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을 연기한다.
눅 13;6-9
나는 사형수가 사형당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형수를 사형시키려고 끌고 가는 교도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형수를 사형장으로 끌고 갈 때에 사형수는 갈지(之)자 걸음로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욕망입니다. 그리고 가다가 일부러 무엇인가를 떨어뜨리고 가다가 다시 그 물건을 주우러 돌아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일분 일초라도 더 살아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측은한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영국에서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왕이 바로 제임스 왕입니다. 그의 정치에 반역한 반역자를 사형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사형수는 왕이 성경을 그렇게 좋아하는 줄 알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죽기 전에 왕이 번역한 성경을 한번 읽고 죽게 하여 주옵소서!>
제임스 왕은 기특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였습니다.
며칠 수 물었습니다.
<다 읽었느냐?>
<아직 다 못 읽었습니다.>
며칠 후 또 물었습니다. 계속 그런 대답이었습니다. 왕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사형수가 대답하였습니다.
<왕이시여. 성경 말씀이 너무 깊고 좋아서 하루에 한 절씩 읽고 있습니다.> 왕은 그 마음에 감동되어서 사형을 면제 시켜 주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바로 사형을 면제 시켜준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야기로 모시고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3년을 기다리던 주인은 과수원지기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이 말을 들은 과수원지기가 말했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아주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포도원은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과수원지기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무화과 나무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눈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가요?
1.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포도원 주인 하나님은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 한 그루를 특별히 심었다는 것부터가 특별한 애정입니다. 천국에는 하나님과 천사들만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죄인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은 은혜중에 은혜요 감격중에 감격이요 축복중에 축복입니다.
포도원 지기 예수님도 우리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계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이 때 포도원지기 예수님도 이렇게 맞장구를 쳐야 마땅합니다.
<주인님! 맞습니다. 내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저런 나무는 당장 잘라 버려야 마땅합니다. 땅만 차지 하고 있습니다. 거름만 낭비하고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가 먹을 영양분을 다 빨아 먹고 있습니다. 당장 찍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포도원 주인 하나님도, 포도원지기 예수님도 우리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계심이 분명합니다.
나는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은 모두 자기 개성대로 살기를 원하신다.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유별납니다. 특이합니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무화과 나무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만드실 때 지구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사람은 70억이라고 할 지라도 모두 얼굴이 다릅니다. 모두 손금이 다릅니다. 모두 지문이 다릅니다. 목소리가 다 다릅니다. 똑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주시지 아니한 독특한 개성의 재능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개발하여야 합니다. 포도나무만 있는 곳에서 자라는 무화과 나무같이 개성을 개발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어머니들은 자녀를 학교로 보낼 때 우리나라 어머니와 다릅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남보다 잘 되어라>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어머니들은 <남과 달라라>라고 말합니다.
포도나무 속에 무화과가 바로 이스라엘의 문화입니다.
3. 하나님은 열매를 기대하시고 계십니다.
무화과 나무는 3년이면 열매를 딸 때가 된다고 합니다. 될 때는 되어야 합니다. 딸 때는 따야 합니다. 열릴 때는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어 놓으시고 3년 될 때까지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를 때는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어야 할 때 맺지 못 하니까 하나님은 노하셨습니다.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삼성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삼성 용어가 있습니다.
<보잉 747>입니다. 이 말은 보잉 747 비행기는 이륙을 시작하여 5분 내에 10km 고도로 올라가야 합니다. 만일 5분 내에 비행기를 10,km 상공을 끌어 올리지 못 하면 추락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실제로 보잉 747이 그렇게 하지 못 하여 추락하면서 아파트 한 동을 정면으로 충돌하여 아파트 한 동이 발랑 누워 있는 큰 사고 현장을 암스테르담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개척교회도 3년 동안 자립하지 못 하면 자립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9명으로 개척을 시작하여 2년 만에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3년 되었을 때 장년부 출석 300명이 넘었습니다.
할 때 해야 합니다.
