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목은 목회 견습생, 원목을 보좌며 |
3)현직 부목사들의 소리
(1)부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기회
(현제무궁교회부목문오봉).
저는 매년 2월 25일이 되면 하나님 앞에 감사 기도를 드리며 특별하게 보낸다. 그날이 되면 꼭 며칠은 금식하며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 날에 일생 일대 잊지 못할 일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D 교회에 있을 때 선임부목사로서 행정적인 것부터 큰일 작은일 도맡아 했을 때였다. 담임이 연세가 많으시고 그래서 부목인 저에게 당회가 결정하여 많은 일을 맡기기로 하였다. 아니 후임을 거론하신 장로님도 계셨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의욕적으로 새롭게 당회와 담임목사님께 허락을 얻은 후 약 800만원 하는 인쇄기도 들여오고 노트북도 사고 주보를 교회에서 인쇄하기로 결정하였다. 나 입장에서는 담임목사님께 허락도 받은 일이었고, 당회나 교인들에게 주보를 바꾸는 것에 있어 공청회도 거쳤기 때문에 아무 일 없이 잘 진행되었다.
계절마다 색깔이 달라지는 주보를 보는 교인들은 하나같이 좋아하셨다. 그런데 2월 25일 토요일 오후에 주보 외에 다른 인쇄물이 있어서 그 일을 하고 있는데 사찰집사님께서 오셔서 접는 기계에 두꺼운 종이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큰 소리 치며 욕을 해대며 사무실을 뒤집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나를 끌고 나가 1차 폭행을 하였고, 2차로 담임목사 앞에 불려 갔을 때 2차 폭행을 시도하였다. 목사였던 나는 너무나 당황하였고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급기야 가슴을 맞아 병원에 입원까지 하고 퇴원을 하고서는 교회 여론이 이상하게 돌아가면서 담임목사님께서 사찰집사님 내보내는 문제로 당회와 갈들을 겪다가 목사인 나도 교회를 그만 두는 것이 낫겠다는 말씀을 하시기에 두말 하지 않고 그만 두었다. 100%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당회가 두 편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해결할 수 없었던 담임목사님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인사도 없이 그 날로 교회를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상처를 받고 겨우 치유를 하고 퇴원을 했는데 퇴원을 하고 기도원 며칠 다녀왔는데..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아우럴 수 없었던 담임목사님께서 내린 결정이리라 생각하고 아무런 말도 없이 그만 두게 되었다. 병원비도 주지 않고, 주었다고 떠들고 다니고, 병원에서 머리를 검사도 하지 않았는데 검사를 했다고 하고..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는 등 유언비어성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었던 때였다. 병원에 있을 때 어느 날은 밤에 술을 잡수시고 전화해서 병원비를 못주겠다고 협박까지 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퇴원하고서도 사찰을 상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께만 맡긴다는 심정으로 병원비 달라는 말도 않했고.. 여론이 좋지 않자 병원비 줄테니 영수증 갖고 오라고 거먼하게 행동하는 사찰집사님을 보면서 병원비 그까짓 것 더러워서 안 받는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주었다고 소문나고, 목사가 잘못해서 안 받았다고 소문나고... 그래서 그 때 받은 상처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심신이 쇠약해졌고, 오갈 때도 없는데 사택도 비우라고 해서 비우게 되었다. 보증금 조금 빌려서 월세방으로 옮기면서 집이 좁아서 그렇게 아끼던 책들도 웬만한 것은 다 버리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을 때 장로님 한분이 전화해서 집을 빼라는 말을 할 때는 원망스럽기 까지 하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나가지 말고 버티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심신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하루하루 먹 거리를 걱정하면서 살 수밖에 없어 아르바이트도 하고 기도도 하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조금 더 잘해 드릴 걸.. 내가 조금 더 덕이 있도록 평소에 잘해 줄 걸.. 하는 후회가 많이 생겼다. 원망과 아픔이 교차하여 자살도 생각해 보았었고, 목회를 그만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나를 가만히 두지 않으셨다. 밤에 아르바이트 하는 일을 하다 보니 밤낮이 바뀌었고, 그래도 열심히 살려고 다짐하고 다짐을 했다. 어려운 일을 시키시며 나의 자아를 죽이셨다. 나에게 있는 의욕도 다 버리라고 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훈련코스였던 것이다.
