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 (막 10;23-30)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였습니다.
어느 날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그 때 예수님이 오셔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렇게 순종하였습니다.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히지 않던 고기를 두 배 그득 잡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갈릴리 해변가에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알고나니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맡긴 것도 아니었습니다.나중에 아내에 연락하여 팔라고 잘 매어 둔 것도 아니었습니다. 헐값에 당장 팔아 버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 관심밖이었습니다. 다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많이 잡은 고기가 어떻게 되었는 지 성경은 전혀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조금 버린 것이 아니라 다 버렸습니다.
<오직 예수>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물어 본 배경이 있습니다. 바로 앞에 이야기와 연결되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와서 예수님을 따라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키고 참 좋다. 그러나 재산이 많다. 그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그러나 그 청년은 재물이 많아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베드로가 이렇게 물은 것입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라는 말은 진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면서 숙연하여지며 울고 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베드로는
예수님과 친구가 되고 나서 세상 사람을 버렸습니다.
복음과 친구가 되고 나서 어부를 버렸습니다.
제자들과 친구가 되고 나서 가족을 버렸습니다.
영원과 친구가 되고 나서 순간을 버렸습니다.
하늘과 친구가 되고 나서 땅을 버렸습니다.
영혼과 친구가 되고 나서 고기를 버렸습니다.
누구나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닙니다.
미국 남북 전쟁 때였습니다. 중간에 란카스타란 마을이 있습니다. 그 마을은 하루는 북군이 차지하고 하루는 남군이 차지하며 엎치락 뒤치락하였습니다. 북군 때문에 죽고, 남군 때문에 죽어 갔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였습니다.
<어느 때 남군이 들어올지 모르고, 순간적으로 북군이 들어 올 지도 모르니 위에는 북군의 옷을 입고 밑에는 항상 남군의 옷을 입자. 북군이 불시에 들어오면 자기 옷을 보고 안 죽일 것이다. 남군이 갑자기 들어 온다고 할지라도 남쪽 옷을 입은 것을 보고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위에는 북군의 옷을 입었습니다. 밑에는 남군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반대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북군이 들어와서 남쪽 아래 옷을 입은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남군의 옷을 입었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죽였습니다. 또 남군이 불시에 들어와서 북군의 옷을 입은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북군의 옷을 입었네.> 그리고 또 죽였습니다. 이래 저래 다 죽었습니다.
누구나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닙니다.
요즈음 나는 감리교 감독회장에 출마를 선언하고 나서 선거 전략에 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신기한 것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미국 역사상 캐도릭 신자가 대통령이 된 것은 케네디 대통령 하나뿐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데에는 상대방 후보 닉슨 덕분입니다. 닉슨과 케네디가 경쟁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케네디는 선거구를 셋으로 나누었습니다.
1. 자기에게 유리한 곳
2. 자기에게 불리한 곳
3. 경합되어 있는 곳.
그리고 유리한 곳은 가지 않았습니다. 불리한 곳은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경합되어 있는 곳만 집중적으로 다녔습니다.
그러나 닉슨은 51개 주를 다 다니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지친 모습이 TV로 방영되었습니다. 지친 후보에게 사람들은 표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케네디가 승리하였습니다.
누구나 다 친구로 만들려고 하던 닉슨이 졌습니다. 버릴 사람은 버리고 친구로 삼을 사람만 집중 공략한 케네디가 이겼습니다.
누구나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핍박을 겸하여 받고.>
1. 금세의 친구는 내세의 친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금세는 지금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내세는 앞으로 우리가 갈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땅만 생각하고 이 땅을 친구로 삼은 사람은 저 세상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가 없습니다.
모세는 금세를 버리고 내세를 친구로 삼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모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 봄이라>(히 11;24-26)
바울도 내세를 친구로 삼으려고 금세를 멀리한 사람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 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4-17)
오늘 위하여 내일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만족하면 그만입니다. 내일이 없습니다. 베짱이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중 좋기 위하여 오늘을 고생하며 견디는 사람들입니다. 개미같은 사람들입니다.
내일의 친구는 오늘의 친구가 아닙니다.
금세의 친구는 내세의 친구가 아닙니다.
2. 예수님의 친구는 세상의 친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나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친구는 세상과 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미국 장로교 잡지 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어느 분의 간증담입니다.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천국을 이리 저리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천국에 와서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정말 신비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옆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신앙생활하다가 천국에 오셨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1860년 동안 이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일찍 온 셈이지요. 나는 바울 시대에 로마에 살았습니다. 나는 예수를 잘 믿고 있었습니다. 네로가 나를 잡아 기둥에 매두었습니다. 예수믿는다고 굶어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지나도 죽지 않으니까 내 위에 장작을 쌓더니 불을 질러 나를 죽였습니다.>
<그 때 얼마나 무서웠었습니까?>
<아니요. 도리어 기뻤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내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는 데 나도 주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때 한없이 기뻤었습니다.>
천국을 구경하던 그는 자기 신앙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또 한 사람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귀하는 어디서 신앙생활하다가 천국에 오셨습니까?>
<나는 하늘나라 이 곳에 온 지 수백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저 남해 에로망가 섬에서 왔습니다. 식인종 민족입니다. 죤 윌리암 선교사가 그 섬에 와서 예수님 이야기를 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왜 그렇게 확실하게 믿어지는 지 놀랄 정도였습니다. 나는 그 후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로 서약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종족들이 선교사를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도 잡아서 나무에 묶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기진맥진할 때까지 팼습니다. 그들은 내가 죽은 줄 알고 돌아 갔습니다. 이튿날 와서 보니 내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머리를 뽀갰습니다. 그리고 나를 요리하여 먹었습니다.>
<저런 끔찍한 일이 있나?>
<아니요. 당신이 보기에는 끔찍하여도 나는 기뻤습니다. 윌리암 선교사는 나에게 예수님은 내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으셨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때 믿음을 끝까지 당당하게 지킨 것을 나는 기뻐하고 있습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윌리암 선교사와 같은 분을 위하여 얼마나 헌신하였습니까? 우리를 천국으로 부르신 예수님을 위하여 어떻게 헌신하고 살고 계십니까?>
그는 이런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 하고 서있었습니다. 그렇게 물어 본 이는 슬픈 얼굴을 그를 물끄럼이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는 침대에서 식은 땀을 흘리며 몇 시간동안 울면서 회개하면서 자기 생활을 점검하여 보았습니다.
