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곳에서 건진 기적! (눅 5;1-11)
이런 이야기로 말씀을 열겠습니다.
부부와 초등학교 다니는 딸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갑자기 생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딸과 아버지 두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출근하는 데 딸이 봉투를 내 밀었습니다.
<아버지! 편지예요>
직장으로 가면서 편지를 뜯어 보았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아버지! 양말에 구멍이 났어요. 어머니처럼 꼬매드릴 기술이 없어요. 아버지가 주신 용돈에서 5000원을 도로 드리고 싶어요. 새 양말 사서 신으세요.>
아버지는 그 편지를 붙들고 살그머니 남모르게 전철에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중얼거렸습니다.
<속이 깊은 딸.....>
깊은 사람이 있고 얕은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로 들어 갑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평생 고기를 잡던 어부였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헐몬산 눈이 녹아 사막을 통과한 물이기에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반드시 낮에 잡아야 합니다. 반드시 얕은 곳에서 잡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 날도 밤에 고기잡이를 나갔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 날따라 단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새벽이 되었습니다.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 밤임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습니다. 베드로의 끈기가 돋보이는 밤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아침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할 수 없이 그물을 씻으며 고기 잡이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밤이다. 오늘은 공친 날이다. 돌아가서 푹 자고 저녁에 다시 나오리라.> 그 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본 베드로에게 배를 빌려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배를 빌려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배에 올라 서서 사람들에게 말씀 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귀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피곤한 몸으로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고 그물을 깊은 곳에 내렸습니다.
얼마나 고기가 많이 잡혔는 지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그리고 두 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지금까지 베드로는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낮은 곳에만 그물을 밤새도록 내렸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깊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깊은 곳으로 가는 신앙이란 어떤 신앙일가요?
깊은 곳에 기적이 있었습니다.
깊은 곳에 풍요가 있었습니다.
깊은 곳에 신비가 있었습니다.
깊은 곳에 축복이 있었습니다.
깊은 곳에 목표 달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깊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깊은 곳으로 가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가요?
1. 경험과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 깊은 곳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갈릴리 호수는 고기를 잡을 때 공간적으로 얕은 곳에서, 시간적으로 밤에 잡아야 합니다. 깊은 곳, 낮에는 고기를 잡을 수 없는 것이 경험이요, 이성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낮에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경험과 이성은 믿음이 아닙니다.
경험과 이성은 상식입니다.
경험과 이성은 기적이 아닙니다. 평범입니다. 예수님은 경험과 이성을 초월하였기에 기적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과학은 이성과 경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리는 기적입니다.
복사열 연구로 최고 과학자가 된 제임스 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과학자로서 살고 있지만 나와 하나님을 같은 위치에 놓아서는 안 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이 세상에 대하여 공부할 뿐입니다. 나는 사람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하고 하나님을 공경하여야 할 사람일뿐입니다.>
한국이 낳은 정근모 과학자도 말했습니다.
<현대 과학을 연구하면 할 수록 나는 삼라 만상을 원격 조정하고 있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을 보게 됩니다.>
197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파키스탄 압두스 살람은 노벨상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나같이 미천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오묘한 진리의 일부분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뉴톤 이야기입니다. 과학자 친구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만들어 졌다고 늘 주장하였습니다. 뉴톤은 태양계를 만들었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원을 여러 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태양을 중심으로 돌게 만들었습니다. 목성, 금성, 지구가 돌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초청하였습니다. 친구는 태양계 모조품을 보면서 물었습니다.
<이렇게 정교한 것을 누가 만들었어?>
뉴톤이 대답하였습니다.
<우연히 만들어졌어.>
그 친구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농담하지 말게.>
뉴톤이 말했습니다.
<이 것은 고장날 수 있지만 우주는 고장이 없네. 저절로 우연히 만들어질 수 있을 가?>
그 친구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을 태운 기차가 달리고 있었습니다. 밖에는 지금 장대같은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밖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다급하게 깃발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기관사는 급히 기차를 멈추고 무슨 일이 있는 지 몰라 밖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다리 가운데가 장마 비에 휩쓸려 내려가 버렸습니다. 거냥 지나 갔더라면 빅토리아 여왕도 죽고 수 백명 승객들이 죽을 뻔하였습니다.
다리를 긴급 복구한 후 기차는 무사히 런던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한 것을 느낀 기관사가 기차를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관사는 큰 나방이 한 마리가 기관사 창문에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알고보니 나방이가 헤드라이트에 붙어서 날개를 푸드득이는 것이 사람이 깃발을 흔드는 것같이 보인 것임을 알아 냈습니다.
