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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 (창 1:26-31)

by 【고동엽】 2022. 2. 12.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 (창 1:26-31)

 

오늘 본문은 '인간의 기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인간이 '누구의 형상으로 이루어졌느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론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 두 이론은 서로 타협이 불가능합니다.
첫 번째 이론은 '진화론자들의 사상'입니다. 그들의 학설은, 어떤 작은 물질이 오랜 기간 변화를 겪어, 동물이 되고 동물이 또 오랜 기간 변화를 겪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동물의 형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찰스 다윈'의 학설입니다. 그 사람은 사람이 아메바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지만, 사람의 기원은 원숭이나 아메바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또 하나의 이론은 우리가 믿는 창조론입니다. /할/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인간창조로 그 막을 내립니다. 본문을 보면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소우주로써 천지창조의 축소판입니다. 인간은 천지창조의 극치요, 절정이요, 면류관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이러한 위대함이 어디에서 주어졌는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여기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과 성결을 부여하여 지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전체 세상의 주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특 대우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영광의 존재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값입니다.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행복한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누가 나를 알아준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하나님 형상을 따라서' 이 말은 아담을 지으시고 그 아담과 늘 대화하시고 교제하는 대상으로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쯤 되면 인간의 수준이나 값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는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
우리는 창조론자들입니다. 그러나 불 신앙인들은 진화론자들입니다. '인간을 동물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보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보느냐'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모든 면'에서 차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히틀러가 독일인 즉 옛날에는 야만족 취급을 받던 게르만족이 이제 좀 잘 산다고 가장 진화가 잘된 우수한 인종이라며 '인종 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가장 진화가 덜 됐다며 600만 명이나 죽였습니다. 인간이 동물의 형상을 가졌다고 보니까 사람 죽이는 것을 동물 죽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무서운 정치적 사상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도 인간을 죽여 놓고 짐승 하나 죽였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동물의 형상을 가진 존재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인지는 모든 삶의 영역에 대단한 영향을 주는 굉장히 중요한 사상입니다. /할/
▶송옥영씨는 '세뇌된 사람들'이라는 그의 책에서 사람이 동물과 다른 다섯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⑴죽음이 다릅니다. 동물은 얼마든지 죽여도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면 큰 죄입니다. 살인은 가장 큰 죄입니다.
⑵가치가 다릅니다. 동물은 사고 팔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양을 사러 가면 항상 앞에 가는 양은 비싸게 부르고 뒤에 쳐진 양은 싸게 부릅니다. 부지런한 양은 항상 앞장 서 가면서 풀을 잘 먹기에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짐승들은 가격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사고 팔 수 없습니다. 노예 매매 범이나 인신 매매 범은 큰 죄인입니다.
⑶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동물은 실험용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해부용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원숭이를 무중력 상태에서 살 수 있는 지 죽는 지 인공위성에 넣어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실험용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생체 실험하던 일본군 741 부대가 할 빈에 있었습니다. 영하 40도에서 발가벗겨 놓으면 얼마 만에 얼어 죽나 실험도 하였습니다. 싸우나 실에서 땀을 계속 빼면 몇 분만에 죽는 가도 실험했습니다. 간악한 일본인들입니다. 이는 죄입니다. 동물을 실험할 수 있어도 사람은 실험할 수 없습니다.
⑷약육강식이 다릅니다. 동물을 지배하고 있는 엄연한 법칙이 있습니다. 약육강식입니다.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잡아먹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자연법칙이요,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잡아먹어서는 안 됩니다. 동물 세계에서는 약한 동물은 강한 동물의 먹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는 강한 사람을 약한 사람을 사랑하고 도와 주어야 합니다.
⑸윤리와 도덕이 다릅니다. 동물세계에는 윤리가 없습니다. 도덕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의 사슴 농장에 50마리 가량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숫 사슴 한 마리가 기운이 제일 쎄다고 암 사슴들을 다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숫 사슴이 접근하면 가서 피가 나도록 물어뜯는 것을 보았습니다. 돼지는 일부일처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윤리와 도덕을 벗어나면 이미 사람이 아닙니다. 이같이 사람과 동물은 5가지 면에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사람은 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사49;5) /할/ ◀제목 소개!▶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 중에 특별히 인간만을 구별하여 창조 하셨습니다. 천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바라'창조입니다. 그리고 천지 위에 모든 동식물은 '개조'창조하셨습니다. '아사'창조입니다. 그리고 인간만은 특별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모방창조를 하셨습니다. '야탈' 창조입니다. /할/

