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은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고전 6:19-20)
사실상 어제부터 추석연휴가 시작된 샘입니다. 추석은 우리민족의 최대 명절입니다. 추석명절의 특징은 햇곡식으로 떡을 해 놓고 햇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민족이 같은 마음으로 축제의 날로 지키는 날입니다. 예부터 이날 온가족들이 성묘를 했고 벌초도 했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유리왕 때부터 조정에서 편을 짜서 놀이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추석날 길쌈대회도 했습니다. 활쏘기 대회도 했습니다. 그네를 타는 시합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상도 주었습니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온 동네 온 국민이 추석을 명절로 지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도 이 추석을 최대명절로 보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추석을 '중추, 추중, 칠석, 월석'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추석을 '가위 또는 한가위'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도 중국을 본받아서 중추의 '추'자와 월석의 '석'자를 따서 '추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추석 절에는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올해 추석은 40년 만에 더위와 싸운 후의 추석이라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우리는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할까요? 바울은 '우리들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빌3:20)고 말씀함으로, 성도들의 본향이 천국임을 확증해 주었습니다.
성도는 항상 본향에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육신의 고향 길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오갈 수 있지만 인생의 영원한 고향은 오직 한 번으로 끝날 뿐 아니라, 다시 와서 준비하여 갈 수 있는 고향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적어도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합니다.
첫째, 믿음의 차표를 준비해야 합니다. 하늘 고향 길은 자가용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것은 예수라는 대중교통입니다. 행4:12절에서 예수 외에는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둘째, 천국에 입고 갈 옷을 준비해야 합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을 때 가장 멋있습니다. 경찰이 경찰복을 입고 단속을 해야지 경찰복을 입지 않고 단속을 하면 오해가 생기게 됩니다. 단정하다는 것은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결국 군인은 군인답고, 목사는 목사답고, 법관은 법관다운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신분에 합당한 삶이 있습니다. 바른 행실의 옷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이 천국에 갈 때 입는 옷은 수의가 아니라 세상에서 지은 죄를 모두 용서받았다는 증거가 있는 깨끗한 세마포 옷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은 영적인 옷을 입고 가야 합니다. 이 세마포 옷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값없이 입혀 주십니다. /할/
▶우리가 영원히 살 천국 고향에는 부모형체뿐 아니라 일가친척 모두가 같이 모이는 고향이 되도록 전도해야 합니다. 아내는 왔는데 남편이 오지 않았거나 부모는 왔는데 자녀가 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다 같이 가는 고향길이 되어야 기쁘고 즐거운 고향길이 됩니다.
▶이왕 가는 고향이라면 반기고 환영하는 사람이 있어야 좋습니다. 올림픽 때 마라톤 선수가 1등으로 운동장에 들어서면 모든 관중이 일어나서 환영합니다. 천국 고향에서 환영받는 선수가 누구입니까? 이 땅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잘 하고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잘 살아도 한 세상이요, 못 살아도 한세상입니다. 인생은 한번 왔다 가는 인생입니다(히9:27). 누가 이 길을 거역할 수 있습니까? 권력을 쥔 자도, 재물을 쥔 자도 이 길을 막지 못합니다. 시90:3절에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여기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누가 거역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나이 많으신 노인들은 70객, 80객이라고 하는데 이는 나그네로 7,80을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하룻길을 가다가 해가 저물어 대궐 같은 큰집에 하룻밤 쉬어가기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 주인이 '이 집은 여관방이 아니니 저 건너 여인숙으로 가라'고 거절을 합니다.
