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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다니 마을의 기적! (요 11:17-44)

by 【고동엽】 2022. 2. 3.

베다니 마을의 기적! (요 11:17-44)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 중의 기적을 일으킨 사건을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죽어서 사흘이 지난 나사로를 예수께서 살리신 사건입니다. 기적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기적이 기적이다' 그럽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보면 기적은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여 사람의 생각이나 힘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불가사이한 현상' 그러니까 한마디로 기적이란 '불가사이한 놀라운 사건'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기적을 믿습니까? 저는 기적을 분명히 믿습니다. 지금도 주안에서 기적은 일어납니다. 가나안땅을 향하여, 천국을 향하여 달려가는 그 길을 가로막는 홍해는 지금도 갈라지고, 여리고는 지금도 무너집니다. /믿/

 

1.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7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2:1-11)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이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기쁨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을 계시한 기적입니다.
②(4:46-54) 관원의 아들을 고치신 기적입니다.
왕의 신하가 아들이 병들었으니 가버나움으로 가셔서 병을 고쳐 달라고 하자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선언하시니 그 신하가 주님의 말씀을 믿고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가나에서 가버나움에 있는 관원의 아들을 말씀으로 치유하셨습니다.
이 기적은 생명의 근원이 되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과 육신의 질병과 모든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을 계시하고 계십니다.
③(5:2-18) 38년된 병자를 고치시는 기적입니다.
베데스다 못가에 38년된 병자에게 "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 한마디로 병자는 소망이 없던 자리에서 힘을 얻게 되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좌절과 절망에 싸여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인생도 주님 앞에 나가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④(6:1-13)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육신이 떡을 먹지 않고서는 살수 없는 것처럼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우리가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계시합니다.
⑤(6:16-21)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가시는 기적입니다.
자연을 다스리시는 권세가 이 기적을 통하여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⑥(9:1-12)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치유하신 기적입니다.
우리는 영적 소경이며 어두움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기적은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⑦(11장)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입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죽은지 사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는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한 것이 바로 이 나사로를 살리고난 직후입니다.
53절 "이 날부터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나사로를 살린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사건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며칠 후에 스스로 죽는 것입니다. 나사로를 부활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지만 아무 말 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미리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아무리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한다고 해도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죽어 사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린 이 사건을 통해서 어떻게 예수가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날 수 있는가 하는 부활신앙에 대하여 잘 계시해 주는 실물 교육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를 살린 사건이 본문까지 세 번 나오는데 모두 부활을 계시한 사건입니다. 막5장에 회당장 야이로의 열두 살 된 딸을 살리신 사건과, 눅7장에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사건입니다.
●기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가능해진 사건입니다.
막5;35절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죽은 아이가 다시 살아날 것을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한 말입니다. 그런데 다시 살아났습니다. 정말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가능해 진 사건 그것이 기적입니다.
●지적은 경험할 수 없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사건입니다.
막5:42절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당시 야이로의 집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놀라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전에 이런 것을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아니 그 누구도 이런 것을 본 일이 있다는 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놀란 것입니다.

 

2. 베다니는 어떤 마을인가?

 

