se)이라고 규정하였다. 다시 말해서 낯선 타자인 객체는 주체에 의해 세워진 낯익은 객체로 전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념론적 객체는 주체에 있어서 어떠한 본질적 한계도 아니다. 이에 대하여 본회퍼에 따르면 낯선 주체에 실재적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오직 어떤 근본적인 한계(prinzipielle Schranke)"가 있어야한다. 그렇다면 이 "근본적인 한계"란 무엇인가?

 

 

 

1. 나-너 철학의 수용

 

본회퍼에 의하면 인격은 정체성이 아니라, 오히려 활동적인 성격을 가지며, 늘 새롭게 생산되어진다. 이러한 활동적 인격은 오직 구체적인 너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물론 여기에서의 '너'라는 개념은 관념론의 '객체'와는 다르다. 이 '너'는 곧 나에게 내재되어 있지 않고, 주체에 대하여 근원적인 한계를 가진 '너'이다. 그러므로 본회퍼는 이 '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는 관념론적 대상의 형식과는 달리 너는 주체의 정신에 내재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통하여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너는 주체에게 경계를 짓는다. 너는 자신의 의지의 활동으로부터 활동하며, 너는 주체와 부딪히게 된다."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너'는 본질적으로 나에게 근본적인 한계(prinzipielle Schranke)를 형성하며, 이러한 타자로서의 '너' 앞에서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와 너는 명백히 교체개념(Wechselbegriffe)은 아니며, 나와 너는 특유의 구별되는 경험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너는 개인(나)이 구체적인 것과 같이 "구체적인 너(konkretes Du)"이어야만 하고, 그러므로 이 구체적인 너는 인식론적 그리고 관념론적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의 형식은 나의 주체의 정신에 내재되어있지 않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여기에서 본회퍼는 인식론을 넘어서기 위하여 나-너 철학을 주로 그리스바하(E. Griesbach)로부터 수용하였다. 그러나 나-너 관계가 절대화될 경우 다시금 인격주의적 관념론에 빠질 위험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은 중요한 것인데, 왜냐하면 기독교적 인격개념이 철학적 인격개념과 다른 점은 나와 너의 관계에서 '당신'을 절대시하지 않으면서, 타자인 '당신'을 세우는 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격의 타자로서의 당신은 무엇인가?

 

 

 

2. 절대타자로서의 하나님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본회퍼에 따르면 너는 본질적으로 나와는 구분된다. 즉 너는 나에게 있어서 철저하게 타자로서의 자아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너는 나-너 관계에 있는 자아이든 아니든 간에 나에게 있어서는 불가해한 것이다. 이러한 불가해한 너는 나에게 있어서 '절대타자로서의 너'이다. 부버(M. Buber)는 전적타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대해서 완전한 타자(das ganz Anders)임엔 틀림없다.  . . . 그렇다. 하나님은 땅 위에 나타나서 우리를 거꾸러뜨리는 무서운 신비(Mysterium Tremendum)인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곧 인간과 세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분으로서의 하나님이다. 이것은 변증법적 신학의 특징이다. 즉 인간과 세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며, 인간은 "땅에"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 불연속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타자로서의 하나님만이 인격주의의 나-너로서의 '당신'을 절대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타자의 고유한 성격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타자: 필자주) 역시 하나님 개념에서 발견한다. 하나님은 침투할 수 없는 너이다. 인간에 대하여 하나님은 한계이다." 그러므로 인격은 너로서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안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인격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3.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인격

 

루터에 따르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논의하는데 있어서 두 가지 상이한 접근이 있을 수 있다. 그 하나의 방법은 철학적인 접근이며, 다른 하나는 신학적 접근이다. 철학적 접근은 인간을 실체적-존재론적(substanzontologisch)으로 보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을 실체적-존재론적으로 바라보는 철학적 인간론은 결국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왕복 운동을 거듭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곧 이원론과 일원론의 갈등구조 속에 놓이게 되었다. 인간론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접근과는 달리 신학적 접근은 하나님의 행동의 역사 안에 있는 인간을 보려는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이러한 신학적 인간이해는 '전인(totus homo)'적 인간이해이다.

 

 

에벨링(G. Ebeling)은 루터의 전인개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과 그분의 본질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행하신 것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알 수 없으며, 오히려 너로서의 하나님으로부터만 자신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행위로부터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다. 이것이 관계적 인간이해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행위를 창조, 타락 그리고 구속으로 구분하고 이러한 하나님의 행위와의 관계에서 인격을 파악하려 하였다. 이러한 루터의 전인적 인간이해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격 그리고 공동체 개념은 본래상태, 죄 그리고 화해의 개념을 통하여서 자세히 설명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격과 공동체 개념 모두 그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변증법 안에서만 극복되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본회퍼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행위와 관련하여 어떻게 인격을 이해하고 있는가?

 

 

 

 

 

가) 창조에 나타난 공동체적 인격

 

루터는 "인간에 관한 논제" 중 21번째 테제에서 원래 상태의 인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육체와 생령으로 구성되었으며, 태초에 죄 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고, 자손을 번식하고 모든 것들을 다스리며 영생을 받도록 규정되었다."

 

 

페터스(A. Peters)에 따르면 루터는 하나님의 형상(Ebenbildichkeit)에 대한 해석이 문자 그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루터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이전의 전통적 해석과 새로운 조직신학과 오늘날의 주석보다 더 강하게 인격적 파트너쉽을 언급한다. 루터에 따르면 인격적 파트너쉽이란 파괴될 수 없는 하나님과의 공동체성이다.

 

 

본회퍼는 이러한 공동체성을 "하나님의 공동체"와 "사회공동체" 두 가지로 구분한다. 즉 본회퍼는 창조의 성격을 공동체적 창조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창조 안에 나타난 인격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피조되었고, 하나님의 대화상대자로 부름 받은 인간을 의미한다. 이 인간은 하나님과의 단절 없는 교제 안에 있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창조상태의 인격은 공동체적 인격인 것이다.

 

 

 

 

나) 타락과 그리스도의 대리적 행위 안에 있는 공동체적 인격

 

본회퍼에 의하면 하나님을 반대한 불복종의 행위와 더불어 제3의 세력인 죄가 직접적인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체와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 사이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공동체와 인간의 공동체 사이에 분열(Ri )이 들어왔다. 이것이 타락의 상태이다. 본회퍼는 죄를 개별성과 보편성으로 나누고, 이 두 가지의 관계를 윤리적 집단인격으로 주목한다.

 

 

 

1) 윤리적 개별성으로서의 죄 - 홀로 슬퍼하는 죄인(peccator pessimus)

 

본회퍼에 의하면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하나의 정신적 자세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러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공동체가 사랑의 근거 위에서 발생하였다면, 인류의 타락과 더불어 이기주의(Selbstsucht)가 등장하였다. 이것으로 인해 인간 공동체가 깨어짐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하나님의 공동체의 깨어짐이 발생하였다. 이와 더불어 인간의 전체적인 정신적 자세는 하나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 . . 인간의 정신적 자세에 대하여 도덕과 종교 또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므로 타락의 특징은 첫 번째로 이기주의와 두 번째로 이기주의로 인한 윤리와 종교의 변화이다. 그렇다면 이기적이란 것은 무엇인가? 본회퍼는 이기적인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원래의 관계는 '주는 것'이지만, 그 원래적 관계가 죄의 상태 안에서는 순전히 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각각의 인간은 완전한 고립 안에 놓이게 되었다."

 

 

이기주의로 인하여 인간은 공동체를 벗어나 고립되게 되었다. 이러한 고립의 상태가 곧 "고독(Einsamkeit)"의 상태인데, 결국 고독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연합되었던 것이 파괴된 결과인 것이다.
계속해서 본회퍼는 윤리와 종교의 변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자는 또한 고유한 양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원래 상태에서 양심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타락과 더불어 아담은 선한 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악한 것인가를 처음으로 알았다."

 

 

그러므로 타락 이후의 인간의 고립된 상태, 즉 고독 안에서 양심이 발생하였고, 이 양심 속에서 신적인 율법이 들려지고, 자신의 고유한 죄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타락한 한 인간은 고독 안에서 신적인 율법이 들려지는 양심으로 인하여 '죄의 곤핍함이 끝없이 거대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끝없이 거대한 죄의 곤핍함을 인식하는 상태가 본회퍼에 의하면 "홀로 슬퍼하는 죄인(peccator pessimus)"의 상태이다.

 

 

홀로 슬퍼하는 죄인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가 파괴되어, 그 친교를 상실하여서 결과적으로 공동체에서부터 고립된 인간이다. 이러한 죄의 결과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현격한 분리의 상태가 발생하였는데, 본회퍼는 이러한 분리상태를 "윤리적 개체주의(ethischer Atomismus)"로 규정한다.

 

 

 

2) 죄의 보편적 성격으로서의 원죄

 

죄의 보편성은 죄가 인류 전체에 퍼져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기독교 교리에서는 죄의 보편성을 원죄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죄의 보편성에 대한 지적은 있으나, 원죄에 대한 지적은 없다. 특히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아담과 인류의 관계를 통하여 죄의 보편성을 말하고 있다. 즉 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 아담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인류로서 죄를 지은 것으로서의 죄의 보편성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죄의 보편성에 대해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바울로부터 하나님께서 한 사람 아담의 죄를 모든 인간에게 전가했다는 것과 이것은 죽음의 보편성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고 이외에는 더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죄의 보편성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 어떻게 죄의 보편성이 규정되는가에 대하여서는 주목하고 있지 않고 있다.

 

 


죄의 보편성이 생물학적 입장에서의 보편성을 지칭하지 않는다면, 본회퍼는 어떠한 입장에서 죄의 보편성을 주장하는가? 본회퍼에 의하면 이러한 죄의 보편성의 근거를 제공하는 이론이 원죄론이다.

 

 

"원죄론(Lehre von der Erbs nde)은 죄가 모든 인류에게 퍼져있다는 전제조건 아래서 타락의 상태(status corruptionis) 아래서 모든 인류가 연대감(Verbundenheit)과 공속(Zusammengeh rigkeit, 共屬)되어 있으며, 그러한 연대감과 공속의 특징에 대한 지식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본회퍼는 죄의 보편성이 개인의 죄와 함께 고려되어야하는데, 이러한 개인의 죄와 보편적 죄는 기존의 생물학적 종의 개념 아래서는 이해될 수 없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인의 죄와 죄의 보편성은 함께 생각되어져야만 한다.  . . . 생물학적 종의 개념 아래서 죄의 보편성을 이해한다면, 죄의 윤리적 참의미를 약화시키게 된다.  . . . 즉 기독교의 죄 개념은 생물학적 종의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다." 

 

 

본회퍼에 의하면 죄의 보편성은 생물학적 성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험적, 물리적 성격에 있다. 경험적, 물리적 성격으로서의 죄의 보편성이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죄로 인한 한 개인의 고독이 중단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고독이 더욱 심각하게 되어지므로 죄의 곤경이 무한히 크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가장 심각한 고독을 알게 됨으로써 죄의 가장 넓은 연대성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가장 심각한 고독을 알게 된 개인의 죄가 모든 인간의 죄가 소유하고 있는 실존적인 깊이를 뜻한다면, 죄의 실존적인 깊이는 죄의 세계적인 넓이와 일치한다. 마찬가지로 죄의 실존적인 깊이가 없이 죄의 세계적인 넓이가 생각될 수 없고, 죄의 세계적인 넓이가 없이 죄의 실존적인 깊이가 생각될 수 없다."

 

 

즉 개별적 죄의 인식은 죄로 인한 개별적인 극심한 고독의 경험적 물리적 체험이며, 죄의 보편성은 개별적인 죄의 물리적 경험의 보편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원죄론은 이해되고, 이러한 경험적, 물리적 성격으로서의 원죄론을 통하여 죄는 개별적일 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퍼져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죄와 더불어 모든 인류는 타락하였고, 우리들에게서부터 어떠한 죄도 원칙적으로 아담과 하와와 구별되지 않는다. 즉 각자는 '처음'의 죄인이다.  . . . 죄의 보편성은 개별적 죄 안에 있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함께 규정된다."

 

 

 

3) 윤리적 총체개념 - 죄인들의 교제(communio peccatorum)

 

우리는 위에서 죄의 개별적 성격으로서의 윤리적 개체주의와 또한 개별적 죄의 경험적, 물리적 보편적 성격을 나타내는 원죄의 개념을 통해 죄의 보편성을  살펴보았다. 이와 같이 개별적인 죄와 죄의 보편성의 밀접한 관련을 본회퍼는 "윤리적 집단인격(ethischen Kollektivperson)"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윤리적 집단인격개념을 이사야 40장 1절을 인용함으로써 뒷받침한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것은 '집단(Gesmmtheit)'이고, 개인으로서가 아니다.  . . . 범죄한 것은 개인이 아니고 백성이다. 이와같이 또한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것도 백성이다. 개인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과 같이 백성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여기서는 공동체가 참회하고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 부름은 '집합적 인격'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집단'을 강조함과 동시에 구체적 '개인'에게 또한 초점을 맞춘다.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동체의 들음과 참회와 믿는 것은 다만 개인 '안에서'만 일어난다. 이와 같을 때에만 그 부름은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에서 개인과 집단와의 관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개인 안에서 참회와 믿는 것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면, 집단이 믿고 참회한다는 것은 개인들의 종합으로서의 집단이 믿고 참회한다는 것인가?

