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곁의 사람들 8
디도
바울 곁에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중요한 사람중에 하나가 디도입니다.
디도는 안디옥 사람입니다. 유대인이 아닙니다. 헬라문화에 젖은 사람입니다.
디도는 바울이 전도하여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를 참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진정한 아들은 육적인 아들이 아니라 영적인 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육적 아들은 이 땅에서 끝나지만 영적인 아들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디도 1;4)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딤전 2;1)
바울의 참 아들 디도의 모습을 잘 연구하여 보려고 합니다.
1.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디도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여행을 하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습니다. 그 때 안디옥에서 출발하였는 데 안디옥의 디도를 데리고 올라 갔습니다.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갈 2;1)
그러면 왜 디도를 데리고 올라갔을 가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하여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이방인 선교지를 어디까지 할 것이냐를 의논하러 올라 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지역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디도가 있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선교지 의논에 필요하여 데리고 올라 갔을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방인 선교가 잘 되고 있다는 것을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데리고 갔을 지도 모릅니다. 이방인의 영성, 이방인의 제도들을 참고적으로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데리고 갔을 것입니다.
어느 것이 더 맞을 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디도는 벌써 기독교 지도자들과 접하는 자리에 앉게 된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2. 할례와 디도
당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증명하려고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결혼식 못지 않게 중요한 행사입니다. 생후 8일째 되는 날 남자아이의 성기 표피를 잘라 버리는 의식입니다. 그럼으로써 일찍부터 자녀에게 남녀의 성별을 명확하게 자각시키는 것입니다.
할례의식은 다음과 같이 행해집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8일째가 되면 그 아기의 형제 자매는 물론이고 이웃이나 친척들을 불러 그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먼저 아버지가 한 입 가득 술을 머금고는 솜 조각에 술을 뿜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아기의 입을 적십니다.
이것은 아기가 통증을 느끼지 못하도록 알코올로 마취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아직 신경이 덜 발달된 만큼 통증을 느끼지는 못 합니다.
할례의식을 행하는 사람을 <모헬>이라고 일컫습니다. 모헬은 자신이 비장하고 있는 특수한 칼로 남자아이의 표피를 자릅니다.
의식이 끝나면 그 곳에 모였던 사람들은 춤과 노래로 축하해 줍니다. 이 때 아이의 엄마는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할례의식을 치르지 않은 남자 아이는 유대인으로 인정받지 못 합니다. 그것은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한 가족이 되는 할례의식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태어난 아기가 여자일 경우는 교회에서 명명식을 하는 것으로 할례의식을 대신합니다. 남자아이 때처럼 축하파티를 벌이지는 않습니다.
구약성서에는 할례에 대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씌어 있습니다.
<너희들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은 너희 자손이 아닌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할례는 순수한 종교적 의식이지만 최근에는 위생적 측면에서 유대인이 아닌 사람도 생후 즉시 이와 같은 수술을 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렸을 때 표피를 제가함으로써 아이가 성장한 다음 포경 따위로 괴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청결을 유지할 수 있는 등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디도의 할례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갈 2;3-5)
이 말씀 가운데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받게 아니하였으니>(갈2;3)라는 말씀이 문제입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1. 할례는 유대인만 받는 것이지 헬라인 기독교인은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할례받게 아니 하였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디도도 할례를 받았는 데 억지로 받지 않고 자진해서 기쁨으로 받았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두 가지 해석을 다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법을 따라야 할지 말아야 할지 논쟁거리였습니다.
어느 것이 맞는 해석일지 아직도 해석은 분분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디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3. 바울의 심부름꾼 디도
바울과 고린도 교회 관계는 그리 부드럽지 않았습니다. 아볼로 파가 생기고 바울 파가 생겼습니다. 여러 가지 안 맞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전서에서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파서 후서는 눈물로 쓰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2;4)
그 후 바울은 고린도 교회 반응을 알아 보려고 디도를 고린도 교회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보고를 받았습니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보고를 받았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바울의 충고를 잘 받아 드렸다는 보고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동안에 근심 걱정하였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 7;6-11)
그래서 디도는 말년에 바울의 심부름을 하면서 바울을 기쁘게 하고 교회를 든든하게 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전설
디도에게 전설이 있습니다.
로마 시대 그레데의 수도는 고틴이었습니다. 디도는 그 곳에 복음을 증거하다가 그 곳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디도 무덤위에 디도 기념 교회가 지금 세워져 있습니다. 디도는 그레데에 처음으로 복음을 가지고 들어 간 선교사였습니다. 지금도 그레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디도는 그레데에게 정말 좋은 일을 한 사람입니다. 지금 그레데의 98%가 예수를 영접한 사람입니다>
디도에 대하여는 더 이상 알고 싶어도 알 방법이 없습니다. 더 이상 자료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 자료를 주신 것만도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디도는 바울곁의 사람이었습니다. 책임감과 봉사정신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훌륭한 심부름꾼의 본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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