이런 보고를 받은 빅토리아 여왕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려고 행하신 기적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스코트랜드의 독립운동가 로버트 브루스 이야기입니다.
그가 여기 저기로 쫓겨 다니는 도피자로 다닐 때 이야기입니다. 그는 적에게 피하여 다니다가 너무 다급하여 독안에 든 쥐처럼 적 앞에 있는 동굴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동굴속으로 들어가자 말자 거미 한 마리가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적들이 동굴 앞까지 따라왔습니다. 적군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이 동굴안에 있다. 독안에 든 쥐다.> 그 때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거미 줄을 보아라. 사람이 지금 들어 갔으면 거미줄이 있을 리가 없다. 보나 마나 없다. 헛수고하지 말고 거냥 가자.>
브루스 장군은 조마 조마조마 하게 숨을 죽이고 있다가 적들이 물러 가자 무릎을 치며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 작은 거미의 뱃속에 나를 위한 피난처를 만들어 주셨군요. 거미를 통하여 나를 보호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경험과 이성을 초월하며 사는 것이 깊게 사는 비결입니다.
2. 안 보이는 것을 볼 줄 아는 것이 깊은 곳입니다.
얕게 사는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봅니다. 그러나 깊게 사람들은 안 보이는 것도 볼 줄 압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보지 못 하는 깊은 곳에 있는 고기를 보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본다면 깊은 신앙입니다.
세계 최초의 우주선은 1961년에 발사한 쏘련 우주선 보스토크 1호입니다. 그 때 비행사는 가가린이었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로 올라 갔다 와서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우주를 돌아 보니 하나님이 안 계시더라.>
그런데 반대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1969 년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달에 발을 밟은 우주인은 암스트롱입니다. 그리고 1971 년 제임스 어윈이 달나라에 갔습니다. 두 우주인은 똑같이 말했습니다.
<우주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우주속에서 느꼈습니다.>
남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보는 것이 깊은 신앙입니다.
나는 지난 주간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삼성 대표 이사 평균 년봉이 81억원이라는 보도입니다. 상상을 초월합니다. 나는 놀라서 관계자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남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보고 정책을 한 가지 개발하면 수 천억원을 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81억원 월급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차범근 축구 선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차 범근은 운동장에 서기만 하면 늘 출애급기 35장 30절에서 31절을 묵상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부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차 범근은 늘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공을 찼습니다. 승리하였습니다. 안 보이는 것을 볼 줄 아는 것이 깊은 신앙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울산 시민 교회에서 부목으로 5년간 일하던 정 순행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 종관 담임 목사님을 모시고 5년간 부목으로 일하고 나서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나도 담임 목사로 나가서 일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기도하던 어느 날 테니스를 치면서 몸을 보았을 때 이상한 부스럼이 생기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동네 조그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 보았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면 조짐이 좋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 보았습니다. 피부암이었습니다. 벌써 온 몸에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피부암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얼굴까지 이제는 완전이 병자인 것을 알아 보게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심각하였습니다. 그 때 소마산 교회 목사님이 신학교 동기 동창인데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정 순행 목사님이 동기인데 성실하게 목회를 잘 할 터이니 한번 모셔다 설교를 들어 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유학을 떠난 후 정 목사님을 초청하여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들었습니다. 온 교인들이 설교를 들으며 암이 온 몸에 퍼진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임원회가 열렸습니다. 모두가 설교는 좋은 데 암 투병으로 머리가 다 빠지고 언제 돌아 가실 지 모르는 저 목사님을 모실 수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되었습니다.
이제 회의가 끝날 즈음이었습니다. 집사님 한 분이 일어서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생각은 다릅니다. 저 목사님을 우리 담임 목사님으로 초빙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미쳤다는 듯이 집사님을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이 때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나는 저 목사님을 모시면 우리 모두 비장한 설교를 들을 수 있을 것같습니다. 언제 돌아가실 지 모르시는 목사님이시기에 한 편 한 편 설교가 비장할 것입니다. 단 한번 설교를 듣더라도 그런 설교를 듣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 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건강하여도 내일 죽을 수 있고, 아파도 하나님이 기적으로 고쳐 주실 줄 수 있습니다. 저런 암투병하는 목사님을 우리가 모시면 하나님도 너무나 기뻐하실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집사님의 제의는 회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 목사님을 담임 목사님으로 초빙하였습니다. 놀란 것은 정 목사님이었습니다. 정 목사님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자기를 담임 목사로 초빙하여 준 교회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는 기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병을 낫게 하여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 교회를 담임하고 목회 잘 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정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같은 암 환자를 초빙하여 준 저런 교회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저렇게 아름다운 교회에 좋은 담임 목사님이 오게 하시고, 모두 축복받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아름답게 기도하다가 병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지금 담임하고 훌륭하게 목회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예수님은 남 다른 것을 볼 줄 영안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습니다. 게다가 7 귀신이 들었습니다. 설상가상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모습을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귀신이 나가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 너무나 신앙생활을 잘 할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7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모두가 도망갔습니다. 12명 제자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숨질 때까지 십자가 옆을 떠나지 않았던 이는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무덤을 새벽에 제일 먼저 찾아 간 이도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보실 수 있는 놀라운 영안을 지니셨던 분이었습니다.