 

 


본회퍼에 따르면 집단은 숫자적인 문제가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하여 창세기 18장 32절을 인용하면서 대답하고 있다. 본회퍼는 이 성서 구절에서 하나님이 한 사람 안에서 전 인류를 보고 화해한 것 같이, 개인들에게서 전 민족을 보고 있다. 그러므로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민족이 회개해야 한다면 얼마나 많은 민족이 회개를 해야 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백성들을 속죄하는 것처럼 간주할 수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민족은 실제적으로 결코 전체 민족이 아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안에서 전 인류를 보고 화해한 것 같이, 개인들에게서 전 민족을 보는 것이다.

 

 


본회퍼는 개인과 공동체와의 관계를 더욱 확장시켜 개인과 인류와의 관계에서도 적용한다. 모든 개인은 현실적으로 하나의 양심을 가지고 있다. 그 양심 아래서 모든 개인은 자신을 죄인의 교제(peccatorum communio)의 일원으로 인정한다. 이렇듯 철두철미하게 인간은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동시에 죄의 인류이다. 이러한 죄의 개인이며 죄의 인류가 아담이다. 아담은 개인이며 동시에 집단인데, 이것이 곧 아담의 본질이다. 이러한 아담은 곧 새로운 인류로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입장에서 대리(Stellvertretung)의 문제가 등장한다.

 

 

 

다) 그리스도의 대리적 행위 아래 있는 인격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죄는 인간을 깊은 고독 안에 그리고 신과 인간의 분리 안에 던져 넣는다. 이러한 고독과 분리 안에서 인간은 그가 최초의 죄를 저질렀음을 인식하게 되며, 이때 죄인의 교제, 곧 아담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와 같이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고 이제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루터는 "인간에 관한 논제" 중 23번째 테제에서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자유케 될 수 있고, (만일 그를 믿으면) 영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본디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 자유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생명과 거룩함과 공의와 지혜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일 수 있다."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금 회복하게끔 하는 이러한 행위가 곧 그리스도의 대리적 행위인데, 본회퍼는 그리스도의 대리적 행위에 대하여 주목한다.

 

 

"그러나 한 아담 안에 수 많은 아담들이 있으나, . . . 타락한 인류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일회적(ein f r allemal)으로 하나님과의 사귐에 들어갔다. 이러한 대리행동으로 인해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님이 되셨다."

 

 

즉 본회퍼에 의하면 아담의 행동과 그리스도의 행동의 비교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아담은 자기 중심적으로 행동했지만, 그리스도는 옛 인류의 새 인류로의 변화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아담은 이기적인 행동을 했으나, 그리스도의 행동은 하나의 대리적 행동인 것이다. 옛 인류의 경우 한 개인이 죄를 범할 때마다 전 인류가 항상 다시 타락했지만, 인류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일회적으로 하나님과의 사귐에 들어갔는데 이것이 곧 진정한 대리행위의 본질인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담은 하나의 집단인격이다. 옛 인류, 첫 아담에게 속해있음은 죄 안에 있음이다. 그리고 죄의식은 개별자에게 모든 죄와의 연관성을 나타낸다. 개별자가 아담의 인류에게 속해있음을 인식하는 동안, 개별자는 죄인의 공동체 안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이 인격의 본질이며, 이것이 곧 죄인의 교제(peccatorum communio)이다.

 

 

그러나 새로운 인류로서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처음으로 폐지되었다. 새로운 인류로서의 그리스도의 대리적 행위를 통하여 형성된 새로운 공동체가 곧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이다. 이러한 인격의 변증법적 실존방식은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인 것과 마찬가지로 죄인의 교제(peccatorum communio)이며 동시에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인 것이다.

 

 


본회퍼는 기독교적 인격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격주의의 인격개념을 수용하였다. 즉 나-너의 관계를 절대타자와 이 절대타자의 너, 곧 하나님의 너라는 관계구조로 수용하였다. 나-너 관계 안에서의 인격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 있는 인격인데,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 있는 인격이란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는 행위 아래의 인격이다. 이 행위는 창조, 인간의 타락, 그리스도의 대리행위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인격이란 창조, 타락, 그리스도의 대리적 행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계시하는 행위와 그 계시적 행위의 대상으로서의 인격이며, 죄인의 교제(peccatorum communio)인 동시에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이다.

 

 

 


제5장  결 론

 

지금까지 인격에 대한 철학적 이해, 사회학적 이해 그리고 기독교적 이해를 살펴보았다. 먼저 인격에 대한 철학적 이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학파, 에피큐로스학파, 칸트 그리고 헤겔의 인격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인격에 대한 철학적 이해는 데카르트와 칸트를 중심으로 하는 인식론을 전후로 하여 구분할 수 있다. 인식론 이전의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학파의 인격적 특징은 형이상학적 보편적 인격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인격은 개별과의 저편에 있는 보편에 참여함으로 비로소 인격이 되는 것이다.

 

 

스토아 학파의 인격적 특징은 윤리적 인격에 있으나 이 윤리적 인격 또한 본회퍼에 있어서는 형이상학적 인격에 속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스토아 학파의 윤리의 특징이 보편타당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편적인 윤리에 참여하는 인격만이 스토아학파에 있어서는 참된 인격이 되는 것이다. 에피큐로스학파의 인격개념의 특징은 역시 개별주의적 인격이라는 것에 있는데, 단지 자신만의 쾌락에 봉사하는 인격만이 참된 인격으로 규정되는 것이었다.

 

 


인식론의 등장과 더불어 인격개념 또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인식론 이전의 진리의 기준은 외부에 있던 사물과 내적인 인식의 확신에 근거하였는데, 인식론의 등장과 더불어 모든 인식의 근거를 나의 사고(Cogito)의 확실성에 두게 되었다. 칸트 또한 자신의 인식의 객관적 근거를 오성의 판단을 위한 범주의 선험성에 두고 있다.

 

 

그러나 헤겔은 칸트의 오성의 선험적 범주로는 물 자체(Ding an sich)를 인식할 수 없으며, 다만 결국 물 자체라는 것에 대하여 인식할 뿐, 물 자체의 내용에 대하여서는 전혀 알 수 없음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인식론에 있어서는 주체와 객체 사이에는 차이가 없으며, 객체는 주체에게 있어 오히려 낯익은 존재가 된다.

 

 

자신의 주관성 외에 다른 객체에 이르지 못는 이러한 칸트의 불가지론를 따르게 될 때, 하나님은 완전한 추상적인 것, 완전히 빈 것이 되며, 하나님은 인간과 그의 세계에 대하여 피안의 것이 되며, 하나님과 세계는 서로 서로를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론적 인격을 주관적 인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칸트의 주관적 인격이해를 비판하면서 헤겔은 인격의 주관성을 벗어나기 위해 정신적 인격의 활동성을 강조하였다. 헤겔에 있어서 하나님은 정신으로서의 하나님(Gott als Geist)이다. 정신의 특징은 곧 활동성인데, 활동성이란, 자기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구분하여 타자로 정립시키고 여기에서 형성된 것을 다시금 부정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신의 사유가 곧 보편자의 활동성이다. 즉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은 사유와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변증법적 활동을 통하여 스스로를 증명하여 나가며, 인간은 하나님이 그 자신을 대상화시켜서 정립되는 대상, 즉 계시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의 변증법적 활동은 주체인 정신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인식과정의 한 계기일 뿐이므로 헤겔의 변증법적 활동으로서의 정신적 인격은 하나의 추상적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따라서 헤겔의 인격개념은 내재적 정신적 인격개념이다.

 

 


본회퍼에 의하면 철학적 인격을 보편적이며, 주관적이며, 내재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철학적 인격개념의 주관적, 내재적 성격은 루터의 안으로 굽어드는 마음(corcurvum in se)의 의미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 안으로 굽어드는 마음이란 결국 자신 안에 갇혀 있는 마음, 그래서 자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마음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격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에서는 먼저 교의학적 개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의 정당성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이러한 교의학적 개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가 가능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계시가 그 고유한 사회적 영역 안에서 성립되고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본회퍼는 계시의 구체성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그러므로 계시의 현실성이 바로 교의학적 개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정당성 위에서 먼저 본회퍼는 사회철학과 사회학의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사회철학은 인간정신 안에 놓여있는 사회성의 근원에 대해 질문하는 학문이며, 사회학은 경험적 공동체들의 구조에 대한 학문이다. 특히 본회퍼가 받아들인 사회학은 짐멜(G. Simmel)의 계통사회학인데, 짐멜의 계통사회학의 특징은 사회학적 구조를 관계의 입장에서 발견하는데 있다.

 

 


본회퍼는 사회철학을 통하여 먼저 인격의 구조적 공개성을 발견한다. 즉 인격의 공개성은 언어의 현상으로부터 발견되는데, 타인과의 언어소통이 가능하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서 질문한다. 여기에서 언어현상을 가능케 하는 본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한 본성으로부터 나타나는 하나의 정신적 구조가 곧 객관적 정신이다.

 

 


그러나 인격의 공개성은 단순히 객관적 정신의 담지자로서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질문될 수 있으나, 인격의 공개성은 동시에 인격의 폐쇄성과 더불어 있음을 지적한다. 만약 사회학의 기본적 관계로서의 나-너의 관계가 동질성의 관계에 있다면 이것은 인격의 개념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일화의 개념으로 이끌어 갈 뿐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인격은 공개성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폐쇄성을 지닌 인격이다. 그러므로 두 의지가 만나는 곳에서 객관적 정신이 드러나게 되며, 또한 객관적 정신은 다른 사람과 연결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의지와 동일하지 않을 때도 있고, 심지어는 개인의 의지와 극히 상반되기도 한다.

 

 

본회퍼는 인격에 대한 사회학적 해석을 통하여 객관적 정신이 개별인격들의 개별적 삶을 이끌어 가며, 객관적 정신은 순수하게 개인으로부터 단절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정신은 단지 개별인격을 통해서만 실제적이 됨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 정신은 하나의 형상물(Gef ge) 즉, 유형으로 나타난다.

 

 


의지의 상이함 즉 객관적 정신의 상이함에 따라 그 유형도 다르게 나타나는데, 대표적 유형이 바로 공동체(Gemeinschaft)와 사회(Gesellschaft)이다. 공동체와 사회의 구분의 기준은 바로 의지 사이의 결합과 방종이다. 공동체에는 가족, 민족, 교회가 속하며, 사회에는 주식회사, 협회, 종파들이 속하는데, 공동체의 성격은 삶의 공동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으로서, 왕성한 생명력을 가지며, 사회는 이성적 행동의 연합으로 이익 안에서만 책임적 존재가 된다. 이러한 인격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는 객관적 정신의 실존적인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인격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에 있어서, 철학적 인격의 주관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먼저 나-너 철학의 받아들인다. 나-너 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바로 너의 성격인데, 이 너는 나의 정신에 내재해 있지 않고, 본질적으로 나와 구분되어 있으며, 특유의 경험내용을 가지고 있다.

 

 

본회퍼는 인격주의의 인격개념을 주로 에버하르트 그리스바하로부터 받아들이지만, 그리스바하가 나-너 관계를 절대시함으로 인해 다시금 인격주의적 관념론에 빠질 위험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인격이 철학적 인격과는 다른 점은 나와 너의 관계에서 '당신'을 절대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타자인 '당신'을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너의 성격을 곧 절대타자로 규정한다.

 

 


이러한 절대타자는 인간과 세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이다. 즉 인간과 세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며, 인간은 "땅에" 존재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단절, 불연속을 뜻하는 것이다. 인격은 너로서의 하나님과 나의 관계 안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앞에서 살펴본 인격의 폐쇄성과 같다.

 

 


너로서의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하나님이 자신을 보여주는 행위와 나의 관계를 의미한다. 인격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인간을 실체적-존재론적으로 보려는 것이라면, 이와는 달리 인격의 기독교적 이해는 하나님의 행위로부터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관계론적 인간 이해이다. 하나님의 행위로부터의 이해는 곧 창조, 타락, 구속의 행위로부터의 이해이다.

