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연구는 어떻게 진행되어왔나(송영목 교수)
바울 신학 연구의 역사를 살펴보면(historical survey), 현재까지 바울 신학이 어떤 논점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어떤 연구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옥중서신(the imprisonment letters)을 포함하여, 소위 ‘제2 바울 서신’(deutero Pauline letters) 모두 바울이 쓴 것을 전제로 한다.
1.1. 교회 개혁시기
교회 개혁 이전 시기의 바울 이해를 간략히 살펴보면, 2세기의 이단 말시온은 바울의 사상 중에 새롭고 과격한 요소에 초점을 맞추면서 유대주의와 연속성이 있는 것을 제해버리기도 했다. 바울은 영지주의자로부터 숭상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유대 크리스천으로부터는 미움을 받기도 했다. 교회 개혁 이전에 어거스틴은 바울 서신에서 원죄, 인간의 자유의지의 부족함, 그리고 이중예정(double predestination)을 발견했다. 교회개혁가들은 어거스틴의 전통 속에서 ‘바울의 이름으로’ 로마 카토릭과 싸웠다고 할 수 있다.
바울 신학이라는 건축물의 입구를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에서 찾았다. 가톨릭의 율법주의와 신비주의와의 심각한 갈등과 관련해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칭의에 대한 법정적 진술이 결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루터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과 그분을 가르쳐 믿게 하는 것은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의 의미와 관련해서 모든 신약 성경 구원 교리에 대한 유일한 원리요 판단 기준인 동시에, ‘정경 안의 정경’을 위한 기준이기도 했다.
칼빈에게 있어서, 바울의 이신칭의는 어떤 말씀이 정경이 되게 하는 주요 원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과의 투쟁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이신칭의는 전체 복음을 이해하는 열쇠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 후 교회 개혁의 이념이 약화되면서, 칼빈과 루터에게서 근원한 전통에 변화가 생겼다.
개인의 구원과 관련하여 구원의 순서(ordo salutis)에 관한 문제들이 점차 구원역사(historia salutis)에 대한 문제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루터와 칼빈에게 있어서 모든 강조점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서 일어난 구속사적 사건에 두어졌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경건주의, 도덕주의, 신비주의의 영향 하에 그 강조점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고 있는 구원의 개인적 할당-적용 과정과 그것이 신자의 개인 삶 속에서 일어나는 신비적-도덕적 결과로 이동되었다. 그러므로 바울 서신 해석에 있어서 강조점은 법정적인 양상으로부터 영적이고 윤리적인 양상으로 이동되었다.
1.2. 역사 비평적 해석 시기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일어난 역사비평적 해석은 바울 서신 해석에도 영향을 미쳤다. 역사비평은 바울의 메시지를 객관적인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해석하려고 시도했지만, 실상 해석자 자신의 시대정신에 따라 재해석하는 경향이 많았다. 이것은 ‘바울의 현대화’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은 바울 서신을 창문으로 삼아 그 이전에 있었던 바울 서신의 전승, 자료, 양식, 편집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결국 통일된 전체적인 바울 신학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말았다.
1.3. F.C. Baur (1792-1860)
튀빙겐 학파의 수장 격인 바우어는 초대 기독교의 역사를 헤겔(1770-1831)의 변증법적 철학에 기초하여 해석했다. 그는 바울의 설교의 핵심을 기독론이 아닌, 바울의 성령에 대한 개념과 성령과 육체의 대결적인 주제에서 찾았다. 바우어는 이것을 유한자(육, 肉)와 대립하고 있는 무한자-절대자(영, 靈)와의 관계로 생각했다.
바우어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의식(반, 靈의 자유를 강조하는 헬라식 기독교)이 그 당시의 율법과 배타적인 유대주의에 묶여 있었던 초대 기독교(정, 베드로와 야고보와 같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와 대조 관계 속에 발전했다고 본다.
이런 갈등은 1세기 말(에서 2-3세기)에 이르러 종합적인 보편주의-가톨릭주의(synthetic Catholicism)를 통해서 해소되었다(합, 사도행전과 목회서신에 나타난 사상). 바울은 율법으로부터 분리된 헬라적-보편적인 기독교 신앙의 옹호자가 되었다. 이 보편주의는 다시 교회의 계급주의(the ecclesiastical hierarchical idea)와 결탁하게 된다.
바우어는 ‘롬, 갈, 고전후’ 이렇게 4서신만 바울의 것으로 돌린다. 이유는 그 외의 서신은 후대의 종합된 상태 즉 합(合)의 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 서신은 물론 신약 성경 전체는 바우어가 주장하듯이 초대교회 안에 헤겔의 변증법식 도식이 적용될 만한 대결구도가 있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1.4. 자유주의 (liberalism)
바우어 이후 헤겔의 변증법이 아니라, 바울의 성령론과 헬라의 인간론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대두되었다(K. Holsten, H. L?demann [1872], O. Pfeiderer, H.J. Holtzmann [1897] 등). 이들은 바우어처럼 영(spirit)을 유한한 인간적인 것의 반대 개념으로 보지 않았다. 대신 헬라적인 의미의 영과 육의 대결처럼, 영을 억눌러야 할 감각적인 본성의 반대 개념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자들은 바울 신학의 강조점을 윤리적인 것에 두었고, 대립하고 있는 영과 육의 신비적인 의미에 두었다.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은 윤리적인 경향을 지닌 신비주의이다. 예수님의 설교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선포는 이상주의적인 도덕에 초점이 맞추어 졌다. 이들은 구속사적 사건의 의미를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종교적 개념으로 바꾸었다. Holtzmann 이후에 이러한 자유주의적 해석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그 결과 바울의 사상의 유대적인 기원에 주목하게 되었다.
1.5. William Wrede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메시아 비밀’로 유명한 브레데는 1904년에 ‘Paulus’(ET 1907)에서 바울신학은 바울 개인의 종교적인 체험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구원의 행위가 그 중심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것을 헬라주의가 아니라, 랍비 유대주의 특별히 묵시문학적인 종말론에 근거해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울이 밝히는 기독론은 역사적 예수님과는 무관하며, 그 당시의 구원자 신화의 내용을 나사렛 예수님에게 뒤집어씌운 결과라고 보았다.
바울의 그리스도관은 회심 전에 가지고 있었던 메시아 사상에서 이끌어 낸 것이라고 본다(contra 메이천, 1988:247). 브레데가 볼 때,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아니라 바울이 ‘기독교의 진정한 창시자이다’(contra 메이천, 1988:34, 39)[ 바울을 ‘진정한 기독교의 창시자’ 혹은 ‘제 2의 창시자’로 보는 것은 신약과 교회사에서 바울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말이기는 하지만, 예수님과 바울의 연속성을 무시하는 것이요, 베드로, 요한, 누가와 같은 사람들의 공헌을 무시하는 불공평한 처사이다. 거의 자신의 이야기로 점철된 행 16:13-28절을 더한다면, 바울이 기록한 것은 신약 성경의 거의 삼분지 일을 차지하는 셈이 된다 (카슨, 무, 모리스, 1993:243).].
브레데는 칭의의 신학을 바울의 중심 주제로 보지 않고, 대신 갈라디아와 로마에 있었던 유대주의자와 싸우기 위해 도입한 전투무기이며 하나의 가르침으로 보았다.
1.6. 종교사학파
바울의 설교에 나타난 여러 가지 주제들을 헬라의 문헌과 철학적 세계관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려는 종전의 입장 (예를 들면, 영과 육의 반위 관계)과는 달리,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종교사학파는 헬레니즘 시대의 대중적인 종교 개념과 현상, 특별히 이른바 동방문화의 영향 아래 서방 종교 안에 일어났던 종교적 혼합주의, 곧 신비 종교와 제의를 통해 뚜렷이 드러난 혼합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Cumont, Rohde, Dieterich, Reitzenstein, W. Bousset, U. Schnelle [1983]).
