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목차 돌아가기] |
1. 어떤 심라학자의 삶의 철학
어떤 심리학자가 성공적인 삶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첫째로,그 않은 자세부터 다르다고 합니다. 성공적인 사람은 맨 앞자리에 앉아 자세를 흐트러 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둘째로,눈동자가 다르다고 합니다. 성공적인 사람은 그 눈동자가 기운이 있고 촛점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눈동자에 확신이 있고 빛이 납니다.
셋째로,성공적인 사람은 말에 음성이나 표현을 ㅗ아서 알 수 있습니다.
넷째로,성공적인 사람은 걸음걸이가 확신에 찬 빠른 걸음으로 걷습니다.
다섯째,성공적인 사람은 시간을 잘 지킨다고 합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시간을 꼭 지킨다고 합니다.
2. 거듭났을때 삶은 빛난다.
중국 내지 선교의 개척자 허드슨 테일러 목사의 이야기 그가 중국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한 청년이 "신자가 되는데 몇년이 필요합니까?"라고 물었다. "램프의 심지는 얼마 동안 타고 빛을 발합니까?" 테일러 목사가 이렇게 반문하자 청년은 "그야 심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라고 대답했다. 테일러 목사는 청년의 손을 꼭잡고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삶의 빛이 그 영혼에서 타오르게 된답니다."
3. 세상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것 세가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것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입에서 나간 말입니다. 우리가 한 번 한말은 다시는 돌아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화살이라고 합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거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째는 흘러간 세월입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성이라는 법정에 서서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며 "무엇을 잃었으며 또한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물음을 묻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얻은 것에 감사하고 잃은 것을 반성할 때 세월은 흘러간 것만이 아니라, 새롭게 살아 갈 수가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4. 걱정할 필요없는 걱정
기독교 출판협의회 회장 여운학 장로의 칼럼에서 "왜 너는 걱정하느냐?"의 일부분 발췌 "어느 권위 있는 연구 조사에 의하면 우리의 걱정 근심 가운데 80%는 일어 날 수 없는 쓸데 없는 것이며 12%는 자기와 상관 없는 일이고 오직 8%만이 진정으로 걱정할 만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나머지 8%의 걱정 근심도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8%까지도 하나님께서 대신 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는 하루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살롬"
5 이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득자는 꼭 "우리들"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리고 모름지기 이렇게 덧붙일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하는데 대해 당신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링컨은 저 유명한 메티즈 버어그의 연설에서 이 "우리들"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 연설에서 그는 몇번이고 "내"가 아니라 "우리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을 주의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위대한 전쟁터에서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기도를 올리기 위해 여기에 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위대한 사업에 한 몫 끼어들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들"이라는 말을 써야 할 것입니다.
"나"를 사용해서는 안될 말입니다. "나"라는 말은 쓸쓸한 말입니다.
6. 승리하는 사람과 패하는 사람
승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예"와 "아니요"의 선택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실패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예"와 "아니오"의 선택이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쓰러지면 언제나 일어나 앞을 보지만 실패하는 사람들은 쓰러지면 뒤를 돌아옵니다. 승리하는 사람들은 눈을 밟아 길을 만듭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눈이 녹기 만을 기다립니다. 승리하는 사람들의 호주머니 속에는 꿈이 들어 있고 실패하는 사람들의 호주머니 속에는 욕심만 잔뜩 들어 있습니다.
7. 오묘한 자연의 섭리
어떤 농부가 큰 호두나무 그늘에 앉아 쉬다가 옆에 있는 호박을 보고 "하나님도 참! 저렇게 큰 호박이 왜 약한 덩쿨에 달리게 하셨담. 저 높은 곳엔 작은 호두가 달리게 하셨고 …"라고 중얼 거린 후 잠이 들었다.
조금 후 호두 하나가 뚝 떨어져 농부의 머리를 때렸다. 농부는 화들짝 놀라 농부의 머리를 때렸다. 농부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며 말했다. "저 큰 호박이 높은 곳에 달렸다면 나는 큰일날 뻔 했구나, 작은 호두를 높은 곳에 두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호박은 낮은 곳에 있어야지요
8. 잃는 고통과 찾는 기쁨
인간이 살아가면서 체험하는 쓰라린 아품중의 하나는 잃어버리는 고통입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잃는 아품도 비례합니다. 내 것을 많이 가질수록 잃어버리는 고통은 지속되며 또 잃어 버릴까 불안에 떨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내가 가지고 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할때, 잃는 고통에서 해방을 얻고 자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기의 자그마한 소유일지라도 잃어버릴 때 오랫동안 괴로움을 느낍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향한 구원의 심정을 잃는 것에 대한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양이 백마리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마리를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 다니게 됩니다. 찾은즉, 나는 잃은 것을 찾았노라 하면서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9. 그리스도인의 찬란한 슬픔
그리스도인에게 찬란한 슬픔이란 무엇인가? 이는 이 세상의 어떤 종류의 슬픔보다 자신의 죄악을 돌아보는 회개 눈물이 바로 찬란한 슬픔입니다. 찬란한 슬픔 후에 다가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평안을 만나 보십시오.
내가 슬프다고만 슬픈 것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찬란한 슬름은 회개의 눈물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옥합을 깨뜨린 여인 가슴을 쏟는 고통의 눈물로 주님의 발을 씻기던 여인 이 여인의 슬름은 찬란한 슬픔 영혼을 찾는 슬픔입니다.
10.우리들의 삶은 여행길
우리들의 삶은 여행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이 바로 인생의 긴 여행의 과정이라면 기차역 구내의 안내 표지판 같은 것으로 확실하게 표시가 된 것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다음에 내릴 역은 어대에 어디쯤에서 인생의 길이 바꾸어진다고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인생을 정확하게 안내하는 안내판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과 함께 갈때 방황하지 않고 확실한 삶의 여행길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11.똑 같은 경험 반복
항상 무사안일 하게 10년을 한 직장에서 지낸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창의력을 전혀 발휘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적당히 대처하며 지냈다.
이런 소극적이고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이 사람은 승진에서 계속 밀려 났다.
그는 회사 고위 간부에게 하소연을 하며 "그래도 내게는 10년간의 경험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간부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바로 그 점이 당신의 문제 입니다. 당신은 한 해의 경험을 10회나 반복했을뿐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크리스천이 아무리 몇 십년 동안 믿었어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12.얼마나 하나님을 경배하나?
미국의 저명한 "가정부인"지에 보통 사람의 생애를 70년으로 생각하고 분석한 결과를 게재했다. 여기에 보면 6년을 먹는데 소모하였고, 11년을 일하는데 5년반을 세탁과 옷 손질에 3년을 교육에 8년을 오락에 6년을 걷는데, 3년을 독서에 3년을 대화에 24년을 잠자는데 겨유 6개월을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데 사용한다는 분석이 있다. 70년을 사는 인간이 불과 6개월간을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 날에 간다? 인생의 1%도 안되는 0.7%의 삶을 바치고 그토록 큰 사랑과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니 참으로 믿음이 얼마나 좋고, 아가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 수 있다. 나는 몇 개월쯤 될까?
