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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큰 은혜를 받는 비결! (약 4:6-10)

by 【고동엽】 2022. 2. 7.

더욱 큰 은혜를 받는 비결! (약 4:6-10)

 

'프랭클린 홀'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절대로 필요한 조건이 네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공기가 있어야 하고, 빵(음식)이 있어야 하고, 수면을 취해야 하고, 물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맑은 공기를 호흡해야 하고, 맑은 물을 마셔야 하고, 잠을 자야하고,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조건이지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는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때 최희준씨가 불러 유행했던 노래 가운데 '잘 살고 못 사는 게 마음먹기 달렸더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만 마음먹기 따라 행복도 불행도 결정되고 생사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 조건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성경 인물들이 신앙고백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은혜로 축복을 받고, 은혜로 형통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든 생태계는 하나님이 빛을 주시고, 비와 바람은 주셔서 살아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의 단비를 맞아야 신앙이 자라고 보호를 받으며 복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은혜는 공기와 같습니다. 은혜는 빵과도 같습니다. 은혜는 물과도 같습니다. 다른 모든 것이 좀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시면 모든 일이 잘되는 것이고, 모든 것이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가 가장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은혜, 은혜' 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은혜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예수 믿은 것이 은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속에 모든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카리스'라는 말로 '은총, 아름다움, 행복, 최상의 것'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은혜 '카리스'라는 말은 '자격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구원도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모든 행복도, 축복도, 보호도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유대인들의 인사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살롬! 하나님의 평강'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안녕하고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고후9:8절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은혜'란 여러 가지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여러 가지로 주십니다. 또 그 은혜도 '넘치게 하시나니' 왜 우리에게 넘치게 하십니까? 왜 은혜를 받아야 합니까?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라고 주십니다. 쉽게 표현하면 은혜가 있어야 모든 것이 넉넉하다는 것입니다.
개인에게 은혜가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가정에 은혜가 있으면 가정의 모든 것이 넉넉하고, 사업에 은혜가 있으면 사업의 모든 것이 넉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넉넉한 것 가지고 모든 선한 일에 착한 일을 넘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합니다. 그래서 잘 돌아갑니다. 다 있어도 은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혜는 자동차의 기름과 같습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피곤이 옵니다. 시험이 듭니다. 어려움이 옵니다. 힘들게 만듭니다. 자동차를 손으로 직접 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서 받습니까? 히4:16절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은혜의 보좌 앞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교회는 두 가지의 보좌입니다. 하나는 영광의 보좌이고, 둘째는 은혜의 보좌입니다. 영광의 보좌는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곳,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곳,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곳'이란 뜻이고, 은혜의 보좌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가 내리는 곳'이란 뜻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곳입니다. /아멘!/
▶어느 주일날 권사님 한분이 목사님의 설교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도 권사님은 큰 기대를 가지고 예배에 참석했으나 그 날은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그 권사님은 목사님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목사님의 대답은 '지난 주일에는 권사님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기 때문에 신령한 은혜를 받았습니다만 오늘은 목사를 만나러 왔기 때문에 은혜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은혜와 모든 축복의 출처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진실로 은혜를 받으려면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더욱 큰 은혜를 받는 비결!▶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여기 '시기'한다는 말은 '뜨겁다'는 말로 불 붓는 마음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은혜는 사모하는 자가 받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다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⑴성령이 누구십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선지자와 사도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신구약 성경을 영감으로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⑵성령은 '보혜사'(요14:16)입니다. 글자 그대로 보호하여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보혜사를 헬라어로 표현하면 '파라크레토스'입니다. 성령은 '옆에 와서 도와주는 이'입니다. 성령을 환영하고 모셔들이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성령님이 옆에 오셔서 도와주십니다.
⑶성령과 함께 살면 능력이 임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두나미스'라고 합니다. 이는 '다이나마이트'라는 말입니다. 무지무지한 힘입니다.
지금 이북이 핵을 3개 내지 4개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렇게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한 개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에 100배라는 것입니다. 히로시마 온 도시가 불바다가 되어 풀 한 포기 나지 않았습니다.
이북이 가지고 있는 핵이면 남한을 완전히 초토화시켜서 수십 년 동안 풀 한 포기 나지 않게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이런 힘을 '두나미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은 파괴의 능력이 아닙니다. 축복의 능력입니다.

