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신 은혜, 감사로 붙잡으라! (눅 7:36-50)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감사절을 지킬 준비는 되셨습니까?
감사절을 맞이할 준비란 마음에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추수감사 주일을 앞두고 지금 마음이 추석을 맞아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가시는 마음 이상입니까?
추수감사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감사 제목을 써 보시라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은 어느 해인가 추수감사 주일을 맞아서 감사 제목을 써보면서 제가 받은 은혜가 너무나 많았음을 깨닫고 깜짝 놀랐기 때문입니다. 감사제목을 써보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은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감사가 은혜를 누리는 길이구나. 하는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추수감사 주일 감사 제목을 쓰는 것은 추수감사 주일을 준비하는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을 만난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 시몬이고, 또 한 사람은 창녀인 마리아입니다.
두 사람 중에 누가 복을 받은 사람이겠습니까? 당연히 시몬입니다. 바리새인은 종교적인 지위로나, 사회적인 신분으로나, 경제적인 면에서나 창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녀 마리아에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창녀가 오히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요 복을 주실 사람입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책망받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의 처지가 어떻게 이렇게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까? 감사 때문입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자기 집에 식사 초청을 해 놓고도, 예수님께 손님에게 마땅히 제공해야 할 발 씻을 물도 드리지 않고, 의례적인 인사인 입 맞추지도 않았습니다.
그 때, 창녀였던 마리아가 시몬의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로 다가와서, 발 앞에 무릎을 꿇고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발이 적셔져서, 여인의 머리카락으로 씻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발에 입을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더니 가지고 왔던 향유 옥합을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몸에 조금만 발라도 향기가 진동할텐데, 발에 부어버렸으니, 그 향기가 어떠했겠습니까?
예수님을 향한 감사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바리새인 시몬과 비슷합니까? 창녀 마리아와 비슷합니까?
바리새인 시몬은 창녀 마리아의 감사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였고,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만나면서도 예수님이 자신의 속죄주이심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알았다면 시몬이 마리아 보다 더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넘치는 감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은혜 받은 사람에게 넘치게 감사하는 일에 대하여는 조금도 문제 삼지 않습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나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좀 지나칠 정도로 감사할 때, 오히려 칭송합니다. “정말 은혜를 아는 사람이군!”
그렇다면 하나님을 향하여는 왜 넘치는 감사가 부담스럽습니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만 못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그렇게 하면 면박을 당할 일을 하나님께는 태연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인 대상으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목회 초창기 때, 지방 교역자 모임을 한 개척교회에서 모였습니다. 감리사님이 이 교회를 위하여 한번 특별헌금을 하지고 하였습니다. ‘또 헌금?’ 재정적인 여유가 없이 살던 때이기에 정말 그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헌금을 안 할 수는 없고 가진 것 중에 가장 작은 지폐를 골라 손에 꼭 쥐고 헌금함에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돈을 손에 꼭 쥔 것은 누가 보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사람에게 부끄러운 헌금을 하나님께는 부끄럽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부른 찬송이 50장‘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 주께 드리네’였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믿는가? 헌금은 교회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냐?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가진 것을 다 헌금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헌금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여러분, 감사주일은 우리에게 복된 주일이지만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는 주일도 됨을 알아야 합니다.
말 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말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성경에는 말세에 사람들에게서 감사가 사라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딤후 3:1-2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우리는 자신이 바리새인 시몬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은 없습니다. 감사를 드려도 형식적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넘치게 감사하라는 말씀에 대하여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창녀처럼 윤리적인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대단히 비판적이라는 것입니다. 가까이 하기도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교만이 더 큰 죄라고 하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이 율법적인 신앙생활임에도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은 회칠한 무덤이라, 독사의 자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전도가 너무 쉬워요]를 쓰신 손현보목사님,
목사님께서 권사님들에게‘전도 열심히 하세요, 새벽기도회에 열심히 나오세요.’간절히 부탁해도 도무지 반응이 없는 권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왜 그런지 알아보았더니 고추 농사에 재미가 들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생업도 아니면서 자식들에게 고추 농사지은 것 갖다주는 재미로 아침에 일어나면 고추밭에 가서 벌레 잡아주고, 약 쳐주고, 오후에 또 고추밭에 가서 물도 주고 벌레도 잡아 주느라 바빠서 새벽기도를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께서 그 권사님의 고추밭에 가서 고추를 다 뽑아 버렸습니다. 고추마다 고춧대를 얼마나 단단하게 세우고 줄로 묶어놓았는지 목사님의 손이 다 긁히고 물집도 잡혔습니다. 그 권사님이 고추밭에 나가 보고는 기절하는 줄 알고 낙심이 되어 주저앉았습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갔더니 실성한 사람 같이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더랍니다. 목사님께서 자신이 고추를 다 뽑았다고 하였더니 깜짝 놀라며 믿으려 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손을 보여주었답니다. 그랬더니 권사님이 손을 한참을 뚫어져라 보더니 정색을 하면서‘목사님이 왜 우리 고추밭을 뽑습니까?’묻더랍니다. 그래서 권사님에게 다시 물었습니다.‘제가 하나만 물어볼 터이니 대답해 보십시오. 권사님은 지금 고추 밭 때문에 심장이 떨리고 치가 떨려서 말을 못한다고 하시는데, 예수 믿고 너무나도 좋아서 오늘 처럼 심장이 떨린 적이 있습니까? 주님은 마지막까지 증인이 되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온 천하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은 복음을 전하다 죽을 영혼이 복음을 받아들여서 너무나도 좋아서 심장이 떨린 적이 있었습니까? 옆 사람이 지옥가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오늘처럼 떨린 적이 있습니까?’ 그 권사님이 한참을 있다가 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목사님, 제가 너무 잘못했습니다. 이 고추가 뭐라고, 이 고추가 뭐라고, 지금까지 여기에 이렇게 온갖 정성을 쏟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시간 하나님께서 권사님의 마음을 만지셔서 중요한 결단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권사님이 새벽기도를 나오시는 것입니다. 같이 고추농사 짓던 사람들이 다 나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권사님 댁 고추밭을 모조리 뽑았다는 소문을 듣고 다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권사님이 전도를 하는데, 전도에는 은사가 없다고 하던 권사님이 그 해 전도하여 세례 받는 영혼이 11명이나 되었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는 하나님을 정말 인격적으로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게 되면 우리 신앙생활이 달라집니다.
