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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속으로 〓/영성 교회 성장 10대 지침등(가나다순)

교회부흥과 교육적 방향

by 【고동엽】 2022. 2. 23.

교회부흥과 교육적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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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B A R F S K C A L=Ms FMQ

 

 

1. 서 론

 

교회부흥을 갈구하는 교회들이 대체로 신비체험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은 흔히 우리 주변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비체험에 대한 관심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 인것

같다. 특히, 한국교회의 부흥이 방언이나, L Iw같은 문제와 관련되어 왔음이

사실이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을 살펴 보면서 오늘의

현실을 파악하고 성경적인 바른 교회 부흥의 길을 모색 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부흥사들이 옛날 부흥사들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함으로 신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분위기로 압박감을 주는 부흥회들은 교인들의 신앙성장을 위한

교육 이라는 면에서 크게 역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을 검토해 보고서 평가 진단하여

부흥운동의 교육적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한국교회의 F S K C

 

1)1907년의 부흥운동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을 다룸에 있어서 1907년의 부흥운동을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이 운동은 한국교회의 부흥의 전기를 마련하는 중요한 사건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1907년의 부흥운동의 시대적인 배경은 당시 우리나라가 일제의 탄압과

학정에 의해 쇠약해질데로 쇠약해 졌고 어떻게 손쓰 볼 수도 없는 난관에

빠져 있었을 때였다. 이난관을 돌파하고 나설만한 힘이 없었다. {{ footnote }}

1903년 감리교 선교부 선교사의 일단이 원산에서 일주일 동안 기도와 성경공부를

위해서 모였던 모임이 발단이 되었다. {{ footnote }} 이 운동의 진상을 정확히 기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 footnote }} 그러나, 이운동의 성격을 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런던 타임지에

게제된바 있고, 영국의 William Cecil 경이 당시 직접 본데로 적은 기록을

인용 할 수 있다. 어느날 저녁 집회 때에 교회 직임을 가진 한 사람이 일어나서

자기는 선교사에 대하여 악감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였다.

그 선교사가 일어나서 기도를 시작하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상한

흥분이 감돌기 시작 하였다. 이에 세실경의 기록에는,

"그가 '나의 아버지' 라는 말로 기도를 시작하자, 비상한 힘이 밖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와 온 회중을 사로잡은 듯 하였다. 서양 사람들은 이 힘의 나타남을

공포적 이라고 기술하였다. 거기 참석한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애절한 침통에

사로 잡혔다. 각 사람의 마음에는 자기의 죄가 자기 생활에 정죄 판결을하여

주는 느낌을 가지게 하였다. 어떤 사람은 뻘떡 일어나서 자기의 죄를 자백

할 기회를 얻어 털어 놓고 양심의 안정을 얻으려 하고, 어떤 사람은 말없이

있었으나 북받치는 괴로움을 억제할 바가 없어 주먹을 쥐고 머리로 땅을 찧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자기의 죄과를 폭로 하려는 충동을 막으려는 다른 힘으로부터

싸우고 있는 경황을 볼 수 있었다. 저녁 여덟시부터 이튿날 다섯시 까지 이러한

상태는 계속 되었다. 이때 선교사들은 어떤 사람들의 엄청난 죄의 고백을 듣고

어찌 할 바를 모르리 많큼 놀라기도하고, 또 이러한 B Gw를 생기게 한 능력이

강림하심을 보고 떨면서 그들이 평소에 사랑하던 한국인 제자들의 참회의

고통에 동정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집회는 끝이 났으나, 많은

한국 신자들은 온 밤을 세웠는데, 어떤이는 기도하며 새웠고, 또 어떤이는

심각한 심령의 싸움으로 세웠다. 다음날 선교사들은 이 사태가 지나가고 거룩한

위로의 교훈으로 지난밤의 상처를 싸매게 되기를 희망 하였으나 또다시 이와

동일한 통회와, 이와 동일한 죄의 자백이 되풀이 되었으며, 이러한 사태는

여러날 더 계속되었다." {{ footnote }}

또 하나의 특별한 부흥상은 그들의 통성기도의 기록에서 볼수 있다.