이때 김삿갓이 묻기를 '이 큰집에 몇 대째 살아오고 있습니까?' '예 16대째 살아옵니다.' '그 16대가 지금 다 생존하십니까?' '그야 다 세상 떠났지요!' '그렇다면 당신도 살다가 떠날 것이니 당신도 나그네, 나도 나그네 같은 처지에 하룻밤 쉬어 갑시다.' 이 소리를 들은 주인이 크게 깨닫고 잘 대접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아무리 땅을 많이 가지려고 아우성을 치고, 돈을 많이 벌려고 발버둥을 치며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나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옵니다. 인생의 밤이 찾아옵니다. 죽음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때 갈 곳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생의 황혼이 되어 주님 부르실 때에, 다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행복한 표정으로 주님의 품으로 가는데, 아무도 불러 주는 이 없고 갈 곳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고해와 같은 세상에 살면서 돌아갈 본향을 사모하는 자는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내세에 대해 부정합니다. '죽으면 끝이지 뭐...' 이렇게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긍정을 하기는 하는데 그저 막연하게 '좋은 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아무개는 좋은 데 갔을 거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내세에 대해 분명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내세에는 천국과 지옥 두 나라가 있음을 밝힙니다. 성경은 특히 천국의 모습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기록이 계21-22장입니다.
계21:2절에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지상의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인 것처럼, 새 예루살렘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수도입니다.
거기는 성도들의 영원한 공동체가 거주하는 곳입니다. 말하자면 성도들이 거주할 영원한 집인 셈입니다. 그곳이 얼마나 좋은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말씀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단장된 것은 신부의 모습입니다. 가장 아름답다는 뜻으로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단장한'이란 말이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미 준비가 끝났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신부인 성도들을 데리고 들어갈 신방이 다 꾸며졌다는 뜻입니다.
고후5:1-2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할/
▶오래 전에 한 일간지에서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실렸는데, 세계에서 최고로 비싼 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런던에 있는 '업다운 코트'(Uptown Court)라는 이름의 집입니다.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커서 차라리 '성'이라 부르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 집은 시가 1,300억 원으로 방이 130개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한 방은 바닥이 24K 순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7만 평의 숲, 수영장, 영화관, 테니스 장, 스쿼시 장, 리무진 8대 들어가는 차고, 헬기 장 등이 있다고 합니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유지관리비만 1년에 수십 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굉장하지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집을 살 돈도 없지만, 거저 줘도 유지비 때문에 살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보다 더 좋고, 관리비도 유지비도 없는 곳이 있는데, 오늘 추석 특별 선물로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우리 주님이 준비해 놓으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우리가 추석 명절에 고향에 가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고향을 더 깊이 생각을 해보면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고향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태어난 곳은 부모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우리의 고향도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고향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근본적인 본향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신앙 안에서 추석 명절을 잘 보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제목소개!▶
본문은 '너희 몸을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사람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로 지으셨지만 유독 인간만은 흙을 빚져 지으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생령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 가장 대표적이고 아름다운 것은 인간의 몸입니다. 사람의 몸은 작품입니다. 작품도 이런 작품이 세계에 없습니다. 우선 외모가 우수합니다.
여러분, 갓 태어난 어린아이를 눈여겨보십시오, 참 신비하고 섬세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오밀조밀하게 만들어져 나오는지 들어갈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오고 손가락 발가락 정확하게 다섯 개씩 붙어 있는데 볼수록 신비롭고 섬세합니다. 참 신묘막측합니다.
그리고 그 구조도 정교합니다. 기계도 이런 기계가 없습니다. 피가 혈관을 통해서 돌아다니는데 하루동안 움직이는 거리가 무려 268.800Km라고 합니다. 지금도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지만 몸 속에서는 쉴 사이 없이 피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 머리 속에는 700만개나 되는 뇌 세포가 들어있어, 쉬지 않고 움직이고 활동하고 기억시키고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하고 그렇습니다. 얼마나 신비한 일입니까? 뿐만 아니라 그 기능도 섬세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대충 만드신 것이 아니고 예리한 기능을 지닌 인간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슬픔을 알고 기쁨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고 허무를 느끼는 인격과 감정을 지닌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다 분별력과 판단의 능력까지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선과 악을 분별해서 스스로 결단하고 결정하는 능력도 지녔습니다.
