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그대로 되니라'의 축복(祝福)! (창 1:1-15)

by 【고동엽】 2022. 2. 9.

'그대로 되니라'의 축복(祝福)! (창 1:1-15)

 

어느 가난한 부부가 여섯 자녀를 어렵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절친한 부자 친구가 한 아이를 자기에게 양자로 주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습니다. 그 날 저녁 아이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어간 다음에 부부가 그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어떤 아이를 양자로 보낼까? 그들은 첫째 아이인 아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맏아들을 남 주기에는 너무나 귀하고 아까웠습니다. 둘째 아이는 딸이었습니다. 이번에 역시 첫 딸이라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셋째 아이도 딸인데 너무나 몸이 약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넷째 아이는 장모님과 너무 닮아서 보낼 수 없다고 부인이 거절했습니다. 다섯째 아이는 시아버님과 너무 닮아서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아기 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 부인은 그만 울음을 터트리며 '우리 아가, 귀여운 것 남 줄 수 없어요'하며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여섯 자녀가 있었지만 그 하나라도 기꺼이 내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단 하나뿐인 독생자 외아들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 요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할/아멘!/ ◀제목 소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두 가지 특별한 언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그대로 되니라'입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은 7번 나오고 '그대로 되니라'라는 말은 6번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이외도 자주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단어가 반복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단어라는 뜻입니다. /할/

 

▶'하나님'이라는 단어입니다.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아멘!/ 창1장에만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무려 30회나 등장합니다. 주격으로 나타나는 것과 소유격으로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 이야기는 창조의 주체가 하나님이며 소유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권자이며 교회의 주인도 하나님이며 나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창1장에서 말하려는 중심 주제는 '바로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자이며 동시에 주인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쌓았고, 수학과 건축학이 발달되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현대 건축학에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불가사의'라고 말할 만큼 엄청난 건축물입니다. 그런 것을 짓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곰이 동굴에서 마늘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웃기는 소리만 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개국설화니까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하늘을 여시고 세상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우리들의 신앙의 근본입니다. /아멘!/ 이 한 절을 믿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요, 못 믿는 사람은 불신자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신앙의 기초가 되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이 신앙 인입니다. 우리 중에 아직도 믿지 못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이 말씀을 통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분명히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그렇습니다. 책에는 저자가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써야 합니다. 그림에는 화가가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그려야 합니다. 건물에는 건축가가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지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는 세계도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계획하여 만든 것입니다. 이 위대한 '설계자, 건축자, 창조자'를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여기 하나님(엘로힘)은 '두려워서 어쩔 줄 모른다'라는 '알라흐'라는 말에서 온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권능을 가지신 대 우주의 주인 되시는 엄위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어 온 인간이 그 앞에서 떨 수밖에 없는 장엄하신 신이요 창조주로서 피조물과 구별되는 성품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온 피조물이 그 앞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며 다른 어느 것과는 비교되지 않는 유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믿/
한 과학자가 창조의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자 친구 크리스천 과학자가 지하실에다가 천체의 모형을 만들고 우연히 이러한 일이 생겨났다고 하자, 그 친구는 이것은 우연이 아니고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자 '자네는 이 작은 우주는 누군가가 만들었다고 하면서 장엄한 우주에 대하여는 어찌 우연히 생겨났다고 하느냐'고 책망하자 그 불신 과학자가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할/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야할 믿음의 대상입니다. /믿/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에 '좋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토브'(tob)인데, 영어로는 'good'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위대한, 놀라운, 완벽한, 아름다운' 등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출애굽기에서 요게벳이 모세의 '준수함'을 보았다고 했는데(출2:2), 이때 '준수하다'는 단어도 '토브'입니다. 모세를 준수하다고 표현한 것은 외모가 출중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이 평가하시기에 '좋았다'는 뜻입니다. /할/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평가 기준은 외모, 학력, 경제력, 권력 등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평가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입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던 것처럼(3), 하나님께 절대 순종할 때, 아름다운 세상이 이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세상은 보다 아름답고 조화로워 질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름다워야 합니다. 예수 향기가 나타나야 합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실 때 좋아야 합니다. 있을 장소에 있을 때 좋게 보입니다. 죄는 자리 이탈이요, 과녁을 빗나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평가하실 때 '아무개 집사야 너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보기에 참 좋더라'라는 평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공할 때에도 보시기에 좋아야하고 실패한 때에도 보시기에 좋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환경에 관계없이 주님께 감사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위대한 신앙의 선진들의 특징이 인간의 실패와 성공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하나님 보시기에 동일했던 삶이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있을 때나 총리가 되었을 때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다윗도 목동이었을 때나 사울의 쫓김을 받을 때나 왕이 되었을 때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언제 어느 때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인들은 하루의 일과를 해질 때부터 시작해서 해뜰 때까지를 하루로 계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가 떠서부터 해가 질 때까지를 하루로 계산합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 말씀이 6번이나 나옵니다. 이 말씀 속에는 깊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⑴소망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저녁은 어두움이고 아침은 빛입니다. 저녁은 절망이고 아침은 소망을 말합니다. 이 시간 계산법은 성도들에게 깊은 의미를 줍니다. 내가 하는 일이 잘 안되고 고난의 연속이 찾아오지마는 언젠가는 찬란한 아침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욥8:7절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하셨고, 예수님의 가나혼인잔치에서도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잔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을 믿는다면 현재는 넘어지고 실패했어도 머지 않아 새로운 승리를 기대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 됨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희망의 시간입니다. 지금은 칠흑 같은 어두움이 밀려온다고 할지라도 동터오는 아침에서 보는 어두움은 이미 어두움이 아닌 희망의 빛입니다. 이러한 안목을 갖는 것이 은혜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꿈이 그 사람을 만듭니다. 소망이 우리를 발전시킵니다. /할/
⑵성령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마귀의 사람은 '밤 사람'이고, 성령의 사람은 '낮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가룟유다가 활동한 시간도 밤입니다. 요13:30절에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마귀의 사람은 밤에 활동하고 하나님의 사람은 아침에 움직입니다. 밤은 마귀의 시간이고 새벽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죄를 좋아하는 이들은 밤에 활동하고 성령의 사람은 새벽에 활동합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은 새벽이었습니다(출14;24). 만나가 내린 것도 새벽이었습니다(출16;13).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린 것도 새벽이었습니다(수6;15).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도, 부활하신 시간도 모두 새벽이었습니다(눅24;1).
다윗은 새벽의 사람이었습니다. 시57:8절에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할/ 예수님도 새벽에 기도하셨습니다. 막1:35절에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새벽에 주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시46:5절에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아멘!/
⑶새 출발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저녁은 휴식을 말하고 아침은 일의 시작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말은 이제 일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새롭게 도전하고 시작합시다.
⑷빛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빛이 드러나야 합니다.