"온 회중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정황은 실로 글로

적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런 혼란도 없었고, 도리어 심령과 심령이 호응하는

화음이 서리었고 기도를 울리고 싶은 충격을 저항할수 없던 마음과 마음이

사귀는 I A 였다. 기도소리는 마치 폭포소리 샅아서 기도의 C Q N 가 하나님의

보좌로 밀어 올라가는 듯 하였다." {{ footnote }}

원산에서 감리교 선교사들이 고요하게 시작한 운동이 새로운 기동력이 되어

마침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 부흥운동과 신비주의의 관련성

문제에 관하여는 약간의 L D 이 있는 것 같다. 민경배 교수는 "1907년대의 대

부흥이 공동체적 교회 신앙에로의 전향점을 이루었다는 것은 나의 변함없는

확신이다. 구러나, 이 부흥의 모퉁이에 신비주의적인 경건의 요소가 몇몇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 footnote }} 고 말한다. 혹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교회의 1907

평양 장대현 교회의 길선주 목사로 일어난 부흥회(사경회)는 실로 사도시대의

오순절의 그것과 흡사하다. 모두가 회개하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고 헌신

봉사 했다. 그러니 이 운동이 왜곡되기 시작했고, 본의 아닌 신비주의로 흘러

간 것은 잊어서는 안된다. 너무나 흥분적이요, 비 성서적인 방향으로 흘러간

것을 오느레 와서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 footnote }} 고 말한다.

1907년 부흥운동에 약간의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엿보인다는 것은 혹 타당

할지 몰라도 후자와 같이 1907년의 부흥운동을 비 성경적 신비주의로 단정 짖는

것은 지니친 평가라고 보여진다. 후자의 인용문은 논리상 타당치 않음을 쉽게

발견 할수 있는데, 오순절 성령강림을 비 성경적 신비주의라고 말할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히려 이 부흥운동에서 오히려 부흥운동의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된다.

이영헌 교수는 이 부흥운동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 footnote }} ' 순수한 영적,

도덕적운동 ' 선교사와 한국인 사이의 상호 이해와 화해의 기운 조성 ' 고동체

적인 교회의식 발로 ' 새벽기도회와 성경공부 ' 전도사업 등이다. 특히, 그는

이운동을 순수한 영적, 도덕적 운동으로 평가하고 있다. 부흥운동을 지도하는

선교사들도 그리고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미국 선교본부 담당자들도 이 운동이

정상적이 아닌 이상심리의 발작을 동반히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 {{ footnote }}

그러나, 이러한 염려는 해소 되었다. 1908년 미국 북 감리교회의 4년 총회가

발티모어 에서 열렸을 때, 한국과 일본주재 감리교 감독 M.C.Harris는 다음과

같이 언명 하였다.

"이 부흥운동의 효과는 전적으로 훌륭하였다. 즉 교회의 신앙수준은 더 높아

졌고, 이미 자상(L G )한 성경교육이 있었으므로 광신은 거의 없었고, 수천명의

신도가 올바른 마음의 자세를 세웠고, 다수인에게 성직의 소명을 받게 했고,

그보다 더많은 교회들이 성경말씀을 공부 하려고 무려 2천명의 대집회가 한

장소에서 거행 되었으며, 수천명이 글읽기를 배우고, 기독교를 알아 보려고

문의하며, 술주정꾼, 도박꾼, 도적놈, 오입쟁이, 살린강도, 독선적인 유학자들,

구태의연한 불교도들, 여러 천명의 잡신을 섬기던 사람들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으니, 옛것은 다 지나가고 말았다. {{ footnote }}

이 보고서는 초기와 오늘의 부흥운동을 비교 할수 있게 한다.

첫째, 초기 부흥운동은 기도로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고 성경연구로 부터

시작 되었다. 사경회의 성격이 분명하다. 오늘날은 철야기도는 수없이 많아도

철야 성경공부는 많이 없다.