⑷우리가 성령 충만 받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요?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어떤 환경과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반면 넘어지고 불안해하며 조그만 일에도 낙담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성령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태산 같은 환란이라도 발로 누르고 일어날 수 있는 힘과 능력은 바로 성령을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성공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며,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않다고 약속합니다. 그럼에도 실생활에 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음은 성령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영이 임하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를 사로잡아 어떤 분야에도 뛰어나며 두각을 나타나게 됩니다.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 충만이 곧 승리의 원천입니다. 사탄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공격합니다. 사탄의 공격을 물리쳐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성령 충만입니다. 나 자신의 정욕, 세상의 불의, 그리고 사단의 권세와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성령 충만함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술 취하면 술에 지배를 받지만, 성령 충만하게 되면 성령의 지배와 통치를 받게 됩니다.

⑸성령 충만하지 못한 결과가 어떠합니까?
㈀우리 영혼이 병듭니다. 예배가 지루하고 답답하며 교회 나와서 봉사하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봉사가 기쁨과 감격 속에 봉사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기도가 절로 나오고,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말씀과 예배하는 즐거움이 영원토록 우리의 심령을 주장하여 끊임없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줄로 믿습니다.
㈁인격이 병듭니다. 예수를 오래 믿어도 예수님 닮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이 찔림을 받고는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듣기 싫다고 귀를 막고 달려들어 돌로 쳐죽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했던 스데반 집사는 천사 같은 모습으로 용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남 미워하고 원망불평이 나옵니까? 성령 충만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믿음이 강건해 지고 견고해져 흔들리지 않습니다. 폭풍 같은 환란과 시련이 닥쳐와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아멘!/
㈃우리의 생각이 병들게 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면 하지 말아야 될 생각, 더러운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이 중요합니다.
시107:9절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라" 또 대하16:9절에도 보면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를 위하여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은혜를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성령을 사모하십시다! 롬14: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할/

 