그러나 매 달 다가오는 월세 내는 날은 그렇게 빨리 다가왔다. 아이 세 명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자전거 세울 때가 없어 눈물 흘리며 나는 할 수 있다고 되새기며 열심히 하였다. 그 때 하나님은 나를 죽는 경험을 하게 하셨다. 완전히 나를 죽이시는 경험을 하게 하신 것이다. 내가 줄에 묶여 하나님 앞에서 재판을 받는 환상을 보았다. 그 곳에 묶여 있는 나는 너무나 큰 죄인이었다. 그러한 환상을 본 후에 너무 무서웠다.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교만 하였고,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였다. 말로는 섬기라고 하고 사랑하라고 하고 설교는 잘 했지만 정작 내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고 정식의사가 되지 않은 사람이 수술한다고 집도 하는 것과 같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였고 나 자신을 처음부터 다시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후 하나님은 장달윤 목사님을 통하여 부목사로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셨다.
무궁교회에 부목사로 부임하고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목사처신법이라는 장달윤 목사님께서 쓰신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진작 내가 이 책을 배웠더라면 최소한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교인들을 섬기며 사랑하시는 장달윤 목사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어려운 간증을 이렇게 쓰는 이유는 신학을 공부하여 앞으로 목회를 하실 후배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이다. 내가 부목사로 부임하여 사역을 배우면서 느끼는 점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 부목사는 자기 목회가 없다는 것이다. 훈련소 입소한 훈련병들은 결코 자기주장을 펼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단체 생활이나 교관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울을 부르시고 삼일동안 눈이 안 보이게 하시고 금식하며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택한 그릇으로 사용하시기전에 반드시 확인하셔야 하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목사일 때 최선을 다해 배우고 자신을 다듬어야 한다. 결코 자기 목회철학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배우는 훈련병일 뿐이다.
둘째, 부목사는 어디를 가든지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담임목회자가 어느 분이시든지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 곳으로 보낸 이유는 반드시 그 곳에서 뭔가를 배우라고 보낸 것이다. 그리고 가진 것 최선을 다해서 담임목사님을 도와야 할 것이다. 어느 분 에게나 배울 점은 반드시 있다. 그러므로 배우려고 노력을 하는 것은 자신이 앞으로 목회 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심지어 나는 부정적인 부분도 보고 배우려고 했다. 저러한 점은 나는 담임이 되면 실수 하지 않아야지 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반드시 그러한 경험들과 교훈들을 기록해 두라는 것이다. 안 그러면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부목사는 시키는 일만 하고 적당히 시간 때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교육 전도사일 때부터 최선을 다했다. 교육전도사인데도 교회에 살다 시피하고, 목사 안수 받고는 담임목사님에게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하여 정말 밤낮 없이 열심히 하였다. 코피가 터지도록 일을 해보고.. 내가 맡은 분야에 있어서는 일등이 되고자 노력을 하였다. 담임목사님의 목회 철학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그 교회에 유익을 드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맡고 있는 부서가 반드시 부흥해야 한다. 아니 부흥을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자신의 영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기도와 말씀훈련 설교훈련 찬송훈련까지.. 누구도 나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코치해 주시지 않는다. 다만 나 자신 스스로가 훈련을 혹독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시간들을 낭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정말 세월을 아끼며 노력하는 자만이 하나님 앞에 충성된 종이 될 것이다. 나는 찬양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담임목사님과 교인들에게 충고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좋은 목소리를 달라고 얼마나 부르짖고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음악학원을 가서 발성을 배우고 자세를 배우고 혼자서 엄청난 노력을 하였다. 밤에는 아무도 없는 성전에서 울기도 하며 혼자 묵상 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랬더니 조금씩 좋아지는 내 모습에 교인들이 먼저 아시는 것을 보았다. 말씀의 능력도 사모하며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분들의 설교를 모니터링 하면서 배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영성으로 감동을 담아서 설교 할 때만이 비로소 감동있는 설교가 가슴에서 우러나올 것이다.
