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무덤이 배급소가 되다. (마 28;1-10)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몇 년 전에 덕산에 아내와 함께 간 적이 있습니다. 수덕사에서 석가모니 사리를 보여주는마지막 날이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인도에서 석가모니 시신을 불태우면서 나온 사리중에 하나를 한국에 보냈는 데 그 것을 수덕사가 받았습니다. 며칠 동안 가지고 있다가 탑속에 넣는 날이라 앞으로 영영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부러 간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갔다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저와 제 아내도 궁금하여 보고 싶었습니다. 수 백 미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나도 뒤에 섰습니다. 자기 차례가 되면 합장을 하고 헌금을 하고 석가모니 죽은 시체에서 나온 사리를 보고 감격하며 물러 서곤 하였습니다.
나와 아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내가 앞에서 있는 중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그런데도 석가모니 사리를 보고 싶습니다. 절 할 수 없는 데 거냥 볼 수 있겠습니까?>
그 중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래서 저와 제 아내는 헌금도 하지 않고 합장하지도 않고 사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콩알 보다 작은 흰 구슬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석가모니를 불태운 자리에서 석가모니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인도를 위시한 불교국에서는 한동안 떠들썩 했었습니다. 그 때 석가모니의 뼈들은 잘 진열되어 수백 만 인도사람들의 경의속에 시가행진을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뼈가 지나갈 때 땅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한 선교사가 그의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뼈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기독교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석가모니는 인도 능수 해안에 묻혀 있습니다.
마호멧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 묻혀 있습니다.
공자는 중국의 장평양에 묻혀 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거기에서 썩었고 흙이 되었습니다.
중국은 천안문 광장 한 쪽에 모 택동 미이라를 안치하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쏘련은 붉은 광장 한 쪽에서 레닌의 미이라 시신을 보여주면서 국부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빈 무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로 들어 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해가 지면서 안식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아무도 멀리 움직이지 않습니다. 100m 이상 걷지도 않았습니다. 모두가 꼼짝하지 않고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일만 하였습니다. 토요일 저녁 안식일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밤이었습니다. 주일 새벽이 되었습니다. 몇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여자들은 걱정하면서 향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어떻게 여자들이 치울 수 있을 지 걱정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당시 장례는 굴을 파고 시체를 넣고 돌로 막는 문화였습니다. 여인들이 막상 도착하여 보니 돌이 옆으로 굴러져 있었습니다.
들여다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습니다. 빈 무덤이었습니다. 그 때 두 천사가 보였습니다. 여자들은 너무나 무서워서 얼굴을 땅에 댔습니다. 그 때 두 천사가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여자들은 평소에 예수님께서 늘 이렇게 하시던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리고 달려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였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빈 무덤을 보았습니다.
빈 무덤은 세 가지 배급소가 되었습니다.
1. 영생 배급소
무엇이든지 세상에는 욕망이 있으면 욕망을 채워줄 대상이 있습니다. 식욕이 있으면 식욕의 대상인 음식이 있습니다. 성욕이 있으면 성욕을 채워줄 이성이 있습니다. 명예욕이 있으면 명예를 채워줄 위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영생욕이 있습니다.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입니다.
부흥회에 가서 아주 곱게 늙은 할머니 한 분이 앞에 앉아 계시기에 나는 크게 마음먹고 축복하였습니다.
<할머니! 100살 사세요.>
그랬더니 할머니가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보고 100살까지만 살라고요?>
알고보니 99살이었습니다. 사람마다 영생욕이 있습니다. 내년에 죽으라는 이야기가 되어 그렇게 서운하게 생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형수들이 사형당하러 갈 때에는 될 수 있는 대로 삐뚜르게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떨어 뜨리고 가다가 말한답니다.
<내 물건을 떨어 뜨렸습니다.>
그리고 되돌아가는 시간만큼 더 살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영생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욕구를 채워줄 영생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영생을 채워 주는 배급소가 바로 예수님의 배급소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0-24)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첫 열매이고 우리 모두는 줄줄이 두 번째 세 번째 부활의 열매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부활하여 새 새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떤 공원묘지에 한 아기의 묘가 있었습니다. 그 어린아이 묘비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아이야, 조금만 기다려라. 주님께서 곧 오신다>
우리 주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빈 무덤은 부활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최고의 자랑이요 당당한 자랑입니다.
인도에서 선교사로 있었던 스텐리 존스가 설교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설교 도중에 일어나더니 소리를 질렀습니다.