이들 신비종교는 기독교 시대의 초기에 신비적-초월적인 동방사상과 보다 구체적인 내적 신앙을 추구하는 서방종교와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 진 것이다. 이들 신비 종교는 제의 신화(cultus-myth) 가운데 숭배되고 있던 신적인 인물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 신화적인 구속자는 부활하며 대적을 물리치고 불멸의 구원을 주는 자로 묘사된다(참고. A.Y. Collins의 Combat myth). 또한 물이나 피를 뿌리는 것, 거룩한 옷을 입는 것, 어떤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성례전을 통하여 사람은 신적인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때때로, 물질에 예속된 영혼이 영지(gnosis)를 수단으로 하여 하나님께 복귀한다는 헬라의 영지주의 사상의 영향을 강조한다. 하지만 종교사학파의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없고, 팔레스틴의 유대적 배경을 띤 기독교와도 무관한 주장이며, 바울을 가장 위대한 영지주의 사상가로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근거하고 있다. 동방 종교는 혼합주의적이었지만, 바울은 시종일관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배타성을 강조한다.
1.7. 종말론적 해석
종교사학파의 입장에 철저히 반대한 사람은 알버트 슈바이처이다. 슈바이처는 바울 신학의 열쇠를 종말론적인 동기에서 찾는다. 1911년 ‘바울 연구사’ (Paul and his interpreters, 1912년에 영역)와 1930년의 ‘사도 바울의 신비주의’에서 바울의 설교의 중심에 그리스도-신비주의 (Christ-mysticism)가 놓여있다고 주장한다. 이 용어의 의미는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방도를 뜻한다. 이 신비는 헬라주의적 이원론이 아니라, 유대 종말론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님과 바울의 메시지는 종말이 임박하다는 유대 묵시문학적 배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서 이미 종말이 실현되었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 즉 육의 부활과 최후 심판, 신천신지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것이 바울에게도 문제였다. 그렇다면 이것을 바울은 어떻게 해결했는가?
바울은 지금 종말의 침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죽은 자의 부활과 심판과 같은 미래적인 사실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슈바이처는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이미’와 최후의 완성될 종말에서 ‘아직 아니’ 사이에 있는 이 불일치를 극복하기 위해서 ‘바룩의 묵시록’과 ‘제 4에스라서’에 나타나는 종말론적인 도식(즉 하나님의 통치 이전에 메시아가 통치한다는 사상)과 결탁하고, 예수님의 기대와는 달리 메시아 왕국이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계시 이전에 도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본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된 메시아 왕국에서 자연과 초자연적 세계가 서로 겹친다고 보았다.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 부활의 존재 양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의 존재요, 연대인격(joint-personality)이요, 초자연적인 요소를 이미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세례와 성찬을 통하여 이러한 신비로운 연합의 체험은 새롭게 된다. 이것은 헬라식의 신비주의가 아니라, ‘종말론적인 그리스도-신비주의’(eschatological Christ-mysticism thought)이다. 슈바이처는 이것을 바울 신학의 중심으로 보았다.
바울의 윤리적 가르침 전체는 바로 이 신비적인 연합과 관련된다고 보았다. 유대적 배경에 근거하여 바울 신학을 바라보아야 함을 일깨워 준 기여는 있지만, 슈바이처의 종말론적인 사상은 메시아의 통치와 하나님의 통치를 날카롭게 구분하는 것, 유대 종말론적을 마치 통일된 것으로 단순화 시키는 동시에 바룩의 묵시와 제 4에스라와 같은 일부 자료에 호소하는 것 등은 문제가 된다.
1.8. 불트만
불트만 (1929, 1934)은 헬라의 영지주의 사상을 중요시하기에 종교사학파와 관련이 있다. 영지주의는 바울의 기독론에 특별한 영향을 미쳤는데, 바울의 기독론의 종교사적 배경은 더 이상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신적 인물에 대한 제의 신화가 아니라, 영지주의의 신화론이 말하는 우주적인 드라마라고 본다. 불트만에게는 육과 성령 사이의 실존적인 결단의 문제가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영지주의 신화론에 의하면, 구원자는 절대자의 선재적 아들이며, 참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빛의 세계로부터 하강하여, 친히 원수의 권세로 내려가며, 죽은 자에게 생명의 불을 붙이고, 그들을 죽음에서 소생시켜 자기에게로 인도한다.
그래서 불트만은 피조물과 아담의 타락(롬 5:12-17; 8:9-12), 빛과 어둠의 대조 (롬 13:11-13; 살전 5:4-6), 이 세상을 다스리는 사단의 권세(고전 2:6-8; 고후 4:4), 결혼의 위험 부담 (고전 7:33-34, 38) 등은 영지주의와 관련 있다고 본다.
그러나 불트만이 구원자 예수님을 기독교 이전의 영지주의적 구원자 신화개념에서 찾는 것은 극단적인 오해이다. 따라서 불트만에게 남아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역사성을 부인한 고대 이방 신화라는 껍데기뿐이다. 도대체 바울 신학 연구의 많은 경우에 있어서 볼 수 있듯이, 바울의 사상의 근저에 흐르는 구약과 유대적 배경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불트만의 주장은 약간 수정된 형태이기는 하나 그의 제자들인 Haenchen, K?semann(1933), Schmitals, Fuchs, Bornkamm, Vielhauer 그리고 Brandenburger 등에 나타난다.
1.9. 구원사적 해석
Oscar Cullmann(1965)은 ‘그리스도와 시간’과 ‘구원의 역사’에서 때로는 모형론적으로, 구-신약을 약속과 성취로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창조부터 종말에 이르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중심으로 본다. 그리고 ‘이미와 아직 아니’의 구도로 종말을 이해한다. 그는 신약 전체는 물론 바울 신학에서도 이러한 구원론적인 구도가 중심임을 강조한다.
J. Munck (1954: Paul und die Heilsgeschichte), H.N. 리델보스, F.F. 브루스 (1992:80-85)도 그리스도 사건으로 종말론적이고 우주적인 구원이 도래했음을 강조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구속사는 합리적으로 개발해 낸 단순한 신학 체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울 자신이 전인격적으로 포함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있던 하나님의 구속 행위이다.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의 실재와 선포는 모두 예수님 자신에게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바울은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마련해 주신 새로운 상황 속에서 이 실재를 전달하는 자일뿐이다(바울 신학의 역사적 발전을 위해서는 리델보스, 1985:13-51 R?is?nen, 2004:207-214을 보라, 참고로 최근의 바울 연구에서는 새로운 해석 방법론이 적용되는데, 수사비평 (H.D. Betz, G.A. Kennedy, S. Stowers, F. Tolmie, E. Cornelius, R. Lemmer, J.N. Vorster), 사회 수사학 (V.K. Robbins, D.A. DeSilva, H.J.B. Combrink, B. Witherington 3 [1998:90]), 서신 분석 (epistolary analysis; J. Weima), 간본문적 해석 (R. Hays) 그리고 사회(과학)적 해석 (G. Theissen, W. Meeks, B.J. Malina, J. Neyrey, A.J. Malherbe, S. Joubert)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1.10. 바울의 유대적 배경과 ‘새 관점 (new perspective)
1.10.1. 샌더스 이전의 새 관점 주창자들
16세기 교회개혁 이래, 바울 신학연구에 ‘새 관젼 (James Dunn의 용어)만큼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없다(Sprinkle, 2005:21; 김세윤, 2002:15). C.G.. Montefiore(1894: First impressions of Paul), G.F. Moore(1921: Christian writers on Judaism; 1927: Judaism in the first centuries of the Christian Era: the age of the Tanaim), W.D. Davies(1948: Paul and Rabbinic Judaism: some rabbinic elements in Pauline theology), H.-J. Schoeps(1959), K. Stendahl(1963: Paul among Jews and Gentiles: and other essays), G. Howard(1970: Romans 3:21-31 and the inclusion of the Gentiles), J.B. Tyson(1973: Works of the law in Galatians), N.A. Dahl(1977: Studies in Paul: theology for the early Christian mission), N.T. Wright(1978: The Paul of history and the apostle of faith), H.S. Sandmel(1979: The genius of Paul: a study in history), H. R?is?nen(1983: Paul and the law) 그리고 H. Maccoby(1991: Paul and Hellenism)는(주장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일치하게) E.P. Sanders의 새 관점을 위한 길을 닦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개신교 학자들이 기독교가 유대교보다 우월함을 증명할 때, 바울이 율법주의적 유대교를 비판했다고 본 마틴 루터의 방식을 따라 바울 당시의 유대교에 대해 오해했다고 본다. 이들 중 일부는 바울이 反 유대교적인 성향을 보이고, 유대교를 율법종교 (legalistic religion)로 간주하는 것은 그가(헬라 사상과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헬라파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정통(orthodox) 유대교를 오해하고 무시해 버린 결과라고 본다.
