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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자! (사 66:1-5)

by 【고동엽】 2022. 2. 9.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자! (사 66:1-5)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시고 기쁘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모든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하듯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도 모든 주의 자녀들인 성도들이 기쁘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뜻을 따라갔기 때문에 기쁨과 평안을 잃어버리고 슬픔과 저주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죽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다 누리고 있어도 하나님 없으면 그의 생명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이고 썩어져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부귀영화를 누렸던 인물은 솔로몬 왕이었습니다. 최고의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1,000명의 처첩을 거느린 사람입니다. 게다가 그는 세상에 전무후무한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전1:2절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다 가졌고 다 해보았으면 그는 '복되고 복되며 복되고 복되니 모든 것이 복 되도다'고 고백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는 헛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헛된 것입니까? 왕이라는 권력 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그 권력은 헛된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재물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 재물도 헛된 것이요, 내가 가진 지식과 명예 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이 다 헛된 것입니다. 내 가정에, 내 직장에, 내 사업체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고 곧 안개와 같이 사라질 것입니다. /믿/
내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의 삶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지 않으면 나의 하루가 아니 1년이 아니 인생전체가 다 헛된 것입니다. 솔로몬의 그 부귀영화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없는 부귀영화는 곧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와 같은 것입니다.
솔로몬이 남긴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 어떤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력도 하나님 없으면 헛된 것이란 교훈을 우리에게 남긴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처럼 부귀영화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늘 죽음의 고비 고비를 어렵게 넘기며 살았습니다. 왕이 되기 전에는 사울 왕으로부터 쫓기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왕이 되고 나서는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쫓기는 부끄러운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 험난한 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23: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늘 나를 인도하는 목자가 되니까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해야 될 사람은 다윗이 아니라 솔로몬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난날을 돌아보면 기쁘고 즐겁게 살지 못하고 걱정하며 근심 속에 살았던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솔로몬 왕은 뒤늦게 야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전3:12-13절에서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전에는 몰랐다는 말입니다.
왕이 되고 높은 지위에 앉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으면 모든 것이 제일일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자리라도 그 자리에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면 초가삼간보다 못합니다. 초막에서도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면 왕궁보다 낫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대궐 같은 집에서 산다할지라도 그 속에 기쁨이 없고 괴롭고 답답하면 그것은 가난 속에 행복한 것만 못한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사람들은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좋은 옷을 입으면 즐겁고 기쁘겠지' 생각합니다. '더 좋겠지, 더 기쁘겠지' 하면서 여행도 하고, 등산도 하고, 사업도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기쁨과 행복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쁨과 행복을 얻으려고 어떤 일을 할 때는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즐거움은 과정이 아니라 하나의 열매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는 말은 그만한 알곡이 있고, 내용이 있다는 말입니다.
슬픈 것은 공연히 슬픈 것이 아닙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만한 은혜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믿/
우리는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어디서나 기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 기쁨이 있는 곳을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기쁨은 뒤에 슬픔이 따르기도 하고 저주도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기쁨 뒤에 더 큰 축복이 따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쁨의 길은 우리가 찾아야 합니다.
시37:4절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112:1-3절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시인은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에게는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이 따른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복입니까? 후손이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여호와의 계명을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가정생활을 할 때 자식이 배우고, 부모가 따라 나와서 예수님을 만나면 그 자식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됩니다.
이런 가정은 늘 화목하고 감사가 넘쳐 나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안 하면 본인들만 문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까지 방황하게 됩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얼마나 방황하고 있습니까?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사회가 자유개방이 된지도 오래되었지만 청소년들은 갈 바를 모릅니다. 세상은 너무나 유혹하는 곳이 많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십시오, 그런 자녀들은 결단코 망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믿/ 또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에게 무슨 복을 준다고 합니까? 시112:3절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부요함과 재물입니다.
