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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옷깃에 손을 댄 여인! (막 5:25-34)

by 【고동엽】 2022. 2. 10.

예수님의 옷깃에 손을 댄 여인! (막 5:25-34)

 

일생을 살아가면서 누구의 손이라도 잡아야 하고, 누구의 옷이라도 붙잡아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살이의 삶의 모습입니다. 행복을 위하여 사랑의 손을 잡고, 출세를 위하여 권력의 손을 잡고, 우리의 생활을 위하여 기업가의 손을 잡기도 합니다.
또 사랑하는 친구의 손을 잡는 우정의 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손을 잡아서 잘되면 좋지만 안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려고 잡았지만 오히려 불행하게 되고, 잘되려고 잡았지만 오히려 잘못되고, 영광을 위하여 잡았지만 오히려 부끄럼을 당하는 일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에도 그런 사건들이 많이 나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이끈 모세의 손보다 원망과 불평을 일삼았던 고라의 손을 잡았던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 가운데 부정적이고 소극적이었던 10명의 정탐꾼의 손을 잡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심판을 받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손을 잘 잡아야 합니다.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손을 잘 잡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손을 잘 잡은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제목 소개!▶

 

막5장에는 예수를 만난 세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1-20절까지에는 '군대 귀신들렸다가 예수를 만나 치료받은 사람'이 소개되고 있으며, 21-43절에는 꽃다운 어린 나이에 중병에 걸려 죽어 가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생명의 주인 되신 예수께서 살린 사건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고 있던 여인이 생명의 주님을 만나 그분의 옷깃에 믿음으로 손을 대었다가 치료받고 구원받은 그런 아름다운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마9:20-22절과 눅8:43-48절에서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갈릴리와 유대 그리고 사마리아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많은 무리들이 모여들었으며, 특별히 병든 자, 귀신 들린 자들이 몰려와 주님 앞에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으며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그곳에도 큰 무리가 모여들어 병을 고침 받고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때에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 라고 하는 사람이 급하게 예수님을 찾아와서 발아래 엎드려 간구하기를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저희 집에 오셔서 내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하니, 예수님이 쾌히 허락하시고 회당장과 제자들과 함께 회당장의 집으로 가시는 도중에 생긴 사건이 오늘 봉독한 본문의 말씀입니다. /할/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을 한번 조명해 보겠습니다.
행복하게 살던 한 여인에게 어느 날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하혈을 하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으나 날이 갈수록 하혈은 심해져서 의원을 찾아가 자기의 증세를 말하고 진맥을 한 다음에 약을 지어 가지고 와서 먹었으나 혈루증이란 병이 좋아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잘 고친다고 하는 의원들은 다 찾아 다녔으며 좋다고 하는 약도 다 먹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병은 차도가 생기지 않고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으며 그를 아는 사람들은 혈루증에는 이것이 특효약이다 저것이 특효약이다 하면서 가지각색의 약들을 구해 주었으나 그의 병은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병은 한가지지만 약은 수천 가지란 사실을 아파 본 사람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일년이 지나고 삼 년이 지나고 오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면서 여인은 있는 재산을 약값으로 다 없애 버렸으며 수없이 많은 의원들을 통하여 고침을 받아 보려고 했으나 고침을 받지 못했으며 그의 병은 더욱 심하여 졌으며 날이 갈수록 온 몸은 뼈와 가죽만 남게 되었습니다.
벌써 그가 병으로 고생한지도 12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을 통하여 예수님의 대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순간 이 여인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자기의 병을 고침 받으리라는 확실한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여인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때 주님은 회당장의 딸을 고치시려고 회당장의 집으로 가시는 도중이었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는데 여인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가까이 나아간 여인의 마음속에 이런 믿음이 생겨납니다. '내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내 병이 나으리라'는 믿음이 생기고, 그러한 믿음으로 손을 대니 예수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순간 그의 혈루 근원이 멈추고 그의 병이 깨끗하게 치료받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할/
그의 병이 예수님 옷에 손을 대는 순간 고침을 받았으니 이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으며 고침을 받은 여인만이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시던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뒤를 돌아보시면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말씀하시니 제자들은 불평스럽게 말하기를 '주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에워싸고 미는 것을 보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 말은 한 두 사람이 예수님 옷에 손을 댄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손을 대었다는 이야깁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예수님의 옷을 만진 모든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 옷자락을 만지고 고침을 받은 자를 찾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인을 보시려고 뒤를 돌아보시니 이 여인이 도저히 숨길 수 없음을 알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을 자초지종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향하여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지어다'하시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여인은 병만 고침 받은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구원받았으며 다시는 질병의 불안과 공포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것입니다. /아멘!/할/
오늘 본문은 이 천년 전에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도 이런 믿음만 가지면 똑같은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공식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할/