이렇게 멋지게 지으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었다'고 했습니다. 창1:27-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할/
▶본문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오늘 우리 모두 잘 듣고 깨달아 잘 지켜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①내 몸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착각 속에 살 때가 많습니다. '내 몸이 내 것이지 누구의 것이냐?'고 반문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 몸이 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은 '우리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20절에 보면 '너희 몸은 값을 주고 산몸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내 몸은 내 것이지만 사실은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개념부터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내 몸의 실질 소유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믿/
그래서 우리는 내 몸이 병들지 않도록 잘 관리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멘!/ 그리고 내 몸을 더럽히지 않도록 잘 관리할 책임도 있습니다. 내 몸이 병들면 우선 하나님이 손해를 보십니다. 그리고 국가가 손해를 보고, 가정이 손해를 보고, 사회가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유교의 정신에서 보면, 육체는 부모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몸을 상하거나 병들거나 추하게 굴리면 부모에게 불효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한 차원 더 높여서 '내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내가 내 몸을 잘못 관리해서 병들거나 추하게 만들면 그것은 죄'라고 말합니다.
보십시오! 사람들이 내 몸을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그때는 내 몸을 함부로 사용하게 됩니다. 범죄에 사용하기도 하고, 악의 구렁덩이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내 몸을 방탕으로 병들게 하기도 하고 술로 망가뜨리고, 담배와 마약으로 병들게 하고 음행으로 추하게 만들고 맙니다.
그리고 때로는 자살해서 죽기도 합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아십니까? 내 몸을 내 것이라고 착각해서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믿/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정신으로 살아야 내 몸을 잘 관리할 수 있습니다. /아멘!/
②내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입니다.
'너희 몸이 성령의 전 인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내 몸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주 해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더럽힐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속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할/
③우리 몸을 하나님이 '값을 주고 산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이미 팔린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벌써 죄와 사망과 율법과 정욕과 방종의 노예로 버려진 진노의 자녀(엡2:3)였는데, 이제 값을 지불하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롬8: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누가 값을 지불했는가? 하나님이 독생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갈보리 십자가위에 못 박아 죽임으로 죄 값을 청산하신 것입니다. /믿/ 예수님이 내 죄 값으로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아멘!/ 이제 나는 나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내 죄 값을 지불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세요! 갈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 내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 값을 다 청산하시고,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의 소유권을 친히 행사하십니다. '너는 내가 이미 십자가에서 샀노라!'고 하십니다. 그 '값을 알라'는 말입니다. '네 값이 얼마인줄 아느냐?' 그것은 '예수 값'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존귀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생명과 맞바꾼 존재입니다. /믿/
④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렇게 지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몇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⑴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은 인간에게 더 큰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상대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아주 값있는 상대입니다. 아주 존귀한 존재입니다.
시16:3절에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할/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한 자로 여기십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웨스트 민스터 소요리 문답서는 모두 81개입니다. 그중 제일 첫 번째 문답이 '사람의 제일가는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의 첫 번째 값어치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답하기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왜 세상에 태어났느냐 하면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목적입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입니다. /믿/
여러분,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지 아십니까? 그렇게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가면서도 하나님은 끝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만 예배드리고, 하나님께만 경배 드리라'고 그들을 건져 내 주었습니다. 이것이 출애굽의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의 고향 갈데아 우르에서 왜 불러 내셨습니까? 그것도 하나님만을 섬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갈데아 우르는 우상의 도시입니다. 그곳에 있으면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내어서 가나안 땅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목적입니다.
어디 아브라함뿐이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들도 이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억만 죄악가운데서 불러내신 것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고 불러내셨습니다. /믿/아멘!/
사실 이 세상에는 섬길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상도 많고 잡신도 많습니다. 세상 유행도 많습니다. 재미도 많습니다. 사람이 그런 곳에 푹 빠져 살면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망하게 되어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를 불러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왜 불러내셨다고 했습니까? 또 다시 강조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고 불러내셨습니다.