13 두려움 없는 삶의 비결
어떤 사람이 공동묘지를 넘어 막 마을로 가려하다가 너무나 밝은 얼굴로 뛰어노는 한 꼬마를 만났다. "공동묘지 근처인데 너는 무섭지 않니"이 사람이 이렇게 물자 꼬마는 "아뇨"라고 하면서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쳐다 봤다. "왜 무섭지 않니?" 다시 이 사람이 묻자 꼬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빠가 이 묘지 관리인이거든요"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이사야41:10)
14 승리의 비결
1977년 9월 15일, 우리나라의 등반대가 세계에서 8번째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여 전세계에 우리 민족의 위대성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등반 대원들이 돌아와서 이번 등반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힘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이 장도에 오르기 전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는데 그 때 읽은 성경 말씀이 시편 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우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는 말씀이였습니다. 그들은 산에 올라가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마다 등반을 포기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등산가와 같습니다. 커다란 계획을 세우고 그 정상에 올라가기 위하여 여러가지 준비를 합니다. 훈련도 합니다. 면밀한 계획도 세웁니다. 그러나 모두 성공하는게 아닙니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다 떨어지기도 합니다. 부상 당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포기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디는 사람은 결국 정상을 정복하여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 승리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라는 말씀이며 새힘이 되시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15 참는것은 곧 사랑이다.
사도 바울은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라고 말했다. 여러나라 금언에서 볼 수 있듯이 인내는 사랑을 실천하는 유일한 길이다.
"한 줌의 인내는 한 부쉘의 뇌보다 더 값지다"-네델란드-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프랑스-
"인내는 악을 쳐 이긴다"-독일-
"인내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전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다"-이탈리아-
"인내는 천국에의 열쇠이다"-터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21:19) 참고 견디는 자에게 생명이 있다. 언제나 참고 견디는 정신을 배워 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16.우산을 준비하고 비오기를 준비하자
한 작은 농촌 마을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모든 농작물은 메말라 가고 가축들이 죽어가고, 모든 주민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어느날 오후, 마을 주민들은 비를오게 하도록 교회에서 기도회를 갖기로 했다. 그들은 계속 모여 기도했다. 마침 그때 하늘이 번쩍이고 침침한 구름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계속 기도했다.
그들도 모르게 바람이 거세어지고 하늘은 구름으로 어두워 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천둥이 치고 대문이 흔들거렸다. 모든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마침내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서로들 껴안고 춤을 추고 기쁨의 환성을 올렸다. 갑자기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8살쯤 먹은 한 소녀가 온통 함박 웃음을 짓고 우산을 쓰고 비를 바라다 보는 모습을 돌아 본 것이다. 모든 주민들이 비오기를 기도했으나 소녀처럼 비올 것을 믿고 우산을 준비하는 신앙이 부족했던 것이다.
17 후탁성도
요즘 후탁 성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후탁성도란 무슨 말인고 하면 일주일 내내 성경 한 장, 찬송 한곡 안부르다가 주일날이 되면 먼지가 쌓인 성경 찬송을 "후"하고 불고 "탁"하고 쳐서 먼지만을 털고 나오는 성도를 가르치는 말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면회 오는 정도로 신앙생활을 하나다면 그의 삶을 주님이 어떻게 인도하시겠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일 것입니다.
18. 기도를 위한 제안
여기 당신의 기도를 돕기 위한 몇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1.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말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6:1)
2.고백하십시오. 당신의 조그만 잘못이 당신을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오"(요일1:9)
3.말하십시오, 하나님께 당신과 형제들의 필요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6,19)
4.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이 배운 것을 실천하는데 도우시도록.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19.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의 모습
어린 아이가 이 세상에 때어날 때 세 가지 모습을 합니다."울고, 잡고, 발버둥친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사람들이 일생동안 반복하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살아감에는 슬퍼도, 기뻐도, 눈물이 있고 성취하려고 발버둥치고 소유욕에 붙잡으려고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정신없이 이 땅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살아가며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우리를 알고 나의 삶을 인도해 주시는 주님을 알았을 때 비로서 나의 사명을 알고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20. 사과 속의 씨앗
"누구든지 사과 속의 씨앗은 헤아릴 수 있어도 오직 하나님만 이 씨앗 속의 사과를 헤아릴 수 있다(Any fool can count the seeds in an apple but only God can count apples in a seed)"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인간은 유한하면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우둔하고 하나님은 지혜로우시다는 것입니다. 사과 속의 씨앗이야 쪼개어 보면 10개이내의 적은 수 입니다. 누구든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씨앗을 심게 되면 장차 얼마나 많은 사과나무가 자라서 사과가 열릴 줄은 모릅니다.
21. 달모양과 성도
우리들의 믿음은 빌려 줄 수도 없고 빌려 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생활을 달의 모양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믐달 같은 성도는 있으나 마나한 성도입니다. 초생달 같은 성도는 삐뚤어진 신앙을 가진 성도입니다. 상현달 같은 성도는 완전한 것 같으나 부족한 성도입니다. 보름달은 남에게 비추어 주는 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는 성도입니다. 주위를 밝히고 세상을 밝히는 세상에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는 성도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달이라 생각합니까?
22. 왜 기도 하는가?
죤스라는 학자는 "사람은 왜 기도하는가?" 하는 질문은 마치 뻐꾸기는 왜 우는가? 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또 독수리는 왜 끝없이 창공을 치솟아 오르는가? 하는 질문과 다를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뻐꾸기는 울도록 지음을 받았고 독수리는 높이 날 수 있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기도하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기도를 요구합니다. 기도 없이는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23.극한 환경이 만드는 "最高"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료는 꽃이나 열매에서 추출한 것이 아니라 고래 기름에서 추출한 것이다. 그런데 보통 고래 기름에서 향료가 나오는게 아니라 병든 고래의 기름에서 나온 물질이 향기로운 향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엠비기스"라고 한다.
병든 소에서 우황이 나와 해열, 진정, 강심제로 쓰인다. 로미산 정상 부근에 나무가 자랄 수 없는 "수목 한계선"이 있는데 거기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겨우 웅크리고 있는 나무가 가장 공명이 잘되는 바이올린 재료가 된다. 고난은 인생을 값지게 한다.
24. 하나님을 아는 방법
하나님을 자연 속에서 찾아보면 그의 존재와 그의 지혜와 능력을 엿볼 수 있고, 역사 속에서 찾아보면 도덕적 통치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으며, 인간의 마음 속에서 찾아 보는 사람도 하나님의 인격성과 도덕성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추적이 낳은 잡다한 종교와 철학등이 고장난 라디오의 잡음처럼 혼란 스럽다. 하나님이 성경 속에서 이스라엘 역사와 예언자를 통해서 자신을 직접 계시했고 예수는 그 성경 주체요. 성육신이다. 예수를 보고 아는 것이 하나님을 보고 아는 것이다.(요14:7-10).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없다.
※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 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14:7)
25. 절대변수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만능의 기계 컴퓨터 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폴로13호의 고장 확율은 100만분의 1이였다. 그러나 고장났다. 괄호 안의 수자가 전부 플러스일지라도 괄호 밖의 수자가 마이너스일때 괄호 안의 수자는 마이너스로 변해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을 게산에 넣지 않으면 실패한다. 아무리 보약을 먹어도 하나님의 시한은 못 막는다.무에서 유를 만들고 쓰례기더미 속에서 장미를 피게 하며.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는 하나님의 절대 변수는 컴퓨터의 초인적 게산도 무로 만든다. 모세의 마른 지팡이 하나로 애굽을 이기게 하신 절대변수이다.
26. 요한복음과 믿음
요한복음은 믿음과 영생의 책이다.