<나는 주님을 위하여 헌금드리는 데는 인색하였고 좋은 옷을 사는 데는 아낌없이 돈을 쓰지 않았는가?
나는 놀러 다니는 데는 많은 시간을 사용하면서 예배드리는 데 시간을 얼마나 바쳤는가?
나는 육적 건강을 위하여는 좋은 것이라면 다 사먹으면서 영적 건강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였고 영적인 책을 사보았는가?>
그는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다가 꿈에서 깨어나 자기 영적 생활을 다시 조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꿈이 준 영적 성장이었습니다.
헨리 보스(Henry Vos)는 말했습니다.
<나에게 머리가 둘 있다면 나는 이 머리 둘을 주님을 위하여 바치겠다.>
카스틸라 루피아(Castilla Rupea)는 그를 이교도들이 낭떨어지로 떨어뜨려 죽이려고 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비록 내 몸을 낭떨어지로 떨어 뜨릴 지라도 내 영혼은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 갈 것입니다.>
예수님의 친구는 세상의 친구가 아닙니다. 누구나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닙니다.
3. 복음의 친구는 세상의 친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예수님의 친구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버리지 못 하고 이런 것을 따라가는 사람은 복음의 친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거의 TV를 보지 않습니다. 뉴스외에는 별로 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TV를 열었습니다. 물론 기독교 TV입니다. 어느 할머니가 길을 가다가 노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녀들에게 내쫓긴 할머니였습니다. 세상에는 어찌 상상할 수 있는 일만 생기나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자기를 보는 것같아서 할머니를 데려다가 같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개 눈에는 무엇만 보인다고 그 할머니에게는 그런 노인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에서 노숙자 노인들만 모셔다 같이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말한 적도 없는 데 양노원 원장이 되었습니다.
밤에 잘 때가 되면 서로 옆에 와서 자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자리다툼으로 심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시장에 가서 한 시가만 늦게 와도 야단이었습니다.
<원장님이 안 계신 동안에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늦게 와요?>
그는 노인들을 정성껏 보살피며 살았습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왜 이런 일을 시작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는 데 나는 저들을 위하여 죽어야지요.>
기자가 물었습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발자취를 보고 싶어서 성지 순례 가고 싶어요.> <한번 가시지요.>
<내가 한 시간만 비어도 난리들인데 어떻게 며칠을 비울 수 있겠어요?>
<성지 순례 못 가시겠네요?>
<이 땅에서 성지 순례 못 가도 하늘 나라에 가서 하늘에서 이스라엘을 내려다 보지요.>
그는 울고 있었습니다.
복음의 친구는 세상의 친구가 다릅니다. 가치관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를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것으로 즐기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을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간 익산에 집회인도를 하였습니다.
원 형수 관리자와 둘이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이야기하였습니다. 앞에 있는 음식은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맛있는 요리를 거냥 치웠습니다. 이야기가 진지하였습니다.
호남 선교 연회가 250 교회 정도됩니다. 원 관리자는 100 교회를 더 개척하여 350 교회만들어 정식 연회가 되는 것이 오직 하나의 꿈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파나이섬에 260 개 교회를 지었습니다. 나에게 맡기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사명감이 불타 올랐습니다.
원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중에 가장 감동깊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농구 선수는 농구하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가장 바람직하지요. 운전수는 운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좋지요. 목사는 목회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목사지요. 목사가 스트레스푼다고 등산가고 수영하고 낚시질하러 가면 되나요? 발명왕 에디슨은 결혼하고 신혼여행 가지 전에 연구실에서 연구하다가 신혼 여행을 잃어버렸지요.
나는 휴일이면 공부하고 성경 연구하지요. 그러면 교인들이 스트레스 풀러 노는 날이나 나가자고 하지요. 나는 나가면 더 스트레스 받아요. 성경 연구하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책을 쓰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강 목사님도 책을 100권 정도 썼지만 나도 11권 썼지요.
복음의 사람은 복음과 친구가 되는 것이 가장 행복하지요.> 식사하면서 귀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1. 금세의 친구는 내세의 친구가 아닙니다.
2. 예수님의 친구는 세상의 친구가 아닙니다.
3. 복음의 친구는 세상의 친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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