2. 겸손해야 은혜를 받습니다(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막는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교만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꺾어버립니다. 이 교만은 언제든지 우리로 하여금 주께서 우리를 멀리하게 만드는 무서운 죄입니다.
6절에서 우리는 주목해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만한 자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가만히 놔두는 것이 아니라 물리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물리친다'는 말은 적을 대적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교만한 자를 하나님은 적으로 보십니다. 그래서 대적하고 물리치신다고 했습니다.
다윗에게는 교만한 아들이 있었고, 겸손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교만한 아들은 압살롬이고, 겸손한 아들은 솔로몬입니다. 압살롬은 어찌나 교만했던지 자기가 아버지 다윗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결국 그는 망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아들 솔로몬은 겸손하여 왕이 될 때에 '나는 부족하고, 어린아이와 같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압살롬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솔로몬을 크게 쓰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왕은 총명하고, 통치력도, 지혜도 있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자기 지위가 높아지면서 교만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해진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삼상15:35). 그리고 삼상16:1절에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버리자 하나님도 사울을 버려 왕의 자리에서 떨어지게 했습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①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남을 멸시하고 얕잡아 보는 것이 교만입니다.
▶한 택시운전 기사가 흑인 두 사람을 태우고 의정부로 한참 달리고 있는데 동료기사친구로부터 카폰이 걸려왔습니다. 전화내용은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는 것이고, 또 '몇 사람이나 타고 있느냐? 어떤 사람이 타고 있느냐?' 이런 장난 섞인 전화였습니다.
전화를 받은 기사는 흔연스럽게 '지금 연탄 두 장을 싣고 의정부로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택시가 의정부에 도착하자 두 흑인병사가 내리면서 480원을 주고 내리더랍니다. 깜짝 놀란 기사가 왜 480원만 내느냐고 물었더니 '이봐요! 연탄 두 장 값이 480원 아닙니까?'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지요?/
②영적인 교만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수 있다고 큰 소리 치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절대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피조물이 창조물을 무시하는 것은 무지해도 한참 무지한 태도입니다.
③또 신앙 안에 교만도 있습니다. 자기의 신앙이 최고인줄 착각하는 사람, 산기도, 철야기도, 몇 번 갔다 와서 도사가 된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잠16:18절에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대중목욕탕에서 두 사람이 같이 목욕을 하다가 한 사람이 어쩌다가 실수하여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을 끼얹게 되었습니다. 그는 잘못했다고 바로 사과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계속 성질을 내면서 '당신 나를 잘못 봤어, 내가 누군데 까불고 있어! 당신 나가서 보자! 옷을 입고 보자!'고 흥분합니다.
드디어 두 사람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옷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옷을 입고 보니 그렇게 의기양양했던 사람은 대위 계급을 붙인 군인이었고, 반면에 사과하던 사람은 옷을 입었는데 중령 계급을 단 장교였습니다. 그때서야 의기양양했던 사람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까? 겸손한 자입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심령을 향해서 계속 흐릅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이십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소원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그분 앞에 자기 생애를 완전히 맡겨 버리는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일 강한 자입니까? 어떤 사람이 능력자입니까? 겸손한 자입니다. 모세가 강할 수 있었던 것은 온유하고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통로입니다. 겸손한 자는 희생할 줄 알고 헌신할 줄 압니다.
우리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을 잘 압니다. 그는 뛰어난 전략가요, 정치가요, 군인이었으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8년 간의 대통령임기를 훌륭하게 마치고 정계에서 은퇴를 했습니다. 그가 대통령에서 은퇴하고, 그의 밑에서 부통령을 하던 '존 아담스'가 대통령이 되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아담스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듬해인 1798년 프랑스가 미국에게 무력도발을 했습니다. 아담스 대통령은 이 위급한 국란을 해결할만한 전략가는 퇴직한 전직 대통령 워싱턴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담스는 워싱턴을 찾아가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워싱턴은 기꺼이 응낙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참모총장의 계급은 중장이었습니다. 아담스는 워싱턴에 대한 예우 때문에 고민입니다. 이때 워싱턴은 특별대우를 마다하고 중장의 계급을 달고 현역으로 복귀하여 프랑스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건졌습니다.
지금도 미국 사람들은 조지 워싱톤을 잊지 않고 정신적인 지주로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넘치게 옵니다. /믿/
그렇습니다. 겸손은 동양 윤리의 미덕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은 단순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겸손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근본적으로 인생이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3. 하나님께 순복하는 자가 은혜를 받습니다(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승리한 사람들의 역사이며, 동시에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심판을 받은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음으로 죄를 범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의를 이루셨습니다.
롬5:19절 "한사람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순복이란 순종과 복종의 복합어입니다. 순종은 조건이 따를 수 있습니다만 복종은 무조건적인 것으로 군대용어입니다. 순종이란 듣고, 깨닫고, 따르는 것을 말하고, 복종이란 이해되지 않아도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해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더 나은 길로 인도해 주신 것을 믿고 따르는 것이 순복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급 어부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밤을 새워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먼동이 터 오자 그물을 정리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셔서 베드로의 배를 빌려 타고 모인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신 뒤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대낮이라 갈릴리 바다는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그물이 내려오는 것이 보이므로 고기들이 다 도망갑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내 생각과 판단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겠나이다'라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물을 내렸는데 얼마나 고기가 많이 잡혔던지 옆에 있는 친구를 불러 도와달라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는 수지맞습니다. /할/
여러분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먹고살기가 힘들고 어려운데 무슨 감사고, 온전한 십일조를 낼 수 있단 말이냐? 이런 사람은 자기 올무에 빠진 사람입니다. 어려울수록, 힘들수록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어려울수록, 힘들수록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채워주십니다.
말3: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또 11절에는 '황충을 금하며,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과일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믿/아멘!/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적극적으로 가로막습니다. 그래서 이 마귀의 존재를 깨닫고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옛날 마귀가 뱀으로 위장하여 하와를 미혹했던 것처럼 오늘도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할 모습으로 위장하여 우리 주변을 맴돕니다. 벧전5:8절에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굶주린 사자가 먹이 감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영적으로 마귀도 공격대상자를 찾아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다닌다는 말씀입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을 흔듭니다.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킵니다. 우리 마음이 세상 정욕으로 불타게 합니다. 그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은혜의 통로를 막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아멘!/

 

4.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은혜 받는 비결입니다(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우리의 인생 길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가까이 있어야 할 사람은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왜? 거기에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건도 그렇습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가깝게 있을 때 행복합니다.
사람도, 물건도 가까이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까이 있어야 할 것들이 멀리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은 허전하고 공허합니다.