믿음이란 말이 98회 사용되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받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믿음으로 배에서 생수가 터지듯 성령을 받는다 (요7:38) 믿음으로 부활에참여하고(요11:26) 믿음으로 빛 가운데 거하며(요12:46) 믿음으로 예수의 큰일을 행한다(요14:12) 요한 서신에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고 했으며(요일5:4) 바울은 믿음으로 성령을 받고(갈3:2, 3:4) 믿음으로 악마를 이겼다(엡6:16) 히브리서 기자는 신.구약 성도의 모든 덕은 믿음의 열매라고 말하고 있다(히11장)
27. 예수의 제자된 표식
1.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생활(눅14:27) 십자가는 자원해서 지는 것이며,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자기 삶을 내 안에서 사는 생활이다. 중생으로 출발한다.
2. 말씀 안에 거하는 생활(요8:31) 성경 속에 거주하고 성경을 먹고 마시며 사는 순종 생활
3. 열매 맺는 생활(요15:8) 열매에는 두가지가 있다. 성령의 열매, 즉 품성의 열매와 전도의 열매이다.
4. 사랑(요13:34)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예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 이 벳지를 달지 않은 크리스찬은 가짜이다.
28. 유일의 길. 질리. 생명
범죄 이전의 아담은 ①하나님과 통했고 ②하나님을 아버지 알듯 알았고 ③죽음과 죄를 모르는 생명을 소유했었다. 그러나 범죄 후 ㉮ 하나님과의 대하는 단절되고 ㉯하나님 아는 일에는 무지하고 ㉰죄와 생명과와 차단된 가인족이 되었다 아담은 3중 상실을 했다. ⓐ하나님과의 교통 상실 ⓑ하나님 지식 상실 ⓒ생명상실
예수님은 3중 회복을 해 주셨다 ㉠그의 십자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회복 ㉡말씀이 육신되고 하나님이 사람 되신 분 하나님께 대한 최선 최후의 계시이며 진리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중생과 영생을 주신다. 그 유일성은 내 생명의 수보다 유일하다.
29. 나사로야, 무덤에서 나오라
죽어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께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그곳에서 나오라"하자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왔다(요11:44)
우리가 처해 있는 곳은 어디인가? 어느 무덤 속에 자고 있는가 살펴보자. 회의의 무덤인가? 큰 죄의 무덤인가? 세상 허욕과 근심의 무덤인가? 일 속에 공부 속에 파묻혀 못 나오는 무덤인가? 무슨 시험의 무덤인가?
무덤에 있는 자들아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을 듣자, 아무개여. 네 무덤에서 나오라, 지금 그대가 처해 있는 무덤에서 나오라.
1."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테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사49:15-16)
2."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사43:1)
3."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8:32-39)"
30.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
세가지가 부정되고 있다. "①하나님의 자녀는 유전이나 혈통으로 출생 될 수 없다 베드로의 자녀일지라도 예수를 개인적으로 영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못된다 ②종교 감정적 흥분과 황홀과 도취감 같은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태어날 수 없다 ③종교적 의지와 노력과 성실을 다하고 고행과 금욕 수도생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돌은 아무리 닦아도 돌이고 아무리 좋은 소도 사람은 아니며 아무리 성자라도 하나님의 자녀는 못된다. 그것이 종(種)의 원리이다.
31. 그리스도의 향기
주님과 우리 사이를 표현하는 여러 비유와 상징이 있다. 포도나무와 가지, 양과 목자, 스승과 제자, 친구, 신랑과 신부, 몸과 지체 그리고 바울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요, 대사요, 향기라는 표현을 썼다.
중은 중냄새, 장사꾼은 돈냄새, 정치가는 정치냄새, 도둑은 도둑냄새가 있다. 사냥개는 사람마다 다른 냄새를 추적한다. 우리에게는 예수 믿는 냄새가 나야 한다. 이광수의 소설 "사랑"속의 순옥은 자기 피가 향기롭기를 원했다. 머지 않아 과학자는 마음의 냄새를 재는 기기를 만들것이다. 내 표정 속에, 피속에, 꿈속에, 무의식속에, 죽음속에 예수의 향기를 풍기길 바랍니다.
32. 신앙과 미신
하나님의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 불신이라면 사실 아닌 것을 사실처럼 믿는 것이 미신이다. 따라서 참 사실을 참 사실대로 믿는 것이 참 신앙이다.
인간을 신앙의 면에서 세 가지로 분류한다면 무신(無信), 미신(迷信), 진신(眞信)으로 분류할 수 있다. 말을 바꾸면 사실은 하나인데 안 믿거나 잘 못 믿거나 옳게 믿거나 셋 중 하나인 셈이다.
더 생각해 보면 못 믿거나 바로 믿는 양자 택일인 것 같다.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둘 중 하나이지 제 3의 입장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진리가 인간의 무지와 미지 속에 잘못 믿어져 왔던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까지 전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천동설을 믿었다. 불신자의 미지(未知)와 무지(無知) 속에서 예수가 못 믿어지고 있다. 사실을 안다면 안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33. 생명 로고스
태초에 말씀[예수(로고스 )]이 계시니라. 이 예수는 하나님과 함께 계시고 그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니(요1:1) 만물이 예수를 말미암고 예수를 위하여 창조 되었으며 예수 안에서 존립한다(골1:16-17)
예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모든 무릎이 그에게 굻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빌2:11)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에게 주고(마28:18) 그 안에서 통일되게 하신다(엡1:10)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34. 인생의 毒을 다스리는 믿음
어느 시골에 아름다운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갑자기 주위에 독초가 돋아 나기 시작하더니 물고기가 죽었고 가축들도 그 물을 마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연못가에 버드나무를 심어 보자고 말해 동네 사람들이 버드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러자 버드나무가 자라면서 독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양분을 다 빼앗아 그 독초는 죽었고 곧 물이 맑아져 물고기가 살고 가축들도 다시 그 물을 마셨습니다. 때로는 인생에 독소가 돋아날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심겨지면 모든 독기가 사라집니다.(김선도칼럼)
35. 1%의 영감이 없이는…
에디슨은 성고으이 비결을 묻자 "99%의 노력과 1%으 영감 덕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누구나 자신의 우수한 머리만 믿지 말고 땀흘려 노력하라는 권면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1%의 영감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 그 영감이란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 짓는데에 1%의 비중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그 1%가 채워지지 않으면 99%가 송두리째 무위로 돌아가야 함을 알아야 한다. 비율로는 1%에 지나지 않지만 그 중요성은 99%의 노력보다 오히려 더할지도 모른다. 1%의 영감. 그것은 하나님의 몫이고 역활이다. 하늘과의 통로를 열지 않으면 1%의 영감은 주어지지 않는다. 기도로, 뜨거운 기도로, 그 통로를 열자.
36.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장 9절에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다. 하나님이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장소를 몰라서 "네가 어디 있느냐" 라고 부르신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피해서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아담을 하나님이 찾아 내셨다. 찾기는 찾았는데 속이 병들고 찢겨 있고, 하나님의 형사이 죽어 있고 인격이 죽어 있고, 영혼이 죽어 있고, 마음과 정신이 병들어 있었다. 이것도 답답하고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탄식하신다. 약속을 지켜야 할 네가 어디 있느냐? 인격적인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네 본래의 모습이 어디 있느냐? 양심적인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부르시고 계신다.
37. 내가 문을 열자
예수님이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성화 있는데 성화를 본 사람이 그 그림을 그린 화가에게 물었다. 이 그림에 문이 있는데 이 문을 밖에서 열 수 있는 고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더니, 화가가 말하기를 "이 문은 밖에서 열 수 있는 고리가 없으므로 안에서 열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마음의 문은 밖에서는 열 수가 없다. 안에서 부터 내가 열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스도를 향하여, 지금 이 순간 내가 안으로 부터 마음 문을 열고 은혜와 축복을 받아야 한다.
