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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몬 1;10-20)

by 【고동엽】 2022. 1. 20.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몬 1;10-20)

 


지난 주간
우리나라 미국 대사 심 은경이 부임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에 20살에 우리나라에 평화 봉사단으로 와서 영어 교사로 활동하던 분이었습니다. 한국을 너무 좋아 하여 한국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그가 부임하자 예산 중고등학교에서 그 때 교적부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확인하니 그 사람이었습니다.
교사가 대사로 성장하여 온 모습이 대견스러웠습니다.

또 한가지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몇 년전입니다.
성막 쎄미나를 하는 데 나에게 다가 오더니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문호야!>
그런데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얼굴이 전혀 몰라 보게 되었습니다. 신학교 4년을 같이 지냈는 데도 얼굴이 몰라 보게 변해 있었습니다. 얼굴이 문둥병자처럼 이그러져 있었습니다. 사연을 물어 보았습니다.
시골 교회에서 목회할 때였습니다. 교인들이 두 패로 나누어져 원수처럼 싸우는 교회였습니다. 주일 낮 예배를 드릴 때였습니다. 남자 권사 한 명이 휘발유 한 통을 들고 강대상으로 올라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소리를 질렀습니다. 반대편 사람 한 사람을 지적하였습니다.
<너 이리로 나와! 안 나오면 휘발유 끼얹고 불지른다.>
몇 사람이 말리러 강대상으로 올라가는 순간 그는 휘발유를 교회 바닥에 뿌리며 불을 질렀습니다. 주일 낮 예배를 드리다가 교회는 불바다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은 불구덩이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친구 목사도 불속에서 꺼냈습니다. 얼굴이 거의 타버렸습니다. 수술을 30번 정도 받았습니다. 챙피하여 친구들에게 그 동안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성막 공부를 하고 싶어서 우리 교회를 찾아 온 것입니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친구 목사는 육체적으로 몰라 보게 변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그 사람이 이 사람인가 하고 몰라 볼 정도로 변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저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그대로이고 싶습니까?>
<지금보다 못 한 존재로 전락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지금 보다 나은 변화를 원하십니까?>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게 변하는 사람이 있고 안 좋게 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이 변하는 사람이 있고 조금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사람을 천국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180도 딴 사람이 되게 합니다. 죄의 종을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켜 딴 사람이 되게 합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사울을 바울로 딴 사람이 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녀 막달라 마리아를 성녀로 딴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어부 베드로를 복음의 순교적 사도로 딴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율법의 시작인 모세의 첫 기적은 지팡이를 뱀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시작인 예수님의 첫 기적은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기적이었습니다. 여하간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본문은 오네시모라는 노예요 절도범이 놀라운 복음의 사람으로 전혀 딴 사람이 되는 모습을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빌레몬은 소아시아 골로새에 살고 있는 부유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재산을 훔쳐 가지고 로마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오네시모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마침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붙잡혀 갇힌 감옥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날마다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전혀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찾아 다니며 전도하는 바울에게 집어 옆에 있는 오네시모는 전도의 특별한 대상이었습니다. 바울은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늘 전도가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사랑을 위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9)

바울은 감옥이라는 악조건의 자리에서도 언제나 전도였습니다.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10)

우리는 늘 전도하고 언제나 증거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주님의 명령입니다.
감옥에서 오네시모는 전적으로 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세상은 넓고도 좁았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이 잘 알고 있는 동역자 빌레몬(몬1;1)의 노예였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에게 편지를 쓴 것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바울은 너무 좋아서 친필로 썼습니다(19절)
오네시모는 전혀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절도범이 복음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빌레몬의 집에서 값진 물건을 훔쳐 가지고 도망왔던 이가 도로 그 집으로 가서 영원한 종이 되어 다시 빌레몬을 섬기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심복이 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저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를 인하여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15)

노예생활이 지긋지긋하여 탈출한 이가 이제는 노예보다 더한 심복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전혀 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면 오네시모를 이렇게 변화시킨 요소는 무엇일까요? 사람은 어떤 때에 변화가 일어 나는 것일가요?
변화되고 싶습니까?
다음과 같으면 변화됩니다.

1. 만남을 통하여 변화됩니다.
오네시모는 주인을 배반한 배반자였습니다. 주인의 물건을 훔친 절도범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같이 있으면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와 같이 있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이냐도 중요합니다.

불경에 나오는 최고의 살인자는 알굴리말라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잘못 된 스승을 만나 그릇된 가르침을 받습니다.
<1,000명을 죽이면 천상에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살인행각에 나서게 됩니다. 그는 칼을 휘두르면서 만나는 이마다 죽입니다. 999명을 죽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명만 죽이면 천상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그 때 한 여인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자기가 죽인 아들을 찾아 나선 어머니였습니다.
<이제 저 여인만 죽이면 1,000명 목표를 달성한다.>
이 때 부처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너는 제 정신이 아니다. 큰 죄를 짓고 있다.>
이 말을 들으면서 그는 제 정신으로 돌아 오게 하였습니다. 앙굴리말라는 그 때에서 제 정신을 차리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잘못된 스승을 만나 살인자가 되고 부처를 만나 새 사람이 됩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서 변화가 다릅니다.

