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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1-36)

by 【고동엽】 2022. 2. 5.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1-36)

 

오래 전에 '스티븐 킹' 원작소설인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인 '앤디'는 유능하고 젊은 은행간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쇼생크'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는 차디찬 감옥 안에서 억울하게 평생 동안 갇혀 지내야만 하는 죄수가 된 것입니다.
앤디는 감방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악당 패거리들을 특유의 강인함으로 굴복시키고, 자신의 특기를 살려 간수들의 신임까지 얻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여 자유로운 몸이 될 것을 바라보고 항상 희망이라는 단어를 품고 살았습니다.
앤디는 함께 수감되어 있던 죄수를 통해서 작은 망치 하나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경책 속에 은밀히 감추어 두고 매일 매일 쇼생크 감옥의 벽을 조금씩, 조금씩 쪼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그가 평생 동안 쪼아도 그 견고하고 튼튼한 감옥의 벽을 다 허물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앤디는 희망을 잃지 않고 매일 조금씩, 조금씩 감옥의 벽을 긁어냈습니다.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은행간부였던 앤디는 감옥 안에서 자신의 세무지식을 가지고 간수들의 세금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교도소 내에서 작은 특혜를 받아가며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감옥 안에서 자신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증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앤디의 도움을 받아 은밀히 검은 돈을 만지던 교도소 소장이, 앤디가 무 협의로 풀려난다면 자신의 부정이 탄로날것이 두려워 증인을 살해합니다. 그렇게 되자 앤디는 쇼생크 감옥을 혼자 힘으로 탈출하기로 결심하고, 천둥번개 치는 어느 날 탈출에 성공합니다. 자유를 찾은 것입니다. 19년 만에 천신만고 끝에 극적으로 감옥을 빠져 나온 다음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높이 들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치기를 "나는 자유다."고 외칩니다. 저는 그 감격적인 장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감옥에서 탈출한 앤디는 신문과 언론사에 쇼생크 감옥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실을 폭로하고, 자신의 무협의도 밝혀내어 누명을 벗고 자유인이 됩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 브룩스라는 죄수가 있었는데 그도 종신형을 받은 사람으로 이 감옥에 무려 50년을 있었는데 이제 백발노인이 됐습니다. 정부에서 그걸 불쌍히 여겨서 50년 만에 그를 가석방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가석방하게 된다는 걸 두려워합니다. 감옥밖에 생활을 두려워합니다. 그는 자유를 무서워합니다. 감옥에서 안 나가려고 살인극을 연출을 합니다마는 실패합니다. 결국은 감옥에서 석방됩니다. 그는 감옥생활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거기가 편했고, 밖에 나와서 스스로 산다는 것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결국 그는 '브룩스는 여기 있었다.' 라는 유서를 써 놓고 자살을 했습니다. 무얼 말하는 것입니까? 그는 감옥생활에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져 거기 길들여지고 나니까 오히려 자유가 부담이 되어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유의 귀중함을 아는 사람이 그 자유를 지킬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도, 18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였습니다. 이때 '페트릭 헨리'는 1775년 '리치먼드' 연설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 주는 말입니다. 자유가 아니면 차라리 죽겠다는 것입니다.
▶벌써 8월의 둘째 주일입니다. 15일 광복절입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창립18주년 기념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주제는 자유입니다. ◀제목소개!▶

 