 

 


창조 속에 있는 인격의 특징은 곧 하나님의 공동체와 인간의 공동체로서의 공동체성이다. 그러나 타락과 함께 하나님의 공동체와 사람의 공동체는 파괴되었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본회퍼는 타락한 인간을 윤리적 개별성으로서의 죄와, 죄의 보편성으로서의 원죄를 설명함으로써 앞에서 언급한 개체와 공동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이 장에서 개별적 죄와 보편적 죄를 언급함으로써 죄를 지은 개인은 곧 인류의 죄 아래 있으며, 이것은 곧 첫 아담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구속 안에서의 인격은 곧 그리스도의 대리적 행위 안에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격인데, 첫 아담의 불순종의 행위와 두 번째 아담의 그리스도의 행위는 인격의 폐쇄성, 그리고 전적타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연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첫째로 본회퍼의 인격개념은 공동체적 인격개념이다. 인격에 대한 철학적 이해는 보편적 인격만을 논의하거나 혹은 자신의 주관성 안에서만 인격을 논의하는 결과는 낳게 되었다. 그러므로 철학적 인격개념은 구체적인 인격이 아니라, 오히려 형이상학적인 보편적이며, 주관적 인격일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본회퍼의 인격개념은 구체적인 개체와 보편이 함께 어울려 있는 것으로, 이것을 사회학적으로는 총체적 인격이며, 신학적으로 공동체적 인격개념이다.

 

 

둘째로 본회퍼의 인격개념은 관계적 인격개념이다. 본회퍼의 인격개념은 철학적 인격개념과는 달리 인격을 인격 그 자체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절대타자로서의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에서 바라보는 관계적 인격개념이다.

 

 

셋째로 본회퍼의 인격개념은 계시적 인격개념이다. 본회퍼는 인격을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서 이해하고 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서의 인격이란 하나님의 계시인 그리스도의 구속적 행위의 대상으로서의 인격을 뜻하는 것으로, 이것은 인격이 계시의 자리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회퍼의 인격은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본회퍼의 인격개념은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 있는 인격이며, 이러한 인격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성을 띄고 있으며, 이 공동체적 인격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한 하나님의 계시적 행동의 대상, 즉 계시의 자리이다.

 

 


그러나 본회퍼의 인격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본회퍼가 인격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를 위하여 가져온 사회학에 대한 이해는 그 당시 계통 사회학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이 계통 사회학의 특징은 고차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 사용에 있다.

 

 

본회퍼 역시 마찬가지인데, 논리적으로는 사회적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언제나 철학의 추상적 개념에 의하여 흐려져 있어서  인격에 대한 실존적 의미가 아니라 추상적 의미를 낳게 되는 위험을 안고 있다.

 

 


둘째, 인격의 공동체적 성격에 관한 것이다. 본회퍼는 철학적 인격을 비판하면서 인격은 구체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이 함께 어울려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격에 대한 이해는 오히려 인격을 추상화하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있다. 다시 말해 보편과 개체가 함께 하는 그러한 구체적 인격이 있을 수 있는가? 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셋째, 공동체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실존한다면 공동체의 인식이 곧 그리스도의 인식인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은 앞으로 계속적으로 논의되어야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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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기독교적 인격개념
- 본회퍼(D. Bonhoeffer)의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를 중심으로 -

박성민
계명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지도교수 오 우 성)
(초록)

 

 

 


본 논문은 본회퍼의 박사학위 논문인 Sanctorum Communio에서 나타난 인격개념을 이해하는 것에 있다. 본회퍼는 인격개념의 특징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첫 번째는 인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인격 그 자체로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인격을 논의하는데 있다. 즉 관계론적 인격이해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인격을 사회학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에 있다.

 

 

이것은 Sanctorum Communio의 부제인 교회사회학에 대한 교의학적 연구(Eine dogmatische Untersuchung zur Soziologie der Kirche)라는 부제목에서도 나타나 있다. 본회퍼에게 인격개념은 루터의 인격개과 그 구조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루터에 있어서 인격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Deus absconditus)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계시의 자리로서 인격을 말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간이 알 수 없고 감당할 수 없으므로 하나니은 인간을 위해 자신을 구체화, 육체화, 인간화시킨다. 이렇게 하나님이 자신을 구체화할 때 루터는 인격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러한 루터의 인격개념과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본회퍼는 자신의 인격개념을 전개시켜 나간다. 이 논문에서 본회퍼의 인격개념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2장에서는 본회퍼가 말하는 철학적 인격개념을 이해하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에피큐로스학파, 칸트 그리고 헤겔이 말하는 인격개념을 이해함으로써 철학적 인격이해를 시도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는 철학적 인격개념이 무엇이며, 또 그 한계가 무엇인지를 다룰 것이다.

 

 


3장에서는 본회퍼가 말하는 인격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를 다루려고 한다. 언어를 통한 인격의 존재적 개방성과 폐쇄성 그리고 객관적 정신과 공동체의 유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4장에서는 본회퍼의 기독교적 인격에 대하여 다루고자 한다. 기독교적 인격이 철학적 인격과 비교할 때 어떻게 다른 것인지, 그리고 기독교적 인격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다루게 될 것이다.

 

 


위와 같은 연구 작업에 의해서 그의 신학적 작업에 대한 결론을 5장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할 수 있었다.
먼저, 본회퍼가 인격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시도하려는 것은 이러한 철학적 인격이해를 통하여 기독교적 인격개념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본회퍼가 인격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다룸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이 있는데, 즉 데카르트와 칸트를 중심으로 한 인식론이 그것이다. 본회퍼는 이러한 인식론은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주목하였다.

 

 

이러한 인식론적 입장에서의 인격이해는 곧 주관적, 내재적 인격이해라 규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식론의 근거인 Cogito가 곧 사고의 주관성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적 인격이해는 구체적이며, 공동체를 함축하고 있는 인격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인격에 대한 주관적 이해는 곧 루터의 corcurvum in se, 즉 자기 안으로 굽어드는 마음이라는 명제의 재해석이라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사회학적 인격이해를 다루기에 앞서 본회퍼는 교의학적 개념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의 정당성에 대하여 질문하는데, 이러한 사회학적 이해가 가능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가 교회라는 사회적 영역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격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에 있어서 먼저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곳에서는 하나의 정신적 구조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정신적 구조가 곧 객관적 정신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 정신은 하나의 형성물(Gef ge)를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형성물은 인격들의 결합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게 된다. 본회퍼는 이러한 형성물을 퇴니스와 쉘러의 이해를 따라서 공동체(Gemeinschaft)와 사회(Gesellschaft)로 구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적 인격이해는 철학적 인격이해와의 비교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위에서 철학적 인격이 주관적, 내재적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인격의 시작은 주관적, 내재적 인격에 대하여 한계를 지적해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한계는 곧 절대타자로의 하나님이다. 이러한 절대타자로서의 하나님을 너로 규정하는 나-너의 관계에서부터 기독교적 인격은 출발한다. 절대타자로서의 너는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 속에서 존재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창조, 타락, 구속의 변증법적 역사 안에서 드러난다.

 

 

이것이 관계론적 인격이해인데, 이러한 관계론적 인격이해는 루터의 인격이해와 그 구조가 동일하다. 루터는 이러한 관계론적 인격이해를 전인(totus homo)적 이해라고 하는데, 전인적 이해 또한 창조, 타락, 구속의 변증법적 역사 안에서 인격을 이해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본회퍼의 인격개념은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 있는 인격이며, 이러한 인격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성을 띄고 있으며, 이 공동체적 인격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한 하나님의 계시적 행동의 대상, 즉 계시의 자리이다.

 

 


그러나 본회퍼가 주장한 인격 개념의 문제점도 제시된다. 본회퍼는 철학적 인격개념을 비판하면서 구체적인 인격과 보편적인 인격이 함께 어울려 있는 인격의 공동체성 내지 사회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격이해가 오히려 인격개념을 추상화하는 결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본회퍼는 인격을 '공동체로 실존하는 그리스도'로 지칭하는데, 여기에서 개인의 실존적 인격의 문제가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보편과 개체가 함께 하는 구체적 인격이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Der christliche Personbegriff von D. Bonhoeffer
- "Sanctorum Communio" von D. Bonhoeffer -

Park, Seong-Min
Department of Theology
Graduate School
Keimyung University
(Supervised by Professor Oh, Woo-Sung)
(Abstrakt)
Dieser Artikel zielt darauf, da  man ein Personbegriff in Sanctorum Communio von D. Bonhoeffer verstehen will. Seiner Merkmal des Personbegriff zeigt sich zwei Arten: Wenn er diesen Begriff versteht, beschreibt er diesen Begriff nicht als Person selbst sondern als Person in Zusammenhang mit Gott. Das hei t die Person unter der Beziehung. Und er interpretiert diese Person als soziale Person. Diese Interpretation zeigt sich "Eine dogmatische Untersuchung zur Soziologie der Kirche" in Nebentitel seines Buches. Seines Personbegriff ist  hnlich wie Luthers Personbegriff. Denn Luther sagte, da  die Person ein Platz der Selbstoffenbarung von Deus absconditus ist. Weil der Mensch Deus absconditus nicht erkennen kann, personalisiert Gott sich, und verk rprt Gott sich selbst. Luther benutzt diesen Begriff, nach dem Gott sich selbst verk rprt. Bonhoeffer entfaltet diesen Personbegriff mit Luthers Begriff. In diesem Artikel untersuchen wir seinen Personbegriff mit drei Teilen.
In 2. Abschnitt wollen wir Bonhoeffers philosophischen Personbegriff verstehen. Indem wir Personbegriff von Aristoteles, Stoa, Epikuros und Kant, Hegel verstehen, untersuchen wir, was der philosophische Personbegriff ist. Also es handelt sich in diesem Abschnitt darum, was die Grenze des Personbegriffes ist.
In 3. Abschnitt wollen wir seinen sozialen Personbegriff untersuchen. Auch wir wollen existenziale Offenheit und Verschlossenheit der Person mit der Sprache, objektiven Geist und Form der Gemeinde forschen.
In 4. Abschnitt wollen wir christliche Person untersuchen. Dann wir wollen diese Person vom philosophischen Personbegriff unterscheiden. Und dann wollen wir erkennen, was diese christliche Person bedeutet.
Deshalb haben wir seine theologische Werk zur Folge gehabt. Dann k nnen wir in 5. Abschnitt folgendma en beschreiben:
Zuerst, Da  Bonhoeffer philosophischen Auffassung vom Personbegriff untersuchen wollte, wollte er der christliche Personbegriff klar machen. Die Mitte seines philosophischen Auffassung ist Epistemologie von Decartes und Kant. Er h lt diese Epistemologie f r  den neue Gesichtpunkt von Gegenstand. In dieser epistemologische Stellung wird der Personbegriff als Verstand der subjektiven innerlichen Person bestimmt. N mlich ist Cogito als  Grund der Epistemologie die Subjektiv des Denkens. Darum kritisiert er, da  der philosophische Personbegriff die konkretiv die Gemeinschaft enthaltende Person nicht erweitern kann. Das subjektive Verstand von Person ist Interpretation  ber corcurvum in se von Luther.
Zweite, Bei dem Verstand vom sozialen Personbegriff fragt er an der Richtigkeit des sozialen Verstandes vom dogmatischen Begriff. Die M glichkeit dieses sozialen Verstandes besteht aus Kirche als sozialen Bereich, in der die Offenbarung Jesu Christi erf llt wird. Er behauptet, da  eine geistliche Struktur ein objektive Geist ist. Und sie entsteht aus Begegnung zwischen der Person und anderer Person. Auch dieser objektive Geist hat eine Gef ge. Und diese Gef ge zeigt sich anders nach dem Zustand der Verbindung zwischen der Person und anderer Person. Nach dem Verstand von F. T nnis und M. Scheller unterscheidet er diese Gef ge als Gemeinschaft und Gesellschaft
Zuletzt, Das Verstand der christlichen Person besteht aus dem Verstand der philosophischen Person. Vorher wird die philosophische Person die objektive innerliche Person bestimmt. Deshalb besteht die christliche Person aus der Frage: Was ist die Grenze der objektiven innerlichen Person. Darum ist diese Grenze Gott als die ganze Andere. N mlich kommt die christliche Person aus dem Gott als Du bestimmten Ich-Du-Beziehung. Du als die ganze Andere ist in seinem sich selbst enth llenden Akt. Dieser Akt wird in der dialektischen Geschichte der Sch pfung, des Verfall und der Vers hnung sichtbar. Es ist das Verstand der Person unter der Beziehung zwischen Gott und Mensch. Dieses Verstand ist  hnlich wie Struktur des Personbegriffes von Luther. Luther versteht den Person unter der Beziehung als totus homo. Er fa t auch dieses Verstand in dialektischer Geschichte der Sch pfung, des Verfall und der Vers hnung auf.
Deshalb wird der christliche Personbegriff f r Bonhoeffer als den Gegenstand des Gottes Aktes, d.h. Offenbarungsplatz und wesentlich Gemeinschaftlichkeit aufgefa t. Zum Schlu  ist der christliche Person das Offenbarungsplatz Gottes, das Christus als existierende Gemeinschaft ist. Darum kann die christliche Person f r Bonhoeffer die Kirche als das Offenbarungsplatz verstanden werden.
Bei diesem Artikel handelt es sich um den Personbegriff von Bonhoeffer. Indem er an den philosophische Personbegriff kritisiert, behauptet er die Gemeinschaftlichkeit oder Sozialit t der Person in Zusammenhang mit konkreter und universaler Person. Aber es gibt ein Problem, da  sich diese Auffassung von der Person den Personbegriff f r Abstrahieren der Person handelt. Denn er nennt die Person 'Christus als existierende Gemeinschaft'. Hier wird  das Problem existenzialer Person im Individuum schw chert. N mlich stellt es sich die Frage, wie die konkrete Person mit der Universalit t und dem Individuum ohne Christus existi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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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계시현상의 실체적 해석학
(D. Bonhoeffers Hypostatische Hermeneutik der Offenbarungsph nomen)

 

김 재 진


(Dr. theol. 전 계명대학교 교수, 현 케리그마 신학연구원장)

 

출처: 케리그마 신학연구원(http://www.kerygma.or.kr)

 

 

 

I. 하나님 말씀의 원문(Urtext)인 예수 그리스도

 

 

디트리히 본회퍼(D. Bonhoeffer, 1906-1945) 신학의 특성은 해석학적 전망에 따라서 학자마다 다르게 강조되고 있다. 박봉랑 교수는 본회퍼 신학의 특성을 "基督敎의 非宗敎化"라고 특징지어 말한다. 그러나 본회퍼 신학의 특성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그 강조점에 있어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박재순 박사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본회퍼의 신학을 하밀톤(W. Hamilton)과 필립스(John. A. Phillips)는 세속화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뮐러(Hanfried M ller)는 맑스주의적으로, 몰트만(J. Moltmann)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리적 사역으로 해석하였다.