38.하나님을 아는 방법
설익고 건방진 공대 4학년생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대는 모는 것을 아는가?" 했더니 조금은 안다고 했다. "10퍼센트를 아는가?" 했더니 100만 분의 1도 모른다고 했다. "그럼 그대가 모르는 99퍼센트 속에 하나님이 존재할 수도 있지 않는가?" 했더니 그 다음에는 존재하는지 않는지 그것도 모른다고 했다" "그럼 그 모르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했더니 그것도 모르겠다고 했다."그럼 그 모르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했더니 그것도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는 전 공간과 시간, 그리고 모든 존재를 다 뒤져 볼 수 없다. 하나님을 철학 속에서, 비종교 속에서, 역사 속에서, 이 성과 양심 속에서, 실험관 속에서, 자연 속에서 찾아봐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면 하나님을 안다. 그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다. 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되어 내게 오신 분이다. 그 밖에 하나님을 알 길이 없다(요14:9)
39.선(先)믿음, 후(後)지식
선생이나 부모나 선배들이 일러 준 것을 처음에는 덮어 놓고 믿고 해 본 결과 실효를 알게 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길을 모르면 아는 사람에게 물어서 가는데 일고 가는 것이 아니고 믿고 간다. 결혼도 믿음으로 하는 것이지 뿌리째 송두리째 어찌 사람을 다 알고 하는가. 약을 알고 먹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음식도 믿고 먹지 어찌 다 일일이 실험해 보고 먹는가. 진실하고 존경할 만한 분들이 열심히 권해서 해보면 그대로 되는 일이 많다. 인삼 같은 것은 효과를 본 많은 사람들의 증언과 증거 때문에 먹는다. 예수 믿는 것도 수천년 동안 너무도 존경스럽고 진실한 분들이 너무도 열심히 죽으면서까지, 그렇게 많은 분들이 권해서 믿어보면 과연 사실인 것을 후에 알 수 있다.
40. 가나안 도착
가나안은 광야를 지나서 전쟁을 치르고 요단강을 건너야 도착하게 된다. 천국은 세상을 지나고 영적인 싸움(선한싸움)을 치르고 죽음의 강을 건너서 도착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출애굽 여정은 기독교인들의 신앙 생활의 여정과도 같다. 창조는 혼돈에서 질서를 말하며 출애굽의 여정은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세상에서 천국으로, 죄에서 의로, 지옥에서 천국으로의 여정이다.
41. 어리석은 자의 정의(正義)
"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14:1)" 성경의 가장 어리 석은 자는 하나님 없이 사는 자이다. 성경의 제 1악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신앙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케에르 케고르는 '악의 반대는 선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했다. 이와 반대로 성경이 가르치는 지식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이다(잠1:7).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교육 만큼 인간에게 참 사는 지혜를 알게 해 주는 교육은 없다. 무신론적 지성은 빛나는 악덕이고 백야(白夜)처럼 어둡다.
42. 헌신의 뜻
한 대학생이 목사에게 와서 예수님께 헌신한다는 뜻을 설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생각 끝에 백지 한 장을 가져오게 해서 그 대학생에게 내밀면서 "예수님전 백지 위임장"이라고 쓴 후 주소와 성명과 날짜를 쓰고 지장을 누르게 했다. 주님은 그 위임장에 무슨 말이나 쓸 수 있도록 위임하는 것이다.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부호 미망인의 외동 딸이 있었다. 귀국 때는 한아름 진귀한 선물을 사다 주었다. 이번에는 국제 전화가 왔다 "네 생일에 무슨 선물 사다 줄까?" "엄마, 선물은 싫어 다 그만둬" "그럼 무얼 원하니?" "엄마가 필요해 엄마 자신이" 헬라의 어느 왕이 궁의 보석, 토지, 건물, 의복 모두를 나누어주었다. 한 궁녀만은 원하는 것이 없었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왕이 물었더니 "나는 임금님 자신을 원합니다"했다. 왕은 그녀를 왕비로 택했다. 우리는 예배드리고 헌금 드리고 찬양을 드린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나 자신을 원하시고 나는 주님 자신을 원한다.
43. 성령이 알게 하신 지식
아무리 완전한 지식도 인간의 지식에는 그림자가 있고 반대 이론이 50%는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이 가르쳐 준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이 내 죄와 죽음에서 나를 구속하셨다는 지식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의 부활이 내 부활이라는 사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고 그가 나를 죽도록 사랑하신다는 사실, 주님이 다시 오시고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은 천지가 없어지고 내가 열 번 죽어도 절대 확신하는 성령이 내 영에게 가르쳐 준 지식이다.
44.예수의 살과 피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예수를 믿어 그와 연합하여 그의 가지(요15장)가 되고 그의 신부가 되고 그가 성령으로 내 속에 대신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크리스천은 먹고사는 양식이 다르다. 세상 떡 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 떡, 생명수인 예수를 먹고산다. 예수가 문자 속에 성육신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성경이 성령으로 신자의 의식과 생활 속에 혈육화 될 때 예수는 내 속에 사시게 된다. ①음식은 생명의 최우선 필수 요소이다. ②음식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필요하다 ③음식은 날마다 필요한 것이다. ④음식의 질이 건강과 성장을 좌우한다.
성경 속의 예수를 주야로 묵상하며 거기에다 뿌리를 박고 그 속에 살며(요8:31) 내 의식을 예수 의식으로 바꾸며 그를 먹고 마시며 사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다.
45. 필요한 기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데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일들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죄를 이기고,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기도해야 한다. 주의 복음이 전파 되는 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기도해야 한다. 갈바를 알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위해서 중요한 문제를 앞에 두고 바른 결정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더 큰 믿음을 얻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은혜에 고마움을 느낄 때 감사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
46. 천국과 은혜의식
세상은 공작이 날개를 과시하듯 경쟁과 과시와 비교하는 데에 온갖 삶의 정력을 소모하고 있다. 미모, 가문, 소유, 권력, 예술, 웅변, 노래, 학력, 의복, 체력 등을 겨루어 1등하고 스타가 되고 인기를 얻기 위해 싸우고 죽이기까지 한다. 패자와 승자가 생기고, 등수와 우열이 생기고,빈부와 상하와 온갖 차등이 생긴다. 어린이 세계에도 있고, 실업인 세계 체육인, 예술인, 인기 직업인, 정치인, 학계, 심지어 종교계까지 라이벌은 없는 곳이 없고, 시기, 질투, 중상, 모략 없는 세계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천국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은혜로 성화 되었고 성령의 은사로 봉사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랑했고, 주시는 힘으로 순교했기 때문에 자랑하고 뽐낼 것이 하나도 없다. 자기 실력으로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은혜 의식은 겸손과 감사와 찬송과 영광만을 주님께 드리고 싶은 것이다. 거기는 우월감과 열등감이 발붙일 곳이 없다.
47 반 예수 판결에 대한 사형
"일요일 오전 천하의 교회의 종소리를 듣는다, 저것은 모두 1900년 전 로마의 사형수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증거는 아무 데도 없다. " 니체의 말이다. 니체는 거짓말쟁이다. 예수 부활의 증인과 증거만큼 강력한 증언은 일찍이 역사상 없었다. 2000년전 예루살렘의 종교 법정"산헤드린"과 빌라도는 대표된 로마 제국의 정치 법정과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죽이라고 아우성치던 민중 세력은 합세해서 예수를 사형했다 니체 족은 살신(殺神)을 선언하고 사르트르 족은 예수를 살신보다 더 냉혹하게 묵살(默殺)했다. 분노한 민중은 K.K.K단이나 공산당 같은 테러리스트 바라바를 등장시키기 위해 예수를 말살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예수를 부활시켰다. 예수 부활 사실은 인류의 총의(總意)로도 지울 수 없고, 천하가 없어져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 부활은 과거와 미래의 반 예수 판결 전수(全數)에 대한 사형인 동시에 예수의 권위에 대한 최종적인 확증인 것이다.