인류 역사의 가장 큰 싸움은 자유를 얻기 위한 싸움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불행은 구속이요 속박이요 노예와 종이 되는 것입니다. 노예가 되는 것 보다 더 큰 불행은 없습니다. 자유보다 더 큰 기쁨과 선물은 없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독립되고 해방된 날을 최고의 국경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광복절을,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미국은 독립기념일을 가장 귀하게 여깁니다.
우리나라에는 4대 국경일이 있습니다. 1949년 10월 1일에 제정한 법률 제53호에 의하여 3·1절·제헌절(7/17)·광복절(8/15)·개천절(10/3)을 4대 국경일로 제정했습니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되찾은 날과, 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인류역사를 더듬어볼 때 강대국이 약소국을 점령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가 망하게 되는 원인을 살펴보면 대개 나라가 약해서 망하는 경우보다 내부 사정이 부패하고 내분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이 일본에게 망하게 되었던 원인 몇 가지를 생각해봅시다.
⑴당파싸움의 죗값 때문입니다. ⑵유아독존인 교만의 죗값입니다. 주로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자기들만 제일 잘랐다고 착각하는 교만과 아집이 쇄국정치를 했고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⑶양반 행세가 너무 심했던 죗값입니다. 양반, 상놈 하면서 사람을 차별한 사회 구조가 결국 나라를 망쳤던 것입니다. ⑷체면치레의 죗값입니다. 찬물 먹고도 이빨 쑤시는 체면 놀음 때문에 망했습니다.
⑸복음을 배척한 죗값입니다. 그 당시 세상은 문호를 개방하고 선진문명과 함께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을 때 유독 조선만 기독교를 탄압하고 선교사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그 죗값이 큽니다.
어쩠던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36년 동안 짓밟힘을 당하다가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을 계기로 36년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이제 이 민족은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애국운동은 무엇일까요?
⑴뭐니뭐니 해도 민족 복음화입니다. /믿/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구원하는 길은 이민족을 속히 복음화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세계를 한번 둘러보십시오. 복음화가 이루어진 나라는 문명한 나라, 살기 좋은 나라, 경제수준이 높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게 못사는 나라, 가난한 나라들을 보세요. 미신이나 우상종교를 섬기는 나라들입니다. 여러분! 나라를 사랑하십니까? 열심히 전도하십시오!
18주년을 맞이한 성림교회가 해야 힐 일이 바로 전도입니다. /할/
⑵진정한 애국 운동은 회개 운동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원수 때문이 아니라 죄 값 때문입니다. /믿/ 죄가 관영 하면 망하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당했습니다. 니느웨성은 죄로 멸망직전에 있을 때 요나 선지자의 복음을 듣고 온 백성이 회개할 때 구원을 받은 사실을 기록한 것이 요나서입니다. 의롭게 사는 사람이 많으면 그 나라는 튼튼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 부패해도 믿는 성도들은 부패하지 말아야 합니다.
⑶진정한 애국운동은 기도운동입니다.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18주년을 맞이한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 기도운동입니다. 광복절 61주년을 맞이한 이 민족이 해야 할 일은 기도운동입니다. /할/

▶오늘 주제가 자유입니다. 자유는 남에게 얽매이거나 강제로 속박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자유가 귀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얽매인 곳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유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의 질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행복의 영역은 그가 누리는 자유의 영역만큼 됩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부자이면 부자인 만큼 경제적인 자유를 많이 누리게 됩니다. 가난하면 실제 생활에서 자유하지 못합니다. 무엇인가 사고 싶어도 억제해야 되고 선한 일을 하려해도 돈이 없어 못합니다.
어쨌든 부자이면 그만큼 자유의 한계가 넓어집니다. 또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힘입니다. 모르면 답답하고 기가 죽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자유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자유의 질이 문제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되면 방종이 됩니다. 또는 육체적인 자유, 양심의 자유, 도덕의 자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경제적인 자유보다는 양심의 자유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끔 버스 안에서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일어서면 다리가 불편하고, 앉아 있으려니 마음이 불편하고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다리가 좀 불편하더라도 마음이 편안한 것을 택한 사람은 양심의 자유가 더 귀한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조금 가난하고 불편하게 살더라도 양심대로 사는 사람이 차원 높은 인간입니다. 결국 사람은 내가 가지는 자유의 질에 따라 사람의 값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믿/
높은 의미에서의 신령한 자유란 양심의 자유요 신앙의 자유입니다. 일본제국이 우리나라를 속량하고 있는 말기에 신사참배하면 자유로운 몸이 되고, 거부하면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의 정조를 굽히고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면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야 할 사람이 들어가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럴 때 그의 몸은 자유로울 것 같지만 그의 마음은 얼마나 불편한지 모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한국 교계의 큰 별이었던 한경직 목사님은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신사참배를 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당시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는 괴로움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자유, 차원 높은 자유는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입니다. /믿/