오늘 날 현대인의 불행이 어디에 있습니까? 가까이 있어야 할 것을 가까이 두지 못하고, 또 멀리 있어야 할 것을 가까이 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그것이 짐이 되어 불행한 인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떨어져 있어야 할 사람들이 가까이 있다 보니까 원수니 악수니 하고 다툼이 일어납니다. 멀리 두어야 할 죄악을 가까이 하다 보니 얼마나 많은 인생들이 망가집니까? 멀리할 것은 멀리하는 결단이 신앙입니다.
현재 우리는 10년 전, 20년 전이나 반세기 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지식수준, 생활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소유가 풍성해졌고, 생활용품이 다양해졌고, 문화시설이 편리해졌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해지고, 편리해지고, 화려해졌습니다.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은 소외감과 패배의식과 낙오자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가지, 가장 소중한 것을 가까이 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우리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여호와를 가까이하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주님을 가까이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만 나와 함께 하시면, 그분이 내 가까이 계시면, 그분이 나를 도와주시면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 삶의 인도자가 되시며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와 가까이 교재 하느냐에 따라 인격과 삶이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검은 것을 가까이 하면 검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옛 충신은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백로가 물들까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에게 배우느냐? 누구를 따르느냐? 누구와 가깝게 지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도 신앙도 삶도 달라지게 됩니다. /믿/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자가 능력을 받습니다. 힘있는 자가 함께 할 때, 힘이 생기고, 빛이 있는 자가 가까이 계실 때, 빛 가운데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과 멀어질 때는 어두움이 오고, 근심이 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멀리할 때, 하나님은 심판하셨습니다.
노아의 물의 심판, 소돔의 불의 심판,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당한 심판, 유다가 바벨론에게 당한 모든 심판은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멀어질 때 모든 시험이 오고 죄악이 옵니다.
여러 찬송가의 가사들도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은혜가 되고, 하나님과 멀어질 때, 죄에 빠지고 멸망에 빠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을 멀리 함으로 그 가정에 어려움이 왔고, 시험이 왔습니다. 아들 두 형제가 전쟁터에서 한날, 한 시에 죽었습니다. 엘리 제사장 자신은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의 며느리는 아이를 해산하다가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이 '이가봇'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떠나갈 때, 그것은 슬픔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있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가치가 없고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73:28절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고, 오늘 본문 8절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이웃을 잘 만나야 합니다. 믿음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은혜로운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 축복 받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효도하는 사람을 만나면 효도합니다.
그런데 부모 비판하는 사람 만나면 불효하게 됩니다. 사람이 누구와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가 은혜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가 행복하고 능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모든 은혜를 받고 능력을 받습니다. 약한 자가 하나님과 가까이 할 때 강해집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지만 하나님과 가까이 하다가 골리앗을 넘어뜨리는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한나가 기도를 하는데 입으로 '속닥속닥' 그렇게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그것을 보고 술 주정하는 것으로 알고 야단을 칠 정도로 그렇게 '증얼증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과 가까이 했기 때문입니다. /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너무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과 짝하지 않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아멘/
여러분 중에 '왜 나는 그분이 가까이 계시지 않는가?' 이렇게 느끼는 분이 계십니까? 그 이유를 성경에서는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①죄가 있으면 하나님이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시66:18절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②교만하면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멀리 있다고 생각되시면 이 두 가지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죄 중에 빠져 있지 않는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않는가? 내가 좀 안다고, 좀 배웠다고, 좀 있다고, 지위가 좀 높다고, 교만하지 않는가?'를 살펴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을 가까이 하실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질 때, 죄악이 오고 시험이 옵니다. 교회가 멀어지면 하나님도 멀어집니다. 교회와 가까우면 하나님도 가깝습니다. 멀어지면 모든 것이 끝나버립니다. 사람의 정도 그렇습니다. 가까이 있어야 정이 솟고 인정이 솟는 것이지 멀어지면 무관심해집니다.
약한 자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강해집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지만 하나님을 가까이 하다가 왕이 되었습니다. 사55:6절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①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길은 예배 중심의 삶입니다. 성전 중심, 신앙 중심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왜 찾으십니까? 가까이 하시려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예배를 통하여 주시는 축복입니다.
신앙과 예배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신앙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예배를 빠진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을 무시하다가 버림받은 것입니다. 신앙과 예배는 동전의 앞뒤와 같습니다. 양면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②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길은 기도생활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만나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신령한 언어이며, 대화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는 사람이지만 안 하는 사람은 담을 쌓고 벙어리로 사는 사람입니다.
③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길은 순종생활입니다. 제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불순종하면 그는 먼데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말 잘 듣고 순종 잘하기 마련입니다.
④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길은 충성생활입니다. 흔히 측근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대통령의 측근이다. 누구의 측근이라고 말합니다. 측근소리를 들으려면 윗전이신 그 한 사람에게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측근소리를 듣습니다.
감옥에 갈 때는 감옥에도 가고 뒤집어 쓸 대는 아무소리 없이 그 모든 고난을 감수해야 올바른 측근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아멘!/