 

①인간은 두 가지 재료로 지음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먼저 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2:7). 하나님께서 식물과 동물을 지으실 때도 흙을 재료로 사용하셨습니다(창1:11,22). 흙은 자연의 기초가 되고 만물의 기초가 되는 재료입니다.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흙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사람'이란 말은 '히'어 발음으로는 '아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담아' 하신 것은 '사람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단어의 뜻은 '흙, 먼지, 티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아담아'라고 하신 것은, 마치 '흙아! 흙덩어리야! 이 먼지야! 티끌아!' 이런 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근본을 깨닫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담아'하고 부를 때마다 '너는 근본적으로 비천한 흙덩어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존귀함을 받는 것은 우리 육체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거룩하다함은 하나님의 형상인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에 거룩합니다. /믿어져야 합니다./아멘!/
그 다음, 하나님의 생기입니다. 창2:7절에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 그래서 특제품 사람이 만들어 졌습니다. 여기 생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신을 찾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종교의 씨를 주셨습니다. /할/ 솔로몬은 전3:11절에서 '또 사람에게는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멘!/

 

②하나님의 형상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잘못된 이론 세 가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⑴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인간이 신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인간이 도를 닦으면 신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창3:5절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가르침은 사단의 가르침입니다.
⑵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인간의 육신의 모양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할 때 육신의 모양을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특징이 닮았다는 것입니다.
⑶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생각도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심각하게 훼손되기는 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무릇 인간의 피를 흘리면 인간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지었음이니라'(창9:6).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신이 된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의 육신이 하나님의 형상과 똑같다는 이야기도 아니며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하나님과 같은 영적 특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여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지, 정, 의'로 지음 받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를 믿고 구속받은 사람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골3:10)라고 했습니다. 지식은 생각하고 판단하며 묵상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대학입시도 있고 살아가면서 각종 시험을 봅니다. 하지만 짐승들이 공부해서 시험을 쳤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짐승들이 본능은 있지만 인간같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지식은 없습니다. 그 지식이 예수를 알게 합니다. 이는 타락한 인간이 구속함을 받아 처음 지음 받은 형상을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음으로 무한한 가치와 존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만물의 영장으로, 양심도 주었고, 이성도, 자율성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덕성과 거룩 성을 주었습니다. 선을 추구하는 마음, 성결하고자 하는 마음, 만물을 다스리는 주관성도 주셨습니다. 여기서 영장(靈長)이라는 것은 최고의 힘을 가진 우두머리를 뜻합니다. /할/
이것이 곧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마치 옛날 대영제국의 왕이 자기가 가지 못하는 지방에 자기 형상을 만들어 세워 그 위엄과 통치권을 표시한 것처럼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 당신의 주권을 유지하시며 진행하시기 위하여 대리로 쓰시려고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할/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존엄성은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를 가져야만 참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믿/할/

 