예루살렘에 가면 감람산이 있고 그 감람산 뒤편에 베다니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5리쯤 되는 곳인데, 예루살렘에서 낙향한 사람들, 실패와 낭패를 당한 사람들, 그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이 사는 빈민촌입니다. 돈 많고 벼슬한 부유한 자들은 다 예루살렘 성안에 살고 있습니다. 베다니는 지금 관광코스가 되어 나사로가 살았다는 동굴 집에 많은 여행객들이 들러 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베다니라는 동네 이름의 뜻은 '괴로움의 집, 슬픔의 집'이란 뜻입니다. 1절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나사로의 가정은 3가지의 특징이 있는데, ▶1절에 '병든 가정'입니다. ▶14절에 '죽음의 가정'입니다. ▶33절에 '슬픔의 가정'입니다.
베다니에 양부모를 다 잃고 두 누이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는 청년 나사로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나사로의 친구가 되어 유대를 방문할 때는 꼭 나사로 집에 들려서 묵어 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사로가 알 수 없는 무서운 질병에 걸렸습니다. 주님을 청하여 치료받기를 원했으나 기다리던 주님은 오지를 않았고, 나사로는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베다니는 가난과 질병과 고통을 안고 신음하는 슬픔의 도성입니다.
나사로는 마르다와 마리아 가정의 삶의 기둥입니다. 부모를 잃은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는 생계를 책임질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병들어 죽게 된 것입니다. 그는 마르다와 마리아뿐만 아니라 빈민촌 베다니 촌을 이끌어갈 차세대 일군이었습니다.
나아가서 유대민족의 통일을 꿈꾸는 선민의 작은 꿈나무였습니다. 이러한 청년이 병이 들어 죽었으니 이것은 마르다와 마리아 가정뿐만 아니라 베다니 동네와 온 유대의 불행이요 비극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고 잇는 이 땅이 베다니입니다. 슬픔이 있고 고통이 있고, 괴로움과 실패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절망의 현장에 예수가 계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

 

3. 인생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죽음의 문제입니다.

 