 

 

그린(Clifford J. Green)은, 본회퍼가 복음을 사회학적으로 전개하였다고 보고 있으며, 파일(Ernst Feil)은, 본회퍼의 신학이 그리스도와 세상에 대한 이해로 일관성있게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베트게(Eberhard Bethge)도, 본회퍼의 신학은 계시의 구체성을 강조하는데 있어서 수미일관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본회퍼 신학에 관한 연구는 최근 트로비취(M. Trowitzsch), 파일(Ernst Feil) 그리고 크뢰트케(W. Kr tke)에 의해서 사회학 뿐만 아니라, 해석학과 철학적 차원에서 새롭게 연구되고 있다.

 

 

본회퍼 신학에 대한 이러한 최근 연구는 본회퍼 신학의 철학적 혹은 해석학적 근거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회퍼가 교회와 역사 속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자유로운 계시행위를 칸트적 선험철학과 헤겔적 관념철학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존재론적으로 전개하게 된 해석학적 방법을 분석해 보고자 하는 연구이다.

 

 

왜냐하면 본회퍼의 초기 작품인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 1927}와 {행위와 존재(Akt und Sein), 1930}의 해석학적 방법은 당시를 지배하고 있었던 독일의 위대한 두 철학자 칸트(I. Kant)와 헤겔(G.W.F. Hegel) 철학을 신학적으로 종합한 저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본회퍼는 여전히 칼 바르트(K. Barth)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개신교 신학의 핵심적 주제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봉랑 교수는 바르트의 신학이 본회퍼에게 미친 영향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본회퍼는 초기 바르트의 하나님 말씀의 神學을 따라가면서도 ('성도의 교제') 계시의 초월적인 행동과 위기의 지나친 강조에 대해서 계시의 존재의 면으로 억제하고('행위와 존재에서'), 계시의 객관적인 권위성의 위험에 대해서 계시의 세상적인 언어를 강조 했지만('옥중서간') 본회퍼는 '종교적' 인간의 인간학적 가능성으로부터가 아니고, 인간에게 오고 인간에게 말함으로써 행동하는 하나님의 현실로(예수 그리스도: 필자 주)부터 신학을 세우는데 있어서, 다시 말해서 그의 신학의 구조와 골격, 그리고 방법론에 있어서 본회퍼의 신학은 항상 바르트의 신학이었다." 
     


이러한 박봉랑 교수의 해석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본회퍼 신학에 대한 해석학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본회퍼가 그리스도론적으로 안내된(christologisch orientiertes) 말씀의 신학 내지 계시의 신학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학자들마다 공통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봉랑 교수의 본회퍼 해석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정당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제기된다: 어떠한 근거에서 본회퍼의 신학이 그리스도론적으로 안내된  말씀의 신학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변의 일환으로서 트로비취(M. Trowitzsch)는 본회퍼의 해석학에 대한 10가지 중요한 명제를 제시하였다.

 

 

그 첫 번째 명제에 의하면 "근원적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 이해되어져야 하는, 필연적인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이와같이 트로비취가 이해하고 있는 본회퍼의 해석학적 명제는, 본회퍼의 해석학이 철저히 기독론적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더 자세히 말하면 본회퍼는 "신학의 대상은 그 자체의 대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교회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이 말씀, 곧 성서의 원전(Quelle), 혹은 최초의 본문(Urtext)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으로 본회퍼는 본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격적인 말씀이다. 바꾸어 말하면 본회퍼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선포되고 있는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적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설교자는 분명히 말씀을, 곧 십자가에 달리신 분에 관한 말씀을 회고해야하고, 그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설교자의 회고에는 오로지 신적인 사건에 대한 '회상(Ged chtnis)'에서 나온 일반적인 '문장들'과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씀들을 설교자는 따라 말할 수 있고(nachsprechen), 그러나 그리스도인격(Christusperson)의 살아있고 창조적인 말씀 자체를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예수가 성서 텍스트와 설교자에 의해서 선포되는 말씀의 원본문(Urtext)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의 존재는 단순히 육신으로 살았던 33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자의 말씀 속에 존재하게 되고, 더 나아가 그 말씀이 실현되는 곳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본회퍼가 하나님의 말씀의 세가지 형태, 더 자세히 말하면 '설교'와 '성서'와 '예수 그리스도' 속에는 "그리스도의 인격(Christusperson)"이 계시되었다고 봄으로서 말씀을 존재론적으로 해석한다. 왜냐하면 본회퍼에게 있어서 존재(ist)는 단지 "있음(es gibt)"이 아니라 "행위(in Akt)" 속에서 인식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격은 행위를 통하여 인식되어지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 곧 로고스(     )라는 것은 본회퍼의 {그리스도론(Christologie), 1933}에서도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자유 안에서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왜냐하면 인간도 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말씀하시는 로고스 안에서 인간과 만나시기로 결정하셨다. 인간의 로고스 안으로 하나님의 로고스가 들어오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인격 속에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더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의 인격적인 말씀"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격적인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교회의 말씀, 곧 설교 속에 실존(existieren)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포된 말씀으로서 현존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는 설교 속에 현존한다.

 

 

바꾸어 말하면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재 형태(Daseinsgestalt)"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설교 속에 현존한다는 것은 그가 "객체적 말씀"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주체, 곧 "...에게 말씀을 건네는 분"으로 현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설교를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설교는 전적으로 인간의 말이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인격적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본회퍼 해석학은 말씀의 세가지 형태 속에 현존해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본회퍼의 성서 해석학은 곧 그리스도론이다.    

 

 

 


II.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

 

본회퍼에 의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자기 자신 곁에 머물러 있는(Beisichselbstbleiben) 분이 아니라, 즉 독자적으로 현존해 계신(Aseit t) 분이 아니라, 자기출현(Aussichheraustreten)을 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현존한다는 것(Gott ist da)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인간의 "비대상성(Nichtgegenst ndlichkeit)"으로, 즉 인간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로 계신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Kirch) 안에 있는 당신의 말씀 안에서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fa bar)" 분으로 계신다는 것을 뜻한다.

 

 

더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은 교회 안에 있는 "말씀과 성만찬"을 통하여, 그리고 인간과 스스로 맺어진 "계약(Bund)"을 통하여 자기를 인간에게 계시하신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은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말씀의 선포행위 가운데 현존해 계시다는 것을 뜻한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성서와 설교와 성만찬을 통한 사귐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자유 속에서, 곧 "역사적인 인간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얽어매는 그러한 자유(in dem Frei-sich-gebundenhaben) 속에서 그리고 인간의 처분에 내어 맡겨진 자신(in dem Sich-dem Menschen-zur-Verf gung-geben) 속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본회퍼는 바르트(Barth)의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주체성 개념을 수용한다:

 

 

 

"하나님은 항상 주님(Herr)으로, 항상 주체로 머물러 계신다. 그래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대상으로 갖고자 하는 자는 결코 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그 분은 항상 '오고 계시는(kommende)' 분이시지, 결코 '현존하시는(daseiende)' 하나님이 아니다"

 

 

이에 상응하게 하나님의 말씀도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본회퍼는 하나님 말씀의 자유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의 자유는 명백한 신학적 진술들로 인하여 구속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의 자유는 오히려 그러한 진술들은 두 가지로 쪼갠다. 그래서 신학적 진술들은 단지 '비판적 유보' 아래 있을 뿐이다."

 

 

이러한 바르트(K. Barth)의 하나님 말씀의 자유 개념에 덧붙여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르트의 모든 신학적 명제들은 필연성, 곧 내가 하나님에 관하여 언설(reden)하는 곳에서는 (왜냐하면 내가 그 분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분을(Nicht-Gott)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내가 신앙하고 있는 나(Ich)에 관하여 언설하는 곳에서는 내가 아닌 나를(Nicht-Ich) 이야기하고 있다는 필연성에 기초해 있다."

 

 

이 말은, 인간은 하나님을 객관적 대상으로 증언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인식과 증언의 객체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스스로 자유롭게 우리들에게 말씀을 걸어오고,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말하게 하심에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제기된다: 기록된 말씀이나 교회에서 선포되고 있는 설교의 말씀은 무엇인가? 본회퍼에 의하면 교회 안에서 선포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자유의 말씀"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즉 "설교자가 '말씀들' 그리고 성서의 '문장들'을 '순수한 가르침(reine Lehre! recte docetur)'으로 정확히 설명되는 곳에서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인격(Christusperson)이 그 말씀 속에서 증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선포되는 모든 말씀이나 성서에 기록된 말씀의 주체는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상의 분석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은, 본회퍼는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순수한 계시행동으로부터 존재개념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본회퍼는 자신의 기독론 강의에서 "기독론의 대상은, 그리스도가 인격이라는 것 속에서 그 대상의 초월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되는 로고스(Logos)는 하나의 인격이다.

 

 

그래서 이 사람은(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킴: 역주) 초월하신 분이다." 이제 여기서 더 없이 분명해진 것은, 본회퍼는 해석학적 대상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나 "선포"를 "문자" 혹은 "문장"이나 "말씀"으로된 객관적인 말씀으로 이해하지 않고, 주관적 내지는 주체적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로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회퍼의 해석학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구체적인 인격을 취하는 실체적인 의미(hypostatischen Sinn)를 갖는다.

 

 


III. 말씀의 행위로서의 인격개념(Personbegriff als Akt des Wortes)

 

본회퍼에게 있어서 인격(Person) 개념은 결코 철학적 개념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인격은 우주적 이성(理性)에 참여하고 있는 한에서만 인격이고, 스토익(Stoic) 학파에 있어서 인격은, 인간이 더 높은 의무에 복종함으로써 인격체가 된다.

 

 

그리고 헤겔에게 있어서 인격은 그것이 정신(Geist)인 한에서 인격이다. 따라서 본회퍼는 철학자에게서는 진정한 인격 개념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철학자들은 동일한 차원에서 인간 이성을 우주적 이성 혹은 절대정신과 형이상학적으로 결합시키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철학적 인격 개념은 사고의 원리에 있어서 무시간적(無時間的)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따라서 본회퍼에게 있어서 인격은 무시간적으로 보편적 이성이나 정신에 참여 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타자(他者)에게 내어주는 행위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본회퍼는 "오로지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Akt) 속에서 만이 인격은 '존재한다(ist)'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격은, 인격이 자신을 내어주는 자로부터 자유롭게 '존재한다(ist)'"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격이해는 그리스도인격(Christusperson)을 통하여 획득된 것이고, 단지 그리스도 안에 기초한 기독교적 교회의 인격적 사귐(Persongemeinschaft)에서만 유효한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적인 인격 개념은 하나님과 인간의 절대적 구별 속에서 신적 인격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본회퍼는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회퍼에게 있어서 인격 개념은 우선 기독론적, 교회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본회퍼에게 있어서 자신을 타자(他者)에게 내어주는 행위는 곧 계시행위이다. 역으로 말하면 계시는 순전히 행동과 관련해서 해석되어야 하는데, 그 "행동은 곧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자세히 말하면 신적 로고스가 인간에게 주어지고, 그 신적 로고스를 신앙적으로 수용하는데서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사귐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듣고 결단하고, 그 말씀에 대하여 도덕적 책임을 지는 행동 속에 인격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본회퍼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고 있는 자(예수 그리스도: 필자 주)에게와, 이렇게 자신을 계시하고 있는 자의 말을 듣게된 자(Geh rtwerden)와 믿게된 자(Geglaubtwerden)에게 비종속적(unabh ngig)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상응하게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 인격을 통한 사회적 관계차원에서 인격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간이 존재자(Seiender)로서 자연스럽게 지속해서 속해 있는 사물세계(Dingwelt)에서 나온 다른 사람은 그리스도 인격(Christusperson)을 통하여 사회적 인격 영역(Personsph re) 속으로 되돌아간다. 따라서 이웃(der N chste)은 나의 실존 저편에서 나에게 절대적인 방법으로 주장하고, 나에게 주장하고 있는 자로서 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로서 만난다."