다섯째, 부목사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담임이 억울하게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모 교회에 부목으로 있을 때이다. 사무실에 감시카메라가 있고 시간 1분만 늦어도 불호령이 떨어지는 그러한 교회였다. 담임목사님은 군대 사령관이었고, 부목사들은 청소부터 사찰 일까지 다 해야 했다. 부목들을 믿지 못하셔서 감시카메라를 두고 어디 가 있는지 위치를 수시로 확인도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가운데도 불평 없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결국에는 충성하고 열심히 일한 것을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조금 더 좋아하는 것 같은 인상이 있다는 이유로, 이상한 일로 소문이 나더니 부목사들이 한꺼번에 나가야 되는 일이 벌어졌다. 억울하게 안 한 말도 한 것으로 되고, 작은 일인데 큰일로 부풀려져서 부목사가 뒤집어 써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일을 겪어 본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럴 때 조용히 무릎 꿇고 내가 그 누명을 쓰고 나오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분들은 원망하고 욕하고 심지어 고발까지 하는 일들이 있는데, 어느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을 하면 다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이 보실 때 신실함이 필요하겠지만, 두 번째는 담임목사님의 목회를 바르게 돕는 것이 부목사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을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고 쫓겨나게 된 이유와 원인은 결론적으로 나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부목사도 목사이다. 목사로서의 처신이 어딘가 모자라든지 잘못되었다든지,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통하여 나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어려움을 당해 보면 그 안에서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부목사는 특히 자신을 돌아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사찰집사님과의 관계에서도 누가 보더라도 사찰님이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돌이켜 본다면 그 전에 조금 더 덕을 베풀고 사랑을 베풀었더라면 그 분이 나에게 그러한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야 조금 깨달았다. 나에게 문제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부목사도 목사이다’라는 말을 드리고 싶다. 부목사도 목사로서 처신과 영성과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들과의 관계가 바르게 정립이 되어 있지 않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담임목사님이나 또는 다른 사람들을 정죄한다면 부목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소명을 받은 목사는 착하고 의롭고 진실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본인은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혼자 독학하며 공부했다. 수많은 눈물과 서러움을 견디어 내고 공부를 했다. 그래서 군대를 갔는데 오히려 군대가 너무나 편할 정도였다. 왜냐하면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러한 젊은 시절의 갖가지 경험들이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필요한 일임을 깨닫게 하시고, 앞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그리스도를 밝히 드러내는 주님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도 종 되는 연습을 하는데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후배들을 위하여 좋은 책을 내기 위하여 애쓰시는 장달윤 목사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끝까지 사랑으로 지도와 편달을 당부 드리며, 이 시대에 목회자를 양성하며 지도자를 세워 나가시고, 상담원을 만드셔서 상처받은 목회자를 감싸시고 세미나와 상담을 통하여 치유해 주시는 목사님의 사랑 앞에 절로 머리가 숙여 집니다. 상처받은 저를 치유해 주신 하나님과 장목사님께 다시금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목회 현장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목사님들을 잘 돌아보아 주시고 이끌어 주시길 부탁드리며 지금도 목회 현장 가운데서 씨름하고 있을 동역자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하셔서 모두다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한 목회자들이 다 되시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맺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무궁교회 문오봉 부목사
(2)부목사는 담임 목사에게 배우는 존재
(현제무궁교회부목 이영철)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 (잠언 20:29)
이제 목사 안수 받은 지 8년 밖에 되지 않은 햇병아리 목사입니다. 나이로 따지자면 이제 8살 초등학교 1학년으로 이제 막 목회학교에 입학했습니다. 8년의 세월동안 부목사로서 다섯 교회를 거치면서 다섯 분의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 무궁교회에서 존경하는 원로 목사님과 담임 목사님 다른 한 분의 선배 부목사님과 함께 사역하고 있습니다. 부목사로서 한 교회에 오래 머무는 것과 저와 같이 많은 교회를 옮겨 다니는 것 모두 일 장 일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임지를 옮겼던 배경에는 분명 저의 인내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음을 이 글을 통해 시인합니다.
저는 이 사실에 대해 아내와 두 딸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섯 곳의 임지를 옮겨 다니며 다섯 분의 선배목사님을 모셔 보았습니다. 그 세월 속에 각 분의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배운 것들이 분명 저의 목회의 좋은 경험으로 남았으며 이 경험은 저의 목회의 철학을 세워 나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부목사의 경험이 저의 목회철학을 세워 나가는데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저는 부인하지 않습니다. 각 임지에서 각 분의 담임목사님은 모두 고유한 성품과 목회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분들 역시도 힘든 부목사의 과정을 거치며 지금의 각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신 분 들입니다.