③창조의 특성을 몇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⑴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셨습니다.
막9: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또 빌4:13절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무안한 가능성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믿/
▶내의명주란 말이 있습니다. 옛날 인도에 어떤 부자가 귀여운 자기 아들 옷 속에 값진 보배 구슬을 매달아 주었으나, 그 아이는 집을 뛰쳐나와 거지가 되어 유랑생활을 하면서도 그 구슬이 자기 옷 안에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몇 해가 지나서야 자기 집을 찾아오게 된 그 아들에게 '어째서 너는 네 옷 속에 값진 보배 구슬이 있는데도 거지 노릇을 하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때서야 그 거지 아들은 '자기 옷섶에서 구슬을 이제야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답니다.
실로 누구에게나 다 내의 명주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해 주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무한한 가능성을 깊이 묻어두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영성이 깨어납니다. /아멘!/
▶인도의 수녀 테레사는 알바니아의 한 노동자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했습니다. 가진 것도 없었습니다. 몸집도 작았습니다. 인물도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겨자씨 한 알처럼 미미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늘 자신 스스로를 가리켜서 즐겨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I am nothing(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가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을 때도 그는 연설 가운데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I am nothing(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테레사가 인도의 빈민촌에 뛰어 들었습니다. 사랑을 품고 들어갔습니다. 그곳에 버려진 사람들, 병든 사람들, 죽어 가는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서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뭇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사랑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빈민굴의 성자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의 발로입니다. /할/
1997년 그가 죽었을 때, 인도에서 국장으로 그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 세계에 그의 장례식이 방영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겨자씨 같이 작게 시작했던 그의 삶이 놀랍도록 성장해서 큰 나무처럼 된 것입니다. /아멘!/
⑵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엄청난 '가치성'을 주셨습니다.
막8:36-37절에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너희는 온 천하보다 귀한 목숨'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8절에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실로 엄청난 가치 성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아멘!/
⑶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독특한 '유일성'을 주셨습니다.
7-80억이 넘는 인간사에 나를 닮은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나와 똑같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데일 카네기'는 '당신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봅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특성은 무엇인가?
㈀유일성입니다. 하나밖에 없습니다. 70억 가운데 우리 모두 하나 하나를 지어주셨습니다. 똑 같은 사람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공주병, 왕자 병이 여기서 나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 각자에게 각기 다른 달란트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대로의 독창성이 있습니다. /할/
▶어느 날 한 성도가 하나님과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강한 믿음을 주셔서 현세의 아브라함이 되게 해 주세요' 그랬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래, 네가 아브라함이 되고 싶으냐?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까지 나에게 바쳤다. 네 외아들을 번제로 바칠 수 있느냐?' '하나님! 다른 것은 다 해도 아들을 번제로 바칠 수는 없나이다.' '그러면 너는 아브라함이 될 수 없어' '그러면 나에게 강권적으로 능력을 주셔서 현세의 엘리야가 되게 해 주세요' '엘리야! 그는 기손 시내로 850명의 바알 선지자를 데려다 죽였다. 너도 이교도 850명을 데려다가 죽일 수 있느냐?' '어떻게 사람을 죽입니까? 저는 그건 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넌 엘리야가 될 수 없다' '하나님! 그러면 저에게 놀라운 힘을 주셔서 현세에 모세가 되게 해 주세요' '모세? 모세는 한 사람을 죽여서 모래사장에 묻었어. 너도 그렇게 할 수 있느냐?' '하나님! 다른 것은 다 해도 사람은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너는 모세가 될 수 없다.' 그러자 이 성도가 벌컥 화가 나서 '하나님! 그럼 저는 누구처럼 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처럼 되거라' /할/ 그렇습니다. 나는 나고 너는 너로서의 유일성이 있고, 독창성이 있습니다. /아멘!/
㈁영원성입니다. 영원히 삽니다(본질). 그래서 사람은 죽는 것을 싫어합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죽음입니다.
㈂'지, 정, 의'의 인격체입니다. 인간을 기계로 짓지 아니하시고 한 개인의 인격체로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유인으로 지어주었습니다.
㈃거룩성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양심에 가책이 옵니다.
㈄사랑성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입어야 하고 주어야 합니다. /아멘!/

 

④그럼 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는가?
그 이유는 2: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되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 짝을 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남녀의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고 더 짙은 것은 여자를 남자 갈비뼈로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남성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은 고로 좋은 반려자 배필이 되어야 합니다. 바가지들을 긁지 마십시오, 또 여성은 남성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남성은 여성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원리입니다. /아멘!/

 