 

 

 

그런데 말씀을 통한 계시행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사귐은 무엇보다도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책임감있게 결단하고 응답하는 신앙의 행위 속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사귐의 말씀은 설교와 성만찬이고, 이를 실행하는 것은 신앙과 사랑이다." 따라서 본회퍼에게서 인격은 계속적으로 시간 안에서 일어나고 지나가는 교회의 사건 속에 현존하며, 사회적이고 윤리적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를 나의 인격적 대상으로, 곧 나보다 능력있으니 나의 주님으로, 나를 화해시키시고 구원하시는 나의 주님으로 '가지고 있다(habe)'"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신적 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로고스에 대항하는 대립된 "로고스(Gegenlogos)"가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구체성 속에서 계시의 존재는 '공동체로 실존하고 있는 그리스도'로 생각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회퍼에게 있어서 "신앙 인식의 대상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그리고 신학적 인식의 대상도 선포된 말씀이다." 따라서 사귐을 위한 계시는 인격의 의미를 가지며, 인격은 계시된 존재가 된다.

 

 

본회퍼 자신의 말을 빌리면: "대상적인 것과 비대상적인 것 사이를 떠돌고 있는 계시존재는 '인격',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의 계시된 인격이고, 인격의 사귐인데, 인격의 사귐은 하나님의 계시된 인격을 통하여 정립된다."

 

 


결국 본회퍼에게 있어서 말씀은 계시의 매개체, 바꾸어 말하면 인격적 사귐의 매개체이다. 왜냐하면 계시를 통하여 인격적 사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회퍼에게 있어서 말씀은 단지 사귐의 매개체만으로, 혹은 계시의 매개체 만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씀 그 자체가 인식의 대상, 곧 화육되어 인격적 사귐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유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내어주시는 행동이 곧 하나님의 계시이며, 이것이 계시의 사건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안에서 선포되어지는 로고스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존재이다. 따라서 본회퍼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 속에 현존한 살아있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회퍼에 의하면 인격적인 하나님의 로고스가 인격적 사귐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 화육되는 사건은 단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과 지속적으로 사귐을 갖기 위해서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과 성만찬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그리고 연속해서 화육하신다. 이것이 바로 본회퍼에게 있어서 "계시의 연속성"이다.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의 연속성 속에 있는 인격적 사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계시의 존재는 과거 단 한번 일어났던 사건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의 옛(alt) 혹은 새로운 실존(neu Existenz)과 무관하게, 근본적으로 자기 마음대로 처신할 수 있는 존재자(Seinenden)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계시의 존재가 또한 그 때 그 때 개개의 실존을 의미하는 단지 항상 자유롭고, 순수하고, 비대상적인 행동(Akt)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계시의 존재는 오히려 인격들의 사귐(Gemeinschaft), 곧 그리스도의 인격에 의해서 결성되고 그 인격 안에 닫혀있는 사귐, 그리고 개개인이 새로운 실존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사귐의 존재(das Sein der Gemeinschaft der Personen)'이다(ist)'."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현존하는 "계시의 존재(Das Sein der Offenbarung)"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된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이외에 다른 분이 아니다. 그래서 본회퍼에 의하면, 하나님은 항상 계시의 "주님(Herr)"과 말씀의 "주체(Subjekt)"로 머물러 계신다. 따라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인식의 대상 곧 객체로 간주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대상 곧 객체(Objekt)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회퍼는 "현존하고 계시는(der daseinde Gott)"이 아니라 바르트(K. Barth)의 "오고 계시는 하나님(der kommende Gott)" 개념을 수용한다. 왜냐하면 본회퍼는 계시를 "우발적인(kontigent)" 것으로 보고, "우발적인" 것이란 곧 "미래적인" 것이고, "자유로운"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간단히 다음과 같이 종합할 수 있다: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의 존재는 말씀의 성육신 사건에서 비로소 계시된다. 그런데 본회퍼는 말씀의 성육신 사건을 낮아진 그리스도로 해석한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되신 하나님말씀(신적 로고스)의 실존양식이다.

 

 

이러한 신적 로고스의 화육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사귐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말씀의 행위는 인격적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말씀의 인격적 개념은 나-당신의 관계 혹은 주-객 관계의 도식 속에 있지않다. 왜냐하면 신적 고로스가 인간적 로고스 속으로 화육됨으로서 스스로 인격적 사귐의 대상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귐의 대상이 아니라, 오로지 대상이 되어주심으로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주체적 대상성이다. 이와 상응하게 화육된 신적 말씀에 대한 해석도 내가 듣고 인식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 이해하도록, 깨닫도록 해 주심으로서 비로서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다. 인격적 사귐의 주체는 교회로 현존하는 화육된 말씀 그 자체이다. 이러한 말씀의 행위 속에 인격은 존재한다.

 

 


V. 말씀의 실체적(hypostatische) 해석

 

본회퍼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인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 1927, 1930}에서 교회를 사회학적으로 해명하고자 한다. 이 논문의 부제: "교회(혹은 공동체: 필자 주)로 존재하는 그리스도(Christus als Gemeinde existierend)"가 암시하는 바와 같이, 그는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장소로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교회를 하나님의 계시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das Sein)로 이해한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피안의 세계에, 곧 우주공간에  형이상학적으로 현존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혹은 신앙 공동체"라는 구체적 장소에 실제적으로 현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이 제기된다: 어떻게 교회가 하나님 계시의 존재 곧 예수 그리스도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본회퍼의 말씀의 "비종교적 해석"으로 대신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회퍼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개념, 이념 혹은 교리로서가 아니라, 사건 속에 그 현실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말씀의 "비종교적 해석"이란 어떠한 것인가?

 

 


우선 본회퍼에게 있어서 말씀의 "비종교적 해석"이란 그리스도적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본회퍼의 "비종교적 해석"은, 바르트가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일반종교의 신(神)을 예리하게 구별하는데서 착안을 얻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바르트가 성서를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확산시킨 것이 바로 "말씀의 혹은 성서저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이라고 바꾸어 쓸 수 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내지는 그의 말씀을 "성인이 된 세계(Die m ndige Welt)" 속에서 교회론적 혹은 사회-윤리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회퍼의 "비종교적 해석"의 출발점은 역사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Wirklichkeit) 내지 존재(Sein)이다. 그러므로 본회퍼의 성서적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은 성서의 증언과 화육된 말씀이신(요 1:14)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Akt)을 사회-윤리적으로 해석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본회퍼는 말씀의 "비종교적 해석"의 근원을 구약성서에서 찾는다. 그는 구약성서에서 "세상 가운데 현실적으로 현존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은 인간의 삶 '여기' 혹은 '지금'에서만 알려지기 때문이다.

 

 

성서에는 저 세상(초월), 죽은 자의 거처, 내적 감정, 영혼의 세계에 대한 어떠한 사변적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오직 이 세계의 현실에서만 만나질 수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른 종교의 하나님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요, 세상 저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다.

 

 

본회퍼에 의하면 구약의 하나님은 초월적 세계와 내재적 세계의 창조주, 즉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다. 이렇듯 후기 본회퍼에 의하면 하나님은 역사 속에 곧 세상 속에 "현존해 계시는 분(Der daseiende Gott)"이다. 그래서 본회퍼는 "우리가 관심하고 있는 것은 저 세상(다음의 세상)이 아니고, 창조되고, 보존되고, 법칙에 속해 있고, 속량받고 새롭게 된 이 세상이다. ... 이것이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와 부활의 성서의 의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구약성서의 하나님 개념에 상응하게 신약성서에서도 하나님 개념은 철저히 이 세상적이라고 본회퍼는 말한다. 신약성서의 하나님도 이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이야기 하지 않고,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세상사랑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참고. 요 3:16).

 

 

따라서 복음적 기독교, 곧 그리스도의 기독교는 세상적 기독교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으로부터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철저히 이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한 사건이다. 특히 예수의 부활이 저 세상으로의 부활이 아니라, 다시 먹고, 만질 수 있는 몸의 형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땅의 존재로 부활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결코 피안적 혹은 형이상학적 사건이 아니라, 이 세상적인 것임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고 본회퍼는 강조한다.

 

 


그러나 성서의 하나님은, 더 자세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권세잡은 자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따라서 성숙한 세대에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역사 속에 현존해 계시는 하나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성숙한 세계는 오히려 하나님이 없는 것과 같은 세상이다.

 

 

따라서 참된 신앙인은 "비록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더라도(etsi deus non daretur)"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에서 살아야 한다. 이러한 비종교적 성서이해를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우리와 같이 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는 하나님이다(막 15:34).

 

 

그렇지만 우리를 이 세상에서 살게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그 앞에 서 있는 하나님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산다." 이제 성서의 말씀은 단지 '언설', '교훈', '증언'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성숙한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삶으로 실현할 때 그 말씀은 참된 말씀이 되는 것이다. 즉 성서의 말씀이 우리들의 삶 속으로 화육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성서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처럼 고난 받으며 살아가도록 요청한다.

 

 

바꾸어 말하면 성서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고난의 삶 속에 현존한다. 이 때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화육되어 한 인격을 형성하였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실현되어질 때, 바로 그 곳에 성서의 말씀이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 앞에서 약술한 본회퍼의 '비종교적 성서해석 방법'은 말씀의 "실체적(hypostatische)" 해석이라고 특징지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선 첫째 본회퍼는 성서를 교회의 책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교회에서 선포되고 있는 말씀과 성만찬으로 현존하는 말씀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그리스도와 존재론적으로 일치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째로 본회퍼는 성서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성서의 중심, 의미 그리고 목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약성서의 말씀들은 말씀하시는 인격 예수 그리스도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셋째로 본회퍼는 성서를 "비종교적"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삶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현실적이고 현재적 말씀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넷째 무엇보다도 본회퍼는 구약성서의 시편 주석에서 시편기자 "나(Ich)"를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한다.

 

 

다시 교회론적으로 바꾸어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시편의 "우리(wir)"로 해석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회퍼의 '비종교적 성서해석 방법'은 말씀을 역사 속에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 내지 그리스도인으로 인격적 "실체(hypostase)"로 이해하는 해석학적 방법이다.

 

 

이러한 말씀의 "실체적" 해석 방법은, 본회퍼의 관심이 처음부터 단순히 신앙 혹은 성서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비종교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의도에 기인한 것이다.

 

 

 


VI. 관념론적 초월(선험)철학과 존재론적 현상학의 극복: 실체적 해석학 

 

본회퍼에게 있어서 계시이해는 곧 말씀이해이고, 말씀이해는 곧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회퍼의 하나님 계시론은 교회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론으로 수렴한다(konvergieren). 따라서 교회의 설교를 포함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론적 인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본회퍼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는 항상 말씀을 통하여,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말씀의 실체화(hypostase) 혹은  인격화가 일어나고, 말씀의 화육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 역(逆)으로 본회퍼 자신의 말을 빌어서 설명하면,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으로서의 기독론은 고유한 학문이다. 왜냐하면 기독론의 대상은 말씀이며, 로고스(Logos)인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론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말씀을 뜻한다. 따라서 기독론은 말씀론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말씀에 대한 해석은 곧 교회론적 기독론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본회퍼에게 있어서 말씀은 단순히 이념(Idee)이나 이념의 형태(Gestalt)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Christus ist Wort ...)." 더 자세히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신적 로고스(Logos)는 인간적 로고스로 들어간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짐이다." 이러한 본회퍼의 기독론적 말씀론, 혹은 말씀론적 기독론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계시라는 기본 전제 위에서 우선 칸트적 초월(선험)철학과 헤겔적 관념론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혹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계시실체로 해석한다. 왜냐하면 칸트의 초월(선험)철학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 안에만 형이상학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진정으로 초월적 존재라면,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월(선험)철학에서는 인간이 신(神)에 대하여, 혹은 신(神)의 말씀 인식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인식의 대상으로 계신 참된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신(神)에 대한 인간 이성의 성험적(a priori) 종합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칸트의 인식론은, 본회퍼에 의하면, 내가(Ich) 나 자신(sich selbst)을 이해하려는 시도, 즉 "나의 자기이해 가능성(die M glichkeit des Sich-verstehens des Ich)"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근거로 칸트적 하나님을 존재를 인식하고자 하는 초월(선험)적 시도는 참된 신인식(神認識)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본회퍼는 평한다.

 

 

본회퍼에 의하면 참된 인식이 이루어지려면 인식의 대상이신 하나님 자신이, 곧 신적 로고스가 인간의 존재 속으로, 더 자세히 말하면 인간 존재의 시-공간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해서 본회퍼는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A.C. 2,67: "Deus non potest apredhendi nisi per verbum(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이해 혹은 인식될 수 없는 분이시다)" 수용한다. 이러한 본회퍼의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의 수용은 하나님 인식을 인간 이성에서 출발하지 않고,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본회퍼는 헤겔식 관념론도 거부한다. 왜냐하면 관념론은 우선 하나님의 존재를 객관적 절대 타자로 이해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과 동일한 이성적 혹은 형이상학적 존재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초월(선험) 철학에 의하면 "세상이 나와 관련하여 존재하는" 반면에, 관념론에 의하면 "세상이 인간 이성를 통해서 존재한다"고 본다.

