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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1.한경직 목사 설교 예화 1~30

by 【고동엽】 2022. 3. 4.
 
[처음 목차 돌아가기]
 

1.가장 위대한 예술가

오늘 우리가 보는 이 우주나 자연을 신학적 견지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본래 지으신 것과는 죄로 말미암아 달라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예술적 작품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신비하고 위대한 우주일 뿐 아니라 얼마나 아름다운 우주입니까?
아침 동천(東天)의 서광(曙光)이 아름다운가 하면 저녁 서산낙조(西山落照)도 못지 않게 아름답습니다. 명량한 가을 달밤이 금강산에 1만 2천 기봉(奇峰)이 잇는가 하면 작으나마 아담하고 신기한 평양의 모란봉과 능라도가 있습니다. 천하를 삼킬 듯한 태평양의 파도소리가 숨어 나오는 맑은 시내의 속삭임도 있고, 문자 그대로 사자의 사자후(獅子 )가 잇는가하면 여름 아침 산 곡을 덮는 매미의 서늘한 노래, 황혼을 노래하는 저녁 벌레들의 음악과 반주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입니까? 나무 잎 하나 하나, 꽃송이 하나 하나, 이 모든 것이 어느 하나가 위대한 작품 아닌 것이 없습니다.
여기 조작이 있고 건축이 있고 시가 있고 노래가 있고 그림이 있습니다. 이런 최고 예술가이신 하나님을 모른 영혼이 어떻게 위대한 작품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다 하나님께 예술을 배워야 합니다. 심령을 밝혀 하나님께 배워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와 예술>에서

 

 
 


2.교회는 예술의 어머니

교회와 예술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습니까? 교회는 예술의 어머니입니다. 기독교는 예술을 육성하였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초대 교회의 작품으로서 신약성서를 들 수 있으니 이는 문학적 견지에서 볼 때 참으로 아름다운 예술적 작품이 아니라 할 자가 없습니다. 물론 당시 예술의 우상 숭배와 같은 부도덕한 부패한 예술로 떨어졌기 때문에 초대교회는 예술을 배척하였지만, 그러나 4세기 이후부터는 교회에서 예술을 육성하여 기독교 음악, 건축, 조각, 회화 등의 많은 발전을 보게되어 중고시대에 이르러서는 기독교를 떠나서는 예술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문예부흥 이후 근대에 이르러 예술이 교회를 떠나 독립한 감이 있으나 실상은 모든 위대한 예술가와 작품은 기독교를 떠나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영국인에게 제일 위대한 영문학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세요. 그네들은 서슴지 않고 흠정역 영어성경(King James Version)과 셰익스피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만일 독일인에게 물어보면 루터의 성경과《파우스트》라 할 것입니다. 그림으로 말하면 레오날도 다빈치, 라파엘, 산리의 성화 외에 더 위대한 것이 어디 있으며, 조각이면 미켈란젤로의 작품보다 더 위대한 것이 어디 있으며, 시라고 하면 밀톤의《실락원》, 탄테의《신곡》보다 더 위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교회는 예술을 창조하고 육성하고 보존하여 왔고 또 앞으로도 교회는 모든 고상한 예술의 어머니가 될 것입니다.<기독교와 예술>에서

 

 
 


3.무신론적 민주주의와 기독교적 민주주의

강제 권력 곧 주권의 소재는 어떠한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여 봅니다. 제왕은 신을 대신하여 모든 권력을 가진다는 중세기의 제왕신성설(帝王神聖說)이 있고, 국가적 자아의식을 주장하는 독일 철학에 의한 범신론적(汎神論的)국가 주권 설이 있으며, 근세에 와서는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는 인민 주권 설을 보게되었습니다. 18세기에, 인민주권으로 공화국을 세운 나라는 1776년에 독립한 미국과 1789년에 이루어진 불란서 공화국 두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인민 주권이지만 불란서는 무신론의 인민 주권이었으므로 테러의 성행, 반(反)혁명운동의 봉기, 나폴레온 제국의 건설, 왕정의 복구, 나폴레온 3세의 제국재건 등으로 19세기 중 불란서는 가장 수난한 민족이었습니다. 그 간에 단두대에 아침 이슬로 살아진 청년의 수가 얼마나 있었습니까? 반면에 미국은 기독교적 민주주의에 의한 국가로서 그 헌법에 "감사하리로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는 우리에게 우리자신의 관헌을 택하는 권)權)을 주셨도다"라고 하였고 그 독립 선언서에는 "아메리카 국민은 자연법과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여 그 권리를 주창하고 버릴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인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고로 일어나노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미국은 건국이래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제일 축복 받은 평화의 나라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주권의 근본은 다 신에게 있다는 것의 증좌(證左)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습니다,』그러므로 어떤 방법으로 권세를 얻든지 다 하나님께 대하여 책임이 있습니다. <기독교와 정치>에서

 

 
 