하지만 팔레스틴의 ‘정통’ 유대교와 디아스포라의 ‘이탈된-변질된’ 유대교라는 새 관점을 견지하는 학자들의 이분법적인 구분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많다. 물론 바울 당시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율법관이 팔레스틴의 유대인들보다 자유로웠을 가능성은 많지만, 광범위한 헬레니즘의 영향을 고려한다면 그 정도의 차이가 심각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의 전도를 방해한 무리는 히브리어를 사용한 팔레스틴의 유대인뿐 아니라, 헬라어를 사용하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1세기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전념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특권에 열정을 불태우는 신기하리만큼 통일된 민족이었다고 볼 수 있다(참고. Thielman, 1993:531; 메이천, 1988:223).
1.10.2. 샌더스의 새 관점과 언약적 율법주의
특별히 W. Davies의 영향을 받은 E.P. Sanders는 1977년 ‘Paul and Palestinian Judaism’라는 책으로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 책은 샌더스가 듀크 대학 교수로 있을 때 쓴 것이다. 그는 BC 200-AD 200년경의 팔레스틴 유대교의 패턴(pattern)을 연구하여 기독교의 패턴과 비교했다. 그는 바울이 유대교를 행위구원의 율법종교로 이해했다고 보는, 특별히 독일의 (루터파)학자들(F. Weber, E. Sch?rer, W. Bousset, R. Bultmann, E. K?semann, H. H?bner 등)에게서 反 셈족주의(Anti-Semitism)의 경향을 발견했다(참고. 던, 2003:468).
불트만(1993:72-73)은 유대교에서 회개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공적으로 변했음을 4에스라서 8:47-49절을 인용하면서 증명한다. 더 나아가 결국 하나님에 대한 관계 전부가 결국 공로사상 아래 놓이게 되므로 유대교 신앙도 그렇게 되었다고 본다. 유대교의 신앙은 원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의 복종이었으나, 점차 응보 및 공로 신앙으로 변한 것이다.
대신 샌더스는 바울 신학의 틀에서 유대교를 바라보지 않고, (외경, 위경, AD 200년 경의 초기 랍비 문서 [탈무드, 미드라쉬 등], 쿰란 문서를 조사함으로써: 예. b. Yoma 87b; Pirque Aboth, 1-3; 1QS 11:11-15; 4QMMT; 그러나 ‘4에스라서’는 예외로 함) 유대교를 바라본 결과, 바울 당시의 팔레스틴 유대교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 1977:75)라고 정의 내렸다.
‘언약적 율법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바 그 구조 혹은 패턴은 다음과 같다 (샌더스, 1977:422): (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은혜로 선택했고, (2) 이스라엘이 구원의 언약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머물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고, (3) 이 율법은 하나님의 선택을 지탱하겠다는 약속을 담고, (4) 이스라엘은 이 율법에 순종해야 했고, (5) 하나님은 순종에는 상(reward)을, 불순종에는 벌을 주시고, (6) 율법을 지키지 못할 때 임하는 벌을 면하기 위해서 율법은 속죄(atonement)의 제사와 희생이라는 수단을 제공하고, (7) 속죄(atonement)는 언약 관계를 지속-회복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8) 순종과 자비에 의해서 언약관계 속에 있는 사람은 종국에 구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오직 유대교와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을 부인할 경우에만 언약 공동체에서 제외된다. 그러므로 샌더스에 의하면, 바울은 이런 (올바른)유대교를 오해하여 율법을 지켜서 공로를 쌓고 결국 의롭게 되는 율법종교로 잘못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참고. 던, 2003:250; 471).
샌더스가 붙인 ‘언약적 율법주의’ (혹은 언약적 신율주의, covenantal nomism)에서 ‘nomism’이라는 말에서 ‘ligalism’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조금이나마 극복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샌더스는 이 언약적 율법주의와 개신교 학자들이 묘사하는 유대주의의 구원론 사이에 거의 유사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샌더스에 의하면, 바울이 유대주의를 포기한 것은, 새로운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나은 무언가(something better)를 발견했기 때문이지, 율법주의적 경건(nomistic piety)의 열등함 때문은 아니었다. 바울이 거부하면서 공격한 ‘율법의 행위’(works of law)는 구원과 의를 획득하기 위한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할례와 음식법’과 같은 것으로서 이방인 선교 시에 기독교가 유대교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바울의 유대주의 비판은 유대주의의 율법주의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이전 종교에 대한 종말이었다. 바울이 유대교를 바라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는 점이다. 바울이 율법의 행위(works of law)를 비판한 것은 율법주의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잘못된 정의였다. 즉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 하나님의 백성을 정의하는 표시(defining mark)이다(참고. 샌더스, 1998:226-240; contra 슈라이너, 1997:141; 그리고 B.L. Martin, R.H. Gundry).
참고로 샌더스 보다 1년 후인 1978년에 출판한 글(The paul of history and the apostle of faith, TynBul, 61-88)에서 N.T. Wright는, 바울이 비판한 것은 유대교의 행위로 인한 칭의라는 잘못된 견해가 아니라, 유대 민족적 의(Jewish national righteousness)였다. 즉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후손이라는 사실, 그리고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언약 백성이며 구원의 특권을 보장받고 있다는 잘못된 관념을 바울이 비판했다는 것이다.
샌더스의 책을 거의 의존하지 않고도 아주 유사함 주장을 펼친 N.T. Wright에 의하면, 루터와는 반대로 바울은 이신칭의로서 ‘유대인의 민족적인 자만’ (Jewish national pride)을 질타했지, 행위 구원-도덕적 자기 의존 (moralistic self-reliance)을 표적으로 삼지 않았다(참고. Sprinkle, 2005:27-28).
샌더스에 의하면, 예수님과 바울에 의해 공격을 받은 유대주의는, 비록 몇몇 유대인 개인에게는 그것이 올바른 사실적 묘사이지만, 1세기 팔레스틴의 정확한 유대교의 유형(type)이나 패턴(pattern)이 아니다. 오히려 언약적 율법주의가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이전의 팔레스틴 유대교의 참 모습이다.
1.10.3. 제임스 D.G. 던
Durham대학교의 J.D.G. Dunn은 샌더스의 견해를 약간 수정하여, 바울이 그 당시 팔레스틴 유대교를 오해하지 않았고, 그 유대교를 전제하며, 그것에 반응했다고 본다(참고. N.T. Wright). Dunn (2003:490, 496)은 ‘율법의 행위들’이 개신교에서 전통적으로 이해되었듯이 ‘의를 얻기 위한 시도로서 행해진 선한 행위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분짓는 ‘신분표지들’ (identity markers)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Dunn은 ‘율법의 행위들’이 특히 할례, 음식법, 절기법을 지칭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1세기 유대주의 안에서는 할례, 음식법, 절기법이 유대인의 정체성을 표시하는 역할을 했으며 유대교로 개종하는 자들에게 유대인처럼 사는 행위들로 요구되었으며, '율법의 행위들'은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를 규정하고 이방인들과 유대인을 구분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주장한다.
Dunn 2003:470, 472)은 샌더스가 지나친 호교론적인 문체를 사용하여 호소력을 극대화시키지 못했으며, 또한 바울 서신이 근본적으로 유대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Dunn(1990:188)에 의하면, 샌더스는 바울과 유대교를 분리시킴으로써 그 결과 불신 유대인 동족에 대한 바울의 근심(롬 9:1-33)과 이방인 성도가 유대인에게 빚을 지고 있음에 관한 바울의 관심(롬 11:17-24)은 수수께끼가 되고 말았다.
Dunn (1990:191-96)에 의하며, 바울이 '율법의 행위들'(works of law)을 비판한 것은 선행을 통한 구원의 획득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부분적으로 구원은 민족적인 이스라엘에 소속됨과 그러한 지위(status)의 표지(badge)로서의 율법을 준수함이라는 신념을 비판한 것이다(참고. N.T. Wright). 결과적으로, 율법에 대한 바울의 긍정적인 진술과 부정적인 진술은 조화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데(contra R?is?nen and Sanders, 참고. 던, 2003:212), 이유는 부정적인 진술은 율법 자체를 향하지 않고, 오히려 율법에 대한 민족적인 오용(nationalistic misuse)을 향하기 때문이다(Dunn, 1990:200).