 

①그 당시 이 여인의 형편은?(25-26)

⑴혈루증으로 부정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레15장에 혈루증은 부정한 병으로 나와있습니다. 문자 적인 의미로는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적으로 흐르는 병'으로써 의학적인 의미로는 '만성 자궁 출혈(하혈)병'으로 간주된 병입니다. 레15장에서는 그 병을 유출병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고칠 수 없는 병, 부정한 병으로 선언해서 아무도 환자를 만져서는 안되고, 만약 환자가 만진 물건에 손을 대면 함께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피는 생명의 근원인데, 피가 계속 유출된다는 것은 결국 죽는다는 뜻이 됩니다. 생명을 소유한 사람의 피는 정상인이 약 5리터 정도를 보유하고 있으며 심장에 의해 매 23초마다 신체의 기관들을 순환하면서 세포들에게 영양을 공급하여 깨끗하게 하고 모든 세포들과 계속적인 교환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몸 안에 흐르고 있는 피는 500만개의 적혈구와 백혈구가 아래, 위를 다니면서 인간의 몸을 세워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피를 관할하는 심장은 1분에 60번 수축 작용을 하고, 한 시간에 360번 수축작용을 하면서 펌프질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건강을 유지하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며 나아갑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12년 동안이나 혈루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매우 무서운 병입니다. 가슴아픈 것은 혈루병을 앓는 여인은 이혼의 사유가 되었고, 가족들과도 별거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병은 고통스러운 병일 뿐만 아니라 여인들이 수치스럽게 여겨서 말하기도 꺼리는 그런 병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 사람들과 함께 살수 없는 병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문둥병과 혈루증 이었습니다. 두 환자는 사회에서 정상인으로 생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밖으로 쫓겨나 그들끼리 살았습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받아 성전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레15:19-27).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접촉을 하면 그 사람도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과도 철저히 격리되어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혈루병자는 신앙생활과 사회 활동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혈한다는 사실보다 더 괴로운 것은 율법에 의해서 부정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정한 사람을 만지거나 접촉하면 그 사람들도 부정해집니다. 또 부정한 사람이 사용한 모든 물건도 다 부정해집니다. 사람들이 부정해지지 않으려면 이 여인과 접촉하지 말아야 하고 이 여인을 주위에 있지 못하게 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여인에게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전부 부정해지지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인은 고립되었습니다. 공동체에서 소외되었습니다. 또 이렇게 부정해지면 하나님께 예배드릴수도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부정한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습니다. 이런 병에 걸리면 몸 고생, 맘 고생, 신앙고생을 다 하게됩니다. 하나님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세상도 버린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여인입니까? 그리운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감옥에서도 독방이 가장 무서운 형벌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더불어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혼자 외롭게 산다면 얼마나 고독하겠습니까? 학교에서도 왕따 당하는 학생들은 외롭습니다. 여러분들! 세상과 단절된 삶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상상해 보십시오.
예나 지금이나 사람에게 있어서 건강 문제는 그 사람의 행복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건강에 관한 음식이라면 아무 것이라도 먹어 치우는 실정입니다. 몸에 좋다 하면 가릴 것이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할/
⑵허비하는 인생을 산 여인입니다.
본문의 이 여인은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12은 만수로써 오래 고생했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1년도 아니고, 5년도 아닌 12년을 허비한 여인입니다.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중하여졌던 차에'
자신의 병을 고쳐보겠다고 명의로 알려진 수많은 의사들을 찾아가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받아보았습니다. 또한 좋은 약이라면 한약, 양약, 민간요법 등 가리지 않고 다 먹어보았습니다. '어느 구름에 비 올지 모른다'는 심정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처방을 받느라 재산과 재물을 모두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부자가 아니면 의사를 찾아 갈 수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 여인의 가정은 어느 정도 부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재산을 치료비로 다 써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 숱한 치료를 다 받았지만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지병이 더 악화되어 고통만 가중되었습니다.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심리적 고통이 말할 수 없었습니다.
'역시 자신의 병은 불치병이라는 것, 그래서 당대의 어떠한 의술로도 안 된다는 것, 치료비로 전 재산을 다 날렸고 남은 것은 악화되어 날로 고통이 더욱 심해지는 지병' 참으로 인간적인 모든 수고가 허사로 돌아갔다는 절망 가운데 이 여인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12년의 기나긴 세월을 재산까지 허비하며 몸부림쳐 보았지만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녀가 만난 의사들이나, 이 세상 물질이 결코 그녀의 마음에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다른 피난처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질병과 싸워 볼 기력도, 용기조차도 없었습니다.
12동안 자기의 모든 인생을 질병으로 짓밟히고, 수많은 물질을 동원시켰으나 오히려 병만 더 가중되어 버렸고, 모든 물질은 다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탕자는 세상 쾌락으로 허비하는 인생을 살았고, 이 여인은 질병으로 인한 허비하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허비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세상 쾌락에 물질도 시간도 허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의 나라와 그에 의를 위해 세상을 살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곳에 축복이 있고 구원이 있고 삶에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
묘한 것은 이 여인이 주님을 만난 시점이 '가진 돈을 모두 써버린 때'였다는 점입니다. 왜 주님은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허비'할 때까지 기다리실 까요? 그 때가 두 손을 드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믿/
그런데 이렇게 홀로 병과 싸우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성장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 많으신 하나님을 만나 기적적인 치료를 받는 복된 기회도 될 수 있습니다.
시34:18절 말씀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은 절망에서 소망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아멘!/