▶'나폴레옹 힐'은 현대인에게 7가지의 공포가 항상 존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⑴가난에 대한 공포 ⑵실패에 대한 공포 ⑶질병에 대한 공포 ⑷사랑의 상실에 대한 공포 ⑸늙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 ⑹자유 상실에 대한 공포 ⑺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는 이런 것이 잠재되어 있어 늘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자유는 어떤 정치적인 제도가 보장하지 못합니다. 참 자유는 개인이나 국가나 사회나 법률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가 우리의 정신적인 것까지 다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어디서 얻을 수 있고, 찾을 수 있습니까?
본문을 보자! 31절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6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할/
주님이 이 땅에 왜 오셨습니까?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믿/
눅4:18-19절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여 경제적 회복을 주시려고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어 정치적 해방을 주시고,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므로 신체적인 장애에서 해방을 주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함으로 사회적인 회복을 주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고 그리스도의 왕국이 실현되는 곳마다 이런 해방과 자유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믿/
기독교에서 자유는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 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참 자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자유, 모든 것을 풀어 주는 자유를 말합니다. 구속된 것을 다 내어쫓으면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참 자유가 무엇인가를 설명해주는 말씀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자 유대인들이 "우리는 일찍부터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남의 종 된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종이라 하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이 반문은 새빨간 거짓말로서 유대인들이 지금 예수님께 말장난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했고, 그 후 바벨론에 끌려가 무려 70년 동안 종살이를 했으며 그 뒤에도 앗수르, 페르시아, 헬라를 번갈아 가며 섬기는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만 해도 로마의 속국으로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종이 된다든지, 자유를 얻는 다든지'의 말씀의 뜻은 정치적 노예나 자유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자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34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죄를 지면 불안하고 걸리면 감옥에 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영적인 자유는 세상에서 쟁취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빼앗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이 성서의 비밀을 깨달은 '마틴 루터'는 '그리스찬의 자유'를 정의하기를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었다. 이 자유는 인간이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만이 주어지는 자유다'라고 외쳤습니다.
노예가 스스로 자유 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돈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서 풀어주어야만 자유 할 수 있습니다. 빚진 사람은 빚을 갚기 전에는 어떤 것으로도 자유 할 수 없습니다. 빚을 갚아야 자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죄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그 죄를 속량해 주어야 합니다. 죄 속에 있으면 죄의 종이 됩니다.
그런데 본문은 "예수께서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풀어 주어야만 자유 할 수 있는 것이 본문의 중심입니다. 성경에 보면 '자유'라는 말과 '해방'이라는 말이 같은 개념으로 쓰여졌습니다. '해방'이란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자유'란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이 누리는 해방감'을 의미합니다.

 

1. 진리가 무엇인가?

 

우리는 참된 것을 가리켜 '진리'라고 말합니다. 진리는 거짓이 없고, 단순하지만 진실합니다. 천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는 비바람이 불고 세찬 폭풍우와 같은 문제가 엄습해도 결코 요동하지 않습니다. 마치 반석처럼,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자리를 든든히 지키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진리에 속한 것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한번 돌아봅시다.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도 100년 200년이 되면 허물어집니다.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도 언젠가는 폐차가 되어 없어집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피아노 책상 의자 컴퓨터 이러한 모든 것들도 언젠가는 폐품이 됩니다.
들에 핀 아름다운 꽃잎들도 언젠가는 떨어지고, 파릇파릇했던 나무 가지들도 언젠가는 썩어집니다. 우리 인생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가지만,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입니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천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24:35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막13:31절과 눅21:33절에서도 똑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진리이기에, 천지가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요1: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할/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믿/
그러기에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14: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를 따르라!" 이렇게 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에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의 길은 예수님이 유일한 길입니다. 진리를 따라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길은 진리의 길이며 이 길만이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만 따라가면 진리를 만납니다. /믿/
▶요18:37절에서 예수님이 "내가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왔노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고 하자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빌라도가 진리를 모르는 것은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진리도 알고, 예수님을 모르면 진리도 모르게 됩니다. 인도의 '간디'는 "진리가 신이고 신이 진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참 지혜는 진리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돈은 강하다. 왕은 더 강하다. 여자는 좀 더 강하다. 그러나 진리는 가장 강하다'고 했습니다. 가장 강한 것은 진리입니다.
▶ 그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그 자체이기에 생명을 치료하시고 연장하시고 죽은 자도 살리고 생명을 친히 부여하십니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귀한 것입니다. 희대의 살인마인 유영철은 10개월 동안 21명이나 살해하고도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잡히지 않았으면 100명은 죽이려고 했다고 진술했답니다. 그는 네 사람의 인육도 먹었다고 했답니다. 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나쁜 놈입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무너뜨리고 파리 목숨같이 여겼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16:26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하십니다. 가장 귀한 것이 생명입니다.

▶자유자가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진리를 알지니" 그렇습니다. 예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알기 위해서 배워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안다는 것은 '마음을 기울여 인식하는 것', '체험적이나 경험적으로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며 예수님과 인격으로 깊이 접촉되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사람들에게 '내가 당신의 부인을 안다'고 하면 큰 일 난다고 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접촉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그 진리를 체험했다'는 의미입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이런 체험이 있는 사람은 전적으로 맡기고 의지하게 됩니다. /할/

 

2. 성경에서 말하는 자유는 어떤 자유를 말하는가?

