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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교를 향해 나아가는 현대 기독교(1) 박순용

by 【고동엽】 2022. 1. 28.

배교를 향해 나아가는 현대 기독교(1) 박순용(하늘영광교회 담임목사, 예장합동) 실용주의의 함정, 번성신학

글 싣는 순서

1.실용주의의 함정, 번성신학

2.교회 속에서의 실용주의 형성 배경

3.예수 믿는 이유를 완전히 바꾼 실용주의

4.성공을 뛰어넘는 인생의 목적

5.예수님이 배격하신 성공주의에 빠진 기독교

6.현대 교회의 마케팅 원리, 소비자 중심주의의 형성 배경

7.복음을 파는 상점이 된 교회

8.실용주의적 마케팅 원리 적용의 결과

9.성공이라는 우상을 좇는 오늘날의 교회

10.대형교회의 진실

11.숫자적 성공에 목매는 교회 지도자들

12.성경적 성공에 반하는 마케팅으로 이룬 성공

13개혁과 부흥을 향한 갈구 오스 기네스는 “지금까지 교회가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인 가장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은 바로 경영과 치유학적 운동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로 말하면, 치유학적 운동이란 심리학이고, 경영은 실용주의이다. 결국 아무 비판 없이 실용주의와 심리학을 받아들인 교회에 대한 지적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앞 다투어 따르는 현대적인 세상 정신이 있다면, 바로 심리학과 실용주의이다. 실용주의는 성공과 만족이라는 대단히 매력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인간의 본성적 경향성에 부합하는 우리에게 매우 친밀한 사상이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의 적극적 옹호 아래 교회에 수용될 수 있었고, 아무 저항 없이 교회 안에 횡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교회 안에서 성실하게 진리 왜곡을 수행한 틀림없는 세상 정신이다.

 

이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고린도후서 본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바울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던 바울이, 어느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이후 바울의 삶은 세상 번성과는 상관없는 쪽으로 흘러갔다. 고린도후서 11장과 12장은 신앙을 가진 이후 바울의 형편이 얼마나 어렵게 되었는지 잘 보여 준다.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바울의 삶은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더구나 본문을 보면, 육체의 가시에 대한 고백이 나온다. 그 문제로 바울은 하나님께 세 번씩이나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바울이 받은 응답은 그 가시를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의 말씀대로 바울은 여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세상 떠나는 그날까지 수용하며 살아야 했다. 그것들은 모두 바울이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결코 겪지 않았을 일들이었다.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세상에서 번영을 누리는 비결로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세상에서 번성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지만, 번성하는 것을 신자의 보편적인 삶이나 목표로도 말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예수님과 사도 바울을 위시하여 사도들도 잘 전해 주었다. 그러나 실용주의를 수용한 오늘날 기독교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예수 믿으면 잘 되고 번성한다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세상 속에 없다. 승승가도를 달리던 바울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험난한 가시밭길로 변했지만 바울은 불평하지 않았다. 바울의 삶 속에 이전에는 없던 비밀스런 기쁨이 생겼기 때문이다. 누리던 많은 것을 잃고, 여러 약한 것들과 함께 고난 속에 살지만, 바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 만물의 주권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울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육체의 가시가 그대로 있고, 자신의 원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바울의 삶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었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비밀이며, 그리스도인의 존재의 영광이고, 그리스도인이 누려야 할 삶의 복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는 바울이 경험한 그런 비밀은 누리지 못해도 괜찮다. 그저 지금 내 삶의 어려움이나 빨리 해결해서 마음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태도로 신앙생활을 한다. 바로 실용주의라고 하는 세상 정신을 따라서 교회에 나오고, 예수를 믿음으로써 그러하다.

 

그러므로 자신이 실용주의라는 세상 정신에 물들어 있는지 알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면 된다. 바로 “왜 내가 예수를 믿는가?”라는 질문이다. 왜 주일이면 교회당에 나가 예배를 하고, 교회에서 이것저것 봉사를 하고, 헌금을 드리고 있는 것일까? 만일 여러분의 솔직한 대답이 그렇게 함으로써 뭔가 인생이 더 잘 풀어지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라면, 여러분은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와 상반된, 실용주의에 물든 왜곡된 진리를 따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문제와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지 않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가셨을 때, 무엇인가 간절히 구했는데도 들어주시지 않았을 때, 믿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결과가 좋지 않을 때, 혹시라도 ‘더 이상 하나님을 믿고 싶지 않다’하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가? 이런 마음이나 태도가 여러분 속에 있다면, 여러분은 제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다. 기독교, 하나님, 믿음, 순종, 이런 단어는 그저 허울일 뿐, 여러분이 믿는 본질은 실용주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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