 

▶'종류대로'라는 단어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독특성과 경이로움을 나타내는 표현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모든 사물들을 독특하게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똑 바로 알면 사물의 본질을 알게되는 지혜자가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갈등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개성을 무시하는데서 옵니다. 부부간의 갈등, 교인간의 갈등, 직장 상사와 부하간의 갈등 이 모두가 어디서 옵니까? 모두 나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릅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불편해 집니다. 서로의 개성을 인정해 주면 불편할 것이 없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아멘!/

 

▶'하나님이 가라사대/그대로 되니라'라는 단어입니다.
세상에는 유명한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되니라'는 말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 말씀 후에 '그대로 되니라'가 성립이 되는 것이다. /아멘!/ 경험 많은 사람들의 말, 성현들의 말은 세상 살면서 참고와 도움은 될지언정 그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의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되었고, 되어져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대로 되니라'라고 하셨는데 '그대로 되니라'라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요? 오늘 설교의 주제입니다. /할/

 

①'그대로 되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선포입니다.
엄청난 우주를 창조하시면서 '그대로 되니라'하신 것은 하나님은 절대자라는 강력한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닫으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면 못 할 것이 없고 하나님이 안 하시려고 하면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막을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아멘!/ 여기 '그대로 되니라' 이 말씀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라는 강력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성호 속에서 그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으뜸(제일), 주, 위엄의 권위자로, 자신이 대 주재자이심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엘로힘'의 하나님은 '창조주, 통치 주, 전능 자, 곧 능력의 주'이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알라'의 하나님은 '올라간다, 높아진다'라는 의미인데, 이는 '숭고하고 존귀한 하나님'이심을 알려줍니다.

