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의 축복
왕상 11:9-13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
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오늘은 6•25 59주년 기념주일입니다. 근래 남북문제가 심상치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남북이 초긴장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은 비상시국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시국선언이 나오고 갈등이 점증되고 모두 긴장은 애써 외면하는 모습들입니다. 지금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하는 일을 계속 강조하고 계십니다. 우리민족은 남북이 갈라져 지난 60여 년 동안 서로 대치하여 숫한 사건들과 유혈사태와 남침위협에 시달려왔고 그 긴장은 오늘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분단은 비극입니다. 혈육과 부모와 자식을 만나지 못하고 나뉘어져 살아가는 것은 불행입니다. 더 불행한 것은 그 당사자들이 하나 둘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달 김학수 화백이라는 분이 소천 하셨습니다. 1•4후퇴 때 마지막 대열에 끼어 가족들에게 사흘 뒤에 돌아오겠다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내려왔는데 가지 못하고 6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로 그분은 평생 혼자 독신으로 언젠가 가족들을 만날 날을 기다리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가족들이 탈북 하여 북경의 대사관에 억류되어 있습니다. 그 가족들을 서울로 데려올 수 있도록 힘쓰시다가 끝내 보지 못하고 지난달 소천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분단되고 분열되는 것은 비극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분단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사울, 다윗 때까지 나라가 잘 발전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때에 우상숭배를 지독하게 섬겼습니다. 또 솔로몬은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본문 3절을 보면 후궁이 700명이었고 첩이 300명이었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외국의 왕가 공주들을 후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3절 끝을 보면 “그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처음에는 신선했고 참신했습니다. 왕이 되자마자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모습에 하나님도 감동하셔서 권세와 부귀영화도 함께 주셨습니다. 그런 복을 받았으면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인도하는 일에 선용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나 과하면 좋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너무 부귀영화에 취하게 되니까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인들에게 마음이 뺏겼습니다. 그 여인들은 모두 자기들의 신을 가져와 마침내 솔로몬의 신앙과 영까지 타락시켰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은 그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9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셨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 나라를 반드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11)”고 했습니다. 또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시대에는 그냥 놔두리라, 그러나 네 아들 대에게 가서 반드시 빼앗으리라(12)”고 했습니다. 여기 빼앗으리라는 말씀은 나라를 둘로 갈라놓겠다는 말씀입니다. 마침내 솔로몬이 죽고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BC975년 나라가 남북으로 두 쪽으로 나뉘었습니다. 그 후 이 두 나라는 서로 대치하고 전쟁하고 피를 흘립니다. 그러는 동안 나라는 약화되어 주변의 강대국들에게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북왕국은 BC 721년에 앗수르에 망하고 남왕국은 BC586년에 바벨론에 망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나라 없이 고난 받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고난 받는 민족이 되어 그 고난 속에서 이스라엘은 강해지는 비결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끈질긴 민족이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민족도 역사를 보면 700여번 침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민족도 모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로도 일제로부터 36년 동안 시련을 받았고 6•25를 통해서 또 다른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가난을 겪었습니다. 그 여파가 오늘까지 이산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지천에서 북한과 남한이 서로 대치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민족이 얼마나 강인하고 모진 민족이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은 환경과 역사와 고난을 통해서 연단하시고 훈련도 하십니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의 얼굴이 검은 것은 뜨거운 햇빛과 불타는 대지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민족도 이런 고난의 역사들 때문에 우리민족의 체질이 강인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경에서 탁월한 재능을 지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 타골은 우리민족을 향하여 동방의 조용한 민족으로 강인한 심성을 지닌 민족이라고 칭송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폴 케네디교수는 우리민족은 장점이 많은 민족으로 21세기 한국민이 세계의 중심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보았습니다.