둘째로, 초기부흥운동은 은혜에 취하여, 혹은 신비적 경험이 깊어져서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실신 상태에 빠져서 이성을 잃는 법이 없었는데, 오늘날의

부흥운동은 신비적 체험과 동일시 되고 이성을 잃을 정도로 열광적 이어서

기독교의 비 본질적인 요소가 많이 있는 경향이 있다.

셋째로, 초기 부흥운동은 여러 종류의 죄인을 회개시켜서 예수안에서 새로운

인격을 형성하는 선교정신에 철저 하였는데, 요즈음은 새신자 얻기보다 다른교회신도

얻기 운동이란 감이 없지 않다.

넷째로, 초기 당시 부흥운동의 결과로 신자들이 공의와 죄에 대한 생각을

철저히 깨닫게 되어 그것으로 불신자와 구별을 하였는데, 오늘날에는 부흥회를

그저 은밀하게 쌓아두었던 죄의 보따리를 또다시 풀어버리고 부흥회가 끝나면

다시 빈 보따리에 죄를 다음 기회를 위해 쌓아나감 으로서 회개후의 변화된

삶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러므로 신자와 불신자의 구별이 분명치 못한

실정인 것 같다.

이와같이 우리나라 초대교회의 부흥운동이 약간의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있다고는

하나그 명확한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부흥운동의 모범을 찾을수 있다고 본다.

 

 

2) 1930년대의 부흥운동

 

초창기 부흥회에서 신비적인 경험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은 것은 기독교가 시일이 짧아서 한국사람의 종교성 심층까지 접촉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일제의 탄압으로 인한 민족의

삶이 더욱 비참해 지게 될때에 기독교가 가르치는 내세관과 천당의 개념은

한국 사람들이 현실을 도피 하고자 함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고 부흥회와 같은

특별집회에서 신비 경험을 통하여 자기자신을 잃어 버리는 것을 고난에 시달리고

있는 자기자신을 위로하고 참 의미를 찾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신비체험

강조와 그 동경심이 발달하게되었다. 이런 신비경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 footnote }} 민경배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이렇게

지적하였다.

".....여기 신앙의 내면화가 그 절정에 이르러 신비적 희열로의 전향과 몰

현세적 침잠에로 그 영혼의 안식을 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footnote }} 일반적으로

말해 이때부터 한국 교회의 부흥운동은 신비적 종말론 성격이 강하게 노출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부흥운동도 또한 그 성격이 이질화 되어가는

경향을 노출하여 그것은 오늘날 비 기독교적 변질화로 이어져 간다. {{ footnote }} 이 시기를

가장 대표하는 뛰어난 부흥사가 이용도 목사이다.

이용도 목사의 그리스도 신비주의는 십자가를지닌 고난의 주님을 내가 몸소

체험하고 나도 그리스도처럼 아픔을 당하므로 그리스도와 혈관적 연결을 이루는데

그 목표가 있었다. {{ footnote }} 이용도는 그리스도 신비주의의 합일의 경지를 말한다.

"나는 주의 사랑에 삼키운바 되고, 주는 나의 신앙에 삼키운바 되는 이 합일의

원리여, ! 나의 눈아 주를 보라, 일심으로 주만 바라보라, 잠시라도 딴눈

팔지 말고 오직주만 바라보세, 나의 시선에 잡힌바 주님은 나의속에 I N]

하시리라" {{ footnote }}

이용도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함께 아파하고 고난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그리스도 고난의 신비주의자 였다. 또한 이용도는 고난의 신비주의를 발전시키면서

이성적 명상보다 사랑의 윤리를 중시하여 방언보다 예언의 우월성과 사랑의

지식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 하였다. 특히, 이용도는 그의 기도와 명상의 생활과

사랑과 행동의 생활을 분리 시키지 않았다. {{ footnote }} 이용도의 기도는 신비주의적

이었다. 그의 기도는 일단 시작하면 3,4시간을 끌었다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기도는 나의 기쁨이요, 나의 의미요, 나의 생명이요, 나의 일이외다......나의

중심에 기도가 있으매, 나의 영은 신랑과 만나는 밀실을 갖지 못하고 쫏겨난

신부와 같습니다." {{ footnote }}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최대의 길이요,.....하나님과

단 둘이선만 대화하여 깊은 영교" {{ footnote }} 를 하는 시간이라고 쓰고 있다.