<메카에 가면 마호멧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소. 능수에 가면 석가모니가 이 땅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소. 그런데 지구 어디를 가도 예수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지 않소? 예루살렘에 가 보아도 빈 무덤밖에 없지 않소? 예수는 정말 이 땅에 있었다는 증거가 어디 있소?>
이 스텐리 존스는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확실히 다른 점이요. 우리 주님은 무덤에 들어갔다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기에 우리는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체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빈 무덤은 영생을 우리에게 배급하는 배급소입니다. 영생은 빈 무덤에서 배급받습니다.
2. 평강 배급소
빈 무덤은 평강 배급소입니다.
예수님은 무서워서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일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요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아무리 폭풍이 불어도 굴속에 있는 개미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밖에 나와 있는 개미는 두렵습니다. 잘못하면 날라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믿으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 제2차 대전 후 전쟁에 시달린 이들에게 물었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한결같이 대답하였습니다.
<평화>
오늘 부활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부활의 주님과 더불어 평강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께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예수 안에서 우리가 죽었다고 말하는데 죽는 것이 무엇이며 부활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때에 목사님께서 <내가 가르쳐 줄터이니 시키는 대로 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이 물으셨습니다.
<너를 미워하던 사람중에 죽은 사람이 있느냐?>
그는 한 사람이 자기를 그렇게 미워하다가 죽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그 공동묘지에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그 친구를 향하여 욕을 싫컷 하고 오너라. 그러면 죽는 것이 무엇인지. 부활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겠다>
그 사람은 목사님과 약속이라 그렇게 하였습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공동묘지에 가서 하루 종일 욕을 하였습니다.
<이 죽일 놈, 이 못난 놈, 이 고약한 놈>
그리고 목사님에게 그렇게 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이 다시 물으셨습니다.
<너를 굉장히 좋아 하던 사람중에 죽은 사람이 있느냐?>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역시 도시락을 싸들고 그 무덤에 가서 하루 종일 사랑한다고 외치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사랑하던 친구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친구야! 나는 너를 사랑하였고 너는 나를 사랑하였지? 친구야! 나는 아직도 너를 잊지 않고 사랑한다. 너는 아름다운 친구였지. 정말 사랑스러운 친구였지.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너는 얼마나 훌륭한지 모른다.>
하루 종일 외치고 돌아 왔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그 미워하던 친구에게 하루종일 욕을 하니까 친구가 뭐라고 하더냐?>
<아무 말도 안합니다.>
<그러면 그 사랑하는 친구에게 하루종일 칭찬을 하고 사랑한다고 하니까 뭐라고 대답을 하느냐?>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왜 아무 말도 안하느냐?>
<그거야 죽었기 때문이지요.>
<바로 그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반응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안에서 다시 산다는 말은 예수님과 반응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이것이 부활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믿는다는 자체는 평강입니다. 빈 무덤은 평강 배급소입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 어린 아들 둘이 엄마랑 외롭게 사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아빠가 그립고 남편이 그리워 식탁 위에 아빠 사진을 걸어 놓았습니다. 아빠와 같이 식사하는 마음으로
식사 시간마다 그 사진을 바라보며 식사를 했습니다. 엄마도 식사할 때마다 그 사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남모르게 눈물지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식사를 하려던 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저 사진틀에만 있지 말고 여기 나와서 우리랑 같이 살면 좋겠다.>
그 때 엄마가 눈물을 닦으며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나팔소리가 울리고 그 때 아빠가 사진틀에서 부활하여 나올 거야.>
그리고 온 가족이 다시 울었습니다. 다시 꼭 볼 수 있다는 소망의 평강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부활절네 평강을 배급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간 가정 식구들을 다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평강을 배급하는 배급소입니다.