4.학생의 헌신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잇는 생명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귀한 생명을 우리가 잃는다면 다시는 찾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천지는 무시종이요 인간은 유생사’(天地無始終 人間有生死)라 하여 세월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흘러가지만 우리 인생은 60년이나 혹은 80년이라는 한 생애를 가지게되는 데 불과합니다. 이 하나 밖에 없는 우리의 생명, 짧은 시기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의 한 생애를 어떻게 사용하며 어떻게 지내야 하겠습니까? 더구나 우리가 가지는 청년시대는 아주 잠깐 되는 순간입니다.
한번 지나가면 찾아올래 야 찾을 수 없는 가장 귀한 시기입니다. 누구나 청년 시대는 가질 수 있지만 누구나 다 가져볼 수 없는 학생시기를 여러분은 가지게 되었으니 여러분의 행복은 무엇으로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이 잠깐 되고 귀한 행복스러운 학생 시대를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려고 합니까? 속절없이 가 버리려느냐, 뜻 있게 고상하게 보내려느냐? 나는 여러분은 이 시대를 유익하게 뜻 있게 고상하게 지내려는 줄 믿습니다. 그리하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 가지 할 일리 많겠지만, 제일 필요한 것은 먼저 몸을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물유본말 사유종시’(物有本末 事有終始)라는 말이 있고 서양 속담에는‘아무리 바빠도 수레를 말 앞에 못 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금을 물론하고 동서양 역사를 살펴보면 혹은 국가를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운 역사적인 인물들은 소년시대에 온전한 헌신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대의 영웅 한니발은 9세인가 11세 때에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였으며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와 존 녹스 역시 소년시대에 하나님께 헌신하였고 영국 교회의 대부흥가 웨슬레는 학생시대에 온전히 하나님 앞에 몸을 바쳤습니다.
먼저 우리 몸을 주께 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우리의 몸을 잘못 드리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히틀러를 위하여 나치스 제단에 몸을 드린 독일 청년들, 무솔리니를 위하여 파시스트 제단에 몸을 드린 이태리의 청년들, 일본의 천황을 위하여 제국주의 제단에 몸을 드린 일본의 청년들, 그리고 유물론 철학을 토대로 한 공산주의 제단에 몸을 드리고 떠들어대는 가련한 청년들, 이모든 청년들은 한 몸을 헛되게 잘못 드린 것입니다.
나치스 제단에 뿌린 희생의 피, 파시스트 제단에 뿌린 희생의 피, 제국주의 제단에 뿌린 희생의 피, 이렇듯 많은 희생의 피는 한 번 역사의 바퀴가 구른 오늘날에 와서 무엇이 되고 말았습니까? 피를 흘리되 값없이 흘리는 피처럼 참으로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공산주의 제단에 드리고있는 저 희생물의 장례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우리가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몸을 드리되 누구에게 드리려고 합니까? 온전히 거룩한 하나님께,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잠깐 떠들다가 스러지고 마는 물거품과 같은 제단에다 몸을 드리다가는 무참히 쓰러지고 마는 어리석은 청년이 되지 맙시다. <학생의 헌신>에서

 

 
 


5.이것이 우리의 보물

이방 교회가 주후 46년부터 48년까지의 대 기근 때에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헌금하였다는 기사는 상부상조의 정신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주후 2, 3세기의 교회의 현상도 역시 그려하였습니다. 로마교회에는 이 시대에 보통 1만5천 명 이상의 가난한 자, 병든 자, 과부와 고아들을 구호했으며 테시어스(Decius)황제의 핍박 때 로마 군대가 교회의 보물을 탈취하려 왔을 적에 그 교회의 집사 로렌 피어스는“이것이 우리의 보물이라”하면서 소경과 절름발이와 반신불수와 고아들을 구호하는 광경을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6.흑사병과 핍박 속의 구제

주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약 10만 명 있었는바 그들은 1만5천의 불행한 자의 생활을 담당하였다고 합니다. 또 후에 이곳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많은 인명이 손상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이것이 기독신자들이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탓이라는 말이 돌아가 이 때문에 신자들은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모든 불신자들이 이 병이 무서워서 앓는 자와 죽은 자의 시체를 그냥 내버리고 도망을 했을 때에도 신자들은 결사적으로 마지막까지 머물러 있어서 병자를 구호하며 시체를 매장하였습니다. 그 후 도망했다가 다시 돌아온 자들이 기독신자들이 한 업적을 보고 놀라지 않은 자가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흑사병의 유행은 갤러스(Gallus)황제 때에도 있었는데 당시 카태이지 교회는 사이프리안의 지도하에 그들을 간호했으며 매장하였다고 합니다. 유세비어스 당시에는 핍박이 너무 심하여 어떤 교우가 재산 몰수를 당하면 교우들이 서로 생활 책임을 졌고, 다른 데로 피신하여 가면 목사의 소개서 한 장으로 으레 그들의 생활 책임을 졌다고 합니다.
2세기초의 신학자 터툴리안의 변증론의 일 절을 보면“보라 저들이 어떻게 사랑하였는가를! 저들이 서로 죽기도 사양치 않는구나 저들은 아내 외에는 무엇이나 공동으로 가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불신자들이 경탄함을 말하였고, 그들은 또한 불신자들을 향하여“당신들은 우리를 핍박하나 우리는 당신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당신들의 신을 위 하여는 아무 것도 아니하나 당시들의 빈궁한 자는 우리가 구제하노라”하였다고 합니다.