 

 

그래서 관념론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피조된 하나님이고, 인간의 사유 속에만 존재하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본회퍼는 관념주의의 하나님은 데카르트(R. Descartes)의 "Cogito, ergo sum" 원칙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본회퍼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존재론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관념론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의 사고 속에 제한 시키고 있는 반면에 존재론은 '의식 밖에, 로고스 영역밖에, 이성의 영역밖에 참된 존재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론(Ontologie)의 문제는 이성(Logos)과 존재(  )의 결합을 시도하지만, 이성과 존재는 서로 대립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존재론에서는 어떻게 이성밖에 있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까? 존재론에서 주장하는 하나님 인식의 전제는 바로 토마스적 스콜라 철학의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이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나님은 피조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존재하며, 하나님은 인간 안에 그리고 인간 위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회퍼는 이러한 존재론적 하나님 인식은 실존(existentia)과 본질(essentia)를 동일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참된 하나님 인식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본회퍼에 의하면 존재-본질(esse-essentia)의 긴장 속에 존재하는 인간은 그 자신 안에 주어진 실존적 가능성으로서 "존재(ist)", 즉 존재-본질의 동일성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존재는 신적인 것도 아니고, 인간의 본질은 비신적인 것도 아니며, 그 역(逆)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자기 관계는 인간의 본질과 존재의 차별(essentia-esse-Differenz des Menschen)과 하나님의 본질과 존재의 일치(essentia-esse- Identit t Gottes)라는 전체성 속에 있다."

 

 


이상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본회퍼가 관념론적 초월(선험)철학과 존재론적 현상학을 거부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그것은 본회퍼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로고스의 화육이라는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에 굳게 서 있기 때문이다.

 

 

즉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을 본회퍼는 하나님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이 사건을 하나님의 행동 속에 있는 계시로 이해하였다. 왜냐하면 이 사건 속에서 형이상학적 말씀은 단지 이념과 교설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 구체적으로 현존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인격(Christusperson)이라고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여 본회퍼는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에서 출원한 관념 속에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실존적 존재로 이해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 밖에서 인간의 삶 속으로 뚫고 들어온 객관적 실체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본회퍼의 해석 혹은 계시 이해를 그 사실(Sache)로 따르면 말씀의 실체론적 해석이라고 특징지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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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의 「옥중서간 」을 읽고

출처: http://user.chollian.net/~fampae

 

 배경식(한일장신대)

 

 


 디트리히 본회퍼는 독일이 낳은 행동주의적인 신학자이다. 반나치 저항운동에 가담하여 히틀러의 독재정권과 싸우다가 1943년 4월 5일 게슈타포(비밀경찰)에 의해서 체포되었다. 1945년 4월 9일 히틀러의 제 3국이 무너지기 직전 베르린에 있는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게슈타포 장관의 직접명령으로 39세를 일기로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청년 신학자이다. 그는 1906년 2월 4일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8형제중 일곱째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 칼 본회퍼는 권위 있는 정신병리학자로서 다년간 베르린 대학의 교수를 지냈으며 각계에서 신망이 높은 저명한 학자였다.  본회퍼의 부계는 많은 신학자, 예술가, 법률가를 배출한 명문이다.  그의 어머니 역시 신앙심이 깊은 훌륭한 목회자 가계출신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황제를 모시는 궁정목사였으며 조부는 19세기 최대의 교회사가로 이름난 아우구스트 폰 하제였다. 이처럼 본회퍼는 신앙과 학문과 예술의 명문 출신이었거니와 본회퍼 역시 뛰어난 학문적 능력을 타고났으며 문학과 예술적 재능을 겸비하고 있었다.

 


 열일곱살 때 그는 튀빙겐 대학에 입학했으며 그 다음해 베르린대학 신학부에서 수학하였다. 당시 교수들은 한결같이 이 젊은 신학도의 학문적 재능을 높이 평가했으며, 특히 신학자 하르낙은 그를 "천재적 신학 청년"이라며 절찬했다고 한다.

 


 그가 스물한살 때 베르린 대학 신학부 졸업논문으로 제출한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는 대단히 우수한 논문이어서 신학자 칼 바르트도 "하나의 신학적 기적"이라고 예찬하였다.

 


 1933년 1월 30일에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그해 3월 23일 제국의회에서 "기독교는 우리 민족성의 유지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정부는 교인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존중하여 교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당시 독일교회는 이를 환영하였다.  독일 복음주의교회의 총리 츄루나는 히틀러의 말을 "교회생활이 금후에도 불변할 것을 새로이 보증한 대헌장"이라고 까지 극찬을 하였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신. 구파의 기독교는 우리 민족성의 유지를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라는 히틀러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그리하여 그해 4월 3-5일에 베르린에서 열린 「신앙운동 독일 기독교인 전국대회」에서 "히틀러의 국가는 교회를 부르고 있다. 교회는 이 부름을 듣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표어 아래 모였다. 그러나 본회퍼는 그 시대의 진상을 투시하고 있었다.

 


1933년 2월 1일 히틀러가 집권한 다음날 본회퍼는 "지도자 개념의 변천"이라는 제목의 라디오 강연을 통해서 히틀러는 독일 국민을 잘못되 길로 오도하고 있으며 그의 정치원리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간적 지도자를 우상화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것은 본회퍼가 히틀러의 반기독교적 성격을 이미 간파할 수 있는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는 히틀러에게서 악이 빛과 선 그리고 진실을 가장하고 또한 역사적 필연성과 사회정의를 가장하고 있음을 간파했던 것이다.  히틀러는 결국 그의 본색을 드러내면서 기독교에도 악마적인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나치의 지도원리를 교회에 끌고들어와 교회까지도 그의 통합정책속에 집어 넣고자 하였다.  히틀러는 전 육군 군목 루드비히 뮐러를 통해 제국감독이 지배하는 하나의 제국교회를 만들려고 꾀하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히틀러의 말을 듣고 히틀러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히틀러의 직속교회로 만들려고 꿈꾸었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신앙운동 독일 기독교인"을 결성하여 복음주의교회에 도전시켰다.  독일 기독교인은 루드비히 뮐러를 중심으로 교회의 통합운동을 벌였다.  이렇게해서 독일교회가 제국감독 뮐러의 손안에 들어가자 나치는 기독교를 뜯어고치는 일에 착수했다.

 


그들은 '아돌프 히틀러의 새 제국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새 교회'를 부르짖었고 "국가사회주의의 정신이 곧 교회의 정신이며 국가사회주의의 의지가 곧 교회의 의지로 대치되어야만 한다"라고 들고 나섰다.  그러나 독일교회는 히틀러의 이같은 종교적 간섭과 탄압에 무력하게 굴복하지 않고 항거하여 일어났다.
 본회퍼는 히틀러가 집권한때부터 고백교회에 속한 목사로서 히틀러와의 투쟁에 들어갔으며 이때부터 그의 생애의 제 2기에 해당하는 교회투쟁의 시대가 시작된다.

 


 본회퍼는 1940-43년에 거쳐 대전과 저항운동 속에서도 저술을 계속했는데 이 동안 저술을 편집한 것이 「기독교 윤리」이다.  그는 '복종'의 저술을 끝낼 무렵부터 필생의 사업으로 「기독교 윤리학」을 저술하려는 뜻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1943년 4월에 체포된 때부터 1945년 4월 9일 처형되기까지 약 2년간 각처의 강제수용소를 전전하면서 옥중생활을 하는 동안에 옥중에서 가족과 그의 친구 베트게에게 쓴 편지를 베트게가 편집해서 출판한 것이 「'반항과 복종」이라는 부제목을 갖는 「옥중서간」이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옥중생활의 처음 일년 반을 베르린에 있는 테겔 육군형무소에서 보냈다.  그것은 1943년 4월 5일부터 1944년 10월 8일까지였다.  본회퍼는 이곳에서 간수와 위생병들 중에서 좋은 친구들을 얻게되어 장문의 편지와 짧은 서신을 내왕할 수 있었다.  이 편지들 중에는 책의 제 1부를 골라냈다.  형무소의 검열관과 누구보다도 육군 고등군법회의 판사 레다박사가 이 편지들을 함께 검열했기 때문에 물론 다소의 가감이 있다.  그러나 가족을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매우 강하게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옥중에서부터의 서신과 창작 앞에는 "10년 후"라는 기록을 두었다.  이것은 본회퍼가 1942년에서 1943년 전환기에 써서 그것을 몇몇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낸 것이다.  그때 그는 벌써 특히 한스 폰 도나니에게서 국가 안전보장본부가 그의 체포를 서둘고 있으며 방증을 수집하고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이 기록들은 지붕의 기와와 서까래 사이에 숨겨두어서 가택수색과 폭격으로부터 살아남았다.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생각해 보는 하나의 문제는 목사요, 신학자인 그가 이렇게 반나치 지하운동에 가담했고 나아가서는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했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며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입장에 따라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신학자 칼 바르트만하더라도 그의 "교회교의학"에서 한계상황에 있어서의 폭군 암살의 가능성을 긍정하고 본회퍼의 행동을 그 예로서 들었다.  그는 이렇게 본회퍼의 저항운동에 대한 도덕적 입장은 긍정하면서도 그 정치적 효과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여 정세 판단으로 보아 성공의 가능성이 없었던 쿠테타는 실행에 옮기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본회퍼는 당시의 독일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았다.

 

 

 "만일 미친 사람이 대로로 자동차를 몰고간다면 나는 목사이기 때문에 그 차에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식이나 치러주고 그 가족들을 위로나 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는가?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달려가는 자동차에 뛰어올라 그 미친 사람으로부터 차의 핸들을 빼앗아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이 말이 본 회퍼가 자기의 입장을 설명하는 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윤리」속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그의 이러한 입장을 엿볼 수 있다. "율법을 폐기하는 동시에 율법을 새롭게 참되게 효력 있는 것으로 하기 위한 자유가 존재한다.  율법의 효력정지는 오직 그것의 참된 성취를 위해서만 유익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전쟁의 경우에서는 살육이나 파괴나 약탈이 오직 생명과 진리와 재산의 가치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만 존재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에게서 문제되는 것은 율법의 위반이 도덕 멸시주의에서 오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율법의 참된 성화를 위한 책임성에서 오는 것이냐 하는데 있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본회퍼의 신학은 인간이 되어서 십자가에 못 박혔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업에 대해서 우리의 눈을 새로이 뜨게 하려는 것이며, 주를 따르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의미와 가치를 금일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새롭게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교리와 종교의식을 존중하고 정비하는 것은 주를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본 받는 것이다. 그의 사상은 복종의 사상이요, 39년 동안 그의 생애 전체가 주에게 복종한 삶이었다. 그의 생애가 그의 신학의 가장 훌륭한 주석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디트리히 본회퍼라는 한 신학자를 통하여 실천하는 신학이 무엇을 말하는가? 살아 숨쉬는 신학이 무엇인가? 신음하고, 고통 당하는 민족과 이웃을 외면하는 거룩한 척하는 신학은 하나님이 원하는 신학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독일에 본회퍼의 신학이 있었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누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에게도 그런 분들이 있었다. 일제의 강점과 신사참배 앞에서 올바른 신앙과 한국교회의 순결을 지키며 순교한 주기철 목사가 그러하셨고, 사랑으로 자식(동인, 동신)을 죽인 원수인 공산당 안재선을 양자로 삼아 몸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신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이 계셨다.

 


 본회퍼가 민족과 독일 교회를 등질 수 없어 미국으로 가던 중에 뒤 돌아섰다면, 손양원 목사님은 6.25때 피신을 하시지 않고 애양원에서 순교 하셨다: "양을 먹이는 목자가 그 양을 돌보지 않고 어디로 피신한단 말입니까? 내가 만일 피신을 한다면 애양원의 일천 명 양떼들을 자살시키는 것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주의 품 이상의 피난처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비록 불의 불충하나 우리 주 예수의 의를 힘입어 주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바라던 제물이 되어 볼까 소원할 뿐입니다."  

 

 

손 목사는 순교란 아무렇게나 살다가 단순히 기독교인이란 이름을 가지고 죽는 것이 순교가 아니라고 했다. 예수님을 위해서 일생을 눈물과 피를 흘리다가 죽은 자가 참된 순교자의 반열에 드는 순교자라고 했다.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과 이웃과 자신 앞에 바로 설 수 있을까? 이분들의 삶과 우리의 삶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이들이 믿는 하나님과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은 다른가? 이분들의 신앙과 신학은 고난의 십자가도 마다하지 않으셨는데, 오늘 우리의 십자가는 너무 높은 성전의 종탑과 대형교회의 강대상 위에서 높고도 거룩하게만 서있어 고통 당하고, 소외된 우리의 민족과 이웃이 바라보고 다가서기엔 너무나 멀기만 한 것 같다.

