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낳면 두번 죽고, 두번 낳면 한번 죽는다(거듭남의 비밀)!
요 3;1-8
구세군 창설자 윌리암 부스는 당시 기독교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지금 6가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성령없는 종교
2. 그리스도없는 그리스도교
3. 회개없는 용서
4. 거듭남이 없는 구원
5. 하나님이 없는 정치
6. 지옥없는 천국
빌리그래햄도 같은 지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오늘 날 세계에서 가장 큰 위험은 거짓된 종교문제라고 생각한다. 교회안의 수많은 사람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말하지만 마음은 그 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 하였고 거듭나지 못 하였고 회개도 하지 아니 하였다>
이반 일리히도 말했습니다.
<요즈음 학교는 많은 데 교육이 없다. 선생은 많은 데 스승이 없다. 학생은 많은 데 제자가 없다. 목사는 많은 데 목자가 없다. 교인은 많은 데 성도가 없다. 집은 많은 데 가정이 없다.>
모두 같은 지적입니다.
한 마디로 거듭남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니고데모라는 고위층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예수님은 해결시켜 주실 것같았습니다. 목수를 고위층 관원이 낮에 찾아가기가 곤란하여 밤에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성경에서 가장 귀중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심각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거듭남이 아닌 것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가요?
1. 죄사함이 거듭남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사함을 받고 용서받은 의인이 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에 의지하면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죄사함이 거듭남은 아닙니다.
2. 신분의 변화가 거듭남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함으로 우리는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신분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3. 개종이 거듭남은 아닙니다.
개종이란 종교를 바꾸는 것입니다. 불교를 기독교로 바꾸었다고 하여서 거듭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거듭남으로 가는 길이지 거듭남 자체는 아닙니다.
카나다 토론토의 오스왈드 스미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종하기는 하였으나 거듭나지 못 하였기에 때문에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 할 사람이 세상에는 많이 살고 있다.>
4. 변화가 거듭남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조그만 변화가 일어났다고 거듭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후서 5;17에서 말하고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거듭난 것입니다.
거듭남의 의미
그러면 거듭났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가요?
유명한 세계적인 전도자 T.L. 오스본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거듭났다거나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때에는 새로운 영적 생명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에게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거듭난다고 하는 것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아니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1요 3;9-11)
요한은 우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하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씨>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무엇입니까? 씨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생명이고 하나는 본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본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씨입니다.
오스왈드 스미스 목사님은 하나님의 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닭은 꼬끼옥 거리고 고양이는 야옹거리며 개는 멍멍 하면서 짖어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배웠나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닭에게는 닭의 씨가 있고, 고양이에게는 고양이 씨가 있고, 개에게는 태어나서부터 개의 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소와 말을 유심히 본 적이 있습니까? 소는 앉았다가 일어설 때에 뒷 다리부터 일어섭니다. 그런데 말은 앉았다가 일어설 때에 앞 다리부터 일어섭니다. 누가 가르쳐 주었나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소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소 씨가 들어 있습니다. 말은 태어나면서부터 말 씨가 들어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순간 하나님의 씨가 들어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본성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씨를 받기 전까지는 죄를 짓지만 하나님의 씨를 받은 다음부터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거듭난 상태입니다. 이것이 거룩의 상태입니다.>
수도사 두 명이 수도원에서 수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평생 싸움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우리도 싸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니까 한번 일부러 싸워 보자!>
그래서 한번 싸워 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어느 날 둘아 앉아서 지갑을 놓고 싸우기로 하였습니다. 한 수도사가 상대방 지갑을 빼앗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지갑 내 꺼다.>
다른 수도사가 <아니. 내 것이다>라고 하면서 싸우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그래. 그럼 네 꺼야.>
그리고 주었습니다. 싸움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죄를 짓지 않게 되는 상태를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조지 허버트는 말했습니다.
<성결 한 모금은, 학문 한 양동이에 해당한다.>
어떤 목사님 석탄을 캐는 광도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온통 새카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쪽에 하얀 꽃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 왔습니다.
<이 더러운 갱에 어떻게 저런 꽃이 자랄 수 있을가? 어떻게 저렇게 순결과 아름다움을 상실치 않을 수 있을까?>
목사님이 놀라서 다가가 보았습니다. 광부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 꽃위에 석탄가루를 뿌려 보세요.>
그렇게 하여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검은 흙은 눈송이 같이 고운 그 꽃을 더럽히지 못하고 그냥 미끄러져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더러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러움을 접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죄를 그냥 미끄러져 내리게 할 수 있는 힘은 성령의 힘입니다.