요약해 보면, 이러한 최근 연구는 1세기 유대교 내의 율법과 율법의 성격에 대한 ‘새 관젼(new perspective)을 형성했다. 이 새 관점에 의하면, 1세기 유대교는 이스라엘을 언약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선택(God's election)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의 백성됨의 근거는 율법에 규정된 행위들을 준수함이 하니라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이다. 유대교는 율법을 준수하는 인간의 행위를 통해 쌓여진 공로적 의를 힘입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신학을 가진 율법주의적 행위 구원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선택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믿는 은혜의 종교이다.
새 관점에 동의하는 학자들은 ‘율법의 행위들’을 통한 칭의가 율법주의적 또는 공로주의적 유대교의 중요한 구원론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그것을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율법의 행위들’이 마틴 루터가 잘못 이해한 율법준수를 통한 공로적 선한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참고. 최흥식, 토라학교 홈페이지 교수 자료실).
하지만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바울이 ‘율법의 행위들’을 칭의의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과 무능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 관점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1 세기 유대인들은 완벽한 율법준수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울 자신도 율법을 흠 없이(without blemish) 지켰다고 말한다(빌 3:4-6). 바울이 율법을 통해 주어지는 자신의 의를 부정하는 것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력 때문도 아니요 도덕적 공로를 통한 자기 의를 추구하는데 대한 죄책감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통한 의의 절대적 가치성이 율법을 통해 주어지는 자신의 의를 무가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빌 3:7-9). 그리고 바울에게는 ‘율법 신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 샌더스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한 선교적인 이유 때문에, 만약 유대적으로 보이는 율법인 할례나 음식법, 안식일 준수, 정결법 등을 강조한다면 이방인 선교에 방해가 되기에 마치폐지된 것처럼 말했다고 주장한다.”
1.10.4. 새 관점에 대한 평가
여기서 Sanders와 Dunn으로 대변되는 ‘새 관젼에 관한 간단한 평가가 필요하다. 새 관점 주창자들이 사용한 자료는 1세기 팔레스틴 유대교를 재건하기에 과연 객관적인가? 이들이 인용하는 외경, 위경, 초기의 랍비 문서, 쿰란 문서들이 1세기 팔레스틴 유대교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가?
예를 들어, 이들은 “하나님은 의인에게 자비를 베푸시는데 그들의 선행 때문이다”라고 밝히는 유대인의 공로 사상을 반영하는 ‘제 2에녹’, ‘제 4에스라서’, ‘Jubilees 15:3-4’, 요세푸스의 ‘Apion 2:174’, ‘Sirach 44:19-21’, ‘CD 3:2’, ‘1QS’, ‘1QH’와 ‘12족장의 유언’ 등을 정당히 다루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위해 자료를 취사선택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샌더스의 우산 개념(umbrella concept)인 언약적 율법주의에 비가 세는 구멍이 많다. 그리고 이들의 주석은 세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그럴듯한 말로 주관적이고 임의로 주석하는 경우가 있다(보라. Witherington, 2004:103; 슈라이너, 1997:70; 참고. D.A. Carson, P. Enns, M. Bockmuehl).
최근의 자신의 사회-수사학적 로마서 주석에서 샌더스의 새 관점을 잘 다루면서 평가하고 있는 Witherington(2004:106)의 말을 들어보자: 바울은 자신의 신학에서 샌더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언약적 율법주의 개념에 가깝다. 물론 바울은 은혜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도권을 믿는다. 이 경우는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그리고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법’(the Law of Christ)을 고수하는 것 혹은 ‘믿음의 복종’(the obedience of faith)은 예수님의 최후 심판대 앞에 서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기 원하는 모든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선택사항이 아니다.
무엇보다 바울이 유대교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을 인정했더라도, 신인협동설적인 율법주의적 유대교를 반대했다는 증거가 바울 서신에 나타나고 있음에도 새 관점 주창자들은 애써 무시했다(롬 3:27-4:8; 9:30-10:8; 빌 3:2-11).
김세윤 (2002:141)의 다음 진술에 주목해 보자: “제 2성전 유대교에서 행위-의의 모든 요소를 부인하는 쪽으로 너무 많이 치우쳤던 추가 이제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 그것이 마침내 평형 상태를 발견할 때, 우리는 유대교를 순전한 행위-의의 요소를 부인하는 새 관점주의자들도 옳지 않으며, 유대교는 행위-의의 요소를 지닌 언약적 율법주의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참고. R?is?nen). ‘신인협력적 율법주의’(synergistic nomism)가 ‘언약적 율법주의’보다 바울 당시의 유대교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의일 것이다(참고. T. Eskola, R.H. Gundry, T. Laato, D.A. Hagner).
‘율법의 행위’라는 문구가 율법주의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바울이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할 때, 그는 율법주의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롬 3:21; 9:32). 즉 바울이 아무도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는 의로워질 수 없다고 말할 때, 이런 말들은 율법이 명령하는 바를 행함으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참고. 슈라이너, 1997:142-143).
그리고 새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의 유대교 내에서 발생한 위선적인 율법주의적 유대교(legalistic Judaism)로의 사상적 변화를 무시하고 있지 않는가?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이 율법에 대한 충성을 새롭게 한 것은 좋았지만, 점차 헬레니즘의 침투에 대항하기 위해(일부 유대인은 이방 영향과 타협했지만) 그들의 구별된 정체성과 삶을 위해 율법 준수를 더욱 강요했던 것은 분명하다.
점차 유대인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면하기 위한 것, 더 나아가 의를 얻기 위한 것으로 발전해 버렸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새 관점과는 반대로, 여전히 많은 학자들은 1세기 유대교는 율법 준수를 통한 구원을 강조했고, 랍비 종교의 목표를 ‘공로로 상을 얻는 것’이었다고 본다(이전의 W. Sanday와 A.C. Headlam의 ICC ‘로마서 주석’ [1902]; 슈라이너, 1997:110-111; Cranford, Hbner 등).
환언하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보복의 율법’(the law of retribution)에 따라 심판하시기에 구원은 확실히 보장이 되지 않고, 따라서 회개와 믿음은 공로적인 일(meritorious works)이 되고 말았다(Thielman, 1993:530; 불트만, 1993:70-71; Test. Gad [갓의 유언], 5:10). 루터와 개신교의 전통적인 해석에서 주창해 왔듯이, 사도 바울은 사람(유대인)이 연약하여 온전히 율법을 준수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를 거부하여, 대신 행위구원에 집착한 유대인을 비판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개신교 학자들이 랍비 유대교를 논할 때, 그들은 율법주의적 유대교를 대항한 바울의 비판을 염두에 두면서 동시에 루터가 가톨릭을 바라본 그 렌즈를 통하여 해석했다(참고. Witherington, 1988:264). 다음의 명시적인 루터의 말을 들어 보자: “교회는 ‘유대교의 율법주의’에 의해 더럽혀졌다. 가톨릭교도들의 규칙들과 규율들은 유대인들을 연상시키고, 실제로 많은 것이 유대인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믿음과 행위와 관련된 교회의 가르침은 단순한 행위들로 하나님의 호의를 얻을 수 있다는 유대교의 오류의 재판 (再版)이었다”(재인용 in 던, 2003:468).
덧붙여서, 서신에서 바울은 크리스천이 아닌 유대주의자를 비판했는가 아니면 크리스천 중에서 유대주의적 경향을 가진 자를 비판했는가? 바울이 크리스천 유대주의자를 비판했더라도 이들의 사상의 근저에는 유대주의자와 일치하는 점이 있기에 사실 유대주의자를 비판한 것이다.
샌더스는 예수님 당시에 위선적이라고 비판 받은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에 대한 자료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데 이것은 정당한 자료의 사용이라고 할 수 있는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근거한 언약적 율법주의를 주장한다. 그러나 팔레스틴의 유대인에게 있어서 언약적 율법주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하는 것이며, 행위 구원적 요소가 결합한 변질된 형태의 율법주의일 뿐이다.
즉 1세기의 바울과 16세기의 루터는 1세기의 율법주의적인 유대교와 16세기의 행위 구원을 가르친 중세 가톨릭이라는 유사한 대적과 싸웠던 것이다. 여전히 새 관점은 이런 전통적인 주장을 뒤 엎을 만한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갈 2:16절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명확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참고. 보스, 1998:527).
바울 신학 연구의 역사를 살펴보면(historical survey), 현재까지 바울 신학이 어떤 논점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어떤 연구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옥중서신(the imprisonment letters)을 포함하여, 소위 ‘제2 바울 서신’(deutero Pauline letters) 모두 바울이 쓴 것을 전제로 한다.