 

 
 


7.루시안의 기독교 반대론

기독교 반대자 루시안(Lucian)은 기독교를 반대하는 글을 썼는데 그 가운데에는“그들이 서로 어려운 중에도 상부상조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아무 것도 아끼는 것이 없다. 그들의 첫 입법자(立法者)가 그들 머리에 그들은 서로 형제라 하는 사상을 단단히 넣어주었다”라고 말하였고, 또 로마의 울바너스 감독은“로마 전국에 기독신자로서 걸식하는 자는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성경에 나타난 교훈을 문자 그대로 신종 했던 까닭이었으니 그들의 구제대상은 과부와 고아, 무산자, 병자, 나그네, 죄수, 핍박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대하여 그들은 사랑으로써 상부상조의 정신을 발휘하였던 것입니다. <상부상조의 정신>에서

 

 
 


8.부활주일의 뜻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겠느냐?』(욥14·14)하는 의문은 욥기이래 인간의 끊임없는 문제입니다. 영국의 시인 데이슨의 시의 일 절에 이러한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은 그가 아주 죽으려고 지음을 받은 것 같이 생각지를 않는다
(Man thinks he was not made to die)
한(漢)나라의 무제(武帝)가 장생불사를 원하여 승로반(昇露盤)에 찬이슬을 받아먹었다는 말도 있고 일대의 영웅 진시황(秦始皇)이 당시 중원을 평정한 후에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동방「삼신산」(三神山)에 곧 우리 나라 금강산에 동남 동녀 5백 인을 보냈다는 전설은 우리가 다 잘 아는 바입니다. 어떤 시인이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나는 알지 못하노라 어디로 그 섬들이
넓은 종려나뭇 잎들을 공중에 날려보내는지
내가 알기는 오직 그의 사랑과 보호의 범위를 지나서는
내가 표류치 못하리라는 것뿐이다.

I know not where the islands lift
Their frond palms in air
I only Know I can not drift
Beyond his love and care ―Whittier

이 부활 주일이야말로 인간은 다만 피와 살뿐이라는 유물주의적 견해에 대하여 인간은 불멸의 존재라는 사실을 가장 웅변으로 대답하는 것입니다. <부활주일의 의의>에서

 

 
 


9.첫 순례자 성 안토니

기독교 역사는 믿음으로 집을 떠나 거룩한 생활을 한 순례자의 생활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성(聖) 안토니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나고 많은 재산을 차지한 청년이었지만 어떤 때 이 청년이 성경 가운데서 한 부자 청년이 예수께 나와“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고 물었을 때 예수 님이“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자 청년이 재물이 많은 고로 안색이 변하고 근심하여 돌아갔다는 기사를 읽고 이 성경 말씀이 꼭 자기에게 하는 듯이 생각되었습니다.
‘성경의 청년은 얼굴을 붉히고 돌아갔으나, 나는 성경의 말씀대로 주님이 명하신 대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자기의 재산을 누이에게 좀 나누어 준 다음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 후 자기는 공동묘지인 굴속에 가서 성경 읽기와 기도하기에 힘쓰다가 마침내 아프리카 광야에 유리하며 성자의 생활을 보내었으니 세상에서 믿음으로 성지에 가려는 생각에서 순례자의 생활을 한 첫 순례자입니다.

 

 
 


10.크리소스톰과 아다나시어스

주후 4세기와 5세기 이후 가족과 친척을 떠나 광야에서, 산 곡에서, 산상에서 혹은 높은 기둥 위에서 지내며 온전히 일생을 믿음으로 지낸 수도사(修道士)의 수는 몇만 명이 될 터인데 이런 수도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유명한 교부들과 믿음의 용사들은 믿음 때문에 친척과 고국을 떠나 나그네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일대의 위인 콘스탄티노플의 대 설교가 크리소스톰은 황태후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콘스탄티노플에서 쫓겨나 만족(蠻族)이 사는 이역(異域)에서 순례의 생활을 하였고 아디나시어스는 기독교역사를 보면 전통 생황을 하기 위하여 다섯 번이나 추방을 당하여 만지(蠻地)로, 광야로 순례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11.요한 칼빈

종교 개혁 시대에 이르러서는 순례자는 더욱 많아졌습니다.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 같은 이도 여러 가지 핍박을 받아 이 동네에서 저 동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유리하면서 종교개혁 운동을 하며 순례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12.청교도와 모라비안파 교회

17세기에 있어서 영국 교회가 로마 교회로 기울어지는 경향과 신앙의 자유를 구속하는 영국교회를 상대로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청교도들도 핍박을 피하여 먼저 화란으로 향하였고 그후에 1620년 103명이「메이 플라워」호(號)로 북미 플리머드(Plymouth)에 도착하여 순례자의 생활을 시작하였던 것이며 진젠돌프 백작이 세운 모라비안파 교회는 순례자의 교회였고 19세기이래 동양, 아프리카, 남양군도에 흩어진 선교 자들도 역시 순례자들이었습니다.

