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과 치명적인 덕목
김영일 (협성대 교수/기독교윤리)
기독교 윤리학에서는 덕목의 개발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단순한 행위자가 아니고, '옳은 존재'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도 성품 과 덕목에 대하여 여러 번 언급하면서 인격성장을 강조하였다 (예, 갈 5:19-26).
덕성(character)은 한 사람의 내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윤리적 구조 혹은 윤리적 힘으로서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판단력과 그에 따른 행위를 조장해 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본래 "character"는 희랍어에서 유래된 말로 "동전 위에 새겨진 표시"라는 뜻이다. 덕이란 타고난 것과 삶의 경험, 교육, 훈련 등을 통하여 습득 되여 지는 한 사람의 윤리적 구조이다.
고대 희랍 철학윤리학자들(쏘크라테스, 플라톤 등)은 네 개의 중요한 덕목(지혜, 용기, 절제, 정의)을 말했다. 어거스틴은 세 가지 덕목(믿음, 소망, 사랑)을 제안했는데, 다른 여러 가지 덕목들(정의, 절제, 인내, 사려 등)은 모두 사랑이란 덕목에 포함된다고 보았다.
신학윤리의 전통에서 일곱 가지 기본적이고 중요한 덕목들(Seven Cardinal Virtues)이 있다. 옳은 길을 선택하기에 필요한 "지혜"(Wisdom), 외부의 위협과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한 "용기"(Courage), 자신과의 싸움에 필요하며 내재적인 위협을 이겨내기에 필요한 "절제"(Temperance), 사람들이 올바르게 대우를 받는가를 볼 수 있는 힘인 "정의"(Justice), 하나님의 목적을 신뢰할 수 있는 "믿음"(Faith), 주어진 환경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의 하나님 역사 하심을 알 수 있는 "희망"(Hope), 믿음과 희망에 근거하여 응답할 수 있는 행위인 "사랑"(Love)이 일곱 가지 중요한 덕목이다. 이 덕목들은 건강한 인격형성을 이루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이다. 이들은 인간의 영적 건강과 거룩한 삶에도 반드시 필요하며, 목회자에게는 더욱 더 필요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가 있다. 지도자로서의 목회자가 이들 일곱 가지 죄의 병균 중에 하나라도 감염이 되어 있으면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잃게 된다. 그 만큼 이들 치명적인 죄 속에는 지독한 독소가 함유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들은 세상의 모든 죄들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모든 죄는 이들 일곱 가지 죄에서 파생된다는 것이다.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는 교만(Pride), 질투(Envy), 분노(Anger), 나태(Sloth), 탐욕(Avarice), 대식(Gluttony), 욕망 혹은 색욕(Lust) 등이다.
(1) 교만: 나 자신을 모든 사람들 보다 우월한 위치에 두는 것이 교만한 상태이다. 이와 같이 자기만족에 취하여 사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이웃과의 거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교만은 어깨에 힘을 주거나 콧대를 높이게 한다. 그럼으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도 외면하게 된다.
(2) 질투: 이것은 내가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갖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나타난다. 바꿔 말하면, 내가 소유한 것에 대하여 만족하지 않는 상태에서 온다. 예컨대, 나보다 큰 교회를 가진 목사, 나보다 봉급을 많이 받는 사람, 나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등에 미워하거나 경멸하는 것이다. 다른 죄목들은 적어도 내적인 기쁨이나 만족을 가질 수 있지만, 질투하는 사람은 결코 기쁨이나 만족을 가질 수 없다.
(3) 분노: 분노는 자신이 위협을 느낄 때 갖는 죄이다. 분노는 외적으로 표출되는 경우와 내적으로 감지되거나 잠재될 수도 있다. 이것은 또한 앙갚음과 깊게 연계되어 외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 것이다.
(4) 나태: 영어에서 게으름이란 대표적인 단어로 대개 "laziness"와 "sloth"를 사용하는데, sloth가 laziness보다 훨씬 더 심도 높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감각이 무디거나 동기부여가 메마른 상태이다. 이것이 죄가 되는 이유는 나태는 "선"(good) "정의"(justice)에 대해서 응답하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은혜나 사랑을 받아도 그에 대한 반응이 없다거나, 불의를 보아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자 않는 것은 당연히 치명적인 죄이다.
(5) 탐욕: 이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돈, 지위, 세력, 명예, 등에 대한 갈망을 예로 들 수 있다. 탐욕은 단순히 소유하기를 원하는 단계를 초월하여, 항상 "더 많은 것" 혹은 "더 높은 것"을 갈망하는 고정된 욕심 때문에 삶의 평범한 기쁨과 행복을 갖지 못하는 불행을 경험하게 된다.
(6) 대식: 이것도 탐욕처럼 지나친 욕망인데, 필요이상의 음식이나 음료수를 취하여 남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식이란 단순히 음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형태이든 도에 지나친 소비성을 포괄한다.
(7) 욕망 혹은 색욕: 욕망은 탐욕과 대식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것도 또한 "더 많은 것"을 추구함을 말한다. 음식이나 음료수처럼 쎅스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고귀한 선물이다. 지나치고 끊임없는 색욕에 대한 욕망은 하나님의 고귀한 선물을 평가 절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사회 속에서 이웃과 하나님에 대한 봉사를 뒷전에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 열거한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목들은 모두가 순수한 사랑을 뒤틀리게 만드는 원흉들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교만과 분노와 질투로 연계되고, 결핍된 사랑은 나태와 색욕으로 인도된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사랑하는 것은 곧 탐욕과 대식으로 빠지게 된다. 어거스틴은 그의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에서 두 도성의 시민들을 비교하면서 언급하기를 세상 도성의 사람들은 자아 사랑을 위하여 하나님을 부정한다고 말했다. 잘못된 사랑은 치명적인 죄를 낳게 한다. 일곱 가지 치명적인 요소를 지닌 지도자로서의 목회자는 결코 건강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요한 웨슬리 목사는 우리 감리교도들이 '가능한 한 모든 면에서 선을 행하기' ("Doing good of every possible sort")를 권했다. 지도자로서의 목회자는 부끄러움 없이 품성이 좋아야함(Being Good)은 물론이고, 선한 행함(Doing Good)에도 손색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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