여러분, 물질도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물질도 하나님이 관리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부요와 재물은 엉뚱한 곳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인생의 그물을 하나님이 잡고 계시므로 구멍이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바울은 고후5:9절에서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또 엡5:10절에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하셨습니다. ◀제목 소개!▶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거짓된 예배를 멸시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를 찾고 계심을 말씀하십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하여 잃어버렸던 나라를 회복할 것이라고 예언하시면서 먼저 신앙을, 예배를 회복할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들의 타락한 예배를 꼬집고 계십니다. 3절 이하에서 많은 재물로 제사를 드린다고 드렸지만 '제사장들은 나의 뜻을 묻지 않고 제 뜻대로 한 자들이다. 오히려 가증한 우상숭배를 즐겼다. 가증한 우상들을 진정으로 좋아하였다. 4절에서 그러기에, 나도 나의 뜻대로, 그들을 혹독하게 다루어 그들이 겁내는 것을 그들에게 들이닥치게 하겠다. 내가 그렇게 불렀으나, 그들이 응답하지 않았으며, 내가 그렇게 말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않았으며, 오히려 내가 보는 데서 악한 일을 하며,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골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시면서 5절에 '주의 말씀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아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들이 되라'는 메시지입니다. /할/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는 '바른 예배 자'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히브리어로 '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일 좋은 방법은 예배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헬라어로 '디아볼로스'인데 이는 '틈을 낸다.'는 말입니다. 마귀는 예배드리는 사람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사이가 갈라지도록 틈을 내는 악령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부름에 대한 신앙적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거룩한 산 제사를 기뻐 받으십니다(롬12:1-2). 그리고 우리의 전 삶 자체가 모두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에는 몇 가지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①예배는 감사가 필수 조건입니다. 감사 없는 기도, 감사 없는 찬송, 감사 없는 헌금, 이런 것들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감사가 빠지면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②기쁨과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다. 한마디로 예배를 축제의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시66:1절에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할지어다' /할/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는 기쁨을 가지고 드려야 합니다. 구원받은 기쁨, 하나님 안에서의 새 마음! 이런 기쁨이 찬송으로 기도로 예배로 이어져야 합니다.
③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고 드리는 '드림'입니다. '우리 예배 보러 가자'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배는 모든 것을 전부 드리는 것입니다. 찬송을 드리고, 기도로 드리고, 헌금으로, 내 몸도, 마음도 다 드리는 것입니다.
수22:5절에 '너희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고 했습니다. 혈기 죽이고, 고집 죽이고, 변덕 죽이고, 아집과 자아를 죽이고 하나님께 깨끗한 양심으로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디모데는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딤후1:3절에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④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마음, 이 마음이 없으면 온전한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축복도, 은사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아멘!/
⑤주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온전히 주일 성수하는 것은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구약에 보면 온전한 주일을 지키는 자에게 네 가지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⑴건강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⑵야곱의 업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의 업이란 '빈손 들고 멀리 하란으로 도망갔지만 돌아올 때는 엄청난 부를 가지고 온 것'을 가리킵니다. ⑶연합해서 하나가 되는 복을 주시고, ⑷성결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⑥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가리켜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한 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거룩한 전입니까?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122:6-7절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할/
⑦준비하는 마음이 귀합니다. 예배를 위하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준비한 그릇대로 복을 주십니다. 준비한 만큼 은혜를 주십니다. 준비는 정성으로 해야 합니다. 입고 나갈 옷도 준비해야 합니다. 성경, 찬송, 헌금, 모두 준비해야 합니다.
⑧우리가 예배드릴 때 상주실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히11:6).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큰상이 노벨상입니다. 우리나라도 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음으로 노벨상 수상 국가의 대열에 끼이게 되었습니다. 노벨상 외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이 있습니다. 영화인들에게 수여되는 '아카데미 상'이 있습니다. 이 아카데미상에서 여러 부분을 수상하게 되면 그 영화는 흥행이 보장됩니다.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는 11개 부분에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고, 그 명성 때문에 대 흥행을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사진 기자들에게 수여되는 '퓰리쳐 상'도 유명합니다. 영화인들에게 수여되는 큰상으로서는 '대종상'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용감한 시민 상' '장한 어머니 상' '효부 상'이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수여되는 메달들도 상에 속하고, 국가에서 수여하는 각종 훈장도 다 상에 속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상급에 관한 말씀이 참 많이 있습니다. 마10:41-42절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히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상을 바라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늘의 상을 사모해야 합니다. 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빌3: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상급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예배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는 '마음이 가난한 성도'입니다.