 

 
 


13.우리 성도들

지금 우리 대한에서도 혼란한 과도기로 인하여 이북에서 부득이하여 오랫동안 살던 정든 고향과 집과 친척을 떠나 원치 않는 여행을 하여 이남으로 내려오는 교우들이 나그네의 생활을 할 때 여러 가지 고통과 환난이 많지만, 긴 교회 역사상으로 보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모세와 엘리야의 생활의 계승임을 생각하여 수고와 궁핍이 심하지만 오히려 감사의 눈물을 금할 수 없습니다.

 

 
 


14.존 번연의 천로역정

기독교 역사는 긴 순례자의 역사일 뿐더러 또한 우리 신자는 신령한 의미에서 누구나 다 순례자입니다.
존 번연의《천로역정》(天路曆程)은 영어로 말하면 The Pilgrim's Progress인 바 그대로 번역하면‘순례자의 진로’라는 말입니다. 기독교가 장망성을 떠나 천성을 향하여 나가는 도중에 웅덩이와 높은 산과 기타 여러 가지 괴로운 일과 시험을 많이 당하나 끗까지 싸우며 믿음으로 나갔다는 기록입니다. <순례자의 생활>에서

 

 
 


15.청교도의 신앙

교회사(敎會史)를 보면 중고시대(中古時代)에 교회가 침체하여졌을 때에도 조용한 곳을 찾아 자기의 생활을 깨끗이 하려고 애쓴 수도원 제도가 발전되었고 또 특히「카타리」(Cathari-결백이라는 뜻)란 일종의 교파가 일어난 것이나 루터, 쯔빙글리, 칼빈의 종교개혁도 다 성결하고 경건한 생활을 이루려는 영원한 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청교도의 역사의 배경- 그러나 위에 말한 모든 것이 청교도 아닌 것은 아니나, 교회 역사상 청교도라 함은 17세기 중엽 영국 제임스 1세로부터 차알스 2세까지의 거의 1세기 동안 영국 안에서 다시 로마교회로 기울어지는 경향과 영국 국교를 상대로 한 순수한 신앙을 위하여 투쟁한 교도들과 또 이들 중에서 핍박을 피하여 미 대륙에 이주하여 뉴잉그랜드주에 교회를 세우고 미국을 건설한 교도들의 총칭입니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독일이나 스위스의 그것과 그 성질이 달라서 16세기 헨리 8세 때에 로마 교황과 관계를 끊고 영국국교를 설립했으며 왕이 교회의 수장(首長)이 되고 캔터베리 대감독이 교회를 지도하였으나, 로마교회의 잔재 즉 제사의 복장이나 예배의 의식 같은 것은 그냥 답습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독일과 제네바의 개혁을 아는 자 중에는 이에 불만을 품고 이 잔재를 일소하고 순수한 기독교의 확립을 원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당시의 국교의 의식주의와 복잡한 성례, 감독정치 등을 반대했기 때문에 많은 핍박을 받았으나 북미주에 이주하여 새 나라를 건설한 이들도 이들 청교도들이었고 크롬웰을 중심으로 한 국내 혁명도 이들의 손을 통하여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들 청교도들이 가졌던 신앙과 생활은 어떠한 것이었습니까? 오늘 위기에 처하여 있는데 대한 교계를 돌아보며 이를 생각함은 무의미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첫째, 그들의 특색은 신앙의 기초를 성경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즉 그들의 신앙은 성경중심이었으나 성경을 무엇보다도 존중했고 애독했습니다. 1608년 제임스 1세가 47인의 학자들을 명하여 영어로 번역케 한 신구약성경을 그후 3년만에 완성해서 이를 흠정역(James Version)이라고 하는 바, 이를 애독한 청교도들은 생활과 도덕의 표준을 여기서 찾았고 교회와 국가의 정치적 표준도 여기서 얻었던 것입니다.
유명한 역사가 그린은 말하기를“영국인은 오직 한 책만 읽는 백성이 되었는데 그 책은 곧 성경이다”라고 할만큼 그들은 성경을 애독하였습니다.
둘째로, 그들의 신학 사상은 단순하였으니 사도 바울, 어거스틴, 칼빈을 통하여 전하여진 칼빈주의가 그들의 신학사상이었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였음으로 인간의 자력으로는 자기를 구원할 수가 없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었습니다.