48. 어리석은 부자의 4무(四無)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는 부지런하고 영리하며 출세한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물질적 성공 외에 지위나 학문, 예술과 스포츠와 기술과 명성등 스타격인 인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행복했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네 가지 안 가진 것이 있다.
① 하나님이 그의 의식 속에 없었다. ②내세가 없었다.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다. ③ 영혼을 위한 대비가 없었다. 참 생명은 인간의 영인데 껍데기 가짜 생명만을 생각했다. ④ 이웃이 없었다. 내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내 영혼을 구하려는 노력과 내 이웃을 도우려는 노력도 하나이다. 그것이 내세를 위한 준비이다(눅12:20-21)
49.바로 말해라.
크리스마스의 상징처럼 눈에 띄는 풍경은 산타클로스와 징글벨 상가세일, 캠페인일 것이다. 거기에다 각종 파티와 교회가 벌이는 사랑과 구제 행사에 으레 신, 구교 대표들과 국가 대표들까지 인도와 박애의 굵직한 메시지가 성명서처럼 발표된다. 아무튼 예수의 성탄이 인류 역사의 A.D 와 B.C의 분수령인 만큼 인류의 성탄절이 된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 사단이 발명한 전술 가운데 독특한 것은 연막 전술이다. 예수님을 산타클로스화 시켰다. 예수님은 병자와 가난한자 눌리고 고통받는 자의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몽매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을 깨우치는 계몽과 개과천선시키는 산타클로스나 석가나, 해방자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복음의 부산물일 뿐이다. 말을 바로 해야 한다. 예수는 죄값으로 죽은 사람들을 구속해서 영생을 주러 오셨다(요3:16, 사53장) 그것이 성탄의 핵심 진리이고 복음이다. 자기 죽음으로 죽음을 죽여서 영생 얻게 하려 오신 것이 성탄의 참된 의미이다.
50. 예수 안에 산다는 것
어린아이는 내 살 길은 엄마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배가 고파도 엄마 생각, 몸이 아파도 엄마 생각, 신기한 것을 봐도 엄마를 찾고 잘 때도 엄마 손을 붙잡고 엄마 품에서 엄마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듭니다. 크리스천과 주님의 관계도 사랑과 생명의 관계이며 인격적인 신비의 관계이며 영과 영의 관계이다 내주(內住)생활이란 양이 목자를 의존하고, 아기가 부모를 의존하듯, 나무가 태양과 공기와 대지에 뿌리를 박고, 의존해 살듯, 제자가 스승을 믿고, 노아가 방주에서 주만 의지하고, 출애굽의 이스라엘이 주만 믿고 살듯이 그렇게 사는 것이다. 95년도도 주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중, 고등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51. 사랑함으로 배우는 사랑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수를 아는 지식이 자라고 성도가 성화(聖化) 되기 위해서는 죄를 이기는 것과 성령 안에서 사랑의 생활이 익어야 한다. 대설교가이고 대 신학자일지라도 사랑이 성숙하지 못하고 사랑의 열매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며(고전13장) 신유의 은사가 있고 삼층 천을 갔다 왔을지라도 사랑이 떫은 감 같으면 껍데기 신자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을 얻는가? 사랑은 첫째로, 성령 충만의 열매이다. 고로 지속적인 성령 충만의 비결을 배우고, 둘째로, 사랑은 사랑함으로써만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은 말함으로 배우고, 노래는 노래함으로 배우고, 일은 일함으로 배우듯이 사랑은 행동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써만 키울 수 있다.
52. 주여 감사합니다.
어느 중년 성도가 대학 병원의 한 수술실에서 혀의 암 때문에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마취주사를 손에든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며 "마지막 남길 말씀은 없습니까?"라고 했다. 글로 쓸 수는 있겠지만 혀를 사용하는 언어는 이것이 최후이다. 간호원 조수, 견습 의사들… 둘러선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가는 심각했고, 잠시 침묵과 긴장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저마다 만일 나라면, 만일 내게 한마디 언어만 남아 있다면 누구의 이름을 부를 것인가 생각해 본다.
드디어 입이 움직이고 두 줄기 눈물이 흐르더니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라고 세번 되풀이 했다.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끼리만 아는 비밀인 것이다.
53. 신앙적 사고방식
사람은 늘 된다고 생각하고 되려고 노력하면 노력하는 대로 되는 경우가 많다 "이이고 죽겠다", "다 틀렸다", "나는 죽었다"하는 식의 부정적 사고 방식과 언어 습성부터 고쳐야 우리 민족의 의식 혁명이 이루어질 것 같다. 민수기 13장의 열 두 정탐 가운데 열 명은 자신들은 가나안 족속의 눈에 매뚜기로 보이고 자신들 눈에도 자신들이 거인 앞의 메뚜기처럼 보이더라고 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이 우리의 밥이라고 했다. 전자는 불신앙적 사고를 했고, 후자는 신앙적 사고를 했다. 전 이스라엘군은 블레셋의 골리앗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떨었으나 소년 다윗은 골리앗을 신앙의 눈으로 볼 때 그의 밥이었다. 신앙적 시야, 신앙적 사고의 습성을 길러야 겠다.
54. 전심(全心)의 신앙 생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너희가 점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3)" 히스기야 왕은 병들어 꼭 죽게 됐을 때 평소에도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던 그는 전심으로 기도하여 15년을 더 사는 축복을 받았다(사38장) 솔로몬은 전심으로 지혜를 구했다. 성경의 간구들은 전심으로 생명을 건다. 야곱의 기도, 모세의 기도, 엘리야의 기도, 에스더의 기도, 사도행전의 인물들은 전심 전력 지성을 다했다. 누가복음 18장의 과부의 기도도 한 맺힌 기도였다. 철저히 믿자, 산 순교자가 되자.
55.내 가슴에 타는 사랑의 불
내 가슴 한복판에 십자가를 세우고 속죄의 불타는 사랑을 담자. 불로 하나님을 불같이 사랑하고 이불로 사람을 불같이 사랑하자. 내 가슴에 타오르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불길로 이 더러워진 거리 구석 구석을 태우리라
이것이 나의 종교이다. 나의 종교는 교리가 아니다. 예배가 아니다. 가슴에 타오르는 예수의 사랑의 불길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지 교리나 의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랑없는 기독교는 울리는 꽹과리이며, 휴지같이 쓰레기통에 버릴 것들이다.(고전13장)
56.크리스찬과 시기심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남이 잘되고 잘하는 것을 보고 불행해서 못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는 것 같다. 시기심은 교만과 함께 악마의 죄, 가인의 죄, 예수님을 죽인 죄, 인간의 가장 원색적이고 보편적인 죄이다. 남을 중상, 험담, 비난하는 행동처럼 인격의 야비성과 살인성을 드러내는 행동은 없다. 비난 자체가 비난하는 대상자의 어떤 행동보다 자신에게 남에게, 그리고 하나님에게 대하여 악덕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남의 처지와 상황을 다 알지 못하고, 설혹 안다 하여도 내가 그것을 정죄할 만큼 깨끗하지 못하다.