나는 27살에 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27살부터 부흥강사로 불려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산기도를 좋아하는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한의원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는 지 저녁에 문을 닫기만 하면 산기도를 다녔습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밤 12시만 되면 요란하게 싸이렌이 울렸습니다. 산에 올라 나무 밑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다가 보면 어느 새 12시 싸이렌이 울립니다. 그러면 집에 가지 못 하고 꼬박 산에서 밤을 새운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무섭게 기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기도하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런 덕분으로 오늘 날 온 세계를 다니는 강사가 되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말세가 되면 목사를 잘 만나야 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좋은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곤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목사들은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말세에는 장로님을 잘 만나야 해.>
<말세는 권사를, 집사를, 성도를 잘 만나야 해.>
좋은 목사를 만나고 싶은 성도들의 심정처럼 목사들은 좋은 성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 서로 잘 만났다는 소리가 나오게 서로 잘 하기를 바랍니다.

만남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갈보리에서 서로 좋은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정 채봉이 쓴 에세이집에 <만남>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4가지 만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이 있습니다.
생선같은 만남입니다. 만날 수록 비릿내 나는 만남입니다. 만날 수록 냄새가 나서 만나기 싫은 만남입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이 있습니다.
꽃송이같은 만남입니다. 피어있을 때는 화려하고 좋지만 시들면 보기 싫은 것이 꽃입니다. 좋을 때만 좋고 안 좋을 때에는 안 좋은 만남입니다.
지우개같은 만남이 있습니다.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입니다. 금방 만나고 만남을 잊어 버리는 만남입니다. 시간낭비 만남입니다.
만남 중에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 있습니다. 손수건같은 만남입니다.
힘들 때에는 땀을 닦아 주고, 슬플 때에는 눈물을 닦아 주는 만남입니다. 만남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합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남으로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서로 변화를 주는 아름다운 만남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복음을 통하여 변화됩니다.
오네시모는 바울과 같이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먹었습니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억지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억지로 바울과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로부터 매일 아침 저녁 복음의 양식을 먹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능력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 그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하게 된다는 이 복음은 가장 큰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복음을 들으면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네시모가 그랬습니다. 복음을 먹으니 복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먹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 교회가 수양관을 가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논산에 집회갔다가 토종닭 4마리를 얻어 왔습니다. 토종닭을 조그만 닭장을 만들어 놓고 길렀습니다. 이 종현 집사가 관리할 때였습니다. 나와 같이 수양관을 방문한 목사님이 이 종현 집사에게 물었습니다.
<알을 하루에 몇 개 납니까?>
이 집사의 대답이 명답이었습니다.
<기도하면 두 개 낳고 기도하지 않으면 한 개 낳습니다.>
이 집사는 내가 수양관에 내려 가기만 하면 한 개 낳는 날도 날 달걀을 내게 가지고 왔습니다. 하루는 이 집사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내일 달걀은 달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감주를 하고 단 찌꺼기를 닭에게 먹였습니다. 단 음식을 먹였으니 달걀이 달 수 밖에 없지요.>
나는 정말 그럴가 기대하고 이튿날 살피며 달걀을 먹었습니다. 정말 달걀이 다른 때보다 훨씬 달았습니다.
무엇을 먹느냐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먹는 것에 따라서 달라지는 법입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바울에게 계속 예수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복음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무슨 양식을 먹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변화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만남에서 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와 무엇을 들었느냐는 중요한 것입니다.

3. 결심을 통하여 변화됩니다.
사람은 결심을 통하여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레미제마블>은 유명한 소설입니다. 빅토르 위고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방탕한 생활을 하던 1941년 여름 가장 사랑하는 딸 레오폰디느가 세느강에 빠져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딸 시체에 흰 보자기를 덮으면서 빅토르 위고은 오열하였습니다. 이 때 생명을 주시고 부활시키실 분은 오직 예수님이라는 복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중얼거렸습니다.
<내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죽은 것은 딸이 아니라 천하의 죄인인 나다. 죄인이 죽고 의인이 되리라.>
빅토르 위고는 그 날부터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의 운명이 바뀌는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사랑의 귀중함을 생각하며 사색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과거를 생각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입니다. 쟌발장을 등장시켜서 19년 감옥생활을 마치고 나와서 사랑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입니다.
어떤 결심을 하느냐는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확실한 말씀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결심하는 자의 편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의 심복이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누구의 심복이 되느냐가 그 사람입니다. 깡패의 심복이 되면 깡패가 됩니다. 정치가의 심복은 정치가가 됩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바울의 심복이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동역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심부름꾼이 된 것도 아닙니다. 심복이 되었습니다. 심복은 원어로 <스플랑크나>라고 되어 있는 데 이는 내장이나 간장을 의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장이 없다면 살 수가 없습니다. 간장이 없다면 당장 죽을 것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당시 바울은 최고의 동역자를 오네시모로 여기고 있음이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인정받는 사람일 가요?
<나는 너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다.>
<너는 내 심복이다.>