저는 제 개인적으로 그렇게 힘든 부목사의 시절을 거치며 지금의 교회에 담임목사가 되신 분 들을 참으로 존경합니다. 그리고 이 분 들을 선하신 인도하심 가운데 현재의 교회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부목사의 시절을 거쳐 어딘가에 안착하게 하실 하나님을 믿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다섯 교회를 거치며 저는 다섯 분의 담임목사님을 모셔보았습니다. 다섯 분의 목사님은 저에게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어느 면에서나 저의 목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먼저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준 교회에 대해 생각해 볼 까 합니다. 물론 저는 그 때 그 담임 목사님의 인격과 그 분의 목회 철학에 대해 가타, 부타 말할 자격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목회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한 성품과 고유한 목회철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록 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분이라지만 그 목사님을 선배 목사님으로 존경합니다. 하지만 늘 곁에서 담임 목사를 보좌하는 부목사로서 목사님의 어떠한 면을 보면서 이것은 아니다 싶은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몹시 괴로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목회 윤리 상 이런 모습은 아니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 담임 목사님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성도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부 성도들은 목사님의 온전하지 못한 모습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고 그 부분에 대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통해서도 저는 그 때 그 목사님의 결함에 대해 전혀 밝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목사님은 그 나름대로 지금도 목회를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다음에 담임목회 할 때는 절대 저렇게 하지는 말아야지 하는 다짐과 함께 하나님께 깊이 기도하였습니다. 다음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목사님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저는 서울에서 부목사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 지역에서 모 교회에 선임 부목으로 일하고 계시던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함께 일해 보자는 제의를 받고 흔쾌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선배님의 도움으로 그 교회에 부목으로 부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담임 목사님과 장로님 들 사이에 관계가 깨어짐으로 담임 목사님은 당회의 허락을 받고 1년간 미국으로 나가 계신 상태였습니다.
모든 목회를 당회의 도움을 받고 선임 부목사님이 맡아 총괄하고 계신 상태였습니다. 6개월간 저는 교회의 분위기를 익혀가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6개월 후에 교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기는 목사님의 귀국이 다가오던 시기였습니다. 당회와 담임목사님 사이가 급격히 나빠지더니 당회는 중직자 회의를 긴급히 소집하고 노회 탈퇴 및 교단 탈퇴를 선언하고 이를 모 일간지와 기독교 신문에 냈습니다. 그 시간 이후부터 저는 담임목사님 편에 서 계시던 선임 부목사님의 소개로 왔다고 하여 심방과 설교를 모두 박탈당했습니다. 그 시기 저와 제 아내는 몹시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당회는 젊은 나를 냉대하였고 모든 교인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저 멀리서 나를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 이후 목사님은 귀국하셨고 당회와 교회는 주일 아침 교회에 들어오시는 목사님을 원천 봉쇄 하였습니다. 후배 목사로서 평소 존경하던 목사님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마음이 참으로 착찹 하였습니다. 그 당시 당회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아닌데 하며 문제를 제기했던 젊은 집사님들과 장로님 몇몇 뜻있는 분들이 나와 예배 처소를 마련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담임 목사님은 이 분들의 부탁으로 그 교회에서 설교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저는 모종의 결단을 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을 찾아뵙고 저의 상황과 사정을 말씀드리며 이제 교회는 교단 탈퇴와 노회 탈퇴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마당이니 저는 더 이상 이 교회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이제 목사님께서 오셨으니 저는 목사님에게 배우겠습니다. 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께서는 당신의 안위보다 먼저 젊은 저의 생활을 먼저 염려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이 목사도 생활을 해야 할 터이니 사례를 받으면서 기도하여 길을 열어 나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로서는 참 고마웠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이 그날로 교회의 젊은 집사들에 의해 소문이 났으며 저는 당회에 불려 들어가 장로들의 성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길로 그 교회에 내려가 오후예배부터 드렸습니다. 저는 제가 한 결정에 대해 추호도 후회가 없습니다. 이미 교단의 권위와 노회의 권위를 무시하고 탈퇴를 선언한 당회와 교회 그리고 담임 목사님과의 귀국이후 1년간의 담임 목사님의 목회 보장 과 명예로운 은퇴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당회와 교회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저는 목사님의 권고대로 좋은 교회에 와서 좋은 목회를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갈고 다듬고 있습니다. 저는 원로목사님의 말씀 중 좋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금은 쓰레기통에서 여전히 빛이 난다. 그 금은 청소부에게 발견되어 지면 부유한 자의 손에 들어간다. 이 말씀은 목사님의 일평생 목회 경험에서 얻으신 귀한 잠언이시다. 참으로 나는 어디에서든지 금이 되기 위해 오늘도 기도와 말씀으로 다듬어지기를 원한다. 사랑하는 부목사님 여러분! 같은 부목사로서 여러분을 깊이 존경합니다. 부목의 생활이 힘들고 고되다 할지라도 각자의 목회의 현장에서 배우고 익혀 훗날 우리의 목회 현장에서 좋은 목회자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3) 두 가지 단어
(1) 창조욕(創造慾)
인간의 교육 중에서 창조교육처럼 바람직한 교육이 없고 인간 중에서 창조적 인간처럼 탁월한 인간은 없다. 지금은 목회 창조교육(創造敎育)을 받는 시간이다.
