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사 43:14-21)
재야의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으레 잘 쓰는 말이 있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입니다. 일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올해도 글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해였습니다.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실감이 납니다. 모세는 시90:10절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날아가는 인생임을 고백했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신년 새 해를 맞는 새해 첫 시간! 우리가 하나님 전에 나와 예배드리고 찬송하며 기도로 출발하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는 새 해 인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은 ◀소개▶
오래 전에 대영제국을 통치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칠순을 넘긴 다음, 하루는 켄터베리 대주교와 환담을 나누든 중, 질문하기를 "내가 40년 동안 왕위에 제직해 왔는데 그 동안 영국도 대영제국으로 발전했고, 교회의 개혁과 교리도 확립했는데 지금 하나님의 나라에 간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몇 점이나 주실까요?"
켄터베리 대주교는 한참 생각하더니 "아마 은 27전어치는 되실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여왕은 벌컥 화를 내면서 "내가 한 업적이 얼마나 큰데 기껏 은 27전 어치 밖에 안 된단 말인가?" 하고 소리를 질렸습니다.
주교는 대답하기를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은 20전에 팔려 갔었고, 만 왕의 왕 되시는 예수님은 은 30전에 팔려 갔으니 은 27전은 잘 매긴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여왕이 조용히 웃더라는 일화가 있었답니다.
여러분! 우리의 값은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은 지난 한 해 동안의 우리의 충성심과 헌신을 다 저울에 달아보시는 줄 믿습니다.
삼상2:3절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그러나 여러분! 낙심할 것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오늘도 새 일을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일에 우리가 동참하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엄청난 상급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새해를 맞아 새롭게 삶을 계획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분열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히 멸망한 것은 주전 586년의 일이었습니다.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 나라는 망하고 성은 불탔습니다. 비운의 왕 시드기야는 자기 눈으로 왕자들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고, 자신도 두 눈을 뽑히운 채 포로로 잡혀가야 했습니다. 유다의 귀족들과 지도자급 인물들은 모조리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고, 나라는 철저히 망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나라가 멸망한 시점부터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꿈을 가졌지만 그 날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부르짖어 보았지만 하나님은 이루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연되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낙심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이 그렇지 70년의 세월이 얼마나 깁니까?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며, 왜 그러한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 말씀 속에서 영적인 원리를 잘 배워 축복 받는 한해로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고,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하여 지었다"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으시고,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터놓고 얘기하면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나의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의 모든 행위입니다.
고전6:19-20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10: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노래한 가수가 있습니다만 그건 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고, 내 찬송을 부르게 하려고 지었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경배 드리고, 찬송하는 삶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2. 왜 이스라엘이 실패하고 망했는가? 그 이유는? (22-24).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고 하나님을 괴롭고 귀찮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소홀히 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 했습니다. 다른 데 돈 쓸 때는 물 쓰듯이 하면서도 하나님을 위하여 향품을 사거나 제물을 드리거나 희생의 기름을 드리는 일에는 손을 벌벌 떨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범죄 함으로 날마다 하나님을 괴롭혔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과는 정 반대되는 삶을 살았다고 책망합니다.
그러한 잘못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고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어떤 예배입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은 소홀히 한 채 다른 일에 몰두하고 살아갑니다. TV의 드라마를 보는 데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데 예배하고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아깝게 느껴집니다.
자신의 건강과 취미생활을 위해 투자하는 것은 아낌이 없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인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시간과 물질,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마음과 정성을 다른 데로 돌리고는 떳떳하고 당연한 듯이 살아갑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 하나님을 괴롭히는 삶을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고도 하나님께 나와 복을 구한다면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한 모습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고는 때가 되어 열매를 따려고 했지만 열매가 없었다. 그래서 주인은 과원지기에게 말하기를 '내가 3년 동안을 와서 열매를 구하였지만 열매를 얻지 못했다. 그러니 이 나무를 찍어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겠느냐?' 라고 하였다."(눅13:6-9). 또 예수님께서는 마5장에서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야기의 요점은 분명합니다. 나무는 나무를 심은 주인의 목적에 부합될 때 존재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소금은 짠맛을 잃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전제품을 샀는데 쓰다가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하십니까? 물론 처음에는 고쳐서 써보려고 하겠지만 하다가 안되면 버릴 것입니다. 아마 쓸 수 없는 TV를 집에 모셔둘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처음 살 때 비싼 값을 주었다 해도 고장나면 한낱 고물에 지나지 않고, 결국 버림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먼 삶을 산다면 존재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이런 말씀을 주십니까? '너희들은 그렇게 살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3.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패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가지 위로의 말씀을 들려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을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14절).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라는 망해 버렸고, 나라를 위해 힘을 좀 쓸만한 사람은 다 잡혀가 버렸습니다.