 

자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지로부터의 자유도 있고, 공포로부터의 자유, 정치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또 정신적으로 그 무엇인가에 속박되었던 사람이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얻어지는 자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영적인 자유, 영원한 자유라고 말합니다. 이 자유야말로 근본적인 자유이며, 절대적인 자유입니다. 그 이외의 다른 자유란 모두가 다 상대적인 자유이며 일시적인 자유입니다.
정치적 자유는 전쟁이나 투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가난으로부터의 자유는 경제성장과 개인 소득의 성장으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영적인 자유, 죄로부터의 자유는 진리를 아는 것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하기에 반복하고 반복해도 들어야 합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속박하시려고 십자가를 진 사건을 아는 것, 그런데 기독교를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
이 땅에 자칭 메시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닙니다. 석가도 공자도 마호멧도 문선명도 진리에 관하여 말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자신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우리는 그 위대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이며 영접한 사람들이며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곧 자유 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할/

 

3. 성경의 역사는 온통 자유와 해방의 역사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의 역사는 자유를 추구하는 이스라엘의 해방의 역사요, 430년의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모세를 통하여 해방시킨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자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출21장을 보면 종으로 팔려온 사람이 6년 동안 주인을 위해 종살이를 했을 경우 7년째 되는 해에는 무조건 자유를 주어 나가게 합니다. 7년 되는 그 해를 안식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7년 만에 한 번씩 지키는 안식년을 7번을 되풀이한 그 다음해 그러니까 50년이 되는 해를 '희년'이라고 합니다. 그 해는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종 되었던 자들도 고향으로 가족에게 돌아가게 했고, 희년이 되는 1년 동안은 땅도 쉬도록 해서 파종을 하지 않았고 그해 스스로 열매를 맺은 것들도 거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안식년과 희년 제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인간은 자유로워야 사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은 방법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속죄의 제사'라고 합니다. 백성의 죄를 해결하려면 제사장이 짐승을 잡아 그 피를 드려야 합니다.
'피가 죄를 사한다'는 개념은 창세기부터 시작됩니다. 창3:21절의 가죽옷의 사건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수치 때문에 짐승이 죽어야 했고, 또 피를 흘려야 했다는 것입니다. 창8:20절에 보면,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정결한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번제 역시 피의 제사입니다.
창15:9절에서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살찐 암소와 염소와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를 잡아 드렸습니다. 이것도 피의 제사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는 죄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를 얻으려면 짐승을 대신 잡아 피를 흘려야 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을 예표한 사건입니다.
히9: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속죄의 제사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피의 제사 없이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로 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만이 인간을 모든 죄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자이십니다. /믿/할/ 예수님의 3대 사역이 우리교회 표어입니다. '가르치고, 전파하며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 모든 사역이 해방과 자유에 관한 것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하리라."
내가 자유인이 되는 것은 나 자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어질 때 자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다운 승리와 평화를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으십시오.
▶가까운 사람과 동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속고 사기 당한 한 중년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배신감, 증오심, 그리고 복수의 칼을 갈고 있을 때, 친구의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기도하기를 시작하면서 자신도 놀라울 만큼 지금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자신을 속이고 사업을 망쳐 놓았던 그 사람을 용서할 수가 있고, 그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얻은 것은 주님이 주시는 자유와 평안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로부터 자유 함을 얻습니다. 죄란 우리에게 고민과 갈등, 불안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죄로부터 해방되면 내 영혼이 자유 함을 받습니다. 죄로부터 자유는 우리에게 새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 죄의 사함을 받아 의인된 사람입니다. 이제 불안과 공포와 고민에 매달려 사는 자가 아니라 떳떳하고 당당한 승리자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승리자가 됩니까? 주님께 우리의 모든 짐을 맡기시면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주님의 이 초청에 응하는 자마다 쉼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왜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까?
갈5: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고전6:20절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갈5:13절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4.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자유 해야 하는가?