세상에는 한가지 확실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죽음입니다. 히9:27절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이 세상에 죽음만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인류는 다 죽었습니다. 제왕도 죽었고 영웅 호걸도 죽었으며 절세 미인들도 다 죽었습니다. 철학자 '헤겔'의 말대로 어쩌면 인간은 죽기 위해 태어났고 죽기 위해 살고 있으며 죽음의 종착역으로 달려가고 있는 존재처럼만 보여집니다.
이 세상에 죽음같이 평등한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법이 인간의 평등을 위해 존재한다 할지라도 사실상 이 세상에 진짜 평등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죽음만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합니다. 그래서 죽음은 왕이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5대 독자, 7대 독자라고 봐주는 법이 없습니다. 새색시라고 봐주지 않고 새신랑이라도 봐주는 일이 없으며 어린아이라고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죽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관계를 끊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이웃으로부터 영원히 나를 단절시켜 버리고 이 세상에 더 이상 생존자가 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죽음의 문제입니다. 죽음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죽음 뒤에 심판의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다스렸던 알렉산더 대제도 자기의 죽음을 생각하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하루는 원정 중에 있던 알렉산더 대제는 병사들을 모아놓고 씨름판을 벌렸습니다. 한 병사가 씨름판의 장수들을 하나둘씩 다 넘어 뜨렸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그와 맞수가 되어 싸우려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알렉산더 대제가 그 병사와 맞수가 되어 씨름을 하였습니다. 모든 시선이 대왕의 거동으로 집중되었습니다. 모든 병사들은 숨을 죽이고 씨름을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이번마저도 대왕이 벌떡 모래판에 나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라 대왕을 지켜보았습니다. 대왕은 모래밭에 누운 채로 눈을 감고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왕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대왕을 넘어뜨린 병사는 초죽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곳이든지 정복하러 가는 곳마다 패전을 알지 못했던 대왕, 전 세계를 다 제패하고 정복했던 대 제국의 알렉산더 대제가 씨름에 졌다고 울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대왕은 한참만에 일어나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씨름에 져서 운 것이 아니라 나의 죽음을 생각하며 슬피 울었노라."
대왕은 모래판에 넘어지는 순간 자기의 죽음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는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자기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의 절대권력만큼이나 비례해서 그에게 죽음은 서글픈 사건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그는 마침내 죽음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이 죽음을 피해 보려고 안간힘을 써보고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그도 별수 없이 죽음의 모래판에 인정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지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죽음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예수 믿으면 됩니다. (요3:16/행16:31/행4:12)
25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는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는 지금 예수님을 알고 있고 믿고 있으나 지금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날 부활 때는 죽은 자와 산 자가 다 부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부활의 본체가 바로 나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는 부활이 일어난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는 죽은 자가 살아난다. 그것을 네가 믿느냐'는 것입니다.
'마르다야 네 오라비가 죽었느냐? 죽어도 내가 생명이기 때문에 산다'는 뜻입니다.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이것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43절에 우리 주님이 죽은 나사로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도움, 하나님께 도움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친구 나사로의 잠든 현장에 오셨습니다. 나사로는 이미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망의 문 앞에 부활이요 생명의 주가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신 예수님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나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셨습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나사로야, 이리로, 밖으로"라는 말입니다. 이 큰 소리는 사망을 호령하는 음성이요, 생명을 호령하는 음성입니다. 이 호출은 절대적 권위의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에게 생명 자체이신 주님의 명령 앞에 나사로는 무덤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활의 생명을 입은 나사로는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의 명령에 나사로는 그냥 무덤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수 윤복희가 '뮤지컬 캣츠' 연극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힘이 쭉 빠지더니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고 오른쪽 귀도 들리지 않고 허리도 완전히 마비되고 두 다리는 마치 의족을 단것처럼 감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연극의 막이 올라가기 때문에 아프다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86년도에 '피터팬'을 공연하다가 무대 위에 삼층높이로 나무판을 쌓아 만든 배 갑판이 무너지면서 무대와 함께 쓰러져서 목을 다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심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목뼈와 척추가 상해서 신경을 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복희씨, 만약 내일 공연을 한다면 당신은 죽을 겁니다" "그래도 공연 첫 시간인데요" 걷는 것은 고사하고 앉거나 눕기도 힘들었지만 그는 의사의 말을 무시한 체 공연을 했습니다.
다행히 늙고 추한 병신 고양이 역할이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내 의지대로 살았다면 지금 나를 데려가십시오. 당신은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분 아닙니까? 제발 지금 나를 데리고 가십시오. 거두어 주십시오. 기꺼이 당신 곁으로 가겠습니다'
그의 기도는 절규요 통곡이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눈이 딱 떠지고 앞에 환해졌습니다. 기도를 하다가 너무 아파서 기절을 한 채 까무라 쳐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캄캄한 새벽이었는데 대낮보다 더 밝은 빛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그는 목이 탔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식탁 위에 있는 주전자를 들어 컵에다 물을 따랐습니다. 갑자기 온 몸에 찌릿찌릿 강한 전기가 일어났습니다. 몸이 견딜 수 없이 뜨거웠습니다.
'아! 아니! 내가!' 오른쪽이 간지러워지고 온몸이 가렵고 얼음장같이 차던 몸이 따뜻한 열을 받아서 신경이 막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수년동안 그렇게 고통 속에 괴로워하던 그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다 사라져 버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식탁으로 걸어간 것입니다. 그는 너무나 신이 나서 베란다로 나가서 막 뛰어 보았습니다. 미문 앞의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것과 같이 그의 온 몸이 깨끗하게 나은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듯이 마비되고 죽어버렸던 그의 몸이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해야 하는 주님의 부활인 것입니다. /할/

 

4. 예수님의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가?

 

33절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주님이 일생동안 세 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통곡하여 우셨고(히5:7), 예루살렘 성의 멸망할 것을 보고 우셨고(눅19:41),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사로가 죽은 무덤 앞에서 우셨습니다.
●주님의 눈물을 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크리소스톰'은 연민의 정 때문에 우셨다고 했습니다. ▶'마이어'는 예수님을 비꼬는 유대인들의 가식적인 울음에 대한 분노였다고 했습니다. ▶'스트라우스'는 유대인과 마르다와 마리아의 불 신앙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죄와 사망 권세 아래 있는 인간의 비참함을 보고 우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칼빈이 지적한 것처럼 죄 아래 사망의 종노릇하는 인간의 비참함을 보고 통분했음이 분명합니다(40).