믿음이 달라지고 순종이 달라지고 기도가 달라지고 봉사가 달라지고 사랑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고 감사가 달라집니다. 형식적일 수 없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바꾸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짜 믿으니까요!
오늘 우리에게 감사절을 지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추수감사절의 축복은 우리 상상을 넘는 것입니다. 단순히 추수의 감사나 물질의 축복만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다음 주일에 하겠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추수감사에는 우리 주위에 어려움을 당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감사 제물을 바칠 때, 그 제물을 가지고 당시 노비나 나그네나 고아와 과부와도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려고 작년부터 우리 교회에서는 추수감사헌금을 일반 재정에 쓰지 않고 전액 재난구호와 구제비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의 감사가 재난을 당하거나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올해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정말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넘칩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생명을 걸고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떠난 후 사도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가 어떻게 사도냐? 그는 설교의 능력이 없다.”며 무시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섭섭하고 마음 아팠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기를 고린도전서 1장 4절에서 내가 너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 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정말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상의 도시, 음란의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만 가지고도 너무나도 감사한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수준에 못 미치는 신자들이지만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성도라는 것입니다. 이 감사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교회를 사랑하며 감사하십니까?
말씀이 좋고 분위기가 좋고 사람이 좋고 은혜가 충만하고, 다 좋습니다. 하는 사람들도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깊이 알고 보니 이 교회에도 어려움이 많고 문제가 많음을 알고도 “교회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 교회를 지키고 세워 온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예배당이 완공되지 못하고 시커먼 굴과 같았을 때, 예배당 공사를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을 때, 신학교 동기 목사님들이 찾아와서 기도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내려올 때, 모두들 엄청난 규모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함께 기도하신 후 용두동교회 조재진 목사님께 대표기도를 부탁드렸는데, 잠시 묵상한 후에 기도하기를 “사람의 힘으로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 감사합니다.” 하셨습니다. 그 때 그 기도가 제 가슴을 쳤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구나! 불가능한 일이 감사 제목이 될 수 있구나! 알았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본당 완공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증거되겠기 때문에 감사한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고난 중에 정말 감사의 기적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난 금요 성령집회 때, 한 남자분이 기도를 받으려 나오셨습니다. 온 가족 형제들이 동업한 사업이 망하여 부모님은 해외로 도피하고 형제들은 떠나고 혼자서 그 짐을 다 떠맡았답니다, 아내와 어린 두 자녀와 살아갈 길이 막막한 어느 남자 성도님이 기도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기도 중에 성령의 임재 가운데, 주님의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장군의 지위를 빼앗겼고, 가정을 빼앗겼고, 제사장에게 갈 수도 없었고, 친구도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다윗은 사막 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사방에서 불어닥치는 광야로 쫓겨나 동굴 하나에 들어가서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습니다. 어두컴컴한 굴 속에 앉아 있는 다윗을 그려 보십시오. 세상천지 어디에도 갈 데가 없습니다. 광야의 굴 속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혼자 남았습니다. 좇아오는 군사들을 피하여 굴 속에 들어간 다윗이 지쳐서 벌러덩 누워 있다가 일어나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기도를 시작했을 때 눈물이 쏟아졌을 것입니다. 그 때 드린 기도가 시편 57편입니다.
시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그렇게 울며 기도하는데, 다윗의 마음이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들판에서 홀로 양을 칠 때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늘 함께 하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임을 깨닫고 마음 깊은 곳에서 찬양이 퍼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시 57:7-1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이 감사로 다윗의 삶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발에 향유 옥합이 부어지는 것 때문에 좋으셨던 것이 아닙니다. 그 여인이 감사함으로 허락받은 은혜를 누리게 된 것이 좋으셨던 것입니다.
47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은혜를 많이 받아서 감사를 할 수 있지만 감사가 있기에 은혜가 은혜가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여인의 이 감사가 부럽습니다. 그 눈물이 부럽습니다.
저는 이런 고백이 우리 교우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듣고 싶습니다.
모든 성도들도 이런 감사로 하나님의 은혜와 삶의 축복을 간증하며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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