 

 
 


16.신 신학의 사조

옛날에 이나 지금이나 이 중심을 떠나서 좌우 곁길로 나가는 사조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신 신학의 사조(Modernism)가 이것입니다. 이 사상은 과학적 분위기에 쌓인 현대인에게 기독교를 이해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실 사상적으로 세상과 타협한 신학인 바 이 사상은 자연주의와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합리주의, 인본주의가 그 골자로서 근본적으로 불신(不信)의 태도에서 나오는 사상입니다.
이 사상은 고대 교회로부터 나타난 것인데 시대가 감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니 2세기의 노스틱주의, 4세기의 아리우스주의, 그후에는 펠라기우스주의, 종교개혁 이후에는 예수는 인간 즉 위대한 인간이라는 소시니안주의, 19세기에 이르러 특히 튜빙겐 대학을 중심으로 현대주의사상, 신 신학으로 우리 교회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상은 우리 믿는 사람의 신앙의 태도를 회의(懷疑)하게 하며 신앙을 무력하게 합니다. 스티라우스(Strauss) 같은 이는 이 성경을 과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예수 님의 생활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신화(神話)라고 주장하여 교계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결국 그의 말로는 유물론자 무신론자로 전락되어 죽었고 이 사상의 지배를 받은 독일 교회는 아주 무력한 교회가 되어 생기를 잃어 결국 비스마르크, 히틀러에게 좌우되는 교회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내가 미국의 프린스톤에 있을 때 신 신학을 가르치는 모 신학교에서 온 어떤 신학생에게 왜 프린스톤으로 왔느냐고 물었더니“거기에 있으니까 목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없어지게 됨으로 아주 없어지기 전에 왔다”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 되려고 신학교에 간 학생에게 목사 되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이 곧 신 신학의 영향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신앙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야 성령이 임하는 것이지, 불신하는 태도로, 불 경건한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얼른 생각하기에 그 시대 그 시대의 사상과 타협하여가면서 전도하면 신자가 많이 생길 것 같지만, 타협하여 얻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죄와 싸우는데서 회개하는 사람을 많이 얻을 것이며 죄를 책망하지 않으면 귀로 듣기는 좋을지 모르나 회개 할 수는 도저히 없는 것입니다.

 

 
 


17.극단적 영파

극우사조(極右思潮)라 할까, 소위 극단적 영파(靈派) 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성(理性)의 요소를 전혀 무시하고 극단적인 감정에 흘러 광신(狂信) 내지 미신에 빠지는 사상입니다.
이들은 오직“나만 의롭다”는 자홀(自惚)에 빠져 기성교회(旣成敎會)를 부인하며 또 극단적 문자주의(文字主義)에 빠져 성경의 근본정신을 망각하여 사소한 문제로 교회의 분열을 꾀하며 교회의 분해작용을 촉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대(古代)의 몬타너스, 도니터스주의가 그러하며, 종교개혁 이후에 재세례파(再洗禮派), 칠일안식파(七日安息派), 소위 평북 철산(鐵山)의 새 주파(主派) 등이 곧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상이 있어 교회를 잠식한다는 것도 분명히 알아 경계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청교도의 신앙>에서

 

 
 


18.가난한 자의 복음

여러 해 전에 내가 신의주 제2교회에서 시무 할 때의 일입니다. 한번은 어떤 청년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보니 이 청년은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난 청년으로 불행하게도 제일 어린 동생이 중병에 걸렸으나 돈이 없음으로 약을 쓸 수도 없고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할 수도 없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어떻게 하든지 내 동생을 낫게 하여주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권능 있는 손을 펴 사 돈 없는 사람도 죽지 않고 입원하지 않아도 살수 있다는 음성을 들러주옵소서”그 후 자기 동생은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 청년은 너무도 기뻐서 노래를 지었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의 목자는
여호와 시니
가난한 내 동생이
산 것처럼
불쌍한 모든 형제
슬플 것 없도다.

그런데 자기 백부의 옆집에 모 부호의 아들이 병에 들었습니다. 입원도 하고 약도 쓰고 각색 치료를 다하였지만 백 약이 무효로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후 그 집에서는 죽은 아들의 옷을 불사른다, 경을 읽는다 야단법석이더라고 썼습니다.
가난한 목자는 여호와 시니!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입니까! 이러한 생각은 가난한 중에서 신앙생활을 한자는 누구나 다 체험한 사실입니다. 과연 여호와는 가난한자의 목자이시니, 옛날 애굽에서 말 할 수 없는 학정 밑에 벽돌을 굽고 고역 하던 가난한 이스라엘사람들이 간절히 들이든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사 저희를 구원하여 주셨고, 베들레헴 어떤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난 목동 다윗을 불러 골리앗을 처 죽이고 불레셋을 물리치게 하시며 저를 들어 이스라엘의 제왕을 삼아 건국하게 하시고, 농촌에서 자라난 가난한 농민 아모스를 불러 정의의 예언자를 삼아서 당시 부패한 상류계급, 귀족사회의 죄악을 통렬히 꾸짖게 하였습니다.