 

5. 베다니의 기적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주님이 베다니 마을에 찾아가심으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께서 마리아의 집에 심방을 가신 것입니다.
▶어느 임금님이 깊은 산 속으로 사냥을 갔다가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날은 어두워 오고 오도 가도 못 하는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 때 산 속에서 농사짓는 농사꾼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이 모습을 보고, 임금인 줄도 모르고, 길을 잘 안내하여 주었습니다.
얼마 후 임금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얼마 전 산 속에서 자기를 구하여 준 은인이니 무엇이든 소원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 농부는 말했습니다.
"나는 임금님을 구하여 준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임금님이 그런 뜻이라면 아무 때나 임금님이 원하시는 때 저희 집에 하룻밤만 오셔서 주무시고 가시면 대접을 잘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은 날짜를 정하고 그 집에 가서 하루 자기로 하였습니다. 임금님이 그 집에 가서 잘 날이 정해지자 난리가 났습니다. 산 속으로 도로가 나기 시작하고, 임금님이 주무실 방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침실이 완성되자 침대가 들어 왔습니다. 이부자리, 커텐 등 모든 것이 완비되었습니다. 주방이 만들어지고, 정원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졌습니다. 일류 집이 되었습니다.
임금님의 한번 심방으로 그 농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어느 가정에 특별히 심방가신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삭개오 집에 하룻밤 머무르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장모 집에 심방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백부장 하인이 아파서 그 집에 심방 가시려는 데 백부장이 감히 모시지 못 하겠다고 하여 가시다가 중간에서 돌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베다니에 마리아의 집에 자주 가신 기록이 나타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가장 심방을 많이 하신 가정이 바로 나사로 가정입니다.
주님이 가시면 '죽은 자도 살아나는 기적'이 옵니다. 죽은 나사로가 그것도 무덤에 장사된 나사로가 주님이 '무덤에서 나오라' 명하시니 벌떡 일어났습니다.

 

●베다니에 나사로의 집에 주님이 왜 그리 자주 가셨습니까? 왜 주님이 그 가정을 기뻐하셨습니까?
①옥합을 드린 마리아의 귀한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2절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마리아는 전에 예수님께서 심방 오셨을 때 300 데나리온이나 되는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일군들을 하루 일하게 하고 저녁에 한 데나리온씩 임금으로 주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300 데나리온은 300일 임금입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하루 임금이 5만원이라고 하면 1,500만원 정도되는 향유입니다. 그 때 가룟 유다가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지 왜 낭비하느냐?"고 큰 소리쳤던 사건입니다.
이같이 예수님을 최고로 모시는 사람이 한 명 그 가정에 살고 있으니 예수님이 그 가정을 자주 심방하셨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반대도 됩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물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 가정에 한 명만 있어도 그 한 사람을 보시고 그 가정을 축복하십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하나 보시고 그 가문 전체를 축복하셨습니다. 보디발은 요셉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아 하나를 보시고 노아의 가정 전체 식구를 축복하셨습니다.
라합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라합 한사람 때문에 다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족 중에 한 명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그 한 사람 때문에 그 가족을 축복하여 주십니다.
마리아 하나가 예수님을 최고로 여기는 믿음을 가지니까 나중에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살려 주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②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마르다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많았습니다. 마리아의 집 베다니는 예루살렘과 붙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멀리 갈릴리 지경에서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이 때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올라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8절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그러나 예수님은 가셨습니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얼마나 예수님이 나사로 가정을 사랑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 가정에 도착하고 보니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이 되었습니다. 열대지방에서 죽은 지 나흘이면 이미 시체가 거의 다 썩었을 때입니다.
이 때 마르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말했습니다.
21-22절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마르다는 죽은 지 나흘된 오빠가 '이제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우시며 나사로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이 때 마르다가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 말을 듣고 마르다는 오빠 나사로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서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도록 돌을 치워 드리는 믿음이 마르다의 믿음이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이제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이제라도'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괜찮습니다. 이제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정말 마르다가 기적을 기대하였던 대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은 기적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기적은 기적을 믿는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할/
저는 우리 교회를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축복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가정과 사업장과 직장과 자녀들을 크게 복을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할/
▶교회는 마리아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또 마르다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사로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12;2절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예수님을 위한 잔치 자리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사로는 죽었던 사람이 다시 예수님을 만나서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부활의 산 신앙의 체험을 가진 간증자입니다.