이 시대를 요약하면 일제의 종교탄압과 일사각오의 순교정신으로 신앙이

더욱 구체화 되는 반면에 어려운 현실이 현실 도피적인 은둔 신앙과 종말론적인

신비주의 사상에 사로잡히게 되어 P 기독교적이고 비성경적인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고 볼수 있다.

 

3) 1950년 이후 오늘날에 이르는 부흥운동

 

6.25 저란의 총성이 멎은후 1,2년이 채 못되어 바태선 장로의 부흥운동과

그 밖의 부흥사들의 부흥운동이 힘차게 일어났다. 이것은 교회분열과 기성교회의

무기력, 민족적 비극 등에 의해 기인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전란 직후에

일어난 부흥운동들이 한결같이 성령의 역사와 초 자연적인 현상을 갈망한 까닭은

일제 말년의 신사참배와 실패, 해방직후의 교계 안밖의 분열, 그리고 해방된

조국에 물밀듯 밀려온 미국의 물질문화와 자유주의의 파동은 인간 생활의 지평을

넓혔으며, 우리는 자연의 영역에 속하는 물질과 지식과 지혜의 힘으로 출세와

영달과 건설을 꿈꾸었던 것이다." {{ footnote }} 특히, 1960년대 중엽 부터 우리 교계에는

부흥운동과 부흥집회가 굉장히 성하였고 부흥사들도 많이 나타나 일부 '전국적'이라

는 부흥사들이 경건한 목회자로서의 부흥사가 못되고, 흥행가다운 부흥사로

전락해 버렸거나 아니면 돈 벌이 하는 자본주의적인기질을 발휘하는 부흥사가

되어 비판과 비난을 자자하게 되었다. {{ footnote }}

전후 온갖 어려움을 딛고 잘 살아보고자 하나 제데로 쉽게 되지않는 현실

앞에서 불안해하며 갈등하는 사람들에게 갈증해소를 위한 중요한 의미를 부흥회가

가진다고 볼수 있지마는 이같은 배경으로 부흥회가 점점 열기를 띠며 성황을

이루게 되자 신비주의적 주술신앙으로 영합하는 탈선적인 부흥사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종교에 신비체험도 있게 마련이지만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 일수는 없다.

오히려 신비주의가 빗나가면 광신주의가 된다. {{ footnote }}

1970년대로 접어 들면서 특히 대형 옥외 집회들이 열리게 되었는데, 1973년에

빌리그래함 전도집회, 1974년에 엑스폴로74, 1977년에 민족 복음화운동 등이

그것이다. 또한 1980년의 세계복음화 운동 등을 1908년대로 까지 부흥의

여기는 계속 되어갔다. 특히, 1984년에는 선교 100주년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전도와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이같은 대형집회는 부흥을 더욱 가속화 시켰다.

이러한 와중 속에서 적지않은 부작용도 있었다.

이종윤 목사는 이에대해 다음과같이 지적한다.; 부흥운동의 일역을 감당하였다고

볼수 있는 부흥사들에 대한 잘못에 대해 첫째, 신학공부를 하지않은 부흥사가

많다. 둘째, 너무많은 부흥사들이 활약하고 있다. 셋째, 균형있는 집회인도가

잘 안된다. , 지적인 면과 감정적인 면이 균형이 잡혀야 하는데, 한 쪽으로

지우친다는 말이다. 네째,부흥사가 인기위주로 행동한다. 다섯째, 부흥사들의

사생활이 문제가 된다. {{ footnote }}

1990년대에 접어 들어서는 콜레박사의 "내가본 천국","천국의100가지 비밀"등의

내세 지향적인 책이 교인들로 하여금 종말신앙을 부채질 하였다고 볼수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 이장림목사가 쓴 소위 재림예언 시리즈(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고의 나팔등)를 내 놓고서 불건전한 종말사상을 조성하고 있다. 2000년이 가까와

오면서 온갖 종말론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부흥사들이 특히, 종말론을 중심으로 계시록을 강해하는 부흥회라고

선전하여 앞 다투어 종말론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표를 주로 세대주의적인 종말

시간표로서 제시함으로 상당한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할수 있겠다. 성도들이 종말신앙에 입각하여 열심히 신앙생활 하게하는 동인이

되는것은 좋은 일이라고 할수 있겠으나 이같은 신앙이 불건전하고, 비성경적인

근거에서 기초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부흥의 배경이라 아니 할수

없음을 지적 할수 밖에 없다.