 

 
 


19.예수님 자신이 무신자

신약의 첫머리에서 우리는 우리 주님 예수는 무산자의 대표라는 기이한 사실을 발견하게됩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나셨고 가난한 목수 요셉의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인 곳이 있으며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이 말씀 한마디가 주님이 얼마나 가난한 생활을 하셨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합니다.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시고 가난한 과부의 연보를 축복하시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시하다가 가난한자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려하였으니 세리 마태를 제외한 열 한 제자들 역시 갈릴리의 가난한 무산 대중이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도 또한 그러하나 초대 교회 신자들은 부요 한 자들이 아니라 거이 무산 대중이 아니면 노예들이었습니다.

 

 
 


20.역대 교회지도자는 가난한 생활

초대교회만 아니라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덕을 세우며 정신적 지도자가 된 이들은 대게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장막을 지으며 전도하던 사도 바울, 가산과 전토(田土)를 다 팔아 교회에 받치고 일생을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살면서 전도하든 바나바, 성(聖)안토니, 성(聖)베네딕트, 성(聖)프랜시스도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였고 위대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가난한 광부의 아들이었습니다. 참으로 교회는 가난한 사람으로 시작하고 가난한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세기를 통하여 헌신과 희생으로 자라왔으며 영광을 주께 돌리었습니다.
기타 선현들도 역시 가난한 자들이었으니 공자(孔子)는 상가지구(喪家之狗)라는 말을 들었고, 헬라의 가장 지혜 있고 의롭고 선하던 소크라테스는 독배(毒杯)를 마시고 임종할 때 사랑하는 제자 크리토에게“크리토여, 아스클레피우스에게 닭 한 마리 빚진 것이 있으니 갚아주기를 바란다”하고 운명하였으니 얼마나 가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보건 데 주님이 하신 말씀과 같이“사람이 사는 것이 그 가산이 넉넉한 데 있지 않다”는 말씀이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가난한 자에게 풍성한 축복을 하였습니다.
<무산자의 복음>에서

 

 
 


21.신앙생활의 고비

인간 자신이 변함으로써 생기는 위기 중에 제일 심한 위기는 아동신앙에서 성년신앙으로 넘어서는 연령으로서 말하자면 15세로 25세까지의 시기라 하겠습니다. 이 때로 말하자면 키가 크고 성대가 변하게 되고 수염이 나게 되어 신체가 완전한 성인으로 변하며 또 본능적 욕망이 변하여지며 좀 더 나아가 심리가 변하여지면 사상이 변하여져서 그의 인생관과 우주관이 급격히 달라지게 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고린도 전서 13장 11절에 말하기를『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 일을 버렸노라』하였습니다.
과연 이 때로 말하면 독실하던 신앙도 아주 변하게 될 수 있고 혹은 아주 잃기도 쉽습니다. 유년주일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교회에 출석하는 일에 점점 식어지게 되고 중학교 4, 5학년쯤 되면 제법 이론을 캐면서 배교(背敎)하고 마는 이도 있게 됩니다.

 

 
 


22.종교심리학자 프래트의 위기설

종교심리학자 프래트씨는 이 중간의 특색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폭풍우 시대라 하여 모든 것이 경험이 없고 극도의 변화와 비애를 거듭하는 생활 속에 있으며, 장년들은 상상도 못할 큰 이상을 그려보기도 하며, 혹은 실패하여 환멸의 비애를 느끼기도 하며, 넘치는 감격에 어찌할 줄 모르며, 시련에 들어가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천사와 악마를 한 몸에 지니고 씨름하는 시기이며,
둘째로, 반항 시대라 하여 유년기에는 부모와 교사의 교훈과 명령에 맹종하여 왔지만 장성함에 따라 이기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는 동시에 개성을 선언하며 모든 권위 즉 부모에 대하여, 학교에 대하여, 국가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반항의 기치를 높이 들게되는 시기이며,
셋째로, 의심 시대 혹은 번민(煩悶)시대라 하여 어릴 때에 가졌던 인생관, 우주관이 불완전한 것을 깨달으나 새로운 견해를 가지기까지 모든 것을 의심하며 회의주의로 변하는 경향이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23.청년아 이 일을 알라

제임스씨가 말한바와 같이, 육신이 자란 후에는 영이 자라느라고 많은 번민이 일어나서 성경도 의심하며 부모의 신앙까지도 의심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 자체에, 특히 청년기에 위기가 쉽게 닥쳐오는데 이것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 것입니까? 청년 각자는 먼저 위기에 처하여 있음을 인식하여 살얼음을 밟는 것 같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이 위기에 대한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하여야만 하겠습니다.