비난할 할 때마다 두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한 평가 절상과 남에 대한 평가 절하가 다른 사람을 나쁜 놈이라 할 때 내가 더 나쁜 놈이 된 것이며, 개자식이라 할 때 내가 먼저 개자식의 자격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이 잘되기를 진실로 바라고 사랑할 때 비판하라.
57.재산
어느 선상(船上)에서의 이야기다. 선객은 모두 부자인데 그 가운데 랍비 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부자들은 서로 자기의 재산을 견주고 있었다. 그러자 랍비는 "내가 제일 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부를 여러분에게 지금 보일 수는 없소이다"했다.
해적이 배를 습격했다. 부자들은 저들의 재산을 모두 잃었다. 해적이 사라진 뒤 배는 간신히 어느 항구에 닿았다. 랍비는 항구 사람들에게 교양 높음을 이내 인정받아 학교에서 학생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랍비는 배로 함께 여행했던 이전의 부자들과 만났는데, 모두 영락하여 처량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확실히 선생이 옳았어요. 교육을 가진 자는 온갖 것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군요"했다.
이래서 지식은 늘 빼앗기지 않고 가지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교육이 제일 귀중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생겼다.
58.회개란?
예수께서 공생애 메시야의 사역을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회개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어떤 분은 "회개"란 정권 교체이다 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다스려 왔습니다. 내가 내 왕국의 왕이었습니다만 내가 다스리는 나는 밤낮 짜증이 나고 실망과 한숨과 허무와 불안 속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나는 정권을 교체하기로 결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왕국의 왕으로 모시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회개입니다. 내가 나를 지배하던 삶에서 내가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모셔드리는 것입니다.
59.믿음은 은총바탕
믿음은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지적으로 동의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죽으신 십자가 앞에 내 생애를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죽으심은 나의 죽음입니다. 내가 죽을 죽음을 그분께서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주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나의 의를 의해서 다시 사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그때 내 모든 죄가 내 삶 속에서 완전히 씻기는 용서와 사죄의 은총을 경험 합니다.
60.겸손이 낳은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은 겸손한 사람이었다. 상대성 이론 발견으로 크게 성공한 다음에도 대자연 앞에서 자신은 미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어느날 제자들이 아인슈타인에게 "선생님, 선생님의 그 많은 학문, 전문적인 지식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라고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실험 기구에 있던 물에 손가락을 적신 뒤 한 방울의 물을 똑 떨어 뜨리며 말했다. "나의 학문은 바다에 비하여 이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61.두 사람의 죄수
두 사람의 젊은이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한 청년은 그 곳에서 시를 쓰고 창문을 내다 보며 소망을 가지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구름을 보면 구름과 같이 자유로울 날이 오겠지, 바람이 불면 나도 바람과 같이 자유로운 날이 오겠지, 비가 오면 나도 마음껏 흘러 내릴 수 있겠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청년은 벽만을 바라보며 실망과 절망으로 가득했습니다. "나는 갇혔다. 나는 쓸모가 없게 되어 버렸다"고 푸념만을 늘어 놓으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훗날 두 사람이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희망적인 청년은 작가가 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절망적인 청년은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예수님 안에서 기쁨과 소망과 감사가 있어야 겠습니다.
62.이미 죽은 사람들
여객선 아일랜드 여왕호가 침몰했을 때 승객 중 구세군 사관 백 삼십명 가운데 백명이 사망했는데 죽은 시체에는 구명대를 입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모두 구명대를 양보하고 대신 죽어 준 것이다. 제임스 칼비트가 야만인 지역에 선교사로 가려고 양국 상선에 승선 했는데 선장이 거기 가면 죽으려 가는 길이라 했더니 "나는 이미 여기 오기전에 죽은 사람입니다." 했다. 노예가 아니면 갈 수 없었던 토마스 섬에 노예 신분을 자청해서 간 선교사도 있었다. 격리된 나환자 수용소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사신이 되어 갔던 다미엔이 나환자들에게 "나의 형제 나의자매"라고 부를때는 거리감이 있더니 나환자가 되어 "우리 나환자들"이라고 부를때 그는 우리 죄와 죽음의 위치에 대신 서 주신 예수님과 하나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위에서 죽은 사람들이다(갈2:20)
63.우리의 삶의 표준
삶의 표준을 어디에 정해 놓고 사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과 모든 삶이 결정되어 진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의 만족과 쾌락과 부에 표준을 두고 내세도 하나님도 없는 삶을 사느냐? 이성과 합리성에 삶의 표준을 두고 살아가느냐? 양심과 도덕적 표준을 따라서 살아가느냐? 사회 분위기에 삶의 표준을 정해서 살아가느냐? 물질과 육체를 경멸하고 자학하면서 금욕에다 표준을 두고 살아가느냐? 성경을 표준으로 살아가느냐? 어떤 사람은 성경을 표준으로 삼되 율법적인 표준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성경을 표준으로 삼되 기독교적 복음적 표준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64.절망은 죽음을 낳고
러시아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철도국에서 일하는 한 직원이 냉장고 화차 속에 들어간 후에 실수로 문이 밖에서 잠겨져 버렸습니다. 아무리 빠져 나가려고 해도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소리를 질러도 힘껏 두드려 보아도 냉장고 화차의 단단한 시설로 인하여 문 밖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듣질 못했습니다. 혹시 누가 와서 우연히 문을 열어서 구원 받는 길 한 가지만이 희망이었고 얼어죽게되면 죽는 수 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모든 희망을 포기하다시피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그의 몸이 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가오는 죽음을 앞두고 자기의 상태를 화차의 벽에다 기록해 나갔습니다.
"점점 몸이 차가워 진다… 그래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나는 점차로 몸이 얼어옴을 느낀다… 나는 이제 몽롱해진다… 아마도 이것이 나의 마지막일는지도 모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후 다른 직원들이 그 냉장고 화차의 문을 열었을 때에 이미 그는 시체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단히 놀라운 사실은 그 냉장고 화차는 오래전부터 고장이 나 있었던 것이요. 공기도 충분하고 실내 온도가 화씨 오십육도(섭씨 십삼도)의 쌀쌀한 온도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65.부활의 실존적 의미
예수님이 죽었다 살아나신 것이 역사적 절대 사실이라면 ①그가 하나님인 것이 절대 사실이고 ②그이 피가 우리 죄를 대속 하시고 의롭다 함을 얻게 된 것이 절대 사실이고 ③그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 되는 일과 영생 얻는다는 사실을 절대 보장한 것이며 ④새 생명, 풍성한 생명을 주신다는 절대 보장이고 ⑤나를 보호하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넘치도록 주시고(빌4:19) ⑥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⑦성령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평안과 기쁨을 주시며 ⑧몸의 부활과 재림의 약속의 절대 보장이시고 그의 말씀은 절대 진리임을 절대 보장하신 것이다.
66.나는 무엇을 심고 있는가?
가라지를 심고 보리를 기대하지 말라. 악습을 심으며 어떤 날 우연히 고매한 품성의 인물이 되리라고 기대하지 말라. 사기와 증오를 심으며 우정과 사랑을 기대하지 말라. 뱀의 알을 품고 병아리가 깨일 것을 기대하지 말라. 중상과 모략을 심고 선의로 갚아지기를 기대하지 말라. 남의 인격을 멸시하는 사람아 그대가 존경받을 것을 기대한다면 탱자를 심고 감귤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게으른 사람이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심지 않은 밭에서 곡식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이것은 인과의 자연 철칙이요. 하나님의 법칙이다. 지식을 뇌 속에 입력한 만큼 유식할 것이며 선수는 연습한 만큼 챔피언이 될 것이다. 육으로 심은 것은 육이요. 영으로 심은 것은 영이니 내 인생의 밭에 영원한 하나님을 심어 양질의 영원한 생명을 거두자.