인생은 대개 40세 전후 모습으로 일생을 간다고 합니다. 40까지 열매가 보이기 시작하여야 합니다.
무화과는 3년이면 열매를 열어야 합니다.
할 때는 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은 연기하여 주신다.
포도원 주인은 열매맺지 못 하는 포도원속에 무화과 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요구입니다.
그 때 포도원지기가 말했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나님은 그렇게 연기하여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형을 연기하여 주셨습니다. 은총입니다. 은혜입니다. 그러나 무한히 사형을 연기하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1년입니다. 일년 동안 거름을 주고 열심히 기를 터이니 만일 일년 후에도 열매를 맺지 못 하면 그 때는 찍어 버리셔도 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일년이 남아 있습니다.
은총의 기간입니다. 정말 놀라운 기회입니다. 2010년도는 사형을 면제받은 특별한 기간입니다. 이제 잘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열매맺지 못 한 무화과 나무는 바로 <나>입니다. 주인이 3년씩이나 와서 보았는 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열매없는 나를 보고 예수님이 얼마나 허전하셨을 가요? 하나님께서 무화과를 따러 오셨다가 열리지 않으니까 빈 바구니를 들고 도로 돌아 가실 때 얼마나 서운하셨을 가요?
찍어버리라고 하시는 말씀속에는 얼마나 실망하셨는 지 그 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땅만 버리는 구나라고 한탄하실 때의 주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다짐하며 회개하며 내년을 맞이하여야 합니다.
빅터 프랭크린은 유대인입니다.
유명한 심리학자요 의사입니다. 그는 독일 유대인 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분입니다. 히틀러가 600만명을 학살하는 동안에 유대인 포로 수용소에 있으면서 견디어 낸 특별한 분입니다. 그는 이런 이야기 하나를 전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독일군은 유대인들을 운동장에 모아 놓고 몇 명을 뽑아 생체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 세 개를 땅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한 명씩 임의로 뽑아 십자가에 매고 동맥을 자르고 깡통을 댑니다. 그리고 피가 얼만큼 흐르면 사람이 죽는 지를 실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그 모습을 구경시켰습니다.
세 명을 그렇게 죽인 후에 또 세 명을 골라 붙들어 맸습니다. 그리고 동맥을 잘랐습니다.피가 주르륵 흘러 내렸습니다. 왼 편에 있는 이가 반도 차지 않아서 죽었습니다. 오른 편에 있는 이가 조금 후 죽었습니다. 그런데 가운데 있는 이는 죽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유대인 랍비였습니다. 그는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난 이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못 하였습니다. 한번만 기회를 다시 주십시오. 반드시 멋지게 주를 위하여 살겠습니다. 한번만 나를 믿어 주옵소서. 지금 이렇게 죽으면 하나님앞에 가서 할 말이 없습니다.>
알고 보니 나중 세 사람은 동맥을 아주 자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눈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그리고 동맥을 칼로 자르는 척하면서 칼을 댔습니다. 그리고 테이프로 붙였습니다. 그리고 수돗물을 틀어서 깡통에 물소리가 나게 하였습니다. 피가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리게 하였습니다
눈을 가리운 이들은 자기 몸에서 피가 떨어지는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랍비는 철저히 회개하며 하나님께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만이 살아나 새로운 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할려고 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연기는 안 됩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예수님이 주신 이 말씀속에는 깊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열심이 들어 있습니다.
두 가지 단어에 관심을 집중하여야 합니다.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앞으로 일년 동안은 포도원 지기가 열심히 팔 작정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거름을 줄 작정이 들어 있습니다. 주님이 내년도에는 열심히 우리를 돌보실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주님도 이하시고 주님이 일하시니 우리도 일해야 합니다.
중국에 미국 선교사가 들어 가서 선교하며 감자 농사 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국인들이 큰 감자는 먹고 작은 감자를 종자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큰 감자를 종자로 사용하고, 작은 감자를 먹어요.>
그렇게 하여 보았습니다. 그 후부터 큰 감자를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무엇을 심느냐가 중요합니다. 거름을 정성껏 열심히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이 보이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의 자신감이 들어 있습니다.