 

 
 


24.기독교는 과학문명의 선구자

기독교는 문화적으로 20세기 신문명 곧 과학문명의 소개자요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문화의 수준이 제일 높은 영미(英美)에서 온 선교사들은 들어오면서 교회를 세울뿐더러 반드시 학교를 세웠습니다. 재래의 우리 나라 서당에서는 오직 한문만 가르치든 때에 교회 학교에서는 수학이나 이과(理科)니 과학적 지식을 보급 시켰습니다. 벌서 50년 전에 서울에서는 배자학당(培材學堂), 이화학당(梨花學堂)을 설립해서 이승만(李承晩)박사 같은 이를 교육시켰고 평양에서는 숭실(崇實)이니 숭의(崇義)같은 학교를 세워 조만식(曺晩植)선생 같은 이를 양성하였습니다. 기독교를 떠나서 우리는 신문화의 소개자와 선구자를 찾을 수 없습니다.
<대한 민족아 깨어라>에서

 

 
 


25.기도는 인간의 내적 능력

런크 박사는《신앙에의 복귀》(The Return to Religion) 라는 책에서“신자는 인격의 조화가 있어서 위기를 극복하는 능이 있고 일을 더 잘한다”라고 했습니다. 과연 지언(至言)입니다. 현대인에게 기도가 필요치 않은 것이 아니라 현대인일수록 기도는 절대 필요하며 복잡한 사회일수록 인간 생활에 내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볼 때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도의 필요를 인정하면서도 기도를 절실하게 느끼지 않습니다. 이는 생활에 고상한 표준이 없는 까닭입니다. 만약 고상한 이상을 가지고 위대한 사업에 헌신한다면 기도의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별로 고등수학이 필요가 느끼지 않겠지만 한강 철도를 가설하려는 위대한 사업을 계획하는 기사에게는 고등수확의 필요가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생각도 조금하고 일도 조금하고 기도는 안하고 사는 사람이 많은 모양인데 이런 이들에게서 위대한 일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큰 각성을 가지고 할 일이 너무 많고 클 때에는 기도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고국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와싱턴이 미국의 독립을 위하여 힘써 기도하였으며, 이순신(李舜臣) 역시 조국의 안녕(安寧)을 위하여 기도했던 것입니다. 오늘 대한의 사태가 위기에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 사람으로서 기도하지 않는 다면 그는 민족의식과 흥륭(興隆)에 대한 관심이 적은 사람, 애국심이 부족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참 애국자라면 신, 불신을 불문하고 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진실히 기도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함은 위기를 당해 보지 못한 까닭입니다. 속담“죽을 때는 누구나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신문보도에 의하면 2차 대전 때 전법 자로서 사형 선고를 받은 독일 나치스 지도자 열 한 사람 중 한 사람 외에는 전부 그 집행을 앞둔 마지막 날 저녁에 고요히 앉아 성경을 읽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깊이 생각할 이야기라고 느껴집니다. <현대인과 기도>에서

 

 
 


26.성경의 바른 견해

오늘날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오견(誤見)이 있음을 압니다. 하나는 성경은 보통 종교적 천재의 기록이라 하여 다른 서적과 동일시하는 자연주의자와 무신론자의 견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 하셔서 그 죄악에서 인간을 구속하시려 독생자를 보내신 분이시라 이 소식을 전하는 기록에 관계 안 했을 리 없습니다. 그는 성경 기자들에게 성신으로 감동하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경은 문자 적 구수(口授)(Verbal Dictation)로 되어졌다고 하여 성경 저자의 인격과 지식과 연구를 무시하는 견해입니다.
이에 대한 적당한 견해는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은혜 받은 인물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평시에도 감동 중에 산 이들이오,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수행 할 때는 더욱 큰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거이 2천 년 전에 여러 사람들이 여러 모양으로 쓴 기록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대의(大義)에는 조금도 모순되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이 성경을 읽을 때에 의심하기 쉽습니다. 성경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 같은 부분도 잇다는 것입니다. 성경 중에는 역사와 시와 논문과 잠언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어떻게 이런 것을“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각양 방식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역사가 하나님의 진리를 나타내며 사가 또한 하나님의 진리를 나타냅니다.
‘겟세마네의 예수’라는 성화를 보면 한 획이 다 예수 그리스도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 전체가 예수의 얼굴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딤후4ː13)한 이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일까 생각할 수 있지만 디모데 후서 전체는 하나님의 계시를 알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시나 논문이나 그 전체가 다 하나님의 진리를 나타냄으로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7.진리는 항상 새롭다