 


 지금 우리의 서있는 자리와 모습은 어떠한가?  본회퍼의 옥중서간을 읽고 나는 어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의 제자인가를 한 번쯤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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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라

(디트리히 본회퍼, 허혁 역, 대한기독교서회)

 


이신건

 

왜, 벌써부터 교회 개혁을 말하는가?


기독교가 언제부터 한국 땅에 들어오기 시작했는지 잘 모르지만, 본격적인 선교는 약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톨릭 교회의 역사는 약 200여년을 헤아리고, 개신교의 역사는 약 100여년을 헤아린다. "천년이 뒤바뀐 이 마당에 고작 100-200년을 가지고 왠 자랑이냐?"고 말하실 분이 있으리라.

 

 

이만한 역사라도 자랑거리가 된다고 싶어서 새삼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개신교에 국한해서 말한다면, 100여년 정도의 역사를 겨우 넘긴 이 마당에 여기저기서 개혁(改革)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현상이 하도 서글퍼서 하는 말이다.

 

 

유럽교회는 1,500여년만에 자타가 공인하는 "개혁"을 일구어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수많은 개혁의 몸부림이 있었고, 교회의 역사가 갈등과 대립, 순교와 분파로 얼룩져 왔다. 하지만 진정한 "교회 개혁"은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Wittenberg) 성당문에 반박문을 써 붙인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불행히도 이 사건은 동-서방 교회의 분열 이후로 교회가 가장 크게 분열한 사건이 되었지만, 개신교 측으로서는 교회의 역사에서 최초(최종일까?), 최대의 개혁사건으로 해마다 기념되는 사건이다.

 

 

유럽교회에 비해 한국교회의 역사는 턱없이 짧건만, 벌써부터 개혁이라는 말이 무수히 나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좋게 말해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남달리 반성하기를 잘하기 때문일까? 나쁘게 말해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지나칠 정도로 부정적이기 때문일까? 한국인들은 늘 개혁을 표방해야만 인기를 모을 수 있기 때문일까? 한국교회가 너무 일찍 썩어버렸기 때문일까? 이런저런 까닭들이 있겠지만, 솔직히 우리끼리 터놓고 말한다면, 유감스럽지만 마지막 것이 가장 그럴 듯한 답변이 될 것 같다.

 

 

평신도들이야 무슨 큰 잘못이 있겠는가? 목사들이 가르쳐 준대로 살아보려고, 그들만을 쳐다보고 살아온 죄(?) 밖에 더 있겠는가? 나 같은 사이비, 삯군, 아니 돌팔이 목사가 한국교회를 이토록 망쳐놓지 않았는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 한번 간단한 사례만을 집어보자.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한국에 있고,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은 교회사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폭발적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분열하고 원수처럼 물어뜯고 싸운 교회도 바로 한국교회다. 사이비-이단성 교회, 사기꾼-정치꾼 목사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배출되었다. 자칭 하나님이 세명, 자칭 그리스도가 열댓명 나왔다. 자칭 교황, 자칭 교주는 또 얼마나 될까?

 

 

목사의 신뢰도는 어떠한가? 은행에서 신용카드 발급을 가장 꺼리거나 신용이 불량한 자는 바로 목사라고 한다. 국회위원, 아니 하나님 앞에서 성경에 손을 얹어놓고 거짓말하는 평신도들의 기막힌 연출극을 텔레비전에서 지켜보아야 했지만, 그게 어디 그들만의 잘못인가? 목사들이 미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으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수다하게 거짓 맹세를 해온 일은 이미 익숙한 관례에 속한다.

 

 

 그 탓에 젊은 목사들은 비자를 받으려고 가급적 목사의 신분을 가리려고 한다. 비록 일부 정치꾼 목사에 국한되는 일이겠지만, 감투와 명예 때문에 목사들이 거짓말하거나 서로 거래, 담합하는 수준은 세상 정치가들의 뺨을 칠 정도다. 차라리 거룩과 신앙으로 위장하지 않았더라면, 죄의 무게를 덜 수 있지나 않았을까?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예수를 따라다녔는가?

 

이런 현실 앞에서 자연히 다음과 같은 물음이 생겨난다.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도대체 누구를 따라다녔는가? 물론 "예수"라고 즉각 대답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목사를 따라다닌 것이 아닐까? 목사를 따르는 것이 불가피했다면, 목사는 과연 예수를 제대로 따랐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설사 예수를 따랐다고 표방하였다고 하더라도, 대개의 목사가 따른 예수는 성경이 말하는 그분이 아니라 어쩌면 목사가 자신의 편의대로 주무르고 길들여놓은 그런 예수가 아닐까? 한국 땅에 온 예수, 아니 한국 목사가 모셔온 한국적 예수는 누구일까? 이 짧은 지면과 필자의 좁은 식견으로 이를 말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겠지만, 상식적으로 나열하면, 아마도 해방자 예수, 무당 예수, 복 방망이 예수, 솜사탕 예수, 액세서리 예수 등이리라.

 

 

"해방자 예수" 하면, 70-80년대 노동-민중 운동과 더불어 이 땅에 소개되기 시작한 민중-해방신학의 예수를 언뜻 떠올리겠지만, 이는 가장 오래된 한국인의 예수가 아니었겠는가 생각된다. 잘 아시다시피, 카톨릭 교회의 전래는 고난과 순교로 얼룩져 있다. 그런데 초기 한국 카톨릭 신자들 중에는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은 물론이거니와 중요한 교리조차 모르고도 용감히 순교한 자들이 적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왜 그런가? 고난당하는 민중들의 피눈물나는 저항에도 불구하고 몇 백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던 계급 사회를 교회가 과감히 허물기 시작하였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 당시 민중들은 열광하지 않았겠는가? 개벽 세상을 애타게 기다리던 조선의 민중들에게 해방자 예수는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분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 해방자 예수는 70-80년대의 민중항쟁의 역사 속에서 가장 생생히 되살아났다. 지금은 맥없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무당 예수"는 아마도 한국 그리스도인의 집단 무의식에 가장 끈질기게 붙어있는 예수가 아닌가 생각된다. 무병장수와 물질풍요 등을 비는 기복신앙은 인류의 보편적인 현상이겠지만, 만주 땅을 거쳐 한국에 내려온 샤만 전통은 집요하게 생명력을 이어왔다. 한국의 고등 종교들도 한결같이 샤머니즘을 흡수하고서야 비로소 번성할 수 있었다. 한국교회를 가장 성장시킨 원인이면서 동시에 한국교회를 가장 타락시킨 것도 바로 샤머니즘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물질주의와 이기주의, 윤리의식과 공동체 의식의 부재는 가장 큰 해악 중의 하나다. 70-80년대에는 해방자 예수와 함께 복 방망이 예수도 인기를 누린 예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경제성장 구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는 부흥사가 주도한 물질축복의 구호 "우리도 한번 복 받아보세"와 한 통속을 이루었다. 교회에서 소외된 해방자 예수가 공장과 거리에서 노동해방과 노사투쟁을 부추겼다면, 무당 예수와 복 방망이 예수는 복빌기 좋아하는 우리의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민중들을 교회와 기도원 안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 정도가 되고 나니, 해방자 예수와 무당 예수, 복 방망이 예수의 인기도 상당히 시들해진 것 같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예수는 목에 매달려 있는 액세서리로 박제화하였다. 설사 그들이 박제화한 예수의 가르침을 조금은 알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를 따를 - 그의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갈 - 의지는 거의 없다.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 지배하고 억압하는 권력자들, 생명과 행복, 안녕의 근거를 허망한 재물에 두고 끌어 모으기만을 좋아하는 어리석은 부자들을 향해 때로는 포효하는 사자처럼, 때로는 통쾌한 독설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던 살아 있는 예수는 거리의 낭만인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포근한 예수로 변하였다.

 

 

딱딱하고 거북한 것을 다 없애고 달콤하게 정제된 예수는 오늘날 교회의 강단에서도 자주 설교된다. 솜사탕은 먹기도 편하고 보송보송하여 귀엽다. 영양 가치도 별로 없지만, 소화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처럼 오늘 우리의 예수는 없으면 서운하지만 있어도 큰 부담이 없는, 아니 인스턴트로 적격인 달콤한 일회용 예수다. 오래 되새김할 필요도 없고, 더욱이 피와 살이 될 이유도 없다.

 

 

솜사탕을 사기 위해 비싼 대가를 치를 필요도 없고, 멀리까지 가서 힘들게 사 올 마음도 없다. 눈에 띄면 쉽게 구하여 먹고, 곧장 잊을 수 있는 값싼 예수, 달콤한 예수, 편안한 예수가 오늘 우리의 예수가 아닐까? 그래도 옛날의 예수는 우리에게 꽤 큰 희생과 대가를 요구하였건만, 지금의 예수는 지천에 늘려 있어 너무 값싸다. 그는 매우 넓고 쉬운 길로 인도한다. 대중화한 예수인가? 만인을 위한, 만인의 예수인가?

 

 

 

 

값싼 은혜는 교회의 대 원수다!

 

하지만 성경 속에 살아 있는 예수는 결코 넓은 길로 인도하지 않으며, 결코 싸구려 은혜를 무더기로 내던지지 않는다. 히틀러(Hitler)가 독일의 정권(제3제국)과 교회를 장악했건만, 대다수의 독일교회가 비겁함 속에서 침묵하거나 히틀러를 독일의 구세주로 추앙하고 있을 때, 젊은 목사요 신학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외로이, 이렇게 외쳤다. "은혜를 값싸게 보는 우리의 견해는 교회의 대 원수임을 알아야 한다. 은혜는 홀로 무엇이나 원만히 처리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모두 옛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도 좋다. 순종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한 은혜가 값없는 은혜다."

 

 

"나를 따르라"(Nachfolge, 허혁 역, 대한기독교서회, 1999년 29쇄)라는 그의 책을 다시 읽노라면, 젊은 목숨을 걸고 어두운 시대의 교회를 매섭게 질책하던 그 당시의 본회퍼가 되살아나서, 시대와 환경의 차이를 뛰어넘어 한국교회를 흔들어 깨우는 것 같다.

 

 

그가, 아니 그를 통해 예수가 지금 우리에게 외치는 말은 너무나 절박하고 진실하다. 예수의 산상설교에 관한 그의 탁월한 해석은 단지 우리의 지성에만 호소하지 않는다. 그것은 거짓되고 안일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심장을 예리한 단도처럼 찌른다.

 

 

이 칼 앞에서 비겁하게 피해가든지, 뜨거운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한다. 다른 제3의 대안은 없다. 도망가는 자는 다행히 구차한 목숨만은 건질 수 있겠지만, 그의 영혼은 음부의 권세에 담보로 잡혀야 할 것이다. 칼에 맞아 죽는 자는 당장은 아프고 괴롭겠지만, 죽어서 다시 살 것이다. 예수의 진정한 제자로, 참 그리스도인으로! 여러분은 어찌 하시겠는가? 이 칼을 한번 쳐다보시기라도 하겠는가?

 

 

지금껏 한국교회는 설교와 찬양 등을 통하여 주로 감정에 호소해 왔다. 그리고 새삼 감정 지수(EQ)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우리를 압도한다. 지성을 추구하는 학자인 필자도 감정이 꽤 풍부한 편이어서, 감동적인 영화나 설교 중에 가끔 굵은 눈물을 줄줄 흘린다. 하지만 감정이 나를 대상에 오래 묶어두기는 하지만, 나의 인생을 크게 흔들어 놓은 적은 없다.

 

 

미국에서 설교학과 예배학을 전공하고 최근에 돌아온 나의 친구 교수는 오늘의 한국교회의 설교를 폭죽(爆竹)에 비교한 적이 있다. 이번 새천년 맞이 행사장에서도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폭죽이 터졌겠는가? 하지만 폭죽 때문에 새 세상이 오진 않는다. 한국교회의 강단도 폭죽처럼 신선한 감동을 주다가는 별 결과도 없이 잊혀진다. 신자들의 인상(印象)과 심상(心象)에 그 무언가를 남기긴 하겠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신자의 생활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자화 운동"이니 하면서, 교회마다 성경공부에 열을 올렸다. 성경공부는 무조건 믿는 소박한 신자를 매우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든 게 사실이다. 그리고 성경지식이 풍부한 교인들도 많이 양산되었다. 하지만 문자숭배를 버리지 못한 보수적-근본주의적 성서관 때문에 성서와 역사를 보는 신자들의 태도와 그들의 삶의 방식이 크게 변화된 사례를 보기란 쉽지 않다.

 

 

똑똑한 지성 지수(IQ)가 훌륭한 삶의 필요 조건이기는 하겠지만, 필요충분의 조건은 되지 못한다. 의지의 굴복, 의지의 순종이 없는 감정과 지성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병든 믿음, 죽은 믿음이다. 감정에 겨워 "주여, 주여" 해도, 예수와 전혀 상관이 없을 수 있다. 오직 실천만이 믿음을 입증하고, 오직 열매만이 나무의 가치를 결정한다.

 

 

 

 

 

의지를 굴복시키고, 예수를 따르자!