 

②이 여인이 복된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27).
⑴'예수의 소문을 듣고'
절망과 소외의 수렁에 빠져 있는 이 여인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어느 날 혈루증 앓던 여인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거라사 지방에 더러운 귀신이 들려 사람들이 고랑과 쇠사슬로 매어놓았지만 번번이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려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게 된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고치신 예수의 소문(1-20), 다시 배를 타시고 맞은편으로 건너가시어 회당장 야이로의 죽어 가는 딸을 고쳐주신 예수의 소문'(21-24)을 듣게 것입니다.
이러한 소문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라가며 에워싸 밀치고 있는데 이 혈루병 여인도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무리에 끼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은 불치병, 난치병을 고쳐주시는 치료자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았던 사람들과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치료자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놀라운 치료자 되시는 예수님이 메시야(구세주)라는 소문이 팔레스틴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할/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도 기다려 왔던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병으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다는 소식을 이 여자도 들었습니다. 여인에게 있어 이 소문은 반갑고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절망의 늪에서 그녀는 소망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각색 병든 자를 고치시고, 중풍 병자도 일으키시고, 열병도 고치시고, 귀신들도 내어쫓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생을 포기하려던 그녀에게 들려 온 소식은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소식이, 생명의 소식이 그녀에게 들려진 것입니다. 확실히 그녀의 믿음은 들음에서 났습니다(롬10:17). /할/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소문을 듣는 것! 이것은 곧 은혜입니다. 오늘날 신앙유형을 살펴보면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보고 믿는 신앙형태와 듣고 믿는 신앙형태가 그것입니다. 보고 믿는 신앙은 이방종교나 원시종교에서 성행합니다.
그래서 저들은 물체를 만들고 우상을 만들고 부적을 써서 붙이고 어떤 시각적 표징을 보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듣고 믿는 종교입니다. 롬10: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라고 했고, 요20:29절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고 하셨으며, 벧전1:8절에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아멘!/
⑵이 여인은 소문을 듣고 행함으로 옮겼습니다(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7절에 보면 중요한 동사가 두 개 있습니다. '소문을 듣고'와 '손을 대니'입니다. 손을 댄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주께서 기적을 베푸신 사람들에 관한 성경 기사에는 반드시 '듣고'와 '믿고'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할/ 먼저 들음이 없이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여기서 '듣고'는 '청취하다. 안다. 깨닫는다'는 의미로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여러 정보를 청취한 결과 자신의 병을 고쳐 줄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들음으로 주님을 믿었습니다. 복된 귀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찾아 주님이 계신 곳까지 왔습니다.
주님만이 구원의 길임을 듣고 깨달은 여인은 주님을 만나고자 온갖 어려움을 무릎 쓰고 찾아 온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의식적으로 부정한 여자입니다. 가까이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제한 받는 여자의 신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분의 옷만 만지면 살겠다는 결연하고도 절대적인 믿음으로 나왔습니다.
맞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손만을 댄 것이 아니고, 자신의 간절한 마음과 신실한 믿음을 댄 것'입니다. /할/ 이런 신앙은 지금도 역사가 일어나고, 지금도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지금도 홍해는 지금도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멘!/
▶선교사 '허드선 테일러'가 처음 중국에 갈 때였습니다. 범선을 타고 항해하는 중에 식인종이 살고 있는 섬 해안에 가까이 왔을 때 바람이 불지 않아 배가 멈추어 서고 말았습니다. 뱃길을 바꿀 틈도 없이 배는 해안선 쪽으로 서서히 떠밀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야만인들은 열렬히 축제를 고대하며 함성을 지르고 난리법석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선장이 테일러 선교사에게 와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달라'고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때 테일러 선교사가 '좋소. 바람을 잡을 수 있도록 돛을 펴시오' 그러자 선장은 바람 한 점 없는 가운데 돛을 펴는 것은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돛을 준비하지 않으면 나는 기도하지 않겠소'
