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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시는 일! (요 9:1-7)

by 【고동엽】 2022. 1. 24.

하나님이 하시는 일! (요 9:1-7)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숱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어떤 때는 간단한 문제를 만나서 가볍게 해결하게 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도무지 이해하기도 힘든 문제에 직면해서 고민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 마음속에 하나의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주어지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도무지 풀 길 없는 문제에 직면해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내가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긴히 여쭈어 볼 말씀이 너무나 많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숱한 문제들을 안고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얼마 전에 흉악한 택시 강도에게 화를 당한 어떤 여인의 어머니가 "왜 하필 내 자식인가, 세상에는 악한 사람도 많고 죄인도 많은데, 그렇게 착하던 내 딸이 왜 그들의 손에 무참하게 죽어야 했는지 나는 모르겠다"하고는 탄식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 이유를 모릅니다. 흉악한 사람의 손에 목적 없이 죽어야 한다면 이 땅에 값없이 죽을 사람도 많고 죄인도 많은데 왜 죄없는 어린 아리들이 죽어야 하고, 죄 없는 선한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거기에 어떤 이유가 있고 혹시 거기에 하나님의 어떤 섭리가 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이 다음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물어볼 일입니다.

본문을 보면 여기에도 그런 의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아예 태어날 때부터 눈이 어두운 채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이 소경에 대해서 예수께 물었습니다. 그 질문이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 사람이 왜 소경으로 태어났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이 사람이 병을 앓다가 시력을 잃었다면 이해가 가겠는데, 또 사고로 눈을 다쳐서 소경이 되었다면 납득이 가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아예 태어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났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그렇다면 "이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어떤 사건을 보며 그 원인을 꼭 묻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은, 어떤 불행을 당하게 되면 그것이 누군가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소경된 것은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본인의 죄 때문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뿐 아니라 우리들도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일이 잘 안 되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그리고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졌길래" 그러면서 한탄을 합니다.
모르긴 해도 여러분들도 이렇게 생각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 응보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불교를 믿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불교 문화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들 역시 자연스럽게 이런 발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되는 수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합니다. 아이에게 어떤 불행이 닥치고, 불치의 병을 얻게 되는 것이 부모의 죄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자신의 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문란하게 외도를 하고, 방탕 생활을 하다가 병을 얻어서 마침내 시력을 상실하고 눈이 멀었다고 하면 그것은 물론 자신의 죄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생활이 문란하고 무질서하고, 외도를 해서 성병을 얻은 부모가 아이를 낳았을 때 어떤 아이는 기형아로 태어날 수도 있고, 또 어떤 아이는 시력을 잃은 채 소경으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부모의 죄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임신중인데도 술을 과음하거나, 담배를 많이 피우고, 마약을 복용하고 그러면 그 아이가 온전하게 태어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불구아가 태어났다고 하면 그것도 분명 부모의 죄 때문입니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아들은 하나님의 징계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부모의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께 그렇게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제자들의 물음에 예수님은 제3의 원인을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소경된 것은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의 죄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 그가 소경된 것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적어도 이 사건 속에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어떤 섭리가 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를테면 이 사건에는 세상적인 어떤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좀더 높은 차원의 섭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십니다. 그 방법은 사람들이 하는 방법과 다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그 뜻이 미래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그 원인이나 목적이나 결과가 모두 미래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소망적입니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모든 일의 원인을 과거에 둡니다.
예를 들면 내가 병들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병 문안하러 와서 그 병의 원인을 한결같이 과거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왜 병들었느냐, 어쩌다가 그랬느냐"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대답하기를 "내가 죄가 많아서" 그렇게 대답합니다. 지금 이 사람도 병든 원인을 과거에 두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질문했던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이 사람이 소경된 것은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고, 자신의 죄 때문도 아니고,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 사람이 소경된 것은 미래에 어떤 뜻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마 이 소경이 살면서 한을 많이 품고 살았을 것입니다. "나는 왜 나면서부터 소경이 되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 사람일까?" 이 사람이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을 하고 살았을테니 얼마나 불행한 세월을 살았습니까?