67.두려워할 것은 죄
신앙을 부인하도록 기독교인들을 핍박한 로마 황제가 크리소스톰을 체포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신앙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황제가 이 크리소스톰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신하들과 의논했다. "이 놈을 깜깜한 지하실에 가둘까? " 신하 중에 하나가 말하기를 "아닙니다. 그놈은 자기가 믿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하실에 같히는 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조용한 장소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놈을 사형을 시킬까?" 역시 신하가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그 놈은 죽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놈은 말하기를 죽는 순간에 주님 앞에 간다고 했습니다." 왕이 묻기를 "자,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그 놈에게 해야 할까?" 신하가 대답하기를 "죄를 짓게 하십시오. 그는 죄 이외는 아무것도 두려워하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죄가 가장 두려운 것이다.
68.불로소득
어느 학교 교실에서 시험이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남의 시험지를 열심히 보고 쓰고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그 학생의 어깨에 손을 얹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살아야지 불로소득으로 살아가면 되겠나" 이 학생은 이 말을 새로운 삶의 충격으로 받아들여 그때부터 열심히 살아가기 시작해 자신의 삶의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지금 큰 병원의 구매 과장이 되었고 얼마 전에는 담임 선생님을 초청해 대접을 융숭히 했습니다. 그때 자기 마음과 지금 자기 마음을 말하며 "자신을 절대로 불로소득으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혹시 예수님의 사랑을 불로소득으로만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들의 진실한 삶 진실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합니다.
69.우리들의 삶은 여행길.
우리들의 삶은 여행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이 바로 인생의 긴 여행의 과정이라면 기차역 구내의 안내 표지판 같은 것으로 확실하게 표시가 된 것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다음에 내릴 역은 어디에 어디쯤에서 인생의 길이 바꾸어진다고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인생을 정확하게 안내하는 안내판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과 함께 갈 때 방황하지 않고 확실한 삶의 여행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70.가위 바위 보
어린 시절에 누구든지 가위 바위 보를 많이 해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지 바위가 가위를 이기고 가위는 보(보는 종이, 보자기의 뜻)를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일 약한 것만 같은 보가 제일 강한 바위를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범한 어린이들의 놀이에 나타나 있는 살아 있는 진리인 것입니다.
사랑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부드러움이 필요하며 먼저 찾아가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71.기독교의 독특성
세계의 모든 종교 중에 기독교의 독특성을 말할 때 우리는 이런 것을 이야기합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그 종교의 교주의 가르침이 제일 중요하나 기독교만이 예수의 가르침보다도 예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를 구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은 예수의 진리를 믿으므로 영생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으므로 영생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석가모니보다도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더 중요합니다. 유교도 공자보다는 공자의 가르침이 더 중요합니다. 이슬람교도 마호메트의 가르침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단순히 가르침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입니다.
72.좁을 길
그 길은 좁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걸을 수 있는 넓이는 됩니다. 그대가 예수와 함께 걸을 수 있고 주님은 그대와 함께 걷고 계십니다. 그대가 오히려 넓은 길에서 주님을 잃을 것입니다. 무리들이 양 옆에서 밀어붙이니 오직 좁은 길에서만 마음으로 그분을 의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대의 눈이 그분의 눈과 마주칠 수 있는 것은 좁을 길에서입니다. 다른 조언자가 필요치 않습니다. 도움은 오직 그분에게만 오는 것입니다. 오! 축복 받은 좁은 길이여, 거기에는 두 사람의 여유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와 함께 걸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분이 그대와 함께 걷는 것입니다.
73.주(主) -퀴리오스-
신약 성경에 600여회 불려지고 기록된 이 "주"라는 칭호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상처를 자기 손으로 만져 보고야 믿겠다는 도마에게 상흔(傷痕)을 내 보이며 만져 보고 믿으라 할 때 도마의 입에서 터져 나온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라고 한 이 신앙고백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고 마음으로 부활을 또한 네입으로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고 마음으로 부활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했다(롬10:9) 지적으로 예수가 하나님인 것을 시인하고 고백하며 의지적으로 그 예수가 나의 주 인 것을 수락하여 그가 나의 전 생애, 전 소유, 전 행위, 나의 의지와 시간의 절대적 주권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주여, 주여 헛되이 염불하듯 하는 부름이 아니라 마음의 왕좌에 모신 주, 이 주라는 말은 한 글자로 요약한 신앙고백인 것이다.
74.예수 없는 절망
1. 내게 두 가지 절망이 있다. 하나는 무슨 일들이 마음대로 안되는 절망이고, 하나는 마음대로 된 이후에 오는 절망이다(버나드 쇼)
2. 인간 속에는 본질적인 모순이 있는 것 같다. 풍요 지수와 지식 지수와, 예술 지수와 쾌락 지수가 높을 수록 불안 지수, 절망 지수, 자살 지수, 허무 지수, 광기 지수, 불쾌지수가 더 높아진다. 2퍼센트만 일하고 98퍼센트는 놀고먹는 오토메이션 시대가 오면 권태 지옥이 된다는 말이 옳을 것 같다.
풍성한 생명(요10:10). 배에서 생수의 강이 터지는 생명(요7:38). 만나도 만나도 영원한 첫 사랑 같은 새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
75.십자가 사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었던 우주 최대의 러브 스토리이다.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고 예수는 사랑의 화신이며 성경은 사랑의 편지이고 성령은 사랑의 영이시다. 또 우리는 그 사랑의 삼일성(三一性)속에 빨려 들어온 사람이다.
성도의 기도란 사랑의 밀어(密語). 전도는 사랑의 전달, 사랑의 중매. 찬송은 사랑의 노래, 그리고 십자가는 사랑의 드라마의 절정, 사랑의 고백, 사랑의 심장 파열 시건 이다.
십자가는 예수가 하나님과 나의 이름을 부르고 부르다가 죽은 곳 예수가 한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또 한 손으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사랑의 심장이 터진 곳이 십자가이다.
76.절대 은총의 손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갈4:9)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였나니(요15:16).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였음이라(요일4:19)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나니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내가 예수를 택한 것이 아니라 그가 먼저 나를 택했고 내가 그를 안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알고 그가 먼저 사랑하고 그가 믿음을 주었다. 아기가 아버지의 손을 붙잡은 게 아니라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원숭이는 새끼가 어미 몸을 네 발로 붙잡고 다니지만 고양이는 어미가 새끼를 물고 다닌다. 우리 구원의 주체와 확실성의 근거는 고양이처럼 주님의 은총의 절대성에 있다.
77.엑스트라
우리는 무관심한 사람들. 표정 없는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에서 표정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삶 속에서 희로애락을 재대로 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욱 인간적입니다. 우리는 영화 속에 주인공에게만 박수를 보내고 주인공에게만 시선을 주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엑스트라"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구경하듯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지나쳐보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가며 가끔씩 자신이 엑스트라라는 생각이 들 때면 우주 착잡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삶에 주인공입니다. 우리들은 새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78.예수와 성경 배우는 태도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은 성경 전문가이다. 성경 해석을 위해 태어나서 성경 실천을 위해 살다 죽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성경의 주인, 성경의 성육신이신 예수에게 그렇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무지할 수가 없었다. 엠마오 도상으로 가는 두 제자는 부활한 예수에게 예수 부활 사건을 모르느냐고 따지며 예수에 대해 설교하여 예수로 꽉 차 있고, 예수와 함께 가면서도 예수를 모르고 몸은 예루살렘과 예수의 제자들에게서 멀리 떠나고 있었다. 예수에게 눈이 어두웠다. 한편, 삭개오는 비(非)예수의 외모를 가졌으나 재산의 반이라도 나눠주고 토색한 것은 4배나 갚을 실천과 순종의 마음으로 예수를 보았을 때 예수가 그의 구주로 보였다.