▶'아도나이'는 '나의 생명의 주인이라는 주라는 의미인데 전능하신 통치자'를 의미하고,

▶'엘 샤다이'는 '전능하신 하나님, 행복과 기쁨과 위안의 원천이신 하나님'이심을 알려주고,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으로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성호입니다.
'그대로 되니라' 당신의 뜻이 자신의 능력을 통하여 원하시는 대로 되고 마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전능은 시작도, 진행도, 성취도 전능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대로 되어지는 세계야말로 진(眞)의 세계요, 선(善)의 세계요, 미(美)의 세계이고, 만족의 세계이고, 축복의 세계입니다. 전능의 세계는 결코 미완성의 세계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2:1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믿/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주권'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고전10: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할/

②'그대로 되니라' 이 말씀은 .예언입니다.
성경은 모두 66권입니다. 그런데 첫 장에 '그대로 되니라'가 6번이나 반복된다는 것은 나머지 성경도 하나님의 뜻 그대로 된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아멘!/
'개시가 좋으면 하루가 좋다'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말을 합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싹수를 보면 잘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를 안다고 합니다. 사람의 됨됨이를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의 첫 장이 '그대로 되니라'의 반복으로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대로 됩니다. ▶성경의 대 주제 예언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요 성경의 대 주제입니다.