1.1. 교회 개혁시기
교회 개혁 이전 시기의 바울 이해를 간략히 살펴보면, 2세기의 이단 말시온은 바울의 사상 중에 새롭고 과격한 요소에 초점을 맞추면서 유대주의와 연속성이 있는 것을 제해버리기도 했다. 바울은 영지주의자로부터 숭상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유대 크리스천으로부터는 미움을 받기도 했다. 교회 개혁 이전에 어거스틴은 바울 서신에서 원죄, 인간의 자유의지의 부족함, 그리고 이중예정(double predestination)을 발견했다. 교회개혁가들은 어거스틴의 전통 속에서 ‘바울의 이름으로’ 로마 카토릭과 싸웠다고 할 수 있다.
바울 신학이라는 건축물의 입구를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에서 찾았다. 가톨릭의 율법주의와 신비주의와의 심각한 갈등과 관련해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칭의에 대한 법정적 진술이 결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루터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과 그분을 가르쳐 믿게 하는 것은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의 의미와 관련해서 모든 신약 성경 구원 교리에 대한 유일한 원리요 판단 기준인 동시에, ‘정경 안의 정경’을 위한 기준이기도 했다.
칼빈에게 있어서, 바울의 이신칭의는 어떤 말씀이 정경이 되게 하는 주요 원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과의 투쟁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이신칭의는 전체 복음을 이해하는 열쇠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 후 교회 개혁의 이념이 약화되면서, 칼빈과 루터에게서 근원한 전통에 변화가 생겼다.
개인의 구원과 관련하여 구원의 순서(ordo salutis)에 관한 문제들이 점차 구원역사(historia salutis)에 대한 문제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루터와 칼빈에게 있어서 모든 강조점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서 일어난 구속사적 사건에 두어졌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경건주의, 도덕주의, 신비주의의 영향 하에 그 강조점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고 있는 구원의 개인적 할당-적용 과정과 그것이 신자의 개인 삶 속에서 일어나는 신비적-도덕적 결과로 이동되었다. 그러므로 바울 서신 해석에 있어서 강조점은 법정적인 양상으로부터 영적이고 윤리적인 양상으로 이동되었다.
1.2. 역사 비평적 해석 시기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일어난 역사비평적 해석은 바울 서신 해석에도 영향을 미쳤다. 역사비평은 바울의 메시지를 객관적인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해석하려고 시도했지만, 실상 해석자 자신의 시대정신에 따라 재해석하는 경향이 많았다. 이것은 ‘바울의 현대화’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은 바울 서신을 창문으로 삼아 그 이전에 있었던 바울 서신의 전승, 자료, 양식, 편집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결국 통일된 전체적인 바울 신학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말았다.
1.3. F.C. Baur (1792-1860)
튀빙겐 학파의 수장 격인 바우어는 초대 기독교의 역사를 헤겔(1770-1831)의 변증법적 철학에 기초하여 해석했다. 그는 바울의 설교의 핵심을 기독론이 아닌, 바울의 성령에 대한 개념과 성령과 육체의 대결적인 주제에서 찾았다. 바우어는 이것을 유한자(육, 肉)와 대립하고 있는 무한자-절대자(영, 靈)와의 관계로 생각했다.
바우어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의식(반, 靈의 자유를 강조하는 헬라식 기독교)이 그 당시의 율법과 배타적인 유대주의에 묶여 있었던 초대 기독교(정, 베드로와 야고보와 같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와 대조 관계 속에 발전했다고 본다.
이런 갈등은 1세기 말(에서 2-3세기)에 이르러 종합적인 보편주의-가톨릭주의(synthetic Catholicism)를 통해서 해소되었다(합, 사도행전과 목회서신에 나타난 사상). 바울은 율법으로부터 분리된 헬라적-보편적인 기독교 신앙의 옹호자가 되었다. 이 보편주의는 다시 교회의 계급주의(the ecclesiastical hierarchical idea)와 결탁하게 된다.
바우어는 ‘롬, 갈, 고전후’ 이렇게 4서신만 바울의 것으로 돌린다. 이유는 그 외의 서신은 후대의 종합된 상태 즉 합(合)의 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 서신은 물론 신약 성경 전체는 바우어가 주장하듯이 초대교회 안에 헤겔의 변증법식 도식이 적용될 만한 대결구도가 있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1.4. 자유주의 (liberalism)
바우어 이후 헤겔의 변증법이 아니라, 바울의 성령론과 헬라의 인간론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대두되었다(K. Holsten, H. L?demann [1872], O. Pfeiderer, H.J. Holtzmann [1897] 등). 이들은 바우어처럼 영(spirit)을 유한한 인간적인 것의 반대 개념으로 보지 않았다. 대신 헬라적인 의미의 영과 육의 대결처럼, 영을 억눌러야 할 감각적인 본성의 반대 개념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자들은 바울 신학의 강조점을 윤리적인 것에 두었고, 대립하고 있는 영과 육의 신비적인 의미에 두었다.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은 윤리적인 경향을 지닌 신비주의이다. 예수님의 설교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선포는 이상주의적인 도덕에 초점이 맞추어 졌다. 이들은 구속사적 사건의 의미를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종교적 개념으로 바꾸었다. Holtzmann 이후에 이러한 자유주의적 해석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그 결과 바울의 사상의 유대적인 기원에 주목하게 되었다.
1.5. William Wrede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메시아 비밀’로 유명한 브레데는 1904년에 ‘Paulus’(ET 1907)에서 바울신학은 바울 개인의 종교적인 체험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구원의 행위가 그 중심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것을 헬라주의가 아니라, 랍비 유대주의 특별히 묵시문학적인 종말론에 근거해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울이 밝히는 기독론은 역사적 예수님과는 무관하며, 그 당시의 구원자 신화의 내용을 나사렛 예수님에게 뒤집어씌운 결과라고 보았다.
바울의 그리스도관은 회심 전에 가지고 있었던 메시아 사상에서 이끌어 낸 것이라고 본다(contra 메이천, 1988:247). 브레데가 볼 때,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아니라 바울이 ‘기독교의 진정한 창시자이다’(contra 메이천, 1988:34, 39)[ 바울을 ‘진정한 기독교의 창시자’ 혹은 ‘제 2의 창시자’로 보는 것은 신약과 교회사에서 바울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말이기는 하지만, 예수님과 바울의 연속성을 무시하는 것이요, 베드로, 요한, 누가와 같은 사람들의 공헌을 무시하는 불공평한 처사이다. 거의 자신의 이야기로 점철된 행 16:13-28절을 더한다면, 바울이 기록한 것은 신약 성경의 거의 삼분지 일을 차지하는 셈이 된다 (카슨, 무, 모리스, 1993:243).].
브레데는 칭의의 신학을 바울의 중심 주제로 보지 않고, 대신 갈라디아와 로마에 있었던 유대주의자와 싸우기 위해 도입한 전투무기이며 하나의 가르침으로 보았다.
1.6. 종교사학파
바울의 설교에 나타난 여러 가지 주제들을 헬라의 문헌과 철학적 세계관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려는 종전의 입장 (예를 들면, 영과 육의 반위 관계)과는 달리,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종교사학파는 헬레니즘 시대의 대중적인 종교 개념과 현상, 특별히 이른바 동방문화의 영향 아래 서방 종교 안에 일어났던 종교적 혼합주의, 곧 신비 종교와 제의를 통해 뚜렷이 드러난 혼합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Cumont, Rohde, Dieterich, Reitzenstein, W. Bousset, U. Schnelle [1983]).
이들 신비종교는 기독교 시대의 초기에 신비적-초월적인 동방사상과 보다 구체적인 내적 신앙을 추구하는 서방종교와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 진 것이다. 이들 신비 종교는 제의 신화(cultus-myth) 가운데 숭배되고 있던 신적인 인물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 신화적인 구속자는 부활하며 대적을 물리치고 불멸의 구원을 주는 자로 묘사된다(참고. A.Y. Collins의 Combat myth). 또한 물이나 피를 뿌리는 것, 거룩한 옷을 입는 것, 어떤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성례전을 통하여 사람은 신적인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때때로, 물질에 예속된 영혼이 영지(gnosis)를 수단으로 하여 하나님께 복귀한다는 헬라의 영지주의 사상의 영향을 강조한다. 하지만 종교사학파의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없고, 팔레스틴의 유대적 배경을 띤 기독교와도 무관한 주장이며, 바울을 가장 위대한 영지주의 사상가로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근거하고 있다. 동방 종교는 혼합주의적이었지만, 바울은 시종일관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배타성을 강조한다.