그런데 오늘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에게 미래를 위한 어떤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게 어떤 특별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이 자신에게서 풀리지 않던 문제를 풀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지금까지 자기 자신의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고민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오늘 비로소 그 해답을 깨닫고,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난 후에 이 소경이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신앙인은 모든 문제를 미래에 두고 해석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미래에 두고 해석을 하면 모두가 소망적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그 결과가 이렇게 소망적이고 미래적입니다.
가끔 약혼 주례를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 약혼식은 결혼식과는 그 뜻이 조금 다릅니다. 약혼식을 집례하다 보면 결혼식보다 더 소망적이다 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약혼하는 두 사람은 결혼해서 살면 분명히 싸우게 될 것입니다. 또 다투게도 될 것이고, 미워하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결혼한 것을 후회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함께 몇 년을 살면 덤덤해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약혼할 때 보면 그런 것은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에게 있어서 미래에 대한 소망이 현재보다도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신 좋아합니다. 예물을 서로 교환할 때 보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부끄러워할 줄도 모릅니다. 계속 싱글 벙글합니다. 땀흘리고 당황하고 그러지 않습니다. 이 젊은이들이 그렇게 기뻐하는 것은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이 미래가 있어야 합니다. 삶은 오늘에 초점을 맞추어 놓고 살고, 뜻은 언제나 미래에 초점을 맞추어 놓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신앙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미래적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 나온 소경을 통해서 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그 목적이 모두 선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두 번째 특징입니다. 여기 이 소경의 일생을 보면 잠시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은 그런 후에 엄청난 결과를 보게 됩니다. 그 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이렇게 소망적으로 발전하고, 결과가 유익함으로 주어집니다.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나사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젊은 나이에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형제들이 슬퍼하고, 동네 사람들이 애도하고, 예수님도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런데 일은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나중에는 나사로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11을 보면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특징입니다.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도 손해를 보지 않고 나사로도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결국 그 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다른 차원의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들을 통해서도 이렇게 일하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죽을 병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 본인에게 있어서는 분명히 큰 시련이고 불행한 일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래서 본인은 물론 온 가족이 함께 심각한 기도를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가서 기적같이 병이 나았습니다. 정말 깊은 기도를 하는 중에 하나님의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병이 감쪽 같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건강해졌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입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은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소위 간증입니다. 이 간증이 잘만 되면 아주 좋은 전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돌아다니며 하나님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는 일은 그 결과가 모두 유익한 것입니다.
내가 지금 가난한 것도 거기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부한 것도 거기에 하나님의 어떤 계획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약한 것도 거기에 그럴 만한 이유가 들어 있습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그 일 후에는 반드시 유익이 주어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이 같은 이유를 알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그 어떤 처지에 처해도 삶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소경에게서 이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옵니다. 또 하나님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나 세상을 전체에서 한 부분을 보려고 하지 말고 한 부분으로 전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아주 무익한 사람 같아 보이는 사람이 세상을 오래 사는 경우를 보게 될 때입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오래 살아 있을 이유가 없는 사람 같은데도 오래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모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그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심각한 병 중에 있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아직도 내게 할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나를 필요로 하시기 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어떤 분이 임종할 때가 되었는데도 숨을 거두지 못하고 죽지를 않습니다. 그러다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던 아들이 오면 그때서야 아들의 손을 잡고 한마디 하고는 편안히 눈을 감습니다. 그분은 그 한마디를 못했기 때문에 눈을 감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은 이렇게 해야 할 일이 있고 하나님 앞에서 할 말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모습을 모두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보고, 헤석하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나의 인생이 소중하고 값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이 소경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눈도 멀고, 거기다 거지이고, 보잘것없은 그의 인생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지만,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비한 인생입니까? 이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고, 나의 인생입니다. 이렇게 나에게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섭리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경을 통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값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 같은 하나님의 신비한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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