한의 문화
이 같은 역사를 살아오는 동안 우리민족은 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한을 자주 말하게 됩니다. 노래하면 한 많은 이 세상, 한 많은 미아리 고개를 노래하고 춤 하면 한풀이 춤을 연상하게 됩니다. 연속극 하면 전설 따라 삼천리를 생각하고 궁중역사를 말하면 우선 한이 내포된 궁중의 역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한은 장단점이 있습니다. 단점으로는 이 한을 풀지 못하고 선용하지 못하면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아버지 원수를 대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갚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원수를 갚지 못하면 죽어 조상 볼 면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한을 풀기 위해서 인생을 거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역사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장점도 있습니다. 그 한을 에너지화 할 때 엄청난 폭발력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용수철을 눌렀다가 풀면 엄청난 힘이 발생하듯이 이 억눌린 한을 발전적 에너지로 발전시킬 때 엄청난 에너지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룻밤에 50만 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동시에 쏟아져 나올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민족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이 한이 오늘 우리나라를 이렇게 발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한이 우리민족으로 하여금 이를 악물게 하였고 분발하게 하였고 움직이게 하였고 무서운 정신력을 발휘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것은 탈출구가 하나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잣집 아이들은 공부를 잘 안 해도 잘 살 수 있고 또 길이 여럿 있으니까 죽어라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집 아이들은 어디를 보아도 탈출구는 하나뿐입니다. 그러니까 죽어라 밤새워 공부한 것입니다.
엘리트 의식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가 아무리 크고 거대했어도 유대인들은 그들을 무시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선민의식 때문입니다. 그 의식은 그들로 하여금 언제나 당당하게 하였습니다. 로마에 절대로 위축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우월감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우월감이 때로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폐쇄적이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최고라는 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그 최고는 남이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인데 자신들이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볼 때는 상당히 폐쇄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이 어느 민족보다 자존심이 강합니다. 그것은 양반 의식 때문입니다. 옛날에 이 양반의식이 얼마나 강했습니까. 체면 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체면 때문에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복음을 영접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평생 한학을 한 분들은 기독교를 아낙내들이 믿는 종교라고 치부했습니다. 자손들이 다 예수를 믿어도 끝까지 혼자만은 거부했습니다. 죽을 때에는 믿어야 하는데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고집을 하다가 그냥 죽은 이들도 있습니다.
이 의식이 오늘 노사관계에도 그냥 나타납니다. 노사관계를 보면 노동자와 관리자가 한 장소에서 절대로 식사를 하지 않고 엄격히 구분된 공간에서 식사를 합니다. 그러니까 노사관계가 껄끄러운 것입니다. 노는 작업복을 입고 붉은 띠를 띠고 귀족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사는 넥타이를 매고 너희와는 구별되어 있다고 과시하듯 지배자의 형식을 고집합니다. 그러니 원만한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런 의식들이 때로 작은 것에 목을 매게 만들기도 합니다. 거기에도 한이 작용을 합니다. 노는 타도 재벌을 외칩니다. 그 재벌들로부터 월급을 받아 살아가면서 회사 기물을 불 지르기도 하고 부수기도 합니다. 또 사는 그런 행위에 대해서 권위에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잘라내고 짓누릅니다. 빈대 잡기 위해서 초가삼간 불태우는 격입니다.
정과 감수성
우리민족은 정이 많은 민족입니다. 우리민족은 유독 정에 약합니다. 정 때문에 못 헤어지고 잊지 못하고 버리지 못합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우리가 남이가” 이 정이 장점도 되지만 때로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때에는 인기도가 10% 안팎이었는데 그가 자살해서 죽으니까 모두 눈물을 흘리며 거리로 나왔습니다. 서구인들은 이 같은 우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간밤에 동네에 간첩이 잠입해 들어와서 온 동네 사람들이 쫒고 모두 그것이 누구냐 하고 분개하고 그를 잡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간첩이 조용히 내 집으로 숨어들어 왔습니다. 알고 보니 북에 살고 있는 사촌형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신고를 못하고 우물쭈물 하다가 숨겨주게 되고 나중에는 된서리를 맞는 것입니다. 이 정은 지연, 학연, 혈연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 정은 마침내 사람으로 하여금 비합리적이 되게 하고 공과 사를 혼돈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지방에서 목회할 때 심방을 마치고 식사를 합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인정 많은 권사님이 자기 밥그릇에서 밥 한 숟갈을 떠서 내 밥그릇에 얹어줍니다. 갈비탕을 먹다가 도중에 내 그릇에 부어줍니다. 주려면 먹기 전에 줄 것이지 반쯤 먹다가 줍니다. 우리문화는 그것을 사양하지 못하고 그냥 먹어야 합니다. 그런 정을 서양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의식이 우리라는 테두리를 만들고 그 테두리 안에서 살기를 고집하게 됩니다. 이조말기에 서구화의 물결이 무섭게 다가올 때도 우리나라에는 그것이 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조정에서는 그 외세의 물결을 막기 위해서 쇄국정책을 펼쳤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끼리 먹고 우리끼리 교류하며 살아가자고 고집했습니다. 오늘 북한이 그렇게 우리끼리, 우리식으로를 고집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국제적, 국제화, 지구촌, 세계화라는 말을 애써 외면하고 무시합니다. 그러니까 테두리 안에 모여 우리끼리 살아가는 동안 생각이나 의식이나 판단이 좁아지는 것입니다.