1.7. 종말론적 해석
종교사학파의 입장에 철저히 반대한 사람은 알버트 슈바이처이다. 슈바이처는 바울 신학의 열쇠를 종말론적인 동기에서 찾는다. 1911년 ‘바울 연구사’ (Paul and his interpreters, 1912년에 영역)와 1930년의 ‘사도 바울의 신비주의’에서 바울의 설교의 중심에 그리스도-신비주의 (Christ-mysticism)가 놓여있다고 주장한다. 이 용어의 의미는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방도를 뜻한다. 이 신비는 헬라주의적 이원론이 아니라, 유대 종말론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님과 바울의 메시지는 종말이 임박하다는 유대 묵시문학적 배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서 이미 종말이 실현되었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 즉 육의 부활과 최후 심판, 신천신지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것이 바울에게도 문제였다. 그렇다면 이것을 바울은 어떻게 해결했는가?
바울은 지금 종말의 침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죽은 자의 부활과 심판과 같은 미래적인 사실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슈바이처는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이미’와 최후의 완성될 종말에서 ‘아직 아니’ 사이에 있는 이 불일치를 극복하기 위해서 ‘바룩의 묵시록’과 ‘제 4에스라서’에 나타나는 종말론적인 도식(즉 하나님의 통치 이전에 메시아가 통치한다는 사상)과 결탁하고, 예수님의 기대와는 달리 메시아 왕국이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계시 이전에 도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본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된 메시아 왕국에서 자연과 초자연적 세계가 서로 겹친다고 보았다.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 부활의 존재 양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의 존재요, 연대인격(joint-personality)이요, 초자연적인 요소를 이미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세례와 성찬을 통하여 이러한 신비로운 연합의 체험은 새롭게 된다. 이것은 헬라식의 신비주의가 아니라, ‘종말론적인 그리스도-신비주의’(eschatological Christ-mysticism thought)이다. 슈바이처는 이것을 바울 신학의 중심으로 보았다.
바울의 윤리적 가르침 전체는 바로 이 신비적인 연합과 관련된다고 보았다. 유대적 배경에 근거하여 바울 신학을 바라보아야 함을 일깨워 준 기여는 있지만, 슈바이처의 종말론적인 사상은 메시아의 통치와 하나님의 통치를 날카롭게 구분하는 것, 유대 종말론적을 마치 통일된 것으로 단순화 시키는 동시에 바룩의 묵시와 제 4에스라와 같은 일부 자료에 호소하는 것 등은 문제가 된다.
1.8. 불트만
불트만 (1929, 1934)은 헬라의 영지주의 사상을 중요시하기에 종교사학파와 관련이 있다. 영지주의는 바울의 기독론에 특별한 영향을 미쳤는데, 바울의 기독론의 종교사적 배경은 더 이상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신적 인물에 대한 제의 신화가 아니라, 영지주의의 신화론이 말하는 우주적인 드라마라고 본다. 불트만에게는 육과 성령 사이의 실존적인 결단의 문제가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영지주의 신화론에 의하면, 구원자는 절대자의 선재적 아들이며, 참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빛의 세계로부터 하강하여, 친히 원수의 권세로 내려가며, 죽은 자에게 생명의 불을 붙이고, 그들을 죽음에서 소생시켜 자기에게로 인도한다.
그래서 불트만은 피조물과 아담의 타락(롬 5:12-17; 8:9-12), 빛과 어둠의 대조 (롬 13:11-13; 살전 5:4-6), 이 세상을 다스리는 사단의 권세(고전 2:6-8; 고후 4:4), 결혼의 위험 부담 (고전 7:33-34, 38) 등은 영지주의와 관련 있다고 본다.
그러나 불트만이 구원자 예수님을 기독교 이전의 영지주의적 구원자 신화개념에서 찾는 것은 극단적인 오해이다. 따라서 불트만에게 남아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역사성을 부인한 고대 이방 신화라는 껍데기뿐이다. 도대체 바울 신학 연구의 많은 경우에 있어서 볼 수 있듯이, 바울의 사상의 근저에 흐르는 구약과 유대적 배경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불트만의 주장은 약간 수정된 형태이기는 하나 그의 제자들인 Haenchen, K?semann(1933), Schmitals, Fuchs, Bornkamm, Vielhauer 그리고 Brandenburger 등에 나타난다.
1.9. 구원사적 해석
Oscar Cullmann(1965)은 ‘그리스도와 시간’과 ‘구원의 역사’에서 때로는 모형론적으로, 구-신약을 약속과 성취로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창조부터 종말에 이르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중심으로 본다. 그리고 ‘이미와 아직 아니’의 구도로 종말을 이해한다. 그는 신약 전체는 물론 바울 신학에서도 이러한 구원론적인 구도가 중심임을 강조한다.
J. Munck (1954: Paul und die Heilsgeschichte), H.N. 리델보스, F.F. 브루스 (1992:80-85)도 그리스도 사건으로 종말론적이고 우주적인 구원이 도래했음을 강조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구속사는 합리적으로 개발해 낸 단순한 신학 체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울 자신이 전인격적으로 포함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있던 하나님의 구속 행위이다.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의 실재와 선포는 모두 예수님 자신에게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바울은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마련해 주신 새로운 상황 속에서 이 실재를 전달하는 자일뿐이다(바울 신학의 역사적 발전을 위해서는 리델보스, 1985:13-51 R?is?nen, 2004:207-214을 보라, 참고로 최근의 바울 연구에서는 새로운 해석 방법론이 적용되는데, 수사비평 (H.D. Betz, G.A. Kennedy, S. Stowers, F. Tolmie, E. Cornelius, R. Lemmer, J.N. Vorster), 사회 수사학 (V.K. Robbins, D.A. DeSilva, H.J.B. Combrink, B. Witherington 3 [1998:90]), 서신 분석 (epistolary analysis; J. Weima), 간본문적 해석 (R. Hays) 그리고 사회(과학)적 해석 (G. Theissen, W. Meeks, B.J. Malina, J. Neyrey, A.J. Malherbe, S. Joubert)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1.10. 바울의 유대적 배경과 ‘새 관점 (new perspective)
1.10.1. 샌더스 이전의 새 관점 주창자들
16세기 교회개혁 이래, 바울 신학연구에 ‘새 관젼 (James Dunn의 용어)만큼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없다(Sprinkle, 2005:21; 김세윤, 2002:15). C.G.. Montefiore(1894: First impressions of Paul), G.F. Moore(1921: Christian writers on Judaism; 1927: Judaism in the first centuries of the Christian Era: the age of the Tanaim), W.D. Davies(1948: Paul and Rabbinic Judaism: some rabbinic elements in Pauline theology), H.-J. Schoeps(1959), K. Stendahl(1963: Paul among Jews and Gentiles: and other essays), G. Howard(1970: Romans 3:21-31 and the inclusion of the Gentiles), J.B. Tyson(1973: Works of the law in Galatians), N.A. Dahl(1977: Studies in Paul: theology for the early Christian mission), N.T. Wright(1978: The Paul of history and the apostle of faith), H.S. Sandmel(1979: The genius of Paul: a study in history), H. R?is?nen(1983: Paul and the law) 그리고 H. Maccoby(1991: Paul and Hellenism)는(주장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일치하게) E.P. Sanders의 새 관점을 위한 길을 닦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개신교 학자들이 기독교가 유대교보다 우월함을 증명할 때, 바울이 율법주의적 유대교를 비판했다고 본 마틴 루터의 방식을 따라 바울 당시의 유대교에 대해 오해했다고 본다. 이들 중 일부는 바울이 反 유대교적인 성향을 보이고, 유대교를 율법종교 (legalistic religion)로 간주하는 것은 그가(헬라 사상과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헬라파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정통(orthodox) 유대교를 오해하고 무시해 버린 결과라고 본다.