내가 광주에서 집회할 때였습니다.
호텔이 없어서 어느 집사님 댁을 숙소로 사용하였습니다. 채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였습니다. 부부가 집사였습니다. 그런데 남자 집사는 나를 자기 집에서 머믈게 하고도 집회 참석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 식사도 같이 하면서도 집회에 가지 않아서 내가 서운하여 물었습니다.
<집사님! 나를 이 집에서 자게 하고 집회에 빠지는 것이 예의가 아니지요.>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는 은혜 받으면 안 되요.>
나는 놀라서 물었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저는 사업을 합니다. 그러더 얼마나 나쁜 사람들이 많은 지 좋은 말로 하여서는 돈을 안 줍니다. 상소리도 하여야 하고 때로는 깡패짓도 좀 하고 그래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그런 욕을 할 수 없고 그렇게 행동하지 못 하거든요. 그런데 목사님 집회에 참석하면 은혜받을 것같아요.>
거듭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듭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거듭날 수 있는 비결
그러면 어떻게 하면 거듭날 수 있을 가요?
예수님은 거듭나는 비결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 하면 결코 거듭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도와 주셔야 합니다. 아이를 낳을 때 생명된 아이는 하나도 힘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죽을 힘을 다 하여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는 가만히 있으면서 생명을 받습니다.
성령님이 애쓰고 힘써서 도와 주셔야 거듭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본인은 가만히 있는 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는 자연적인 믿음으로 어머니 품에 안깁니다. 어머니를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 데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바람은 분명히 있는 데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로하고 매달려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성령님이 하실 일은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약간의 자유의지에 엄청난 은총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남을 위하여 침노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할려고 하는 자에게 할 수 있게 은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영국의 유명한 죠지 흿트필드 목사님이 이 본문으로 본 교회에서 300번 정도 설교를 하였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어갈 수 없느니라.>
설교가 지루하게 느껴진 성도 한 명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같은 설교를 자꾸만 하십니까?>
목사닙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거듭나기 위해서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번 태어나면 두 번 죽고, 두 번 태어나면 한번 죽는다.>
썬다씽이 입신하여 천국과 지옥등 영계를 드나들었습니다. 신비한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하나님! 심판하실 때에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한 명 한 명 심판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드셨습니다.
행위가 천국 통행증이 되어 저절로 사람들이 자기 영성에 따라 지옥과 천국으로 갈라지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께서 한 명 한 명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물의 왕국을 봅니다.
산에서 부상당한 멧돼지를 산 지기가 발견하여 데려다가 치료하여 줍니다. 몇 달 지나면 다 고침을 받습니다. 다시 산속으로 들여 보냅니다. 그러면 같은 동료 멧돼지들이 모여서 그 멧돼지를 죽여 버립니다. 사람들과 오래 같이 살고 나면 심성이 달려져 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이 땅에서 마귀와 함께 산 사람들은 천국에 가서 살라고 살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성령과 더불어 살아간 사람은 지옥에 가서 살라고 하여도 살 수가 없습니다. 영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남의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소책자 다락방에 실린 글입니다.
플로리다의 감리교 목사 빌리 류터(Billy Lewter)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은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은 1930년 대 미국을 쉽쓸었던 대 공황 때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삼 남매가 구세군 급식소에서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 되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도박에 미쳐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두 자녀를 낳았습니다. 목사님이 6살 때였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 같군.>
한 마디를 남기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도박 생활을 하다가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빚을 갚으려고 도둑질을 시작하였습니다. 수없이 경찰서를 드나들었습니다.
견디다 못 해 자살을 기도하였습니다. 어머니가 발견하고는 간신히 생명을 살렸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함께 교회에 나갈 것을 애원하였습니다.
그 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성령님이 아버지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거듭났습니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쓰레기 인간이 예수를 믿고 자기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께 바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를 2년밖에 다니지 않은 무학이었으나 성경 말씀 5백 구절을 암송하였습니다. 그는 매일 저녁 유치장, 교도소, 병원을 방문하여 전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미국 대교회의 목회자로 만들었습니다.
아버지를 회상하는 류터 목사는 말했습니다.
<오직 기적이다. 성령을 받을 때 이런 능력이 주어졌다고 하는 말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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