이 우리끼리 라는 삶의 태도에도 장점도 있기는 합니다. 작은 아름다움도, 내면의 향기, 아기자기함, 가족끼리라는 분위기가 있기는 합니다. 서구인들이 말 타고 광야를 누비며 총 쏘고 산 계곡에서 스키를 타고 넓은 바다에서 보트를 타고 시원스럽게 달릴 때 우리민족은 앉아서 조용히 바둑을 두고 장기를 두고 붓글씨를 썼습니다. 서구인들이 살을 찌르고 주사를 놓고 살을 째고 수술을 할 때 우리는 가느다란 침으로 침술을 했고 가는 바늘로 수를 놓았습니다. 서구인들이 육중한 기계나 탱크나 큰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고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에 띄울 때 우리는 그 모습을 본떠서 작은 모조품을 만들었고 작은 핸드폰을 만들었고 바느질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이 유독 작은 것에 강합니다. 서구인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작은 것에 길들여지고 민감하다 보니까 생각도 좁아졌습니다. 그래서 때로 싸울 때도 작은 이유 때문에 싸웁니다. 남편이 오늘 점심은 국수를 먹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무슨 국수냐 국시지”라고 말합니다. 이 부부가 서로 따지다 큰 싸움되었고 마침내 이혼했다고 합니다. 봉지에 들어있는 밀가루로 만든 것이 국수이고 봉다리에 들어있는 밀가루로 만든 것은 국시입니다. 젓가락으로 먹는 것이 국수이고 저분으로 먹는 것이 국시입니다.
오늘 갈등과 불화의 원인을 보면 이렇게 아주 작은 생각들 때문에 발생합니다. 아주 작은 사연들을 그냥 뛰어 넘지를 못합니다. 여야가 충돌하는 것을 보면 “사과하라, 못한다”에서 대치정국으로 나아갑니다. 남북이 긴장상태에 빠진 것도 체면과 자존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도 근래에 와서 다행스러운 것은 가난했던 우리민족이 넓은 세상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울 안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기회를 만나게 되니까 내재되어 있던 잠재의식도 살아나고 개척정신도 발휘하게 되었고 할 일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무역대국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민족도 가능성이 있는 민족입니다. 모험정신이 있는 민족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니까 유감없이 그 정신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넓은 세상으로 나오면 얼마 있어 저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북한 젊은이들이 축구하는 것을 보십시오. 미사일을 만들고 핵을 만드는 것을 보십시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울안에만 갇혀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 좁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든 미사일이나 핵을 잘못 사용할까 걱정입니다.
지난날 우리민족은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것도 오늘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하나의 기회였습니다. 일제 36년 동안 압박받는 동안 울안에 살아가던 우리선조들이 비로서 해외로 눈을 돌려 일본으로, 만주로, 할빈으로, 상하이로 넓은 세계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6•25는 분명 불행한 일이지만 그 일로 수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싸워 주었고 우리국민들이 외국으로 대거 빠져나가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전후 가난하게 되니까 눈을 밖으로 돌리기 시작하여 평상의 생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인데 지구의 반대편인 아르헨티나로 브라질로 이민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서독으로 광부로 간호사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 줄지어 미국으로 이민의 길을 떠났고 중동으로 노동자들이 꿈을 안고 떠났습니다. 그때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나가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것이 오늘 우리민족으로 하여금 잠에서 깨어나고 잠재력을 키우고 개척정신을 발휘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우리나라를 이렇게 경쟁력을 갖춘 나라도 만든 것도 되돌아보면 모두 이런 환경을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분단되었고 약소국이었고 억압받고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동안 지혜를 터득하였고 생존법을 터득합니다. 그 결과 2천 년간 나라 없이 살았지만 그 지혜로 그들은 오늘까지 생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비극을 통해서 그리고 가난을 통해서 또 고난을 통해서 길을 여십니다. 그렇다고 고난을 자주 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고난은 한번으로 족합니다. 분열, 분단, 나누임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은 가장 어려운 때, 위기의 때를 맞이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국론을 하나로 만들 때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입니다. 지혜의 민족은 위기의 때에 강하고 지혜를 발휘합니다. 그것이 환란이 주는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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