⑴죽은 후에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성경에 대 예언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언제 정하셨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에 정하셨습니다. 창3: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헬라제국을 통치하던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 '필립' 왕에게는 이상한 신하하나가 있었는데 이 신하는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 일만 합니다. 그 일이 무엇인가 하면 이른 아침에 이 신하는 왕의 침소 머리맡으로 나아갑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왕을 깨웁니다.
'왕이시여. 오늘이 어쩌면 대왕마마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 소리를 듣고 '필립' 왕은 깜짝 놀라면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 맞아. 안개 같은 인생,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지. 이 귀중한 날을 내가 헛되게 보낼 수 없지' 그리고는 부랴부랴 진지 상 앞에 왕이 앉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신하는 자기 몸 안에서 흉측하게 생긴 해골바가지를 끄집어내어 왕의 진지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왕은 밥을 먹으면서 연신 그 해골을 쳐다봅니다.
'그래 맞아.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빌립 왕은 그 해골을 바라보면서 욕심 없이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백성들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의 모든 결단이 엄숙해지고 비장해지고 경건해 진다는 것입니다. /할/ 우리가 죽음을 바로 알아야 신앙 생활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절대 사실이고 '만인의 공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만인이 필히 가야할 길입니다. 남자도 죽고, 여자도 죽습니다 할아버지도 죽고, 아버지도 죽고 손자도 죽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죽고 약한 사람도 죽습니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사람도 죽습니다. 배운 사람도 죽고, 배우지 못한 사람도 죽습니다 노인도 죽고 어린 아기도 죽습니다. 임금도 죽고, 신하도 죽습니다. 검은 사람도 죽고, 흰 사람도 죽습니다.
정복자들도 죽었습니다. 중국 대륙, 구라파 제국, 러시아 변방까지 손에 넣고 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슴에 품은 징기스칸도 죽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무적의 황제 알렉산더도 일생 33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자신이 정복한 구라파의 광대한 땅을 어머니 앞에 자랑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도 죽었습니다.
세계의 절세 미인들도 죽었습니다. 애굽의 클레오파트라. 중국의 양귀비가 죽었습니다. 세계의 미스 유니버스들도 때가 되면 한 사람 한 사람 생명이 진하면 죽을 것입니다. 화려한 배우들도 죽었습니다. 은막의 여왕 마릴린 몬로, 잉그릿드 버그만, 오드리 햅번, 서부의 사나이 죤 웨인도 죽었습니다.
독재자들도 죽었습니다 히틀러, 스탈린, 김일성도 죽었습니다. 예술가들도 죽었습니다. 베토벤, 바하, 슈베르트, 모짜르트가 죽었습니다. 밀레, 고호, 미켈란젤로, 피카소가 죽었습니다.
과학자들도 죽었습니다. 뉴우톤, 갈릴레오, 아인슈타인이 죽었습니다. 유명한 정치인들도 죽었습니다. 처칠, 워싱턴, 케네디, 이승만씨가 죽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스승들도 죽었습니다. 조만식, 김구, 윤봉길씨가 죽었습니다.
갑부들도 죽었습니다. 오나시스, 록펠러, 이병철씨가 죽었습니다. 통일의 꿈을 앉고 1000마리 소 떼를 몰고 방북 했던 정주영씨도 통일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마호메트, 공자, 부처도 죽었습니다.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도 죽고 그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사들도 죽었습니다. 모두 죽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죽음은 모든 계획을 다 허무하게 만듭니다.
㈁죽음은 사업 계획도 허무하게 합니다. 약4:13-14절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죽음 앞에서는 정치도 야망도 허무하게 됩니다. '뉴 프론티어'를 외쳤던 케네디는 세상 적으로 유명한 대통령이었지만 흉탄에 맞아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니 그의 정치 야망도 허무하게 끝나버렸습니다.
민주정치를 꿈꾸며 많은 박해에도 굴하지 않던 신익회씨도 조병옥씨도 죽음 앞에 정치 계획이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기붕이라는 사람은 한 때, 부러울 것이 없는 세도를 누렸지만 세상이 바뀜에 따라 아들 강석이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동생도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습니다. 네 식구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권력도 권세도 더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참한 죽음이 있는가 하면 복 있는 죽음도 있습니다. 눅16장을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둘 다 일생을 마치고 함께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일생을 마치고 죽던 날, 부자는 최악의 날이 되었고, 거지 나사로에게는 최상의 날이 되었습니다. 부자는 살아생전 호의호식하며 떵떵거리고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었는데 그만 예수 밖에서 죽었습니다. 그가 간 곳은 이를 갈며 슬피 울어야 하는 음부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세상에서는 어렵게 살았지만 주안에서 살다가 떠났기에 낙원에 올라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된 것입니다. 어떤 권사님은 마지막 운명할 때, 활짝 웃으면서 '주님이 나를 오라고 하신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가셨답니다. 얼마나 성스러운 종말입니까? 여러분! 왜 죽음을 이렇게 오래 설교하겠습니까?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며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죽음 뒤에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를 믿었는가 안 믿었는가하는 심판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죽은 자는 부활의 심판으로 저 영원한 천국으로 가지만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영혼들은 음부에 가두어 버리고 맙니다. 이 죽음이 비참한 죽음입니다.
두 번째 심판은 예수 믿는 자들은 심판하시는데 바로 행위에 대한 심판입니다. 천국에는 두 권의 책이 있는데 하나는 생명 책이요, 다른 하나는 행위 록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께 한 일과 이웃에게 한 일 모두를 하나님은 다 행위 록에 기록해 놓으시고 선악간에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산 자는 엄청난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 상급도 없습니다. 여기서 상급이 많은 사람이 영광의 날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치욕의 날이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학교 다닌 사람은 졸업 때에 졸업장은 다 똑같이 받는데, 상 받는 것은 자기가 공부한 대로 몇 사람만 받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 다니며 예수 믿는 사람은 천국 시민권은 다 받습니다. 그러나 면류관 상을 받는 것은 믿음을 지킨 대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5: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날을 위해서 살라고 했습니다. 그 날 받은 삶을 위하여 지금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빌3: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할/
우리도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라면 죽음이 오기 전에 주님의 심판대 앞에 내가 서기전에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믿/