⑤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과연 어떠한 존재입니까?
⑴하나님은 당신을 예배 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인간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합니다. 전3:11절에 '또 사람에게는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런데 인생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인생에게 예수님이 '참된 길과 진리와 생명'을 가르쳐 주셨습니다(요14:6).
이렇게 하여 인간은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그 앞에 나아가서 예배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창2:3) 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복은 엿새에 수고하는데 있지 않고 일곱째 날에 안식(예배드리는 날)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배드리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가? 요4: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3절에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아멘!/
예배는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드리는 지상최고의 가치요,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인 종합예술입니다.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없으며, 하나님은 이보다 더 기뻐 받으시는 것이 없습니다. 예배에는 찬양, 기도, 헌금, 봉사, 말씀 등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할/
이러한 예배를 우리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롬12: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아멘!/
⑵하나님은 당신을 사회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지상에 최초로 세운 기관이 가정입니다. 최초의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주례로 가정이 이루어졌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습니다. 가정은 계약에 근거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가정을 지탱하는 힘은 건강도 재물도 지식도 명예도 권세도 아닙니다. 가정에 사랑이 식어지면 순식간에 파괴되고 허물어집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하와를 지을 때에 아담의 머리뼈로 짓지 않음은 하와로 하여금 교만하지 못하게 함이요, 발가락의 뼈로 짓지 않음은 아담으로 하여금 무시를 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왜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지었는가? '가슴에 품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벧전4:8절에서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1:18)고 했습니다. 인간은 서로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의 약점과 부족하고 모자라는 점이 무엇인가를 보고 서로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⑶하나님은 당신을 문화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문화적인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비록 소보다 힘이 새지 못하나 이성으로 트랙터나 콤바인을 만들어 이용하면 소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다의 고기보다 헤엄을 잘 치지 못하나 군함이나 잠수함을 만들어서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독수리처럼 나르는 날개가 없으나 비행기나 인공위성을 만들어서 그보다 더 높은 창공을 나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 속에 엄청난 지혜의 보고를 묻어두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문화명령 속에 사는 존재가 된 것을 꼭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⑷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를 나누시기 위하여 자기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창5: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이 말은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친구처럼 데리고 다니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도 동행하셔서 아브라함을 친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너의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이 세상을 하나님처럼 다스리고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며 사귀고 하나님과 대화(교제)하기 위합니다. /믿/아멘!/
⑸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도록 지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예수와 같은 존재로 지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인간이 그만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이 틀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는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왜 세상에 보내셨는가? 인간을 다시 회복시키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인간을 죽음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입니다. /아멘!/
또 하나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일'입니다. 딤후3:16-17절에 '모든 성경은 감동으로 된 것으로...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고...모든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온전케 하려 함이라'의 뜻은 '삶의 변화를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즉 그 말씀은 교육차원이 아니고 지식을 넓히는 차원도 아니고 생각을 깨우치는 계몽수준도 아닌 성경을 통해서 깊으신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아 예수를 알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성경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할/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밝히 알고 하나님의 본뜻을 아는 일이 인간이 온전케 되는 일입니다. 그 온전케 되는 그 상태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모습입니다. /아멘!/

 

⑥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근본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하나님이 혼자 계시기 심심하셔서 인간을 지으셨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혼자 계셔도 심심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왜 지으셨느냐? 사43:7절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 목적을 부인해버린다면 우리는 무슨 목적으로 존재하겠습니까? 먹고살기 위해서 존재합니까? 돈 벌고 출세하려고 존재합니까? 이런 것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첫 번째 질문이 '인간의 최고 목적은 무엇입니까?'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복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37:4절에서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할/
현대 심리학은 다 인간 중심적입니다.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높이는 것이 현대 심리학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고 하십니다. 고전10: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아멘!/