 

⑴자기로부터 자유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놀랍게도 자기에게 너무 매여 지냅니다. 자기라는 자의식이 너무 강해서 교만 심에 가득 차 있습니다. 자기 가문, 자기 학벌, 자기 부함, 자기 지위에 너무 깊이 매여 있어서 누가 조금만 그것을 무시하면 대단히 화를 냅니다. 반대로 어느 분은 자기가 너무 강하다 보니 열등의식이 매입니다.
자기는 이 정도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그런 대우를 해주지 못한다고 심한 고통을 받습니다. 또한 과거에 받은 상처를 늘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평안이 없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에 너무 민감해합니다. 성공만 하면 남들이 대단히 여길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한 만큼 높여주지 않으니까, 다시 불만에 매입니다. 실패를 하면 '모든 사람들을 자기를 얼마나 비웃을까?'하는 것에 매여서 신경과민이 됩니다.
아닙니다. 주님 앞에서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철저히 주님만 의지할 때에 비로소 자기라는 큰 올무에서 벗어나 자유의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고 나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해집니다. 누가 잘난 체 하든지, 누가 욕하든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습니다.

⑵죄로부터 자유 해야 합니다. 이 자유가 영원한 자유입니다. /믿/
▶요8장은 죄의 종으로서의 인간실존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전에는 다 죄의 종입니다. 요8:1-11절에는 간음의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기관들가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시험하고자 여인을 끌고 와서 묻습니다. "예수여 보십시오. 이 여인은 간음의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이런 여인은 돌로 치라고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예수를 시험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돌로 치지 말라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어긴 자로 고소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치라고 하면 예수님의 사죄의 능력에 흠이 생깁니다. 아주 곤란한 질문이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대답을 독촉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을 쓰십니다. 학자들은 '십계명을 썼을 것이다'고 합니다. 쓰시기를 마치신 예수님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의 양심에 비수처럼 파고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어른으로부터 젊은이까지 다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여인만이 남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이렇게 "나도 너를 정죄 하지 아니하느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죄의 종이라는 사실을 소개합니다. 간음의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이나 그 여인을 돌로 치려도 달려들던 사람들이나 모두 죄인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다 스스로 인정하고 도망하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며 죄의 종입니다.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이 죄의 문제를 벗어버려야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믿어야 됩니다. 31-32절을 보십시다.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무시하고 자유 함이나 얻으려는 것은 거짓 술수에 불과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거함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가 되시는 예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세상의 지식이 우리를 자유케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훈련이 우리를 자유케 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죄의 종 됨으로부터 자유 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분들은 죄에 매여 삽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죄를 또 짓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죄의 습성, 방종, 연약함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끊고 자를 때 성령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믿/
⑶악한 영으로부터 자유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묶고 물리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5. 그러면 이런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①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31절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성경에 제자란 말이 259회나 나옵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란 무엇인가? 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자. 따르는 자란 뜻입니다. 제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훈련받은 사람입니다. 훈련받지 않고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를 배우고 누구를 따르는 가에 따라 그 사람의 제자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를 배우고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②믿음 안에 거해야 합니다. 이 말은 생각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믿는 것을 말하며 마음으로만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걸고 그 안에 산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즉 스승의 말씀을 믿고 그리고 받아들이며 그 안에 거할 때 자유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한다는 말'은 '말씀 안에서 살라는 뜻이며 또한 계속적으로 말씀을 듣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눅9장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6.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을 따를 때 얻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참된 평안을 주십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②짐을 벗게 됩니다. 마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③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니다. 차원 높은 축복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했습니다. 전도해서 영혼을 구원하라는 의미로 '사람을 사로 잡으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습니까? 사랑으로 능력으로 복음으로 사로잡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제자 삼으신 가장 큰 목적은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입니다. /믿/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구소련 모스크바에 살고 있던 개 한 마리가 불란서 파리에 와서 불란서 개를 한 마리 만났습니다. 그래서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한 후에, 불란서 개가 소련에서 온 개한테 소련 실정이 어떠냐? 생활이 어떠냐? 이렇게 물었더니 소련 개가 아주 침을 흘리면서 고향 자랑 소련 자랑을 시작합니다. 소련은 사람뿐만 아니라 개에게도 완벽한 생활이 보장되어 있다 살 곳, 입을 것, 먹을 것, 걱정 없이 이렇게 살아간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불란서 개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런데 너는 무엇 때문에 이 불란서 파리까지 왔느냐? 그러니까 그건 꼭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왔는데 좀 실컷 짖고 싶어서 왔다는 것입니다. 자유가 그립다는 고백입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를 바로 믿으면 모든 것에서 자유 함을 얻게 됩니다. 죄에서, 사망에서, 실패에서, 모든 것에서 자유 함을 얻게 됩니다. /아멘!/
고후3:17절 "주의 영이 계시는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 롬8:2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느니라."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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