창조란? 새로운 가치의 탄생이다. 천재는 다양한데 종교적 천재도 있다(한경직, 조용기, 김삼한 목사 등). 종교적 천제가 되자. 위대한 발명이나 창조는 결코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전력투구의 산물이다. 에디슨은 말했다. 천재가 되려면 자기 일에 미치고 몰두하여야 한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 99%의 땀을 흘려야 1%의 영감이 떠오른다. 에디슨은 정기교육은 국교 3년밖에 받지 못하였고 12세에 철도 신문팔이를 했다. 그의 특허는 1,300개 노트는 3,400권을 남겼다.
오늘 우리는 타인의 창조를 보고 모방창조(짝퉁)라도 만들어보자. 99%의 땀으로 천재가 되어보자. 명 목회를 창조하는 목회 천재가 되자.
(2) 절차탁마(切磋琢摩)
산에서 캐낸 규각(圭角) 돌은 그대로는 아무데도 쓸 수가 없다. 절차탁마를 거쳐야 구슬도 되고 원반도 되고 화병도 되고 조각상도 된다. 목사는 공부에 공부를 더하고 수양에 수양을 더하여 인격을 연마하여야 한다.
이간은 규각이 많은 존재다. 규각은 서로 찔린다. 말이나 행동이나 뜻이 서로 맞지 않아 찌르고 찔린다. 규각인간은 흥분 잘하는 자, 신경질적인 자. 수용력이 약한 자. 관용성이 약한 자. 이해심이 부족한자 남에게 상처를 잘 주는 자. 사랑이 작은 자. 이 모두는 아직 저질적 규각인생이다. 많은 세월 보내어도 절차탁마를 거부하는 자는 규각목사이다.
둥근 것은 부딪쳐도 찔리지 않는다. 시냇가에 둥근 돌은 규각이 심한돌인데 처음부터 둥근 것이 아니고 오래 동안 물에 밀려 돌끼리 부딪쳐서 부서지고 깎이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하여 보라. 얼마나 피를 흘리며 고통스럽고 울었겠는가! 식사를 맛있게 먹고 잠을 편히 잘 수가 있었겠는가! 원만한 인격도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목사도 단시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실패를 거듭하는 중에 성공의 지혜를 얻는다. 우리는 둥근 인간이 되어야한다. 그래야 서로 충돌이 없고 화목과 조화를 이룬다. 규각이 많으면 서로충돌하고 불신과 불화와 분열을 일으킨다.(나는 규각목사 아닌가?) 조화를 이루어 평화를 이루어 내지 못하는 목사는 규각목사이다. 자기를 발견하고 규각을 없애고 간접경험으로 切磋琢磨를 거치자.
절차탁마는 큰 독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 흙덩이를 계속 두들겨야 항아리가 커진다. 큰 독은 많이 두들겨야 되고 적은 독은 적게 두들겨도 만들어진다.
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 연단을 받았는가가 중요하다. 지혜로운 자는 간접경험(間接經驗) 간접연단(間接鍊鍛)을 다 수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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