하지만 팔레스틴의 ‘정통’ 유대교와 디아스포라의 ‘이탈된-변질된’ 유대교라는 새 관점을 견지하는 학자들의 이분법적인 구분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많다. 물론 바울 당시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율법관이 팔레스틴의 유대인들보다 자유로웠을 가능성은 많지만, 광범위한 헬레니즘의 영향을 고려한다면 그 정도의 차이가 심각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의 전도를 방해한 무리는 히브리어를 사용한 팔레스틴의 유대인뿐 아니라, 헬라어를 사용하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1세기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전념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특권에 열정을 불태우는 신기하리만큼 통일된 민족이었다고 볼 수 있다(참고. Thielman, 1993:531; 메이천, 1988:223).
1.10.2. 샌더스의 새 관점과 언약적 율법주의
특별히 W. Davies의 영향을 받은 E.P. Sanders는 1977년 ‘Paul and Palestinian Judaism’라는 책으로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 책은 샌더스가 듀크 대학 교수로 있을 때 쓴 것이다. 그는 BC 200-AD 200년경의 팔레스틴 유대교의 패턴(pattern)을 연구하여 기독교의 패턴과 비교했다. 그는 바울이 유대교를 행위구원의 율법종교로 이해했다고 보는, 특별히 독일의 (루터파)학자들(F. Weber, E. Sch?rer, W. Bousset, R. Bultmann, E. K?semann, H. H?bner 등)에게서 反 셈족주의(Anti-Semitism)의 경향을 발견했다(참고. 던, 2003:468).
불트만(1993:72-73)은 유대교에서 회개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공적으로 변했음을 4에스라서 8:47-49절을 인용하면서 증명한다. 더 나아가 결국 하나님에 대한 관계 전부가 결국 공로사상 아래 놓이게 되므로 유대교 신앙도 그렇게 되었다고 본다. 유대교의 신앙은 원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의 복종이었으나, 점차 응보 및 공로 신앙으로 변한 것이다.
대신 샌더스는 바울 신학의 틀에서 유대교를 바라보지 않고, (외경, 위경, AD 200년 경의 초기 랍비 문서 [탈무드, 미드라쉬 등], 쿰란 문서를 조사함으로써: 예. b. Yoma 87b; Pirque Aboth, 1-3; 1QS 11:11-15; 4QMMT; 그러나 ‘4에스라서’는 예외로 함) 유대교를 바라본 결과, 바울 당시의 팔레스틴 유대교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 1977:75)라고 정의 내렸다.
‘언약적 율법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바 그 구조 혹은 패턴은 다음과 같다 (샌더스, 1977:422): (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은혜로 선택했고, (2) 이스라엘이 구원의 언약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머물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고, (3) 이 율법은 하나님의 선택을 지탱하겠다는 약속을 담고, (4) 이스라엘은 이 율법에 순종해야 했고, (5) 하나님은 순종에는 상(reward)을, 불순종에는 벌을 주시고, (6) 율법을 지키지 못할 때 임하는 벌을 면하기 위해서 율법은 속죄(atonement)의 제사와 희생이라는 수단을 제공하고, (7) 속죄(atonement)는 언약 관계를 지속-회복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8) 순종과 자비에 의해서 언약관계 속에 있는 사람은 종국에 구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오직 유대교와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을 부인할 경우에만 언약 공동체에서 제외된다. 그러므로 샌더스에 의하면, 바울은 이런 (올바른)유대교를 오해하여 율법을 지켜서 공로를 쌓고 결국 의롭게 되는 율법종교로 잘못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참고. 던, 2003:250; 471).
샌더스가 붙인 ‘언약적 율법주의’ (혹은 언약적 신율주의, covenantal nomism)에서 ‘nomism’이라는 말에서 ‘ligalism’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조금이나마 극복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샌더스는 이 언약적 율법주의와 개신교 학자들이 묘사하는 유대주의의 구원론 사이에 거의 유사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샌더스에 의하면, 바울이 유대주의를 포기한 것은, 새로운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나은 무언가(something better)를 발견했기 때문이지, 율법주의적 경건(nomistic piety)의 열등함 때문은 아니었다. 바울이 거부하면서 공격한 ‘율법의 행위’(works of law)는 구원과 의를 획득하기 위한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할례와 음식법’과 같은 것으로서 이방인 선교 시에 기독교가 유대교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바울의 유대주의 비판은 유대주의의 율법주의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이전 종교에 대한 종말이었다. 바울이 유대교를 바라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는 점이다. 바울이 율법의 행위(works of law)를 비판한 것은 율법주의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잘못된 정의였다. 즉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 하나님의 백성을 정의하는 표시(defining mark)이다(참고. 샌더스, 1998:226-240; contra 슈라이너, 1997:141; 그리고 B.L. Martin, R.H. Gundry).
참고로 샌더스 보다 1년 후인 1978년에 출판한 글(The paul of history and the apostle of faith, TynBul, 61-88)에서 N.T. Wright는, 바울이 비판한 것은 유대교의 행위로 인한 칭의라는 잘못된 견해가 아니라, 유대 민족적 의(Jewish national righteousness)였다. 즉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후손이라는 사실, 그리고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언약 백성이며 구원의 특권을 보장받고 있다는 잘못된 관념을 바울이 비판했다는 것이다.
샌더스의 책을 거의 의존하지 않고도 아주 유사함 주장을 펼친 N.T. Wright에 의하면, 루터와는 반대로 바울은 이신칭의로서 ‘유대인의 민족적인 자만’ (Jewish national pride)을 질타했지, 행위 구원-도덕적 자기 의존 (moralistic self-reliance)을 표적으로 삼지 않았다(참고. Sprinkle, 2005:27-28).
샌더스에 의하면, 예수님과 바울에 의해 공격을 받은 유대주의는, 비록 몇몇 유대인 개인에게는 그것이 올바른 사실적 묘사이지만, 1세기 팔레스틴의 정확한 유대교의 유형(type)이나 패턴(pattern)이 아니다. 오히려 언약적 율법주의가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이전의 팔레스틴 유대교의 참 모습이다.
1.10.3. 제임스 D.G. 던
Durham대학교의 J.D.G. Dunn은 샌더스의 견해를 약간 수정하여, 바울이 그 당시 팔레스틴 유대교를 오해하지 않았고, 그 유대교를 전제하며, 그것에 반응했다고 본다(참고. N.T. Wright). Dunn (2003:490, 496)은 ‘율법의 행위들’이 개신교에서 전통적으로 이해되었듯이 ‘의를 얻기 위한 시도로서 행해진 선한 행위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분짓는 ‘신분표지들’ (identity markers)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Dunn은 ‘율법의 행위들’이 특히 할례, 음식법, 절기법을 지칭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1세기 유대주의 안에서는 할례, 음식법, 절기법이 유대인의 정체성을 표시하는 역할을 했으며 유대교로 개종하는 자들에게 유대인처럼 사는 행위들로 요구되었으며, '율법의 행위들'은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를 규정하고 이방인들과 유대인을 구분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주장한다.
Dunn 2003:470, 472)은 샌더스가 지나친 호교론적인 문체를 사용하여 호소력을 극대화시키지 못했으며, 또한 바울 서신이 근본적으로 유대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Dunn(1990:188)에 의하면, 샌더스는 바울과 유대교를 분리시킴으로써 그 결과 불신 유대인 동족에 대한 바울의 근심(롬 9:1-33)과 이방인 성도가 유대인에게 빚을 지고 있음에 관한 바울의 관심(롬 11:17-24)은 수수께끼가 되고 말았다.
Dunn (1990:191-96)에 의하며, 바울이 '율법의 행위들'(works of law)을 비판한 것은 선행을 통한 구원의 획득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부분적으로 구원은 민족적인 이스라엘에 소속됨과 그러한 지위(status)의 표지(badge)로서의 율법을 준수함이라는 신념을 비판한 것이다(참고. N.T. Wright). 결과적으로, 율법에 대한 바울의 긍정적인 진술과 부정적인 진술은 조화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데(contra R?is?nen and Sanders, 참고. 던, 2003:212), 이유는 부정적인 진술은 율법 자체를 향하지 않고, 오히려 율법에 대한 민족적인 오용(nationalistic misuse)을 향하기 때문이다(Dunn, 1990:200).
요약해 보면, 이러한 최근 연구는 1세기 유대교 내의 율법과 율법의 성격에 대한 ‘새 관젼(new perspective)을 형성했다. 이 새 관점에 의하면, 1세기 유대교는 이스라엘을 언약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선택(God's election)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의 백성됨의 근거는 율법에 규정된 행위들을 준수함이 하니라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이다. 유대교는 율법을 준수하는 인간의 행위를 통해 쌓여진 공로적 의를 힘입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신학을 가진 율법주의적 행위 구원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선택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믿는 은혜의 종교이다.