결국 두려움에 떨던 선장이 졌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 돛을 올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때 선교사는 특별 기도실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 선장이 기도실의 문을 세차게 두드렸습니다. '목사님, 이제 기도 그만하고 나와 보세요, 배가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할/
여러분! 우리에게도 '허드선 테일러' 선교사 같은 적극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본문의 혈루증 여인이 가졌던 적극적인 믿음을 소유하기만 하면 오늘도 기적을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아멘!/

 

③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어 구원의 은총을 고백했습니다(28).
롬10: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 여인의 고백도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할/
⑴신앙은 반복적인 훈련입니다. 여기 '함일러라'(엘레겐)라는 반복적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여인은 마음 속으로 '그의 옷에 손만 대어도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거듭거듭 되뇌고 또 되뇌며 예수께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그런 문장입니다. /할/
그녀는 오직 예수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구원자라는 강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예수께서 직접 만져주시거나 안수해 주지 않고, 자기가 만지기만 해도, 그것도 예수님의 옷에 대기만 해도 병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자 한 것입니다.
⑵신앙은 이런 확신과 열정과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아멘!/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모두 예외 없이 열정이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축전기를 만들기 위해서 무려 2만 번의 실험을 했답니다. 축전기에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 마음이 축전기에 불 붙어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불후의 명작 '최후의 만찬'을 무려 10년에 걸쳐 그렸습니다. 워낙 그 작품에 몰두해서 하루 종일 먹는 것조차 잊어버릴 때가 많았답니다. 그의 마음은 이 최후의 만찬으로 불 붙어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열정이 불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 심령이 불붙어있습니다. 그 심령에 열정이 넘칩니다.
그렇습니다. 학생들이 공부에 성공하려면 열정이 필요합니다. 사업하는 분들도 사업에 성공하려면 열정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일이든지 성공하려면 열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열정이 있더라도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열정이 있더라도 앞 뒤 좌우 길이 막혀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고 그래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열정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그 불이 다시 일어날 불씨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불씨가 있어야 거기에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께서 그 불씨를 쓰시는 것입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이 여인을 보세요! 불결한 여인으로서 감히 예수님께 나아가 '나를 도와주소서 나를 고쳐 주소서'라고 애원 한마디 못하고 예수님의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깃을 살짝 만졌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옷깃을 만진 것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만진 것이 아닙니다. 28절에 보면 그녀의 절박한 심정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할/
참으로 순수하고 간절한 열정을 소유한 그런 심정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로 나온 그녀는 그 겉옷만 만져도 내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의 충동을 느꼈습니다. '주여 나는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병을 고쳐 달라고 말할 수 없는 여자입니다. 나는 떳떳하게 교회도 나갈 수 없는 여자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주님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소망입니다. 나의 피난처입니다. 주여, 나를 치료해 주세요' 이런 간절한 심정으로 옷깃을 만진 것입니다. /아멘!/
'예수께 손을 대었다'라는 말은 '예수님과 연결이 되었다, 혹은 예수님과 인연을 맺었다'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연결이 되고 예수님과 인연을 맺었다고 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15: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할/