삭개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삭개오를 세리라고 욕하였습니다. 난쟁이라고 깔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뽕나무위에 올라가서 자기를 만나려고 응시하는 삭개오에게서 비상한 그 무엇인가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다가 가셔서 그의 집에 가서 하루를 머무르시면서 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것이 깊은 신앙입니다.
3. 더 큰 것을 바라보는 것이 깊은 곳입니다.
오늘 본문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많이 잡게 하려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제자로 불러 수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없는 예수님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예수님은 고기보다 더 큰 것을 바라 보셨습니다. 예수님도 고기보다 더 큰 베드로를 바라보셨고, 베드로도 고기보다 더 큰 예수님을 따라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깊은 신앙입니다.
나는 지난 주간 수안보 온천 호텔에 잠간 들렀습니다. 한국 도자기 김 동수 장로님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성결교회에 유명한 이 성봉 목사님 사위입니다. 호텔 한 쪽에 이 성봉 목사님 기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수안보 온천에서 주일을 보내는 이들을 중심으로 예배드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김 동수 장로님은 정말 훌륭한 장로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청주 서원 교회를 섬기고 계십니다.
그는 한국 도자기를 세웠습니다.
한국 도자기는 한국 최대의 도자기입니다. 한국 역대 대통령들이 다 한국 도자기 그릇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안보 온천에서 제일 좋은 호텔도 가지고 있습니다. 로제 화장품 회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큰 그릇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 동수 장로님은 처음에는 청주에서 사기 그릇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망해가는 사기 그릇 공장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장사꾼에서 사업가로 탈바꿈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어려워서 빗 카드가 100장이 넘었습니다. 매일 빗 때문에 고통이었습니다.
<하나님! 장로가 빗도 못 갚고 죽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웁니다. 빗 다갚는 날 데려 가 주세요.>
그리고 사업을 하면서도 정직하게 성경대로 하였습니다. 그런 중에도 십일조를 정확하게 드렸습니다. 십일조를 수 백만원 드리려고 떼어 놓고 나면 아내가 옆에서 전화로 빗쟁이에게 사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조금만 참아 주시면 갚겠습니다.>
빗부터 갚고 싶은 유혹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리고 주문이 밀릴 때면 주일에도 특별 근무를 시키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일에는 철저히 공장 가동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것은 주기(酒器) 술 마시는 그릇은 일절 만들지 않았습니다. 토기 중에 술과 관계된 그릇이 30%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술에 관계된 그릇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성경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사업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1976년 어느 날 처음으로 은행에 잔고가 100만원 남았습니다. 빗을 다 갚았습니다.그 날 밤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오늘 밤 내 영혼을 불러 가도 좋습니다.>
옷을 깨끗이 입고 죽을 준비를 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았습니다. 그 후부터 하나님은 김 동수 장로님을 엄청나게 축복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날 한국 최고의 도자기 회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는 아펜셀러와 언더우드입니다.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셀러는 일찍 목포 앞바다에서 여학생을 건지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언더우드는 계속 선교를 하였습니다. 아무 연고가 없는 한국에 와서 4대를 선교한 선교사 가문입니다. 119년 동안 한국에서 대를 이어 살면서 선교하였습니다. 언더우드 가문은 우리 나라에 세브란스 병원, 연세 대학교, YWCA를 세웠습니다. 다 한국에 없어서는 안 될 기관들입니다.
얼마 전 온 가족이 한국을 완전히 떠났습니다.
이들은 큰 것을 바라 볼 줄 아는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깊은 곳은 어떤곳입니까?
1. 경험과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 깊은 곳입니다.
2. 안 보이는 것을 볼 줄 아는 것이 깊은 곳입니다.
3. 더 큰 것을 바라보는 것이 깊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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