 

3.부흥운동의 교육적 방향

 

오늘의 교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영적기갈이 막심해 졌다. 이에 요청되는

것이 진정한 부흥운동이다. 많은 부흥운동들이 부작용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신학적 근거위에 선 바른 부흥운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부흥운동(revivalism)이란

옛신앙으로 돌아가는 운동이다. 처음에는 열의가 있다가도 오래 가는데 따라서

그 열의가 식고 맥이 풀리기 쉬은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 footnote }}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된

것을 굳게하라" {{ footnote }}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 footnote }}

라고 하였다.

첫째,부흥운동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예배와 실천을 강조함으로 일어나는 교인들의

정신운동이다.

둘째, 부흥운동은 각 교회가 모든 면에서 침체되어 있거나 교회의 역활을 잘

수행해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활기있고 활동적인 교회로 회생하려는

운동이다.

셋째, 복음에 관심을 둠으로 성경연구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

넷째, 설교 즉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와 기도를 통하여 새로운 내적 체험을

가짐으로 신앙의 열정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운동은 하나님에 대한 자세 정립과, 힘있게 말씀에 복종하는

생활의 계기를 얻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부흥운동에 대한 몇가지

제안을 해 보고자 한다.

첫째, 무었보다도 부흥회는 사경회로 돌아가야 된다고 본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처럼

말씀에 기초한 건실한 부흥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 footnote }} 성경적 기반없이 기사나

이적만이 은혜인줄 알고 호기심을 움직이고 입신, 방언, 투시등 여러가지

수단을 겸손없이 사용함으로 신앙적 바벨탑 만을 높이 샇아가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려면 말씀위에 굳게 선 부흥회가 되어야 하며, 말씀에 건실한

부흥사들이 많이 배출 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둘째로, 부흥회의 참된 목표와 결과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부흥회를 함으로

교인들의 생의 목적에 대한 촛점이 흐려지고 교회가 분산, 동요하며, 인기는

부흥사가 독차지하게 된다면 그결실은 교회에 남아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목회상 곤란이 생기는 것이다." {{ footnote }} 그러므로 부흥회 결과 신자들의 생활에 참된

변화가 일어나고 전도와 봉사에 더욱 힘쓰는 사람으로 바꿔지는 열매있는 부흥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로,부흥사들의 영적, 인격적, 도덕적인 시정과 개혁이 반드시 있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부흥사들의 기형적인 문제는 수술받지 않으면 안될

심각한 고질병이라고 할수 밖에 없다. "발광적인 태도와 발악적인 음성의 기도로

하나님을 억압코자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을 고쳐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심령 깊은곳에서 울려 나오는 몸부림 이라면 몰라도 대개 직업적인 근성으로

마이크에다 소리의 기교를 부림으로 순간적인 분위기 조성내지 음향효과의 일환으로

영적인 진정한 울림이 아닌 인위적 내지 탈 성경적인 발상이라 아니 할수 없을

것이다. 경건한 모습, 정중한 태도, 반말썩인 비인격적인 말투를 겸손하고

사랑이 넘치는 경어로, 진실된 자세로 성도들을 대하고 주님을 대함으로 말씀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진정한 교회부흥을 위해서는 말씀위에선 평신도 교육의 활성화로

이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경연구반, 평신도 신앙강좌, 신앙 공동체와 친교를

위한 모임의 개발, 직분교육(청지기 교육) 등을 활성화 함으로 이루어지는

부흥이 진정한 부흥이 되리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4. 결 론

 

이상과 같이 한국교회 부흥운동에 나타난 비 성경적 경향과 그에 따른 신자의

신앙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우려점, 그리고 새로운 부흥운동의 방향을 모색해

보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몇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첫째, 신앙성장이란 어떤 순간적인 경험에 의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디.