⑵성경에 대 예언입니다. '심는 대로 거두리라'(갈 6:7-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있는 대로 모든 이들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 지니라' ▶여기 '심은 대로'라는 뜻을 생각해 보자!
㈀'일한대로'라는 의미입니다. 성실한 수고의 대가는 반듯이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신25:4절에 '곡식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했고, 고전3:8절에 '각각 자기의 일하는 데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했고, 계22:12절에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했습니다.
㈁'투자한 대로'라는 의미입니다. 많이 투자하면 그 만큼 많이, 좋은 것을 투자하면 그만큼 좋은 것을 얻게 되는 경제의 원리입니다.
㈂'파종한대로'라는 의미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속담이 맞는 말씀입니다.
㈃'말 한대로'란 의미입니다. 민13;12절 이하에 보면 정탐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각 지파의 대표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40일간을 두루 다니며 정탐하고서 돌아와 보고를 합니다. 먼저 10명의 부정적인 보고자들은 '그 땅은 비옥합니다. 성도 견고합니다. 나무도 무성하고 열매도 풍성합니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네피림(장사)이요 우리는 메뚜기 같습니다' 그들은 강자고 우리는 약자라 못 들어간다는 보고입니다.
이 보고를 받으신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14:28절에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두려운 말씀입니다. 말도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심은 대로'란 말은 '말 한대로'란 의미입니다.
㈄'본을 보인 대로'란 의미입니다. 게는 자기 부모의 걸음걸이를 본받습니다. 그래서 옆으로 갑니다. 자식은 부모가 하는 대로 따라갑니다. 아버지가 부모에게 효도하면 효도를 배웁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면 사랑을 배웁니다. 그러나 매질하면 때리는 것을 배웁니다. 놀음을 하면 도박을 배웁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은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고후9:6-7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자연계의 법칙도 제일 먼저 심어야 거둡니다. 심지 않고서는 거둘 수가 없습니다. 또 심은 종류대로 거둡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고추를 심으면 고추를 거둡니다. 또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다'고 하신 원칙대로 입니다. 이 심고 거두는 법칙은 물질계뿐만 아닙니다. 영적인 것, 도덕적인 것, 모두 다 적용됩니다.
우리 인간의 생활도 매일 심는 것이고,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술로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또 손과 팔로 행하는 하나 하나가 다 심는 것이고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본문은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개인생활도 심은 대로 거두고, 가정도, 교회도, 국가도, 심은 대로 거둡니다.
▶주고받은 법칙이 있습니다. 눅6: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먼저 드리고 나면 되돌려 주실 때에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하여 안겨 주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쩨쩨하게 주시지 않습니다. 차고 넘치고 흔들어 안겨주십니다. 하나님은 주고받는 법칙을 통하여 축복하십니다.
▶대접을 하고 대접을 받는 법칙입니다. 마7:12절에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대접받기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은 어느 곳에 가든지 인정받고 환영받고 대접받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먼저 남을 대접하십시오, 이것이 대접을 받는 비결입니다.
▶죽어야 사는 법칙이 하나님나라의 법칙입니다. 요12:24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내가 죽어야 삽니다. 교만을 죽이고, 자만심을 죽이고, 이기심을 죽이고, 편견을 죽이고, 불 신앙과 불순종을 죽이십시오, 그러면 삽니다. 내가 죽어질 때,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그때 능력이 나오고 강함과 담대함과 하나님의 지배가 나옵니다. 다윗은 늙어 죽을 때까지 귀하고 존귀하게 살다가 갔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⑶성경에 대 예언입니다. '믿음대로 됩니다'(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믿음대로 된다는 말씀도 예언입니다. 대 예언입니다. 꼭 믿음대로 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이루려면 우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목사님 두 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신나게 달렸답니다. 그런데 너무 달리면서 스피드를 너무 많이 내었습니다. 경찰이 세우고 보니 목사님들입니다. '아실만한 분들이 왜 그러세요? 그렇게 달리다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요? 오늘은 봐 드릴 테니 앞으로는 조심하세요' 그러자 한 목사님이 말하기를 '우리는 괜찮아요. 주님께서 같이 타고 계시니까요.' 그 때 경찰이 '주님께서 다셨다고요? 세 분이 타면 위법입니다.'하고 스티커를 발부했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주님의 능력이 흐릅니다. 그 능력을 귀한 일에 쓰시기를 바랍니다. /할/
에드워드는 '믿음은 하나님께로 가는 캄캄한 터널을 밝게 비추어 주며, 죽음의 깊은 계곡을 건널 수 있는 다리를 세워준다'고 말했습니다. 믿음대로 됩니다.
▶유명한 중국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씨가 배를 타고 항해하는 중에 그만 바람이 불지 않아 조수에 밀려 식인종이 사는 섬에 가 닿게 되었습니다. 식인종들은 배가 섬 가까이 오는 것을 보자 '사람 고기 파티를 하게 되었다'고 웃으면서 춤을 추고 좋아했습니다.
이 때에 선장이 테일러 선교사에게 큰일났다고 바람 좀 불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테일러씨는 먼저 '운항 준비를 하라'고 말하자 선장은 '아직 바람이 불지 않지만 불어올 것을 믿고' 돛을 올리고 키를 붙잡았습니다.
테일러 선교사가 아래 밀실에 내려가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 선장이 내려와 문을 두드리면서 하는 말이 '선교사님, 기도 그만 하십시오. 이제는 바람이 너무 불어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할/ 믿고 기도하면 응답이 옵니다. /믿/
▶마8:13절에 로마 정규사관학교를 나온 고급장교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의 하인이 중풍 병으로 죽게 되자 '주께 고쳐달라'고 사정을 하니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시니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이 고백을 들으시고 주님이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시고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가라!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고 집에 돌아가 보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종의 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일어나 웃으면서 뛰어 다니며 부지런히 일하게 되었습니다.
㈁백부장의 마음에 근심이 떠나갔습니다. 종은 병이 낫고 백부장은 마음의 근심의 병이 고쳐졌습니다.
㈂종과 백부장은 믿음으로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할/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여기 '그 시로'는 '바로 그 순간부터'라는 말입니다. '네 믿은 대로 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정' 하심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네 믿음대로'란 '네 믿었던 대로'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백부장의 믿음이란, 말씀만으로도 능히 질병을 다스리실 수 있는 권세가 예수님께 있음을 믿었던 백부장의 믿음을 의미합니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어느 곳,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믿음대로 되어지는 종교입니다. 크게 믿으면 크게 됩니다. 적게 믿으면 적게 됩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멘!/