<열매 맺지 못 하면 찍어 버리소서.> 이 말씀속에는 찍어 버리지 않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자심감이 들어 있습니다. 두루 파고 거름을 주고 돌보면 이제는 열매를 맺게 만들고 말겠다는 자신감입니다.
찍어 버리라고 하는 말속에는 찍어 버리지 않게 하시겠다는 자신감이 들어 있습니다.
철도 건설을 하는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들이 한창 일하고 있을 때 갑자기 흙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터널입구가 완전히 막혔습니다. 밖에서 파들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뻥 뚫렸습니다. 구조대들은 놀랐습니다. 그들은 유유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조하러 들어 올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일하였습
내년도에는 주님이 우리에게 거름을 주고 열심히 돌보아 줄줄 믿고 계속 열심히 일하여야 합니다.
3. 예수님의 기대도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열심히 두루 파고 정성을 다 하여 거름을 주면 열매를 맺게 되리라는 기대가 들어 있습니다. 앵무새는 노래하게 되어 있습니다. 장미는 꽃을 피우게 되어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하면 된다는 기대가 들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어느 날 달팽이가 사과 나무 위로 천천히 기어 오르고 있었습니다. 사과나무 중간 쯤까지 오르는 데 며칠 걸렸습니다. 중간 쯤에 나무 껍질속에 벌레 한 마리가 나오더니 달팽이에게 말했습니다.
<이 바보야! 끝까지 올라가 보아야 네가 먹을 사과가 아직 열리지 않았어.> 그 때 달팽이가 말했습니다.
<내가 올라갈 때 쯤 되면 사과가 열릴 거야.> 달팽이는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올라갔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열매 맺기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4. 예수님의 심판도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열매맺지 못 하면 찍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동의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는 데 동의하시겠다고 하시는 심판이 들어 있습니다.
열심과 사랑과 기대가 들어 있지만 무시무시한 심판의 의미도 있습니다.
이제 일년동안 사형을 연기하셨습니다. 시한부 연기입니다. 무기한 연기가 아닙니다.
일년 동안 잘 해야 합니다.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독일 분만실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의사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독일인들이 유대인을 학살할 때 이야기입니다. 독일 여자가 아이를 낳기 위하여 병실에 입원하였습니다. 벽에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혀 돌아 가시는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유대인을 미워하는 독일 여자가 간호원에게 말했습니다.
<저 유대인 보기 싫어요. 떼어 주세요.>
간호원이 말했습니다.
<나는 저 그림을 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면 더 높으신 분을 불러 주세요.>
의사를 불렀습니다. 그에게 역시 말했습니다.
<저 유대인 보기 싫어요. 떼어 주세요.>
의사도 말했습니다.
<나도 저 그림을 뗄 자격이 없습니다. 병원 원장님 권한입니다.>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내 남편은 육군 장교입니다. 곧 올 것입니다. 그가 조치할 것입니다.> 얼마 후 육군 장교 남편이 도착하였습니다. 그가 아내 말을 듣고 나더니 말했습니다.
<나는 내 태어날 아이가 저 그림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장님이었습니다. 그 그림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반드시 심는 대로 거둡니다.
우리는 일년 사형 연기를 받아 놓은 무화과 나무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돌보며 기대하며 보고 계십니다.
내년에는 꼭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맞이하여야 합니다.
용서받고 금년을 끝내야 합니다.
좋은 결론을 내리는 금년, 희망차게 맞이하는 내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중형 교회에서 대형교회로 바뀌는 열매를 내년도에 맺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시고 계십니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 출발 준비가 되었나요? /고후 13;5. 요 2;1-11(강문호) (0) | 2022.02.01 |
---|---|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하박국 2:1-3. (0) | 2022.02.01 |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 1;21-23.(강문호) (0) | 2022.02.01 |
성탄의 마음을 품으라(강문호) (0) | 2022.02.01 |
지옥에서 들리는 소리 /눅16;19-31 (0) | 2022.02.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