▶본문에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 몇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⑴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복을 주시기 위해서 인간들을 지으셨습니다. /믿/ 성경은 온통 축복 받은 비결로 가득합니다. 32,500가지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무려 7,000번 이상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중에 가장 큰복은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아멘/
⑵28절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 하라'는 축복을 주시기 위해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함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지만, 그러나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육하라 하셨으나 아담과 하와는 살인자 가인을 낳았고,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냈습니다.
'번성하라'고 하셨는데 번성한 것은 선한 것이 아니라 죄악뿐이었습니다. '충만해라'고 하셨는데 죄악만 충만했고, 파괴와 강포만 충만해졌습니다. 시기, 질투, 원망, 불평, 불만, 또 살인, 음란, 도둑질, 불의, 추악, 비방, 탐욕, 교만, 불효, 무자비한 것들이 충만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써 그 생명을 보존하고 번성케 하여 '이 땅에 가득 하라'는 축복입니다. /할/
▶여기 '충만'이라는 단어는 신구약 성경 가운데서 자주 빛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채우다. 성취하다. 완성하다'라는 뜻입니다. 또 '넘치다. 차고 넘치다' 등의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이 말은 '만선, 도시에 꽉 차있는 인구, 일정한 수의 전부(만수), 일정한 기간의 전부(시간의 충만), 어떤 일의 완성' 등을 나타낼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신약의 경우 막6:42-43절에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라는 경우입니다. 바구니가 꽉 찼음을 가리킵니다. 또 시24:1절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한 경우입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의 은총입니까? /할/
우리나라가 새마을운동에 덕을 보았습니다. '잘 살아보세' 운동도 덕을 보았습니다. 고속도로를 내고 산업을 발전시켜 오늘 이 풍요를 누리는 덕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운동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부한 운동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아이를 안 낳습니다.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 사회가 노령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 인구가 줄면 나라의 경영이 정말 어렵게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 국민들이 자식들을 많이 낳는 것이 애국입니다. /할/
⑶'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을 잘 다스리고 관리하고 보존하라는 뜻입니다.
좋은 유산은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물려받은 유산을 잘 관리하면 복이 되고 은혜가 되지만 잘못 관리하면 대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려했던 것처럼 인간은 이 세상을 잘못 관리하고 잘못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대 재앙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이 세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우선 그 좋던 관계들이 악화되어 서로 원수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범인을 잡으면 다 이웃사람들입니다. 성폭행 자들을 잡고 보면 다 이웃 사람들입니다. 원수가 집안에 있습니다.
또 지금 지구가 심각하게 열을 받고 있습니다. 지구는 연간 표면온도를 14도로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야 인류가 농사를 짓고 동식물들이 자라고 물고기가 생존할 수 있는데 그동안 사람들이 이 지구를 혹사시켜 열을 받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이 각종 폐기물들을 아무데나 버리고 무분별하게 파헤치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내뿜고 가는 곳마다 석유를 뿌리고 다니고 그것도 모자라 100년 전부터 비행기를 만들어 자동차 보다 몇 백 배나 더 되는 화석연료를 하늘에 뿌리고 다니니까 21세기 말에는 온도가 5.2도가 높아져 여름은 더 덥고 겨울은 더 춥게 되어 이상기온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없었던 이런 이상기온이 왜 요즘 자주 발생하는가 하면 모두 이 세상을 잘못 관리하여 지구가 열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구뿐 아니고 땅속도 열을 받았습니다. 자식이 이사를 가면 부모님이 빈 냉장고를 가득 채워 주시듯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아주 충만하게 채워 주셨습니다.
공중에는 맑은 공기로 충만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공기 속에는 각종 에너지들과 영양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땅속에는 물을 충만하게 채워 놓으시고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충분하게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무엇을 심든지 충만하게 자라게 해 주셨습니다.
또 이 세상에 사람들로 충만하게 하시고 계속해서 낳고 또 낳아서 이 세상은 사람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람들은 이 충만함을 다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으로 하여금 열 받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선한 뜻을 다 거스르고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맑고 신선하던 공기를 오염시켜서 공기를 마시면 온갖 질병이 유발되어 120년을 살아가던 생명들이 단축되는 결과를 가져 왔고 그 맑고 시원하든 물을 오염시켜서 이제는 물이 독을 품고 있어 마실 수가 없게 되어 기름보다 더 비싼 값으로 물도 사서 먹어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땅도 오염되어 각종 먹을거리들이 오염되어 8-90세, 이제 100세를 살아가는 것도 각종 암과 질병에 노출되어 평안하게 살아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결과 오늘 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믿/
⑷'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한 후 저주를 받음으로 인간이 평생토록 이마에서 땀을 흘려야 살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땀을 흘린다는 것은 수고와 노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건만 오늘날 도리어 인간들이 피조물들에게 다스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새해가 오면, 또 새 집을 짓고 빌딩을 지으면 죽은 돼지 머리 앞에 머리를 숙이고 복을 달라고 비는 모습을 보십시오!' 모든 피조물들이 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나타나는데 유독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르지 못하고 더 반항하고 멀리 떠나는 모습뿐만 아니라 우상에게, 무당에게 머리 숙여 복 달라고 하는 것이 바로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죄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할/