성경은 고대서적(古代書籍)이라는 것입니다. 나날이 진보하는 세상에, 오늘날 같은 원자력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서적을 읽을 것이지 어찌 수 천년 전의 옛 책을 읽고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옛 책이라고 해서 버릴 것은 물론 아닙니다. 철학을 연구하는 자는 지금도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를 읽을 것이요, 동양 도덕을 연구하는 자는 지금도 논어(論語)나 맹자(孟子)를 읽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진리는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키메데스의 원리는 지금도 역시 물리학의 진리요, 피타고라스의 정리(定理)도 역시 기하학상의 진리로서 세상 끝까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비록 고대인의 인정과 풍속, 사회제도, 관습 따위의 의복을 입기는 하였으나 하나님 자체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가 입은 의복은 변하나 진리 자체는 변치 않습니다. 그리고 진리는 항상 새롭습니다. 20세기의 경이(驚異)라는 B29를 타고 다니는 군인도 회중신약(懷中新約)을 품에 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복과 진리 자체의 관계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과 현대인>에서

 

 
 


28.성경을 한번은 읽었겠지요?

일찍이 고대 언어학자로 세계적 권위이던 윌슨 박사에게 어떤 대학생 두 사람이 가서 성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느냐고 반대이론을 전개하려 하였습니다. 이 때에 윌슨 박사는 조용히“그런데 이 성경을 몇 번이나 읽어보고 그런 결론을 내렸습니까?”하고 반문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다 서로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없었습니다. 다시 묻기를“그러면 한번은 읽었겠지요?”그래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사실은 한번도 읽지 못하였습니다. 그때에 윌슨 박사는“나는 40년간 매일 밤 열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성경을 연구하였소 그리고 나는 이 책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데 조금도 의심이 없소. 우선 두어 번 읽어보고 오시지요”두 학생은 머리를 숙인 체로“고맙습니다”란 한마디를 남기고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29.성경 한 권으로 절해고도에서 문화의 꽃이 핀 이야기

1790년 영국 정부에서 남양군도의 하나인 피트카린(Pitcarin)섬에 식림(植林)하기 위하여 인부 백여 명을 파송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 섬에서 선장에 반역하여 작은 배에 선장을 태워죽으라고 대양(大洋)에 띄워 보낸 후 자기들끼리 절해고도(絶海孤島)에서 돌아올 생각도 못하고 토인 여자와 동거하며 생활하였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선장은 다행이 지나가는 배를 만나 영국으로 돌아가 정부에 보고하여 정부는 곧 해군을 파송하여 이들을 체포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30년간 전혀 소식이 두절되었습니다. 30년쯤 지나서 어떤 영국배가 그 섬 옆을 지나가다가 들러보니 거기에는 예배당이 있고 존 아담스라는 노인이 있어 그는 그 섬의 목사요 왕이었고 청년들은 모두 흑인이 아니 요 백인도 아닌 반종 들이었습니다. 그에게 과거 30년간의 역사를 들으니 대략 이러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선장을 죽게 만들어 놓고 각각 마음대로 놀았습니다. 자연히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마다 시비를 가릴 사람이 없어서 대부분이 서로 싸워 죽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자가 열대식물의 즙으로 술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뒤에는 싸움이 더 굉장해 졌습니다. 술을 먹고 놀고 싸우고 죽고 하는 반복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백인들은 몇이 남지 않게 되었으나 흑인 여자와이관계로 반종 아이들은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어떤 날 이 반역자의 하나인 술 먹고 싸우고 음란하고 살인하던 이 아담스가 수두룩히 모인 반종 아이들을 바라볼 때에‘이 아이들이 크면 역시 우리들처럼 살다가 죽을 테지! 이래서야 될 수 있나!’하는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옛날 자기 가정이 연상되었고 떠날 때에 자기 어머니가 주던 성경책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그 책이 지금도 있을까하고 옛 가방을 뒤져보았습니다. 책은 그냥 있었습니다. 아담스는 읽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읽고 있던 아담스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줄 몰랐습니다. 이리하여 많은 죄는 회개의 눈물과 함께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아담스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남은 사람들에게도 회개를 권하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글을 가르쳤습니다. 야만의 절해고도에 문화와 종교의 꽃이 핀 것입니다. 오직 성경 한 권의 감화로 말입니다.
이 성경은 현재 987종의 방언으로 번역되어 온 세계인이 읽고 있는데 이로써 죄인은 구주를, 슬픈 자는 위안을, 낙망 자는 소망을, 타락한 자는 재생을, 정치가는 정의를, 철학자는 지혜를, 예술가는 영감을, 도덕가는 윤리를 찾게 했으며, 청년은 어떻게 혈기를 제어할까 를, 노인들은 어떻게 여생을 보낼까를, 죽은 자는 참된 영생을 각각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이 펴지는 곳에 영적 해방이 있고, 도덕적 해방이 있고, 참된 사회적 해방, 정치적 해방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과 현대인>에서

 

 
 


30.역사의 증거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端宗)과 성삼문(成三門)등의 사육신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수양의 죄악은 영원히 피를 뿌리고 사육신의 충절은 영원히 빛나는 것 이 아닙니까? 이는 무슨 까닭입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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