3. 재사명 배급소
부활의 예수님은 제일 먼저 갈릴로 가셨습니다. 12명 제자중에 11명이 갈릴리 사람이었습니다. 모두 갈릴리 고향을 떠났습니다. 다시 가셔서 재사명을 주셨습니다. 다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강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우리를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가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항상 연관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첫 번 하신 말씀도 전도하러 가라고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 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함이러라>(막 3;13-15)
마태가 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이러합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마가가 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定罪)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5-18)
누가가 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이러하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예수님의 부활후 마지막 말씀은 선교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마지막 명령은 우리의 최초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혼구원 때문에 이 땅에 오셨고 영혼구원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가서 전도하며 영혼을 구원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10:16)
정말 양같은 제자들은 이리 떼속에서 모두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교의 피가 오늘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알고 믿고 구원받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리 가운데로....>
이 말씀은 아무리 어려워도 다시 일어나서 용기를 가지고 가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패하고 넘어지고 떠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도 두 번째 다시 부름을 받고 대 사도가 되었습니다. 12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나도 두 번째 부름받고 큰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다시 출발하면 됩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 1809-1865)이 젊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변호사 시절 주의회 의원에 출마하였습니다. 그러나 낙방하였습니다. 다시 하원의원에 출마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낙방하였습니다. 이렇게 몇 번 낙방을 거듭하였습니다. 링컨은 철저하게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은 링컨을 보면서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저러다 링컨이 자살하는 건 아니냐?>
링컨 친구들은 링컨에게 비상한 관심을 기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낙선하던 날 링컨은 머리를 말끔히 깍았습니다. 목욕도 하였습니다. 고급 음식점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자기가 자기에게 외쳤습니다.
<오늘 떨어졌어도 내일 다시 할 수 있다, 부활의 주님이 도우실 것이다.>
그 때 링컨은 그 때 자기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재기할 수 없을 것만같은 심정이다.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
그러던 중에 성경을 읽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믿고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공화당에 입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정치하였습니다. 공화당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링컨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건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을 붙들고 다시 사명을 받아 새 출발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본에게 항거할 때였습니다. 그는 친일파 사람들이 이 상재 선생님을 매수할 의논을 하고 나서 말했습니다. 친일파 사람들중에 영향력 있는 기자가 일본 총독부와 의논한 후에 돈 뭉치를 들고 이 상재 목사님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돈으로 시골로 가셔서 편히 사시지요.>
이상재 선생은 돈 뭉치를 밀어 놓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돈으로 사는 자가 아니다. 나는 말씀으로 산다.>
기자는 당황하면서 물었습니다.
<인도의 간디는 백세를 산다고 했고, 영국의 누구는 얼마 동안을 산다고 장담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몇 살이나 사시겠습니까?>
그 때 월남 이상재 선생은 젊은 기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사람이 한 번 났으면 영원히 살지 죽긴 왜 죽나?>
기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진시황은 불로 불사약을 구해 먹었지만 결국 죽었는데 무슨 불사약이라도 잡수셨습니까?>
<먹었지. 너희 천황이 먹지 못한 것을 내가 먹었지. 영생 불사약을 먹었기에 나는 죽지 않을 것이며 일본이 망하고 군국주의자들이 죽는 것을 다 볼거야.>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기자가 묻자 선생은 그 옆에 있는 성경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다. 나는 이 말씀으로 산다. 그러면 영원히 살다. 죽어도 부활한다.>
이 상재 선생님은 부활의 믿음을 확실히 가지고 살았기에 독립운동하다가 죽어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확실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독립운동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빈 무덤을 남기셨습니다. 빈 무덤은 영적인 배급소입니다.
1. 빈 무덤은 영생 배급소입니다.
2. 빈 무덤은 평강 배급소입니다.
3. 빈 무덤은 재사명 배급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수많은 이들의 증언이 있습니다. 1967년 8월 29일 프랑스 <앙제>라는 동네에 <피사니>라는 소방원이 불을 끄다가 30M 소방 사닥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의 시체를 부등켜 안고 몸부림치다가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장례를 치루지 못 하였습니다. 어머니 없는 데 아들을 묻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기절에서 깨어나 아들을 염하여 넣어둔 관을 부등켜 안고 몸부림치며 우는 데 관 안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 울지 말고 관을 열어 주세요.>
깜짝 놀라 흔들어 보니 또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관이 열리고 아들은 살아서 다시 깨어났습니다. 그는 죽음 후 부활의 세계를 간증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다시 살아난 날이 가장 축복과 흥분의 날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잠간 죽었다가 살아난 것도 그런 흥분인데 영원히 살기 위하여 부활한다는 것은 흥분중에 흥분일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흥분스럽게 죽었다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입니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혜에 목마름이 본질이다! (창 6;5-8) (0) | 2022.01.20 |
---|---|
바라보면 말보다 더 큰 말이 들린다! (히 11;23-29) (0) | 2022.01.20 |
무지개를 보려면 비를 맞으라(요.19;1-4) (0) | 2022.01.20 |
내 몸 값은 내가 높인다! (시 81;10) (0) | 2022.01.20 |
차선은 최선의 적이다! (계 2;10) (0) | 2022.01.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