 

본문 2절에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라고 했습니다. 주님도 산상보훈에서 '심령이 가난한자가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심령이 가난한 자, 마음이 가난한 자'는 무엇을 말합니까?

①물질의 가난을 뜻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가난을 말합니다, 영적인 갈급함, 사모함을 말합니다.
②하나님 앞에서 죄와 자기의 무능력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깨어진 마음'입니다. 구약의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모세입니다.
그는 살인자의 모습으로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치기로 40년을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그의 삶은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호렙산에서 '네 백성을 탈출시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저는 아닙니다.' 네 번씩이나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손을 문둥병에 걸리게 했다가 고쳐 주시기도 하고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게 되는 기적도 보여줍니다.
'이런 기적을 내가 보여 줄 테니 네가 가라' 그래도 모세는 못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신약에서는 베드로가 있습니다. 밤이 맞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십니다. 순종하였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의 거룩한 영광을 보면서 자기의 죄와 무능과 연약함을 깨닫고 '주님!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영적인 태도,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는 태도, 이것이 겸손한 성도의 자세입니다.
③겸손한 마음입니다. 성경에 보면 겸손한 마음과 교만한 마음을 가진 두 사람이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교만한 마음의 대표자는 바리새인이었고,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자는 세리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주님!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도 꼬박, 꼬박 냅니다. 저는 저 세리와 다른 사람입니다. 저는 정의팝니다.' 자기를 들어내고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주님! 저는 주 앞에 아무 것도 내 놓은 것이 없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세리는 자기의 죄와 무능력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사모했습니다. 이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세리의 기도를 받으셨지만 바리새인의 기도는 외면하셨습니다.
④가난한 마음을 단순한 마음입니다. 복잡한 마음도 아닙니다. 두 마음도 아닙니다. 오직 한 마음입니다. 신앙은 두 마음을 품으면 흔들립니다. 약1:8절에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할/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간 두 마리 다 놓칩니다. 한 마음을 품으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⑤마음의 가난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를 말합니다. 의지한다는 말은 순종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믿음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초가 되어 주시고 언덕이 되어주시고 발판이 되어주십니다. /아멘!/ 히11: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여기 실상은 하나님이 바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초가 되어 주십니다. 건강의 기초, 사업의 기초, 지혜의 기초, 이 말씀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만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⑥내려놓은 마음입니다. 비운 마음입니다. 욕심도 탐심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면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할/

 

3.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는 '심령에 통회하는 성도'입니다.

 

2절에 '심령에 통회하며'라고 했습니다. 통회는 죄를 깊이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슴을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가 연약하여 죄를 범하여도 진심으로 통회하면 은총을 베푸시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죄 없는 자를 찾지 아니하시고 심령에 통회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본문에 '심령에 통회함 없이 소를 잡아드리는 것은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양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도 개를 잡아 드리는 불경스러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이 없이 율법의 규례를 따라 소나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린다해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가증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 없이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다'고 하십니다. 이 말은 이방제사에서나 행해지는 혐오스런 모습으로 가증하다는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통회하며 자신의 죄와 잘못을 회개하며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를 찾으십니다.
▶회개란 죄의 고백과 새롭게 살려고 하는 의지를 말합니다. 우리는 경건한 근심을 해야 합니다. 경건한 근심은 참으로 죄를 미워하고 죄지은 자신의 연약함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거룩에 동참치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근신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합니다. /아멘!/


▶우리들도 회개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①회개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회개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회개의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죄의 지적보다는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합니다. 남의 잘못은 잘 지적해도 자신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다윗도 나단 선지자가 올 때까지 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단 선지자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그의 죄를 깨우쳐줄 때, 그때서야 다윗은 회개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의 무뎌진 마음은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의 어두운 눈은 죄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쉴 새 없이 죄의 담을 높여갑니다. 알고 범죄하고, 모르고도 범죄를 합니다. 생각으로, 눈으로, 입으로, 귀로도 죄를 짓습니다. 손과 발로도 범죄 합니다. 이렇게 죄의 늪에 빠져들면서도 안전하다고 착각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 없는 신앙, 회개 없는 기도, 회개 없는 삶은 가짜이고, 죽은 신앙입니다. /할/
②용서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③희생봉사 안 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④무관심한 것도 회개해야 합니다.

 

4.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성도'입니다.