 

④이 여인은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⑴'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아무도 모르게 옷자락을 살짝 '터치'(touch)만 했는데 옷에 손을 대는 그 순간 혈루의 근원이 곧 말라버렸습니다. /할/ 여기서 '혈루의 근원이 마르다'라는 표현은 일시적으로 출혈이 멈춘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치료된 것을 말합니다. '근원'은 '뿌리, 줄기'라는 의미인데 그 병의 뿌리가 완전히 치유된 것을 의미합니다. /아멘!/
어떤 의사도 못 고치고 어떤 약도 못 고친 그 병을 단 한번의 믿음의 '터치'를 통해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할/
⑵여인자신도 병이 낳았다는 강력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님의 은혜는 받은 자만이 깨닫는 은혜입니다. /믿/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 여인의 인생 길에 '새 날이 열리고 광명이 찾아온 시간'입니다. 12년을 괴롭히던 질병이 깨끗이 떠났습니다. 해방과 자유의 날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은 '부정한 자를 깨끗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여인은 율법에 의해 부정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 여인이 만지거나 접촉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전부 부정해집니다.
여인이 혈루증이 있는 부정한 상태에서 예수님을 만졌기 때문에 보통의 경우에는 예수님도 당연히 부정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되었습니다. 부정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졌는데 부정케 되기는커녕 반대로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염된 것이 아니라 여인이 깨끗케 되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부정을 씻고, 정결케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부정만 아니라 영혼의 부정함도 씻으시는 주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⑤'누가 내 몸에 손을 대었느냐?'(30)
그녀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자마자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아시고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믿음의 능력은 어떤 능력입니까? 예수님 안에 있는 신적 능력을 끌어내는 능력입니다. 예수님도 어떤 믿음이 자신 안에 있는 신적 능력을 빼 가는 것을 바로 아셨습니다.
여인이 '내가 그의 옷자락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만졌을 때, 그 믿음은 응답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능력이 이 여인에게 부어졌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만진 사람은 이 여인만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졌습니다. 옷 술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신체를 직접 만진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누가 옷을 만졌는지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녀에게 받은 은혜를 확인시켜 주기 위한 물음이요, 네 믿음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며, 그녀로 하여금 많은 무리 앞에서 간증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할/

 

⑥무지한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주님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31).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 이때 옆에 서 있던 제자들이 무심코 말했습니다. '선생님, 사람이 이렇게 많이 밀려가는데 누가 주님의 옷에 손을 대고 안대고가 있습니까?'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다. 그게 누구냐?'라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예수님의 옷을 만지므로 유명한 여인이 되었고, 믿음을 가진 사람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 이 말씀은 '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옷을 일부러 만진 사람이 있다. 그냥 지나치면서 내 옷을 만진 것이 아니다. 생각을 가지고 목적을 가지고 내 옷을 만진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누구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갑니다. 그 가운데 '누가 생각을 가지고,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의 옷을 만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사람을 찾습니다.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는 질문에 제자들은 무리가 에워싸 밀고 있는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시나이까?'라고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주신 자와 받은 자만이 아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자들이 이 여인의 믿음을 못 쫓아옵니다. /할/

 