새 관점에 동의하는 학자들은 ‘율법의 행위들’을 통한 칭의가 율법주의적 또는 공로주의적 유대교의 중요한 구원론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그것을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율법의 행위들’이 마틴 루터가 잘못 이해한 율법준수를 통한 공로적 선한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참고. 최흥식, 토라학교 홈페이지 교수 자료실).
하지만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바울이 ‘율법의 행위들’을 칭의의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과 무능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 관점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1 세기 유대인들은 완벽한 율법준수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울 자신도 율법을 흠 없이(without blemish) 지켰다고 말한다(빌 3:4-6). 바울이 율법을 통해 주어지는 자신의 의를 부정하는 것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력 때문도 아니요 도덕적 공로를 통한 자기 의를 추구하는데 대한 죄책감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통한 의의 절대적 가치성이 율법을 통해 주어지는 자신의 의를 무가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빌 3:7-9). 그리고 바울에게는 ‘율법 신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 샌더스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한 선교적인 이유 때문에, 만약 유대적으로 보이는 율법인 할례나 음식법, 안식일 준수, 정결법 등을 강조한다면 이방인 선교에 방해가 되기에 마치폐지된 것처럼 말했다고 주장한다.”
1.10.4. 새 관점에 대한 평가
여기서 Sanders와 Dunn으로 대변되는 ‘새 관젼에 관한 간단한 평가가 필요하다. 새 관점 주창자들이 사용한 자료는 1세기 팔레스틴 유대교를 재건하기에 과연 객관적인가? 이들이 인용하는 외경, 위경, 초기의 랍비 문서, 쿰란 문서들이 1세기 팔레스틴 유대교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가?
예를 들어, 이들은 “하나님은 의인에게 자비를 베푸시는데 그들의 선행 때문이다”라고 밝히는 유대인의 공로 사상을 반영하는 ‘제 2에녹’, ‘제 4에스라서’, ‘Jubilees 15:3-4’, 요세푸스의 ‘Apion 2:174’, ‘Sirach 44:19-21’, ‘CD 3:2’, ‘1QS’, ‘1QH’와 ‘12족장의 유언’ 등을 정당히 다루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위해 자료를 취사선택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샌더스의 우산 개념(umbrella concept)인 언약적 율법주의에 비가 세는 구멍이 많다. 그리고 이들의 주석은 세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그럴듯한 말로 주관적이고 임의로 주석하는 경우가 있다(보라. Witherington, 2004:103; 슈라이너, 1997:70; 참고. D.A. Carson, P. Enns, M. Bockmuehl).
최근의 자신의 사회-수사학적 로마서 주석에서 샌더스의 새 관점을 잘 다루면서 평가하고 있는 Witherington(2004:106)의 말을 들어보자: 바울은 자신의 신학에서 샌더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언약적 율법주의 개념에 가깝다. 물론 바울은 은혜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도권을 믿는다. 이 경우는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그리고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법’(the Law of Christ)을 고수하는 것 혹은 ‘믿음의 복종’(the obedience of faith)은 예수님의 최후 심판대 앞에 서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기 원하는 모든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선택사항이 아니다.
무엇보다 바울이 유대교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을 인정했더라도, 신인협동설적인 율법주의적 유대교를 반대했다는 증거가 바울 서신에 나타나고 있음에도 새 관점 주창자들은 애써 무시했다(롬 3:27-4:8; 9:30-10:8; 빌 3:2-11).
김세윤 (2002:141)의 다음 진술에 주목해 보자: “제 2성전 유대교에서 행위-의의 모든 요소를 부인하는 쪽으로 너무 많이 치우쳤던 추가 이제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 그것이 마침내 평형 상태를 발견할 때, 우리는 유대교를 순전한 행위-의의 요소를 부인하는 새 관점주의자들도 옳지 않으며, 유대교는 행위-의의 요소를 지닌 언약적 율법주의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참고. R?is?nen). ‘신인협력적 율법주의’(synergistic nomism)가 ‘언약적 율법주의’보다 바울 당시의 유대교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의일 것이다(참고. T. Eskola, R.H. Gundry, T. Laato, D.A. Hagner).
‘율법의 행위’라는 문구가 율법주의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바울이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할 때, 그는 율법주의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롬 3:21; 9:32). 즉 바울이 아무도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는 의로워질 수 없다고 말할 때, 이런 말들은 율법이 명령하는 바를 행함으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참고. 슈라이너, 1997:142-143).
그리고 새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의 유대교 내에서 발생한 위선적인 율법주의적 유대교(legalistic Judaism)로의 사상적 변화를 무시하고 있지 않는가?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이 율법에 대한 충성을 새롭게 한 것은 좋았지만, 점차 헬레니즘의 침투에 대항하기 위해(일부 유대인은 이방 영향과 타협했지만) 그들의 구별된 정체성과 삶을 위해 율법 준수를 더욱 강요했던 것은 분명하다.
점차 유대인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면하기 위한 것, 더 나아가 의를 얻기 위한 것으로 발전해 버렸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새 관점과는 반대로, 여전히 많은 학자들은 1세기 유대교는 율법 준수를 통한 구원을 강조했고, 랍비 종교의 목표를 ‘공로로 상을 얻는 것’이었다고 본다(이전의 W. Sanday와 A.C. Headlam의 ICC ‘로마서 주석’ [1902]; 슈라이너, 1997:110-111; Cranford, Hbner 등).
환언하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보복의 율법’(the law of retribution)에 따라 심판하시기에 구원은 확실히 보장이 되지 않고, 따라서 회개와 믿음은 공로적인 일(meritorious works)이 되고 말았다(Thielman, 1993:530; 불트만, 1993:70-71; Test. Gad [갓의 유언], 5:10). 루터와 개신교의 전통적인 해석에서 주창해 왔듯이, 사도 바울은 사람(유대인)이 연약하여 온전히 율법을 준수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를 거부하여, 대신 행위구원에 집착한 유대인을 비판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개신교 학자들이 랍비 유대교를 논할 때, 그들은 율법주의적 유대교를 대항한 바울의 비판을 염두에 두면서 동시에 루터가 가톨릭을 바라본 그 렌즈를 통하여 해석했다(참고. Witherington, 1988:264). 다음의 명시적인 루터의 말을 들어 보자: “교회는 ‘유대교의 율법주의’에 의해 더럽혀졌다. 가톨릭교도들의 규칙들과 규율들은 유대인들을 연상시키고, 실제로 많은 것이 유대인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믿음과 행위와 관련된 교회의 가르침은 단순한 행위들로 하나님의 호의를 얻을 수 있다는 유대교의 오류의 재판 (再版)이었다”(재인용 in 던, 2003:468).
덧붙여서, 서신에서 바울은 크리스천이 아닌 유대주의자를 비판했는가 아니면 크리스천 중에서 유대주의적 경향을 가진 자를 비판했는가? 바울이 크리스천 유대주의자를 비판했더라도 이들의 사상의 근저에는 유대주의자와 일치하는 점이 있기에 사실 유대주의자를 비판한 것이다.
샌더스는 예수님 당시에 위선적이라고 비판 받은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에 대한 자료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데 이것은 정당한 자료의 사용이라고 할 수 있는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근거한 언약적 율법주의를 주장한다. 그러나 팔레스틴의 유대인에게 있어서 언약적 율법주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하는 것이며, 행위 구원적 요소가 결합한 변질된 형태의 율법주의일 뿐이다.
즉 1세기의 바울과 16세기의 루터는 1세기의 율법주의적인 유대교와 16세기의 행위 구원을 가르친 중세 가톨릭이라는 유사한 대적과 싸웠던 것이다. 여전히 새 관점은 이런 전통적인 주장을 뒤 엎을 만한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갈 2:16절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명확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참고. 보스, 1998:527).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교를 향해 나아가는 현대 기독교(1) 박순용 (0) | 2022.01.28 |
---|---|
바울의 연대기(황원화 목사) (0) | 2022.01.28 |
바울신학의 새 관점들의 언약적 율법주의에 대한 개혁신학의 비평 (0) | 2022.01.28 |
믿음에 대한 불편한 진실 (0) | 2022.01.28 |
<lxxi>엘리사(1) (0) | 2022.01.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