장 세동은 전라도 사람입니다. 전라도 사람은 장군 되기가 그야 말로 하늘에 별따기인 시대였습니다. 이 때 전 두환이 말했습니다.
<나는 네 마음 알아.>
이 말 한 마디에 장 세동은 전 두환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전 두환이 어려움속에 있을 때 끝까지 의리를 지키고 모두가 자기가 한 일이라고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갔다 온 후 장 세동은 전 두환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각하! 휴가 다녀 왔습니다.>
신문 기자들이 장 세동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전 두환에게 충성하십니까?>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그 분만이 나를 알아 줍니다. 신하는 자기를 알아주는 임금에게 생명을 바치는 법입니다.>
후에 장 세동 통장에서 50억원이 든 비자금이 발견되었습니다. 청문회에서 국회위원이 물었습니다.
<전 두환이 준 뇌물입니까?>
이 때 장 세동이 말했습니다.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 잘 봐 달라고 주는 것이 뇌물입니다. 윗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주는 것은 하사금입니다. 이것은 각하가 주신 하사금입니다.>
이렇게 말한 후 한 마디를 더 하였습니다.
<이 돈은 내 통장에 있지만 아버지 돈입니다. 그 분이 필요하다면 언제나 드릴 것입니다.나는 전 대통령의 심복입니다.>

누구의 심복이 되느냐는 중요합니다
오네시모는 복음의 심복, 바울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결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으로 변화된 오네시모를 바울은 끔찍히 사랑하였습니다. 눈시울이 적셔 질 정도로 사랑하였습니다.

11절 저는 내게 유익하다.
12절 저는 내 심복이라.
13절 저를 내게 머믈러 두어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7절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 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절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

오네시모는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가장 큰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바울의 편지로 인하여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 드렸을 것입니다.
빌레몬의 뜻은 <사랑을 간직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이였기에 어쩌면 바울의 편지를 받고 오네시모를 노예에서 해방시켰을 지도 모릅니다. 오네시모는 잡혀 죽을가 두려워하던 암흑의 생활에서 깨어나 이제는 떳떳하게 광명속에서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사랑과 빌레몬의 용서는 오네시모를 전적으로 변화된 사람이 되게 하였을 것입니다.
오네시모라는 뜻은 <유익한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름 그대로 오네시모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아니지만 외경중에 도마복음이 있습니다. 도마복음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회개란 무엇이냐? 그것은 동쪽이 서쪽이 되고, 동쪽이 서쪽이 되는 것이며, 남쪽이 북쪽이 되고 북쪽이 남쪽이 되는 것이다.>

오네시모는 회개하고 전적으로 변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심복이 되기로 결심하고 나서 전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구의 심복이 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복이 되면 예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예수님의 심복이 되기로 결심하면 그 순간부터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울을 만나기 전에 오네시모는 돈의 심복이었습니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쾌락의 심복이었습니다. 밤낮 쉬지 않고 생각한 것은 주인의 돈이었습니다. 매일 훔쳐갈 귀중품이 어디에 있는 지 알아 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빌레몬 주인의 값진 물건을 훔쳐가지고 로마로 가서 멋지게 즐기면 살고 픈 꿈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로마에서 많은 돈을 가지고 즐기는 것은 생각만 하여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궁리하고 연구하다가, 엿보고 넘보다가 드디어 어느 날 기회를 잡았습니다.
빌레몬 주인의 물건과 돈을 할 수 있는 만큼 훔쳐가지고 로마로 달아 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바울과 같이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참으로 넓고도 좁았습니다. 같은 감옥에 있는 바울은 자기가 섬기던 주인 빌레몬과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을 적극적으로 돕는 이였습니다. 어쩌면 바울에게 선교헌금으로 주어야 할 물질을 오네시모가 훔쳐 갔는 지도 모릅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 복음으로 변화된 후 그의 기도 제목은 전혀 달라졌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종노릇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피해를 주고 도망간 오네시모를 회개시켜서 다시 빌레몬에게 돌려 보내게 되었습니다.

<네게 저를 돌려 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12)

오네시모가 가겠다고 하니까 돌려 보낸다고 한 것입니다. 복음적인 사람은 이렇게 변화됩니다. 그 당시 기록을 보니까 그 지역에는 6 천만명의 노예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예에 대한 법이 엄격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노예를 부리기 좋게 하기 위하여 영혼이 없는 동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살아있는 도구 취급을 하였습니다. 두 발 가진 편리한 동물이라고 여겼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사유재산이기에 주인 마음대로 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도망간 노예가 잡히면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사지를 잘라서 죽이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운이 좋은 노예는 라틴어로 Fugitivus 즉 도망자라는 머릿글자인 F 자를 이마에 찍어 일생 핍박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오네시모는 그래도 회개하고 자기 주인에게로 돌아가 다시 섬기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돈의 심복이 복음의 심복으로 바뀌었습니다. 만남과 복음과 결심은 종 오네시모, 죄수 오네시모를 복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후에 그를 보고 물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변화되고 싶습니까? 인생의 삶의 질을 엎그레이드 시키고 싶으십니가?
1. 만남이 중요합니다.
2. 복음이 중요합니다.
3. 결심이 중요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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