③'그대로 되니라' 절대 순종하면 그대로 된다는 예언입니다.
성경 첫 장부터 '그대로 되니라'는 말씀이 6번 반복되고 있는 것은 모든 역사와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될 터이니 '그대로 순종하라'는 순종의 명령입니다.
▶'아멘'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입술로 하는 아멘, 마음으로 하는 아멘, 행동으로 옮기는 아멘'이 그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아무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절대 '아멘'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아멘' 하고, 축복 속에서도 '아멘'해야 합니다. 건강할 때도 '아멘'이요, 아플 때도 '아멘'입니다.
'아멘'은 신앙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 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삼상15:22절에서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낳다'고 했습니다. 순종한 다윗은 복을 받았지만, 불순종한 사울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순종은 축복 받는 비결이요, 하늘 문이 열리는 통로요,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덕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문을 열어 드리는 비결이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통로입니다. /믿/ 그러므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⑴이치에 맞지 않아도 믿고 순종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머리로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천지창조 사건이나 동정녀 탄생이나 예수 십자가나, 부활사건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알아야 할 사실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은 이해하는 책이 압니다. 믿으라고 주신 책입니다. 믿고 보니 깨달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계시의 비밀입니다.
⑵힘이 들어도 순종합시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가 지키기 어려운 힘든 사명을 주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로 가는 삼일 길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그가 평생에 걸어온 길보다 더 길었을 것이며, 평생에 졌던 짐보다 더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힘이 들어도 끝까지 지시한 말씀을 좇아 나아가서 '여호와 이레'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⑶자존심이 상해도 순종합시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귀신들린 딸을 고침 받기 위하여 자신을 개같이 취급하는 주님 앞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자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했습니다.
⑷억지로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요2장에 잔칫날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날입니다. 아무리 하인이지만 이날에 두 세 통 드는 항아리 여섯에 물을 '아구까지' 가득 채우는 것은 하기 싫은 것입니다. 주님 십자가를 지실 때 구레네 사람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갔다가 예수 만났습니다. /할/
▶어떤 마음으로 우리가 순종해야 할까요? 순종의 자세도 중요합니다.
⑴온 마음을 다하여 순종하라! 신26:1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⑵즉시 순종하라! 아브라함이 이런 순종을 보였습니다.
⑶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라! 시100:2절에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⑷철저하게 온전히 순종하라! 민14:24절에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⑸끝까지 순종하라! 시119:33절에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아멘!/
▶우리 속담에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더 많이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운동도 계속 하는 사람이 더 잘합니다. 모든 원리가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더 기도합니다. 전도하는 사람이 더 전도합니다. 봉사하는 사람이 더 봉사합니다. 헌신하는 사람이 더 헌신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사랑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더 순종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대로 되니라'의 축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그대로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