그들을 점령하고 포로로 잡아간 바벨론이라는 너무 강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대적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나라를 다시 찾고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구원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들을 점령한 바벨론 사람들, 즉 갈대아 민족을 다 도망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그 군대를 몰아내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길래 절망적인 상황 속에 있는 그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까?
①본문은 하나님은 그만한 힘과 능력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15절).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거듭 거듭 강조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14절에서 자신을 가리켜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15절에서는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걱정과 근심으로 날을 지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너희의 창조주이며, 구속자이며, 왕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건져주겠다" 라는 그 말씀 속에서 문제는 벌써 다 해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해결되지 못할 문제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왕이십니다. 왕이란 하나님의 전능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불가능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보기에는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자신의 목자로 믿지 못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망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요, 믿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환경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원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창조주시며, 나의 구속자시며, 나의 왕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께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를 건져내겠다"는 것입니다.
②과거에도 그들을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분이십니다(16-17절).
본문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과거에 너희를 홍해 바다에서 구원해낸 하나님이 아니냐? 너희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아우성이었지만 내가 물 가운데로 길을 내고 너희를 건너게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애굽의 군대를 바닷속으로 이끌어들여서 그들을 수장시키지 않았느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굳이 그때 그 일을 끄집어내신 이유는 "그러한 기적으로 애굽에서 너희를 구원한 나 여호와가 이제는 바벨론으로부터 너희를 구원해 내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없이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역사 자체가 하나님의 기적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출애굽의 역사가 그랬고, 가나안 정복의 역사가 그랬습니다. 사사 시대의 역사가 그랬고, 왕국시대의 역사가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늘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며 살았습니다. 막상 어려움과 고난의 때를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같은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수없이 체험했습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문제만 생기면 '의심병'이 도집니다. 해 보기도 전에 낙심하고 주저앉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어려우십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을 인도하신 하나님, "나는 바다 가운데 길을 내 고 너희를 구원하고 애굽 사람을 멸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③크고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19-20절).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여기에 보면,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어 택한 자로 마시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약속은 해방된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세계 즉, 완전한 평화가 보장되는 새로운 세계를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 일을 이제 곧 시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어 택한 자로 마시게 하겠다는 것은 바벨론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국으로 돌아올 때 안전하고 평안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길 되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택한 백성들을 죄악에서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성령의 생수를 공급하시어 천국까지 무사히 인도하실 것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새 일이란 옛날에 행하신 것보다 더 큰 능력, 더 큰 기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애굽보다 더 강한 나라, 세계의 초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해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도저히 안 된다고 말하던 바로 그 일을 하나님이 해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안 된다고 기도조차 포기했던 바로 그 일을 하나님이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큰 일을 하나님이 하실테니 너희는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렇게 일하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실 때에도 모세와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홍해를 가르신 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의 인생 행로 위에 가로 막혀 있는 어떠한 문제라도 가르고 무너뜨리십니다. 오늘도 여리고는 무너지고, 홍해는 갈라집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선,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조용히 엎드려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을 바라보아라"는 것은 단순히 구경꾼의 입장에 서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일에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요구하십니다(18절).
여러분! 18절을 다시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과거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지금, 현재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지난 과거를 잊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새 일을 위해 부름 받은 이스라엘에게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일들이 전개될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새 일에 부름 받아 새 일을 시작할 사람은 더 이상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 될 때 미래를 향해 전진하지 못하게 됩니다.
흘러간 개울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가 없습니다. 이미 흘러간 물로는 방아를 찧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과거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잡혀 있게 되면,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일을 계획하는 사람은 미래지향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옛말에 늙은이는 과거에 집착하고 젊은이는 미래에 산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늙은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사로잡혀 미래를 향한 꿈을 잃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난 한해 동안에.
①실수한 일, 실패한 일이 있습니까? 잊으시기 바랍니다.
②섭섭하고 원망스러운 일들이 아직도 기억납니까? 잊으시기를 바랍니다.
③잘 나가던 때가 그립습니까? 그 때가 다시 올 것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오늘 결심하고 결단해야 할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①옛것을 버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엡4:22-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사울이 바울된 것처럼, 다락방의 실망한 제자들이 성령충만 받고 예수를 전파하는 능동적 삶으로 바뀐 것처럼, 십자가상의 강도가 예수 믿고 낙원을 보장받은 것처럼 변화되는 역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②하나님 안에서 입을 넓게 여시기를 바랍니다.
시81:10절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③소원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빌2: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소원을 이루는 비결은? 시37:4절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④하나님만을 믿고 바라보고 삽시다.
사40: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43:2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새해 설레이는 마음으로 준비합시다! 확신을 가지고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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