 

⑦하나님의 뜻대로 약속하신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빼앗긴 축복을 되찾으려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야 합니다. 요3서 2절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마치 기관차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면 객차나 화물차가 잘 움직이지만 기관차에 고장이 생기면 객차나 화물차를 끌고 갈 수 없는 이치입니다. 본래 영의 기능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이루는 것인데 아담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과 교통이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예수가 곧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믿/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건너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전12:13절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할/

 

⑧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31).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감탄하셨습니다. 원문에는 '보라 얼마나 좋으냐? 보라. 얼마나 아름다우냐?'라는 말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다른 피조물은 하나님이 말씀 한마디로 만드셨습니다. 빛이 있으라고 하시면 빛이 있고, 물이 한군데 모이라고 하시면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로 만물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이 서로 의논을 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와 의논하신 것입니까? 어떤 분은 하나님이 천사들과 의논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천사와 의논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단독으로 만물을 만드셨고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26절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서 우리는 누구입니까?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른 피조물을 지으셨을 때는 그냥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피조물의 가장 으뜸 되는 인간을 지으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것을 보고 계십니다.
4절에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은 빛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빛을 받아 살아가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그 동안은 죄악 가운데서, 어두움 가운데서 두려워하며 절망적인 생활을 했었는데 이제는 그 빛이 내게 임해서 밝은 생활을 하며 사는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봉사할 때 누가 좀 보았으면, 목사님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다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마음에 섭섭함이 생겨서 낙심하고 물러서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들이 몰라주고, 목사가 보지 못하여도 하나님이 보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알아주십니다. 행복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 /할/

 

⑨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인생!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⑴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조지 트루엣'이란 사람은 '최고의 지식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고, 최고의 성취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고 했습니다.
⑵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우주 만물은 다 하나님이 '가라사대'하시니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천지를 창조하는 권능이 있습니다. 그 분의 말씀 자체에 인생 전체가 들어있습니다. 그 분의 말씀이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생기기도, 없어지기도, 세우기도,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피조물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만큼 중요합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설계대로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성되었습니다. 히11: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이처럼 천지만물이든 인생이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⑶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소금 역할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의 열매를 보고 싶어하십니다. 마5: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아멘!/

 

⑩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들에게 바울의 권면을 들어보자!
⑴'네 자신을 돌아 보라'고 권면합니다. 갈6:1절에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두 가지의 뜻이 있는데 하나는 '자신을 깨우라, 잠자는 나를 깨워라, 근신하라, 깨어라, 기도하라'는 뜻이요, 또 하나는 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라는 것입니다. 너 자신을 강자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어떤 자가 강한 자인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강자입니다. /아멘!/
⑵'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고 갈6:4절에서 권면합니다. 여기 '각각'이라는 말과 '자기의 일'이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자기의 일은 사명과 책임입니다. 사명과 책임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⑶'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갈6: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⑷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갈6: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하다가 낙심합니까?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할/
⑸중요한 부탁입니다. '변화를 받아 새사람으로 살라'고 권면합니다. 엡4:23-24절에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심령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 사실 사람들은 외모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외모의 변화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해서 몸 짱을 만드는데 열심입니다. 피부 관리는 기본이고 성형수술이 대세입니다.
특히 여자 분들은 화장을 통해 변신을 시도합니다. 나이에 따라 화장으로 변신하는 효과가 차이가 난답니다. 우선 10대는 치장 수준이고, 20대에 들어와 본격적인 화장이 시작됩니다. 30대에 들어서면 화장 효과가 떨어져 화장이 아니라 분장을 해야 한답니다. 40대에는 더 상황이 좋지 않아서 아예 변장을 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50대에는 화장이 아니라 위장을 하게 되고, 60대에는 화장 대신 아예 포장을 하게 된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외모를 중심으로 변화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우리의 외모가 아니라 심령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심령이란 다른 말로 말하면 인간의 속 사람을 뜻합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으로 변하고, 영에 속한 사람은 계속해서 영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할/ 어떤 삶입니까?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아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시2:7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함께 할 때만이 창1:28절의 복인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축복'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우리 모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위대한 신앙의 행진을 멈추지 마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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