 

2절에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5절에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아 그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는 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요시야 왕은 옷을 찢고 통곡했습니다. 왕하22:11절에 '왕이 율법 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19절에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들으면서, 두려워해야 하고, 탄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로와 기쁨과 소망이 넘쳐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가슴아파해야 합니다. /아멘!/
사실 인생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세상은 험하고 인간은 약하여 자기보다 강한 대적을 만나면 별 수 없이 벌벌 떠는 것이 우리 인생들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을 만나면 무서운 마음이 생기고 눈앞이 아득해지며 한숨짓고 낙심하기 쉬운 것이 우리 인생들입니다.


①그러면 무엇이 무서워 떱니까?
⑴자연현상이 무서워 떱니다. 천지지변은 인간의 어떠한 힘으로도 감당 못합니다. 비가 많이 와도, 바람이 무섭게 불어도, 캄캄한 밤길도, 지진이 나면 또 얼마나 무섭습니까?
⑵사람이 무서워 떱니다. 악한 사람을 만나면 정말 무섭습니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존재가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할/
⑶귀신이 무서워 떱니다. 불신자들은 화를 면해 달라고 부적을 벽에 붙이고 또는 자기 품속에 넣고 다닙니다. 그 부적 한 장이 오천 만 원짜리도 있다고 합니다.
⑷죽음이 무서워 떱니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무서움입니다.

 

②사람이 떠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⑴자신에게 손해가 올까봐 떱니다. 몸이 병들고, 상처 입을까봐 떨고, 물질에 손해를 보고 명예에 훼손을 당할까 봐 떱니다. 여러분, 손해 볼까 미리 떨면서 준비하며 조심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 때문에 떠는 자는 이기주의자요, 작은 그릇임을 알아야 합니다.
⑵부모는 자식에게 해가 미칠까봐 떱니다. 모든 부모들은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 때문에 안타까워 떱니다. 자식이 병들까봐 떱니다. 시험에 낙방할까봐 떱니다. 깡패에게 매를 맞거나 속아서 타락할까봐 염려하며 떱니다. 요사이는 딸자식이 인신 매매 단에 붙들릴까 떠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으로 양육하고 믿음으로 키우는 부모는 절대로 떨지 않습니다. /할/
⑶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될까봐 떨어야 합니다. 내 욕심과 교만 때문에 하나님께 욕이 된다면 되겠습니까? '저 장로라는 사람이, 아니 저게 집사야, 저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 믿음의 사람들은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합니다. /아멘!/


③사람이 떠는 이유에 따라 그의 인격과 생활이 나타납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떠는 자의 인격은 어떻습니까? 자신에게 손해가 올까하여 떠는 사람은 좋은 것 같으나 대단히 미안하지만 비겁한 인격의 소유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⑴시대에 따라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제 때는 왜 놈 앞잡이로, 자유당 때는 정지 모리배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이익 때문에 신용이나 의리를 깡그리 잃어버리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믿음의 절개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해관계 때문에 약속을 깨뜨리고 양심을 저버리고 타락하는 양심은 비틀어진 양심입니다.
⑵형편에 따라 선을 버리는 자도 있습니다. 선한 일을 시작했다가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중단해 버립니다. 선한 일을 시작해 놓고 힘들고 물질에 손해가 가면 '에라 모르겠다'며 선한 일 일줄 알면서도 중단해 버립니다.
⑶또한 우리 인간들은 세속의 유혹에 넘어가 더러워지고 악해지고 비참해 지기가 쉽습니다. /할/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자기만을 위해 떠는 개인주의자, 변질 자, 외식자가 되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⑷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인격자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주의 종을 위해서' 성도들 간에 관심을 가지고 늘 위로해 주며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⑸5절에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게 여기며 삶에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순종하며 사는 자를 가리킵니다.


④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까?
⑴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요, 통치하시는 주관자이십니다. 선하신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인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⑵죄인된 인간들을 구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인간은 절망과 허무 그리고 죽음을 맛보아야 했으며 저주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시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고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속량해 주시고 구속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함은 하나님의 사랑과 확증과 소망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할/
⑶인간을 심판하시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국가를 통치하는 대통령도 권세를 가지고 나라와 국민을 통치합니다. 그러나 그 권세는 영원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 위임받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 어떤 권세가도 재벌들도 박사들도 종국에는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이때 모두가 다 벌거벗은 것같이 자신이 행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며 말씀 앞에 떠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히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할/

 