우리를 불러내신 이유와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 이것이 인간의 값이고 보람이고 삶의 목적이고 신앙인이 된 이유입니다. /아멘!/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디 그렇습니까? 하나님만 섬기라고 애굽에서 불러 내어놓았더니 나오자마자 우상을 섬기고 잡다한 잡신들을 숭배합니다. 그리고 이방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화가 나신 것입니다. 이것은 배은망덕이고 배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백성들의 버릇을 고치시기 위해 바벨론과 앗수르의 손에 붙여서 고난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출애굽을 했으면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지긋지긋한 애굽을 빠져나와 그들을 위해서 특별히 예비해 놓으신 가나안에 들어가 살면서도 애굽에서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못된 짓들만 흉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론과 앗수르라는 큰 막대기를 들어서 이스라엘을 사정없이 치신 것입니다. 배은망덕에서 오는 분노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믿지 못하면 주님의 진노의 잔에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 고난은 우리가 깨닫고 바로 설 때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주신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만 잘 섬기는 일'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예비해 놓으신 복들을 쏟아 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복이 무려 32,500가지나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이스라엘과 똑같이 세상 것을 좇아갑니다. 그러다가 하나님 앞에 진노의 막대기로 벌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잘 깨닫는 것이 축복입니다. 왜 하나님이 유독 인간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⑵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두고 보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왜 사람들이 자식을 낳습니까? 그것은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커 가는 모습을 보고 행복해 하려고 낳습니다. 자식이 커 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기쁨 중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때로 자식자랑을 많이 합니다.
자식이 그 어려운 대학입시에 합격을 해 보십시오, 그때는 본인보다도 부모가 더 기뻐하고 좋아합니다. 부모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기쁨 그 자체입니다. 낙방한 아이의 부모 앞에서도 혼자 기뻐서 떠들며 자랑합니다.
부모는 자식 앞에서 때로는 푼수가 될 때가 참 많습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그렇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것은 인간만이 아니고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욥1장을 보면 하루는 하나님이 사탄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디 다녀왔느냐?'고 묻자, 사단이 대답하기를 '예! 세상을 두루 살펴보고 오는 중입니다.' '그럼 내 종 욥을 보았느냐?'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을 모르는 사람이지' 이것이 하나님의 자식 자랑입니다. 그것도 사단에게 자랑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욥이 세상에서 너무나 깨끗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용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워서 사탄 앞에서 자랑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이 세상에서, 신앙 안에서, 말씀 안에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믿/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보시고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창12:3절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것이 성도를 향한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믿/ 그런데 그렇게 기대를 가진 성도들이 세상에서 넘어지고 실패하고 낙오될 때 하나님의 실망이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우리는 이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절대로 넘어지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자식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부모처럼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여러분,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 중에 하나는 '영광을 받으시려고' 또 하나는 '믿음 안에서 승리하는 그 모습을 두고두고 보시려고'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이렇게 지음 받은 우리들을 향하여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⑶그것은 한마디로 예배입니다.
그래서 롬12:1절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셨고, 또 롬6:13절에서는 '너희 지체(몸)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보통 몸이 아닙니다. 우리 몸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이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입니다. 이러한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참 예배, 신령한 예배는 산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산 제사란 무엇입니까? 구약에서는 죽은 제물을 드렸습니다. 피를 쏟아서 그것을 제물로 드렸고, 혹은 모든 제물은 불살라서 재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속죄양으로 죽은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신약에 와서는 죽은 제사가 아니라 산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산 제사란 살아있는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죽은 것같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오직 '예, 아멘'하고 살으라는 말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주를 위해 순교한다는 마음으로 살으라'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제일 먼저 일어나는 가장 놀라운 변화 중의 하나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할/
그렇다고 우리의 신체 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 순간 우리 몸은 주님을 모시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몸이 더 이상 우리의 몸이 아니라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한국 젊은이라면 누구나 한번 갔다오는 곳이 있습니다. 군대입니다. 이것이 내 몸이지만 국가가 한번 영장을 발부하면 어쩔 수 없이 2년 동안 그 따뜻한 가정의 품도 제쳐놓아야 하고 그렇게 돈 잘 벌던 직장도 열심히 하던 사업도 다 제쳐놓고 군대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비로소 느끼게 되는 것은 '이것이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니로구나'라는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바 되어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은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려진 몸입니다. 어떤 유혹이 와도 어떤 시련이 와도 어떤 곤고가 와도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제단 뿔에 매인 몸이며 거룩한 산 제사를 드려야 할 산 제물이 된 것은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아멘!/
바울 사도는 롬12장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라,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형식과 의식이 아닌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가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는데, 여기서 몸은 단순히 육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의 전체를 가르칩니다.