⑦오늘도 주님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예수께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바로 이렇게 믿음으로 주님께 나오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구경꾼 같은 많은 사람에게 관심 없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찾는 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보고 싶어합니다. 참 감동적인 부분입니다. 가던 길을 돌이키면서까지 보고 싶어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힐긋 본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유심히 쳐다보신 것'입니다. 아예 발걸음을 멈추고 한 여인을 찾아서 둘러보고 계셨습니다. '누가 나를 이렇게 기쁘게 하는가?' 하시면서 찾는 것입니다. 죽어 가는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는 바쁘신 예수님이 발길을 멈추고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이런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만진 여인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가 부족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기뻐하면서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십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주목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한 사람에게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치 본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만이 이런 것을 경험합니다. /아멘!/

 

⑧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여인은 주님께 감사의 고백을 했습니다(33).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그 여인이 두려워 떨게 된 것은 아마도 자신의 병이 종교적으로 부정한 것이라 따라서 죄인 취급받는 신분이기 때문에 군중들 틈에 끼여들었다는 것을 공개하는 것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두려워 떤 것은 예수님의 옷을 살짝 만지기만 했음에도 죽을 때까지 고치지 못할 것으로 알았던 12년 불치병이 한 순간에 치유되는 예수님의 능력과 권능 앞에 두려운 마음으로 그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이 주님께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써 몸을 굽혀서 최대한의 예를 취하고 그 날 일어난 기적 사건을 사실 그대로 고백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여, 12년 동안 고질병인 이 혈류증이 주님의 능력으로 치유 받았습니다' /할/ 여러분, 구원을 베풀어주신 주님 앞에 엎드려 감사하는 신앙이 바로 우리 성도의 바른 고백입니다. /아멘!/

 

⑨축복을 선언하신 예수님!(34)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⑴'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이 말씀 속에 복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병 고침을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병 고침은 받았습니다. 이 말씀은 '네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여자는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가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니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영광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는 축복이 이처럼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참 행복한 교회 성도들의 가정에도 온 가족의 구원을 받아 천국에 확신을 누리는 축복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⑵'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순서가 영혼 구원 다음에 육신에 치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확신이 있는 자에게 믿음의 능력은 임하게 됩니다. /믿/
여기 '평안이 가라'는 말은 구원받은 자에게 주시는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평안히 가라'는 말은 육신의 질고로 그 동안 고통받은 그 여인에게 이제 건강한 몸으로 마음도 평안하게 영원히 살라는 그런 복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불안과 절망과 공포 속에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참된 평안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이 여인은 이제 질병에서 건강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어두움에서 빛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안히 가라'는 말씀은 '너의 집으로 돌아가라'는 축복입니다. 그래도 가정이 천국입니다. /할/ 이 여인은 다시 그리운 가족 품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가정을 찾고 잃어버린 행복을 찾았습니다.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 이 여인은 이미 병 고침을 받았는데,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는 말씀은 '다시는 그 병이 재발되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축복입니다. 재발되는 병은 고침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병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그 병에서 완전히 놓이는 것을 말합니다. 즉 병의 뿌리가 뽑혔다는 뜻입니다. /할/
오늘날 병을 고쳤지만 재발되어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는 하늘의 복, 땅의 복을 모두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이 평안의 복을 받으시기를 소원합니다. 요14: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아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 앞에 인정받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믿음이 예수님과 그녀를 연결시킨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믿음의 대상과 나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과 나를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과 내가 같이 살게 하는 것입니다. /할/
결혼식에 가면 서약을 합니다. 어제 저는 목자합창단 지휘자 따님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주례자가 묻습니다. '고락간에 변치 않고 생전에 일정한 대의를 지키기로 서약하십니까?'하고 물으면 '예'라고 대답을 합니다.
신랑 신부는 서서 서약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이 사람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서약합니다. 그리고 서로 일생을 의탁합니다. 서로 만납니다. 서로 관계를 가집니다. 믿음으로 상대방과 연결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주님과 연결됩니다. 내가 주님을 신뢰하는 순간 나는 주님을 받아들이고 그 순간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내가 주님을 신뢰하는 순간 성령은 내 안에서 역사하고 나는 성령 안에 거하게 됩니다. 그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29절에 '이에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 몸에 깨달으니라'
부부가 서로 신뢰하고 믿는 순간 남편 것이 아내 것이고 아내 것이 남편 것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는 순간 주님의 것이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의 믿음이 주님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님의 평안이, 주님의 축복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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