마치 예수가 저주한 열매없는 무화과인 양, 감정과 지식으로만 비대한 한국의 그리스도인, 아니 나 자신의 형편없는 몰골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예수의 말씀에 의지를 굴복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읽은 본회퍼의 책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친구 교수에게 나의 고민을 나누었더니, 그도 비슷한 고민을 하던 중에 의지 지수(DQ=Diaconite Quotient)를 고안하느라 궁리하고 있다고 했다.

 

 

Diaconite는 집사의 직책을 뜻하는 말인데, 이 말은 헬라어로 섬김, 봉사, 하인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섬김의 지수, 그것은 곧 그리스도인의 행함의 지수일 것이다. 언젠가 우리의 나약해빠진 의지를 재어볼 수 있는 잣대가 마련된다면, 그 잣대로 우리의 종아리를 피나게 때려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잣대가 손에 쥐어지기를 마냥 기다릴 순 없지 않는가? 그러므로 좁은 길, 값비싼 은혜의 길, 십자가의 길, 순종의 길을 권면하고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간 사람의 책을 읽고, 그로부터 도전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러한 길을 간 사람을 따르려고 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예수를 따르려는 각오가 날로 더해질 것이다. 바로 여기에 본회퍼의 책의 가치가 있다.

 

 

실로 본회퍼도, 예수도 우리의 결심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결심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하지만 본회퍼가 강조한대로, 예수가 지어주는 멍에는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라 가장 쉬운 멍에다. 십자가는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극복되며, 십자가를 회피하는 것은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되어 되돌아온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는 삶, 순종의 길, 좁은 제자의 길은 가장 큰 약속으로 다가온다.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약속! 너도나도 말하는 식상한 "개혁"이라는 말도 이제 그만 하고, 나부터 먼저 묵묵히 이 길을 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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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 - 세속 안에 계신 하나님

 

 본회퍼, 옥중서간, 대한기독교서회

 

 

1. 우둔


 우둔은 악보다도 훨씬 위험한 선의 적이다. 악에 대해서는 대항할 수 있으며 그것을 폭로하고, 필요한 경우에느 힘을 가지고 방해할 수 있다.... 우둔한 자와 말하고 있으면 그가 자기 자신, 즉 그의 인격과 관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힘을 떨치고 있는 '슬로건'이나 표어 같은 것과 관계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둔이 악마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p.18-19)

 

 

 

2. 좌절들


 최상의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소박하게 현실을 오해하고 지리멸렬에 떨어진 세계를 이성적인 것으로 다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합리주의자'들의 실패는 분명해졌다.(p.13)1. 합리주의 역사의 실패가 비판자들에게 승리를 선언하는 것이 결코 아님  2. 비판자들의 본질적인 문제는 합리주의자들의 도전을 통해 얻은 역사적 변화와 결과물에 대해 전체적으로 인식하며 그것들을 어떻게 계승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 

 

 


 보다 가련한 것은 윤리적 열광주의가 모조리 좌절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열광주의자는 원리의 순수성이 악의 힘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13) 1. 윤리적인 내용과 그것을 통해 얻고자 하는 지향점 사이의 처절한 간격. 그 간극의 문제는 열정과 믿음-광란과 신비적 힘에 의해 매꿔지지 않음. 2. 자연과학, 사회과학등의 발전을 통해 세계가 '신비적-추상적(철학적 or 선험적)-윤리적'인 부분 이상으로 구성된 면이 있다는 사실을 대한 발견. 새로운 세계의 이해에 대한 전망의 부족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가 사회적 대결에서 도피하여 사적 덕행이라는 피난처를 구한다.(p.14) 조급한 현실 저항주의 역시 마찬가지 / 개혁과 혁명의 문제도. 그 내용성과 체계성의 문제에도 새로운 인식 필요

 

 

 세상과 인간 존재의 공공성에서 신을 배제한 결과 적어도 '개인적인 것', '내면적인 것', '사적인 것' 영역에서 계속해서 신을 확보하려고 꾀하게 되었네.(p.205)

 

 

 

3. 용기 : 시민적 용기란?


 시민적 용기의 결여를 개탄하는 배후에는  도대체 무엇이 숨어 있을까? 근년에 우리는 많은 용기와 희생적 행위를 보았다. 그러나 시민적 용기는 거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우리들 자신에게도 그것은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시민적 용기의 결여를 단순히 인간의 비겁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나 소박한 심리학일 것이다. 그 배후에 있는 이유는 결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우리들 독일인은 오랜 역사를 두고 순종의 필요성과 그 힘을 배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리는 모든 개인적 희망과 사상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에 종속시키는 것이 우리의 생의 의미요, 위대함인 줄로 알았다.

 


 우리의 시선은 노예적 공포에 있어서가 아니라 사명 속에서 직업을, 직업 속에서 소명을 보는 자유로운 신뢰에 있어서 위로 향하고 있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판단에서보다는 오히려 '위(oben)'로 부터의 명령에 기뻐서 복종할 용의가 있다는 것은 자아중심의 마음에 대한 정당화된 불신뢰의 일부분임을 의미한다.

 

 


 독일인의 순종하고 소명을 받고 사명을 느끼고 최악의 것이라도 이를 용감하게 생명을 걸고 수행해 왔다는 데 대해서 누가 반대하려고 할 것인가? 그리고 독일인은 전체에의 봉사에 있어 자의로부터 자기를 해방하려고 함으로써 자유를 지켰다-세계의 어디에서 루터로부터 관념철학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서보다 더 열심히 자유에 대해 말해진 적이 있을까? 독일인에게 소명과 자유는 동일한 것의 두 면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독일인은 세계를 오해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명을 위해서 복종하고 생명을 바칠 용의가 있다는 것이 악을 위해서 오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독일인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오해가 생기게 되고 따라서 소명의 수행 그 자체가 의심스럽게 될 때 독일인의 모든 도덕적 근본 개념은 흔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인에게는 자유롭고 책임있는 행위가 필연적으로 소명이나 사명과도 대립되는 것이라는 데 대한 결정적인 근본 인식이 결여되어 있음이 밝혀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한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무책임한 무양심이, 다른편으로는 결코 행동화하지 않는 자학적인 양심이 가책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시민적 용기는 자유로운 인간의 자유로운 책임성에서만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오늘에야 비로소 자유로운 책임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한 자유로운 책임이란 책임있는 행위의 자유로운 신앙적 모험을 요구하고, 그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는 인간에게 용서와 위로를 약속하시는 하나님께 근거를 두는 것이다. (p.15-16)

 

 

 

4. 함께 괴로워 하는 것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아들이고 자유로우셨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자기의 행위와 자기의 고난에 의해서 세계를 구원하도록 부름받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스스로 지지 말아야 하지만 그것을 질 수 없음을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역사의 주인은 아니지만 역사의 주인의 손 안에 있는 도구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고통을 실제에 있어서는 전혀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함께 괴로워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독교인이 되려면, 우리가 자유롭게 시간을 포착하고 위험과 맞서는 책임 있는 행위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의 풍성함에 동참하여야 하며, 불안에서가 아니라 자유함을 주고 죄를 사하여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모든 수고하는 자에게 넘쳐 흐르는 참된 동정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마음의 풍성하심에 동참하여야 한다. 행위가 수반되지 않는 기대와 우둔한 방관은 결코 기독교적인 태도가 아니다. 행위와 동정 속으로 기독교인을 부르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의 체험에서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신 형제들의 체험에서이다.(p.26)

 

 

 

 

 

5. 고난에 대해서


 사람의 명령에 복종해서 고통을 받는 것이 자기 자신의 책임 있는 행위의 자유에서 고통을 받는 것보다 훨씬 쉽다. 공동으로 고통을 받는 것이 혼자서 고통을 받는 것보다 훨씬 쉽다.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으면서 고통을 받는 편이 혼자 떨어져서 수치를 당하며 고통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용이하다.

 

 

육체적 생명의 위험을 받으면서 고통을 받는 것이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는 것보다 더 용이하다. 그리스도는 자유로이 혼자서 고독 속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며 육체와 정신으로 고난을 받으셨다. 그 이후로 많은 기독교인이 그와 함께 고난을 받았다.(p.27)

 

 

 

 

6. 낙관주의


 비관적인 편이 오히려 현명하다. 왜냐하면 실망은 잊혀지고 사람들의 웃움거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에게는 낙관주의가 금물이다. 낙관주의는 그 본질상 현재의 상황을 일체 고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의 생명력이고, 다른 사람들이 단념했을 때 희망을 품는 힘, 만사가 실패한 것으로 보일 때 머리를 높이 쳐드는 힘, 반동을 이겨내는 힘, 미래를 결코 적에게 넘겨주지 않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요구하는 힘이다....

 

 

그러나 미래의 의지로서의 낙관주의는 비록 그것이 몇 번 거듭해서 실패할지라도 결코 경멸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병에 걸리는 일이라고는 없는 생명의 건강이기 때문이다.(p.28)

 

 

 내면성과 양심의 시대, 즉 일반으로 '종교의 시대'도 지나갔지. 우리는 완전히 무종교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네. 있는 대로의 인간은 이미 단순히 종교적으로는 될 수 없다네. 분명히 '종교적'이라고 보이는 사람들도 결코 그것을 실제의 행위에는 나타내지 않거든...

 


 우리들의 1900년에 걸친 기독교의 선교와 신학은 인간의 '종교적 선험성'위에 세워져 있네.. 그런데 이 선험성이 전연 존재하지 않고, 언젠가는 그것이 역사적으로 제약된 잠정적인 인간의 하나의 표현 형식이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되고, 그 결과 인간이 정말 철저하게 무종교적으로 된다면-이러한 사태는 '기독교'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우리들은 지금까지의 전 기독교의 기반을 빼앗기고, 다만 소수의 '최후의 기사들' 혹은 지적으로 불성실한 사람들만이 남게 될 것이네. 그러한 사람들과는 종교적으로 상대할 수 있을 뿐이지. 그러한 사람들의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일까?

 

 

  무종교의 세계에서 교회, 개체교회, 설교, 예전, 기독교의 생활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네... 우리들은 자기를 종교적으로 특별한 우대를 받고 있는 자로 생각하지 않고 차라리 온전히 세상에 속해 있는 자로서 에클레시아, 곧 부름을 받은 자가 될 것인가? 그리스도는 이미 종교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과는 전연 별개로, 진정으로 이 세상의 주시라네... 무종교성 속에서 예배와 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할례가 의인의 조건인가 아닌가 하는 바울의 물음은, 내 생각으로는 오늘날에는 종교가 구원의 조건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네. 할례로부터의 자유는 종교로부터의 자유이기도 하지. '기독교적 본능'이 나를 종교적인 인간보다는 무종교적인 인간에게 끌리게 하는 때가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고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네.

 

 

 신은 본래 언제나 '기계장치의 신'이며, 그것을 종교적인 인간들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피상적 해결을 위해서라든가,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실패에 부딪쳤을 때의 힘으로서 불러낸다. 따라서 언제나 인간의 약점을 이용해서, 다시 말하면 인간이 한계에 부딪칠 때 불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인간이 자기의 힘으로 그 한계를 더욱 넓히고 기계장치의 신이 소용이 없게 되기까지는, 적어도 변함없이 불가피한 일이다.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나로서는 암만해도 의문스러운 일이다.(오늘날에는 인간은 이미 죽음 자체도 거의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고, 죄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죽음이나 죄가 아직 참된 한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식론적 초월성은 신의 초월성과는 무관하다네. 신은 우리들의 생활 한가운데서 피안적이지. 교회는 인간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곳, 한계가 아니라, 마을의 한가운데에 있네.

 

 

 도대체 구약성서에 영혼의 구원이라는 것이 문제된 곳이 있을까? 일체의 중심점이 이 세상에 있어서의 신의 의와 신의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닐까? 로마서 3장 24절 이하도 하나님만이 의롭다고 하는 생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개인의 구원의 설교가 아니지 않을까? 문제는 내세가 아니라 창조되었고, 유지되고, 율법에 붙잡혀 있고, 속죄되고 새롭게 된 그대로의 이 세계가 아닐까?

 

 


 인식의 한계가 부단히 확대되어 가면 이와 더불어 항상 신이 옆으로 밀려나고, 거기에 따라서 후퇴일로를 거듭하게 된다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않는 것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것에서 신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세. 신은 미해결의 문제에서가 아니라 해결된 문제에서 우리를 붙잡으시기를 원하신다네.

 

 

 신은 우리의 가능성의 한계에서가 아니라 생의 한가운데서 인식되지 않으면 안된다네. 하나님은 죽음에서가 아니라 생에서, 고난에서가 아니라 건강과 힘에서, 죄에서가 아니라 행위에서 비로소 인식되기를 원하시지. 이것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계시에 있네. 결코 우리들에게 미해결의 문제를 대답하기 위해서 '여기에 오신' 것이 아니라네. 어떤 문제든 생의 중심에서 생기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그러한 문제에 대한 대답 역시 생의 중심에서 생기는 것이라네.(p.186-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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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주님의 뜰-행원소구
글쓴이 : bloom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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