 

6. 기적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①포기하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막5:3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와 함께 말씀을 나누고 계실 때 사람들이 딸아 죽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이제 딸이 죽었으니 그만 하라는 것입니다. 더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38절을 보면 회당장이 그래도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 집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와 함께 하면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끝까지 찾고 찾게 됩니다. 거기에 또 기적은 일어납니다.
②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막5:36절에 주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에게 딸이 죽었다고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워 떠는 사람에게 기적은 없습니다. 담대한 사람에게 기적은 일어납니다.
③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또 야이로에게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4복음서에 '믿으라'는 말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믿으라는 말씀을 강조할 때 두 가지 믿음의 장애물을 극복하라고 하십니다. 첫째는 '두려워 말고' 믿으라고 했고, 두 번째는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했습니다.
두려움과 의심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두려워하면 의심에 이릅니다. 의심에 이르면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장애물은 두려움과 의심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두려워하느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아라" 풍랑이는 바다에서 제자들이 두려워하면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칠 때 주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느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지 않느냐? 왜 의심하느냐?"
④믿기 어려울 때 더욱 믿으라!
여러분, 믿음은 견디기 어려운 그 순간에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은 위기가 없을 때 믿음이 아니라 위기가 있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⑤결정적으로 믿으라!
우리말 중에 제일 불행하게 쓰이는 말이 '정말'과 '진짜'라는 말입니다. '진짜인가, 정말 그런가' 의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진짜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정적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등산을 갔는데 바위에서 미끄러졌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떨어지다 나뭇가지를 붙잡았습니다. 이제 살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홀로는 도저히 벼랑위로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고함을 질렀습니다. "누구 없소? 살려 주세요" 그 때 놀라운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당신 누구요?" "네가 믿는 하나님이다" "아이고, 하나님 여기 계셨습니까? 날 좀 살려주세요" "내가 하나 확인 할 것이 있다. 너 정말 나 믿냐?" "믿고 말고요" "증거가 무엇이냐?" "저는 교회 다닙니다. 교회에서 봉사도 합니다" "그런 것 말고 너 정말 내 말대로 다 믿겠어?" "믿습니다" "그럼 나뭇가지 잡고 있는 손을 놔 봐라" "손을 놓으라고요?" 이 사람은 잠시 생각하다가 갑자기 고함을 질렀습니다. "위에 다른 사람 없소!"
하나님이 손을 띠라면 띠십시오! 기적은 결정적으로 믿을 때 일어납니다.

 

7. 이적의 목적이 무엇인가?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는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가족들과 제자들과 모든 사람들이 '내가 하늘로부터 온 메시야'임을 믿도록 하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42절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주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45절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또 21:11절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그러나 오히려 실족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46절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53절 "이날부터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통해서 예수를 믿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심령이 더 강팍해져서 주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않고 마음 문을 굳게 닫고 주님을 대적하는 무리들도 생겼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베다니는 절망의 동네입니다. 이 동네는 우리 동네요 우리 집입니다. 그런데 베다니의 좌절과 갈등과 절망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찾아오시면 됩니다. 주님이 심방해 주시면 됩니다. ▶내 가정의 고통에 대하여 주님이 외면하지 않고 주님이 찾아오시도록 평소에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찾아 오셨을 때 믿음의 말이 우리 입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 분이 하시는 일 앞에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고통이 있습니까? 그 고통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내 믿음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2004년 6월 13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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