 

5. 성결된 삶이 은혜 받는 길입니다(8/하).

 

'손을 깨끗이 하라' 여기서 손은 행위를 말합니다. 행위가 깨끗해야 합니다. 그런데 행위가 깨끗하기 전에 필수는 '마음을 성결케' 해야 합니다.
▶어느 남편이 놀음에 빠졌습니다. 바람을 피우는 남편하고는 살아도 놀음하는 남편하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놀음 습관이 사라지도록 금식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남편도 놀음을 안 결심하여도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장한 결단을 하고 왼 손 가락 5개를 다 잘라 버렸습니다. 다시는 놀음을 하지 않겠다는 다부진 다짐이었습니다. 이제는 놀음과 완전히 이별한 줄로 알았습니다. 본인도 그렇게 알았고 아내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없어졌습니다. 아내는 밤이 늦어도 돌아오지 않자 여기 저기 찾아보았습니다. 혹시나 하여 놀음하던 자리로 가 보았습니다. 남편이 그 자리에 둘러앉아 놀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왼 손에 붕대를 감은 채 화투를 끼고 '장 땡 이야!'하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실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하나님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
누구에게나 죄의 소원은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소원을 다스릴 줄 알아야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결단이고 결심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전제되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성령의 놀라운 은혜로 죄를 이기게 해 주십니다. /믿/
그렇습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여기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한 말은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마음을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은 정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 마음은 요동하는 물결과 같습니다. 신앙생활은 양다리 작전이 아닙니다. 세상살이도 양다리작전은 피곤합니다.
성결된 삶의 원동력은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중요합니다. 큰 은혜를 받으려면 몸도, 행실도, 그 영혼도 깨끗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손을 깨끗이 하는 것은 예배자의 삶의 기본자세입니다(출30:19-21). 손을 씻는다는 것은 죄를 깨끗이 씻고 마음을 청결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할/

 

6. 회개하는 것이 은혜 받는 길입니다(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유대인들의 회개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땅 바닥에 꿇어앉아 티끌을 무릅쓰고 슬퍼하며 애통하는 것이 그들의 회개 방법입니다. 그렇다고 눈물만 흘리면 다 회개입니까? 서러워 흘리는 눈물입니다. 그런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 흘리는 눈물과 애통이 회개인 것입니다.
본문은 죄를 짓고도 아무 감각 없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슬퍼하면서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른 회개는 지은 죄를 자복하고, 울며, 애통해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쇼렌트로 돌아 오라'고 노래 부르고, 조용필은 '부산항으로 돌아 오라'고 열창을 합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돌아갈 곳은 하나님의 품뿐입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라는 말씀은 크리스천들이 기쁘게 살 것을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고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했던 모든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죄를 통회하며 하나님께로 나아가라는 명령입니다. /아멘!/

 

7. 자신이 낮아져야 은혜를 받습니다(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의 모든 신앙의 행위는 '주 앞'입니다. 이 말을 '신전의식'이라고 합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의식입니다. 지금 야고보님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겸손이 뭡니까? 세 가지가 겸손입니다
⑴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 겸손입니다. '나는 죄인이구나! 내가 주의 은혜로 구원받았구나' 이 사실 하나만 똑바로 알아도 교만해질 수 없습니다.
⑵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나를 높이는 것은 쉽지만 나를 낮추는 것은 어렵습니다. 남을 낮추는 것은 쉽지만 높여주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는 낮추고 남을 높여 주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윤리입니다.
여기 낮추는 것이란 내 생각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 내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가는 것이 낮추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잠29:23절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하나님께서 높여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우리의 삶이 형통합니다. 멘/
⑶겸손은 자기를 숨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만 나타내고 주님의 영광만 나타내는 게 겸손입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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