예수와 예수의 말씀인 성경은 연구 대상이 아니다. 예수는 예수 따라 실천하며 배울 분이며 성경은 알아지는 책이다.
79.믿음의 조상들의 반열(班列)
명문 가정에서 조상들의 초상화와 족보를 자랑스럽게 소장하듯이 크리스찬들은 히브리 11장에 기라성처럼 수록된 믿음의 조상들을 생각하고 자신의 신앙의 계보와 순도를 가다듬는다.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103:1-2)"이 말씀은 내 개인에게 베푸신 은혜뿐 아니라 믿음의 조상들에게 베푸신 모든 은택도 내게 베푸신 것처럼 잊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이삭을 격려하실 때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아루는 하나님인 것을 상기 시켰고(창26:3-4) 야곱에게 나타나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인 것을 상기 시켰고(창28:3) 광야를 헤메는 모세에게 나타나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임을 상기 시켰고(출3:4-6) 여호수아에게는 모세의 하나님임을 상기 시켰다(수1:2-5).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모세와 다윗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진짜 진짜 사랑하는 아버지이다.
80.뱀의 독보다 더한
독사들은 누군가를 물 때 독침과 같은 역할을 하는 송곳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침"을 통해서 적의 몸에 치명적인 물질을 보내어 즉심한 통증을 느끼게 합니다. 뱀에게 물린 사람은 즉시 의사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뱀만이 그들의 입에서 독을 내뽑는 피조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조심하지 않고 하는 말이 더 위험스런 독이 됩니다. 사람들은 뱀의 독보다도 더 해로운 거짓말을 하고, 소문을 퍼뜨리며 험담을 합니다. 하나님은 뱀보다도 표독스런 혀를 가진 우리에 대하여 더 염려하고 계십니다.
81.성경 식욕
식욕은 건강의 시금석이라고 한다. 식욕이 떨어지면 건강의 적신호이다. 식욕이 왕성하면 젊고 건강한 징조이다. 크리스천에게는 성경이 영의 양식이다. 아기 때는 젖을 먹고 크면 밥을 먹는데(고전3:2). 아기 신자는 스스로 성경에서 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교사들이 젖을 먹여 준다. 신자가 성경을 먹고 살 정도가 되면 다 큰 징조이다. 성경에서 멀어지면 사단에게 가깝고 성경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께 가깝다. 성경에 손 때가 묻을 수록 마음이 깨끗하고 그의 성경이 깨끗할 수록 마음이 더럽다는 말도 있다. 배고픈 사람처럼 목마른 사람처럼 성경 식욕과 성경 갈증이 클수록 영이 건강한 증거이다.
82.겸손의 덕목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의 제일 되는 덕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겸손"이라 대답했다. 그러면 두 번째로 큰 덕은 무엇이냐는 물음에도 역시 "겸손"이라고 했다 다시 세 번째로 큰 덕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한결같이 "겸손"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만인들에게 성자라고 한창 존경을 받을 때에 여지없이 자신의 허물과 죄상을 고백한 <참회록>을 썼다. 겸손에 반대는 교만이다. 교만은 악덕 가운데 제일 근본이 된다. 교만은 악덕의 어미이다. 크리스찬의 겸손은 비굴하거나 굽실거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능력과 자신감에서 나온다. 사람은 자신을 겸손히 낮추기보다는 스스로 높임으로써 상대적으로 남을 업신여기기 쉽다. 그래서 이웃간에 갈등, 미움, 분쟁을 낳는다. 예수님은 가장 크고 높으신 분이면서 가장 낮아지셨다. 인류의 죄를 대신하시고 죽기까지 겸손하셨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
83.부모를 공경하라
이 말을 들으면 상당히 고리타분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옳은 것이다"라고 분명히 명령하고 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에게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부모를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존경하며 자랑한다는 것이다.
요즈음 십대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들의 사진을 오려서 자기 방에 붙이기도 하고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한번 깊이 생각해 보자, 네 부모님을 그렇게 따르고 순종하고 좋아하는가? 부모님이야말로 인간 자신에게 가장 존경받아야만 하는 위인이며 어른이며 스타이다. 다시 음미해 보자 "네 부모를 공경하라"(엡6:1-2).
84.은혜
은혜는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이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은혜는 은혜로 받는 자에게만 은혜가 되는 것이다. 철없는 소리 같기도 하고 장난 비슷한 말로 "우리 어머니 날 곱게 낳아서 이 모양 이 꼴 되라고 하셨나요?"하는 자기 한탄 조의 표현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은 참으로 한심스러운 말이며 은혜를 전혀 생각지 못하는 말이다. 인생이 태어나는데 있어서 선택권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아무렇게나 태어나는 인생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삶은 가장 귀한 하나님의 생명의 은총 속에서 주어진 고귀한 은혜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곧 감격이며 감동이다. 이 좋은 계절 모두에게 은혜의 감사가 있고 충만한 기쁨이 있기를…
85.가난한 심령 예수 천국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팔복 중 제 1복이다. 산상수훈을 천국 헌장이라고도 하므로 이 말씀은 천국 헌장 제1장 1조인 셈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지배를 의미한다. 윤리 문제이기보다는 영의 문제이다. 영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 하나님과 통하는 지성소 같은 곳인데 그 곳이 비어 있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지배하신다. 예수님은 천국의 시금석인데 당시 유대인들은 그들의 영 속에 그를 받아들일 빈 자리가 없었다. 잘못 해석된 율법과, 자아의 교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헬라인들이 플라톤의 철학으로 가득 차 있었듯이 현대인은 과학과 온갖 사상과 우상 같은 자아의 욕심으로 교만해 있다. 영의 포만증에 걸린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가난한 것과 헐벗은 것을 모르는 영적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 세리 삭개오와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눈물로 입맞춘 죄 많은 여인 같은 가난한 심령을 회복하자.
86.사랑의 약탈자
사람 같은 하나님 하나님 같은 사람, 예수는 목마른 사람에게 생수를 굶주린 사람에게 생명의 떡을, 고달픈 사람에게 안식을, 불안한 사람에게 평안을,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병든 사람에게 치료를,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싸움이 있는 곳에 화해를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죽음이 있는 곳에 부활을 심어 준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주장했던 그에게 인류의 존경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헌신을 다해 "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모든 것의 모든 것입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의 약탈자 생명의 약탈자라는 평도 받는다.
87.십자가의 3시제
신앙은 3가지 시제를 가지고 있다고 에밀 브루너는 말했다. 즉 신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 신앙의 과거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이 곧 나의 죽음이며 나의 부활이라는 과거의 확실한 극점을 회고하는 것이다. 신앙의 영원한 기초는 거기에서 출발한다. 우리들 신앙의 절대 보장이 곧 십자가 사건이다. 우리는 2천년전 골고다 산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다. 이것은 과거의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시간과 공간으로 존재하는 사건이다. 내가 십자가의 예수를 믿을 때 그것의 성령의 시제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소망 중에 영원한 미래를 믿고 바라본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은 우리에게 신앙의 과거, 현재, 미래를 허락하신 거룩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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