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 와 닿는 하나님
요 14:6-11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오늘은 대강절 둘째주일이자 성서주일입니다. 전 세계교회가 오늘 일제히 성서주일로 지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성경을 주신 것은 예수님을 주신 것과 같은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보고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보고 알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 자신이고 하나님을 계시하고 보여주는 책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 교훈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일명 “다락방 강화”라고도 하고 “예수님의 고별설교” 라고도 부르는 말씀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과 결별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내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 나를 아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자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과 동격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때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빌립의 말은 혼자의 생각이 아니고 제자들을 대표해서 궁금한 것을 대신 물은 것입니다. 예수가 곧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을 믿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나를 모르느냐, 나를 본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본 자니라”
그 말씀을 제자들이 무슨 말인지 알지를 못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우리들처럼 영적수준이 얕았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보여 지기를 원하고 만져지기를 바랬습니다. 영적 세계는 내 손으로 만져지고 눈으로 보는 그런 물질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물질의 세계에 살기 때문에 자꾸만 내 눈으로 보고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어려움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는 영적으로 깊은 수준이 요구됩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어떻게 알고 볼 수 있습니까. 영적 세계를 보고 믿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계시입니다. 계시에는 일반 계시가 있고 특별 계시가 있습니다.
일반계시
일반계시는 모든 창조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자연계나 사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물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천체의 신비함을 보십시오. 얼마나 신비하고 오묘합니까. 그래서 어떤 우주 비행사가 우주를 비행하는 도중에 “정말 신은 존재한다. 나는 정말 우주공간에서 신을 만났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신비한 우주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고백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자연의 신비를 보십시오. 그 모습이 얼마나 오묘하고 신비합니까. 자연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어김없이 정확하게 변화하면서 옷을 입고 옷을 벗습니다. 참 신비합니다. 또 사람의 몸의 신비를 보십시오. 창조물 중 걸작이 인체라고 합니다. 인체는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합니다. 인간도 다른 피조물 중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다른 피조물에 비해서 결정적으로 신비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은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생각하고 분별하고 판단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회개하고 기뻐하고 발명합니다. 그것이 인간에게만 주어진 신비함입니다. 앞으로 사람이 인간을 만들어 내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다 만들어도 생각하고 느끼고 음미하는 그런 인간은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영국인이 1초에 6억장씩 찍어내는 마콘 675라는 카메라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전자레인지는 음식 속에 들어있는 물 분자를 초당 25억 번씩 진동시켜 거기서 발생한 에너지로 음식을 데운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능력입니다. 이 같은 천체의 신비, 자연의 신비, 인간의 오묘함을 보고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 전지전능함으로 보고 알게 됩니다.
그런데 빌립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특성은 느끼고 만져보아야 믿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보여 주면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익두 목사가 깡패생활을 청산하고 회심하여 목사가 됩니다. 목사가 된 후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전도하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마다 김익두 목사는 “나를 보면 믿을 수 있지 않느냐”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물을 통해서, 자연을 통해서, 이웃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자연계시라고 말합니다.
특별계시
자연이나 계절의 신비함 속에 나타나는 일반계시가 있는가 하면 그 보다 더 구체적인 계시가 있는데 그것이 특별계시 입니다. 하나님은 이 특별계시를 통해서 자신을 더 자세하게 분명하게 타내시고 계시하십니다. 그 특별계시가 몇 가지 있습니다.
1) 성경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몇 사람에게 영감을 부어주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 영감을 받아 종이에 계시를 받아 쓴 것이 이 성경책입니다. 하나님은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보여 주었습니다. 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뜻, 계획, 섭리, 역사하심을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책을 특별계시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성경을 자주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더 자세하게 보고 알고 체험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2) 선포되는 말씀
선포된 말씀은 설교와 전도와 성경공부를 의미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믿게 됩니다. 또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결심하게 되고 성경공부를 통해서 알지 못하던 사실을 깨달아 알고 듣고 받아들여서 내 안에 믿음이 창조되고 천국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래서 롬 10:17절을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얘기할 때가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은 설교를 들을 때, 성경을 읽을 때, 기도할 때 들려집니다.