물론 순간적인 어떤 경험이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그 뒤에 따르는

후속조치가 무었보다도 중요하다.

둘째,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부흥회는 사경회 형식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필요하며, 지속적인 성경연구 프로그램이 교회안에서 계속 계발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건전한 부흥회 양식이 개발 보완 되어야 하며, 그것이 지속적인 교육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방안으로 유도 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기독교의 삶이 말씀위에 근거한 삶이 되도록 말씀위에 기초한 경험을

나누는 공동체 교육이 되어져야 한다.

다섯째, 한국교회가 더욱더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하여 더욱더 성숙한 교육목회의

길이 추구되고 연구 되어져야 할 것이다.

 

 

****** 대단히 감사합니다. 19901116*******

 

 

 

 

 

참고도서 목록(Bibliography)

 

 

개역성경

문 상희:"기독교와 신비주의",신비주의,목회자료연구회편,(서울:세종문화사,197

 

2)

:"신흥종교의 도전",기독교사상216(1976.6)

문 창권:"새로운 형태의 부흥운동",기독교사상177(1973.2)

민 경배:한국 기독교회사,(서울:대한기독교서회,1977)

백 낙준:"한국개신교회사",(서울:연세대출판부,1973)

이 영헌:한국기독교사,(서울:컨콜디아사,1978)

이 장식:"부흥운동의 전환5 ",기독교사상216(1976.6)

정 진경:"한국교회의 은사의 물결",기독교사상232(1977.10)

 

 

 

1)이영헌,'한국 기독교사' (서울:컨콜디아사,1978), pp.105-108 참조

 

2)백낙준,'한국 개신교사'(서울:연세대학교출판부,1973), p.384 ; 이모임은

M.C.

White 여사가 인도하여 진행 하였는데, 이 모임에 참석했던 R.A.Hardie 선교사

 

가 영적체험을 얻어 동료 선교사들 앞에서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였다.

3)Ibid, p.387.

4)The Baptist Missionary Magazine 의 인용. vol.88,No.2(February,1908),p.58,

 

백난준, op.cit., pp.387-388 에서 재인용.

5)W.N.Blair, The Korean Pentecost, p.403. 백낙준, op.cit.,p.388.에서 재인용

 

6)민경배, "한국의 신비주의자",'신비주의' 목회자료 연구회편(서울:세종문화사,

 

1972), p.197.

7)문창권,"새로운 형태의 부흥운동", '기독교 사상'177(1973.2), p.67.

8)이영헌,op.cit.,pp.112-113.

9)H.R.Rhodes,"History of the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1884-

 

1934, p.285. 이영헌, op.cit., p.112.

10)Journal of the 25th Delegated General Conference of the Methodist Church

 

in 1908, pp.861-862:백낙준, op.cit., p.391.

11)김정준,"신학자와 부흥사와의 대화", '기독교사상'173(1972.10).p.112.

12)민경배,'한국 기독교회사'(서울:대한 기독교서회,1977), p.287.

13)이영헌,op.cit.,p.178.

14)변종호,'이용도목사 서간집'(서울:심우원,1968),p.150.

15)이용도 일기.p.140. 변선환, op.cit.,p.93에서 재인용.

16)변종호,op.cit., p.100.

17)Ibid.,p.96.

18)Ibid.,p.137.

19)이장식,"부흥운동의 전환기", '기독교사상'216(1976.6),p.59.

20)문상희,"신흥종교의 도전",'기독교사상'216(1976.6),pp.44-45.

21)Ibid.,p.49.

22)이종윤편,'한국교회와 종교개혁'(서울:정음 출판사,1983)에서 옥한흠,"한국

 

교회 부흥회 무었이 문제인가?",pp.81-104. 참조.

23)2:5

24)3:2

25)딤후1:6

26)2:42

27)문창권,op.cit.,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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