⑤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⑴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⑵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복 받을 사람은 주의 종에 말에도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주의 종을 통하여 말씀을 명하십니다. 주의 종을 무시하면 무시한 만큼 하나님의 징계가 임합니다. 그러나 사랑하고 순종하면 순종한 만큼 큰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믿으십니까?/
⑶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자는 감사하는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이 나같이 못난 것을 지금까지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것 감사합시다.'
감사는 찾으면 찾을수록 많습니다. 신앙 인들은 무엇이든지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떨 줄을 모릅니다.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부모님이 자기 때문에 염려하실 까 봐 떨지만,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은 사람은 부모님이 근심하든지 말든지 떨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 신앙에 시험 중에 있습니까? 삶의 고통 중에 계신 분이 있습니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앞으로 좋은 것으로 바꿔주시기 때문입니다.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만 가지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 앞에 떨며 복종합니다. /할/
⑷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자는 늘 자기를 살피고 잘못을 회개합니다
⑸언제나 담대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떠는 사람은 어떤 곳에서 무슨 사건을 만나도 떠는 법이 없으나, 사람의 말에 떠는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을 엄수히 여기다가 고통 가운데 떨어지고 맙니다.
하나님 말씀에 미리 떠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담대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떨고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담대해진 베드로와 요한은 며칠 전에 예수님을 죽인 무리들이 자기들을 잡아다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야단칠 때, 강하게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당해도 담대하게 처리합니다. 세상에 좌우로 치우치지도 않습니다. 풍랑이 일어나고 육신에 질병이 와도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이 맡으셨으니 우리는 따라만 가면 됩니다. 요14:1절에 우리 주님이 약속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⑹큰 난관을 만나도 떨지 않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출렁출렁 넘치고 뒤에는 애굽이 군인들이 칼을 빼들고 따라오면서 고함을 지르지만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세는 떨지 않았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출14:13-14절에서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드디어 주님의 음성이 들여옵니다. 출14:16절에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세는 지팡이를 든 손을 높이 올립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정말 우스운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지팡이를 내 밀었더니 놀랍게도 바닷물이 좌우로 갈라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건너가고 뒤따라오던 애굽 군인들이 바다 가운데 지날 때 다시 물이 범람해 애굽의 마병들이 물 속에 수장돼 버린 사건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으로 두려워 떨고 계십니까? 그 문제가 무엇입니까? 물질입니까? 질병입니까? 다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맡기지 안고 자기의 능력으로 해결 해 보겠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큰 불신의 죄를 짓고 있으며 더욱 더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이 앞뒤가 꽉 막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믿음으로 맡길 때 일어납니다. 여러분, 믿음만 가져 보십시오,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이스라엘 전역에 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사르밧 과부와 엘리야는 가루 통에 밀가루가 차고 넘쳤고 기름병이 항상 넘쳐났습니다.
사자 굴에 던짐을 받은 다니엘은 믿음으로 사자 입을 봉했으며, 그의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일곱 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 꽁꽁 묻기여 들어갔지만 머리칼 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건짐을 받았습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이루어짐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창18:14절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물으셨고, 막9: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할/
⑺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자는 미리 '준비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120년의 기한을 주면서 잣나무로 3백 척 길이의 3층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을 받았습니다. 햇빛이 쨍쨍 내려 쪼이는 대낮에도 온 식구가 매달려 땀을 흘리며 방주를 짓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총에 아랑곳이 없었습니다. 기한이 차매 세상은 물로 심판이 내려졌고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준비한 노아의 여덟 식구만 구원받은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⑥하나님의 말씀을 떨며 지키는 자는 어떤 복을 받습니까?
⑴평안의 복을 받습니다. 왜 평안합니까?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니 평안합니다. 욥22:21절에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2절에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을 무서워 떠는 자는 하나님이 권고하신 답니다. 권고하신 단 말은 '돌아보아 주신다'는 말로써, '손댈 자가 없으니 평안하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모든 만사가 다 잘 해결됩니다. /믿/
⑵사람이 깜짝 놀라는 성공 자로 만들어 줍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석방만 되어도 감사할 일인데 석방되자마자 국무총리에 앉았으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큰 성공이고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깜짝 놀랄 성공 자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⑶이 세상 끝나는 날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를 얻었다 할지라도 지옥에 떨어져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천국을 소망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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