산 제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 전에 나와 자신을 드리는 예배'입니다. 또 하나는 '살아 움직이는 내 자신의 삶, 그 자체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예배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만 하나님께 내 자신을 바치는 거룩한 시간만을 가질 것이 아니라 생활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 되라고 강조하십니다.
예배 시간만 예배가 아니라 예배를 마치고 교회 문 앞에 나가는 순간부터 또 하나의 새로운 예배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업가는 사업 그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일 자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활 그 자체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롬12: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 말씀은 '예배 생활에 정성을 다 하라'는 교훈입니다. 또 2절에서는 예배드리는 자의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세 가지입니다.
⑴'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세대란 변화 무쌍한 세상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유행을 가르쳐서 한 말입니다. 악한 모습을 따르지 말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 악합니다. 순경이 도둑질을 하고 유부녀를 잡아 성폭행하고 팔아먹는 세상, 여기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은 개인주의가 난무하고 인본주의가 난무한 그런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멘!/
⑵'마음은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변화는 겉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에서부터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잠4:23절에서 당대의 최고의 지혜자인 솔로몬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변화란 인격과 성격의 변화입니다. 성경에서 변화란 거듭남은 의미합니다. 술주정뱅이가 변화되는 것, 깡패 사기꾼이 변화되는 것, 그런데 이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을 때 나타납니다. 고후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할/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게 되고 그때부터 성격, 인격, 버릇이 고쳐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란 외형적인 외모를 말하지 않습니다. 심령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변화 받은 사람은 삶의 우선순위가 다릅니다. 지금가지는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입니다. 마6: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멘!/
⑶'하나님의 뜻은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에 이 일이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실 것인가?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 것인가? 지금 하고 다닌 일, 지금 하고 있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는 곳인가 아닌가를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다 하나님께 드릴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것저것 다 잘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한가지만 잘해도 복을 받습니다.
예배만 잘 드려보십시오, 모든 축복은 예배를 통하여 오는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 이것이 복 받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으로 당신께 예배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전승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안식일은 열심히 지켰습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가서도 안식일만은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지켜 주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안식일을 지키다 보니 2천년 동안 남의 나라에서 흩어져 살았는데도 그 민족이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힘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안식일을 지키는 전통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주일을 지키고 예배 중심의 삶을 살면 나중에는 교회가 나를 지켜줍니다. 교회가 내 생명을 지켜주고 내 영혼을 지켜주고 내 삶의 축복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이것이 신앙 인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할/아멘!/
▶결론적으로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상고하고 마치겠습니다.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⑴또 다시 당부하고 강조합니다. '예배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을 내신 첫 번째 목적입니다. 예배의 사전적 의미는 '초월적 존재 앞에 경배를 드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찬양하는 게 바로 예배입니다.
사람 앞에는 엎드리면 굴욕적인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엎드리면 기쁨이 넘칩니다. 바로 그게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헌신하고, 사랑 때문에 시간을 드리고, 사랑 때문에 물질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였기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를 자처합니다. 예배는 이런 사랑의 심정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할/
⑵'이웃을 사랑함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가장 큰 계명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요13:34-35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아멘!/
⑶'이웃을 섬김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마20: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섬김은 예수님이 오신 목적만이 아니고 우리의 삶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은 섬김의 도리입니다. 마23:11절에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나님이 주신 재능, 재산, 은사, 기술을 가지고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자기 혼자 먹고살라고 여러 가지 재능과 은사와 물질을 주신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도우라고 주셨습니다.
벧전4:10-11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⑷'말씀을 전함(전도)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입은 말함으로 그 가치를 드러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욕하고 불평하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그 도를 전하는데 있습니다.
▶먼저 진리를 깨달은 자는 전해야 합니다.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들은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행21:20절에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설교하는 목사의 직임이 귀한 것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갈1:23-24절에도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예수님을 박해하던 바울이 예수님을 전한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된 것입니다. /할/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태어났고, 또 그분께 영광을 도리기 위해 살아가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 이 일은 우리가 축복을 받을만한 일이고, 축하를 받을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참 믿음이 좋은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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