H. G. 웰드라는 사람이 “대주교의 죽음”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대주교가 성전에 올라가 늘 하던 대로 형식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오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자비로운 하나님 아버지” 하고 거창하게 마음에도 없는 형식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무엇을 말하려고 그렇게 장황하게 기도하느냐” 그때 대주교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생전 처음 음성이라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주교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구나, 그리고 내 기도를 들으시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설교, 성경공부, 기도는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3) 성육신하신 모습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의 눈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누구도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육신의 눈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눈은 너무 멀어도 보지 못하고 너무 가까워도 볼 수 없습니다. 너무 높아도 볼 수 없고 깊어도 볼 수 없고 작아도 볼 수 없고 너무 커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지구도 볼 수 없고 작은 세균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배려이고 은혜입니다. 아니면 지구가 도는 것이 보이고 천리 밖의 것도 보이고 아주 작은 세균도 눈에 보인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들면 그 숟가락에도 세균이 득실거리는 것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물을 마시려고 컵을 들고 보니까 물속에 대장균이 득실거리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안보이니까 사는 것이지 다 세균이 보인다면 살지 못할 것입니다. 안보리는 것도 은혜이고 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적당히 우리의 눈을 감겨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눈을 가지고 하나님을 보겠다고 하는 것은 만용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를 보고 믿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여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보고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보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요 14:9)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는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육신의 옷을 입고 성육신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4) 성령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세상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이 성령이 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도록 주선 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흔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으면 구체적으로 말해 보십시오. 한국말로 말씀하셨습니까, 방언으로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듯이 하나님은 음성을 우리의 고막 속에 한국말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음성을 들었다는 이야기는 나의 내면으로 깨달음으로 들려주셨다는 말입니다. 기도 중에 깨달음을 주셨고 성경을 읽을 때 깨달음을 주셨고 예배드릴 때 그리고 설교를 들을 때 내 마음속에서, 이성적으로, 영감으로 깨달음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이 하시는 역사입니다. 또 내 주위에 있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나에게 딱 한마디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찡하게 했고 찔리게 했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짤막한 말 한마디로 누군가에게 마음에 회심의 기회를 주고 변화하게 하고 하나님을 믿게 만든 경우가 많습니다.
입사한지 얼마 안 되는 남편을 부인이 찾아 왔습니다. 남편이 잠깐 나가 있었기 때문에 남편의 상사가 부인을 맞이해서 “남편이 참 자상하고 친절하고 일을 참 잘한다”고 칭찬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내의 얼굴이 찡그려졌습니다. 그때 그 부부는 별거 중이었는데 아내가 아이의 학비를 받기 위해서 남편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아내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집에 가서 아내가 깊이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아는 남편에게 다른 점이 있었구나 하고 아내가 생각하고 다시 결합했다고 합니다. 말 한마디가 힘을 과시한 것입니다. 그때 그 상사의 칭찬 한마디는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음성의 소리입니다. 이렇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영감의 음성은 힘이 있어서 상대방에게 큰 찔림과 감동과 뉘우침을 줍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그 역사가 바로 성령이 하시는 사역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는 뭐니 뭐니 해도 무디일 것입니다. 무디는 어려서 구둣방 점원이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의 어느 교사가 구둣방에 찾아갔습니다. 그 교사는 점원 무디를 보자마자 “나는 당신의 영혼에 대해서 깊은 관심과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후에 무디는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습니다. “그날 그 교사가 말하는 짤막한 말 한마디를 들을 때 그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말 한마디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여교사를 통해서 당신이 해야 할 말씀을 대신 전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 한마디가 어떤 때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변하여 상대방에게 들려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의 마음과 영혼을 뒤흔들어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반드시 선한 사람들을 통해서만 들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사탄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집니다. 눅 8:28보면 귀신이 예수께 말하기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하고 말합니다. 때로는 깡패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어느 권사님이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먹을 것이 없어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하는 모습을 동네 건달들이 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래서 이 건달들이 이 권사를 놀려주려고 떡을 사서 집안에 던져주었습니다. 그때 마침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던 중인데 갑자기 떡이 주어지자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눈을 감고 기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건달들이 나타나서 “그것은 하나님이 준 것이 아니고 우리들이 던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 권사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당신들은 알지 못하는가, 하나님은 때로 악마들을 통해서도 자녀들에게 도움을 주신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이렇게 어떤 매개를 통해서 마음과 뜻을 전달하십니다.
3.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알 수 있나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얼굴은 안보아도 음성만 들어 보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얼굴은 안보여도 어머니의 음성을 알듯이 하나님의 음성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의 음성도 한번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면 먼저 그 말씀이 내 영혼을 진동시킵니다. 여기 진동은 하나님의 음성이 내게 들려오고 임하심으로 내 몸이 영으로 느낌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 음성을 들을 때 내 생각 내 인생이 변화되고 확장됨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나의 삶의 미래가 열리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확립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인간과 대화하는 내용을 수록해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대화하셨고 야곱과 대화하셨고 이삭과 대화하셨고 요셉과 대화하셨고 모세와 대화하셨으며 여러 예언자들과 대화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과 대화가 가능합니다. 그 대화는 내 마음으로, 영감으로, 느낌으로, 전율로 다가옵니다. 그 말씀이 내 안에 임하시면 나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나는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나는 더 이상 예전과 동일한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내 안에서는 생리적으로 의식적으로 신비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때 나는 비로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꿈꾸게 되고 천국을 바라보는 변화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인이 되고 책임 있는 삶을 살게 되는 큰 뜻을 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 하나님을 내가 직접 체험하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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